1998년 시행된 뇌연구촉진법 가운데 1단계인 초기 10년 계획이 지난해 끝났다. 올해부터 한국뇌연구원 설립을 위한 2단계 계획이 시작되지만 정권 교체와 경기 침체가 맞물려 시행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선 ‘소(小)우주’라 불리는 뇌 융합 연구가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지만 국내 사정은 지지부진하다. 한국뇌연구원설립추진기획단장을 처음 맡아 중국과 일본을 바쁘게 오가던 서유헌(61 사진) 서울대 의대 교수의 발걸음도 유난히 무거워졌다.

 



● “새 술은 새 부대에…새로운 뇌 연구 위해 새로운 연구소 모델 필요”



“뇌 연구는 미래의 가장 큰 블루오션, 아직 열리지 않은 시장이에요. 단순한 생명기술 연구가 아닙니다. 나노기술이나 정보기술과 융합하면 산업과도 직결할 수 있는 분야에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의약품의 40%는 우울증, 정신병, 치매 같은 뇌질환 치료제다. 특히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치매 환자 수가 암환자만큼 늘고 있다. 2026년 쯤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에 이르면 뇌질환이 사회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뇌 원리를 밝혀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두뇌개발 소프트웨어 열풍이 부는 것만 보더라도 뇌 연구와 전자정보기술과의 융합이 꽤 유망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서 단장은 “두뇌개발 게임이 실제 뇌발달에 도움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뇌를 제대로 알게 되면 이론적으로 검증된 두뇌개발 게임이 출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개발에도 뇌 연구는 중요한 초석이 된다. 서 교수는 “인공지능 개발이 더딘 이유는 사람 뇌가 작동하는 원리가 아직 규명되지 않아 뇌를 모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구현하려면 여러 장치들이 병렬로 연결된 신경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뇌 일부가 손상돼도 계속 활동하는 사람의 뇌처럼 컴퓨터 일부가 고장 나도 계속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뇌 연구가 다른 분야와 융합하기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처럼 일찍부터 뇌 연구를 시작했던 곳들도 1~3년 전부터 융합연구소를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기존 연구소 구조의 한계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새로운 융합연구를 하려면 새 패러다임이 있어야 합니다.”

● 뇌 연구 최신 트렌드는 ‘융합’

미국은 3년전 미국립보건원(NIH) 옆에 융합연구소를 새로 지었다. 미국에는 정신병, 뇌질환, 노화, 약물 등 뇌 관련 연구소만 수백개가 넘지만 연구 과정을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부족했다. 새로 문을 연 융합연구소는 실험실 사이에 벽이 없어 여러 분야의 연구자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자유롭게 연구 과정을 공유하는 구조로 돼 있다.

프랑스에도 파리 1,3,5대학이 연계한 뇌척수 연구소가 있었다. 하지만 연구 영역이 분산되다 보니 실질적인 연계가 잘 안되면서 지난해부터 뇌척수 연구소 건물을 새로 짓고 있다. 연구자를 한자리에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의도다.

영국도 대학별로 운영하던 뇌 연구소를 놔둔 채 새로운 국가연구소를 짓고 있다. 영국 의과학재단인 ‘웰컴 파운데이션’은 약 1억 파운드(약 2000억원)를 투자해 영국 킹스칼리지에 국가 연구소를 만들고 있다.

일본 역시 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국립신경과학연구소가 있지만 최근 체제를 개편하고 있다. 뇌 질환에 치중했던 분야에 생물학, 공학, 인지과학 분야를 융합하기 위해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뇌 연구를 시작한 중국도 성큼 앞서나가고 있다. 중국은 1999년 상하이에 독립적인 신경과학연구소를 세웠다. 한국보다 1년 늦었지만 독립적인 연구소가 뇌 연구의 첨병으로 떠올랐다. 상하이신경과학연구소에서 발표되는 뇌 관련 연구 성과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뇌 연구 선진국의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은 지난해 11월 국립신경과학연구소를 하나 더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융합연구를 위해 날개를 하나 더 달겠다는 것이다.

“뇌 연구를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중국은 우리보다 벌써 몇 걸음 앞서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뇌연구소를 새로 건설하려고 안달이고 우리나라만 없는데도 새로 만들 생각이 없어요. 대학별로 운영하는 소규모 연구소 17개를 키우라고 말하지만 작은 연구소는 아무리 키워봤자 융합 연구 못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요.”

● 2012년까지 연구원 설립, 2040년 노벨상 수상자 배출

한국은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도입한 뒤 지난해까지 여러 연구소에 뇌 연구 관련 장비와 인력을 확충해 뇌 연구 기반을 닦았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부터 시작하는 2단계 사업에서는 새로운 연구소를 건설해 본격적인 융합 연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연구개발(R&D)예산에 편중을 가져오며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다.

“우리나라 R&D 예산은 미국의 14.5분의1, 일본의 3.3분의1 입니다. 하지만 뇌 연구 예산은 미국의 164분의1, 일본의 17분의1에 머물고 있어요. R&D 예산에서 뇌 연구와 관련된 비율은 다른 나라보다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뇌연구촉진법 17조가 ‘국가적인 뇌연구소 설립’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제외한 정부 기관들이 뇌 연구의 중요성을 알고 적극 돕고 있는 것도 힘이 된다. 서 단장은 “뇌 연구는 당장 2~3년 안에 ‘먹을거리’ 산업은 아니지만 10년 뒤를 보면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잘 만든 뇌질환 치료제 하나가 1년에 5~10조 원을 벌어들입니다. 다른 분야와 융합하면 또 다른 ‘먹을거리’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1년이라도 빨리 뇌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서 단장을 비롯한 한국뇌연구원설립추진기획단은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뇌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원 건립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고 연구원의 운영비와 연구비는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이다. 아직 위치 선정은 안됐지만 인천의 송도와 대전 대덕, 경북 대구 세 곳 중에 한 곳이 낙점될 것으로 보인다.

“5~6월에 부지를 선정해 늦어도 2012년에는 뇌 연구원 문을 열 계획입니다. 독자적 연구와 융합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주요 대학 연구소와 협력해 국내 뇌 연구 수준을 대폭 끌어올릴 것입니다. 여기서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연구 인력을 길러내면 2040년 쯤에는 뇌 연구원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지 않을까요?”




서유헌 단장의 ‘이것만은 꼭!’

○ 한국뇌연구원 설립
○ BT-NT-IT 연계한 뇌 융합연구
○ 뇌 관련 BIO 분야 미래성장동력 창출




서유헌 단장은

1948년 출생
1981년 서울대 신경약리학 박사
1984년~1986년 미국 코넬대 교수
1992년~1993년 일본 동경대 의과학연구소 교수
1997년~1999년 강원대 의대 학장
2000년~2001년 한국뇌신경과학회 이사장
2000년~현재 치매정복창의연구단장
2002년~현재 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
2005년~현재 국제인간프론티어과학기구 본부이사
2008년~현재 한국뇌연구원설립추진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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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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