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 ‘감기에 잘 걸리는 허약 체질’ 등 체질이라는 말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앞서 예로 든 체질이 실제로 있는 개념은 아니다. 체질의 구분은 1894년 한의학자 이제마가 창안한 사상의학(四象醫學)에서 출발한다.
이제마는 인간의 체질이 장기의 대소강약(大小强弱)에 따라 태양, 소양, 태음, 소음 4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질의 개념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중국에도 있긴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확실한 개념은 아니다.
체질은 골격이나 얼굴의 형태와 같은 외형이나 성격 그리고 질병에 걸렸을 때 증상과 반응 등을 종합해 구별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태음인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소양, 소음인이 뒤를 이으며 태양인은 거의 없다.
체질을 알면 같은 병이라도 더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다. 체질에 따라 처방이 다르기 때문이다. 몸의 냉기를 없애는 인삼은 몸이 차가운 소음인에게는 좋은 약재지만 열이 많은 소양인에게는 해로울 수 있다. 녹용 역시 폐가 약한 태음인에겐 좋지만 소양인은 열이 더 오르거나 몸속의 수분이 고갈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사상의학의 현대화를 위해 지난해 초부터 ‘이제마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사상의학을 유전학적으로 분석해 체질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즉 ‘체질 유전자’를 찾겠다는 것. 경험에서 출발한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작업인 셈이다.
연구진은 인간의 전체 유전자에서 체질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찾고 있다. 현재 몇 개의 후보를 발견해 정밀분석단계에 있다.
예를 들어 태음인이 다른 체질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점에 착안해 땀과 관련한 유전자를 탐색했다. 유전질환 증상 중에서 땀이 많이 나거나 나지 않게 하는 질환을 찾아 관련 유전자를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과 관련있는 ‘IL6R’ 유전자의 특정 유전자형이 체질별로 다른 분포를 나타내는 것을 확인했다. 특정 유전자형을 가졌다고 모두에게 질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태음인의 경우 질병이 아니더라도 땀을 많이 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체질별로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점도 이용했다. 감기나 천식에 효과있는 ‘마황’이라는 약재는 태음인에게는 특효약이지만 소음인에게는 가슴이 뛰거나 불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연구진은 생쥐에게 마황을 먹인 다음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조사했다. 그 중 하나의 유전자가 체질과 연관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해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태아의 발생과정에서 내장, 골격, 신경계 등의 형태를 형성하는데 관여한다고 알려진 ‘혹스(Hox)’ 유전자가 체질과 상통한다는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태음인은 배와 허리가 발달하고 골격이 굵다. 연구진은 태음인의 혹스 유전자를 조사해 몸통과 관련된 혹스 유전자가 잘 발현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렇게 발견한 체질 유전자들은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체질별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기능까지 밝힌다면 체질별로 체형의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이나 타고난 장기의 대소강약 이유까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체질 유전자를 찾는 방법 외에도 특정 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체질에 따라 끼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비만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FTO’ 유전자가 유독 태음인에게만 비만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다른 체질에 끼치는 영향은 적었다.
유전질환 내력이 있는 가계를 조사해 체질별로 자주 나타나는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를 추적하기도 했다. 3,4명으로 구성된 작은 가계와 160명이 넘는 가족을 가진 대가계의 유전자를 모아 각각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 총 8개의 부위에서 태음인과 관련한 체질 유전자를 발견해 정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체질이 유전되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은 결정적이다. 국내 101개 가구 총 593명을 대상으로 체질을 진단한 결과 태음인의 유전율이 0.55가 나타났다. 유전 경향이 높다고 알려진 골다공증이나 당뇨병의 유전율이 0.4~0.5인 것을 비교해도 충분히 높은 수치다. 체질이 유전자와 관련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지난달 24일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열린 ‘체질의학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영국 옥스퍼드대 데니스 노블 교수는 사상의학에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 최근 생물학계 내에서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스템 생물학’의 흐름이 일고 있다는 것이 노블 교수의 설명. 사상의학은 시스템 생물학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한의학연이 진행하고 있는 사상의학의 과학화 노력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한의학연은 사상의학의 유전학적인 분석 외에도 객관적인 진단을 내리는 장비도 개발하고 있다. 사상체질 진단기기와 맥을 짚는 맥진로봇 등의 시제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와 같은 한의학의 현대화 작업은 우리나라 전통의 사상의학을 새로운 현대의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이제마는 인간의 체질이 장기의 대소강약(大小强弱)에 따라 태양, 소양, 태음, 소음 4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질의 개념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중국에도 있긴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확실한 개념은 아니다.
체질은 골격이나 얼굴의 형태와 같은 외형이나 성격 그리고 질병에 걸렸을 때 증상과 반응 등을 종합해 구별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태음인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소양, 소음인이 뒤를 이으며 태양인은 거의 없다.
외형과 장기 기능에 따른 체질 분류. 자료 제공 한국한의학연구원 |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사상의학의 현대화를 위해 지난해 초부터 ‘이제마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사상의학을 유전학적으로 분석해 체질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즉 ‘체질 유전자’를 찾겠다는 것. 경험에서 출발한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작업인 셈이다.
연구진은 인간의 전체 유전자에서 체질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찾고 있다. 현재 몇 개의 후보를 발견해 정밀분석단계에 있다.
예를 들어 태음인이 다른 체질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점에 착안해 땀과 관련한 유전자를 탐색했다. 유전질환 증상 중에서 땀이 많이 나거나 나지 않게 하는 질환을 찾아 관련 유전자를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과 관련있는 ‘IL6R’ 유전자의 특정 유전자형이 체질별로 다른 분포를 나타내는 것을 확인했다. 특정 유전자형을 가졌다고 모두에게 질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태음인의 경우 질병이 아니더라도 땀을 많이 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체질별로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점도 이용했다. 감기나 천식에 효과있는 ‘마황’이라는 약재는 태음인에게는 특효약이지만 소음인에게는 가슴이 뛰거나 불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연구진은 생쥐에게 마황을 먹인 다음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조사했다. 그 중 하나의 유전자가 체질과 연관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해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태아의 발생과정에서 내장, 골격, 신경계 등의 형태를 형성하는데 관여한다고 알려진 ‘혹스(Hox)’ 유전자가 체질과 상통한다는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태음인은 배와 허리가 발달하고 골격이 굵다. 연구진은 태음인의 혹스 유전자를 조사해 몸통과 관련된 혹스 유전자가 잘 발현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렇게 발견한 체질 유전자들은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체질별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기능까지 밝힌다면 체질별로 체형의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이나 타고난 장기의 대소강약 이유까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체질 유전자를 찾는 방법 외에도 특정 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체질에 따라 끼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비만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FTO’ 유전자가 유독 태음인에게만 비만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다른 체질에 끼치는 영향은 적었다.
유전질환 내력이 있는 가계를 조사해 체질별로 자주 나타나는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를 추적하기도 했다. 3,4명으로 구성된 작은 가계와 160명이 넘는 가족을 가진 대가계의 유전자를 모아 각각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 총 8개의 부위에서 태음인과 관련한 체질 유전자를 발견해 정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체질이 유전되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은 결정적이다. 국내 101개 가구 총 593명을 대상으로 체질을 진단한 결과 태음인의 유전율이 0.55가 나타났다. 유전 경향이 높다고 알려진 골다공증이나 당뇨병의 유전율이 0.4~0.5인 것을 비교해도 충분히 높은 수치다. 체질이 유전자와 관련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지난달 24일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열린 ‘체질의학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영국 옥스퍼드대 데니스 노블 교수는 사상의학에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 최근 생물학계 내에서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스템 생물학’의 흐름이 일고 있다는 것이 노블 교수의 설명. 사상의학은 시스템 생물학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한의학연이 진행하고 있는 사상의학의 과학화 노력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한의학연은 사상의학의 유전학적인 분석 외에도 객관적인 진단을 내리는 장비도 개발하고 있다. 사상체질 진단기기와 맥을 짚는 맥진로봇 등의 시제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와 같은 한의학의 현대화 작업은 우리나라 전통의 사상의학을 새로운 현대의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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