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 '절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뭉크 2009년 07월 07일(화)

명화산책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유언에 의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뭉크는 전 생애를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살았지만 말년의 28년 동안은 오슬로 근처에서 보냈다. 고향은 뭉크 인생의 중심 무대다.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는 “내 그림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소묘와 습작들도 전시할 미술관이 필요합니다”라며 유산을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세워지기를 바랐다. 그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전 재산과 1천100점의 회화, 4천500점의 수채와 소묘, 1만8천 점의 판화, 6점의 조각을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오슬로 시는 뭉크 사후 2년 후부터 미술관 설립을 추진해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 되는 해에 개관했다. 오슬로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초기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뭉크의 <절규>다.

▲ <절규>--1893년, 마분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91*73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 이 작품은 뭉크 미술관의 자랑으로, <절규>를 보기 위해 오슬로는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뭉크는 이 작품을 유화나 석판화, 동판화 등등 다양한 재료를 써서 50여 점을 남겼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고 다리 난간 위의 인물은 공포에 귀를 막고 있고 있지만 뒤에 있는 인물들은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뭉크는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선으로 절규를 표현했다. 또한 그 뒤에 정상적인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절규하고 있는 인물을 강조했다. 화면 위의 붉은 구름은 마치 하늘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일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포를 나타내고 있다. 깊은 절망에 인간은 절규하지만 자연은 핏빛 하늘 너머로 메아리를 던질 뿐 아무런 위안을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해 “친구들과 오슬로 교외를 산책 나갔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피로를 느껴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핏빛과 불의 혓바닥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두려움에 떨며 서 있었다. 그때 난 자연을 관통하는 끝없는 절규를 들었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렀다” 라고 1862년 일기에 썼다.

뭉크에게 죽음은 그의 예술세계의 기본 색조를 이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출발한다. 5살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14살 때에는 사랑했던 누나 역시 폐결핵으로 죽는 것을 경험했다. 따라서 뭉크는 가족들의 건상상태에 민감했는데 남동생과 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유년 시절에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뭉크의 생애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사랑을 승화시켜 표현한 <마돈나>

뭉크는 삶의 시기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그리는 연작을 제작하는데 그 작품이 <생의 프리즈>다. 뭉크의 경험을 담은 작품 중에 사랑을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이 <마돈나>다. 이 작품은 뭉크와 삼각관계였던 연인 다그니 유을이 모델이다.

▲ <마돈나>--1894〜1895년, 캔버스에 유채, 91*70 

뭉크는 유명한 ‘뭉크 스캔들(베를린에서 열린 뭉크 개인전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 사건이 여론에 비화되면서 개인전이 폐쇄되는 사건이 일어난다)’을 계기로 베를린에 머물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뭉크는 예술가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고향 후배인 다그니 유을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뭉크의 사랑을 거부하고 건축가와 결혼한다. 그녀와의 사랑 경험은 <질투>, <흡혈귀> 등 작품으로 탄생한다. 하지만 베를린에 머무는 삼 년 동안이 뭉크의 생애 동안 가장 충실한 열매를 맺은 생산적인 시기였다. 동시에 문학적 철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이기도 했다.

뭉크는 여자를 세 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하나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마지막으로 체념하는 여인으로 보았다. 뭉크에게 있어서 여자의 헌신적인 사랑은 수태를 하는 여성을 뜻한다. 이러한 뭉크의 여성관의 모티브가 되어 나온 작품이 <마돈나>다. <마돈나>는 사랑과 개화라는 주제로 전시되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옷을 벗은 여자의 허리 아래쪽이 형체도 없이 흐르는 색채 속으로 사라지고 오른쪽 팔은 머리 뒤에 있고 왼쪽 팔은 허리 뒤로 묶인 것처럼 두르고 있다. 이런 역동적인 자세는 가슴과 복부를 내밀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작품 속 모자의 강렬한 색은 풍만한 육체와 자유분방한 머리카락의 곡선과 어울러져 있다.

모자보다 큰 후광은 까만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어 색의 대비를 주고 있으며 여자는 깨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잠들어 있는 듯 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뭉크는 여자의 신체 각 부분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화시켜서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다.

뭉크는 이 그림 속에서 삶과 죽음을 직접 연결하는 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로 남겼는데 “당신의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죽음과 삶은 손을 잡고 수천의 죽음과 수천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가 지금도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1903년 <사랑의 개화와 죽음>의 주제로 라이프치히에 전시되었는데 그 이후 뭉크는 다섯 가지 버전으로 제작했다.

말년에 나치가 독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뭉크의 작품을 ‘퇴폐예술’로 낙인 찍어 몰수하지만 뭉크는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bluep60@hanmail.net

저작권자 2009.07.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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