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이 있는 풍경 올해 들어 국내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 부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외면을 넘어 금기시되어 왔던 과학연극이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것.
본디 연극과 과학이 어울리는 관계가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이는 문화계와 과학계 양 쪽 모두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성을 토대로 자연의 진실에 접근하는 과학자의 세계와 감성을 무기로 대중과 호흡하며, 인간의 진실에 다가서는 연극계는 지금까진 특별히 만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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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30개국에서 공연된 과학연극 '코펜하겐' | 이런 이유 때문일까? 혜화동 대학로 연극가는 과학연극의 불모지와 같았다. 상업적 재미를 소재로 하는 연극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연인들 간의 사랑 또는 남녀의 불륜, 정치나 사회 문제의 풍자 등을 다룬 블랙코미디 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연극판에 과학 소재는 낄 자리조차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성과 감성의 만남, 과학과 예술의 접목 등 기존의 상식을 깨는 융합문화가 탄생한 것.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한 연극계는 이를 누구보다도 빨리 수용했고, 두 분야는 빠르게 정전기적 인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다.
과학계는 과학대중화를 위해서, 또 진부한 소재로부터 비상구를 찾던 연극계 역시 그동안 터부시해왔던 과학 소재를 필요로 했다. 그 결과, 과학과 연극은 무대에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소용돌이의 진원지가 바로 문제작 ‘코펜하겐’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9월 독일이 점령 중인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두 과학자가 만났다.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원자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집에 독일의 핵분열 프로그램을 이끌던 천재 핵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찾아온 것.
닐스 보어는 덴마크 물리학자지만 유태인 출신, 하이젠베르크는 유럽을 제패한 나치 독일의 촉망받는 핵물리학자.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볼 때, 이 둘의 만남은 그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를 가운데에 놓고, 인류 멸망과 직결된 엄청난 학술적 대화를 나눈다.
연극 ‘코펜하겐’을 쓴 영국의 극작가 마이클 프레인은 이 작품을 통해 핵폭탄을 만들며, 경쟁했던 미국과 독일 물리학자간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과학자에 대한 인류사회의 오해와 진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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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천재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만남 |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달라지는 진실
1998년 영국에서 초연된 후, 전 세계 30개국에서 공연될 정도로 히트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 연극을 국내에 도입, 연출까지 맡은 이가 바로 극단 청맥의 윤우영 대표다. ‘코펜하겐’의 성공, 아니면 융합문화의 시대적 조류 탓일까?
윤 대표는 한국과학창의재단 융합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다시 한 번 과학연극에 도전한다. 그 작품이 바로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만든 과학연극 ‘생명의 나무, 다윈’이다. 오는 10월 26일 미마지 아트센터에 첫 무대가 오른다.
학술대회를 준비하던 연구원들이 ‘종의 기원’ 출간에 대한 발표시점을 두고 생긴 의문점에서부터 연극은 시작된다. “왜 20년 동안 ‘종의 기원’ 출간을 미루었는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와 함께 다윈이 탐험했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줄거리다.
줄거리가 암시하듯, 연극 ‘다윈’의 주제는 ‘코펜하겐’보다 더 파격적이다. 신(神)의 존재에 정면으로 맞서는 ‘종의 기원’ 출간은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하게 인류사회를 뒤흔든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 기획까지 담당한 그는 “1년의 기획 기간 동안 다윈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다윈의 입장이 되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연극 ‘다윈’에 거는 그의 집념이라기 보단 연극인이 바라본 과학자의 고뇌 그리고 엄청난 과학적 사건을 둘러싼 진실과 오해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일 수 있다. 연극 ‘다윈’에서는 평생을 바친 ‘종의 기원’ 출간을 20년이나 망설인 다윈의 인간적 고뇌와 출간을 둘러싼 역사적 오해와 진실을 다룬다.
200년 전 ‘종의기원’이 출간되자 당시의 사회는 엄청난 오해와 편견으로 그를 바라봤다. 기독교가 지배하고, 융합문화는 커녕, 과학연극조차 없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선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다윈이 살던 200년 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과학과 예술이 융합하고, 과학연극을 통해서 과학자의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있다.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달라진 시각으로 다윈과 관련한 오해를 풀 수 있을까? 첫 무대가 오르는 10월 26일 이 질문의 대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 극단 청맥 윤우영 대표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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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다윈'을 기획한 극단 청맥의 윤우영 대표 | - 2009년 융합문화사업 지원과제의 신청 계기는
우리 극단 청맥은 융합문화사업 지원과제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연극 ‘다윈’에 대한 작업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대본을 만드는 동안에 이 융합과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학연극이 제작되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볼 때, 혹시나 이 다윈이란 작품도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신청한 결과, 지원을 받게 돼서 기쁘다.
- 이번 과제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면
올해가 다윈의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다윈에 대한 영화 등이 제작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도 일반인들 중엔 다윈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진화론에 대한 오해가 있고, 한쪽에선 극진적인 진화론자들이 너무나 무신론적으로 다윈을 밀어붙이는 경향도 나타난다. 우리 청맥은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과학자 다윈의 이야기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 다윈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 작품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 지원과제를 통해 나타내고 싶은 ‘융합문화’와 그 뱡향성 그리고 향후 전망에 대해서 한 말씀
나는 과학연극을 하면서 과학이 철학과 예술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연극에선 과학적인 부분이 모두 가미된다. 무대 설치, 조명 등 많은 영역이 과학기술에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융합문화 지원체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많은 사람이 과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딱딱하기 때문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각되는데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통해 과학을 더욱 친숙하게 만들고, 한편으로 과학기술을 예술 분야에 접목시켜서 기술적 발전의 혜택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지원과제 책임기관의 그동안의 활동과 향후 계획은
2002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극단 ‘청맥’은 정극의 중요성을 외치며, 한국연극의 탄탄한 기본기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특히 2007년부터는 역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역사인물 재조명 시리즈를 기획, 공연하고 있다. 또 과학연극에도 관심을 쏟고, 좋은 연극,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 융합문화의 중요성과 국가의 창의적 역량을 연결시킨다면
요즘 들어 컴퓨터 그래픽(CG)이 영화에 많이 접목된다. 이는 우리 연극계도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최근의 관객들은 눈이 상당히 높아져서 단순한 무대로는 재미없어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대장치도 거의 컴퓨터로 조정하고, 아주 입체적으로 돌린다. 이렇듯 연극 무대에서조차도 창의성이 많이 활용된다. 우리 연극 쪽에서도 과학기술을 더 많이 연결해서 더욱 더 창의적인 무대가 될 수 있는 창의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