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은 어떻게 치료할까

2007년 0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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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세시대 의사들은 정신이상 환자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인 이성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신이상자를 마치 동물처럼 취급했다. 또 당시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이상 환자는 뜨겁거나 찬 것, 아픈 것에도 무감각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많은 정신이상 환자들이 좁은 공간에 갇히거나 쇠사슬에 매이는 등 육체적인 제한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지금은 정신분열증, 우울증 같은 정신이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각종 심리요법이나 약물요법이 사용되고 있다. 정신이상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어떻게 발전돼 왔으며, 정신질환 약물은 어떤 작용을 통해 효과를 나타내는지 알아보자.

인권 아랑곳 않던 중세시대 치료법
미국 최초의 정신과 의사인 벤자민 러시는 정신이상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안정의자’를 발명했다. 환자가 흥분할 때 이 의자에 앉힌 다음 안정될 때까지 눈과 귀를 막은 채 손발을 의자에 묶어둔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이 의자에 몇주씩이나 앉아 있어야 했다. 사실 이 의자가 많은 정신이상 환자들을 ‘안정’시키기는 했다.
18세기에는 환자를 앉히거나 눕힌 채 회전시키는 ‘회전의자’도 등장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예측하지 못한 때에 갑자기 부서져 환자가 얼음물에 빠지도록 하는 의자도 만들었다. 정신적 쇼크를 주거나 놀라게 하면 정신이상 환자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치료법이 간혹 환자가 의사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유순하고 고분고분해지는 효과를 나타내기는 했으나, 정신질환을 완전히 치료하지는 못했다.

19세기 무렵에는 의사가 아닌 종교그룹이 정신이상 환자를 돌보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1792년 영국의 퀘이커교도인 윌리엄 투크는 자신이 속한 종교모임의 신자가 정신병원에서 비인간적으로 취급받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반발한 투크는 친절하고 인간적인 정신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정신이상자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자제심을 회복하도록 유도한 투크의 인도적 치료법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신이상자를 사납게 날뛰는 광적인 동물처럼 보던 사람들이 점점 정신이상자를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져 보호와 인도가 필요한 어린아이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전원적인 환경을 갖춘 정신병원이 많이 세워졌다. 미국의 경우 1859년 최초의 정신병원인 필라델피아병원이 설립된 이래로 1800년대 말까지 주마다 많은 정신병원이 생겼다. 그러나 곧 환자들로 가득 차 점점 치료의 질이 떨어졌고, 환자들의 창고처럼 돼버렸다.
1899년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많은 꿈을 분석해 무의식적이고 억눌린 욕망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프로이트는 잠재적 욕망들을 의식적으로 다루고 처리할 수 있는 대화치료법도 고안했다. 환자들이 무의식의 세계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편안하게 말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은 환자 뒤에 앉았다. 프로이트의 이 같은 정신분석학적 방법들은 정신질환을 심리적으로 치료하려는 것이다. 그의 영향으로 20세기에는 정신분석학이 정신이상자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여겨졌다.

뇌 신경 잘라내거나 전기충격 가해
그 후 1930년대에 의사들은 정신이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이 증상과 관련이 많다고 알려진 전전두엽 부위의 신경을 아예 절제하는 수술을 시도했다. 이 기술을 발명한 공로로 포르투갈의 에가스 모니즈라는 의사가 정신신경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월터 프리만은 전두엽 절제술을 좀더 간단한 방법으로 개량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 치료법을 전수했다. 실제로 수술 받은 환자 중 약 3분의 1만이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전기충격 치료법도 개발됐다. 이 방법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나오는 장면처럼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말을 잘 듣도록 하기 위한 처벌로써 사용되기도 했다. 심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는 요즘에도 전기쇼크 방법을 쓴다. 단 요즘에는 환자를 잠들게 하고 근육이완제를 주사해 경련이 일어나는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 무렵 여러가지 약물치료법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1922년 폴란드의 맨프레드 자켈이 마약중독 환자에게 인슐린을 주사했더니 잠이 들면서 안정됐다. 그 후 정신과 의사들은 인슐린을 정신분열증 치료제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정확한 임상시험을 통해 인슐린의 치료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다. 뇌가 활동하려면 뇌혈관에 일정량의 당분이 있어야 한다. 인슐린이 혈액 속 당분을 줄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뇌의 활동이 저하돼 혼수상태에 빠진 것뿐이다.
효과적인 치료약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클로로프로마진이 발명됐다. 1949년 프랑스 외과 의사들이 페노사이아진 염색약이 수술 받은 환자에게 진정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발견한 후, 1952년 프랑스의 딜레이와 데니커 박사가 이 염색약의 일종인 클로로프로마진이 정신분열증에 상당히 좋은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클로로프로마진은 정신이상 환자를 안정시킬 뿐 아니라 환상이나 환청, 망상 같은 증상도 개선시켰다. 많은 환자가 이 덕분에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클로로프로마진은 신경이완제에 속한다. 이 약은 정신분열증 치료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으로 파킨슨병과 비슷하게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생긴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죽는다. 신경이완제가 도파민과 결합하는 신경세포의 수용체를 억제하기 때문에 파킨슨병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암페타민을 복용하면 정신분열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로로프로마진이 환청이나 망상에 의한 발작과 같은 흥분성 증상을 개선하는 반면 클로제핀 같은 약물은 언어제한, 무감정, 의욕상실 같은 위축성 증상에 효과를 보인다. 클로제핀 계열의 약물은 도파민이 아니라 세로토닌과 결합하는 수용체에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1990년대 이전까지 약물치료법은 정신질환이 아주 심하고 고질적인 환자에게 주로 사용됐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덜한 환자, 우울증이나 불안감을 보이는 환자는 심리치료를 받았다.
1980년대에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이 등장하면서 우울증이나 불안감뿐만 아니라 통증이나 고통도 뇌의 화학물질에 따른 작용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뇌 화학물질을 조절하는 약물치료법이 1990년대 들어 활기를 띠게 됐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 치료제는 뇌에 어떤 작용을 할까.

신경전달물질 조절하는 약물치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거나 갑자기 직업을 잃어버리면 슬픔에 잠겨 우울해질 것이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슬픈 환경에 처했을 때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슬픈 감정이 자신을 압도할 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울증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일종의 질환이며, 대개는 약물로 성공적으로 치료된다. 우울증의 원인은 유전적, 정신적, 환경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우울증은 뇌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뇌는 우리 몸 전체를 조절하므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술이나 마약도 뇌의 화학물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

뇌의 신경세포(뉴런)들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서로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세로토닌의 양이 줄어든다. 대표적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은 뉴런과 뉴런 사이 연결부위인 시냅스로 분비된 세로토닌이 다시 역으로 흡수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세로토닌이 줄어들지 않게 해준다. 이는 심리적, 정신적 상태가 화학물질로 조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세로토닌은 19세기 중엽 혈액 속에서 근육을 강력히 수축하는 물질로 발견된 후 100년이 지나서야 분리됐다. ‘혈액’(sero)으로부터 분리한 ‘활성물질’(tonin)이라는 의미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로토닌은 혈액 내에서는 근 수축 효과가 있지만, 뇌에서는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한다. 세로토닌은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과 함께 뇌의 중요한 신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고도의 정신기능과 의식을 맑게 유지하는 각성기능, 감정을 조절하는 정서기능 등은 이들 신경계의 조절에 의해 이뤄진다.

신경계가 조화로운 조절 기능을 상실할 때 정신병이 생긴다. 예를 들어 도파민 신경계 기능이 과하면 정신분열증이 생기고, 세로토닌 신경계 기능이 약하면 우울증이 나타난다. 세로토닌은 수면의 20~30%를 차지하는 깊은 잠을 이루는 서파수면(느린 뇌파가 발생하는 수면)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세로토닌 신경계가 잘못되면 심각한 수면장애를 겪을 수 있다.
때로는 뇌세포의 생장이나 죽음이 우울증, 치매 같은 정신질환과 직결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세포의 생장이 억제되는데, 이런 스트레스가 종종 우울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장기간 우울증에 빠진 환자의 경우 뇌 특정 부위가 정상인보다 작아지고,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면 뇌세포의 생장이 증가하는 것이 동물실험으로 확인됐다.

정신세계와 뇌의 상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약물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정신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효과적인 정신질환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질환이 일어나는 세포 내 분자수준의 메커니즘이 밝혀져야 한다. 이 메커니즘을 조절하는 약물을 디자인해 화학적으로 합성한 뒤, 동물실험으로 약효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쥐를 좁은 방에 가두고 물에 빠뜨리거나 전기적 자극, 사이렌 소리, 번쩍이는 빛 등 피할 수 없는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매일 지속해서 가하면 쥐는 곧 우울증에 걸린다. 우울증에 걸린 쥐는 보통 쥐들이 갖는 호기심이나 활동성을 잃어버리고 대단히 소극적으로 변한다. 이런 쥐에게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할 약물을 투여해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한다. 높은 곳에 두고 뛰어내릴 때까지의 시간이나 어두운 통로에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그런 다음 약물의 안정성, 작용 메커니즘 확인 실험을 통해 사람에게 투여할 약물을 선정하고 임상시험을 거쳐야 비로소 약으로 개발되는 것이다.

이제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세포 또는 분자 수준에서 밝혀지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제뿐 아니라, 정신이 맑아지는 약, 기억력이 좋아지는 약 등이 개발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우울증 치료제의 작용 메커니즘 01정상인의 경우. 이전 뉴런에서 분비한 세로토닌(파란색 공 모양)이 다음 뉴런으로 전달된다(노란색 화살표 방향). 이 중 일부는 다시 이전 뉴런으로 되돌아간다(연두색 화살표 방향). 02우울증에 걸린 경우. 세로토닌이 워낙 적게 분비되는데다가 일부가 이전 뉴런으로 되돌아가므로 다음 뉴런에 전달되는 세로토닌 양이 매우 적다. 03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한 경우. 약물(초록색)이 이전 뉴런으로 세로토닌이 되돌아가는 것을 막아 세로토닌 양이 줄어들지 않게 유지한다.

전영호 크리스탈지노믹스㈜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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