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지배하는 자 마음도 지배한다

2006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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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생존의 측면에서 눈과 귀 못지 않게 중요하다. 코를 막으면 우선 호흡이 곤란해진다. 호흡은 일생에 두번, 태어날 때와 죽을 때를 빼놓고는 공기의 입출로 이루어진다. 태어날 때 처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죽을 때 마지막으로 숨을 내쉰다.


사람은 1만가지 냄새 맡아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냄새를 맡는다. 우리는 냄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돌이나 유리처럼 상온에서 증발하지 않는 물체는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공기 중에 미립자를 흩뿌릴 수 있을 정도의 휘발성 물질은 모두 냄새를 풍긴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분자가 증발하지 못하므로 냄새를 맡기에 충분한 분자가 코에 다다를 수 없다.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때문에 우주에서 후각을 상실하는 이유이다.

사람의 코는 약 1만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면 공기 중에 떠있는 냄새분자가 콧구멍을 통해 비강(鼻腔) 안으로 흘러들어간다(그림). 냄새를 최초로 탐지하는 후각계통은 양쪽 비강의 위쪽에 자리한 황갈색의 점막이다. 점액, 즉 콧물 덕분에 축축한 얇은 막은 후각상피이다. 후각상피의 면적은 약 2.5cm2에 불과하지만 냄새를 감지하는 뉴런 (신경세포)이 5백만개 있다. 후각이 예민한 개는 2억2천만개로 인간보다 44배나 많다.

이러한 후각세포는 뇌를 구성하는 뉴런과 유형이 같다. 그러나 뇌의 뉴런은 평생동안 교체되지 않는 반면에 코의 뉴런은 1-2개월마다 재생된다. 후각세포가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와 낯선 물질로 손상되기 때문에 이를 교체하는 메커니즘이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후각뉴런의 한 끝은 비강쪽으로 나와 있고, 다른 끝은 뇌로 연결된다. 비강쪽으로 나온 끝에는 섬모라 불리는 솜털이 달려 있는데, 이 섬모의 표면에는 냄새수용기가 들어 있다. 사람은 1천개의 상이한 냄새수용기를 갖고 있다. 공기와 직접 접촉하는 수용기 세포는 냄새자극이 포착되면 전기신호로 바꾼다. 전기신호는 후각뉴런의 다른 끝을 통해 후구(嗅球)로 전달된다.

코의 바로 위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후구는 뇌에서 후각정보가 지나가는 최초의 중계소이다. 후구는 변연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위이다. 변연계는 성적 충동, 공포, 분노 따위의 정서반응과 관련된 여러 부위로 구성된다. 후구는 변연계로 가는 신경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냄새신호는 변연계를 이루는 여러 부위로 들어간다. 변연계를 거친 신호는 후각피질로 퍼지게 되며 사람은 비로소 냄새를 지각하게 된다.

페로몬으로 의사소통

후각은 여느 감각보다 수억년 앞서 35억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짐작된다. 주화성(chemotaxis)이라 불리는 박테리아의 기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생물이 특정한 화학물질의 농도에 반응하여 이동하는 성질을 주화성이라 한다. 박테리아는 영양물질에는 다가가지만 해로운 물질로부터 멀리 움직이려는 주화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동물에게 후각은 생존에 필수적인 본능으로 진화되었다. 가장 예민한 후각을 가진 동물은 개나 다람쥐처럼 냄새분자가 가라앉은 땅에 코를 바짝 댄 채 기어다니는 짐승이다. 경찰견은 사람이 몇시간 전에 다녀간 방에서 그 사람의 체취를 맡는다. 다람쥐는 몇달 전에 묻어둔 도토리를 찾아낸다.

곤충 역시 냄새를 잘 맡는다. 뇌 세포의 절반이 후각에 동원될 정도이다. 모기는 잠든 사람이 내뿜는 탄산가스를 감지하여 흡혈대상을 발견한다. 수나비는 몇마일 떨어진 암나비의 냄새를 따라 집에 도착한다. 물고기도 후각능력을 필요로 한다. 연어는 부화를 위해 가야 할 그 먼 곳의 물냄새를 맡볼 수 있다.

동물은 또한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독특한 냄새를 남긴다. 들쥐는 발바닥에 오줌을 뿌려 영토를 거닐 때 그 냄새가 흙에 섞이도록 한다. 족제비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항문을 땅에 끌면서 다닌다. 열대우림에서 개미들은 선발대가 남긴 냄새를 따라 일렬로 행진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어미 박쥐가 동굴 안에서 새끼를 찾는 방법은 제 새끼가 지나간 길의 냄새 밖에 없다. 암캐가 발정하여 암내를 풍기면 이웃의 수캐들이 몰려온다.

이와 같이 냄새는 동물이 짝을 유인하는 번식행동에서부터 새끼를 확인하거나 영토를 표시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의 신호로 사용된다. 같은 종의 다른 개체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동물의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통틀어 페로몬(phero-mone)이라 한다.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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