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뇌가 맡는다

2007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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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너한테는 좋은 냄새가 나.”
최근 화장품 회사 CF광고의 한 장면.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뒤에서 다정하게 껴안으며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 뇌는 연인의 체취나 꽃향기처럼 좋은 냄새, 하수구나 화장실에서 나는 악취 등 수많은 냄새를 구분하고 기억할 수 있다. 냄새를 맡을 때 뇌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노벨상 받은 냄새 연구

냄새를 처음으로 알아내는 곳은 코의 안쪽 윗부분에 있는 ‘후각상피’다. 콧속으로 들어와 용해된 냄새분자는 후각상피에서 냄새결합단백질이라는 특수한 수용체와 결합한다. 냄새분자가 수용체에 결합하면 후각상피에서 나온 신경망을 타고 후각망울로 전기신호가 전달되기 시작한다. 이 신호가 뇌의 냄새 맡는 중추로 전달돼 어떤 냄새인지를 알아낸다. 뇌가 많은 종류의 냄새를 어떻게 식별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1991년 미국 컬럼비아대 리차드 액설 교수와 프레드 허치슨 암연구센터 린다 벅 연구원은 유전자클로닝기술(gene cloning technique)을 이용해 냄새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처음으로 분리해냈다. 액설 교수와 벅 연구원은 이 공로로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냄새를 식별하는데는 자그마치 1000가지 종류의 냄새 수용체가 관여한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냄새분자 하나가 수용체 하나에 결합한다고 해도 사람은 1000가지가 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수용체 모두가 다 밝혀진 것은 아니다. 각 수용체가 냄새분자 몇 개와 반응하거나, 각 냄새분자가 수용체 몇 개와 결합하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다양한 종류의 수용체들은 냄새분자 중 특정 부위에 반응한다. 뇌가 어떻게 냄새를 인식하는지에 대한 비밀을 풀려면 어느 냄새분자의 특정 부위가 어느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지, 즉 냄새분자와 수용체의 미세한 조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후각에 대한 오해
신경과학 분야에서 뇌 영상을 촬영하는 기술(cerebral imaging)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여러 가지 특수한 감각작용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각은 청각과 시각, 그리고 촉각에 비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변화가 일고 있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과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같은 뇌 영상 촬영 기술이 다양한 후각 작용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후각에 관여하는 뇌 부위에 대한 몇 가지 연구 중 후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발생과정이 있다. 이 분야에서 특히 뇌 영상 촬영 기술이 진가를 발휘했다. 후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후각이 아닌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식에 관여하는 인자들이 뇌 후각영역의 발달에도 관여한다고 알려졌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냄새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자극시키며,
  오랫동안 기억되고,
  그 양을 측정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냄새자극이 다른 감각자극과는 다르게 전달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뇌 영상 촬영 기술을 이용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후각을 인식하는 과정도 다른 감각과 유사하게 구성돼 있다. 1차 뉴런(신경세포)이 후각정보를 받아들여 척수로 전달하면 2차 뉴런이 다시 뇌의 시상으로 전달한다. 3차 뉴런이 이 정보를 뇌의 후각중추로 전달하면 우리가 냄새를 인식하게 된다.

냄새로 이성 선택한다
냄새를 맡는데 관여하는 조직 코 안으로 들어온 냄새분자는 후각상피에 있는 후각 수용체에 결합한다. 이 신호가 후각망울에 있는 후각신경을 타고 뇌의 냄새중추로 전달되면 어떤 냄새인지를 인식할 수 있다.
사랑을 구할 때 어떤 감각이 가장 중요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일차적인 요인이 외모인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인간은 대뇌가 발달했기 때문에 시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그러나 동물의 경우 사랑과 후각이 동일시되기도 한다. 이성을 찾거나 성행위를 하는데 상대방의 후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만의 영역을 표시할 때도 후각을 이용한다.

동물만큼은 아니지만 인간도 이성을 선택하는데 냄새, 즉 후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냄새를 인식하는 동안 뇌에서 감성을 조절하는 부위인 변연계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나비가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은 암컷이 체외로 방출한 극미량의 페로몬을 감지해 1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암컷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 개나 사슴 등 포유동물의 대부분도 짝짓기를 하기 전에 상대 생식기의 냄새를 맡고 성적자극을 받는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페로몬이 있다는 말일까. 사람의 경우에도 페로몬이 방출되고 그 냄새에 반응하는 정도가 마치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람에게서 직접 페로몬을 추출해낸 적은 없다.

스웨덴 카롤린스카대 이반카 사빅 박사팀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여성들과 동성애 남성들은 남성의 땀에 들어 있는 호르몬에 똑같이 자극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연구팀은 여성들과 동성애 남성들에게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냄새를 맡게 하고 양전자방출단층촬영으로 뇌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테스토스테론 냄새를 맡은 뒤 동성애 남성과 이성애 여성은 성 행동을 관장하는 뇌 부분이 강한 반응을 보였으며, 이성애 남성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특히 뇌에서 동성애 남성과 이성애 여성의 반응은 시상하부 영역에 집중됐다. 또 간뇌에 있는 성행동에 필요한 호르몬과 감각반응을 관장하는 시각교차앞구역도 활발한 활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반대로 에스트로겐 냄새를 맡게 했을 때 동성애 남성과 이성애 여성은 후각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서만 반응이 있었을 뿐이고, 이성애 남성은 생식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서 강력한 활성을 보였다. 라벤더나 시더 향 같은 일반적인 냄새를 맡게 했을 때는 세 그룹 모두 후각을 관장하는 뇌 부위만 반응을 보였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 실험은 인간의 뇌가 두 가지 성호르몬에 각각 달리 반응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성적 성향과 뇌 활동 부위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즉 이는 동성애자의 뇌 구조가 이성애자와 어딘가 다르며, 성적 취향 역시 후천적인 게 아니라 선천적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후각이 선천적 성 취향의 근거
미국 모넬 화학감각연구소의 찰스 위소키 박사는 동성애와 이성애 남녀들을 성적 성향이 다른 사람의 겨드랑이 땀 냄새에 노출시켜봤다. 땀에는 보통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호르몬 성분이 들어있다. 실험 결과 동성애 남성은 이성애 남성, 이성애 여성, 동성애 여성과 모두 반대 반응을 나타냈다. 즉 동성애 남성은 같은 동성애 남성의 냄새를 좋아한 반면 이성애 남녀와 동성애 여성 모두 동성애 남성의 냄새를 싫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캐나다 맥마스터대 의대 마이클 드그루트 박사는 “성적 성향이 생물학적인 것이지 습득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 대부분이 발병 초기에 후각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후각상실 검사로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에 관여하는 뇌 단백질인 ‘타우’(tau)를 과잉생산하는 실험용 생쥐는 후각상실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타우가 후각상실의 원인 물질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각상실이 알츠하이머병이 아닌 다른 환자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많은 파킨슨병 환자도 발병 초기에 후각상실 증상을 보인다.

나이 들면 냄새도 희미해진다
사실 일반적으로 노화가 일어나면서도 후각이 상실된다. 80세가 되면 건강한 사람 중 4분의 3이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65~80세 인구의 절반이 심각한 후각상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노인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수 있다. 맛을 느끼는데는 미각뿐 아니라 후각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냄새는 특정한 기억을 생각나게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브루스 투레스키 교수는 “냄새는 매우 강력한 감정의 자극제”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신병과 연관될 수 있다고 했다.
투레스키 교수팀이 정신분열병 환자 26명의 후각망울 크기를 측정한 결과 정상인보다 평균 23%나 작았다. 이는 정신분열병 환자가 후각능력에 이상이 있다는 생물학적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몇몇 냄새는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레몬 향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인식을 증가시킨다.
라벤더 향은 기분을 즐겁게 해주지만, 수학적 능력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유칼립투스 향은 호흡을 증가시키고 정신을 맑게 하며,
장미유의 구성성분인 펜에틸알콜 향은 혈압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런 발견들이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기분이 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연령에 걸쳐 여자가 남자보다 냄새를 더 잘 맡는다.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오늘 오랜만에 여자친구, 아내, 누나, 여동생에게 ‘향기로운’ 꽃 한 다발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최완성 교수는
1990년 서울대 동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상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올해부터 경상대 신경기능장애연구센터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센터의 연구 목표는 신경기능 장애의 원인을 분자생물학 방법으로 분석해 진단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 최근 최 교수는 특히 후각이 생식소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 고지방식이요법이 발작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다. 학생들에게 "뇌는 각종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원천"이라며 "생명현상의 다양한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고 조언한다.


최완성·경상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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