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55) | ||||||||
에미 뇌터 | ||||||||
“만약 누군가 ‘A는 B보다 적거나 같다, 그리고는 다시 A는 B보다 크거나 같다는 걸 처음으로 보여주어 A와 B라는 수가 같다는 걸 입증해 낸다면, 그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대신 그들(두 수)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 같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에미 뇌터(1882~1935): 독일 출신의 미국 수학자 명언의 의미를 좀 짚고 넘어 갈까요? A는 B보다 작거나 같다, A≦B. A는 B보다 크거나 같다, A≧B. 이 두 가지로 인해 결국 A=B다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있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충분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뭐가 맞다는 건가요? 부등호를 사용해 A=B라는 등식을 도출하는 접근방법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어떤 대상의 모임들의 구조를 연구하는 추상대수학(abstract algebra)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에미 뇌터(Emmy Noether)에게는 구조적이고 전체적인 접근을 통해 A와 B가 같다는 등식을 도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웠던 겁니다. 에미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수학자로 인정 받고 있는 학자입니다. 여성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가 이룩한 업적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별로 친숙한 이름도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수학 발전에서 20세기의 어느 수학자에 못지않은 뛰어난 수학자입니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극복해 세계 수학의 최고봉에 오른 에미가 얼마나 대단한 수학자인지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당시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애석하게 생각해서 쓴 추도문을 한 번 보는 게 좋을 듯싶네요. 1935년 5월 5일 미국 가장 권위 있는 신문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원문 일부를 나누어서 소개하겠습니다. 어디에선가 접했던 익숙한 부분도 나옵니다. “The efforts of most human-beings are consumed in the struggle for their daily bread, but most of those who are, either through fortune or some special gift, relieved of this struggle are largely absorbed in further improving their worldly lot.” "대부분의 인간의 노력은 일상적인 빵(생계)을 위해 노력하는 데 소비돼 버립니다. 그러나 돈이나 특별한 재능이 있어 이러한 (빵을 위한 투쟁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다시 미래의 세속적인 야심을 더 채우려는 노력에 몰두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겠죠?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Beneath the effort directed toward the accumulation of worldly goods lies all too frequently the illusion that this is the most substantial and desirable end to be achieved :” “세속적인 재산의 축척을 향한 노력의 이면에는 이것(재산의 축적)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이고 성취해야만 할 최종 목적이라는 너무나 많은 환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but there is, fortunately, a minority composed of those who recognize early in their lives that the most beautiful and satisfying experiences open to humankind are not derived from the outside, but are bound up with the development of the individual’s own feeling, thinking and acting.”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이란 외부에서(세속적인 욕심)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신의 느낌, 사고, 그리고 행동의 발전에서 나온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에미를 지칭하는 거죠. 에미에 대한 추도문은 계속 이어집니다. “The genuine artists, investigators and thinkers have always been persons of this kind. However, inconspicuously the life of these individuals runs its course, none the less the fruits of their endeavors are the most valuable contributions which one generation can make to its successors.” “(역사적으로 볼 때) 진정한 예술가, 연구가, 그리고 사상가는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주목을 끌지 않은 채 자기 인생의 길을 걷지만, 그래도 그들의 노력의 열매는 한 세대가 후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 the judgment of the most competent living mathematicians, Emmy Noether was the most significant creative mathematical genius thus far produced since the higher education of women began.” 해석하자면 “현존한 가장 유능한 수학자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에미 뇌터는 여성의 고등교육(대학)이 시작한 이래 배출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며 창조성이 풍부한 수학의 천재였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입니다. “Pure mathematics is, in its way, the poetry of logical ideas. one seeks the most general ideas of operation which will bring together in simple, logical and unified form the largest possible circle of formal relationships. In this effort toward logical beauty spiritual formulas are discovered necessary for the deeper penetration into the laws of nature.” “순수 수학 그 자체는 논리적인 아이디어로 구성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수학자는) 명료하고도, 논리적이며 통일적인 형태를 통해 모든 가능한 공식관계를 정립하는 가장 일반적인 운용의 법칙을 찾아 냅니다. 논리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노력으로 자연의 법칙에 좀 더 깊이 스며들 수 있는데 필요한 영혼의 법칙들이 발견되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여성 수학자
그래서 에미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이 그녀를 ‘막스 뇌터의 딸로 표현하자 그녀의 재능이 대단하다고 인정한 에드문트 란도(Edmund Landau) 박사가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종종 아인슈타인이 한 것처럼 나오는데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란도 박사입니다. “Max Noether was the father of Emmy Noether. Emmy is the origin of coordinates in the Noether family. 막스 뇌터는 에미 뇌터의 아버지입니다. 에미는 뇌더가(家)의 바로 정점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딸이지만 아버지보다 더 훌륭하고 재능이 있으니깐 막스 뇌터의 딸이라는 ‘종속적인 의미’의 표현은 좀 듣기가 거북하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루프양자 중력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스몰린(Lee Smolin) 박사도 그 중 한 학자로 에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우주론자입니다. 그는 저술활동도 활발해 ‘The Life of Cosmos(우주의 일생)’으로 유명하고, 최근에는 ‘The Trouble with Physics(물리학의 문제들, 역자 주)’라는 책을 출간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스몰린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The connection between symmetries and conservation laws is one of the great discoveries of twentieth century physics. But I think very few non-experts will have heard either of it or its maker, Emmy Noether, a great German mathematician. But it is as essential to 20th century physics as famous ideas like the impossibility of exceeding the speed of light.” “대칭(이론)과 (에너지)보존법칙 사이의 연관관계는 20세기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전문가를 빼놓으면 그에 대해 들어 보거나 그 (연관관계) 이론을 세운 학자인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 에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이론은 광속보다 빠른 것은 불가능하다는 유명한 생각만큼이나 20세기 물리학에서 중요하다.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It is not difficult to teach Noether’s theorem, as it is called; there is a beautiful and intuitive ideas behind it. I have explained it every time I have taught introductory physics. But no textbook at this level mentions it. And without it one does not really understood why the world is such that riding a bicycle is safe.” “'뇌터의 정리'라고 부르는 이론을 가르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속에는 아름답고 직관적인 사고가 있다. 나는 입문 물리학을 가르칠 때마다 ‘뇌터의 정리’를 설명해 주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로 ‘뇌터의 정리’를 설명하는 교과서는 없는 실정이다. ‘뇌터의 정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달리는 자전거가 안전한 것처럼 세상도 왜 그러한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만큼 에미의 능력을 알아준 겁니다. ‘현대수학의 아버지’ 힐베르트도 인정한 수학자
에미는 현대수학의 근간이 되는 추상대수학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복잡하고 귀찮은 계산을 싫어했고 대신 수학의 추상적인 방법에 몰두했습니다. 추상대수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환론(ring theory)을 정립해 20세기 최고의 수학자의 칭호를 받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그녀의 이론이 현대 물리학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죠. 그러나 그녀가 진정한 학자로 인정받기까지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역경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수학이 모든 것이었던 그녀는 그래도 수학자였던 아버지 덕에 18살이 돼서 수학에 입문하게 됩니다. 늦둥이 수학자가 된 거죠. 여성들에게 대학 입학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인 1900년도에 그녀는 청강생으로 시작해서 박사학위를 마칩니다. 에미가 수학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멘토를 잘 만난 이유도 없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었으며 당대 최고 수학자로 ‘현대수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힐베르트(David Hilbert)의 배려가 상당히 컸습니다. 사실 힐베르트는 능력도 대단했지만 에미만이 아니라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성차별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후배 양성에 많은 노력을 한 학자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화가 등장합니다. 에미의 재능을 인정한 힐베르트가 교수회의에서 에미를 강사로 추천하자고 하자 교수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반대합니다. 그러자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아니 대학이 목욕탕이요!”라며 주위 동료들을 비난했다고 합니다. 공중 목욕탕은 당시 유럽에도 있었나 봅니다. 이 일화에 대해 독일어를 번역한 영어는 이렇습니다. 에미의 평생 지지자였던 힐베르트의 말입니다. "I do not see that the gender of the candidate is against her admission as a privatdozent. After all, the university senate is not a bathhouse. 저는 후보자의 성별 때문에 강사임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어쨌든 대학 교수진이 목욕탕은 아니지 않습니까?” 힐베르트가 하도 완강하게 나오자 동료 교수들이 결국 마지 못해 허용합니다. 에미의 스승 힐베르트는 '수학자들이 20세기에 해결해야 할 23개의 문제’를 제시해 더욱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산술, 대수학, 함수론 등을 망라한 이 23개의 문제는 힐베르트가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수학자대회에서 제시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20개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합니다. 에미는 능력이 탁월했지만 얼굴이 못 생겨서 강사추천에서 밀려났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공부에만 매달린 에미는 대학에서도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니고,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 길을 걸으면서도 입에 항상 음식을 달고 다니는 등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없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친구도 없었고, 또 사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수학에만 빠져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학은 최고의 남편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유대인인 에미는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에 있는 여자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같은 독일 출신의 아인슈타인이 뉴욕타임스에 추도문을 쓰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미국의 여성수학협회는 에미를 기리기 위해 매년 수학계에 뛰어난 공헌을 한 여성 수학자를 초청해 ‘에미 뇌터 강좌’란 이름으로 대중 강연을 열고 있습니다. 영국의 수학자이면서 대단한 문장가인 버트란트 러셀경은 대단한 문체로 수학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Mathematics, right viewed, possesses not only truth, but supreme beauty—a beauty cold and austere, like that of sculpture, without appeal to any part of our weaker nature, without the gorgeous trappings of paintings or music, yet sublimely pure, and capable of stern perfection such as only the greatest art can show.” -The Study of Mathematics- “정확하게 보자면 수학에는 진리가 있고 최고의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냉정하지만 위엄이 있는 조각상과 같은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약한 본성의 어느 부분에도 호소하지 않으면서, 그림과 음악처럼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아주 순수하며 오직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 -러셀경의 ‘수학의 연구’에서- 자연의 움직임과 우주의 아름다운 소리를 전달해 주는 것은 수학이라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그 언어 속에는 삼라만상에 대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또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최고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따뜻하고 친절한 감성의 소유자 에미가 독신으로 평생을 살면서 수학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It is easier to square the circle than to get round a mathematician. 수학자를 원만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원을 사각형으로 만드는 게 더 쉽다.” 수학자는 고집불통이라는 이야기인가요? 에미도 수학에 관한 한은 엄청난 고집쟁이였겠지요? 인도 출신의 영국 수학자로 근대 대수학을 개척했다는 드모르간(August de Morgan)의 이야기입니다. 학문에 대한 집착이 있어야 위대한 학자가 탄생하는 겁니다. *이 글은 고등과학원의 수학부 강순이 박사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 ||||||||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 ||||||||
2007.03.22 ⓒScience Ti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