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특별한 동물(1) | ||||||||||||
[칼럼] 이종호의 과학이 만드는 세상 -27 | ||||||||||||
인간이 특별한 동물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너무나 다른 특성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우선 인간은 체모가 없는 유일한 포유류다. 현존하는 포유류는 약 4천 종에 달하는데 그 전부가 체모를 갖고 있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체모를 갖고 있다. 특별한 예외로 따뜻한 지역에 살고 있는 두더지와 박쥐가 날개에 체모가 없고 고래처럼 유선형의 필요에 의해 체모가 극단적으로 적은 수생식물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인간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에 종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만 유별나게 체모가 없어졌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모피는 방한도 되고 외상도 막을 수 있어 생존에 훨씬 유리한데 어째서 인류는 체모를 없애려고 했을까? 만일 인간에게 체모가 없다는 것이 진화 과정이라면 원숭이나 유인원, 그 밖의 영장류 동물의 특성인 체모에 덮인 피부로부터 그것이 엷어져 가는 여러 가지 단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둘째는 인간만이 정서적으로 대량의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거나 눈이 쓰라리거나 기쁨 또는 슬픔의 감정을 나타낼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란 주로 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하여 눈의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것으로 다른 동물들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일반 동물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은 정신적으로 반응하여 눈물을 흘린다는 점이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이 진정된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특징은 바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 주는 것이다. 셋째는 인간이 예민한 손가락과 민감한 피부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의 두뇌가 손가락 끝에서 보내진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다른 동물보다도 훨씬 뛰어나다는 뜻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손의 피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는 지적이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예민한 피부는 혹독한 자연 섭리와 싸우기에는 매우 불리한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히려 진화론의 기본 원리인 적자생존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변화를 보인다. 넷째는 인간은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치유 속도가 너무나 느리다. 동물의 상처는 요술에 걸린 것처럼 빨리 낫지만 이에 비해 인간은 자기 치유 능력이 부족하다. 동물의 상처는 바늘로 꿰매지 않아도 아물어 버린다. 상처가 났을 때 즉시 봉합하지 않으면 피부가 변형되어 버리는 경우는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뭔지 모르는 요인에 의해 인간의 신체상에서 동물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존 본연의 요소가 갑자기 정지해 버린 것이다. 다섯째 인간에게는 이빨 사이에 틈이 없다. 유독 인간에게만 전문가들의 귀에는 익숙한 ‘디아스테마타(이빨의 틈새)’가 없다. 동물들은 아래 어금니가 길게 비스듬히 튀어나오기 때문에 위의 어금니와 인접하는 앞니와의 사이에는 일정한 틈이 생긴다. 이 틈새 때문에 먹이를 잡아먹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어금니가 충분히 자랄 수 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뇌의 용량이 커짐에 따라 인류의 식생활이 변하여 초식을 위주로 하게 되자 디아스테마타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소나 말의 경우에는 완전한 초식동물인데도 디아스테마타가 있다. 여섯째로 인간은 독특한 언어 발성 기관을 가졌다. 1970년에 인간의 해부학상의 특징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발표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영장류의 발성법에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직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다른 영장류의 어떤 목구멍에서도 볼 수 없는 조직이다.” 언어란 인간을 지구상의 어떤 동물과도 명확히 구별한다. 원숭이는 12?25개 정도의 다른 음성으로 이루어진 언어를 갖고 있으나 인간은 영어만 따져도 2만5000개의 발음을 할 수 있으며 목구멍과 입술로써 각각 독특한 발음을 하는 5000종에 이르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일곱째는 인간처럼 음식을 천천히 삼킨 다음 위로 내려가게 하는 동물은 없다는 점이다. 인간이 음식을 삼킨 다음 입에서 위까지 내려가는 데는 약 6초가량 걸린다. 그러나 일반 동물들은 음식이 입에서 위까지 닿는 데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이루어진다. 동물들에게 먹이는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잡은 동물이나 음식물을 재빨리 소화기관으로 전달해야 하지만, 인간은 우아한 식사를 즐기려고 인체의 구조를 바꾼 것 같다.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하는 질문이라도 하기 위해서 조절된 것처럼. 문제는 고대의 인간도 항상 투쟁을 통해 먹이를 확보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함께 혹독한 생존 경쟁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은 음식에 대한 감각을 세련되게 만들었다는 뜻인데, 그것도 스스로 터득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여덟째는 인간만큼 성적으로 뛰어난 동물은 없다는 사실이다. 『벌거벗은 원숭이』의 저자 모리스는 인간이 성적으로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① 성교 중 오르가슴을 느낀다. ②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항상 성교가 가능하다. ③ 성기의 각도가 앞뒤에서 성교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④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할 육감적인 가슴과 허리를 갖고 있다. ⑤ 처녀일 때 처녀막을 갖고 있다. 특별한 동물을 제외하고 수컷은 몇 초 내에 사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의 남성과 여성은 상대방의 오르가즘을 최대한으로 높여 주기 위해 노력하며 때로는 30분 이상 성교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자손을 남길 목적이 아니더라도 ‘섹스를 위한 섹스’가 가능한 것은 인간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물들의 교미기는 대체로 배란기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동물은 죽을 때까지 성의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간으로부터 죽음과 세금 그리고 섹스만은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말처럼.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또 있다. 그것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페니스에 뼈가 없다. 동물이 페니스에 뼈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항상 외적의 위협 아래 놓여 있는 동물들은 재빨리 교접을 해야만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다. 암컷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수컷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도 뼈가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경쟁자와의 격렬한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지치거나 부상당하는 바람에 재빨리 페니스가 발기되지 않아서 암컷의 몸속에 사정을 할 수 없다면 결국 그 종은 멸종되기 마련이다. 인간의 경우는 페니스에 뼈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혈액이 페니스 안으로 들어가 필요한 압박을 가해 뼈가 있는 것처럼 발기시킨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불필요한 뼈가 없기 때문에 성적인 면만 볼 때는 한층 쾌감이 늘어나게 되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야생 동물들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삭막한 환경에서 여유를 부리며 섹스를 할 만한 지식을 어디서 얻었을까 하는 점이 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류의 시원은 아프리카> 다른 동물과 매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기원을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다윈은 인류의 시초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매우 단순했다. 침팬지와 고릴라가 워낙 인간과 유사한데다가 이들이 모두 아프리카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수많은 학자들이 진화론의 증거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몰려들게 된 이유이다.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기까지의 진화과정을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1보는 직립 보행이다. 본래 원숭이는 나무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기후가 급변하여 빙하기가 닥치자 열대 지방에서는 약5도, 온대 지방에서는 약10도 정도 기후가 내려갔다. 자연 환경이 변하자 원시림이 사라지고 초원이 생겨났다. 삶의 터전이었던 산림이 사라지자 원숭이들 중 일부가 땅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땅은 나무 위와는 삶의 조건이 매우 달랐다. 우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고, 맹수들의 공격을 견뎌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사바나(대초원, savanna) 가설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어떤 호미니드(인간 비슷한 종)는 나뭇가지나 돌멩이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과실을 따거나 고기를 잡고 자신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물론 도구를 사용하는 데는 주로 앞발을 활용했다.
여하튼 석기를 발명한 호미니드들은 앞발은 도구를 사용하고 뒷발은 몸을 지탱하는 데 이용하면서 자동적으로 직립하게 되었다. 상체가 자유로워지자 시야도 넓어졌다. 이로써 원숭이와 인류는 결정적으로 분리되어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직립할 경우의 단점은 더욱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맹수에게 쫓길 때 4발로 달리는 것보다 2발로 달리는 것이 대체로 느리므로 맹수들의 좋은 사냥감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가 필요해졌다. 처음에는 간단한 손짓 발짓이 점차 복잡하고 풍부한 음성 언어로 발달하였다. 손과 언어의 사용이야말로 두뇌 발달을 촉진시켰고 모든 생물 중에서 왕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인간은 처음에 화산이 폭발하거나 번개로 인해 산림이 불타는 자연 현상을 보고 불붙은 나무 가지 등을 동굴로 가져왔을 것이다. 곧이어 천연의 불을 이용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공적으로 불을 피우는 방법을 터득했다.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로 자리 잡았다.
북경원인은 남자의 키가 156센티미터, 여자의 키가 144센티미터로 현대인보다 약간 작은 편이지만 팔다리 모양은 별 차이가 없다. 뇌 용적량도 현대인의 뇌를 1450cc라고 할 때 그보다 약간 적은 1200cc 정도다. <계속 발견되는 고대인류 화석> 우리 인류의 조상으로 보이는 가장 오랜 유인동물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파이윰 오아시스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 생각하며 약 300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한다. 언뜻 보아서는 작은 개와 비슷하지만 영장류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두개골에는 긴 코와 커다란 치아가 있기 때문에 이집트피테쿠스라고 명명되었다. 물론 이것은 인류의 조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인원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약 2000만 년 전에는 현재의 유인원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가 있었다. 드리오피테쿠스라고 불리는 동물로 숲 속의 과일이나 잎, 어린 가지, 꽃을 먹고 생활하며 네 발로 돌아다녔다. 1600만 년 전부터 세계적인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서 광대한 열대림이 소멸하기 시작하고 소규모의 초원이나 숲으로 변해갔다. 드리오피테쿠스가 환경에 적응하거나 멸망하면서 일부가 라마피테쿠스라고 불리는 새로운 무리를 낳게 되었다. 라마피테쿠스류는 드리오피테쿠스류보다 크고 평평한 어금니와 보다 작은 앞니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다른 동물보다 강인해졌고 영양가 낮은 음식물도 먹을 수 있어서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종류는 1400만 년 전부터 800만 년 전까지 전 세계에 걸쳐 번성했다. 800만 년 전 이후로는 라마피테쿠스류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800만 년 전부터 600만 년 전까지 세계의 기후가 다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 후 400만 년 전까지는 화석이 공백 상태다. 그렇지만 학자들은 라마피테쿠스가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 생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1924년에 오스트레일리아 해부학자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던 레이먼드 다트가 타옹이라는 곳에서 타옹 유아를 발견했는데 이것은 200만 년 전의 사람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똑바로 서 있었다는 점에서 해부학적으로 민꼬리원숭이와 구별된다. 이들의 뇌는 현재의 민꼬리원숭이의 뇌와 비슷한 정도로 작았지만 이빨 생김새는 인간과 유사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 800만 년 전의 후기 마이오세부터 160만 년 전의 홍적세 초기에 걸쳐 출현했다고 추정한다. 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드디어 인간과 원숭이가 갈라져나간 계통도를 어렴풋이 그려낼 수 있었다. 우선 적어도 200만 년 전 이후부터 몇 십만 년의 인간 조상들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화석으로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800만 년 후부터 200만 년 정도까지의 연결고리가 문제였다. 적어도 원숭이와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진 인간의 조상들의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고인류학자들이 이들 증거를 찾기에 총력을 기울였고 수많은 학자들이 대거 아프리카로 몰려갔다. 앞에서 인류의 조상들을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인간이 이 정도를 알게 된 것은 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400~500년 전의 미라가 발견되어도 언론 매체가 대서특필한다. 사람의 시신을 매장하면 단 몇 년도 안 되어 모두 육탈되고 뼈만 남게 된다. 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매장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00년을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풍수지리에 의하면 특별한 경우 500년 정도 뼈가 존재하는 경우를 명당이라고 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하물며 10만 년, 100만 년, 1000만 년 전의 뼈를 수습하여 연구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일 수 없다. 인류의 조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다른 연구와 같이 아이디어와 집념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행운도 따라야 한다. 학자들은 인류 화석을 발견하는 것을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다름없다고까지 비유하는데 인류 화석을 발견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현대와 같은 첨단과학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화석이 어떤 연유로든 지표면에 나온 것을 발견하거나 인류 화석이 있다고 추정되는 곳을 예견하여 인내를 갖고 발굴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석이 일단 지각 변동 등으로 지표면으로 노출되더라도 2~3년 내에 발견되지 않으면 부식되거나 완전히 파손된다. 그러므로 고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화석이 발견될만한 곳을 잠시도 쉬지 않고 방문하여 관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안 단 하나의 인류화석도 발견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고인류학자로서 화석을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인류학자들은 대개 치아 하나, 뼈 한 조각만 찾아내도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두개골의 일부라도 발견하면 복권이 당첨된 것보다도 더 어려운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완전한 골격의 거의 절반 가량이 되었다. 이는 가히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선 골반 뼈로 보아 여자의 뼈였는데 키는 90센티 정도였고 나이는 20살 정도였다. 이 유골이 바로 약 300~320만 년 전에 살았던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과도기적 생명체로 현대 인류의 조상이 된다는 유명한 ‘루시’다. 다시 말해서 루시는 현생 인류를 비롯한 모든 인류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의 조상으로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명명되었다. 고인류학자들이 루시의 발견에 그렇게도 환호한 것은 그렇게도 찾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잃어버린 몇 백만 년의 연결고리를 이어주었기 때문이다. 루시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뇌가 작고 턱도 뾰족했다. 생김새는 원숭이와 비슷했지만, 치아는 인간과 거의 비슷했다. 무릎 관절로 미뤄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가 침팬지보다는 사람에 가까우며 뛰기보다는 걷기에 편했던 골반과 두개골구조를 갖췄던 것으로 짐작된다. 평균적으로 여자는 몸무게가 약 28~30킬로그램, 키가 100~120센티미터였고, 남자는 몸무게가 40~55킬로그램, 키가 120~135센티미터 정도였다. 루시는 인간처럼 직립보행한 증거를 보여준 가장 오래된 원인이다.
연구진은 케냐의 루케이노지층에서 발견된 원시 인류의 대퇴골 화석에 온전한 채로 남아있는 엉치뼈와의 접합부 부분을 컴퓨터 단층 촬영한 결과 구형으로 생긴 이 접합부를 지탱하는 연결 부위의 상단이 하단보다 가는 것을 발견하는 등 인류의 직립보행이 루시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로버트 에카트교수는 행동의 변화가 구조의 변화에 앞서 나타난다면서 이번 연구결과는 원시 인류의 직립 두발 보행이 지금까지의 추정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음을 입증하는 “매우 확고한 증거”라고 말했지만 아직 인류의 직립 보행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 대체로 루시와 같은 300만 년 전이라는 통설이 우세하다.1) 고인류학자들의 발견은 계속 이어졌다. 1994년과 1998년에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발견되었다. 이 유인원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워터스란드대학 인류학자들이 요하네스버그 북서쪽의 스터크폰테인 동굴에서 발견했는데 두개골은 물론 정강이 뼈 등 전신 뼈가 발견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남아공 유인원은 1.22미터의 키에 직립 보행능력을 가졌으며 나무를 기어오를 수 있는 큰 앞발가락을 갖고 있어 오늘날의 침팬지와 매우 유사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 럿거스대학 연구팀은 인류의 먼 조상격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채식과 육식을 고루 즐겼다는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과일과 나뭇잎을 주로 따먹고 살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럿거스대 연구팀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치아를 방사성동위원소로 조사한 결과 이 인류의 조상이 동, 식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어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94년에는 에티오피아의 약 440만 년 가량 된 암석에서 새로운 원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아르디피티쿠스 라미두스라고 불리는 이 종은 루시보다 더 원숭이에 가깝지만 치아의 해부학적 구조로 볼 때 인간과 유사한 점도 있었다. 학자들은 이 종이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틈새를 메울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인류의 시원을 찾는 연구는 계속되었다. 2001년 에티오피아 사막지역에서 뼈가 발견되었다. 발견 된 뼈에 섞여 있던 화산재 속에 갇혀 있던 아르곤 가스를 연대 측정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초기의 인류 즉 1994년에 발견된 것보다 약 100만 년가량 앞선 520만~58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구팀은 어금니가 발달하고 앞니가 작은 것으로 미뤄 이 화석의 주인들이 침팬지와 달리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했으며 발 뼈의 형태로 보아 직립 보행을 했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목의 근육과 연결되는 두개골의 뒷부분을 볼 때 원인은 직립 보행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학자들은 ‘투마이’가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진화 과정인 ‘잃어버린 고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 두개골의 발견으로 일반적으로 500만~700만 년 전에 인류가 원숭이에서 분화했다는 기존 학설과는 달리 인류와 원숭이의 분화 시기가 최소한 700만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프와티에 대학의 미셀 브뤼네 교수에 의하면 투마이가 발견된 지역은 인류가 기원했을 것이라고 추정돼 온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과거의 학설로는 인류의 조상인 고인류가 동부 아프리카의 초원에서만 살았는데 투마이의 발견으로 기존 의 학설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했다. 고인류학은 앞으로도 계속 보완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시의 발견으로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인간의 계통도는 계속 수정되었다. 학자들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조상들이 언제부터 도구를 사용했느냐에 주목하였다. 50여만 년 전의 북경원인이나 100만 년 전의 검은모루동굴(북한)에서 석기가 발견되었으므로 최소한 100만 년 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학자들은 진화 계통도상 훨씬 오래 전부터 석기를 사용했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학자들의 추정은 옳았다. 탄자니아의 올드바이 계곡에서 발견한 진잔드로프스는 무려 150만~250만 년 전의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이들은 동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고기 덩어리를 떼어내는 데 돌 조작을 사용했다. 이들을 호모 하빌리스라 부르는데 그들은 돌 조각으로 동물들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음식물의 폭을 넓혀 종족이 번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물론 루시가 곧바로 현대인류로 진화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대략 3백만 년 전 여러 종으로 갈라진 후 한 동안 경쟁하며 살았다. 이들 중 몇 차례의 진화 가지치기 끝에 살아 남았으며 그 중에서도 현대 인류의 중간 조상의 역할을 한 것은 약 180만 년 전경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로 추정한다. 이들은 호모 하빌리스보다도 뇌가 크고 보다 고급스런 석기를 만들었고 현대 인류의 중간 조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적은 900~1000cc로 추정되고 호모 하빌리스보다 현대 인류와 가까운 얼굴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손도끼와 절단기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상당히 큰 둥근 돌을 깨뜨려서 만들었다. 이런 석기는 그 후 변하지 않고 거의 150만 년 전부터 20만 년 전까지 표준형으로 계속 사용된다. 더구나 이들은 활과 화살을 발명하여 수렵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든다. 호모 에렉투스는 대략 100만 년 전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고 추정한다. 80만 년 전이 되자 이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인도네시아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북위 50도까지 진출했다. 북위 50도 이북에서는 너무 추워서 여러 가지 줄기식물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것은 일반적으로 600만~70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근래에 인간과 유인원을 갈라놓은 것은 한 개의 유전자로 이것이 약 250만~300만 년 전에 인간에게서 사라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아지트 바키 교수는 2002년 8월, 문제의 유전자는 당의 일종으로 시알산(酸) 의 생산을 통제하는'Neu5Gs'라고 발표했다. 이들 유전자가 사라지는 돌연변이는 보노보(난쟁이 침팬지) 및 침팬지 등과의 마지막 공동조상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현대 인간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에서는 Neu5Gs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발견은 인류학자들에게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졌다는 시기가 무려 300만 년에서 400만 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인류의 기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장이 채워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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