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달은 잉태 순간부터

뇌의 발달을 살펴볼 때 출생은 그 시작지점으로 적당치 않다. 물론 자궁 속의 수중세계로부터 공기와 빛이 가득한 세계로 태어나는 것은 확실한 환경의 변화이다. 차라리 혼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출생은 뇌 발달의 출발점이라기보다는 그 발달 과정의 과도기이다. 삶의 진정한 시작이면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 은 우리가 잉태되는 순간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잉태 순간부터 나이를 따진다. 즉. 아이가 세상에 태 어나면 바로 한 살이다. 그러므로 뇌의 발달과 마음의 발현을 연구할 때 도 부모의 정자와 난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자와 난자 는 발달의 청 사진을 구성하는 '유전자' 를 가지고 있다.

한 인간의 현재 모습을 결정하는 물리적 기 반은 그의 어머니가 아직 태아였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의 난자를 위 한유전물질을지닌 난소 기관이 태아 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 가 사춘기에 이르면 태어날 때부터 난소에 있던 제1황체들이 뇌하수체 에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해 성숙해진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생리주기 중 간에 약30만 개 중 하나의(때때로 두 개) 황체가 터져서 성숙한 난자를 나팔관에 내보내고, 이 난자는 수 정을 기다리게 된다.

장래 아버지가 될 남성의 경우를 보자. 즉, 아버지로부 터 물려받은 유 전자를 지닌 정자 세포는 수정이 있기 두석 달 전에 형성된다. 한 번 사 정으로 1억 개 가량 정자가 배출되며, 정자는 모양, 이동성, 수정 능력 이 각기 다르다. 그토록 많은 수의 정자가 있지만 오로지 하나만이 난자 와 수정하고 한 인간으로 발달한다.

하나의 수정란으로부터 한 인간을 구성하는 놀라운 수의 세포, 믿을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진 세포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 수많은 세포들 중 일부가 뇌라는 그물 모양의 구조를 구성한다. 우리가 물체를 같은 방식 으로 지각하고. 동일한 신호와 언어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이 표현한 어떤 개념이나 추상적인 생각을 이해하는 것을 보면. 뇌세포 간의 연결 에서 사람들 사이의 유사점이 꽤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면도 있는 동시에 사람들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다 르고, 서로 독특하게 다른 마음들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뇌세포 간의 연결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뇌가 발달하는 방식은 서로 유사한 면과 상이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리고 마음의 발달은 결국 최초의 한 세포. 즉 수정란에서 시작한다.

 

유전자, 행동, 모체 안의 환경

환경은 아주 일찍부터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생식로내에 있는 정자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상태에 놓인 다. 모체의 호르몬 주기에서 어느 시점에 있느냐에 따라 자궁 내와 자궁 경부 점막의 밀도와 두께가 달 라진다. 그리고 모체의 중추신경계는 자궁 수축의 강 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모든 요인들이 정자의 이 동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므로 정자들이 운동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해 반응도 할 수 있는 단 세포생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정자들의 이런 성질은 단세포 수준의 '행동' 양상을 보여준다 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모체의 조건에 따라 변하는 영향말고도 태 아의 유전적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들이 많 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펩티 드, 심지어는 행동과 정서까지도 수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단세포 수준에서조차 도 '도태' 와 '선택' 이 작용하여, 일정한 특성을 가진 어떤 정자는 다른 것들보다 선호되어 생존할 가능성 이 더 높아진다.
정자의 유전적인 구성도 이러한 선택 과정에 영향 을 줄 수 있다. 난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까지 도달하는 정자는 여러 개일 수 있지만, 그 중 오직 하 나만이 실제로 난자와 만나 수정된다. 왜 이 정자만 이 다른 것들을 제치고 수정되는가? 이 문제는 예전 에는 풀 수 없는 것이거나 단순히 '운'과 '운명'에 달린 것이라고 섕각해 왔다. 그러나 단세포 수준의 선택과 도태, 변별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많은 발견을 함에 따라 이제는 이런 질문들도 궁극적으로는 풀릴 것이 라고 생각된다.
여기애서 수태를 기술하는 데 사용한 선택, 도태, 변별과 같은 말들은 다른 유기체보다는 인간의 행동 을 기술하는 데 주로 쓰여 왔다. 그러나 '모든'조직화된 체계들의 핵심요소가 행동임을 염두에 둔다면 선택, 도태, 변별 등의 단어를 단세포 동물에 적용시 키는 것이 반드시 의인화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화학적 변화, 혈구의 이동이나 어린아이가 인형을 집는 행동을 모두 같은 용어로 표현한다고 해서 반드 시 비유적인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화학적 변화, 혈구의 이동, 어린아이가 인형을 집는 행동이 포함되 는 각각의 수준에서 유전적 구성과 환경의 차이는 최 후의 '결과율'(product)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에, 어떤 수준의 행동을 설명할 때도 같은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다.
유전자들은 특정한 정자가 선택되게 하기도 하지 만, 또 다른 유전자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발달 과정 중 어떤 환경에서는 특정한 유전자들이 발현하 기 시작하여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환경이 조 금이라도 바뀐다면 무한한 잠재적인 유전 가능성 중 애서 또 다른 양상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포유 류는 개개 유기체의 일생 동안 세포내에서 활성화되 는 유전자가 10퍼센트도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 리 마음(생각하는 방식, 표출하는 행동, 경험하는 정 서)의 발달은 환경에 중대하게 영향을 받으며 형성 되어 가는 것이다.
뇌 속 신경회로의 형성, 생체 호르몬계의 조화, 그 리고 영아와 부모의 상호작용 등 모두는 유전자, 행 동 그리고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과정 들이다. 자궁을 향해서 모체를 거슬러 올라가는 정자 와 같은 단세포 유기체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행 동과 같은 복잡한 행동으로 관심을 옮기면 유전자, 행동 그리고 환경의 힘에 의한 상호작용은 더욱더 가 려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난자와 정자에서 인간 에까지 이르는 모든 유기체들에 유전자, 행동, 그리고 환경이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틀림없 다.

 

뇌의 발생

수정 후 몇 시간 안에 수정란은 분열을 시작한다. 최초의 그 한 세포는 서서히 수백 개의 세포가 모인 덩어리가 되어 간다. 하나하나의 세포들 은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 앞으로 이뤄질 조직에 대한 화학적 청사진을 각각 지니고 있다. 그 중 어떤 세포들은 근육과 뼈가, 또 어떤 것들은 심장 또는 간이 되기도 하고 뇌로 발전하기도 한다.

심장, 간, 뇌와 같은 여러 조직들의 발달은 태아의 놀라운 '변태'와 함께 시작된다. 수정 후 약 14일 경에는 증식하고 있는 세포들의 덩어리 가 둥근 공 모양을 이루다가 그 표면의 일부가 접혀 들어간다. 태아 표 면에 있는 외피의 일부가 다른 부분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은 마치 오렌지 껍질을 깔 때 손가락으로 눌러서 손톱 밑부분의 껍질을 안쪽으 로 밀어넣는 것과 유사하다. 그 결과 세 층의 세포가 형성된다. 오렌지 를 까는 손가락에 해당하는 외층은 안쪽으로 들어가 '중배엽' 이 되고. 중배엽 안쪽이 '내배엽', 바깥쪽이 '외배엽' 이 된다. 이 가운데 외배엽 에서 뇌가 발달한다.

뇌는 처음 출현할 때는 태아의 표피에 있는 '신경판' 이라는 얇은 세 포층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시작은 이렇게 보잘것 없지만 이 세포층에 서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기관인 인간의 뇌가 발달하는 것이다. 신경 판에서부터 뇌는 차츰 발생하는데, 그 과정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 간이 동일한 리듬을 따른다. 최초에는 12만 5천 개 남짓한 세포들로 시 작해, 이 세포들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뇌 기능의 기초가 되는 1천억 개 의 뉴런들로 발전하는 것이다.

뇌가 형성되기 위해서 신경판은 다시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서 '신경 구'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구가 '신경관'이라는 폐쇄된 관 모양의 구조로 바뀐다. 이 신경관의 한쪽 끝에서 척수가 나온다. 그리고 관의 중간 부분이 뇌의 전정체계, 즉 평형감각에 관여하는 체계가 된다. 관의 또 다른 한쪽 끝에는 세 개의 둘출부가 생겨난다. 이 세 돌출부는 뇌의 세 개 주요 부위의 전구체*(어떤 물질에 선행하는 물질.) 이때 뇌의 주요 부위란 '전뇌' (대뇌피질과 기저핵 포함), '중뇌', '후뇌' (연수, 뇌교, 소뇌 포함)를 말한다. 수정 후 제8주까지 태아의 뇌 주요 부위가 제자리를 잡는다. 이 시기면 성인의 뇌와 꽤 유사한 모습을 띠므로 숙련된 관찰자라면 각 구조를 가 려내고 이름할 수 있다.

이렇게 외관상 똑같아 보이는 세포들이 뇌의 각 부분으로 변형되는 것을 '분화'라고 부른 다. 이 세포 분화는 세 단계를 거치는데. 각 단계 의 상세한 과정과 그 단계들을 통제하는 다양한 요인들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제1단계에서는 신경세포들이 증식하고 전문화한다. 그 다음에 전문화 된 뉴런들이 이동하여 뇌 안에서 최종적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뉴런들이 성숙하고, 다른 뉴런들 과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제1단계인 신경세포의 '증식' 은 신경구가 신경관으로 폐쇄된 뒤, 즉 수정 후 제3주 말기 즈음에 시작된다. 이 세포의 '증식' 과정이란 뉴런 들과 '교(膠)세포'들의 증식을 말한다. 교세포란 뉴런에 영양을 공급하 고 뉴런이 제자리를 찾도록 인도하는 세포로서, 인간의 뇌 세포 중 가 장 많은 비율을 차지해 뇌 안에 있는 뉴런 수의 5~10배이다. 뉴런과 교 세포는 인간의 마음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발랄 패턴을 지휘한다.

신경관의 내면벽을 이루는 한 층의 신경세포, 즉 신경관의 뇌실벽에 서 출발하여 세포층의 수는 빠르게 증가해 간다. '간(幹)세포'라고 일 컫는, 새로 분열하여 갓 생겨난 뉴런들의 세포핵은 내층에서 바깔쪽으 로 다시 안쪽으로 진동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뇌실벽에서 멀어 지는 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각 뉴런 안의 핵은 자신의 DNA 내용, 즉 유 전자가 가진 유전정보를 복제한다. DNA가 복제되면 그 세포는 다시 뇌 실층 쪽으로 진동하는 운동을 한다. 그리고는 세포가 분열한다. 이 세포 분열로 한 뉴런이 두 개의 뉴런이 된다. 그리고 분열로 생성된 딸세포들 은 또다시 이 패턴을 반복하여 뇌세포는 계속 증식된다.

이렇게 세포핵이 뇌실층에서 외피층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뇌실층으 로 이동하는 현상은 마치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발걸음처럼 율 동적으로 섬세하게 일어난다. 뇌실층과 외피층을 왔다갔다하는 이 움직 임은 마치 왈츠 등 스텝이 정해진 춤처럼 미리 결정되어 있는 방식대로 일어난다. 그러나 춤추는 사람에 따라 같은 스텝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세포핵이 각각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출 수 있다. 뉴런의 전구체가 어느 시점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상실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뉴런의 전구체가 복제능력을 상실하면 그 뉴런은 뇌 속의 영구적인 자기 위치로 이동한다.

이러한 신경세포의 이동을 이해하는 것은 연구자들에게는 엄청난 도 전이다. 수백만 개 뉴런의 위치가 뇌 안에서 '결정'되는가? 소뇌 연구 를 통해서 신경과학자들은 태아의 발생 초기단계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교세포들이 뇌실벽에서부터 신경관의 바깔쪽 가장자리에까지 뻗치는 긴 '돌기들' (processes)을 내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방사형 의 섬유질이 격자 모양의 틀을 만들어서 그 위로 뉴런들이 제자리를 찾 아 최종 목적지로 이동한다. 이런 이동이 일어나면서 세포층이 두꺼워 지고 뇌가 점점 커진다. 뇌의 성숙과 그 최종적인 모습은 앞에서 언급한 뇌세포의 자기복제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 복제 과정은 출생 전 9개월 동안 빠른 속도 로 진행된다.

뇌를 구성하는 뉴런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단위로 기능한다. 한 뉴런은 핵을 포함하는 세포체와 긴 섬유질인 '축색돌기', 섬유질이 나뭇가지처럼 뻗어나온 '수상돌기'로 이루어지는 데, 수상돌기의 수는 뉴런에 따라 다르고 수상돌기는 다른 뉴런들에 그 가지를 뻗는다. 한 뉴런의 축색돌기를 따라서 다음 뉴런의 수상돌기로 정보가 전기 신호의 형태로 전달된다. '시냅스',즉 뉴런 간의 작은 틈에서 전기 신호는 화학신호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고, 시냅스 틈으로 이 화학물질이 빠져 나와서 다음 뉴런에 있으며 그 물질에 만 반응하게 되어 있는, 즉 전문화된 수용기와 결합한다. 뉴런들은 기능적으로 연결된 뇌 속 의 다른 일부 뉴런과 뚜렷하고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다.

뇌가 수행하는 복잡한 기능들은 뉴런의 수와 그들 간의 상호연결에 달려 있다. 뉴런 하나 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즉, 인간의 행동은 뉴런 하나의 활동 결과라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망을 이루는 수많은 뉴런들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생시 태아의 뇌는 이후 어떤 시기보다 가장 많은 수의 뉴런들을 가지고 있어서 그물망과 같은 뉴런과의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생 때 갖고 태어난 뉴런의 반 이상은 유전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서 몇 개월 안에 죽게 된다.


이제까지 기술한 단계들은 시냅스가 형성되는 과정과 수상돌기가 뻗어나오는 과정말고는 모두 단 한 번, 즉 발생 초기에만 일어날 뿐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보통의 세포들에서 어떤 것이 결정되어 뉴런으로 분화하는 과정, 신경세포의 증식과 이동, 축색돌기의 성장, 과다한 뉴런들의 죽음, 신경세포가 뇌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등의 단계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미리 계획된 대로 진행된다. 그런데 각 단계들을 제어하는 다양한 요인들은 아 직까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는 이미 뇌의 발달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지난 셈이다. 뉴런의 형성과 이동이 일어나는 시기가 뇌의 발생 과정 중에서 환경적인 위협에 가장 취약한 때다. 최근 과학자들은 발생 과정의 뇌에 위협적인 것들이 어떤 것인지, 또한 이런 위협들이 아직 형성 과정에 있는 마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경전달물질

인간의 뇌라는 축축한 환경에서 뉴런들은 신경전달 물질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신경전달물질은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물질 분자로서, 정보를 보내는 축색돌기의 시냅스 전막에서 조금씩 분비되고 시냅 스 틈에서 확산되어 목표가 되는 뉴런의 수상돌기의 시냅스 후막 위에 있는 수용기에 이른다.

신경전달물질은 축색돌기의 시냅스 전막 안의 작 은 주머니 또는 '시냅스 소포' 에 저장된다. 신경전달 물질은 활동전위라고 불리는, 축색을 따라 시냅스 종 말에 이르는 뉴런의 전기 신호에 따른 반응으로 분비 된다. 한 뉴런은 한 개의 목표 뉴런과 시냅스할 수도 있고 여러 뉴런과 시냅스 할 수도 있다. 만약 한 뉴런 이 여러 뉴런과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뉴런 의 축색돌기는 여러 개의 가지를 가지게 되고, 가지 마다 특정한 목표 뉴런과 연결해 주는 한 종류의 신 경전달물질이 저장된다.

한 신경전달물질은 목표 뉴런이 신경충등을 일으 키게 하는 흥분효과를 낼 수도 있고, 충동을 억제하 게 하는 억제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수용기 세 포막의 투과성을 변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수용기 세포의 투과성이 변화하면 세포 내의 전압이 변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전깃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와 같 은 점멸은 아니다. 즉, 신경전달물질이 세포를 흥분- 억제하는 과정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어서 마치 불의 밝기를 점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스탠드 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효 과를 내려면 일정한 힘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뇌에서 신경전달물질로 기능하는 것으 로 생각되는 화학물질이 4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적으로는 신경전달물질을 주로 세 가지 종 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가장 흔한 단순 아미노산들로서 목표 뉴런에 직접적으로 신속하게 작용한다. 이들 가운데 그 기제 가 완전히 밝혀진 것으로는 억제적 신경전달물질인 감마아미노뷰틸산(GABA) 이 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로 아 세틸콜린, 도파민, 세로토닌, 노어에피네프린 등이 있다. 이들은 위에서 널리 퍼져 있는 경로와 연관된 것들이며 조절기능을 한다( 우울증 참조).

세 번째 종류인 뉴로펩티드 신경전달물질은 특정한 순서에 따라 연결된 서로 다른 아미노산들로 구성되 어 사슬구조를 이루는데, 뇌에서 발견되는 농도는 가 장 낮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가운데는 뇌에서 생성되며 자연적인 마약 성분을 지닌 앤돌핀 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의 '중독'에서 다룰 것 이다.

이제까지 발견된 40여 개의 신경전달물질들이 각 각 알파벳 철자처럼 작용한다면, 이들의 다양한 조합 으로 얻을 수 있는 '단어'의 수는 무한할 것이다. 이 무수한 단어들, 즉 여러가지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조합하여 얻을 수 있는 상태들은 뇌에서 일어나는 복 잡한 화학적 상호작용, 그리고 그것이 심신에 미치는 무수한 영향들의 근거로서 충분하다.

 

태아의 감각 발달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은 자궁 내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로 추측해 왔다. 탯줄, 양수에 대한 언급이나, 한 인간(태아)이 어떻게 다른 한 인간(어머니)의 몸에 자리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은 어느 시대에나 신화나 민화의 소재가 되었다. 중세에는 임산부의 정서상태를 중시했 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될 사람들에게 자기 아이가 자라면서 악의 길을 걷지 않도록 '천상의 생각'만을 할 것을 당부했다. 공포, 쇼크, 절망 등 불안한 감정은 출산시기, 태어날 아기의 성격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으며, 심하면 태아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보았다.

중세 때부터 내려온 태아에 미치는 어머니의 영향에 대한 이같은 우려는 생물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들이 출현함에 따라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알코올, 영양실조, 그리 고 담배는 오늘날 태아의 기형, 미숙, 학습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경험, 즉 무엇을 마시고 먹고, 심지어는 어떤 공기로 숨쉬는가까지 태아의 마음 발 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중세 때부터 믿어 왔던 어머니의 생각과 감정이, 즉 정서상태가 태아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은 어떤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과학자들은 인간에게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험들을 쥐를 대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임신한 쥐들에게 전기충격을 주거나, 복잡하고 시끄러운 우 리에서 많은 쥐를 사육하거나, 몸을 속박하거나, 밝은 빛에 노출시키는 따위의 실험들을 했 다. 그 결과 어미쥐에게 준 스트레스 기간과 강도, 또 지속시간에 따라 이들 과학자들이 끼 친 해악이 갖가지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임신 중에 밀도가 높은 우리에서 사육 된 쥐들이 낳은 새끼들은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임신기 간 중 후반기 약 3개월 동안 밝은 빛에 노출되거나 몸이 속박되었던 쥐들이 낳은 새끼 중 수컷들은 암컷 주위에서 정상적인 생식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이런 증거들은 과학자들이 조처한 스트레스 때문에 임신중 분비되는 여성 호르몬이 정상과 달라져 태아의 면역체계뿐 아니라 뇌 발달에도 직접 영향을 줌으로써 태아기에 형성되는 신 경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스트레스가 임신중인 인간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곧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쥐를 대상으로 한 이런 실험의 결과와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어머니가 태아의 신경망이 잘못되게 할 수 있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째 경로는 태아와 어머니의 자궁을 직접 연결해 주는 태반이다. 또한 태아도 한계는 있지만 자궁 안 세계에서 어느 정도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지는 등의 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 머니가 태아에게 미치는 또 다른 영향은 외부 환경을 느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가능하다.

미숙아
미숙아들이 살아 남으려면, 여러 난관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런 난관들로는, 체내 지방의 감소로 인한 체온조절의 불안정, 폐조직의 미발달로 인한 호흡장

몇 년 전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동질정체, 즉 생체 내부의 과정을 일정하 게 정해진 좁은 범위 내에 유지시키려는 능력에 대해 기술했다. 혈압이나 맥박, 호흡 또는 체온이 정상에서 벗어나면 이런 기능들을 정상 범위로 되돌려놓기 위한 기제가 작동하게 된 다. 예를 들어 인체가 계속 유지하려 하는 정상체온은 섭씨 37도이다. 그러나 미숙아는 인체 내의 과정에 이상이 있을 때 이것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동질정체 기제가 열 달을 다 채우 고 태어난 아기만큼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혈압이나 호흡의 이상이 미성숙한 뇌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호흡정지발작을 일으키면 미숙아의 두개골 내의 압력이 높아지고, 혈압이 올라가고, 핏 속의 이산화탄소농도가 엄청나 게 높아진다. 이 모든 과정들이 유아의 뇌 혈류에 급작스런 변화를 가져온다. 미숙아이기 때 문에 뇌 속의 모세혈관이 덜 발달하여 연약한 데다가 이런 뇌 혈류 변화라는 또 하나의 압 박이 생기면 혈관이 파열되기 쉽다. 실제로 이 같은 두개골 내의 출혈이 미숙아의 심각한 장애와 사망 원인이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숙아로 태어나면 살아남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의 과학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미숙아라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인간이 자궁 환 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미숙아들, 곧 세상과 자신이 서로를 맞이할 준비를 채 갖추기 도 전에 태어나는 불행한 아기들을 위해서 그 환경의 중요한 측면들을 재창조시켜 줄 수 있 게 된다.

미숙아로 태어났더라도 그 환경을 엄격하게 통제하여 보살펴 주면 때로는 영아의 뇌가 정 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조이 윌리엄슨이란 아기는 28주 만에, 곧 정상보다 13주나 일찍 태 어났다. 그러나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서 세실리아 매카턴 박사의 보호 아래 조이는 생 존할 수 있었으며, 튼튼하게 자라서 첫돌을 맞았다.

 

 

임신초기 3개월이면 태아는 균형과 운동을 탐지하는 수용기를 갖춘다. 그래서 어머니가 움 직일 때마다 태아의 뇌는 자극을 받는데, 그 자극은 태아가 태어나 몇 달 뒤 처음으로 발길 을 뗄 때 뇌가 받는 자극만큼 강한 자극이다. 만일 조산이 되면 태아는 이렇게 어머니가 움 직일 때 경험하는 자궁 안의 운동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정상적으로 아홉 달을 다 채우고 태어난 아기보다 감각-운동 협응과 시각반응성에서 뒤떨어질 수가 있다.

임신 중반기에 이르면 태아는 들을 수 있게 된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태아가 갑작 스런 소리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임신 중반기의 태아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추정한다. 태아가 자궁 내에서부터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어머니의 심장박동 소리와 같은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들으면 안정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머니의 심장박도 소리가 자궁 속의 태아를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어머니가 아기를 심장박동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왼쪽 가슴에 안는 것은 이런 사실을 반영한다.

자궁 내에서 태아의 청각이 이처럼 발달해 있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자궁 내에서의 시 각은 큰 한계가 있다. 자궁 내 태아의 시각은 어느 오후에 호숫물 속에서 눈을 떴을 대 보 이는 것과 유사한 정도이다. 어머니의 복부 근육을 통해 들어오는 산란된 빛의 다양한 형태 가 태아에게는 볼거리의 거의 전부이다. 하지만 무언가 볼 것이 자궁 내에도 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우리가 임신 5개월 안에 망막의 구조들이 기능을 갖추어 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7개월 경이면 눈꺼풀이 열리고 임신 말기에는 태아가 자신의 손과 발을 흐 릿하게나마 볼 수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다.

태아는 미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궁 속에 사카린을 주사하면 태아는 양수를 더 많이 들이마시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갓 태어난 지 몇 초 이내에도 키니네를 탄 물보다는 설탕물 을 더 선호한다. 맛에 대한 기호는 자궁 안에서 이미 발달하기 시작하여 유아기 초기에 발 현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때 형성된 맛에 대한 기호가 일생 동안 유지된다.

태아의 감각이 놀라울 정도로 발달해 있다는 사실은 주로 미숙아 연구를 통해서 알려졌다. 미숙아 연구는 또한 갓 태어난 아이의 뛰어난 적응능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뉴욕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세실리아 매카턴 박사는 갓난아이의 적응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애들이 막 태어났을 때 관찰해 보면 민감하게 깨어 있고, 자기들이 속해 있는 환경에 잘 적응합니다. 어린 아기들은 어머니에게는 재빨리 반응합니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어머니 얼굴이 보이면 시선을 그 얼굴에 고정시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 기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생활에 필요한 이러한 도구들을 미리 갖추고 있는 것이 명백합 니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학습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의 뱃속이 조용하거나 고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 다 자궁 내의 소리를 녹음해 보니 분명치는 않지만 바깥 세계의 말소리와 다른 소리들이 어 머니의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들렸다. 하지만 그런 결과만 가지고는 아직도 중요한 문제에 답할 수 없었다. 즉, 갓난아이가 출생 후에 자궁 내에서 들었던 소리를 재인할 수 있느냐, 또한 자궁 내에서 듣던 소리를 다른 소리보다 선호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풀리지 않는 의문 이었다. 갓난아이가 자궁 속에서 듣던 소리를 태어난 후에도 선호하리라는 것이 매우 흥미 롭고 가능성 있는 가설이기는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갓난아이의 기호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하기까지는 그 해답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유아의 젖빠는 비율과 강도를 측정하 는 가짜 젖꼭지를 사용함으로써 큰 발전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갓난아이에게 녹음기와 연결된 가짜 젖꼭지를 물려 주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다가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바꾸어 들려주면 젖빠는 리듬이 바뀐다는 사실이 실험 결과 발견되었다. 미국 그린즈버러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심 리학자인 앤터니 드카스퍼 박사에 따르면, 갓난아이는 녹음기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나오 게 하는 패턴, 즉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리듬 패턴으로 젖을 빤다고 한다. 갓 태어난 유아들도 이렇게 어머니의 목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듯한 형태로 반응한다는 것 이다. 유아가 태아일 때, 즉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그 목소리를 재인하는 것을 학습시 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어린 유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드카스퍼 박사는 "출생 후 청각에서의 선호도는 어머니 뱃속에 있으면서 들었던 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태아가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을까? 태아는 과연 어머니 목소리를 재 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학습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드카스 퍼 박사는 16명의 임산부들이 임신 말기 45일 동안 《모자 속의 고양이》(Cat in the Hat) 라는 동화를 태아에게 하루 두 번씩 읽어 주도록 했다. 그래서 그 태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그 이야기를 이미 약 다섯 시간에 걸쳐 들은 셈이었다.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아기들에게 앞에서도 언급한 녹음기와 연결된 젖꼭지를 빨 게 했다. 이때 아기들에게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 45일 전부터 듣던 《모자 속의 고양 이》또는 《모자 속의 고양이》와 운율이 비슷하지만 운율의 보격형태가 다른 《임금님과 쥐와 치즈》(The king, the Mice and the Cheese)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기들은 《모자 속의 고양이》를 들을 수 있는 리듬으로 젖꼭지를 빨았다. 그래서 드카스퍼는 태아일 때의 청각 경험이 출생 후 청각 선호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태아는 청각지각 학습을 자궁 안에서 이미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태아가 청각지각을 필요로 하기 훨씬 전이며, 또 청각지각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때보다도 더 몇 달 전 에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태아가 학습을 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드카스퍼는 다시 태아가 자 궁 내에 있을 때의 학습 능력을 측정해 보았다. 드카스퍼의 의문은 태아가 자궁에 도달하는 소리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연구에 의하면 6개월밖에 안된 태아도 잠깐동안 들리는 큰 소리에 대해서는 움직임으로써 또는 심장박동률을 증가시킴으로써 반응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말소리와 같은, 다소 강하지 않으면서 리듬이 있는 자극에 대 한 반응은 아무도 측정한 적이 없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드카스퍼는 아이가 놀라지 않을 정도의 반복적인 소리에 태아가 반응 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를 위해서 임신 8개월 3주에서 9개월 2주째인 33명의 임산부 들이 자원해 주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어머니의 배에 연결한 확성기를 통해서 2분간 3초마다 음소를 짝지어 들려주었더니 태아의 심장박동률이 감소했다. 심장박동률의 감소는 주의집중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자극을 계속 반복하자 심장박동률은 다시 증가 했다. 그러다가 자극을 변화시키면 이에 따라 심장박동률이 감소했다. 드카스퍼는 "자극의 변화에 대한 태아의 반응을 보면 태아가 말소리 음향의 특징 가운데 일부를 지각하는 능력 있다."고 결론 내린다.

다음 단계는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를 재인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었 다. 또한 어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와 다른 여자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를 태아가 구별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었다. 드카스퍼와 공동 연구자들은 이 실험을 위해서 임신 8개월 2주(34주)째에 있는 건강한 임산부 13명에게 짧은 동화를 소리내어 읽도록 했다. 13명 가운데 8명은 《소녀》(La Poulette)를 읽었고, 나머지 5명은 《작은 두꺼비》(le petit Crapaud)를 읽었다. (이 연구는 파리에서 진행되었고 사용된 언어는 모두 프랑스어였다. 그 럼으로써 이전의 연구 결과가 영어권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를 점검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13명의 임산부들은 모두 지시에 따라서 그 후 4주 동안 각자 주어진 이야기를 연 달아 세 번씩 소리내어 읽는 것을 반복했다.

4주 후 임신 9개월 2주(38주)째에 임산부들은 실험실에 와서 다음과 같은 실험에 참가했 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태아의 심장박동률을 측정했는데, 하나는 4주 동안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처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이 실험에 참가했을 당시 임 산부들은 실험에 참가하기 전 평균 31일 동안 평균93번 같은 이야기를 태아에게 들려준 셈 이었다. 실험에서 태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똑같은 《소녀》와 《작은 두꺼비》였지만 어 머니가 아닌 여자 대학원생의 목소리로 녹음된 것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두 가지 이야 기, 즉 하나는 이전에 듣던 것이고 하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둘 다 낯선 목소리로 들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숙한 이야기에서는 심장박동률이 증가했다. 즉, 태아는 낯선 목소리 로 들려주더라도 친숙한 이야기와 처음 듣는 이야기를 구별할 수 있는 듯 보였다.

뉴욕주 정신의학연구소의 윌리엄 파이퍼 박사는 가짜 젖꼭지와 몇 개의 이어폰을 사용하여 갓난아이의 소리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갓난아이들은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소리 중 특정한 목소리를 선 호하는 것으로 보였고, 이 목소리에 대한 선호도는 갓난아이가 젖을 빠 는 강도와 리듬의 변화로 나타났다. 이 실험에서 쓰인 검증 절차는 꽤 단순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파이퍼는 아기들이 남자 목소리보 다는 여자 목소리를 더 좋아함을 알아냈고. 여자 목소리 중에서도 어머 니 목소리를 더 좋아함을 알아냈다. 또한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보통 목 소리보다도 자궁벽을 통해 들리는 것처럼 변형된 어머니 음성을 더 좋 아했고. 어머니의 보통 목소리와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자궁벽을 거치 는 것처럼 변형했을 때는 변형된 다른 여자의 목소리보다는 변형되지 않은 어머니 목소리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생후 3주 가 되면 자궁벽을 통해 들리는 것처럼 변형된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은 뒤바뀌어 어머니의 보통 목소리를 더 좋아하게 된다.

드카스퍼의 연구와 함께 파이퍼의 연구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된 갓난아이가 수행하는 상당히 복잡한 행동의 일부를 보여준다. 갓난아이 가 이렇게까지 복잡한 행동을 하는 것은 태아의 뇌가 능동적으로 학습 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잉태 후 8개월이 지난 태아는 수동적이고 방관 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 내에서 적절하게 기능한다. 그러므 . 로 갓난아이의 뇌가 원시적이라거나 성인의 뇌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분 명히 사실이 아니다. 태아의 뇌는 자궁에 최고로 적절히 적응하며, 곧 있을 출생에도 완벽 하게 대비하고 있다.

 

갓난아이는 새로운 것에 반응하도록 타고 난다.


갓난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앞의 '마음의 탐색' 에서 이미 소 개한 에릭 쿠셴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갓난아이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재빠르게 변화합니다. 갓난아이가 해야 할 일은 감각계와 신경계를 동원하여 그 변화하는 세계의 일부를 붙잡고, 그에 근거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담고 있는 하나의 연속 적인 그림을 얻는 것입니다."

갓난아이의 지각 과정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쿠셴은 갓난아이의 뇌 가 새로운 것과 친숙한 것을 구별하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한 실험을 예 로 들어 보자. 이 실험에서는 사람의 얼굴 같은 하나의 영상을 잠시 비 쳐 주는 것을 아기가 그에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고 익숙해지 면 갑자기 아무 경고도 없이 그 얼굴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 이때 아기 의 머리에는 뇌파를 탐지하는 전극을 몇 개 붙여 놓아 아기가 얼굴이 바 뀐 것을 알아챘을 때 생기는 뇌파를 탐지한다. 그 결과, 보여주던 영상 이 갑자기 변화했을 때 갓난아이의 뇌는 성인의 뇌보다 휠씬 강한 반응 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쿠셴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이가 변화에 대한 반응이 더 큰 까닭은 성인보다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고. 어떤 것은 나중에 필요할 때 잘못하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후 1년 안에 시냅스 수가 눈에 띌 만큼 증가한다는 사실은 이미 일 려져 있다. 쿠셴은 이같은 시냅스 증가가 앞서 말한 새로운 자극에 대한 강한 반응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본다. 그는 "생후 1년이 될 때까지 시냅 스 수가 많아지는데. 이와 함께 자극에 대한 반응은 점점 더 강해집니 다"라고 지적 한다.

갓난아이를 어두운 곳에 두면, 아기는 손을 뻗치거나 주위를 둘러보 아서 자극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하버드 대학의 제롬 케이건 박사는 이렇게 아이가 주위에서 자극이 될 만한 것을 찾는 것은 아기에게 마음 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고, 여름 오후에 배부른 갈매기가 낱 아다니는 것에 비유한다. 케이건은 말한다.

"배부른 갈매기는 꼭 날 필요가 없는 데도 날아다닙니다. 갈매기는 그 렇게 날아다니도록 타고났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인간도 새로운 정보 를 찾고, 그것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 지식을 공고히 하여 더 많은 것 을 학습하도록 타고났습니 다. "

 

뇌는 유연성, 가소성, 잠재성을 바탕으로 전문화된다.


어린아이의 뇌가 발달할수록 처음에 갖고 있던 유연성은 점점 사라진 다. 이런 유연성이 얼마나 지속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스위스 로잔 대 학의 핸드릭 반 더 루스 박사는 생쥐의 수염으로 연구를 했다.

반 더 루스에 의하면. 생쥐는 66게의 수염으로 세상을 탐지한다고 했 는데. 실제로 생쥐의 뇌에서 상당한 부분이 수염에 의한 정보처리에 전 념하고 있다. 실제로 모든 수염은 각각 뇌에서 자기만의 영역, 즉 각수 염마다 얻은 정보만을 처리하는 영역을 갖고 있는데, 이 수염 하나하나 의 영역을 배럴*(기둥인데 술통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이다)이라고 부른 다.

반 더 루스는 태어난지 5일이 채 안된 생쥐의 수염 하나를 뽑으면 그 수염에 해당하는 배럴이 사라지고, 그 기둥이 있던 자리는 주위에 있는 배럴들에 속하는 뉴런들이 차지한다. 다시 말하면, 수염 하나만을 제거 해도 생쥐의 뇌 구조가 바뀐다. 그러나 같은 실험을 태어난 지 6일 된 생쥐에게 똑같이 했을 경우에는 제거된 수염에 해당하는 배럴이 계속 남아 있고, 그 배럴의 기능은 주위의 배럴들이 대신한다. 반 더 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6일이 지난 생쥐는 수염을 제거해도 뇌 속에 있는 지도(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지도, 즉 배럴들의 집합)는 그대로 남습니다. 이것은 뇌가 이 미 신체의 어느 한 부위 또는 어떤 특별한 기능에 종사하게 되었음을 뜻 합니 다. "

반 더 루스의 생쥐 실험은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아나 어린아이 뇌의 한쪽 반구에 종양 이 생겨 그쪽 반구를 제기하면, 남은 다른 쪽 반구가 제거된 쪽의 기능 을 대신하는 것을 종종 불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쪽 반구가 양쪽 반구의 기능을 다 하고 있음은 매우 정교한 검사로만 겨우 볼 수 있다. 유연성 또는 가소성으로 알려진 이런 성질은 유아의 뇌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성질이다. 그래서 이런 종양제거 수술을 12~13세 아동에게 행하면 제 거된 반구 때문에 여러 종류의 장애가 초래 될 수 있다. 이때 생기는 장 에에는 언어장애, 촉감장애, 시각장애, 운동장애 등도 포함된다.

인간의 뇌는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가소성을 상실함으로써 잃는 것이 있지만 얻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집을 지을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진문가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배관공, 전기배선공, 목수 등 을 고용하면 이들은 자신만이 가장 잘하는 부문에서 성심껏 일해 줄 것 이다. 사람의 뇌가 최선으로 기능하는 방법도 이렇게 특정 영역에 특정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아의 뇌는 일반 의사처럼 이것저 것 다 할 줄 알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문의와 같은 성인의 뇌로 변 해 간다. 이렇게 전문화하는 데 치르는 대가로서 대개 성인의 뇌는 세포 의 상해나 손상 이후에 재조직화되기 힘들다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 완전하게 한 분야에만 전문화됨에 따라 유 연성은 어느 정도 잃지만 뇌는 그만큼 효율성과 안정성을 얻는다.

정리하자면 환경의 영향을 받으 면서 발달하는 유전적 소인이 있고, 즉 '가소성, 유연성, 잠재성' 등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계가 있 고 그 다음에 전문화가 따른다. 이것이 뇌가 발달하면서 따르는 일종의 순서 이 다.

발달하는 뇌
발달 과정에 있는 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인 간이 알고 있는 바로는, 우주 안에는 뇌의 발달 과정 과 조금이라도 유사한 과정은 없다. 그래서 뇌의 발 달 과정을 이해하려면 비유에 의존 할 수밖에 없다.

에릭 쿠셴은 뇌의 발달 과정에 대해 유용한 비유를 하나 들었다. "뇌는 마치 바다에서 생겨난 하나의 섬 과 같다." 맨 처음 그 섬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그러 나 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생명의 조각들 이 나타난다. 이 조각들은 저마다 자신의 발달 패턴 을 따르면서도 지엽적으로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도 항상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다. 그래서 미리 예정되어 있기에 꽤 잘 예측할 수 있지 만 변경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와 동시에 환경 변화로써 촉발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지구에는 똑같은 섬이 두 개 존재할 수는 없다. 섬 이 형성될 때의 환경에 따라 해변, 숲, 호수나 늪 등 은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어떤 섬들은 비옥하 고 푸르러서 많은 식물과 조류, 물고기들이 살고, 또 어떤 섬들은 바위투성이에다 생물이 살기에 그리 좋 은 조건이 아니어서 육안으로 보기에는 살고 있는 생 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런 섬들도 여전히 섬으로 인식된다. 이 서로 다른 섬들은 모두 환경의 국지적 인 사건의 영향을 항시 받음으로써 형성된 독특한 발 달 패턴의 결과이다. 이런 과정의 특정한 시점에서 서로 분리된 생명의 조각들, 다시 말하면 동물계와 식물계는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이런 과 정들을 거치면서 독립된 독특한 섬이 형성되는 것이 다. 쿠셴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섬을 창조하는 데는 '계획' 이상의 것이 필 요합니다. 즉, 씨만 뿌린다고 저절로 섬이 만들어지 는 것은 아닙니다. 섬이 형성되려면 수백만 가지 사 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어야 합니다. 이 수백 만 가지 사건들이란 하나하나가 섬에 국지적이거나 전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적의 힘으로 작 아져 뇌에 들어간 다면 어떤 연결관계를 볼 수 있을 텐데, 이것은 엄청 나게 아름다운 숲을 연상시킬 겁니다. 우리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뉴런들. 그리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 는 뉴런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뉴 런들이 정상적인 뇌 기능에 필수적인 연결들을 형성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숲이 이루어지는 것과 유사합니다. 즉,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식물 들이 숲이라는 체제 내에서 제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각각의 식물들은 생태계 내에서 특정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작게 축소되어 숲 같은 뇌에 들어 간다고 상상해 보면 뉴런들은 바로 나무가 됩니다. 뇌 속에서 우리는 나무의 가지와 줄기,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덩굴나무처럼 감고 올라가는 뉴런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숲도, 뇌도 모두 살아 있습니다. 두 체계는 서로 매우 유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것들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뇌에서 숲을 연상시키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고, 숲에서 뇌를 연상시키는 것들을 찾을 수 있 을 것입니다. 생물계에서는 좋은 과정이 하나 발견되 면 그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생물체에서 그 과정이 재현됩니다. 이것이 생물의 아 름다운 점입니다. 자연계의 한 부분에서 발견된 법clr 이 자연의 다른 부분에서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숲과 뇌는 모두 자연계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뇌의 발달은 우리 주위 세계의 다른 자연현상의 형성 과 발달을 다스리는 법칙과 아주 유사한 법칙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 예로 앞에서 보았던 섬 생태계 같은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섬같이 뇌도 특정한 법칙에 따라 발 달합니다. 또한 특정 시기(결정적 시기)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은 뇌 기능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결정적 시기에 있었던 불행한 일이 어쩌면 일생 동안 지속될 수도 있는 정신장애로 나타나게 됩니다."


 

 

 뇌의 전문화가일어나는 결정적 시기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밴쿠버에 있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 에서 언어의 전문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유아의 경 우 생후 얼마 동안에는 어느 나라 말이든 다 배울 수 있는 유연성이 있 지만 이런 잠재능력을 잃는 결정 적인 시기가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과의 재닛 워커 박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방언에 대 해 아기들이 보이는 반응을 연구하였다. 이 연구에 사용된 방언은 톰슨 (Thompson) 또는 인스라체틴(lnslachetin) 어 였고, 이 방언에만 독특하 게 존재하는 자음을 자극으로 사용했다. 워커는 "이 방언에는 영어에서 는 쓰지 않는 자음들이 있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이 자음들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실험에서는 영어에는 없는 이런 자음 소리를 녹음해서 어린 유아들에 게 들려준다. 소리가 다른 자음으로 바뀔 때면 아기 뒤에서 장난감이 하 나 나타난다. 워커는 이 실험에서 쓰는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어린 아기에게 소리가 바뀔 때마다 고개를 돌리도록 학습시 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학습하고 난 아기가 만일 자음 소리가 바뀐 것을 일아차린다면 장난감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고개를 돌릴 것입니 다. 아기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아기가 소리의 변화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개윌 된 유아는 소리가 바뀌자마자 고개를 돌렸고, 따라서 장난감이 나오리라는 것을 예측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 살이 넘은 아기는 소리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워커는 이 렇게 설명한다.

"한 살쯤 되면 언어지각에 변화가 생겨서 무언가가 재조직화되는 것 으로 보입니다. 갓난아이는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는 상태로 태어납 니다. 그러나 경험은 그런 모든 언어에 대한 잠재력을 좁혀, 점차로 아기는 배우는 특정한 언어의 소리만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발달에서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요인이 더 중요한가? 이것은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앞에서 살펴본 언어 습득이라는 고차적인 능력 의 발달은 이 논쟁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인긴은 앵무새처럼 모방 을 통해서 언어를 배운다는 생각이 수십 세기 동안 지배적이었다. 즉, 유아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환경 속의 여러 단서들을 통해서라고 생 각해 왔다.

그러나 이 생각은 1950년대에 와서 놈 촘스키의 연구 때문에 호응을 잃기 시작했다. 촘스키는 언어 습득이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활동이 아 니라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촘스키는 대체로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인간의 언어를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말을 배울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고, 언어는 생득적인 것이라 고 믿었다.

불행하게도 태아와 영아가 어떻게 언어를 재인하는가에 대한 연구로 는 언어 습득이 생득적인가 아니면 경험에 의한 것인가라는 이런 논쟁 을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 태어난 바로 그날부터 영아가 언어에 대한 선호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특정한 것에 대한 선호도가 경 험에 근거한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기 때문이다.(자궁 안에서 들었던 어 머니 목소리도 경험의 일부인데, 어떤 연구자들은 이것이 마치 "여관 방에서 옆방의 말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앤터 니 드카스퍼의 말처럼 말소리에 대한 영아의 민감성이 태아 시절 청각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면 언어 습득은 학습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촘스키 등의 생득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언어 습득이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것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 과정일 수가 있다. 언 어 습득에 태내의 경험이 얼마만큼 작용하는가를 일아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태아가 인간의 말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도록 한 뒤 태내 경험의 영향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 하다. 그러므로 이와 가장 가까운 실례가 이미 존재한다면 그것을 찾아 볼 도리밖에 없다.

아시리아의 한 전설이 있다. 수세기 전 아시리아에, 태어날 때부터 어 떤 말도 듣지 못하도록 언어 경험을 박탈당한다면 무슨 언어를 사용하 게 될지 궁금히 여긴 왕이 있었다. 왕은 한 농사꾼 부부의 아이를 선택 해, 인간의 모든 말소리와는 차단된 환경에서 자라도록 했다. 아이에게 의식주를 제공했고 잘 보살폈지만 아이를 돌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말하지 말도록 명령했고, 명령을 어긴 자에게는 엄중 한 벌을 내리도록 했다. 그 결과 이 아이는 커서 어떤 언어도 구사할 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런 전설을 떠나서도 어린이가 전혀 말을 배우지 못하게 된 실 례들이 현실에 도 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배롱의 야생소 년'(프랑스군 외과의였던 이타르가 프랑스 남부 아베롱 주에서 찾은, 들에서 벌거벗고 야생 마처럼 뛰어다니던 소년. 이타르는 이 소년을 교육할 때 사용한 방법을 보고서로 내었고, 후 에 귓병 전문가가 되었다.)일 것이다. 늑대들 속에서 자라났다고 알려진 이 소년은 주위 사 람 들이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고 에썼지만 결국 말을 할 수 없었다. 더욱 가슴 아픈 사례는 13세 소녀 제니의 경우이다. 제니의 아버지는 정신병 자였는데, 제니를 가두어 놓고 학대했고 그 결과 이 소녀는 인간의 언어 와는 단절된 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구출된 지 10여 년이 지나도 록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베롱의 소년이나 제니는 모두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따라서 생득론자들은 이같은 사례들이 언어 습득이 생득적이라는 자기 들의 이론에 대한 반증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생득적인 생물학적 소인을 지니며, 이 생물학적 소인에 결정적 시기가 포함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여기서 결정적 시기란 환경의 자극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결정적 서기에 자극을 받지 못하면 뇌 에서 언어의 전문화가 일어나지 못하여 정상적인 언어 습득의 절차를 따르는 데 차질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유아의 인지 능력

신생아실의 갓난아이는 거의 하루 종일 자고, 생후 몇 주 동안은 반사행 동만을 보인다. 이런 모습 때문에 10여 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아기들 이 지니고 태어나는 행동 특징은 몇 개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들은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이 환경에서 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반론, 즉 아주 갓난아이들도 특정한 지각이나 행동을 하게 하 고 특정한 적성을 갖도록 하는 소인을 갖는다는 견해는 거의 인정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생각이 바뀌고 있다.

4~5개월 된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유아들에게 서로 다른 음향효과가 삽입된 두 편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한 영화는 두 개의 노란 나무토막이 마구잡이로 아무 규칙도 없이 부딪히는 내용이었다. 다른 영화는 물에 젖은 스펀지가 따로따로 하나씩 물이 쥐어짜이기도 하고, 혹은 두 개가 서로 마구 부딪혀 물이 짜이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서 한 영화에 넣은 음향효과만 따로 들려주면서 두 영화를 동시에 보여주 었다. 그러면 4~5개윌 된 유아는 그 음향효과에 맞는 영화를 응시한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유아들은 방금 전에 들었던 것과 보았던 것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조금 더 큰 유아들에게는 더욱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다음의 실험에 서 알수 있다. 11개월 된 유아들에게 연속적인 소리와 비연속적인 소리 중 하나를 들려준 다음, 나란히 놓인 연속적인 직선과 비연속적연 직선 을 보여준다. 그러면 연속적인 소리를 들은 유아들은 연속적인 직선을 더 오래 쳐다보고, 비연속적인 소리를 들은 유아들은 비연속적인 직선 을 더 오래 쳐다본다. 이 실험은 11개월 된 유아가 서로 다른 감각을 통 해 들어온 두 가지 정보로부터 비연속성 또는 연속성이라는 공통된 성 질을 추출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감각양식 간 전이' 라고 불리는 이같은 활동은 11개월 된 유아가 이 미 한 가지 감각을 통해 전달된 정보(소리)를 다른 감각양식(주로 서 각)으로 동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11개윌 된 유아에게 정보를 상 이한 감각양식 간에 전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아동의 정 신활동에 대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의문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월리엄 제임스가 이전에 주장한 것처럼 유아들은 '그냥 쓸데없는 소리 나 내고. 방실방실 웃기만 하는 혼돈의 덩어리들' 이 아니라,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험을 인지적으로 분석하는 존재들' 이다.

뿐만 아니라 유아들은 추상적인 표상도 낯설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다. 미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주립대학 아동연구실험실의 레슬리 코 헨 박사는 유아의 뇌 발달을 연구해 왔다. 코헨은 아기들이 추상적 개념 을 형성해 가질 수 있는가를 검증하려고 한다. 코헨은 이 연구에 습관화 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습관화란 방법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아기한테 같은 자극 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면 아기가 지겨워하겠죠. 더 이상 흥미가 없어 질 테고, 그러면 그 자극을 더는 쳐다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 상 보지 않는 이유는 그 자극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죠. 또한 이것은 그 자극에 대해 유아가 뭔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연구 는 아기가 반복되는 자극을 지겨워하는 것을 이용해서 아기가 지각하는 것이 무엇이고, 지각이 연령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코헨은 아기에게 작은 각(角)을 하나 보여주고 그 각에 습관화되도록 한다. 처음에 한 각을 보여주어 습관화시킨 다음 여러 개의 각을 보여준 다. 그 중 첫째 각은 습관화시킨 것과 같은 각이다. 둘째 각은 습관화된 첫째 각과 각도는 같지만 그것을 회전시킨 것이어서 그 두 변이 습관화 된 각과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셋째 것은 앞의 첫째 각과 각도는 다르지만 두 변이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회전시킨 각이다.

코헨은 6주 된 유아와 3개윌 된 유아가 이런 각들에 대해서 보이는 반 응이 서로 다른 것을 발견했다. 6주 된 유아들은 두 변이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각들을 계속 보여주면 흥미를 잃는 반면, 3개월 된 유아들은 각 의 크기가 같은 각들만을 계속 보여주었을 때 흥미를 잃는 경향이 있었 다. 이런 결과는 6주 된 어린 유아는 각을 이루는 두 변을 중심으로 각 이라는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들은 각의 구성요소에 주로 반응한다. 반면 3개윌 된 더 큰 유아는 두 변과 각의 크기라는 구 성요소들을 통합하여 보다 추상적인 '각짐' (angleness)이라는 개념을 형성해 가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추상적인 개념을 포착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은 생후 6주면 이미 발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헨은 말한다.

"유아는 아주 일찍부터 대상들을 유목(class)별로 분류합니다. 만약 유아가 단순한 개념이나 유목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십 시오. 유아가 한 사람을 다른 각도에서 볼 때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유아에게 보이는 세상은 온통 혼돈뿐이고, 경험 으로부터 무언가 학습한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제롬 케이건은 추상적 개념화와 같은, 정보의 내재적 변형이 시각, 청 각, 촉각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 던 어린아이들의 언어생활의 일부도 정보의 내재적 변형에 의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케이건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 보이는 수수께끼 중의 하나는 어린아이 가 과거에 배우지 않은, 즉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은 표현을 쓴다 는 것입니다. 세 살 된 어린아이가 얇은 레몬 조각을 '달' 이라고 부르 는 것을 보면 접시에 담긴 레몬 조각과 색칠하기 책에 있는 초생달의 비슷한 점을 발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 살 된 아이가 검은 구름을 보고 '사납다 ' 고 하는 것을 보면 아이가 폭풍우와 화난 사람의 얼굴이 공통으로 가지는 좋지 않은 감 정적 측면을 포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

마음의 형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 하고 있고, 이들은 그 일환으로 여러가지 접근법을 써서 유아의 언어지 각을 연구하고 있다. 유아의 언어지각에 대한 여러 접근법 중 하나는 유 . 아에게 같은 단어나 음소를 반복해서 들려주면서 유아의 심장박동률을 측정하는 것이다.(심장박동률 감소는 유아가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똑같은 자극을 몇 차례 반복해서 들려주면 심장박동 률은 더 이상 감소하지 않는다. 이때 음소나 단어를 변화시키면 심장박 동률은 다시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같은 절차는 유아가 새로운 말소리, 즉 이전과 다른 말소리를 변별할 수 있다는 점을 효율적으로 보여준다.

이밖에 유아의 언어능력을 진단하기 위한 다른 접근법으로 아기가 자 신의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가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 있다. 아기들 은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수동적인 존 재가 아니다. 아기들은 새로운 것과 변화를 찾아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아기들의 이런 특성은 가짜 젖꼭지를 사용한 실험에서 드러난다.

유아들에게 가짜 젖꼭지를 물려 주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아 준 뒤 아 기가 젖꽂지를 빨면 이어폰으로 사람 말소리를 들려준다. 젖꼭지를 빨 면 귀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챈 아기는 소리를 계속 들으려고 젖 꼭지를 더욱 더 세게 빨게 된다. 그러다가 몇 분 지나면 젖꼭지를 덜 세 게 빤다. 이때 새로운 단어나 음소를 들려주면 다시 세게 젖꼭지를 빨기 시작한다. 유아는 새로운 말소리를 알아듣고 그에 적당한 반응, 즉 새로 운 소리를 계속 들으려는 반응을 보인다. 이같은 실험 결과들을 보면 사 람에게 마음이 생겨서 정신활동이 가능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되는 연 령보다 훨씬 이전에, 즉 유아에게서 이미 흥미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 심이라든가 환경에 대한 통제 욕구 등이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발달의 초석

 

마음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모 습을 드러낸다. 수정란에서 뉴런의 이동에 의해 뇌가 형성되는 과정이 나 출생에서 시작 하여 환경과 뇌의 상호작용까지를 거치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이다. 유아의 마음은 '백지' 가 아니다. 왜 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특정하게 지각하고 발달하도록 여러 편 향들을 지니기 때문이다. 유아의 마음은 철학자 칼 포퍼가 쓰기 좋아했 던 용어인 '빈 양동이' (empty bucket)라고도 할 수 없다. 유아의 마음은 많은 구조들을 생득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생득적인 구조는 생후에 질서정연한 뇌 발달의 순서에 따라 생물 학적으로 성숙해진다. 이러한 생득적 구조를 갖고 있는 동시에 유아의 마음은 또한 경험을 조직화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데 필요한 규칙과 구조들을 갈수록 복잡하게 스스로 '건설' 해 나간다. 다시 말하 면 유아는 아무렇게나 성장하는 게 아니며 유아가 특정한 방향으로 발 달하도록 하는 어떤 보편적인 발달의 초석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발달의 초석에 대한 현대의 생각은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로 부터 비롯된다. 피아제는 자신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을 바탕으로 마음의 발달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제안을 했다. 첫째로 마음은 시간이 감에 따라 변화한다. 둘째로 마음 의 변화는 환경에 의존한다. 이것은 바로 세계의 본질에서부터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인간의 사고가 그가 접하게 된 물리적 세계의 특징에 의해 지배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변화란 사고 내용의 변화라는 측면뿐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의 변화라는 측면도 포함한다.

총명한 16세 소녀의 사고와 총명하지만 두 살 난 여자 아이의 사고를 비교해 보자. 16세 소녀는 음악이나 옷차림을 주로 생각하는 반면 2세 여자 아이는 장난감이나 모래놀이통을 생각할 것이라고 추측해 볼 때, 그 두 사람의 생각이 내용 면에서 다름은 명백하다. 사고의 내용 뿐 아니라 형식도 다른데, 2세 아이와는 달리 16세 소녀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복잡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기하도형 을 머릿속에서 회전시켜 볼 수도 있고, 자신의 의견을 제법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두 살바기와 열 여섯 소녀의 마음을 구분짓는 이같은 형식적, 구조적 특징들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환경, 그리고 뇌의 상호작용에 따라 발달하는 것이다. 제롬 케이건은 최근 20여 년 동안 유아 발달을 연구한 결과로서 "인간 발달의 놀라운 보편적인 초석(또는 단계들)"을 독창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주위 세계에 대해 인간이라는 종에만 특유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이미 만들 어져 있습니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된 아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 고, 맛을 볼 줄 압니다. 또 하루밖에 안되었지만 벌써 어떤 대상을 다른 것보다 선호하는 경 향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하얀 바탕에 어두운 줄이 그려진 평범한 줄무늬보다는 바둑판 무 늬를 더 좋아합니다. 또 지속적인 소리보다는 들리다말다 하는 간헐적인 소리를 더 좋아합 니다. 색깔조차 다른 색보다는 빨간색을 더 좋아합니다. 감정적인 수준에서 보면, 갓난아이 는 자기를 돌보아 주는 사람에게 더 애착을 갖도록 생물학적인 준비를 갖추고 태어납니다. 고음의 바이올린이나 저음의 바순 소리보다는 인간의 목소리에 부합하는 음성 패턴에 반응 하는 것이 그런 준비의 예입니다. 갓난아이는 어떤 자극에는 웃고, 어떤 자극에는 옹알거리 고, 어떤 자극에는 울기도 합니다"

2~3개월 사이에 최초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아기는 이전처럼 많이 울지 않고 옹알 이 소리를 더 많이 내기 시작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기가 되면 아기가 주위 사람들에게 웃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치 두 달밖에 안 된 아기가 낯선 얼굴을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얼굴에 낯선 얼굴을 동화시키는 것처럼 보인 다. 케이건은 "이런 미소를 동화의 미소(smile of assimilation)이라고 부릅니다."라고 덧붙인 다.

이렇게 두 달밖에 안된 아기가 보이는 동화의 미소는 어린 아기에게도 일종의 기억(또는 기억의 초기형태)이 있음을 말해 준다. 만약 유아가 어떤 식으로든 무엇을 재인할 수 있는 기억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부모의 얼굴과 낯선 얼굴 사이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 겠는가? 아마도 2~3개월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기억능력은 전두엽의 빠른 발달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두엽은 3~8개월 때 급속히 발달하며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 문이다.

그리고 나서 8개월째가 되면 기억은 또다시 변한다. 이제 유아는 재인뿐 아니라 인출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잠시 재인과 인출을 비교해서 설명해 보자. 만일 어제 저녁 칵테일 파 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주고 그 중에서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 을 고르라고 한다면 이는 재인 기억을 동원해야 하는 문제이다. 반면에 칵테일 파티에 왔던 사람들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과제는 더 어려워진다. 이때는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를 회상 해내야 하는데, 이것이 인출기억이다.

인출기억은 발달의 중요한 초석으로, 생후 8개월 된 유아가 인출기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 은 피아제의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 생후 8개월 된 유아가 보는 앞에서 딸랑이 를 담요 밑에 숨기면 아기는 딸랑이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잠시 동안 기억할 수 있어서 담요를 들치고 딸랑이를 찾아낸다. 이렇게 눈앞에 있던 물체가 숨겨져 보이지 않는다고 하 여 그 물체가 연기처럼 사라진 게 아니라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로 피아제는 유아가 갖는 이러한 개념을 '대상 영속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딸랑이를 숨기는 것을 본 뒤 10초 이상이 지나면 8개월 된 아기는 딸랑이를 찾지 못한다. 인출기억 능력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이다. 생후 14~15개월이 되어야 유아는 1분 이 상 지연되더라도 숨겨진 물건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인출기억 능력을 갖는다. 케이건은 말 한다.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인출해 내는 능력을 갖는 데는 대가가 따릅니다. 그 대가란 바로 그만큼 공포나 불안을 더 쉽게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발달의 주요한 초석들 중의 하나는 생후 8~9개월 전후에 확립되는데, 그것은 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 즉 낯가림과 격리불안입니다. "

기억이 '격리불안'과 연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꽤 합당해 보인다. 만약 아기가 30초 전에 어머니가 곁에 있었던 것을 회상해내고, 이 사실과 지금 어머니가 곁에 없는 상황을 비교하 는 능력이 없다면 어머니를 찾으려 할 리가 없다. 아기가 무엇 또는 누군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이 자각이 바로 불안으로 이어져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고 야단법석을 피우 게 되는 것이다. 케이건은 말한다.

"유아의 낯가림은 비유하자면 제트 비행기 안에 앉아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와 같을 것입니다. .... 당신은 기억 속에서 제트 비행기 엔진이 보통 어떤 소리를 내는 지 인출해내고 기억 속의 소리와 지금 들리는 소리를 비교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두 소리가 같지 않으면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때의 감정이 바로 8~9개월 된 유아가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고 없을 때 갖는 느낌일 것입니다"

이런 불안의 증가와 함께 이 시기에 발달하는 것이 아동의 상징조작 능력이다. 생후 10~11 개월 된 유아들은 헝겊조각을 담요로, 나무조각을 과자로 생각하면서 논다. 그리고 놀이집을 짓기 위해 각종 장난감들을 동원한다.

이처럼 가상적인 상징체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와 비슷한 생후 12~14개월 무렵 아기 들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기들은 첫돌이 되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생후 12~14개월경에야 아기들은 비로소 언어를 실제로 구사하기 시 작한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로 된 표현에서 시작하여 첫돌을 넘기고 나서는 셋, 넷, 또는 다 섯 단어로 된 미완성의 문장들을 말하게 된다. 두 돌에 가까워지면서 아이가 구사할 수 있 는 어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앞에서 언급했던 낯가림과 격리불안에 이어 언어는 인간 발달의 두 번째 주요한 초석이다.

발달의 세 번째 초석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짓는, 자아에 관한 감각, 자의식, 또는 자기자각의 성장이다. 케이건은 이렇게 말한다.

"18개월과 24개월 사이에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기들의 의지를 가지며, 감정이 있고,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제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18개월 이전에는 아무리 아이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더라도 자기를 자각하지는 못합니다. 18개월 이전에는 뇌가 아직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아감각도 다음과 같이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9~10개월 된 유아들은 코 끝에 립스 틱을 살짝 발라 주고 거울을 비추어 주어도 자기 코를 만지지 않는다 .그러나 18~20개월쯤 도니 아이들은 자기 코를 만진다. 18개월 이후의 아이들은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알아보고 는 이전에는 없었던 코 끝의 빨간 얼룩을 보고 대단히 신기해한다. 나, 나에게, 나를, 나의 것 등과 같은 말을 쓰기 시작하기 시작하게 되는 때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래서 생후 18개 월만 되면 " '나' 그 장난감 줘"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요구할 수 있다.

이같은 자아의 출현이나 그 전에 나타나는 기억, 언어 등 인간 마음의 발달의 초석이 되는 것들은 미리 짜인 진행표에 따라 발달한다고 케이건은 믿고 있다. 그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에 있는 로라 프티토의 연구를 예로 들고 있다. 정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아이들 이 생후 18개월이 넘으면 자기 코 끝에 립스틱이 묻은 것을 거울에서 보고 자기 코를 만지 듯이, 로라 프티토는 수화를 배우는 귀머거리 아이들도 그 나이가 되면 '나'에 해당하는 수 화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케이건은 "이것은 아주 놀라운 발견"이라고 말한다.

생후 2년째 일어나는 발달의 또 다른 초석은 일종의 도덕 감각이라고 케이건은 말한다. 처 음에 이 도덕 감각은 아이가 사물들에는 어떤 온전한 상태가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이해하 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단계의 아이들은 부서진 인형이나 고장난 차, 또는 책상에 칠해놓은 페인트가 벗겨진 것 등을 보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물건들을 본 생후 18개월 이후 의 아이들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부서졌어", "지지", "나빠" 등의 말을 한다. 또는 부서진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를 어머니에게 가져가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이기도 한다. 이 또래 아이들은 "좋다", "나쁘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또 이해할 수도 있게 된 다.

한편 문화는 이러한 도덕 감각의 발달에 갈수록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인도에서 자란 아이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자란 아이와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감각이 다를 것이다. 케이건 은 이렇게 말한다.

"도덕 감각은 발달의 가장 커다란 성취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이 노래하거나 말하고, 처음 걸을 때 큰 발전이라고 여기듯이 도덕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합니다. 도덕 감 각은 인간 세계에서 사는 한, 모든 아이들이 이루어내는 발달의 성과입니다."

이러한 도덕 감각과 함께 두 살바기 아이들의 아주 특징적인 정서들이 이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의 아이들이 보이는 공격성은 아마도 어린 아이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를 구별하려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정말로 사고나 인지가 감정에 선 행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19세기 이론가들은 감정을 일차적인 것으로 보았고, 사고는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 하는 도구로 보려고 했다. 프로이트는 감정을 인지 발달의 바탕으로 보았다. 그는 원초아 (id)가 최초에 발달하고 다음에 자아(ego)가 발달한다고 말했다. 자아란 프로이트에 따르면, 원초아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며 사고와 논리에 따라 움직 인다고 한다.

이에 반해 현대의 발달 이론은 인지적 과정이 감정 이전에 먼저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 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낯가림'을 할 줄 알려면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야 하고, 어 떤 얼굴은 친숙하지 않다는 것을 재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현대의 발달 이론에 따르면 감정이 마음의 발달을 자극할 수가 없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견해와는 상반되며, 현대의 발 달 이론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이 뇌의 성숙과 더불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두 돌이 지나 여섯 살이 될 때까지 한 아이가 구사하는 어휘는 극적으로 확대되고 또 그 아이의 지식도 놀랄 만큼 확장된다. 그리고 비로소 아이가 실제로 지닌 잠재 능력이 얼마나 될지를 점쳐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때가 정식 교육의 기반을 다질 때다, 또 이때는 아 이의 '사회적 자아'가 출현할 무렵이다.

여섯 살이 지나면 발달의 또 다른 주요 초석이 나타난다. 아이가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 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영국법은 이 나이 때부터 어린이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또 카톨릭교에서 이 나이 때부터 고해성사에 참여한다.

인간의 뇌가 빠른 속도로 성숙해 감에 따라 6세 이후부터는 어린아이가 어떤 부문에서는 거의 성인의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다. 케이건은 생후 7년째인 어린이의 발달에 대해 이렇 게 지적한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인디언 마을에서 부모들은 아이가 7세 가량 되면 소를 치거나 동생들 을 돌보는 책임을 맡기기 시작합니다. 영어권 사회에서는 7세가 정식 교육을 시작하는 나이 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 주위의 거대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세계 속에서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게 되므로 어른들은 아이가 이 나이쯤 되면 꽤 의젓해졌다고 여긴다. 일곱 살 짜리 아이는 무생물과 생물을 구별한다. 또 물건과 사람은 각기 다른 유목에 속한다는 것도 알게된다. 그래서 애완용 고양이는 '짐승'이면서 '생물'이며 '동무'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는 범주들 중에도 서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케이건은 이렇게 범주의 존 재와 함께 범주들에 서열이 있음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모든 논리적 사고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개념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발달해 생기는 결과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 다. 자아 개념은 두 돌이 지나면서 계속 발달하는데, 그 개념은 추상적입니다. 이 자아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외부세계의 사건들이라는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은 개념들 간의 관계를 이 해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나'와 외부세계를 연관지을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나'에 게 일어날 수 있는 추상적인 사건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추상적인 것에 대 한 두려움이 6세가 지나면 생겨나죠. 4세 아이들은 단순한 것들, 예를 들어 어둠, 귀신, 아니 면 큰 개를 무서워하지만 6세가 지난 아이들은 유괴당할가 겁난다든지 핵전쟁이 무섭다든지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바로 6세가 지나면서 '마음'이 출현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신동의 신비

크리스토퍼는 일곱 살 난 소년인데, 그의 기계적인 손재주나 서양장기 두는 실력은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크리스토퍼 같은 사례는 정신발달이 어떤 고정적인 패턴에 따라 진행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다.

터프츠 대학의 데이비드 펠드먼 박사는 "발달이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같은 방식으 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때로는 여러 분야의 발달이 서로 발맞추어 비슷한 속도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 습니다. 크리스토퍼는 논리적인 추론이 다른 능력들을 앞질러서 발달한 경우입니다. 적어도 이런 사례들은 마음이 모든 능력의 통합이라기보다는 여러 기능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것 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크리스토퍼의 경우를 보면 발달해야 할 다른 영역의 능력들보 다 최소한 한두 개의 영역들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토 퍼처럼 특정한 능력이 뚜렷이 우세하게 발달한 사례를 접하게 되면, 마음이 하나인가 아니 면 몇 개 또는 많은 수의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크리스토퍼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들은 각각의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에 따라 교 육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펠드먼 박사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유일 한 교육 방법은 없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 고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는 아이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교육방침에 따라 이 학교 교사들은 크리스토퍼에게만 특별히 발달한 능력들과 그렇지 않은 능력들이 잘 통합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만약 이런 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다면(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이지만)크리스토퍼는 또래와 동떨어지거나 멀어지지 않고서 도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마음은 제롬 케이건이 기술한 것처럼 상당히 예측 가능한 순서에 따라 발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서 크리스토퍼 같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사례가 있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은 인간이 아무리 영특하고 기묘한 방법으로 마음을 정의하려고 시도하더라도 마음은 그런 인간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 수 있음 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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