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은 20세기에 자행된 끔찍한 사건,

직장과 기족, 신분을 빼앗긴 채 비참하게 살던

수천만 명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 작품을 썼다.

《수용소 군도》의 한 부분에서 솔제니친은

뉘른베르크 재판(1945년 11월부터 l0개월 동안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2차세계 대전 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으로 24 명이 기소돼

사형 12명, 종신형 3명, 징역형 4명, 무죄 3명의 결과가나왔다 옮긴이)

 을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몇몇 행위는 본질적으로 너무 끔찍해서

인간의 본성과 충돌한다’라는 그의 결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맞는 말이다.

‘사악한 행위에 참가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언간을 기생충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개개인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무작정 고문하고 학살히는 짓은

변명의 여지 없이 어떤 경우헤도 잘못된 것이다.

고통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한 다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실 세계는 고통에 짓눌려 있다.

이 명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허무주의자의 회의로도 이 명제는 약화되지 않는다.

전체주의자도 이 명제를 지울 수 없다.

어떤 냉소주의자도 고통에 찌든 현실에서 탈출할수 없다.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교묘히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내 믿음의 밑바탕이 되었다.

내 의식의 밑바닥과 내 모든 생각과 행위를 낱낱이 뜯어봤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나치의 수용소 교도관이나

수용군도의 인민위원 혹은 지하교도소에서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선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

선하지 않은 것이 었다면, 선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최악의 죄가 순전히 고통을 주려는 목적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이라면,

선은 그외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 잘못된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선이다.


조던B.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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