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우울증

흔히 어른들은 설마 어린 아이들에게 무슨 '우울증' 같은 정신병이 있겠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의문이 있어 왔습니다. 따라서 주요 우울증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성인에게서만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Spitz라는 사람이 고아원이나 아동보호소에서 엄마의 상실에 의한 심리적 타격으로 밥도 안 먹고 활동도 하지 않는 2-3세 아이들을 관찰하고 이를 '의존성 우울(anaclitic depression)'이라 명명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통 정신분석가들은 우울증이란 지나친 양심에 의한 과도한 죄책감 내지 자기 징벌이 핵심 병리인데 과연 아이들에게 양심, 죄책감 같은 개념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일부 이러한 이론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상에서 많은 아이들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아이들에게 우울증이 존재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정 사실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우울 증상을 실제 환아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평소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어서 별 문제가 없던 국민학교 5학년 여아가

1달 전부터 사소한 일, 예를 들면

l  부모로부터 가벼운 핀잔을 듣거나

l  동생과 가벼운 말다툼을 벌이거나,

l  숙제를 풀다가 잘 안 풀리면 짜증을 내고,

l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l  특히 TV에서 약간 슬픈 장면이 나온다 싶으면 흐느껴 우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그보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것은 아이 일기장의 내용이었습니다.

l  아이들이 별명을 부르고 못생겼다고 놀려서 학교 가기가 싫다,

l  요즈음에는 가끔 멍해질 때가 있어 구구단 도 잘 생각이 안 나서 산수 문제 풀기가 겁난다,

혹시 이러다가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등 주로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는 일에 대한 걱정 어린 내용이 많았습니다.

더욱이 부모를 놀라게 한 일기 내용은

l  2달 전 돌아가신 할머니와 있었던 옛날의 즐거웠던 기억에 대한 얘기와

l  가장 친하게 지내다 다른 학교로 전학가 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자주 언급이 되면서

l  가끔씩 '외로움', '죽음'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담을 의뢰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l  만사가 귀찮고

l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며

l  학교를 안 간지 일주일이 넘었고

l  과거 엄마 자신이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

혹시 우리 아이가 우울증이 아닌가 하여 비교적 조기에 센터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성인의 특징적 우울증상은

l  절망감,

l  허무감,

l  죄책감,

l  흥미 상실,

l  성욕 감퇴,

l  식욕감퇴,

l  새벽에 일찍 깸,

l  체중 감소,

l  전반적 사고-운동 속도가 느려짐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면에

아이가 우울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신호들로는

l  예전에 즐기던 일에 대한 흥미를 잃거나,

l  쉽게 지치거나,

l  수면과 식욕이 달라지거나,

l  집중을 못 하거나,

l  반항적으로 되거나,

l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절망적인 혹은

l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l  변화무쌍한 감정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는

l  인지, 사고, 감정 발달이 아직 안되어 절망감, 허무감, 죄책감 같은 우울한 감정보다는

l  상기 증례와 같이

l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l  울음을 터뜨리고

l  특별한 의학적인 원인이 없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아서는 쉽게 아이의 우울한 감정을 알아내기가 힘들고 아이와의 충분한 대화 후에야 비로소 아이의 마음속 저 변에 깔린 우울한 감정을 알아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명 소아 우울증을 가면(mask)속에 감추어진 '가면성 우울증 혹은 변장한 우울증(masked depression)' 이라고도 합니다.

우울증은

스트레스를 주는 현상과 사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데

작고 큰 충격적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특히 단기간에 연달아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를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자살충동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4세부터 14세까지의 아동은 부모들이 설마 아이들이 자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우울증은 다른 때보다 더 위험합니다.

따라서 우울증과 자살동기에 관한 교사나 부모의 관찰과 관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슬프고 우울하지만 자살의도가 없는 아동과 자살의도나 충동이 있는 아동을 구별하여 조기에 상담하면 불행을 조기에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아동이 가장 민감하고 충격을 받는 사건들은

l  부모의 부부싸움이나 이혼/재혼 등 가정환경,

l  외모와 자존심의 문제,

l  또래간의 인기(따돌림 등)와 압력,

l  학업성적 등입니다.(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참조)

학교와 관련하여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사건들은 주로

l  무능감과 모멸감을 느끼는 상황으로 아동의 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숙제나 과제부과,

l  능력별 집단편성에서 느끼는 무능감,

l  집단별 경쟁에서 자신 때문에 소속 집단이 패할 경우 등입니다.

l  가정, 학교, 친구 사이에서의 사건 외에도 심지어 애완동물의 죽음도 자살충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요 관심사에서 충격을 받을 경우 약물이나 자살충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동기 우울증의 정확한 기술이나 분류에 대하여 정의적 진술을 내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울증을 포함하여 성인기의 모든 기분장애에 대한 DSM의 진단적 준거가 아동기 우울증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DSM은 우울장애를 조증(열광,광적인)을 포함하여 기분장애로 설명하는데, 조증(Manic)은 비정상적인 기분이 야기되거나, 과장된 기분이나 성급한 기분을 나타내거나, 과장된 행동을 말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기분장애 전체를 설명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동기 우울장애로 한정지어 '주요 우울장애''기분 부전장애'의 진단기준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울증의 진단기준

DSM-Ⅳ의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s) 진단기준

1. 주요 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진단기준

주요 우울 장애의 증상은 정상인에게서 보이는 단순한 우울 증상과는 달리 기분이 심하게 저조해서 일상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이고, 식욕을 잃어서 체중이 감소하고 신체적으로 초조하거나 활동이 지체된다. DSM-Ⅳ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요 우울장애의 필수 증상은 적어도 다음 증상 중 5가지가 연속된 2주간의 기간 동안 나타났고 2주 동안 우울 기분 또는 거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흥미나 즐거움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우울하고, 슬프고, 희망이 없고, 실망스럽고, 의기소침하다.

나)   이유 없는 신체적 고통을 느낀다.

다)   사소한 일에 과민한 상태가 된다.
(
지속적으로 화를 내거나 타인을 비난하면서 사건에 매우 민감하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경향 또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치게 좌절감을 느끼는 상태)

라)   취미에 대해 흥미가 감소되거나, 이전에 즐겁게 생각되었던 활동에 대해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않게 된다.(, 축구를 즐기던 아이가 운동하지 않으려고 변명 거리를 찾는다.)

마)   식욕은 보통 감소되고 억지로 먹어야 한다고 느낀다. 또는 식욕이 증가되거나 특정한 음식을 갈망하기도 한다.(: 달콤한 음식이나 기타 탄수화물)

바)   불면증이 나타난다.

A.     중기 불면증(일단 깨고 나면 다시 잠들 수 없다.)

B.     말기 불면증(너무 일찍 깨고 다시 잠들 수 없다.)

C.     초기 불면증(잠들기 어려움)

D.     수면 과다(밤에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낮 시간에 잠자는 시간이 증가됨)

사)   정신 운동 변화는 초조(: 계속 앉아 있지 못함, 걷기, 손 꽉 쥐기, 다른 물건을 잡아당기거나 문지르기) 또는 지체를 나타낸다. (: , 사고, 몸의 느린 움직임; 대답하기 전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짐, 음량, 음조, 양의 감소, 말의 내용이 다양하지 못함, 말이 없음) 이때 정신 운동성 초조나 지체는 다른 사람에 의해 관찰될 수 있을 만큼 심한 것이어야 한다.

아)   흔히 에너지가 저하되고 피곤하고 나른하다.
(
, 아침에 씻고 옷 입는 것도 피로하다고 호소하고 보통 때보다 2배나 힘이 든다고 느낀다.)

자)   무가치 감이나 죄책감을 느낀다.(비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자기 평가죄의식에의 집착, 사소한 과거의 실패에 대한 반추를 포함)
(
사소한 일상적인 사건들을 자신이 결함이 있는 증거라고 잘못 해석하고 운이 나빴던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감을 느낀다. ,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시장이 모두 불경기 상태여서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도 똑같이 매매가 힘들 때조차도 거래가 없는 것이 자기 결함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차)   생각하고, 집중하고,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느낀다. 정신이 쉽게 산만해지거나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 이전에는 처리할 수 있었던 과제였지만 이젠 더 이상 복잡한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된 컴퓨터 프로그래머) 소아들은 집중력의 저하를 호소하고, 나이 든 사람은 기억력의 저하를 보통 호소한다.

카)   죽음에 대한 생각, 자살 생각, 또는 자살 시도가 나타난다.
(
이러한 생각은 만약 자신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순간적이거나 반복적인 자살에 대한 생각, 또는 자살 방법에 대한 실제적이고 특별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주요 우울 장애의 발생은 빠르면 아동기 때부터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14세까지는 그리 높지 않은 발생률을 보이다가 청년 후기나 성인 초기부터 발생률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이 5.4~5.9%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최근 전국 남녀 6,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는 우리 나라 15~24세 청년기 집단의 경증 이상 우울증 발생률이 21.27%인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이중에는 중증 이상의 우울 증세를 보이는 청년이 14%나 된다고합니다.(한국 보건 사회연구원, 1997)

위에서 살펴 본 우울증의 핵심 증상 중 신체적 호소, 과민한 상태, 사회적 위축과 같은 증상들은 특히 소아에게서 흔합니다. 반면에 정신 운동 지체, 지나친 수면과 망상은 사춘기 이전보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흔합니다. 우울증은 파괴적 행동 장애, 주의력 결핍 장애, 불안 장애 등과 동반되는 경향을 소아, 청소년에게서 많이 보입니다.

2. 기분 부전 장애(Dysthymic Disorder) 진단기준

주요 우울 장애는 증상이 매우 심하고 한정된 기간에 나타나는데 비해, 증상의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장기간 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DSM-Ⅳ에서는 기분 부전 장애로 진단하였다. 구체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가)   적어도 2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 우울한 기분이 있고, 우울한 기분이 없는 날 보다 있는 날이 더 많고, 이는 주관적인 설명이나 타인의 관찰로 드러난다
(주의: 소아와 청소년에서는 기분이 과민한 상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간은 적어도 1년이 되어야 한다.)

나)   우울기 동안 다음 2가지(또는 그 이상)의 증상이 나타난다.

A.     식욕 부진 또는 과식

B.      불면 또는 수면 과다

C.     기력의 저하 또는 피로감

D.     자존심 저하

E.      집중력 감소 또는 결정 곤란

F.      절망감

다)   기분 부전 장애 환자들은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주위 사람들에게는 불평이 많고, 늘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이들은 침울하고 내향적이며, 자의식이 강하기는 하지만 자존감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기고 하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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