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 2007/08/22 16:46

전자통신연구소에 근무하는 박문호 박사. 전공인 전자공학 보다는 양자물리학과 뇌 과학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주 카페초대석은 뇌 과학 전문가인 박문호 박사의 뇌 작용을 중심으로 살펴본 정치,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뇌를 골고루 쓸 줄 아는 새로운 지도자 상에 대해 얘기를 나눠 봅니다.

박문호 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100권 독서클럽 공동운영위원장
불교TV '뇌와 생각의 출현' 강연 중


(윤여준) 원래 박문호 박사께서는 전자공학, 반도체 분야를 전공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양자물리학과 뇌 과학 전문가로 더 알려져 있는데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더 유명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박문호)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요, 어릴 적부터 양자물리학이나 뇌 과학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윤여준) 양자물리학과 뇌 과학이란 학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박문호) 양자물리학은 기본적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고, 뇌 과학은 지구상의 생명 시스템을 추적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DNA나 RNA를 통한 생명 전체의 진화 계통수 가 밝혀지면서 35억년된 생명의 역사가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요.

(윤여준) 최근에 우리 한국 사회도 뇌 과학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굉장히 어렵고 전문적인 분야인데도 일반 시민들이 읽는 신문에 관련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왜 갑자기 한국 사회에서 뇌 과학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걸까요?

(박문호) 십여 년 전부터 마라톤 붐이 불었지요. 마라톤 동호인이 200만을 넘고 풀코스를 뛴 사람들이 10만 명이 넘었다고 들었는데요, 일종의 집단적인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또 요가 열풍입니다. 전국에 요가 학원이 1만개가 넘는다는 군요. 마라톤 붐하고 요가 붐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그 다음 일어날 사회적 동향은 뇌 과학입니다. 최근 인기가 많은 웰빙도 그 이론적 배경은 사실 뇌 과학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령화가 되면 건강 문제가 부각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뇌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뇌는 우리 몸을 위해 있는데 몸이 부실하다는 얘기는 뇌에서 종합적으로 몸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얘기니까 결국 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뇌가 좋은 사람들은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뇌가 좋다는 얘기는 감수성이나 사고 체계가 유연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나이가 많은 노인들 중에 감수성이나 사고가 아주 유연한 분은 몸도 건강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윤여준) 마라톤 역시 웰빙의 한 차원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박문호) 마라톤은 좀 더 긴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먹을 것이 풍부해져 열량 과잉이 오기 시작했어요. 한반도 역사에서 열량 과잉이 온 건 얼마 안 됩니다. 조선 후기만 해도 흉년이 들면 몇 만 명씩 굶어 죽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개개인의 열량이 충족되고 점차 열량 과잉이 오게 된 겁니다. 이런 열량 과잉에 집단적으로 대처하는 방안 중 하나가 마라톤입니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잘 못 느끼겠지만 우리 국민 전체를 놓고 보면 자연스러운 적응 현상으로 볼 수 있지요.

(윤여준) 이런 현상이 웰빙과 맞물려서 요가로 번지고, 노령 인구가 늘어나니까 자연히 뇌 과학 쪽으로 발전한다는 거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가요?

(박문호) 미국만 해도 뇌 과학 붐이 대단합니다. 미국 뇌 과학 학회에 등록한 학자 수만 해도 4만 명을 넘을 정도니까요. 직업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4만 명을 넘는다는 얘기는, 이제 뇌가 더 이상 블랙박스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뇌에 대해 수많은 보고서들이 나오면서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윤여준) 사회적 현상으로 보니까 뇌 과학 열풍이 이해되네요. 그럼 뇌 과학이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박문호) 20여 년 동안 인간의 감성을 연구한 안토니오 다마지오라는 뇌 과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최근에 '확장된 항상성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는데, 이 말은 인류가 생명 연장이라는 생물적응향상성을 지향하기 위해 꾸준히 시스템을 바꿔 왔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윤리입니다. 인류 사회에서 윤리나 도덕감이 발달해 온 이유는 몸  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라는 거죠. 실제로 우리 사회의 평균 수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잖습니까? 여성이 82세, 남성이 75세 정도인데, 이 수치는 미국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생명연장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겠지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국민 소득 만 달러 시대를 넘기면서 국민 개개인이 크게 잘 살게 된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교통이나 통신 시스템, 사회적 법률 체제 같은 사회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시스템이 윤리 시스템 위에 세워지면서 생명 연장이 현실로 나타나는 거지요.


(윤여준) 요즘 기업하는 사람들이 감성 경영이라는 걸 굉장히 강조합니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경영을 하겠다는 건데요, 그러면서 상품도 성능 보다는 디자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이성을 지배한다는 좌뇌에서 감성을 다스리는 우뇌로, 뭐 이런 얘기들도 나오는데 이렇게 감성 경영을 중시하는 현상도 뇌 과학으로 설명이 되나요?

(박문호) 뇌 과학에는 감성이라는 말과 느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성은 화를 낸다거나,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것, 즐거움을 느끼는 것 등의 기본 감정과 관련된 것을 말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기본 감정들이 전두엽에 올라와 조절할 수 있도록 통합되는 것이 바로 느낌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차를 마실 때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하는데, 우려낼 때 다섯 가지 구성 요소들이 합해져 새로운 맛이 나는 것, 이것이 바로 느낌의 세계인 거지요. 디자인은 이런 느낌의 세계이고 따라서 뇌 자원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상품을 선택할 때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보게 되는 거지요.

(윤여준) 그렇다면 감성 경영을 느낌 경영이라고 바꿔야겠네요? 감성과 느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박문호) 감성은 좀 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말합니다. 감성의 뿌리는 공포감, 분노, 쾌감 이런 것들이죠. 감성은 전염성이 강하고 건드리면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일한 감성은 좀 위험합니다. 어느 순간 한 곳으로 확 쏠리면서 분출되는데 그 때 방향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Nature


이런 방향성은 개별 감성을 모아 총괄하는 전두엽에서 알려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왜 아름다운지는 몰라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실제로 감성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화가 났다든지, 기분이 좋다든지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느낌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 밑에 있는 개별 감정들이 올라와서 섞여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낌을 표현할 때 흔히 "~왠지" 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느낌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몸이 총체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윤여준) 감성이나 느낌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도 많이 달라지겠군요?

(박문호) 그럼요. 실제로 사람에게는 절차 기억, 신념 기억, 학습 기억 등 세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유아 때는 절차 기억이 중요하죠. 자전거를 배운다거나 하는 것이 절차 기억의 대표적인 예인데요, 한 번 배우면 평생 남아 잊혀지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신념 기억은 주로 공포 반응, 그리고 분노와 연계되어 형성되는 기억을 말합니다. 종교적 체험이나 정치적 도그마처럼 젊었을 때 한 번 각인된 그런 기억인데 한 번 기억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지요.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기까지 하는 그런 기억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습 기억은 학교 시스템과 독서에서 배우는 기억입니다. 학습 기억은 신념 기억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기억인데요, 공부를 하지 않으면 멈춰 버립니다. 예컨대 대학생의 기억은 절차 기억 10%, 신념 기억 30%, 나머지 60%가 학습 기억이라고 하면 학습을 거의 하지 않는 35세가 넘어가면 학습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신념 기억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면 사람이 고지식해진다고 하는 거죠. 공부를 하지 않으니 예전 기억대로만 생각하고 살거든요.

(윤여준) 그럼 현재 정권을 차지하고 있는 386 세대는 신념 기억만 발달하고 학습 기억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이군요? (웃음)


(윤여준) 최근 한나라당 경선 양상을 보면 후보 간에 결사적으로 싸우잖습니까. 어느 한 쪽이 도전하고 한쪽이 응전하는 거라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양 쪽이 서로 싸우는 걸로 보이거든요. 왜 그렇게 싸운다고 보세요? 물론 정치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인데... 인간이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문호) 정치분야의 고질적인 특성일 수 있고요,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확실히 각인 시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역할을 하죠. 감성을 자극하는 정보를 제공하면 그건 뇌에서 잘 안 지워 지거든요.

(윤여준) 느낌의 상태로 가기 전에 감성의 상태를 자극해서 그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낸다는 얘기군요.

(박문호)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선 주자에 대해 이런 저런 것들을 검증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무엇보다도 대선 주자가 학습 능력이 있느냐를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습 능력이 있다는 말은 언제든지 자기의 신념 기억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물론 위험한 상황에서 강력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신념 기억이고 그래서 신념 기억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외부 환경은 강력한 드라이브 대신 섬세한 조율을 요구하는 세상이거든요. 시대는 항상 변하니까, 거기에 적합한 기억은 학습 기억이지요.

(윤여준) 말씀을 들어 보니 감성 정치라는 게 좋은 게 아니군요. 그렇다고 해도 느낌 정치라는 말도 좀 이상한데, 뭔가 적당한 말이 없을까요?

(박문호) 사실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벌써 나와 있습니다. '창의'가 바로 그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안토니오 다마지오라는 사람의 이론에 따르면 인류 사회에서 느낌이 진화되어 온 근본적인 힘은 불확실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뇌에 정해진 신호만 들어오면 느낌이 필요 없습니다. 반사작용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모든 신호가 일률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다마지오 표현에 따르면 비범주화 혹은 비표준화된 신호가 들어올 때 동물들은 혼란스러워 합니다. 융통성이 없다는 거지요.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애매하고 불확실한 입력이 들어 왔을 때, 즉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들어 왔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예술이나 문화활동입니다. 감성의 수준으로부터 느낌의 세계로 올려준다는 거지요. 그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상품에서는 바로 디자인이죠. 디자인은 앞으로 국력을 기울여서 키워야 합니다.

(윤여준) 그런데 정치인들을 보면 창의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훨씬 많이 듭니다. 거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문호) 우리 뇌는 뇌간을 중심으로 한 뇌의 주요 부분과 이를 덮고 있는 피질로 구성되는데 이 두 부분은 기능적으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핵심인 뇌간은 없으면 안되지만 피질은 없어도 살 수 있거든요. 무뇌아는 피질이 없는 채로 태어난 아이를 말합니다. 그런데 피질의 역할 중 하나는 뇌간 쪽에서 오는 충격,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뇌간에서 올라오는 것들은 주로 행동력을 동반하는 것들인데 이 부분을 건드리면 사람들은 감정에 못 이겨 순간적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거죠.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이 그런 걸 교묘하게 이용한 셈이지요.


(윤여준) 예를 들어 포퓰리즘이라든지 정치적 선동 같은 것들이 지금 말씀하신 그런 걸 이용하는 것이군요? 국민들이 정치가의 정치 선동에 넘어 가지 않으려면 이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하겠는데요. (웃음)

(박문호) 흔히 피질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사적이나 무의식적으로 한 순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피질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있겠지만, 나중에 다시 피질에서 냉정하게 평가를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보통 사람은 자기 내면의 윤리 기준을 벗어났을 때 내부 시스템에서 교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함부로 못하는 거지요. 뭔가 자기가 나서서 주장을 해야 할 때도 예전에 했던 행동에 비춰서 섬찟해지는 거죠.

(윤여준) 그런 게 양심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아 보입니다. 이런 것도 결국 뇌에 결함이 있어서인가요?

(박문호)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경우가 있습니다. 느낌의 필드가 고요하지 않거나 색깔이 이상하면 잘못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일반적으로 전두엽 정신병의 가장 큰 특징은 무관심해지는 겁니다. 사회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지고 본인의 삶에도 무관심하고. 그러면서 막가파가 나오는 거죠. 예를 들어 흉악범들은 전두엽이 완전히 다른 색깔(사회적 정서의 부조화)로 물들어 있는 경우죠.

(윤여준) 최근 사회가 어지러워지면서 테레사 수녀의 마음에다가 CEO의 머리를 결합하면 이상적인 사람이 나올 거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테레사 수녀의 마음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고 CEO는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희생과는 거리가 먼 마음일 텐데 이걸 합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요?

(박문호) 같은 차원에서는 불가능하죠. 아인슈타인은 문제가 생긴 평면에서는 문제의 해답이 없다고 했는데 CEO와 테레사 수녀의 마음을 같은 평면에 놓고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CEO의 머리와 테레사 수녀의 마음을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융합시켜야 하는데 아직 그 차원은 개발되지 않았죠.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인류 자체가 진화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는 책을 묵독(소리내지 않고 읽는 것)하고 있는데, 사실 인류가 책을 묵독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중세 시대만 해도 책을 많이 읽은 수도사 정도가 묵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민족도 예전에는 다 소리 내어 읽었잖아요.


마라톤도 마찬가집니다. 1970년대만 해도 보통 사람이 마라톤을 하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특수하게 훈련 받은 사람만이 마라톤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마라톤 풀코스를 뛴 사람이 아마 10만 명이 된다잖아요. 이 얘기는 인류 전체에 강력한 요구사항이 발생하면 새로운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사회적 요구가 굉장히 강해진다면 테레사 수녀의 마음과 CEO의 마음이 합쳐질 수 있습니다.

(윤여준) 시대가 원한다면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기왕 얘기 나온 김에 뇌 과학자 입장에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박문호) 지도자는 모든 사람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같은 평면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같은 평면에서는 해결할 수 없지요. 전혀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전 국민이 새로운 차원을 바라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게 비전이고 리더십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런 다른 차원을 국민에게 얘기하는 사람이 아직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배라고 했을 때 엄청나게 많은 내부 구성 요소들이 있죠. 이 내부 구성요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하게 해야 하는데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알 방법이 없죠. 지도자는 배 바깥에서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국외자가 되어 대한민국이란 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줘야 하는 거죠.

사실은 이것이 소위 말하는 비전입니다. 비전은 생물학적으로는 간단합니다. 나아갈 방향을 예측해 주는 것이 비전이지요. 대략 3억 5천만년 동안 발달해 온 척추동물의 예를 들어 보죠. 척추라는 건 방향이 있습니다. 앞과 뒤가 있다는 거지요. 척추동물의 특징은 감각 기관이 전부 앞면에 나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뒤 쪽은 전부 배출 기관입니다. 에너지를 흡수하고 난 나머지를 뒤로 빼내는 겁니다. 척추 자체가 척추동물이 움직여야 할 방향을 의미하는데, 5천만 전체가 나가야 할 방향이 바깥쪽에서 보면 동일해야 합니다. 이게 비전이지요.

(윤여준) 어렵고도 쉬운 얘기네요. 아까 말씀하신 그런 비전을 보여주는 게 리더가 할 일인데, 그런 역량을 갖춘 리더가 있다 해도 국민이 그 사람을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우리가 좋은 리더를 뽑으려면 좋은 리더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박문호) 윤여준의 정치카페와 같은 노력들이 모이면 앞으로는 그렇게 되겠지요. (웃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음 대통령의 능력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방향성을 던져야 하는데 아직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어요. 물론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몇 가지 바라는 게 있습니다. 우선 비전을 제시할 때는 슬로건을 하나로 모아달라는 겁니다. 박정희 정권 때 구호는 하나였습니다. 잘 살아보자. 민주화 세력의 구호도 독재 타도라는 단 하나였어요.

구호 속에는 강력한 운동력과 감성이 맞물려 있습니다. 그리고 뇌의 반은 감각, 반은 운동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구호를 만들 때는 운동 성향과 감각 성향이 함축된 구호를 만들어야 합니다.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들었을 때 움직이게 하잖아요. 우리가 흔히 어떤 얘기를 듣고 나서 '그래서 어쨌는데?' 이런 얘기를 하잖습니까? 이건 운동에 대한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구호라는 것은 그 속에 감각을 받아들여서 운동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것이 같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차원으로 가기 위해 어떤 비전을 만든다고 하면 거기에는 운동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된 구호, 통일된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구호 속에 운동, 감각 성향이 다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요.

(윤여준) 구체적으로 제시할 만한 어떤 방법론이 있으신가요?

(박문호) 뇌 과학에서는 복합계와 복잡계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복합계와 복잡계는 모두 동일한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합계는 다양한 구성 요소가 동일한 방향을 지향하는데 반해 복잡계는 구성 요소가 저마다 다른 방향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전체의 방향 값은 제로가 되는, 쉽게 말해 나갈 방향이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안에 있는 구성 요소들은 방향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국민들은 자기가 속해 있는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면 되고 지도자가 국민들이 보는 시선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시선의 방향이 여럿일 수는 없지요. '저거다'라고 구체적으로 지정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비행기를 탔다고 합시다. 비행기 안에 있을 때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바깥쪽에서 본다고 합시다. 영하 사십도 태평양 상공을 분명한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거지요. 따라서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거죠. 안에서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결국 목적은 이뤄집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공간상 시간상으로 안에 있지 말고 바깥으로 나와서 방향성을 정해줘야 합니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이 비행기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정해줘야 합니다. 말하자면 복합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여준)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뽑아야겠습니다. 재미있고 좋은 말씀 참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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