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적응 집단인가, 新인류의 출현인가 [교수신문 공동] 오타쿠를 말한다 2009년 03월 16일(월)
|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오타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주변에 무심한 눈빛, 산발 머리, 아무렇게나 입은 옷, 끊임없이 뭔가를 만지작거리는 손. 그리고 어딘가 부족한 사회부적응자가 연상되진 않는가. 댁이나 당신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오타쿠는 단순한 취미 애호가 수준을 넘어서 특정 분야에 대한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을 지칭한다.
오타쿠에 대한 일반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취미를 취미 수준이 아니라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양이 이상해보이고, 어딘가 변태적이며, 기이하며, 반사회적인 분위기도 풍기기 때문이다. 하위문화의 변방을 차지하는 집단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세간에서는 오타쿠를 이른바 히키코모리나 니트족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잦다. 곧 집에 틀어박혀 일체의 사회적 접촉을 거부하는 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오타쿠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과연 이 많은 사람, 이토록 확산되는 문화를 사회부적응자들의 일탈적 양상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혹 어떤 근본적인 변화의 징후는 아닐까. 자신들의 작은 이야기에만 관심 일본의 문화평론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를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집단이자,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낸다. 이들은 국가, 거대 담론, 이데올로기, 근대적 가치 체계, 기존의 사회구조, 큰 이야기들에 강박되지 않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곧 특정 아바타의 삐죽 나온 머리카락에 열광하고, 성적 쾌락조차 가상에서의 그것으로 대체하며, 자신들만의 작은 이야기들을 데이터의 바다에서 구성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타자와 관계 맺기 자체에 생소한 동물적 욕망을 지닌 즉자적 존재들로 변모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든 이들은 오직 컴퓨터 화면에만 신경 자극이 되게끔 어릴 적부터 훈련이 돼 있다는 말이다. 컴퓨터 게임에 미치고, 코스프레에 열중하며, 멍한 눈빛으로 가상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 이들. 에티엔느 바랄이 말한 것처럼 ‘가상적인 것의 아이들’인 이들은 모든 큰 이야기들이 몰락하고 있는 시대가 낳은 신인류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오타쿠는 모던이 저무는 시대의 황혼녘에 여기저기서 출몰하고 있는 좀비와도 같은 존재가 된다. 오타쿠와 신인류의 출현이라는 테마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진 않은 상태다. 일본을 중심으로 몇몇 나라의 문화평론가들이 관심을 갖는 수준이다. 사회학 등 일부에서 접근하는 태도도 ‘실태조사’와 ‘현상기술’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 |
'진화의 새로운 백터-----진과 밈 > 우주천문·지구·진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인류의 시작은 지구의 역사 45억년 그리고 생명의 탄생 35억년의 역사중에 겨우 13만년전에 시작 (0) | 2009.03.16 |
---|---|
“베이징원인 더 오래전에 살았다” (0) | 2009.03.16 |
150만 년 전에도 두 발로 걸었다 (0) | 2009.03.12 |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심해 물고기 관통형 눈은 빛을 모으는데 유리해 (0) | 2009.03.12 |
‘극대 가뭄주기’ 한반도로 접근 중... -이집트의 사막이 바다였다는 사실 (0) | 2009.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