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사회부적응자 돕는다 콜로라도 감옥 인기강좌, 동물행동학 2009년 03월 26일(목)

미 콜로라도 주 볼더 카운티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중 하나는 동물 행동과 자연환경 보호 강좌이다. 이 강좌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죄수들은 강좌를 듣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할 정도다. 그래야 강좌를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이 대학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벌어지다니, 과연 어떤 강좌이기에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힌 죄수들 사이에서 이다지도 인기가 높은 걸까?

제인 구달의 ‘뿌리와 새싹’의 일환

이 강좌는 한 대학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다. 그 주인공은 미 콜로라도 대학의 생물학과 명예교수인 마크 베코프 박사이다.

베코프 박사는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동물행동학과 관련한 대중서적을 다수 펴냈는데, 『동물의 감정 - 동물의 마음과 생각 엿보기』, 『동물에게 귀를 기울이기』 등이 여러 편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번역됐을 정도로 잘 나가는 저술가이다.

▲ 교도소 죄수들을 대상으로 동물행동과 자연보호에 대해 가르치는 마크 베코프(오른쪽) 교수. 그는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 구달(왼쪽) 박사와 함께 다양한 대중 활동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베코프 박사는 다양한 대중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파트너가 우리에게 침팬지의 어머니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제인 구달 박사라는 것이다.

2000년, 베코프 박사는 구달 박사와 함께 ‘동물의 윤리적 대우/책임있는 동물행동연구를 위한 시민들’(Ethical Treatment of Animals/Citizens for Responsible Animal Behavior Studies)이라는 동물행동학자 단체를 공동 설립했다. 또한 베코프 박사는 구달 박사가 세운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뿌리와 새싹’은 젊은이들이 앞장서 자연과 생명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구달 박사가 1991년부터 시작한 범세계적 환경 운동이다. 베코프 박사가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동물행동과 자연보호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뿌리와 새싹’이 벌이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런 활동 덕분에 지난 2005년에는 어린이와 노인, 죄수들을 위해 일한 공로로 뱅크원(Bank one) 미국 은행이 우수한 사회봉사활동을 한 인물에게 주는 상(Bank one Faculty Community Service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뚤어진 동물관 바로잡기

그렇다면 교도소에서 동물행동학 강좌의 인기는 베코프 박사의 이런 유명세 덕분일까? 최근 베코프 박사는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과학이 철장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베코프 박사는 자신의 강좌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죄수들은 사람보다 동물과 연결될 때 마음이 편하다는 거였다. 동물들은 그들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수감자 중 상당수가 개나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있었고, 이들 애완동물은 그들에게 최고의 친구였었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사람에게 느끼지 못하는 신뢰와 동정을 동물들에게서 느낀다. 그러니 동물에 대한 강좌가 인기가 높다는 게 베코프 박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죄수들이 동물들과 이렇게 친하다곤 하지만 그들은 동물행동에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죄수들은 종종 ‘시뻘건 이빨과 발톱을 한 자연’(nature red in tooth and claw)이라는 영국시인 앨프레드 테니슨 경의 시구처럼 무자비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들 상당수는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된 건 애초 자신들의 ‘동물적인 행동’ 탓이라고 한탄했다.

이런 그들에게 베코프 박사는 이렇게 가르쳤다. 동물의 세계가 경쟁적이고 공격적이긴 하지만 또한 서로 협력하고 공감해주고, 동료애를 느끼며 상부상조하는 것도 많다고 말이다. 베코프 박사는 이러한 동물의 행동이 ‘야생의 정의’의 사례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죄수들은 동물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다.

출소 후 학교, 사회단체로 진출

수강생들의 상당수는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어한다. 그런 그들에게 동물행동학 강좌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베코프 박사는 늑대와 같이 그룹을 지어 사는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을 예로 드는데, 이는 개별 인간이 우정을 맺고 유지하는 게 자신에게도 좋고 그룹에도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 철장에 갇힌 사람이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데 동물행동학이 도움을 준다고 마크 베코프 교수는 말한다. 
베코프 박사는 자신의 과학수업이 수강생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확신한다. 강좌를 수상한 죄수들 가운데에는 출소 후 다시 학교로 들어간 이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거나 자연보호 기관에 시간과 돈을 들이며 봉사를 하러 떠나기도 했다. 또 어느 한 수강생은 자연에 관한 저술과 관련해 석사과정에 진학하기도 했다.

베코프 박사는 인문학뿐 아니라 과학 교육이 죄수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신뢰와 협력, 희망과 공동체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과학이란 학문을 접해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단지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주기만 해도 과학이 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고 얘기한다.

한편 베코프 박사는 이 강좌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학생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자신을 더 나은 교사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베코프 박사의 사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는 데 과학이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뿌리와 새싹’이란?

▲ 제인 구달이 세운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의 로고. 
 “뿌리는 땅 속 어디든 기어가 생명이 자랄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을 만듭니다. ‘새싹’은 매우 연약한 듯 하지만 빛에 닿기 위해 단단한 벽돌담을 뚫고 올라오지요. 상상해보세요. 벽돌담이 우리 행성 지구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들이라고 말이에요. 뿌리와 새싹인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은 이 벽돌을 깨고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제인 구달 박사 -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던 구달 박사는 그곳의 어린아이들을 보고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달 박사는 우리 사회와 동물, 그리고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뿌리와 새싹’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18개 고등학교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98개국에서 8천여 개의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수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구달 박사는 우리나라에는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이 민족사관고, 이우학교, 서울외국인학교 등 아직 몇군데 밖에 없다는 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9.03.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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