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교수신문 공동] 또 다른 생물학적 문제에 직면한 현대 인류 2009년 03월 30일(월)

<사이언스타임즈>는 지난해에 이어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제2탄을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학술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www.kyosu.net)과의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2009년에는 문명의 전환과 인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의 심화,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결속 강화는 새로운 문명과 인간이 출현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다. ‘기후변화’부터 ‘죽음’까지 13가지 이슈에 대해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소통하며 논전을 벌였던 2008년 기획시리즈는 현재 『지식의 이중주』(2008, 해나무)로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 [편집자 註]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신체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대 생활 습관의 변화가 인간의 신체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지난 6백만 년의 인류 진화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古인류 종의 탄생과 멸종은 기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인간의 신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기후의 변화는 아니지만 인류 진화사에서 나타난 중요한 환경의 변화라면 농경의 시작을 들 수 있는데요, 이 역시 인간의 신체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부터 지구 여러 곳에서 농경이 시작됐고 사람들은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 현대 인류는 패스트푸드와 간식거리를 수시로 먹게 되면서 지방과 염분, 설탕의 섭취가 지나치게 늘었다. (사진 출처=www.fatlossfree.com) 

이때부터 기존에 수렵 채집을 하면서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비로소 한 곳에 모여 살게 된 것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농사를 짓고 도시와 국가, 나아가 문명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만물의 영장'의 지위를 획득하게 됐습니다.

함께 모여 살면서 골격이 가늘어지기도

하지만 바로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들을 괴롭히는 각종 질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농경의 시작으로 인해 주식이 쌀, 밀가루, 옥수수와 같은 몇 가지 부드러운 곡물로 한정되면서 충치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또한 예전과 달리 딱딱한 것을 씹을 일이 별로 없게 되면서부터 턱뼈의 크기가 줄어들었고 그 결과 사랑니가 자랄 공간이 부족해지게 됐지요. 게다가 소, 돼지, 닭과 같은 동물을 집에서 키우기 시작하면서 동물들로부터 전염병을 옮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 온 결핵, 홍역, 백일해입니다.

몇 마리씩 모여 살던 동물을 수십 마리 혹은 수백 마리씩 모아 놓고 기르게 되면 동물의 뼈대가 점점 얇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신기하게도 사람도 큰 무리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체적인 골격이 이전에 비해 점차 가늘어지는 쪽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인간이 생물학적 진화의 방향에 개입하게 된 좋은 예는 피부색의 진화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외선이 피부로 침투해 세포를 죽임으로써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적도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은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피부 자체가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이에 비해 해가 나는 시간이 짧은 극지방 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햇빛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자외선의 흡수가 충분치 않을 경우 비타민 D의 합성이 되지 않아 중추신경장애나 발육 부진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들의 피부색은 하얀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신체 진화를 주도하는 과학 기술

그런데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호주 대륙은 해가 뜨겁게 내리쬐기 때문에 그곳에서 수만 년 동안 살아온 호주 원주민들은 피부색이 매우 까맣습니다.

하지만 호주로 이주해 온 하얀 피부색의 영국인들은 피부가 자외선을 막아주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매년 수십 만 명이 피부암에 걸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반면 영국으로 이주한 흑인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피부가 자외선을 지나치게 차단해버림으로써 비타민 D 합성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인간은 자외선 차단제와 비타민제를 발명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피부색을 가졌는지는 이제 더 이상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형질이 됐다는 것입니다.

▲ 진주현 펜실베니아 주립대 박사과정 
하지만 인류는 또 다른 생물학적 문제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집에 앉아서 전화 한 통으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운동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패스트푸드와 달콤한 간식거리들을 수시로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지방과 염분 그리고 설탕의 섭취가 지나치게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오십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는 아직까지 이러한 생활상의 변화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뇨병 인구는 최근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에 달한다고 하며 앞으로 20년 안에 지금의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신체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대 생활 습관의 변화가 인간의 신체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신체가 진화해 나가든지 간에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인간은 또 다시 기술의 힘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지 않을까요.

필자는 스탠포드대 인류학과에서 생물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 제인 구달과 루이스 리키』등의 저서가 있다.

진주현 펜실베니아 주립대 박사과정·인류학

저작권자 2009.03.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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