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5)
마리 큐리
▲ 마리 큐리  ⓒ
1. All my life through, the new sights of nature made me rejoice like a child.
나의 전 생애 동안(내내),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어린이처럼 기뻤다.

2. Nothing in life is to be feared. It is only to be understood.
인생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해의 대상일 뿐이다.

3. I am one of those who think like Nobel. Humanity will draw more good than evil from new discoveries.
나는 노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악(惡)보다는 선(善)을 더 얻을 수 있다.
-마리 큐리(1867-1934):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

예쁜 이야기들이죠. 마리 큐리(Marie Curie)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처럼 말입니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명언을 3개 소개해 봤습니다. 큐리라고도 하고 퀴리라고도 합니다. 꼭 과학자의 꿈을 꾸지 않는다 해도 여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학자죠. 조국(motherland)을 사랑한 애국자(patriot)로, 아름다운 여성으로,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로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결혼하기 전 처녀적의 이름은 마리 스클로도브스키(Marie Sklodowska)입니다. 그러나 보통 큐리 부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 영어에서도 보통 퀴리 부인(Madame Curie)으로 통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인데 제정 러시아의 지배로 많은 고생을 합니다. 남편은 프랑스 사람으로 이름은 피에르 큐리(Pierre Curie)입니다.

프랑스의 최고 명문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조금 가면 에펠탑이 있고 ‘노틀담의 꼽추’의 노틀담 성당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가면 ‘산테온 신전’이 있습니다. 국가 유공자 국립묘소입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데카르트, 루쏘, 앙드레 말로가 안장돼 있습니다. 64명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마리 큐리가 있습니다.

마리 큐리는 ‘원자와 핵’의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원자폭탄의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과학은 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하면서 그게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리 큐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죠.

마리 큐리는 1903년 라듐을 발견해서 남편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 폴라늄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폴라늄은 조국인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발견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원자폭탄의 열쇠와 연결됩니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역사에는 항상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마리 큐리는 자기가 발견한 방사능(radioactivity)에 오염돼 죽었다고 합니다. 정말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리 큐리가 사전에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출돼(exposed) 죽었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통합니다.

마리 큐리가 라듐으로 노벨상을 받고 나서 이렇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라듐이 죄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때 지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과연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많이 아는 쪽이 유리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판단이 안 된다. 과학이 죄 많은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파괴(destroy)의 수단이 된다면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 대단한 학자죠?

문법 및 문장

문법도 문장도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네요. 마리 큐리의 예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네요. 명언은 항상 짧고 간결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단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철학이 숨어 있고 문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詩)도 있습니다.

남편은 1906년 교통사고(traffic accident)로 숨졌습니다. 사실은 마차사고로 죽었지요. 마리 큐리는 방사선에 너무 많이 노출돼 백혈병(blood cancer)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1934년 알프스의 한 요양원에서 딸 이렌느 졸리오 큐리(Irene Joliot-Curie)가 그의 남편과 함께 인공 방사능을 발명했다는 쾌보를 받으면서 마지막 생애를 마칩니다. 이듬해인 1935년 이렌느는 모친과 꼭 같이 남편과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엄마와 꼭 같이 방사능 과다 노출에 따른 백혈병으로 일찍 사망합니다.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마리 큐리는 ‘방사능의 과학(the science of radioactivity)’을 우리에게 알려준 대단한 과학자입니다. 그것이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한 것인지, 아니면 ‘과학은 인류에게 파멸(destruction, collapse)을 줄 수도 있다’라는 경고(warning)를 주는 것인지는 냉철한 머리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마리 큐리에 대해 쓴 글

아인슈타인 박사와 마리 큐리와 얽힌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당시 친구며 머리 좋기로 유명한 형법학 교수 하인리히 창거(Heinrich Zangger) 박사에게 보낸 편지. “퀴리 부인이 권력을 갈망하거나 탐욕스럽다고 믿지는 않소. 정직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duty and responsibility)을 감당하고도 남을 사람이오. 그녀는 번뜩이는 지성의 소유자요. 그러나 그러한 열정적인(passionate, ardent) 성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attractive, fascinating) 여성은 아니오.”

아인슈타인 박사가 둘째 부인 엘자에게 보낸 편지. “퀴리 부인은 매우 똑똑하지만 청어(herring)처럼 차갑소. 그녀는 기쁨이나 슬픔 따위와 같은 감정들은 거의 없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대고 욕을 실컷 퍼붓는 것이요. 그런데 딸이 하나 있는데 이 딸은 훨씬 지독하다오. 마치 대구(cod, codfish) 같소. 하지만 딸 역시 매우 총명하오.

마리 큐리의 추도식에서 아인슈타인 박사. “그녀의 정신력, 그녀의 순수한 의도, 자신에 대한 엄격함, 객관성, 공정한 판단력. 이것은 모두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 한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이 구비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퀴리 부인은 일단 어떤 방법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잘 음미하면서 읽길 바랍니다.

과학은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질병(disease)에서, 기근(hunger)으로부터 그리고 가난(poverty)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의무도 있습니다. 그 의무는 뭘까요? 자연을 사랑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이제 봄이 됐습니다. 4월이 되면 공원이나 뒷산으로 가서 자기 이름으로 나무도 심어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가장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나무고 자연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은 배반하지만 자연은 배반하지 않는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나무하고 친하면 산소도 많이 공급 받을 수 있고 숨이 상쾌하지 않나요? 산은 어디든지 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북이면 북한산도 도봉산도 갈 수 있습니다. 대신 쓰레기(garbage)는 꼭 갖고 와야 합니다.

마리 큐리는 위대한 과학자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 없이 위대한 과학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또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바로 인간성(humanity)입니다. 큐리 부인에게 배워야 할 것은 과학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인간성과 관련해서 큐리 부인은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You can not hope to build better world without improving the individuals. To that end, each of us must work for our own improvement and, at the same time share general responsibility for all humanity, our particular duty being to aid those to whom we think we can be most useful.(개인(의 처지)을 향상시키지 않고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는 우선 자신의 향상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야 하는 특별한 의무, 즉 모든 인간성을 위한 일반적인 책임감을 공유해야 한다.) 훌륭한 이야기죠?

그래서 큐리 부인이 지금 옆에 있다면 우리들에게 “과학, 기술도 다 좋지만 공해는 만들지 마시오. 좀 나무도 심으시오. 숨을 쉴 수 없으면 노벨상을 받은 라듐과 폴라늄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그녀가 주장하는 인간성은 자연과 환경이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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