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0)
갈릴레오 갈릴레이
▲ 갈릴레오  ⓒ
I do not feel obliged to believe that the same God who has endowed us with sense, reason, and intellect has intended us to forgo their use.

나는 우리에게 감성, 이성, 그리고 지성을 부여한 신(神)이 그 혜택을 무시하라고 했다는 것을 감사하다고 믿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 이탈리아 천문학자, 수학자-

번역이 깔끔하지 못한 것 같네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미움을 산 것이죠. 그래서 종교재판(The Inquisition)에 회부돼 굴복하고, 할 수 없이 자신의 이론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혹독한 고문과 사형에까지 이를 수 있는 형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감옥 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재판장을 나오면서 한 것인지 아니면 감옥에서 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재판을 받자마자 구속이 됐기 때문에 아마 감옥에서 한 말이라는 생각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풍요한 집안에서 태어난 갈릴레오는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과학 이론 때문에 고초를 겪은 대표적인 과학자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갈릴레오의 짤막한 명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우주를 지배하는 신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자연의 질서라는 무형의 법칙이든 아니면 유형의 인격체든 말입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명언 속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을 져버리고 살라는 이야기는 안 했을 거라는 거죠.

우리는 때로 ‘갈릴레오가 왜 교회의 종교재판에 굴복했는가? 자신의 학문과 진실을 위해서 당당하게 나서고 목숨을 버릴 줄 아는 학자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릴레오를 다시 한번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갈릴레오는 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살기 위해서 비겁하게 타협했다’라는 주장은 옳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교회가 로마 카톨릭인데 교회만 욕하는 일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과학과 이론이 태동하는 데는 기존의 문화와 전통과 투쟁하고 또 타협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과학과 이론은 진보고 문화와 전통은 보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수를 바꾸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흔히 쓰는 개혁, 또는 이노베이션이 역사라는 차원에서 볼 때 그저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갈릴레오는 교회의 오만과 권력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의 과정에서 희생된 과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갈릴레오는 1564년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피사에서 태어납니다.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그가 의사가 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피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지만 수학에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1581년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했고 피사 대학에서 수학 강사로 일하다가 베네치아 공화국(북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 교수로 진출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관성의 법칙(law of motion)을 발견합니다.

진자의 등시성은 다 아시죠? 갈릴레오가 19세가 되던 1583년 피사 사원에 매달려 있는 램프를 보고 발견한 이론입니다. 흔들리는 정도에 관계없이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정한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맥박으로 왕복시간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한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폭에 관계없이 일정하고 진자의 길이에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성의 법칙도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1609년 갈릴레오는 네델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량해 배율을 높여 천체 관측에 사용합니다. 이 관측을 통해 달의 표면에는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금성이 달처럼 차고 이지러진다는 것, 태양에 흑점이 있다는 것, 희미한 은하수가 실은 많은 별의 집단이란 것, 목성 주위에 네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학문적 친구인 독일의 케플러에게 보냅니다. 케플러는 1571년에 태어났으니까 갈릴레오보다 7살 정도 어립니다.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천문학에 대한 진실은 서로 공유했다고 생각됩니다. 케플러는 갈릴레오의 목성 주위에 돌고 있는 위성 이야기를 듣고 ‘satellites’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1616년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교황청으로부터 금지 당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잘 알고 있고 그에게 호의적인 오르바누스 8세가 교황으로 즉위합니다. 그러자 피렌체에서 일하고 있던 갈릴레오는 새로운 학설을 담은 책을 내기로 결심하고 직접 로마로 갑니다.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가설로만 서술한다면 좋다는 허가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저술을 하지만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됩니다. 왜냐하면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입니다. 당시 교황청은 천동설은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지동설은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천동설은 신의 논리로 허가가 됐지만 지동설은 안됐습니다. 이때 갈릴레오는 이미 70세가 넘은 나이였습니다.

그나마 교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신 금고형을 선언 받고 나머지 생애는 엄중한 감시 하에 피렌체 교외에 있는 자택에서 고독한 여생을 보냅니다. 쓸쓸한 말년인 1642년, ‘진공의 연구’로 유명한 제자 토리첼리(Torricelli Evangelista)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납니다. 바로 이 해에 그 유명한 뉴턴이 태어납니다. 교황청은 공식적인 장례나 묘비 세우는 것을 금지합니다.

로마교황청은 360여 년이 지난 1992년 10월 31일 특별재심과학위원회에서 당시 종교재판을 다시 검토한 결과,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갈릴레오의 완전복귀를 선언합니다. 15년 전의 일입니다. 과학시대에 접어든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100년이 훨씬 넘습니다. 그러나 과오를 인정한 것은 불과 20년을 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와 사상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종교를 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형태로든 간에 종교가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교와 과학’에 대한 접근 방법입니다. 갈릴레오가 과학이라는 학문을 부정해야만 했고 종교재판장을 나오면서 언급한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도그마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여러 동물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비과학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단어 숙어

• be obliged to : ~에 감사하다. I am very much obliged to you for your kindness(당신의 친절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Could you oblige me with 5,000 won?(5천원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Will you oblige me by opening the window?(창문을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 endow : ~에게(with)~을 부여하다, 주다. Nature had endowed her with wit and intelligence(하늘은 그녀에게 기지와 지성을 내리었다). 수동태로 His daughters are all endowed with remarkable beauty and grace(그의 딸들은 모두 대단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갖고 태어났다). 명사로 endowment(기부, 기증, 그 액수)

• forgo : ~을 그만두다, 삼가다(abstain from~). ~을 버리다(give up). 버리다, 무시하다(neglect). ~을 떠나다(quit)

함께 해석하기

우리에게 감성, 이성, 그리고 지성 모두를 부여한 신이 그 감성, 이성, 지성을 무시하거나, 없이 지내라고 하는 신과는 같지도 않고, 또 만약 그렇다면 그 신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었다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신은 결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이 준 능력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 뜻인 것 같네요.

Doubt is the father of invention(의심은 발명의 아버지다). You can not teach a man anything; you can only help him find it within himself(사람에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다. 다만 그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I have never met a man so ignorant that I couldn’t learn something from him(배울 것이란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무지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와 같은 말도 남겼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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