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17)
아르키메데스
▲ 아르키메데스.  ⓒ
Give me a lever long enough, and prop strong. I can single-handed move the world.

충분히 긴 지렛대와 단단한 지렛목을 주시오. 그러면 한 손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소.
-아르키메데스(BC287?~BC212) : 그리스 수학자, 물리학자-

많이 들은 이야기죠? 유레카의 주인공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는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습니다. 오늘날 도르래나 나선,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차를 들어올리는 본네트도 이러한 원리입니다. 물론 그가 처음으로 지렛대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또 배가 왜 뜨는지에 대한 부력의 원리(the principle of buoyant force)도 발견했습니다. 둘 다 중요한 이론이지만 부력의 발견에 무게를 더 두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The Archimedes’ Principle) 하면 부력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하늘을 나는 기구(flying machines)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기역학적인(aerodynamic) 기구입니다. 이른바 비행기나 헬리콥터는 뜨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기구의 날개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양력(upward force, lift)에 의해 기구가 뜨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기체정역학적인(aerostatic, 氣體靜力學的) 기구입니다. 열기구나 애드벌룬 같은 것이죠. 이는 공기밀도(air density)보다 가벼운 기체를 사용해 공중에 뜨도록 하는 것이죠.

▲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로 유명하다.  ⓒ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는 후자의 경우와 비슷한 논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의 밀도보다 가벼우면 뜨고 무거우면 가라앉는다는 거죠. 나무와 종이는 뜨지요. 그러나 물을 너무 흠뻑 먹게 되면 가라앉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두 개의 원리 가운데 우선 부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죠.

유레카의 주인공 아르키메데스가 하루는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알몸으로 뛰쳐나와 거리를 달리면서 ‘Eureka! Eureka!’를 연방 외쳐댔습니다. 그리스어로 Eureka는 알았다, 또는 발견했다라는 뜻인 거 다 아시죠? 사람들은 나중에 이 말을 영어로 'I’ve got it.' 또는 'I’ve found it.'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발견의 기쁨으로 정말 알몸으로 거리를 달렸는지 아니면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우리의 아르키메데스가 정말 그렇게 했다고 믿어 봅시다. 대단한 발견에는 엄청난 기쁨과 흥분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한 흥분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그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죠.

어쨌든 이 일화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르키메데스의 학문에 대한 집착이(intensive works)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과학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꼭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커다란 업적(great achievements)을 이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열정(passion)이 있어야 합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발견한 것은 부력의 원리입니다. ‘The buoyant force on a submerged object is equal to the weight of the fluid that is displaced by the object.’ 정확한 해석은 ‘액체에 빠진 물체의 부력은 물체가 밀어낸 액체의 무게와 같다.’ 이는 액체 속에서 물체의 무게는 물체가 밀어낸 액체의 무게만큼 가벼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한 이야기입니다만 바다나 좀 깊은 강에서 잠수를 해보셨는지요? 밖에서는 들 수 없는 돌을 물 속에서는 쉽게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돌의 부피에 해당하는 물의 무게만큼 가벼워졌기 때문입니다. 물은 비중이 1이니까 돌의 부피가 5리터라면 물 속에서는 5kg이 더 가벼워지는 거죠.

조그만 돌멩이가 밀어낸 물의 부피는 작기 때문에 밀려난 물보다 무거워서 가라앉습니다. 이에 반해 커다란 배는 밀려난 물의 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쇠로 만들어도 뜰 수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이 부력의 법칙은 오늘날 유체역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왜 수천, 수만 톤의 철선(鐵船)이 뜰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아르키메데스 관련 삽화.  ⓒ
아르키메데스는 B.C.287년경 시실리섬 시라쿠사에서 태어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랫동안 유학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피디아스로 천문학자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과학에 대해 풍부한 소질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 도시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명이 가르쳐주듯이 알렉산더 대왕이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B.C. 331년경 이집트 원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 가운데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은 알렉산드리아 외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도시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입니다.

나일강 하구에 있으며 지중해와 접하고 있어 아름다운 미항(美港)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당시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등 세계 최고의 학문 요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문과 예술이 이곳을 통해 탄생됐고, 특히 자연과학연구가 활발했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유학은 곧 최고의 지성을 의미했습니다. 지금의 하버드나 스탠포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죠. 정연한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도읍으로 왕궁, 세라피스 신전, 파로스 섬의 등대가 있었습니다. 무세이온(Mouseion, 학문연구소)과 부속도서관, 천문대, 해부학 연구소, 동물원 등 도시 전체가 학문의 요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뿐만 아니라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를 비롯해 지리∙역사∙자연과학의 에라토스테네스, 지리학의 프톨레마이오스, 문헌학의 칼리마코스와 같은 유명한 대학자들을 배출하는 등 최고의 지성인 양성소나 다름없었죠.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파피루스로 된 책들만 70만 권 이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유럽의 학문과 예술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왔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헬레니즘 문화의 사상적 체계도 여기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더구나 알렉산드리아는 최대 무역항으로 세계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죠. 그러나 쿠테타를 일으켜 로마를 집권한 시저와 기독교,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무참히 파괴돼 버립니다.

유럽과 미국은 그들의 정신적 문화의 출발점을 그리스와 로마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의 학문과 문명은 더 대단했습니다. 그리스보다 앞섰고 그리스는 이집트에서 학문을 수입한 거죠. 알렉산더가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운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화려한 문명이나 진보된 과학에 대해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그 문명도 땅속에 묻힙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알렉산드리아를 세계제국의 중심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BC 31년 악티움 해전과 BC 30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멸망으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에 앞서 BC 47년 시저에 의해 도서관이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AD 391년 테오필러스 주교가 세라피스 신전에 세운 세라피움(Serapium) 도서관을 종교적인 이유로 파괴합니다. AD 645년 모슬렘의 정복자 오마르도 종교적인 이유로 자료 하나 건질 것 없도록 완전히 파괴해 버립니다. 이 도서관에는 그리스 문헌은 물론 지중해, 중동, 심지어 인도 등지의 모든 언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해 보전했다고 합니다.

▲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다.  ⓒ
아마 이 도서관이 지금까지 존재한다면 세계 불가사의로 알려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건축법의 비밀은 물론 특히 화려했던 이집트의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크), 페르시아 제국의 문명(이란), 심지어 인도문명까지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아르키메데스는 고향 사라쿠사로 돌아와 헤론 왕 밑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부력의 법칙과 지렛대의 원리 등이 이 때 만들어집니다. 유레카의 일화도 헤론 왕으로 인해 비롯됩니다.

하루는 왕이 갓 만든 금관을 구했는데 그게 순금이 아니라 은이 다소 섞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명해 그것을 감정하라고 했습니다. 생각에 골몰한 아르키메데스가 우연히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물 속에서는 자기 몸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을 문득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유레카라고 외치면서 뛰어 나와 집으로 달려간 것이죠

그는 집으로 달려와 그 금관과 같은 분량의 순금덩이를 물 속에서 달아본즉 순금덩이 쪽으로 기울어 금관이 위조품인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 위조 왕관에는 은이 섞여 있어 같은 무게의 순금보다도 부피가 크고 따라서 그만큼 부력도 커진다는 것이죠.

아르키메데스는 그의 과학이론을 전쟁에도 이용했습니다.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3차에 걸쳐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중 제2차 포에니 전쟁(BC218~BC201) 때 사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어 로마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게 됐습니다.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이미 70이 넘은 고령이었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각종 투석기,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무기를 만들어 로마군대를 크게 괴롭혔습니다. 그는 특히 원과 구(球)에 대한 문제를 좋아했다고 하며 그의 비석에도 구와 원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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