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의 기억에 과학의 메스를 갖다대다 [교수신문 공동] 인간의 한계 인정하는 겸허한 발걸음이어야... 2009년 04월 13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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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개별 기억이나 집단 기억을 불문하고 우리의 뇌 속에서 기억이 조작돼 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그 하나의 단서를 현상학적인 경험의 장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억의 장본인 자신이 진짜 기억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상상력이나 기대감, 꿈이나 사랑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복합적인 현상학적 경험의 장에서만이 이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에 관해서도 이는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의 지평이 외면한 윤리물음도 중요 현상학적인 경험의 장이란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면서 과거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행위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그 무엇으로 착종시키는 전 시간적인 의미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인생이 행복한 기억으로만 살아진다면 그때 굳이 인간은 인간일 필요를 느낄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지 않을는지요. 물론 치매나 기억상실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쁘거나 부정적인 기억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현대판 복음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뇌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있다고 할지언정 진화의 역사를 통해 행해져 온 마음의 놀라운 능력을 속속들이 파헤칠 수는 결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이 개인의 전 역사를 통해 살아가는 시간 동안만큼 내부적으로 그리고 외부적으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무형의 것이라고 한다면, 유형의 물질인 뇌를 통해 이를 샅샅이 파헤쳐보고자 하는 뇌과학은 그 출발부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한 발걸음이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무형의 기억에 대한 조작 문제를 전적으로 뇌과학의 문제로 환원시켜 이해한다면 이는 저 19세기 과학만능주의(scientism) 유령의 부활을 부추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유령이 다시 한 번 더 출몰하게 된다면 인류의 생존은 보장될 수 없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루거나 외면할 수 없는 철학적이고도 윤리적인 물음으로 다시 회귀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기억을 조작해야 하는지요. 이러한 물음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제휴와 학제 연구에 힘입어서 사실과 가치가 분리되지 않을 때만이 유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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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2009.04.13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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