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1) | ||||||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 | ||||||
실험의 가치와 효용성은 소재가 목적에 부합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 어떤 식물이 실험에 사용되게 됐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실험이 진행됐는가 하는 것은 그저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그레고르 멘델(1882-1884):오스트리아 출신의 생물학자, 수도사- 완두콩(pea)으로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Gregor Johann Mendel) 아시죠? 생물학 시간에 많이 등장하며 시험에도 자주 나옵니다. 유전에 관해 처음으로 법칙을 발견해 유전학의 아버지(The Father of Genetics)라고 불립니다. 근대유전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윈도 진화론을 통해 유전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으나 생물체의 무엇이 유전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도사인 멘델입니다.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멘델의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집안이 넉넉치 못했습니다. 고학으로 올뮈츠의 단기대학을 졸업하고 브륀(현재 체코의 브르노)의 성 토마스 수도원으로 추천을 받아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부근 중학교에서 임시교원 생활을 하면서 교사자격시험을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합니다. 멘델은 수도원 정원에서 자라는 완두콩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어떤 콩은 색갈이 노랗고 흰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또 주름이 있는 콩과 그렇지 않은 콩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그는 결국 얼마 뒤 수도원 원장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정원 한구석을 빌립니다. 그리고 완두콩의 유전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멘델의 유명한 유전법칙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만약 당시 멘델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해 교사의 길을 걸었다면 아마 ‘완두콩의 유전법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인생을 새옹지마라고도 하는 것이죠. 인생에는 항상 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Mendel’s attraction for scientific research was based on his love of nature in general. He was not only interested in plants, but also meteorology and theories of evolution. However, it is his work with pea plant that changed the world of science forever. (과학연구에 대해 멘델이 느끼는 매력은 일반적으로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에 있다. 그는 식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기상학과 진화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과학세계를 영원히 변화시킨 것은 완두에 대한 그의 연구다.) 지난 2003년을 뒤흔든 주제는 ‘인간복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뒤흔들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똑같은 언니이면서 엄마가 동시에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대 과학은 ‘'나’와 유전자가 쌍둥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생명을 준 모성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핵심은 핵이 제거된 난세포의 핵을 이식시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제2의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아기는 체세포를 준 엄마의 딸이자, 엄마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 동생, 즉 복제 인간입니다. 인간 복제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은 1천년 후든, 1만년 후든 시간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하냐?’라는 질문이 더 현실적입니다. 복제 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인간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등 동물인 양과 개의 복제가 가능할 정도라면 인간도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도 많이 합니다. 어쨌든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시작으로 복제양 돌리의 탄생, 복제인간의 가능성 등으로 이어지면서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생명공학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발전 이전에 생명진화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바로 멘델입니다.
멘델은 수도원 정원에 여러 가지 완두콩을 심고 식물교잡에 대한 실험을 합니다. 그의 실험은 주름진 완두와 둥근 완두를 교배시키는 것으로부터 잡종 제2대를 서로 교배시켜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결과를 얻습니다. 또 잎의 색, 꽃의 위치, 콩깍지의 모양, 콩깍지의 색, 줄기의 키에 대해서도 교잡실험을 합니다. 멘델은 이러한 실험을 통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완두의 유전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게 유명한 ‘멘델의 유전법칙’ 입니다. 멘델은 이러한 법칙을 얻기까지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뒤뜰에서 8년 동안 완두콩으로 325번이나 실험을 합니다. 그가 실험결과를 정립한 이론을 학계에 발표한 것은 1866년 2월 8일이었습니다. 멘델의 발표는 아무런 토론 없이 끝났고 그의 논문은 34년 동안이나 도서관에 사장됩니다. Overshadowing the creative brilliance of Mendel’s work is the fact that it was virtually ignored for 34years. only after the dramatic rediscovery of Mendel’s work in 1900(16 years after Mendel’s death) was he rightfully recognized as the founder of genetics. (멘델의 창의적인 업적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그의 연구가 34년간이나 무시돼 왔다는 것이다. 1900년 멘델의 연구가 극적으로 재발견 되면서 그는 명실상부하게 유전학의 창시자로 인정 받게 된 것이다.) 멘델은 1856년부터 1862년까지 7년 동안 매달려 실험한 연구결과를 ‘식물잡종에 관한 실험’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아마추어 연구자들로 구성된 브륀의 ‘자연과학연구회’에서 발표했고 이 연구회의 정기간행물에 실어 각지의 대학과 연구소에 배포하였으나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묻혀져 있던 멘델의 유전법칙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달맞이꽃의 돌연변이’에 관해 연구하고 있던 네덜란드 생물학자 드브리스에 의해서 입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유전 관련 문헌들을 훑어보던 중 자신의 연구결과와 똑같은 내용을 담은 멘델의 논문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랍니다. 1900년 마침내 드브리스, 독일의 코렌스, 오스트리아의 체르마크가 각각 독자적으로 이 논문의 중요성을 깨달아 세상에 소개하자 멘델의 업적이 조명을 받기 시작합니다. 멘델이 발견한 유전법칙은 뒤에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 등으로 정리되어 연구방법과 함께 근대유전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학문을 논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세가지 법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볼까요?
분리의 법칙(The Principle of Segregation):한 쌍의 대립유전자인 우성과 열성은 자손에 전해질 때 분리된다. 독립의 법칙(The Principle of Independent Assortment):다른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면 완두콩의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멘델의 연구가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이유로는 그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아니라는 점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생물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수도사로 있던 멘델이 논문을 불쑥 내밀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의 반응이 냉담했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죠.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멘델의 연구가 생물의 유전형질을 전체로서 파악하지 않고 개개의 단위 형질의 집합으로서 파악했으며 실험결과의 처리에 수학적 방법을 도입한 참신한 연구 방법이 이해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학계는 다윈이 발표한 진화론의 영향 등으로 유전보다는 변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My scientific studies have afforded me great gratification; and I am convinced that it will not be long before the whole world acknowledges the results of my work.” (나의 과학적 연구는 나에게 대단한 만족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전 세계가 나의 업적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1868년 성 토마스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되자 멘델은 여러 가지 일에 쫓기게 됩니다. 유전 연구를 그만 둡니다. 1874년 오스트리아 의회가 수도원으로부터도 세금을 징수한다는 법률을 제정하자 그는 반대투쟁에 나서 죽을 때까지 10년간 법률철회를 위한 투쟁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회유책으로 주위로부터도 배반 당하고 고립됩니다. 자신의 재산도 빼앗깁니다. 1884년 추운 1월. 멘델은 그가 이룩한 ‘멘델의 유전법칙’이 빛을 보기도 전에 쓸쓸히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의 연구는 크게 각광을 받아 1910년 브륀에는 동상이 세워지고 그곳을 멘델광장이라 일컫게 됩니다. 그는 유전과 진화의 문제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함으로써 유전학을 창시했습니다. 계획의 치밀성, 실험의 정확성, 자료처리의 탁월성, 논리의 명쾌성 등에서 뛰어났던 그의 실험은 생물학 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유전법칙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생물학을 객관적인 과학으로 확립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은 갈리레이에 의해 객관적인 과학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고, 화학은 아보가드로에 의해 연금술이 사라지고 과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변모해 가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생물학은 그저 관찰 및 정리만 하는 박물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멘델의 수학적 분석법으로 인해 생물학이 보다 객관적인 과학으로 자리잡게 된 겁니다. | ||||||
/김형근 편집위원 | ||||||
2006.09.21 ⓒScience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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