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3) | ||||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 존 돌턴 | ||||
글을 시작하는 많은 신출내기 작가들처럼, 나는 단편 소설로부터 그 기술을 배워 (긴)소설을 쓰는 어려운 도약을 해야만 했다. - 존 돌턴(1766~1844) : 영국의 물리학자, 화학자 - 명언이 주는 의미가 재미있습니다. 함축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본인의 인생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그의 철학과 사상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꼭 영어공부 때문이 아니라 암기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야깃거리도 되잖아요? 또 잘난 척도 해보고 말입니다. 명언은 한자로 ‘銘言’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말이라서 ‘名言’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새길 명’인 銘을 씁니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새겨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면 명언을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요? 명언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말이 없고 ‘famous quotes, famous quotations, famous story’로 쓰는 것 같습니다.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 존 돌턴(John Dalton)의 과학적인 업적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업적도 중요하지만 과학자의 인생관도 중요합니다. 명언이 그런 것 아닐까요? 소설을 쓰려면 단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글 쓰는 것에 익숙해지면 장편(novel)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돌턴에 대해서 말하자면 두 가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는 색맹(色盲)과 색약(色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적록색맹, 적록색약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다음에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인데 퀘이커교(敎)입니다. 종교가 과학을 멀리하고 과학이 종교를 멀리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돌턴은 근대 원자론(原子論)을 제시해 근대 물리과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퀘이커(Quakers) 교도였던 직공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겨우 12세 때 컴벌랜드에 있는 한 퀘이커 학교의 관리를 떠맡았습니다. 2년 뒤 켄들에 있는 학교로 옮겨 그의 형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12년을 보냅니다.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낀 돌턴은 맨체스터에 있는 뉴칼리지에서 수학과 자연철학을 강의합니다. 당시 영국의 학문의 요람이라고 하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은 영국 국교도들에게만 입학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칼리지 대학은 비국교파 목사를 길러낼 목적으로 장로교에서 세운 일급 교육 기관입니다. 비국교파라는 것은 영국의 성공회(Englican Church)를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역사가 어쨌든 지금의 성공회는 대단히 많은 종교를 포용하려고 애를 씁니다. 여타 기독교 종파(religious denominations)와는 다릅니다. 영국의 10%가 이슬람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불교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성공회대학교’가 있습니다. 성공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공부하기 바랍니다. 의학적인 용어로 영어단어에 ‘Daltonism’이란 것이 있습니다. 돌턴의 이름을 딴 겁니다. 적녹색약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색맹’을 뜻합니다. 돌턴은 선천적으로 색맹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학의 이공계를 지망할 때 색맹을 따집니다. 어떻게 보면 차별이기도 하고 또 따져보면 맞는 것도 같습니다. 돌턴의 논문과 업적은 2차 대전으로 많이 소실됩니다. 그를 흠모했던 아시모프(Isaac Asimov) 박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John Dalton’s records, carefully preserved for a century, were destroyed during the World War Two bombing of Manchester. It is not only the living who are killed in the war(한 세기 동안 소중하게 간직 된 돌턴의 기록은 이차대전의 맨처스터 공격으로 소실됐다. 전쟁에서 죽은 것은 생명만이 아니다)” 돌턴의 업적도 죽었다는 의미죠. 아시모프 박사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과학자로 SF(과학소설) 작가로 유명합니다.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과학 해설자로, 작가로 유명합니다. 요즘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아시모프 박사는 로봇에 대해 많은 글을 쓰면서도 또 로봇을 경계하는 내용의 ‘로봇 3원칙’으로도 유명합니다. 잠깐 소개할게요. “1. 로봇은 어떤 이유이든 간에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1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3. 로봇은 1의 원칙과 2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만 한다.” 이 로봇 3원칙은 당시 범람하고 있던 로봇 SF물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만든 개념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SF물들에 대한 것이죠. 다음 기회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를 통해 원문과 함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색맹인 돌턴은 색맹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합니다. 그의 연구로 ‘Daltonism’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죠. 돌턴은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입니다. 원자론은 옛날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철학자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릅니다. 그래서 ‘객관적 과학’이라는 말을 씁니다. 탈레스도 우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우주론에 대해 객관적인 과학을 제공한 사람은 갈릴레오입니다. 객관적인 과학은 수학적인 이론과 증빙이 필요합니다. 돌턴은 자신의 연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This paper will no doubt be found interesting by those who take an interest in it(내가 쓴 논문은 의심의 여지없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것이다).”
교사로 일했던 초기에 그는 유능한 기상학자이자 기구 제작자였던 부유한 한 퀘이커 교도의 영향을 받아 수학과 기상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787년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이 살았던 호수 주변지역의 기후변화를 기록하는 기상관측일지를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과학적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늙어서도 줄곧 기록한 이 관측일지에 약 20만 항목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기상관측자료와 소론(Meteorological Observations and Essays)’을 1793년에 출간했습니다. 퀘이커교도들은 이단이라고 불리며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학문의 요람인 영국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함석헌 선생이 대표적인 퀘이커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별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단으로 취급하는 종교적인 이유가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사상과 진리의 깊이가 대단합니다. 장자와 노자, 그리고 불교의 사상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상과 철학을 포용한 학자입니다. 동서양의 사상을 두루 이해한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인도의 중요한 철학서인 ‘바가바드기타’를 영문이 아닌 원문 산스크리트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번역한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돌턴은 식물과 곤충 채집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787년에는 오로라를 보고 이 현상을 관측하기 시작합니다. 북극오로라(北極光)에 대한 그의 글에 다른 사람들의 결론에 크게 구애 받지 않은 그의 독자적인 생각을 표현합니다. 과학은 꼭 과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아니라 호기심(curiosity)과 상상력(imagin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학자입니다. 기상학을 연구하면서 그는 무역풍(trade wind)의 발생원인이 지구의 자전과 온도변화와 관련된다는 결론도 내립니다. 바다의 온도변화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무역풍에 대한 이야기는 해양학자의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역풍은 인간이 이용한 최대의 해양 자원입니다. 무역풍을 이용해 세계 탐험이 가능했던 겁니다. 돌턴은 그칠 줄 모르는 탐구자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자료에서 이론을 정립해내는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초부터 시작한 그의 화학연구는 그의 정신력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6년 동안 뉴칼리지에서 화학을 가르치긴 했어도 화학연구의 경험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다른 연구들을 할 때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직관과 독자적인 정신,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과 이용 가능한 사실을 통해 이론을 창조적으로 종합해내는 천재성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체들을 연구해 돌턴의 법칙으로 알려진 기체분압법칙(혼합기체의 총압력은 그 혼합기체를 이루고 있는 각 기체들의 압력을 모두 합한 것과 같으며, 각 기체는 독립적으로 작용함)을 정립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험하면서,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기체의 부피는 늘어난다’는 이론을 세우기도 합니다. 샤를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돌턴에게도 공적이 있습니다. 퀘이커교를 굳게 믿으면서 항상 욕구를 절제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단정한 옷차림과 경건한 몸가짐을 흩뜨리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불에 타버립니다. 그는 왕립학회의 회원이었고 영국과학진흥협회를 설립합니다. 1826년에는 왕립학회로부터 금메달을 받습니다. 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객원회원이기도 했습니다. 돌턴은 물리학자이기도 하고 화학자이기도 합니다. 요즘 탄생한 단어로 물리화학자라고 할 수 있죠. 무려 46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매일 매일의 날씨를 또박또박 기록한 놀라운 인물입니다. 그의 진면목은 화학입니다. 돌턴의 ‘복합비례법칙(Law of Multiple Proportions)’은 화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돌턴은 원자이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nglish meteorologist and chemist, a pioneer in the development of modern atomic theory(영국의 기상학자, 그리고 화학자. 현대 원자이론 개발의 개척자).” 최대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의 설명입니다. 그가 물리학자라는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또 따지자면 물리와 화학을 구분하는 선은 없습니다. 종교와 인종으로 인해 차별받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돌턴은 퀘이커교도라는 것 때문에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을 깨고 또 깨면 마지막이 원자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래서 원자이론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물론 다른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사람은 단편소설을 쓰다가 장편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체득한 느낌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진보합니다. 돌턴의 명언이 주는 의미입니다. | ||||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 ||||
2006.10.19 ⓒScience Ti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