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6)
수학자 푸앙카레
▲ 헨리 푸엥카레.  ⓒ
The scientist does not study nature because it is useful, he studies it because he delights in it, and he delights in it because it is beautiful. If nature were not beautiful, it would not be worth knowing, and if nature were not worth knowing, life would not be worth living.

과학자는 유용(有用)하게 쓸 수 있다고 해서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자는 그게(자연) 아름답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만약 자연이 아름답지 않다면 알려고 할 값어치가 없다. 그리고 자연이 알 가치가 없다면 인생 또한 살 가치가 없다.
- 헨리 푸앙카레(1854~1912) ;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고 감동을 주는, 문자 그대로 명언(銘言)입니다. 훌륭한 이야기죠? 과학자는 왜 연구에 빠져드는지, 그리고 과학자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속에는 정말로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라면 세속(世俗)의 부나 명예에 대해서도 초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수학분야에서 전반적으로 능통한 마지막 학자로 묘사되고 있으며 수학에 대해 확고한 신념으로 놀랄 만한 영역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헨리 푸앙카레(Jules Henri Poincare)는 20세기의 주요 관심 분야인 위상수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습니다.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 했던 그의 업적은 광학, 전기학, 모세관 현상탄성, 열역학, 양자이론, 상대성이론, 우주진화론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우주의 원리(nature of space)를 설명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Science is facts. Just as houses are made of stones, so science is made of facts. But a piece of stones is not a house and a collection of facts is not necessarily science(과학은 사실이다. 집이 돌 조각들로 만들어진 것처럼 과학도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돌 조각들이 집이 아니며, 사실의 무더기가 반드시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돌만 있다고 집이 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들(facts)만 모았다고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을 이루는 돌과 과학을 이루는 사실들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이론이 뒷받침돼야만 집이 되고 과학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수학이라는 기초과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다 이해하는 건데 괜히 사족(蛇足)을 달았나요.

수학자 푸앙카레는 ‘푸앙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으로 유명합니다. 지난 8월(2006년) 세계 수학계가 러시아의 한 수학자를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2003년 ‘밀레니엄 7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푸앙카레 추측을 증명해 낸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Grigory Perelman) 박사입니다.

그는 7대 난제를 풀어낸 공로로 1백만 달러의 거금을 상금으로 받게 돼 있고 세계수학자회의(IMU)가 4년마다 수여하는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Fields Medal)’의 유력한 후보였지만 수학자 회의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언론의 조명을 피하기 위해 종적을 감춰 노모가 사는 고향으로 내려가 숲속에서 숨어 한가하게 버섯을 캐고 있었습니다.

▲ 수학의 난제 중의 하나인 '푸앙카레 추측'을 풀어낸 '은둔의 수학자' 러시아의 그리고리 페렐만 박사.  ⓒ
‘은둔의 수학자’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왜 종적을 감췄나?”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업적은 전혀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나는 그저 원해서 공부했고, 그래서 연구했을 뿐이다. 나는 잘 살고 유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난 연구하고 싶을 뿐이다.” 너무 착하고 순진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습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학자라고 합니다. 사진은 수염이 길고 날카롭게 보이지만 말입니다. 기초과학을 하는 학자들이 원래 순합니다. 그래서 기초과학을 ‘순진한 과학(순수과학, pure science)’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노모가 받는 5만4천원의 연금에 의지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상금도 받고 필즈상도 받고, 그래서 그 돈으로 고생하는 노모를 호강시켜주는 게 자식의 도리가 아니냐고요? 저도 그 경우가 되면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 좀 자랑도 해보고 말입니다. 그러나 페렐만 박사는 그렇지 않았죠. 비단 과학자뿐만 아니라 위대한 학자에게는 위대한 철학이 있는 겁니다. 오늘 ‘과학자의 명언’의 주인공 푸앙카레도 그렇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밀레니엄 7대 난제’에 대해 조금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000년 미국의 클레이 수학연구소(CMI)가 2000년 5월 파리에서 공개적인 회견을 갖고 일곱 개의 미해결 수학문제를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1백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총 7백만 달러가 되는 거죠.

푸앙카레가 1904년 7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푸앙카레 추측을 제기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추론을 증명해내지 못하다가 페렐만 박사가 풀어낸 거죠. 푸앙카레 추측이란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정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같은 것’이라는 이론으로 하나의 밀폐된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이 수축돼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원구(圓球, sphere)로 변형될 수 있다는 추론입니다. 더 알고 싶으시면 담당 선생님한테 물어 보세요.

‘수학의 7대 난제’는 미국의 부호인 랜던 클레이(Landon Clay)가 창안한 겁니다. 사업으로 떼돈을 번 클레이는 고향인 메사추세스주 케임브리지에 비영리단체인 클레이연구소(CMI)를 설립했습니다. 수학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만들었다고 해서 ‘밀레니엄 7대 난제’라고도 하고 클레이 이름을 따서 ‘클레이 7대 난제’라고도 불립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졌네요.

“Mathematics is the art of giving the same name to different things(수학은 각기 다른 사물에 대해 같은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예술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각기 다른 사물의 성질에 대해 수학은 하나의 이론이나 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푸앙카레는 수학의 모든 분야에 정통한, 이 시대의 마지막 천재 수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
이 말과 대조를 이루는 말도 있습니다. 푸앙카레가 한 말은 아닙니다. “Poetry is the art of giving different names to the same thing(시란 하나의 사물에 대해 다양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예술이다.).” 과학과 문학(시)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멋진 말이죠? 과학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사물의 성질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학(시)은 하나의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합니다. 따지자면 미술도 그렇습니다.

“What is it indeed that gives us the feeling of elegance in a solution, in a demonstration? It is the harmony of the diverse parts, their symmetry, their happy balance ; in a world it is all that introduces order, all that gives unity, that permits us to see clearly and to comprehend at once both the ensemble and the details.”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증명하면서 멋진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양한 것들의 조화, 그것들의 대칭(對稱), 그리고 교묘한 밸런스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서와 통일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에 총체적인 것과 세세한 것 둘 다 명확히 보고 이해할 수 있다.”

“A scientist worthy of his name, about all a mathematician, experiences on his work the same impression as an artist ; his pleasure is as great and of the same nature(이름값을 하는 과학자나 모든 수학자들은 연구를 하면서 예술가가 된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과학자의 기쁨 또한 대단하며 예술가와 비슷한 기질이 있다.).”

이런 명언도 남겼습니다. “Mathematicians do not study objects, but relations between objects. Thus, they are free to replace some objects by others so long as the relations remain unchanged. Content to them is irrelevant : they are interested in form only(수학자는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간의 관계를 연구한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여러 사물들을 다른 사물로 대치해 보기도 한다. 그에 대한 논쟁은 적합치 않다. 그들은 형태(질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몇 개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Mathematical discoveries, small or great are never born of spontaneous generation. They always presuppose a soil seeded with preliminary knowledge and well prepared by labor, both conscious and subconscious(수학적 발견은 크든 작든 간에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적 발견은 언제나 예비지식이 있어야 하고, 의식적이거나 잠재의식에 의한 연구를 통해 잘 준비된 토양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연구도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합니다. “Good preparations make a success(준비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 푸앙카레의 어릴 때 모습. 지독한 근시였고 말이 어눌했지만 기억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
“The thought is only a flash between two long nights, but this is everything.”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발한) 생각이란 두 개의 긴 밤 사이에 잠깐 나타나는 섬광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이다.” 과학자에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번뜩이는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글을 쓰는 문학가들만 사색을 즐기는 게 아닙니다. 그 사색 속에서 번뜩이는 독창적 사고가 나타납니다. 휴대폰하고만 살지 말고 독서도 즐기고 공원을 거닐며 사색도 하시기 바랍니다.

“…by natural selection our mind has adapted itself to the conditions of the external world. It has adopted the geometry most advantageous to the species or, on other words, the most convenient. Geometry is not true, it is advantageous(자연선택에 의해 우리는 외부세계에 적응하게 됐다. 그리고 마음(인간)은 종(種), 다시 말해서 선택된 종에게 가장 이로운 기하학을 선택했다. 기하학은 진리가 아니라 유익한 학문이다).” 이 말은 새겨 들으시길 바랍니다. 푸앙카레가 미적분 방정식과 함수관계 연구가 전공이기 때문에 기하학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을 비롯해 많은 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듯이 기하학은 우리에게 이익과 편의를 주는 선택적 학문이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푸앙카레는 1854년 프랑스의 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이 의사라서 유복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화정의 대통령을 지낸 유명한 정치가 레이몽 푸앙카레의 사촌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이 부유하다고 해서 다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지만 푸앙카레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푸앙카레는 지독한 근시였지만 (near sighted, 원시는 long 또는 far sighted) 기억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 아주 어눌했다고 합니다. 아마 요즘 같으면 구술시험에서는 빵점이죠. 스피치 능력은 타고나는 건데 논술시험은 그렇다고 해도 구술시험이 대학시험에서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사기(史記)를 지은 중국의 사마천은 말이 어눌하기로 유명했고 한비자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이론가들입니다. 특히 사마천은 모함에 연루되어 끌려갔지만 대답을 잘 하지 못해 왕의 분노를 더욱 사서 치욕적인 궁형(宮刑, 거세하는 형벌)을 당합니다. 그 치욕을 딛고 위대한 사기를 쓴 거죠.

이와 반대로 ‘합종과 연횡’으로 잘 알려진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말을 기가 막히게 하는 변설가, 요설가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은데 장의에 얽힌 재미있는 고사(故事)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吾舌尙在(오설상재)’라는 말입니다. 뜻은 ‘내 혀는 그대로 잘 있는가?’라는 말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장의가 머리 속에는 대단한 책략을 갖고 있으면서도 벼슬에 등용되지 못해 놀고 먹으면서 무위도식 하던 시기에 초나라 재상인 소양(昭陽)의 집에 초청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소양이 애지중지하게 여기면서 문객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던 구슬이 없어집니다. 초청 받은 사람들 가운데 그래서 허술한 옷차림을 했던 장의가 혐의자로 누명을 써 도둑으로 몰려 죽도록 매를 맞습니다.

반쯤 죽은 채 수레에 실려 집에 돌아와 장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내 혀를 보오. 여전히 그대로 잘 붙어 있소?(視吾舌 尙在下, 시오설 상재하)”라고 물었더니 아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혀야 있지요!” 했더니 장의는 “그러면 됐소!”라며 잠을 잡니다. 혀만 성하면 팔다리쯤 병신이 되고 절단이 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장의의 혀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옵니다. 사기는 꼭 읽어볼 고전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1.09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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