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9) | ||||||||
제논 | ||||||||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이라고 불리는 한 시스템의 부분들일 뿐이다. 개인의 삶도 자연과 조화를 유지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 제논(335?~264 B.C.) : 고대 그리스 철학자, 과학자, 스토아 학파 창시자 - 이 명언은 우리가 많이 듣고 공부했던 스토아(Stoa) 학파의 창시자, 로고스 이론의 주인공 키프러스 제논(Zenon of Kyprios, 또는 Zenon of Citium)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스토아 학파의 계율이기도 합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제일 중요시 했습니다. 그 조화는 자연이라는 우주와 타협하고 더불어 사는 논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속에 스토아 학파의 자연주의 철학과 윤리관이 있습니다. 우선 제논이라는 학자의 이름부터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존재합니다. 한 사람은 지금 소개하고 있는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키프러스 제논)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일레아 학파의 제논(Zenon of Elea, 420~429 B.C.)입니다. 후자 제논은 ‘제논의 역설’, ‘제논의 변증법’ 등으로 많이 알려진 학자입니다. 특히 ‘토끼는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적 주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들어 보셨죠?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패러독스’라는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일레아 제논은 다음 기회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에서 다루겠습니다. 어쨌든 혼동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종종 두 사람을 혼동해서 글을 쓴 경우도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또 헷갈리게 하는 것은 Zenon과 Zeno입니다. 둘 다 같은 이름입니다. 플라톤(Platon)의 이름도 Plato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는 영어식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외국어 표기방법이 정착 안 된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Wellbeing is attained by little and little, and nevertheless is no little itself. 행복(웰빙)은 아주 조금씩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작은(조금씩) 것이 아니다.” We have two ears and one mouth, so we should listen more than we say. 우리는 두 귀와 하나의 입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인간의 행복은 금욕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들입니다. “Follow where reason leads. 이성이 인도하는 곳을 따르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신교인 기독교의 영향이 많아 교주라는 단어가 썩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모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 수학자 피타고라스를 빗대어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묘사한 걸 봤습니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피타고라스 학파가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과 예배를 올리는 집단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교나 이념을 앞세워 자기의 관점에서 다른 것을 이해하려는 주장은 과히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대립과 증오,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물론 방송에서는 ‘재미있게 웃자’라는 취지였겠지요.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아고라(agora, 집회장, 중앙광장)라는 공공 광장이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영향으로 기후가 좋은 그리스에서는 시민들이 옥외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아고라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뉴스를 교환하며 정치를 논했습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과 사상은 이러한 토론문화에서 나온 겁니다. 그게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지탱하는 잠재력이었습니다. 스토아는 공회당의 일종으로 주랑(柱廊)이라고 하며 그늘을 제공할 수 있었죠. 오늘날 영어 ‘store(상점)’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Fate is the endless chain of causation, whereby things are ; the reason or formula by which the worlds goes on. 운명이란 끊임없는 인과관계(因果關係)의 연속이다. 그것은 그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는 이성 또는 법칙이다.” “No evil is honorable ; but death is honorable ; therefore death is not evil. 악은 결코 명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명예로운 일이다. 그래서 죽음은 악이 아니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Among the virtues some are primary, and some are subordinate to these. The following are the primary : Wisdom, courage, justice, temperance.” 해석해 보면 “덕(德) 가운데는 가장 중요한 덕이 있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덕이 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덕들이다. 지혜, 용기, 정의 그리고 인욕(忍慾)이다.”라는 뜻입니다.
제논은 윤리를 중요하게 다루었고 유기적인 유물론, 또는 범신론의 입장에서 금욕과 극기를 통해 자연에 순종하는 현인(賢人)의 생활을 이상으로 내세웠습니다. 후에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가 그의 이론을 완성하면서 서양의 기본적인 철학이 됩니다. 특히 로고스를 절대적 유일신과 같은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기독교 신학의 기초가 됩니다. 제논의 윤리와 도덕을 신학의 이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죠. 제논의 스토아 철학(Stoicism)은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천재’로 일컫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 354~430)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기독교의 확고 부동한 이론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는 삼위일체론(trinitas), 신국론(The City of God), 고백록(The Confessions) 등을 통해 신학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학자입니다. 신학이론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스토아 철학은 마치 기독교 신학이론을 위해서 태어난 학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독교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철학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는 이후 서양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고 비단 서양뿐만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거죠. 다시 말해서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는 기독교의 중요한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그리고 스토아 철학의 금욕과 절제의 도덕과 윤리는 기독교의 윤리관을 설명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근대 유럽의 합리주의 철학의 기반이 됩니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당시 철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If you are distressed by anything external, the pain is not due to the thing itself but your own estimate of it ; and you have the power to revoke at any moment.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그 고통은 외부의 사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괴로움은 마음의 작용이고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겠죠? “Get rid of the judgment… get rid of ‘I am hurt,’ you are rid of the hurt itself. (주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하지 말라. ‘나는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외부의 일들 때문에 고통 받지 않도록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해야 한다는, 그런 뜻이겠네요. 동양의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을 접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제논의 명언으로 이런 것도 잇습니다. “The avaricious man is like the barren sandy ground of the desert which sucks in all the rain and dew with greediness, but yields no fruitful herbs or plants for the benefits of others. 탐욕스러운 인간이란 욕심으로 가득 차 비(물)를 다 삼켜버리는 사막의 척박한 모래땅과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아무런 과일도 제공하지 못한다.” 정말 탐욕이 지나치면 안 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이 과욕에 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죠.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Extravagance is its own destroyer. 과욕은 패망의 길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이야기로 비슷하지만 “The goal of life is 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 삶의 목표는 자연과 합의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 ||||||||
2006.11.30 ⓒScience Ti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