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0) | ||||||
슈바이처 | ||||||
우리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는 안다. 앞으로 진정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사람들은 남에게 봉사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찾는 사람들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 : 독일 선교사, 의사, 음악가, 신학자 - ‘밀림의 성자’, ‘검은 대륙의 성자’… 일생을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그야말로 인술(仁術)을 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에 대해 따라다니는 말들입니다. 또 ‘생명의 외경(畏敬)’이라는 말도 슈바이처 박사만의 독특한 브랜드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봉사와 헌신으로 보낸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명언에는 그의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으로 “The purpose of human life is to serve and show compassion and the will to help others. 인생의 목적은 봉사하고 애정을 보여주고, 그리고 남을 도우려고 하는 의지에 있다.”라는 명언도 있습니다. 또 그의 행동과 실천정신을 잘 나타내는 말로 짤막하지만 “Examples are leadership. 모범이 곧 리더십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때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까요? 슈바이처 박사는 왜 아프리카 밀림의 각종 열병과 독벌레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생을 그곳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을까요? 선교를 위해서 악조건을 참아냈을까요? 아니 흔히 하는 말로 천당에 가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그를 밀림의 성자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는 특별한 신념이나 신조나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남을 돕는 겁니다. 자연의 청정한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통해 우리를 감동시키는 법정 스님은 “용서란 남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게 아니라 흩어진 자신의 마음을 다시 모아 가다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베푸는 일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봉사와 헌신은 결국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자신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봉사와 헌신을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면 그저 좋은 겁니다. 남을 돕고 나서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자신에 대해서 뿌듯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는 위대한 용기와 실천이 중요한 겁니다. 거기에는 종교적인 신념도 필요할 겁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상보시(無償布施)가 그렇습니다. 조건 없이 남을 돕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거룩한 일입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성자로 기억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상당수가, 아니 거의 모두가 무상보시의 무상을 ‘無相’으로 표기하고 있는 데 틀린 말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가 없이 주는 무상(無償)원조를 생각하면 됩니다. “There is no higher religion than human service. To work for the common good is the greatest creed. 남을 위한 봉사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공동의 선(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조다.” 신학자이기도 한 슈바이처 박사의 거룩하고 위대한 신념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 종교나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Constant kindness can accomplish much. As the sun makes ice melt, kindness causes misunderstanding, mistrust, and hostility to evaporate. 항상 친절하면 많은 걸 성취할 수 있다. 태양이 얼음을 녹이는 것처럼 친절은 오해와 불신, 그리고 적개심도 수증기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슈바이처 박사의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아프리카가 말이 아닙니다. 특히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은 끊이지 않은 내전과 질병, 기아로 1년에 수백만 명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AIDS의 기승으로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고위 관리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국가의 행정조차도 마비돼 세계 각국에서 원조하고 있는 식량이나 의료품 등 구호물자가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조차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슈바이처와 같은 성자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Just as the wave cannot exist for itself, but is ever a part of heaving surface of the ocean, so must I never live my life itself, but always in the experience which is going on around me. 파도(물결)가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단지 대양(大洋)이 분출하는 지표면의 일부인 것처럼 나도 나의 인생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내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경험(사람,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보충설명이 필요 없겠죠? 세상은 유아독존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Truth has no special time. Its hour is now—always. 진실(진리)은 특별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 그리고 언제든지, 모두가 진실의 시간이다.” 짧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명언입니다. “Humanitarianism consists in never sacrificing a human being to a purpose. 인간주의란 인간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데 있지 않다.” 다시 해석해 본다면 “진정한 인간주의란 희생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그 속에서의 사랑, 봉사, 헌신 등이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는 신학과 음악을 약간 뒤로 하고 1905년 박애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선교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힙니다. 그래서 1913년 의학박사가 됐고 그를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은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로 출발합니다. 그곳에서 오고우에 강둑 위에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곳에서 적국 외국인(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그 뒤에는 전쟁포로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합니다. 이후 그는 점차 전 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돌렸으며 ‘문화철학 Kulturphilosophie’(1923)을 쓸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외경’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발표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이러한 그의 철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윤리원칙입니다. 그는 이 원칙이 문명의 존속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외경’은 결국 이 저서를 통해 유명해진 겁니다. 물론 따지자면 그러한 저서가 없었다 해도 박애주의자이며 휴머니스트인 그가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겼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외경’이라는 말이 이 저서를 계기로 유명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외경(畏敬, 또는 경외)이란 의미 그대로 두려워하고(畏), 존경한다(敬)는 뜻입니다. 영어로도 ‘awe and respect’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면 생명에 대해 존경한다는 말은 이해가지만 두려워한다는 말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을 두려워한다는 생각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죠. 길에 있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조차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지구촌의 모든 생명들이 평화로움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거죠. 그게 결국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신의 뜻에 따르는 길입니다. 생명에 대한 외경이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면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겠죠?
“One truth stands firm. All that happens in world history rests on something spiritual. If the spiritual is strong, it creates world history. If it is weak, it suffers world history.”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리는 확고부동하다. 세계사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정신적인 것이 많다. 만약 정신이 강하면 세계역사를 창조하게 되고, 약하면 세계역사를 고통스럽게 한다.” “In everyone’s life, at some time, our inner fire goes out. It is then burst into flame by an encounter with another human being. We should be all thankful for those people who rekindle the inner spirit. 우리의 인생 속에는 때로 마음 속의 불(열정)이 사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불꽃을 피우기도 한다. 마음 속의 불을 다시 켜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슈바이처 박사의 마음 속의 불은 꺼져 있다가 아프리카의 환자들을 돌보면서 다시 타올랐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려움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봉사와 헌신을 인생의 열정으로 산 슈바이처. 그래서 우리는 그를 아프리카의 성자로 부른 겁니다. 적도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 의사였던 그는 ‘인류의 형제애’를 위한 노력으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대양과 같이 넓고 깊은 그의 평화주의 정신과 비교하면 노벨 평화상은 조그마한 파편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요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접하면서 슈바이처 박사의 지고 지순한 박애정신을 떠올립니다. | ||||||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 ||||||
2006.12.07 ⓒScience Ti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