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종말-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가능성 [교수신문 공동] 여성주의자가 바라보는 성의 종말 2009년 05월 11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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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필자는 이 지면에서 ‘섹스리스의 증가’나 ‘결혼/출산율 저하’ 같은 사회적 현상을 ‘성의 종말’로 볼 수 있는지 논해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섹스리스’라는 현상만 살펴보려 해도, 섹스를 전혀 안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을 뿐더러, 그 이전에 ‘섹스’를 어떻게 정의할지부터 문제입니다.
이런 ‘즐거운’ 지옥 속에서 구원받기 위해 결국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성과 생식의 공산주의를 기획하기에 이릅니다. 이 새로운 공산주의란 바로 유성생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유전자와 외모가 완전히 똑같아서 서로 차별할 가능성이 적고, 특정한 방식의 성행위만 특권화하지 못하도록 성감대가 몸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도록 조작된 복제인간들만으로 이루어진, 시험관 복제를 통해 인구를 재생산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성생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해도, 어쨌든 기존의 ‘성적인 것’은 완전히 종말을 맞는 혁명이랄까요. 단성생식이나 무성생식이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니, 우엘벡의 주인공의 기획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허황된 것만도 아닌 셈입니다. 이를테면, 2004년 <네이처>지에는, 쥐의 난자 두 개를 가지고 정자 없이 수정란을 만들어냈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그 즈음에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도 복제인간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며 이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단성생식이나 복제를 과연 원하기는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인류학자 게일 러빈(1984)은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개인의 성적행동에 따라 위계를 나누고 차별하는 사회적 기제를 말한 바 있습니다. 높은 위계에 속하는 성적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평가와, 사회적 존중을 부여하면서 제도적 지원과 물질적 이득을 줍니다. 반면, 낮은 위치로 간주되는 성적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이거나, 존중 받을 만하지 못하거나, 범죄자거나, 자유로이 이동, 이주할 수 없도록 만들거나, 제도적으로 지원 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경제적 궁핍으로 내몰립니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에서 그 위계의 가장 위쪽에 있는 이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성애 부부일 것입니다. 저출산이 ‘위기’로 부각되면서 저 범주에 속해야 납세나 집장만에 더 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생식세포와 배아를 몸 바깥으로 꺼내 조작할 수 있는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한 아이에 대해 난자상, 자궁상, 양육상 등등 어머니가 여럿이 된다든가, 아버지 없는 가족이라든지, 동성커플 간에 아이를 낳는다든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결혼한 이성부부의 불임 ‘치료’를 위한 기술로만 주로 쓰이고 있는 상황은 앞에서 말한 사회의 성적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결혼한 남녀와 그 생물학적 자녀들로 이루어진 가족을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지만(현재 한국의 양육/교육비는 출산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무시무시하지요), 또 그게 아닌 다른 가족형태를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상상하고 추구하기도 참 힘든 사회입니다. 즐거운 종말을 상상하며
이런 점에 주의한다면, ‘성적인 것’으로 묶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종말까지는 아니라도, 현재 존재하는 성적 위계(앞에서 말했듯, 남/녀 간의 차이뿐 아니라 갖가지 성적 취향, 행위, 정체성 등등에 따른 위계)와 차별의 종말이라면, 상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100년 쯤 후,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굳이 남녀 커플을 이루어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을 우스꽝스러운 옛 풍습 정도로 여기는 시대가 올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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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2009.05.11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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