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51) | |||||||
도로시 호지킨 | |||||||
"저에게 야망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는 자체를 좋아했을 뿐입니다. 저는 실험에만 매달린 실험주의자입니다. 저는 손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어린애처럼 좋아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발견을 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로시 호지킨(1910~1994):영국 화학자, 노벨상 수상자- 이 말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분자생물학자인 루이스 월퍼트(Lewis Wolpert)가 진행하는 BBC방송에서 도로시 호지킨(Dorothy Mary Crowfoot Hodgkin)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직후 진행한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너무나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가 뭐냐?”는 월퍼트의 질문에 도로시는 아주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only by starting early. For those that came into X-ray crystallography early there was so much gold lying around. one could not help finding it.”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을 뿐이죠. (저처럼) X선 결정학 연구(회절연구)를 일찍 시작한 사람에게는 황금이 사방에 널리 깔려 있었어요. 누가 그러한 발견을 마다하겠어요?” 저술가, 방송해설가로도 크게 활약했던 월퍼트는 “성공을 이루기까지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도로시는 다시 순진하고 담담하게 응답하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았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볼까요? “No, sometimes this works the other way. I think it’s because I don’t notice it very much that I am a woman among so many men. There have been moments when it was to my advantage." "아닙니다. 때로 정반대였지요. 아마 남자들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여자라는 걸 깊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한테 오히려 이득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도로시의 대답은 다시 이어집니다. “Sometimes my male colleagues were particularly nice and helpful to me as the lone girl about(great laugh).” “남성 동료들은 저를 ‘길 잃고 헤매는 외로운 소녀’라고 생각해서 특히 더 친절하고 도움도 많이 주었죠(큰 웃음).” 도로시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미ㆍ소 냉전시대였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두 개의 세계대전을 둘러싸고 유럽식 사회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립이 아주 강했던 시기입니다. 유럽 국가의 정당을 보면 노동당, 사회당 등이 많습니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뚜렷한 동기가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I had inherited my socialist and peace-loving policies from my mother who had four brothers. In the First world War, two got killed outright and the other two died from its after-effects. These heart-breaking losses made my mother very much concerned with League of Nations where she took me when I was at 14.” "사회주의와 평화사랑(전쟁반대주의)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남자 형제가 4명이었는데 두 분은 1차대전에서 죽고, 나머지 두 분은 전쟁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를 잃은 쓰라린 아픔으로 어머니는 국제연맹(국제연합UN의 전신)에 깊이 관여했고 제가 14살이 된 후부터 그곳에 데려가곤 했습니다." 유럽은 아직도 사회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그러면 유럽이 북한처럼 공산주의국가란 이야기냐고요? 설명을 하자면 복잡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완전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성향(orientation)이 다를 뿐입니다. 1994년 도로시가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자 그녀의 학문적 동지이자 역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막스 페르츠(Max Ferdinad Perutz)는 과학연구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동료들을 항상 배려했던 인간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디펜던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She pursued her crystallographic studies, not for the sake of honors, but because that was what she liked to do. There was a magic about her person. She had no enemies, not even among those whose scientific theories she demolished or whose political views she opposed.” 해석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고 싶은 분야이기 때문에 결정학 연구에 매달렸다. 그녀의 인간성에는 (남을 끄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적이 없었다. 그 과학적 이론이 옳지 않다고 그녀가 반박한 사람들도, 그리고 도로시의 정치적 의견과 달리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녀를 적대시 하지 않았다. 이어서 “Just as her X-ray cameras bared the intrinsic beauty beneath the rough surface of things, so the warmth and gentleness of her approach to people.” “그녀의 X선 카메라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 이면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처럼 사람들(동료들)에게 겸손하고도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다.” 과학자들은 열정이 있고 고집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집착이 있습니다. 상식적인 일상생활과 다른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문제도 생기고 괴팍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저 과학이 좋아 과학을 하는 소녀와 같은 과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론이 다른 사람이거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도로시를 좋게 생각하고 아껴주었다는 이야기죠.
도로시는 비타민B12의 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습니다. 이 상을 받기 앞서 옥스퍼드대(1928~1931년)에서 복잡한 거대분자의 X선 연구를 했고, 그 후 1932~34년 케임브리지대(1932~1934년)에서 동료들과 함께 단백질인 펩신에 관한 최초의 X선 회절사진을 얻어냅니다. 다시 교수로 옥스퍼드대로 돌아간 도로시는 페니실린의 구조분석에 관해 연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가장 복잡한 비단백질 화합물인 비타민 B12의 X선 사진을 최초로 찍는 데 성공합니다. 이로 인해 1948년 마침내 비타민 B12의 원자배열을 완전히 결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는 거죠. 단백질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데 자주 등장하는 X선 회절(X-ray dffraction)에 대해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연구를 도왔던 결정적인 방법이 X선 회절법입니다. DNA에 X선을 쪼이면 DNA 원자들의 산란과 반사 모습이 필름에 나타납니다. 이걸 해석하면 분자의 구조를 알수 있습니다. 왓슨과 크릭도 마찬가지로 DNA X선 회절사진을 보고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지금은 전자현미경으로 관찰이 직접 가능합니다. 그러나 전에는 단백질 구조나 형태를 알기 위해서는 X선 회절사진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유전공학과 생명과학의 시대를 여는 데 단초를 마련해 준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놓고 많은 잡음이 생기는 겁니다. 처음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인데 왓슨과 크릭이 그걸 도용해 자기 연구로 만들어 노벨상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물질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결정학(crystallography)이라고 합니다. 말뜻 그대로 물질을 이루는 결정(crystal)의 기하학적 특징이나 내부 구조와 그에 따라 나타나는 성질에 관한 연구를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광물학의 한 분과로 연구돼 왔으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도로시는 그의 업적에 비해 다소 늦게 노벨상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도로시보다 2년 일찍 받은 동료 페르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I felt embarrassed when I was awarded the Nobel Prize before Dorothy, whose great discoveries had been made with such fantastic skill and chemical insight, and preceded my own.”
그래서 도로시가 사망했을 때 페르츠가 인디펜던트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쉬워한 겁니다. “Dorothy will be remembered as a great chemist, a saintly, tolerant, and gentle lover of people and a devoted protagonist of peace.” “도로시는 위대한 화학자이며, 성인(聖人) 못지않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겸손하며, 평화를 위해 헌신한 주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도로시는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영국 여성입니다. 또 단독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세 자녀를 몸소 키운 어머니이자 아내입니다. ‘와, 애들 뒷바라지 다 하면서도 노벨상을 받았다면 대신 머리가 엄청 좋았냐고요?’ 노벨상은 고시촌에서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해 합격하는 고등고시 같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애타게 그리는 노벨상은 목적이나 야망이 아닙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의 연구에 매달리고 최선을 다할 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입니다. 허긴 수상자가 여지까지 없는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에 목말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도로시처럼 사람이 친절하고, 착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또한 평화를 사랑할 줄 아는 과학자가 돼야 합니다. | |||||||
/김형근 hgkim5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