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60)
란드슈타이너(2)
피는 살아 있는 생명의 상징

▲ 칼 란드슈타이너.우직할 정도로 과학연구에 집착한 그는 ABO식 혈액형을 발견했다.  ⓒ
어쨌든 피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생명력은 피에서 비롯된다고 믿은 거죠. 그래서 피를 바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인지가 발달하면서 혈관을 통해 피를 주고 받는 수혈이라는 게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한여름이면 항상 등장하는, 그래서 이제는 면역이 돼 무섭지도 않은 드라큘라도 그렇고, 늑대인간도 그렇고, 뱀파이어도 그렇습니다. 오싹하게 하는 ‘양들의 침묵’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피를 주제로 한 공포 이야기는 전설이든 신화든 모든 나라가 마찬 가지입니다. 또 피는 원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이 많은 사람이 죽어서 복수하기 위해 원혼이 돼 흡혈귀로 나타나는 거죠.

그런데 주인공이 여성들이 많습니다. 여성들이 많이 핍박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남성이 핍박 받는 시기가 되면 남자 주인공도 등장할까요? 그 때가 되려면 수 십만년이 지난 후라고요? 글쎄, 그 때쯤 우리가 사는 지구촌이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 뱀, 사과 이야기를 그저 흘려 보낼 재미있는 설화로 들을 것인가? 아니면 종교적인 이유로 ‘진짜로 그랬을 것이다’는 여러분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이브는 아담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첫째 부인이 릴리스(Lilith)라는 이야기도 말입니다. 이 여성이 이브에 의해 쫓겨나 황야에 머물면서 그 사무친 원한을 갚기 위해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공격해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가 됐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흡혈귀 원조는 아담의 첫째 부인 릴리스

▲ 유대 설화에 등장하는 아담의 첫 부인 릴리스. 자유분방했던 그녀는 이브에게 쫒겨나, 그 원한으로 흡혈귀가 됐다.  ⓒ
유대 설화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남자를 좋아하는 호색가로 나옵니다. 자유 분방해서 아담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산 여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숙한 요조숙녀 이브에게 아내라는 자리를 빼앗기는 거죠.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입니다.

좀 이상한 거는 태초에 아담과 이브 두 사람을 만들었다면 지구라는 허허벌판에 사람이라곤 남녀 한 쌍만 존재할 건데, 릴리스가 다른 남자들도 쳐다보고, 그래서 속된 말로 ‘바람둥이’라는 말에 모순이 있는 거 아닌가요? 구약이 유대민족의 역사를 취사선택한 건 아닐까요? 릴리스는 이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역사학과에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이란의 테헤란, 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를 한 학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특히 4대문명의 발상지며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공부한 교수도 많아야 합니다.

중국의 역사를 마스터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실체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라면서 중국을 욕할 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문헌을 통해 고구려, 고조선, 발해 등이 우리의 역사라는 걸 주장할 수 있는 학자가 많이 나와 국제 역사학 세미나에서 중국 역사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고 과학도 그런 맥락입니다.

영국의 의학자이자 생리학자였던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가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논문'이란 소책자를 간행한 1628년에서야 혈액순환에 대한 과학적 체계가 마련됐지만 혈액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1799년 미국 워싱턴 대통령은 당시 최신 치료법이라고 하는 방혈을 하는 도중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숨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방혈(放血, bloodletting)은 그야말로 몸에서 피를 뽑아내 방출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체했을 때 바늘로 손가락을 따는 걸 일단 생각해 보죠. 나쁜 피를 내보내는 겁니다.

워싱턴은 잘못된 방혈(放血)로 숨져

▲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당시 피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방혈에 의한 과다 출혈로 숨졌다는 의학자들의주장이 많다.  ⓒ
워싱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on December 12, 1799, Washington spent several hours inspecting his farms on horseback, in snow and hail and freezing rain. He sat down to dine that evening without changing his wet clothes. The next morning, he awoke with a bad cold, fever and a throat infection called quinsy that turned into acute laryngitis and pneumonia.”

“1799년 12월 12일, 워싱턴은 눈과, 우박, 그리고 차가운 비 속에서 말을 타고 여러 시간 동안 농장을 둘러봤다. 그는 그날 저녁 젖은 옷을 갈아 입지도 않은 채 앉아서 식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심한 오한과, 열, 그리고 편도선염이라고 불리는 목의 통증으로 잠을 깼고 심한 후두염과 폐렴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Washington died on the evening of December 14, 1799, at his home, while attended by Dr. James Craik, one of his closest friends, and Tobias Lear, Washington’s personal secretary. Lear would record the account in his journal. From Lear’s account, we receive Washington’s last words: Tis well .”

“워싱턴은 1799년 12월 14일 그의 절친한 친구인 제임스 크레이크 박사와 개인 비서인 토비아스 리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리어는 그의 논문 한가운데서 그 설명을 기록했다. 리어의 설명에 의해 워싱턴의 마지막 말은 ‘Tis well’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er of the United States) 워싱턴은 세상을 하직합니다. 그가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건 아시죠? 크레이크 박사는 그의 개인 주치의입니다. Tis는 It is의 준말입니다. 그러면“It is well”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좀 품위 있게 "잘 될 꺼야, 죽지 않을 꺼야, 그러니깐 걱정하지 마” 그런 뜻일까요? 아니면 "모든 것은 좋았고, 나에겐 인생은 축복이었어. 그래서 죽어도 한이 없어” 그런 뜻일까요? 또 아니면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 그저 나온 이야기일까요?

다음 부분을 좀 보실까요? “Modern doctors believe that Washington died from either epiglottitis or since he was bled as part of the treatment, a combination of shock from the loss of five pints of blood, as well as asphyxia and dehydration.”

“현대 의사들은 워싱턴이 후두개염이나 아니면 그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었다고 믿는다. 5파인트의 피가 빠져 나가고, 또한 호흡곤란과 탈수가 겹쳐 죽었다는 것이다.”

파인트는 계산에서 영국과 미국이 좀 다릅니다. 1파인트가 영국에서는 0.57리터, 미국에서는 0.47리터. 그러면 미국 방식대로 5x0.47하면, 워싱턴이 2.35리터의 피를 흘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리터 페트병 아시죠? 그보다 더한 피를 방혈한 거죠. 많은 양입니다.

O형은 C형 대신 ‘응고반응이 없는 제로’로 등장

▲ 고대 이오니아인의 방혈과 수혈. 한 팔로는 양의 피를 받고, 다른 한 팔로는 피를 방혈하고 있다.  ⓒ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병을 고치기 위해 그만큼의 많은 피를 흘릴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거죠. 방혈이 더럽거나 오염된 피를 내보내 염증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에도 피에 대한 일종의 미신이 존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을 던져 줍니다. 질병이나 염증에 관해서, 그리고 워싱턴의 후두개염 치료에 나쁜 피를 내보내는 당시의 최신 의학이 맞는 건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러나 방혈이 염증 치료의 한 부분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특히 심한 열이 있을 경우, 고열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방혈이라는 하나의 의술이 자리 잡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 방혈이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된 의술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종기의 피고름을 연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부풀러져서 워싱턴은 피에 대해 미신을 믿는 의사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도 파다합니다. 피 속의 더러운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방혈하다가 출혈이 너무 많아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지를 보면 워싱턴은 악성 독감에 걸려 하루가 지난 바로 다음날 죽었습니다.

그때가 18세기 말, 19세기 초라고 생각하고 당시 의학과 과학이 어느 수준에 있었는지를 상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발표한 게 1859년의 일입니다. 워싱턴이 사망하고 나서 60년이 흘러 진화론이 나온 겁니다. 피에 대한 미신, 혹은 잘못된 인식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죠.

모든 혈액형이 서로 친화적인 것이 아닙니다.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적대적인 혈액형이 섞일 경우 혈액 덩어리 또는 응집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중요한 것은 어떨 때는 응고가 안 되고, 어떨 때는 응고가 되느냐 하는 거죠. 간단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그걸 밝힌 장본인이 란드슈타이너입니다.

그런데 알파벳으로 혈액형을 구분하자면 ABC로 하면 될걸 C 대신에 왜 O가 등장하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란트슈타이너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란드슈타이너는 이러한 응고의 이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1901년 세 가지 형질의 혈액형을 찾아내 A, B, C형으로 이름 붙입니다. 그런데 다른 혈액형을 만나도 굳어지는 현상이 안 나타나는 C형이 참 신기했습니다.

주는 데(blood donation)는 아낌이 없이 관대합니다. 응고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응고반응이 제로라는 뜻에서 나중에 C형을 O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O형을 ‘남성다운 혈액형’이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요?

피가 굳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정상적인 화학반응

1년 뒤에는 받는 것만을 좋아하는 깍쟁이 AB형까지 밝혀냅니다. 그래서 결국 수혈을 할 때 피가 굳는 현상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항체와 항원 간에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화학반응이라는 사실을 발표하는 거죠. 그래서 피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겁니다.

오늘날 혈액형 기준은 500여 종에 이르지만 주류는 여전히 100여 년 전에 란드슈타이너가 발견한 ABO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피가 모자라거나 수혈이 잘못돼 죽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TV 자막에 Rh마이너스 혈액형을 찾는다는 내용도 별로 없습니다. 혈액은행이 생겼기 때문이죠. 모두 우직하면서도 일생을 혈액연구에 매달린 란드슈타이너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두법을 만들어 낸 제너도, 파스퇴르도,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도,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ABO식의 혈액형을 발견해 인간의 생명을 구한 란드슈타이너의 업적 또한 대단합니다.

“B형 남자는 바람둥이니깐 상대할 게 못돼!”, “AB형은 머리가 비상하고 좋지만 요절하는 천재가 많대. 그래서 남편감으로는… ” 피가 성격과 많은 관계가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또 굳이 아니더라도 수다 대상 1호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란드슈타이너는 말이 거의 없고 그야말로 우직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무수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또 혈액형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위대한 엔터테이너(entertainer)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흉측한 범인을 잡는데도 이바지 했습니다.

그래서 혈액형 갖고 수다만 떨지 말고 란드슈타이너라는 이름도 기억하는 게 그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다른 뜻이 아니라 공부를 좀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피에 대한 미신을 불식시켜

버트란트 러셀 경의 이 이야기를 보면서 ABO 혈액형의 란드슈타이너 이야기를 끝마치도록 하죠. “There is…in our day, powerful antidote to nonsense, which hardly existed in earlier times-I mean science. Science cannot be ignored or rejected, because it is bound up with modern technique; it is essential alike to prosperity in peace and to victory in war.

That is, perhaps from an intellectual point of view, the most hopeful feature of our age, and the one which makes it most likely that we shall escape complete submersion in some new or old superstition.”

“옛날에는 결코 존재하기 힘든 일로, 무지에 도전할 수 있는 강력한 소독약이 우리 시대에 있다. 과학을 말하는 것이다. 과학은 현대적인 기술과 관련이 돼 있기 때문에 무시되거나 거부당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기술) 평화 속의 번영을 위해서도, 전쟁에서 승리를 하는 데도 똑같이 중요하다.

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희망을 주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미신과 옛날의 미신에 완전히 젖어 드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미신’이란 무얼 이야기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7.04.26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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