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항생제 남용 ‘가축 반란’ 부른다
뉴스메이커 2005-06-26

‘예방 목적’ 항생제 투여가 내성균 양산… “배합사료에 항생제 섞는 것 금지해야”

우리나라의 가축들은 ‘과잉진료’에 시달린다. 사람보다 가축에 들어가는 항생제가 더 많다. 축산·수산업에서 사용되는 사료 첨가용 항생제 사용량은 전체 항생제 판매량의 무려 54%를 차지한다. OECD 국가 중 단연 선두다.

전체 56%에 달하는 항생제가 ‘예방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예방 목적 항생제 투여는 내성균 발생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가축에 잔류하는 항생제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문제다.

항생제가 육류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면 항생제 내성을 유발해 질병의 확산을 부를 수도 있다. 서울대 수의대 박용호 교수의 조사 보고서는 사료첨가 항생제 남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항생제와 그 내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과 덴마크의 항생제 사용량을 비교 분석했다. 한국은 덴마크에 비해 돼지의 경우 7배 이상, 소의 경우는 2배가 넘는 항생제를 사용한다. 덴마크의 축산농은 닭을 키울 때는 항생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돼지 항생제 덴마크의 ‘7배’

항생제는 ‘한 미생물(세균)이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저해하기 위해 만든 천연물질’이다. 즉 노화가 시작된 세균이 다른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만든 독성물질이다.

항생물질은 처음 발견 이후 ‘기적의 약(miracle drug)’, 또는 ‘신비의 탄환(magic bullet)’으로 불렸다. 효능은 참으로 놀라웠다. 수많은 사람이 초기 항생물질 ‘페니실린’ 덕에 생명을 건졌다.

1942년 미국 보스턴의 유흥지대 코코넛 그로브의 나이트클럽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페니실린은 무려 200명의 죽어가는 생명을 단번에 살렸다.
페니실린이 없었다면 2차대전 당시의 사망자 수가 2배 이상 늘어났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그러나 항생제의 오남용은 부메랑이었다. 병원균에 약제 내성(drug resistance)을 일으켜 항생제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다.

축산농가의 ‘자가배합’이 문제

사료에 섞여 먹이는 항생제의 종류가 많은 것이 또한 문제로 꼽힌다. 많은 종류의 항생제를 사용하면 다제(2개 이상의 항생제) 내성균 발생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4월말까지는 무려 53종의 항생제를 사료첨가용으로 승인했다. 일본의 두배 이상, 유럽의 5배나 되는 수치다. 심각성을 인식한 농림부는 관계 법령을 개정, 지난 5월부터 그 숫자를 23종으로 축소키로 했다.

축산·수산물에 대한 항생제의 연도별 사용량도 줄어들고 있긴 하다. 2001년 1595t에서 2004년 1334t으로 줄었다. 그러나 그 기간 가축 수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개체당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내성률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경고한다. 강원대 수의학과 김두 교수는 닭에서 분리한 포도상구균(식중독 유발균)의 경우 항생제(테트라사이클린)에 대한 내성률이 96%에 달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98년부터 항생제 남용을 엄격히 규제한 덴마크는 같은 균의 내성률이 2%에 불과하다.

농림부 축산물위생과 이상진 서기관은 그와 같은 내성률 비교는 극단적인 사례의 단순비교라고 주장한다. 덴마크의 경우도 돼지에서 분리한 황색포도상규균의 내성률은 85%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항생제의 남용에서 비롯되는 이상 현상들이 자주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유방염에 걸린 소의 젖 10%에서 웬만한 항생제로는 죽일 수 없는 포도상구균이 나왔다고 밝힌 적이 있다.

물론 유방염에 걸린 소의 우유가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축산농가에서 원유(原乳)를 채집하는 우유 제조사는 세균 유무 검사, 항생제 잔류검사를 매일 실시하고, 이상이 있는 우유를 출하한 축산농가는 매우 큰 피해를 보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이 나돌기 쉬운 계절에 항생제를 사료에 섞어 공급하는 이른바 ‘클리닝 서비스’는 심각한 내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나머지 항생제도 대부분 축산농가의 자가배합에 따라 소비되며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의 처방을 받아 소비되는 항생제는 전체의 8%에 불과하다.

실제로 파주에서 만난 낙농업자 박철호씨(가명·48)는 “젖소를 5년 정도 키우면 수의사 못지 않은 지식이 쌓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자가배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농림부의 주무부서인 축산물위생과는 “항생제 등 동물약품의 수의사 처방 의무화 제도는 아직 실시하지 않고 있지만 배합사료업체는 고용된 수의사의 지도에 따라 항생제를 사용해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동물병원협의회 관계자들은 “선진국처럼 배합사료를 만들 때 항생제를 섞는 것을 금지하고, 약품이 필요할 경우 수의사의 처방을 받아 먹이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축 항생제가 남용되는 근본 원인은 농장에 ‘자가치료’를 허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주요 하천에 내성 대장균 ‘범람’

가축의 잔류 항생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농림부도 올 3월초부터 ‘임시 출하 정지제도’를 도입했다. 출하 전 15일간은 항생제를 투여할 수 없고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진성검사가 완료될 때까지 출하를 정지하는 제도다.

2004년 기준으로 잔류 위반율은 0.25%로 미국 0.73%, 영국 0.24% 등에 비해 높은 수치는 아니다. ‘항생제 범벅’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국민과 축산업자를 당혹스럽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축산업계의 항생제 남용은 ‘잔류 피해’보다 ‘내성균 피해’가 더 심각하고 근원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강, 낙동강, 금호강, 중랑천 등에서는 각종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고 있는 대장균이 발견되고 있다. 항생제에 노출된 가축의 분뇨나 병원 폐수 등이 처리되지 않은 채 하천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최근 양돈업계의 최대 고민인 PMW증후군 역시 예방과 치료법을 전혀 찾을 길이 없어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송재훈 교수도 “퀴놀론계 항생제가 첨가된 사료를 먹은 닭에서 살모넬라 내성균이 발견됐고 이 닭고기를 먹은 사람이 살모넬라균 식중독을 일으킨 사례가 외국에서 이미 보고됐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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