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의 조화’ 건강의 상징 ‘치아’

2007년 09월 19일
 

한국 아이의 나이는 태어나는 순간 1세가 된다. 서구와는 달리 엄마의 뱃속에서 보낸 10개월도 아이의 ‘인생’으로 쳐 주는 셈이다.
태아는 10개월 동안 인간으로서의 신체적 조건을 거의 갖추게 된다. 치아만은 예외다. 이 때문에 치아는 생후 아기의 몸을 인간으로서 온전하게 만드는 키워드다. 아이에게 첫 치아가 나면 온 가족이 흥분하고 축복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는 치아가 생기면 엄마와 젖으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고체 음식물을 먹어야 키와 두뇌의 성장속도가 빨라진다.
전신건강-뇌 발달에 영향… 이젠 ‘패션시대’로

32개(사랑니 4개 포함)의 치아, 잇몸, 턱으로 이뤄진 구강구조는 입속 건강뿐만 아니라 전신건강, 뇌의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동의보감에서는 신체의 모든 경락이 턱과 치아를 지나가기 때문에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신체에 병증이 생긴다고 했다.

실제 만성두통의 반 이상은 아래윗니의 맞물림이 나쁘거나 턱관절에 이상이 있을 때 생긴다. 이의 맞물림이 나쁘면 등이 굽고 척추가 휘거나 심하면 디스크를 앓게 된다. 근육장애, 요통도 생기기 쉽다. 미국에서는 운동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종종 아래턱 위치를 교정하는 특수 마우스피스를 낄 정도로 구강구조는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는 아래윗니의 맞물림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치과 치료를 받은 뒤 키의 성장이 두 배나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일본 아사히대는 치아의 씹는 힘이 좋아야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만 5, 6세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능과 씹는 힘의 관계를 조사한 내용이다.

건강한 치아는 인간의 웃음을 완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미용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중요하다. 웃음은 남녀 간 화학반응을 매개하는 수단이자 사람 관계의 윤활유다. 하지만 치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마음껏 웃고 싶어도 결점을 가리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웃음이 일그러지게 된다.

치아가 고르지 못할 때, 치아 색깔이 누렇거나 깨끗하지 못할 때, 잇몸에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은 어색한 미소를 짓게 되고 대인관계에도 점점 자신감을 잃는 경향이 있다. 치아의 모양에 따라 사람이 늙어 보이기도 하고 젊어 보이기도 한다.

예치과 김석균 대표원장은 “누런 이를 하얗게 만들고, 벌어진 송곳니를 안으로 모아주고 너무 안쪽으로 들어간 옥니를 바로 잡아줘서 이를 물었을 때 윗니가 아랫니를 자연스레 덮도록 하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말했다.

요즘은 하얗고 건강하며 얼굴을 젊어보이게 하는 치아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예쁜 눈, 오뚝한 코, 갸름한 얼굴형에 대한 관심 이상이다. 바야흐로 치아가 패션인 시대다.

치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인간은 치아에 대해 무지했다.

17세기에는 이를 뽑는 사람이 광장에 구경꾼들을 모아놓고 환자의 이를 뽑는 ‘쇼’ 형태의 치료가 유행했다. 20세기 초기에는 내과질환이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치아를 뽑기도 했다. 올 초에 국내에 소개된 책 ‘현대정신의학잔혹사’에 따르면 ‘열이 나는 병은 많은 양의 피를 뽑아서 치료할 수 있다’는 고대 의학의 신념을 이어받은 미국의 일부 의사들이 정신과나 내과 환자들의 이를 뽑기도 했다.

하지만 상실된 치아를 메우려는 과학적 노력은 꾸준히 이뤄져 왔다.

18세기 영국 상류사회에서는 젊은 사람으로부터 치아를 이식받는 게 유행했다. 하지만 감염률이 높아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19세기 말에는 나사형태의 인공 치아를 잇몸에 심는 최초의 ‘임플란트’ 시도가 나오기도 했다. 티타늄을 활용한 현대적 의미의 임플란트는 1970년대 들어서야 시작됐다. 요즘은 치아가 없으면 임플란트나 틀니로, 치아가 남아있으면 도자기를 덧씌우는 크라운이나 라미네이트로 감쪽같이 새 이를 만들어 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닌 글자 그대로 보자면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치과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는 잇몸으로 살 필요가 없다.

치아는 인간의 몸 중 가장 단단한 부위다. 몸의 다른 부분이 흙으로 사라져도, 오랜 세월이 지나 뼈까지 풍화돼도 치아는 남는다. 후손들은 우리의 치아를 통해 21세기 인류의 건강상태를 측정할지 모른다. 치아를 잘 관리해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글=하임숙, 디자인=김성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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