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교육은 소수 영재가 아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이를 위해 개인 창의성을 수용하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창의성 교육의 개념을 ‘미래를 책임질 소수 영재를 위한 교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사회 각 분야를 아우르는 범위까지 확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달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창의적 인재, 우리의 미래’ 심포지엄에는 교육·과학·문화·산업 등 각계 전문가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 원동력으로 떠오르는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각종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창의성 교육을 일반 교실로 점차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창의적 인재, 우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창의교육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규교육 속에서 창의 교육 이뤄져

주제발표에 나선 박인호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인재기획단장은 “영국은 별도의 교육과정이 아닌 정규교육 속에서 창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영국은 2000년부터 3년간 ‘창의성’의 개념을 교육현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한 뒤 국가 차원의 창의교육 자료를 공식 제작해 보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교과목을 융합해 창의성 교육을 하는 미국 ‘매그닛스쿨’을 한 예로 들고 “모든 분야의 교과과정에 예술과 과학기술을 통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기균 과학관과문화 대표는 ‘창의 리소스 확보’라는 주제 발표에서 “과학관을 전시공간이 아닌 교육시설로 바꿔야 한다”며 “과학 관련 사진·영상물을 수집하고 분류한 디지털도서관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이언스, 네이처 등 해외 유력 과학학술지의 한국어판 제작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일본어판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미국 과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고 있다”며 대표적 사례로 ‘사이언스 포 올’개념을 소개했다. 소수의 과학영재를 키우는 것에서 모든 학생의 과학적 소양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 권 대표는 “전체적으로 과학소양이 높여야 그 안에서 과학 영재도 길러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미국의 과학교육이 지식전달에서 소양계발로, 이론 전달에서 체험·탐구 위주로 전환하고 있다”며 “(넓고 얕지 않은) 적은 수의 중요한 과학개념을 깊이 있게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의성 교육, 영재·수월성 교육과 구분해야

이어 열린 지정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소수의 영재가 아닌 모든 학생에게 적용할 수 있는 창의성 교육을 해야 하고,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두희 동아사이언스 대표는 “창의성 교육은 소수 영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창의성 교육을 영재 교육 혹은 수월성 교육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창의성을 키워낼 수 있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환경조성이 중요하다”며 “창의재단이 이 역할을 해야 하며, 앞으로 지식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퀴즈나 경시대회보다 아이디어를 겨루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교육방송(EBS)을 통해 방영된 ‘창의성을 찾아서’를 만든 이정옥 프로듀서는 “14세기 이탈리아나 20세기 미국처럼 ‘왜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 창의적 산물이 집중될까’, ‘어떤 환경이 창의성을 키워내는 걸까’에 초점을 뒀다”며 “한국의 서열문화, 집단문화가 창의성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1세기는 어느 한 사람만 똑똑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재즈 공연처럼 각자가 창의성을 발휘하지만 전체적으로도 시너지를 이루는 집단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나의 답 요구하는 교육 바꿔야 창의 교육 가능

학교 교실이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나왔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항공우주 분야의 정교한 기술개발은 기계·전기·전자·소재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뿐만 아니라 고도의 창의성과 유연한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분야”라며 “국가 우주개발의 미래는 창의적 인력 확보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세계나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능력을 창의성으로 봤을 때 교육 현장에서 예술은 창의성과 동의어”라며 “그러나 한국의 대학생을 보면 초중고 교실에서 창의성이 ‘살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초중등 교사가 창의성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수법을 개발하는 것”이라면서 “하나의 답을 요구하는 교육을 유지하는 이상 과학창의재단이 무슨 사업을 추진해도 사상누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윤수(연세대 교수) 창의공학연구원장은 “누구나 주변의 크고 작은 무언가에 대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창의적”이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알아주는 사람, 수용해줄 수 있는 문화적 바탕 등 환경조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종오 서울 월계고 교사는 “입시 풍토를 바꾸지 않고는 창의 교육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창의 교육을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과학 교육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창의성은 일정 지식 있어야 발현…수업 시수 늘리고 교과 융합형 자료 제작

지정토론에 이어서 ‘수학 과학교육 내실화 방안’을 주제로 한 특강이 열렸다. 지난해 발족한 창의재단 산하 ‘수학 과학교육 내실화 기획위원회’는 초중등 수학·과학에 대한 국가 교육과정 개발을 전담하는 기구이며, 위원장은 이혜숙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장이 맡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문과든, 이과든 모든 시민이 일정 수준의 과학을 이해하는 교육에 초점을 둬 내실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 과학에서 창의성은 어느 수준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발현된다”며 “초중등 수학 과학의 수업시수를 늘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교과 내용에 첨단 과학을 반영하고 탐구와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개선할 것”이라며 “창의성 개발을 위해 과목간 유사 개념들을 조사 분석한 보고서를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이 밖에 △과학Ⅱ와 같은 심화과목은 선택하는 학생이 적더라도 고교 현장에서는 의무적으로 강의를 개설해 선택권을 보장하고 △교사 연수와 교과 연구를 위해 수학·과학 교사에게 안식년을 도입하며 △문과 위주인 교대의 교사양성과정을 개선해 초등 과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등의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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