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의 자식 사랑을 본받으소서! 탁란을 바라본 세종의 시각 (하) 2009년 03월 19일(목)

이야기과학실록 1407년(태종 7년) 5월 22일 형조 우참의 안노생 등이 올린 상소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었다.

“조부와 자손은 실로 한 기운의 나눔이니 뻐꾸기의 마음을 본받는다면 어찌 자손의 송사(訟事)가 있겠습니까?”

내용인즉, 뻐꾸기를 본받는다면 집안 자손의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1449년(세종 31년) 5월 28일 군자 판관 조휘가 올린 상소문에도 비슷한 의미의 문구가 들어 있다.

“아비가 비록 사랑하는 것이 고르지 못하여 혹시 뻐꾸기만 못하다 하더라도 박숭경으로서는 마땅히 순하게 그 뜻을 받아서 형제 간에 화합하고 모자 간에 처음같이 하는 것이 그의 직분인데, 도리어 앞뒤를 생각지 않고 분을 품고 성을 내어 말과 낯빛이 흥분되어서 모자가 서로 해치기까지 하였음은 강상(綱常)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힌 것이니 추방하여도 가하고 죽여도 가합니다.”

▲ 뱁새는 인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새다 
왜 이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하필이면 뻐꾸기에 비유하여 표현했을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뻐꾸기를 공평하고 현명하게 자식 사랑을 실천하는 영리한 새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즉, 뻐꾸기는 새끼에게 먹이를 먹일 때 아침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저녁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먹여서 똑같이 부족함 없이 키운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뻐꾸기에 대한 인식에 그와는 매우 다르다. 한때 ‘뻐꾸기 엄마’라는 유행어가 나돈 적이 있다. 이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병역면제 혜택이나 시민권 획득 등을 위해 해외까지 가서 아이를 낳는 원정출산모들을 일컫는 말이다. 조국을 두고 남의 나라에서 출산하는 것이 뻐꾸기와 비슷하다 해서 만들어진 유행어였다.

뱁새 주위를 맴도는 스토커

왜 이런 유행어가 만들어졌는지는 뻐꾸기의 알 낳기 행태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뻐꾸기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풀숲에 둥지를 마련하는 뱁새 주위를 맴돌며 눈치를 본다.

뱁새는 인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새로서, 정식 이름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뱁새는 덤불 속에 지은 둥지에 청색 알을 3~5개 정도 낳는데, 그때부터 스토커처럼 뱁새 주위를 맴돌던 뻐꾸기의 행동이 개시된다.

뻐꾸기는 먼저 뱁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둥지로 날아와 알을 확인하고는 그 중 하나를 훔쳐간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날아와 뱁새 둥지에다 자기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다시 뱁새 알 하나를 훔쳐 가지고는 훌쩍 날아가 버린다.

뻐꾸기 알은 뱁새 알보다 두세 배쯤 크기가 큰 데도 둥지로 돌아온 뱁새는 그대로 알을 품어준다. 뻐꾸기는 12~15개의 알을 낳는데, 그럼 나머지 알을 어떻게 하는 걸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뱁새의 행동영역은 반경 700n에 불과하지만 뻐꾸기의 행동영역은 반경 3㎞에 이른다. 즉, 뻐꾸기 영역 내에는 뱁새 둥지가 10여 개 정도 있다. 따라서 뻐꾸기는 한 둥지에 하나씩만 몰래 탁란을 해도 충분히 알을 다 낳을 수 있다.

뱁새보다 조금 늦게 낳았지만 뻐꾸기 알은 뱁새 알보다 2~3일 먼저 부화한다. 그러면 뱁새 어미는 알 껍질을 먹어 치운 다음 새끼를 품어서 젖은 몸을 말려준다. 하지만 이때부터 참혹한 일이 벌어진다.

모전자전이라 했던가. 아니, 뻐꾸기 새끼는 남의 둥지에 알을 몰래 맡긴 어미보다 한 술 더 떠서 태어나자마자 희한한 일을 저지른다. 눈도 뜨지 못한 뻐꾸기 새끼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가차 없이 밀어내 버린다. 보이지 않으니,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만 있으면 무조건 밀어내는 본능적인 행동인 것이다.

▲ 뻐꾸기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둥지가 너무 깊어서 아무리 뻐꾸기라 해도 알을 밖으로 밀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뱁새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뻐꾸기 새끼는 계속해서 자기보다 훨씬 작은 몸집의 뱁새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자신 외에 한 마리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심지어 뱁새 어미가 먹이를 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살육 행위는 계속된다. 덩치가 큰 뻐꾸기 새끼로서는 뱁새 새끼 5마리가 먹는 먹이를 독차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남겨진 뻐꾸기 새끼는 성장하면서도 끊임없이 계모인 뱁새를 속인다. 보통 새의 새끼는 ‘삐약...삐약...삐약’하며 단속적으로 울지만, 뻐꾸기 새끼는 ‘삐약, 삐약, 삐약’하며 연속적으로 울어서 뱁새 새끼들의 전체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그래야만 뱁새가 여러 마리의 새끼가 있는 것으로 착각해 먹이를 자주 물어다준다.

기생조와 숙주새 간의 군비 경쟁

하지만 뱁새도 영 바보는 아니다. 처음에는 뻐꾸기 새끼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지만 그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스스로 방어 대책을 세우게 된다. 뻐꾸기 알을 가려내 버린다든다 혹은 둥지를 옮기기도 한다.

호주의 조류학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뻐꾸기 알을 양자로 삼은 굴뚝새의 경우 울음소리 등을 통해 자기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뻐꾸기 새끼를 굶겨 죽이기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우리나라의 뱁새는 흰색 알을 낳아서 청색의 뻐꾸기 알과 구분하는 개체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뻐꾸기들의 대응 또한 만만치 않다.

굴뚝새의 둥지에서 태어난 호주의 뻐꾸기 새끼들은 먹이를 달라고 외치는 굴뚝새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내기 시작했다. 또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일부 뻐꾸기들이 흰색에 가까운 알을 낳아 흰색 알을 낳는 뱁새를 깜쪽같이 속인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의 강대국들처럼 탁란을 하는 기생조와 남의 새끼를 기르는 숙주새 간에 끊임없는 군비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군비 경쟁이 계속 이루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결국 터지고 만다.

자신의 알을 내다버린 숙주새의 둥지를 발견하면 뻐꾸기는 그 둥지 자체를 파괴해버린다. 피해를 당한 새가 다른 곳에 새로 둥지를 만들면 또 다시 찾아가 부숴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신의 알보다 숙주새의 새끼들이 먼저 태어날 경우 뻐꾸기는 그 새끼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린다. 숙주새가 새로 알을 낳으면 다시 탁란하기 위한 속셈이다.

미국 연구팀이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갈색머리 찌르레기를 관찰한 결과, 이런 무자비한 보복 행위가 그대로 드러났다. 휘파람새는 갈색머리 찌르레기의 탁란을 비교적 순순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데 연구팀이 휘파람새의 둥지에서 찌르레기 알을 치우자 그것을 눈치챈 찌르레기가 둥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커져 버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뱁새 어미 
둥지가 없어진 휘파람새는 어쩔 수 없이 새 둥지를 지어서 알을 낳는다. 그러면 분탕질을 한 찌르레기가 다시 와서 거기다 탁란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탁란을 하는 기생조들의 이 같은 무자비한 보복 행위를 일컬어 ‘마피아가설’이라고 한다. 위협을 하고 상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보복을 일삼는 마피아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뻐꾸기는 자기 새끼를 직접 키우지 않고 남에다 맡기는 것일까. 알고 보면 남모르는 속사정이 있다.

탁란의 애초 시작은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우는 것보다 남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되풀이하다 보니 뻐꾸기는 특이한 구조로 진화하게 됐다.

부리가 날카롭고 몸이 평평한 뻐꾸기는 가슴의 가로줄무늬와 다리를 덮은 털이 맹금류를 닮았다. 그러나 날렵하지 못한 비행실력은 맹금류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또한 다리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둥지 만들기가 어렵고 알을 품는 능력도 결핍되어 있다. 오랜 마피아 생활을 거치면서 이제는 자신이 직접 새끼를 키울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딱새가 산비둘기만한 새끼를 낳았다는 장효생의 보고를 미덥지 못해 한 세종이 만약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휘가 올린 상소문에 대해 토를 달았을지 모른다. 뻐꾸기는 결코 자식 사랑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9.03.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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