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을 바라본 세종의 시각 이야기 과학 실록 (44) 2009년 03월 12일(목)

이야기과학실록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여 시각과 방위, 계절을 살필 수 있는 과학기구를 비치하게 한 세종대왕은 그 명성만큼이나 과학기술 업적도 많이 남긴 ‘과학대왕’이다. 그런데 1445년(세종 27년) 6월 7일 전 현감 장효생이 세종에게 이상한 사실을 보고했다.

자신의 집 처마에 딱새라는 작은 새가 집어 지어 새끼를 쳤는데, 크기가 산비둘기만 하므로 이상히 여겨 노끈으로 매달아 날아가지 못하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세종은 내시를 시켜 어떻게 된 연유인지 살펴보게 했다. 하지만 세종은 과학대왕답게 상당히 과학적인 시각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았다.

▲ 과밀한 서식지에 사는 재갈매기 간에는 먹이를 위한 카니발리즘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전에도 작은 새가 큰 새를 낳았다거나 뱁새가 독수리를 낳았다는 등의 말을 들었지만, 세종 자신이 생각하기엔 다른 새의 알을 까서 기른 것인지 혹은 사람이 다른 새끼를 가지고서는 작은 새의 새끼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믿었다.

그에 대한 하나의 예로서 세종은 조선 사람이 중국 북경에 가서 천자의 좌우에 서 있는 두 마리의 개를 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사람이 중국인에게 듣기로는 천자의 좌우에 있는 개들은 서쪽 지방의 독수리가 낳은 개로서 천자에게 바쳐졌다는 것.

하지만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세종이 직접 확인해본 결과, “독수리가 어찌 개를 낳을 리 있겠습니까. 독수리가 강아지를 잡아서 자기 새끼들에게 먹이고자 했는데 다행히 개가 살았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즉, 독수리가 낳은 개라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 보니 독수리가 새끼들에게 먹이기 위해 낚아채 온 강아지가 죽지 않고 독수리 새끼들과 함께 자라서 큰 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로 미루어 볼 때 장효생이 보고한 딱새의 비둘기만한 새끼는 필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수리가 잡아온 개를 살려둔 까닭

그러나 장효생이 말한 딱새의 새끼를 직접 본 신하는 단정코 다른 새가 낳은 것이 아니라고 세종에게 보고했다. 그럼 중국 천자가 기르는 개의 경우 왜 독수리가 먹이로 잡아다가 그렇게 새끼들과 함께 개를 애지중지 키우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북해 멤머트섬에 서식하는 재갈매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서 얻을 수 있다. 1만 마리 이상의 재갈매기들이 새끼를 낳고 부화시키는 멤머트섬은 번식철이 되면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과밀한 서식지에서 서로 새끼들을 먹여 살리려 경쟁하다 보니 둥지 영역 싸움은 물론 심지어 동족을 죽여서 먹이로 삼는 카니발리즘까지 성행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다른 둥지에서 새끼를 낚아채 자기 새끼들에게로 날아간 재갈매기 유괴범 한 마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 재갈매기의 경우 새끼를 기르는 둥지 가까이서는 남의 새끼를 죽이지 않는다 
잡혀온 새끼는 다행히도 유괴범의 둥지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어서, 그 둥지 속에서 유괴범 새끼들에게 둘러싸여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괴범 재갈매기가 그 새끼를 쪼아 죽여서 자기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지 않고, 그냥 놔두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 새끼들과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 즉, 독수리의 경우처럼 먹이로 잡아와서는 죽이지 않고 도리어 자기 자식으로 입양해버린 것이다. 맹금류에게 어미를 잃고 고아가 된 재갈매기 새끼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에 대한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진다.

멤머트섬에서 재갈매기 한 가족이 차지할 수 있는 둥지 영역은 2평방미터 남짓하다. 따라서 어미를 잃은 새끼들은 다른 재갈매기에 의해 그 둥지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목숨도 부지할 수 없게 된다.

어미를 잃고 둥지에서 쫓겨난 세 마리의 재갈매기 새끼 중 한 마리는 이웃집 재갈매기 어미의 공격으로 죽고, 다른 한 마리는 놀라서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은 새끼 한 마리는 아주 영리한 행동을 취했다.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형제를 죽인 바로 그 이웃 갈매기가 새끼를 품으러 가자 살며시 뒤로 다가간 것이다. 이를 눈치 챈 이웃 갈매기는 곧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위협했지만, 새끼는 그대로 달려서 둥지 앞까지 접근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형제를 물어 죽였던 재갈매기가 다정하게 날개짓을 하며 그 새끼를 둥지 속으로 불러들이고는 자기 새끼들과 함께 품어주는 것이 아닌가. 이웃 재갈매기의 그 같은 행동의 비밀은 바로 모성애였다. 새끼를 기르는 재갈매기들은 자신의 새끼들이 보고 있는 둥지 가까이서는 남의 새끼를 공격하거나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입양에 집착하는 타조

재갈매기의 경우 모성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의 새끼를 입양하지만, 애당초부터 계획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동물도 있다. 타조는 서열이 제일 높은 우두머리 암컷이 알을 낳으면 다른 암컷들에게도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게 하고서는 혼자서 자기 알과 다른 타조의 알을 모두 품는다.

▲ 우두머리 암컷 타조는 남의 새끼를 입양해 키우는 습성이 있다 
또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새끼를 거느린 다른 타조 어미를 만나면 싸워서 그 새끼들을 빼앗아 자신이 키운다. 타조의 이런 집착적인 입양 행위는 ‘희석효과’라는 가설로써 설명되곤 한다.

다른 암컷들에게 자신의 둥지에 알을 놓게 한 우두머리 암컷은 자신의 알은 가운데 놓고 다른 알은 가장자리로 빙 둘러서 배열한다. 그렇게 해 놓으면 외부의 침입자가 와서 알을 훔쳐도 자신의 알은 그에 대한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새끼를 키울 때도 빼앗아온 남의 새끼들은 뒤쪽이나 가장자리에 세우고 돌아다닌다. 그러면 맹수들의 공격에서 자기 새끼들이 화를 당할 확률이 그만큼 낮아진다. 즉, 자기 새끼들이 위험에 부딪칠 확률이 다른 새끼들로 인해 낮아지는 희석효과를 노린 행위이다.

그러나 새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포식동물의 눈에 띌 확률이 높아지므로, 우두머리 암컷 타조의 집착적인 입양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새들이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습성을 일컬어 ‘탁란(托卵)’ 또는 ‘번식기생’이라고 한다. 갈매기들이 한 번에 낳을 수 있는 알의 수는 보통 3개인데, 종종 5~6개의 알을 품고 있는 개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나머지 2~3개의 알이 탁란이라는 의미이다. 둥지를 마련하기 힘들거나 새끼를 키우기엔 아직 미숙한 암컷 갈매기들이 종종 이런 탁란을 하곤 한다.

한편 같은 종끼리 알을 맡기는 종내 탁란 이외에 생판 모르는 다른 종에게 탁란하는 새도 있다. 그 대표적인 새가 뻐꾸기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뻐꾸기가 이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편에서 계속)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9.03.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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