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64)
리처드 파인만(3)

▲ 여유만만의 파인만. 그는 죽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위대한 인간이다.  ⓒ
"죽는 것도 귀찮은 일이야!”

파인만이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말, "참 이렇게 죽는 것도 피곤한 짓이군!”

“Since his death in 1988, the Feynman legend has only grown, with the emergence of three biographies, various collections of his drawings and writings, and several reprintings of his collection of anecdotes,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But perhaps the words that best sum up his approach to life were his last. As Feynman lay dying of cancer, he woke up briefly from a coma to deliver this message: 'This dying is boring.”

1988년 사망한 이후, 파인만의 전설은 3권의 자서전, 그가 남긴 그림, 글, 그리고 그의 해학들을 담아 책으로 펴낸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로 유명세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아마도 인생에 대한 그의 접근방법(인생관)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그의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말일 것이다. 파인만은 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와중에 혼수상태에서 잠시 깨어나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다. ‘정말 이렇게 죽는 것도 참 피곤한 짓이군’”-2004년 6월 18일자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

참으로 재미있는 과학자죠? 아니 과학자이기 앞서 너무 기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그에게 경계라는 게 없습니다. 걸리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틀림 없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을 도통(道通)한 도사입니다.

옛날 공부도 많이 하고, 수행도 많이 한 스님이 결국 늙고 병이 들어 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제자들이 몰려와 통곡하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숨을 거두었던 이 스님이 벌떡 일어나더니만 일갈하면서 외치는 말, “야 이 놈들아, 내가 지금 막 관세음보살을 만나려고 했는데 너희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가버렸잖아! 제발 좀 떠들지 마, 시끄러워서 죽겠어 이 놈들아” 그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죽음을 애도하면서 후배들이나 친지들이 몰려와 애석해 하면서 울고 통곡했다면 숨을 거둔 파인만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랬을 겁니다. “제발 잠 좀 잡시다. 귀찮아 죽겠어요!” 그러다가도 남을 양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사람입니다.

비즈니스위크가 위대한 혁신가로 인정

미국의 비즈니스위크는 경제 주간지로 권위가 대단한 잡지입니다. 그런데 사업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자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MP3를 만들거나 성능 좋은 컴퓨터를 만든 과학자도 아닌데 왜 여기에 실렸냐고요? 그것도 양자물리학이라는 돈과는 전혀 무관한 전공을 한 사람을 왜 비즈니스위크가 크게 다루었느냐고요?

“This Nobel winner helped solve a basic flaw in quantum theory, made the esoteric familiar—and never missed a chance for a laugh. 이 노벨상 수상자는 양자이론에서 기본적인 결함을 해결하는 데 공로를 세워 그 난해한 이론(양자이론)을 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웃음을 잃는 법이 없었다.” 역시 비즈니스위크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비즈니스위크는 파인만을 20세기의 위대한 혁신가(innovator)로 다루었습니다. 뭐를 혁신했느냐고요? 그는 현대 물리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양자물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맨하탄프로젝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원자폭탄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기 때문에 위대한 혁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위크는 만만한 잡지가 아닙니다. 그를 위대한 혁신가로 다룬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파인만이라는 사람은 과학문명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현대사회에서 전설과 신화를 창조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인류의 승리, 고등동물 인간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하는 과학과 기술은 슬프게도 신화와 전설이 비집고 들어가 낄 수 있는 틈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꿈이 담겨 있는 신화와 전설이 자리 잡을 공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신화와 전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상입니다. 신화와 전설이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 공간을 뺏어 갑니다. 삭막하고 차가운 사회입니다.

그러나 파인만은 그러한 불모지에서 신화와 전설을 일구어낸 겁니다. 그는 철학자도, 사상가도, 그리고 종교가도 아닙니다. 더구나 히말라야의 깊은 산에서 명상과 수행을 한 요기(yogi)도 아닙니다. 그리고 종교를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신비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는 정확한 사실과 진리라고 하는 과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털털한 농담과, 짙은 해학과 위트 속에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과학과 과학자가 전설과 신화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전설과 신화가 아닐까요?

전설과 신화를 창조한 장본인

▲ 새로운 물리학 양자 물리학은 자연의 신비가 얼마나 심오한지를 가르쳐 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
그러나 정확히 따져 본다면 그가 산 인생은 그의 평범한 명언처럼 그저 좋은 것은 좋아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는, 평범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거죠.

'평상심(平相心)이 바로 도(道)'라는 걸 보여준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과학의 시대에 신화와 전설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것 아닐까요? 전설과 신화는 죽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 사람 아닌가요? 그래서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위대한 혁신가 대열에 올려 놓은 게 아닐까요?

혹시 필자가 파인만을 너무 좋아해서 비즈니스위크 기사를 확대 해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맨을 상대로 잡지와 광고를 팔아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권위지인 비즈니스위크는 파인만보다 더 대단하다는 아인슈타인을 혁신가 반열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파인만은 겸손한 사람은 아닙니다. 잘났다고 뻐기는 데도 도가 튼 양반입니다. “If I could explain it to the average person, I wouldn’t have been worth the Nobel Prize.”

“내가 그걸(양자이론에 대한 지식) 평범한 사람에게조차 설명할 수 있었던 거라면 나는 노벨상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을 걸세”

파인만은 어려운 양자물리학을 쉽게 풀이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또 그래서 노벨상을 받은 거죠. 쉽게 풀이했다고 남들은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군들, 그렇다고 난 쉬운 사람이 결코 아니야. 어려운 사람이야. 그러니깐 나를 만만히 보고 덤벼들지 마, 알았어?”라며 자랑하고 뻐기는 겁니다. 강의 도중 학생들에게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

자신을 자랑하는 데 도사

파인만의 삶을 보면 어떤 구속이나 경계가 없습니다. 장벽이 없는 과학자이며 그야말로 기인입니다. 파인만이 특히 최근 우리 곁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휴머니티도 휴머니티지만 그의 해학, 농담, 기괴한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기인 기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전설과 신화라는 건 도저히 발 붙일 수 없는 21세기에 파인만은 하나의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기인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It is a sure sign that a culture has reached a dead end when it is no longer intrigued by its myths. (사회의) 한 문화가 신화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을 때, 그것은 그 문화가 죽음의 끝에 도달했다는 정확한 신호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 비평가 그레일 마커스(Greil Marcus)의 이야기입니다. 록 비평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죠.

신화와 전설이 숨쉰다는 건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문학이 살고, 예술이 살고, 그리고 인간이 살 수 있는 것은 신화와 전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가 갈구하는 영웅과 우상은 훌륭한 철학자도, 사상가도, 종교가도 아닙니다. 기인입니다. 기인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를 주기 때문입니다. 아마 22세기가 시작될 때쯤 파인만은 전설과 신화 속의 더욱 더 위대한 인물이 돼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할 겁니다. 그의 해학과 유머가 아름다운 신화가 되는 겁니다. 아니 이미 시작됐죠?

“현대사회는 기인을 원해”

▲ 미국 과학기술의 핵심 NASA의 케네디 우주 센터. 그러나 파인만의 진단으로 일대 개혁을 진행해야만 했다.  ⓒ
파인만에게는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세 번째 부인에게서 난 딸입니다. 첫째 부인은 원자폭탄 실험 한 달을 앞두고 결핵으로 죽었고 둘째 부인 매리 루스(Mary Louise Bell)와 결혼하지만 곧 헤어집니다.

다시 1961년 영국 출신의 그에니스 하워드(Gweneth Howarth)와 결혼합니다. 총 세 번 한 거죠. 여기에서 파인만은 정신적 안정을 회복했고, 식었던 학문에 대한 열정도 되살아납니다. 딸 미쉘(Michelle)을 낳습니다.

하루는 한 제자가 당시 중학생이었던 미쉘을 보고 맘에 들어 딸이 크면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파인만은 그 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장래 사윗감으로 적절한지 일종의 면접시험을 치르는 거죠. 여러 질문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그야말로 걸작입니다.

“Do you have one male and one female parent? If no, explain. 당신은 한 명이 남성,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여성인 부모를 두고 있겠죠? 만약 아니라면 그에 대한 설명을 주시오”

정말 요절복통할 질문입니다. 재미있고, 기발하면서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인 부모’를 주의 깊게 생각하면 아마 웃음이 터져 나올 겁니다. 동성애 부부 들어 보셨나요?

“인간의 무지와 불완전을 인정하라”

파인만은 엄숙하게 인간의 무지와 불완전을 인정하라고 충고합니다. 그것을 인정할 때 희망이 열리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역사가 바로 보여주고 있다는 거죠. 자만과 기만 속에서는 희망과 자유가 싹틀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학문에 입문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It is in the admission of ignorance and the admission of uncertainty that there is hope for the continuous motion of human beings in some direction that doesn’t get confined, permanently blocked, as it has so many times before in various periods in the history of man”

“(인간의) 무지와 불완전을 인정할 때야 비로소 인간은 통제 받지 않고, 영원히 구속 받지 않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번 이미 나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이야기며 역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의 이야기보다 더 고매하고 깊은 이야기입니다. 두고두고 음미할 필요가 있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와 자연 앞에서 우리는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20세기 위대한 양자물리학자 파인만 속에서 과학기술이라는 지식을 찾는 게 아닙니다. 위대한 신화와 그 신화 속의 인간을 발견하는 겁니다. 그 곳에는 삶이 숨을 쉬고 있고, 사랑과 영혼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7.05.24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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