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65)
리처드 파인만(4)

▲ 강의하고 있는 파인만. 손짓과 표정이 마치 영화 속의배우 를 방불케 한다.  ⓒ
"천문학적 수치라는 말은 경제학적 수치로 바꿔 써야”

파인만은 정말 농담을 잘하는 과학자입니다.“There are 10^11 stars in the galaxy. That used to be a huge number. But it’s only a hundred billion. It’s less than the national deficit! We used to call them astronomical numbers. Now we should call them economical numbers.”

“은하수에는 10^11(10의 11제곱)이나 되는 많은 별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그 수는 천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건 우리나라(미국)의 재정적자보다도 작은 숫자에 불과하죠! 우리는 그걸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걸 경제학적인 숫자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닐까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우리는 아주 많은 숫자를 천문학적인 숫자(astronomical numbers)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숫자를 따지고 계산해 보니 미국의 재정적자 액수만큼도 못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숫자를 천문학적 수치라고 부르지 말고 경제학적 수치라고 부르는 게 오히려 맞다고 주장하는 거죠. 괜히 사족을 달았나요?

이 이야기의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의 도중에 한 것은 확실합니다. 미국의 경제 관료들 앞에서 한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이 말은 미국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꼬집는 가시가 돋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그 재정적자 액수가 엄청나게 높은 숫자를 자주 쓰는 천문학의 수치를 능가했으니 경제수치야말로 천문학 수치를 능가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화폐인 원으로 환산하기 위해 천억x800하면 얼마인가요? 80조인가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수치를 넘어선 액수네요. 파인만은 은유의 대가인가요? 비유의 대가인가요?

전설과 신화를 창조한 奇人

20세기 위대한 물리학자 파인만을 더 위대하게 만든 것은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의 삶과 인생입니다. 일상적인 틀을 깨고 과감하게 자유인으로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무소불통, 자유자재, 그리고 경계가 없는 삶이 그를 점차 신화 속의 인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겁니다.

콜롬비아 대학교수로 유명한 어윈 에드만(Irwin Edman, 1896~1954)은 현대사회에서 신화와 전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길 남깁니다.

“It is a myth, not a mandate, a fable not a logic, and symbol rather than a reason by which men are moved. 인간을 움직이는 건 법령이 아니라 신화다. 논리가 아니라 우화다. 이성이 아니라 상징이다.”

▲ 파인만은 그림을 즐겨 그렸다.  ⓒ
과학기술로 무장한 현대사회에 신화와 전설은 이제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과학기술은 오히려 이미 존재했던 신화와 전설마저도 아름다운 무대에서 끌어 내리고 있습니다.

“All the great things have been denied and we live in an intricacy of new and local mythologies, political, economic, poetic. 모든 위대한 것들(신화와 전설)이 거부 당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시적인, 갓 태어난, 그리고 국지적이며(편협한) 복잡한 신화들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 미국 변호사 출신의 시인, 시평론가, 퓰리처상 수상자-

신화와 전설이 메마르고 척박한 현대사회라는 토양에서는 휴머니티가 싹틀 수 없습니다. 뜨거운 가슴은 없고 차디찬 이성만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은 소중합니다. 그러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신화를 이끌어 낸 파인만이 위대한 겁니다.

영향을 끼친 과학자 가운데 7위

2004년의 자료에 따른 것입니다. 유명한 물리학 저널인 ‘Physics World’에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끼친 과학자 순위’ 설문조사에서 파인만은 7위를 차지합니다. 8위인 갈릴레이를 제치고 말입니다.

상위 그룹에 속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케플러도, 뉴턴도, 유클리드도 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과학자들을 총 망라한 순위에서 7위를 했다면 대단한 겁니다.

과학적인 업적도 물론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가 보여준 철학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요? 이제 3년이 지나 더욱 더 유명해지고 있는데 지금 설문조사를 하면 순위가 조금 더 오르지 않을까요? 그의 주가가 뜨고 있는 건 확실하잖아요?

“No problem is too small or too trivial if we can really do something about it. The worthwhile problems are the ones you can really solve or help solve, the one you can really contribute something to.”

“만약 우리가 그걸 통해 뭔가를 이룩할 수만 있다면 사소하거나 보잘 것 없는(그래서 버리거나 지나쳐 버릴) 문제란 없습니다. 가치가 있는 문제들이란 우리가 직접 해결하거나, 아니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즉 뭔가에 공헌할 수 있는 문제들이죠.”- 1966년 2월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의 고이치 마노(Koichi Mano) 물리학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그마하고 사소한 문제라도 지나쳐 버리지 말고 매달려 연구한다면 공헌할 수 있는 뭔가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과학이라는 학문은 더욱 그렇습니다. 조그마한 것을 통해 전체를 아는 겁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알 수는 없습니다.

맨하탄의 원폭기밀 금고를 열어 쪽지 남겨

‘금고털이(safebreaker, safecracker)’라는 별명은 파인만에게 항상 따라 다니는 단골 브랜드입니다. 별명이죠. 그러면 파인만은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라서 남의 집 금고를 털어 돈을 훔친 적이 있느냐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훌륭한 과학자가 됐느냐고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금고문을 자유자재로 여는 비상한 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금고문을 열지만 그 속에 있는 돈(cash)이나 귀중품(valuables)을 훔쳐가는 절도범은 결코 아닙니다. 그저 비밀이 담겨 있는 금고를 열어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또 자물쇠 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취미가 자물쇠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어려운 금고를 여는 것으로 이어졌죠. 풀기가 어려운 자물쇠와 금고의 비밀을 캐는 일은 자연의 비밀을 캐는 과학으로 다시 이어진 겁니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입니다. 그 속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자연의 이치와 신비라는 비밀을 캐냈을 때 그 기쁨이 오죽하겠습니까?

자유인, 자연인으로 삶을 일관해 온 파인만식으로 볼 때(from the viewpoints of Feynman), 비록 현금이나 귀중품이 보관됐다고 해도 각종 아이디어를 짜서 금고라는 비밀을 여는 것은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봐야 하겠죠? 대단한 과학적 이론과 금고를 털고, 자물쇠를 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비밀을 캐는 과학자=금고털이는 같은 등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인만에게 너무 아첨하고 있는(flatter) 것 같나요? 그의 매력에 빠져 있으면 그럴 만도 합니다.

“금고털이는 곧 비밀을 캐는 과학자와 같아”

그는 과학자가 입고 있는 두꺼운 외투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과학과 금고털이를 같은 맥락에서 본 기이하면서도 재미있는 과학자입니다. 그래서 파인만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깝게 다가온 거고, 또 그래서 우리는 파인만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게 아닌가요? 과학은 금고의 비밀을 캐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자와 절도범이 같을 수는 절대 없습니다.

“…was also the holder of one of the world’s great senses of play. This was a man, after all, who while working as a young member of the supersensitive Manhattan Project picked the locks on valuts containing atomic secrets and left teasing missives behind about the project’s lax security.

“…(파인만은) 또한 장난을 즐기는 감각적 능력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바로 최첨단 기술인 맨하탄프로젝트에 젊은 과학자로 참가해 원자폭탄 비밀이 담겨 있는 금고실(방)을 열고는 거기에다 이 프로젝트의 허술한 보안체계를 놀리는 짓궂은 편지를 남긴 장본인이다.”

파인만이 어떤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아시죠? 당시 맨하탄프로젝트는 극비 가운데 극비사항이었습니다. 5천 여 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이 원폭계획은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업입니다. 아니 세계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밀이 담겨 있는 금고실을 파인만이 들어가 그리고 편지도 남겼다면 보안체계가 허술한 게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인생을 농담처럼, 농담을 인생처럼

▲ 파인만의 기괴한 얼굴 모습. 무엇을 생각하면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
금고실을 연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 금고실까지 어떻게 접근해서 갈 수 있었을까요? 무장한 숱한 경호원들이 많았을 건데 말입니다. 들켰다면 총을 맞던지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 감옥행 차에 올라 탔을 겁니다.

당시 알라모스가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을 신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죠. 사건은 잘 마무리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들리는 이야기는 이 정도입니다. 그 이상은 비밀이었겠지요? 어떻게 금고실로 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금고실 문을 열었는지 말입니다.

그는 또 사랑하는 아내와 편지 왕래가 어려워서 암호로 나누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듣기에는 참으로 좋은 이야기이지만 우편검열도 철저했을 건데 그게 가능했다니, 파인만은 그야말로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은 과학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파인만은 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여는 데도 능했지만 스파이처럼 침투하는 데도 능했던 거 아닐까요? 그래서 한 번 ‘007 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처럼 스파이 흉내를 내본 건 아닐까요? 폼 좀 재려고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재미있는 장난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참으로 위험천만의 장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파인만은 죽어가면서까지 인생을 즐겁게 웃으면서 유쾌하게 살아간 사람입니다. 농담을 인생처럼, 인생을 농담처럼 살다간 학자입니다. 그는 아주 사실적이고, 이성적이며 냉철한 머리를 요구하는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입니다. 파인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계속)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7.05.31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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