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전중환) 비판>, (2010.. 2. 2)에서 이덕하 님은  "배란 은폐"와 관련하여

"배란은폐는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광고 또는 은폐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암컷이 광고 또는 은폐를 위해 비용 등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은 배란 은폐는 가설이 아니라 어떤 명백히 드러나는 외적 현상 대한 명칭이자, 인간과 여타 포유류를 구분하는 매우 특이한 진화적 적응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지식이 짧은 관계로 장-디디에 뱅상(Jean-Didier Vincent)의 <인간속의 악마>에서 ,다소 길지만, 일부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인간속의 진화가 직립에서 진화되었다는 사실......, 인간의 직립은 여자의 회음부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 여성의 생식기는 완전히 몸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외음부에 털이 나 그 부위를 모두 가려 버린다.

 

  암컷 원숭이의 경우에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암원숭이의 성기 노출이 간헐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회음부의 살갗은 단지 발정기 때에만 팽팽하고 매끈하며 촉촉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수컷을 유혹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며 동시에 암컷이 수컷을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적인 합의의 전달이기도 하다. 발정기를 나타내는 외적 표현들은 교미와 배란기를 동시에 일어나도록 조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번식 가능성을 높이며, 종의 구성원인 개체들간의 관계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배란기를 보여주는 외적 현상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이것이 바로 사회학자들이 '숨겨진 배란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난소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장류의 난소주기는 엄청난 변화를 거친 것이다.

인간의 대뇌는 배란기 조절 임무에서 벗어나 더 이상 난소의 배란기를 담당하는 호르몬 조정 작업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대뇌는 여전히 뇌하수체를 통해 루리베린(luliberine)을 규칙적으로 내보내는 명령을 하지만, 이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자동적인 작업에 불과한 것으로 , 단순히 효율적인 기계적 펌프질로도 대치할 수 있다.

생식선에서 분비된 호르몬은 계속해서 뇌를 보호하는 경계선을 지나고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이것은 과거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인간의 뇌가 번식 기능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손, 머리, 생식선 등은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

  몸 속으로 들어가버린 여성의 성기는 이제 몸 전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암원숭이의 생식기 부위에서 발견되던 털이 없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피부가 몸 전체로 퍼지게 된 것이다. 탄력 있고 부풀어오른 젖가슴과 매끈하고 둥근 엉덩이, 이 모든 것이 배란기의 암원숭이가 갖고 있던 생식기 징후와 흡사한 특징들이다. 결국 여성의 몸 전체가 마치 배란기에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 성기를 감춰버린 후 성은 여성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었다. 성은 영원한 욕망의 샘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욕망은 남자와 여자 사이를 지속적으로 이어주는 동기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뇌가 행하는 위대한 작업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즉 도구와 언어의 사용, 혈연관계 형성 그리고 예술의 기반을 이루는 것 등이 그것이다."

 

   배란 은폐 한가지만을 놓고 과연 "광고 또는 은폐를 위한 비용"을 산출해내는 게 가능한가? 직립, 손의 자유로운 사용, 뇌의 급속한 발달, 여타 포유류에 비해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의 아기, 뇌가 커지면서 뒤따른 분만 원조의 필요성, 섹스의 연중 수용성과 이에 따른 남자와 여자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 여타 포유류와는 다르게 특이한 여성의 과도한 오르가즘 등등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어난 변화 전체를 연계시켜 생각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향후 언젠가는 이러한 여러가지를 뭉뚱그려 선택압을 찾아내고, 적응의 비용을 산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P.S :  "LUCA" 에 <진화심리학 관련 서적 목록(한국어)>을 보니 <인간속의 악마>는 안들어 있더군요. 그 책에 저자 소개를 보면 장-디디에 뱅상은 "호르몬선과 신경조직의 상호관계와 뇌의 기능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 분야의 선구자이자,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 책이 출간되어 있는 걸 모르셨는지, 아니면 읽을 가치가 없어서 목록에 안올리신 건지요? 만약 가치가 없어서 안올리셨다면 그런 이유를 간략하게라도 말씀해 주시면 제 공부에 도움될 것 같은데......

 

   저는 이 책에서 언급된 "대립절차 이론"과 "자기자극"을 바탕으로 '스와핑'이라 부르는 '부부맞교환섹스'의 성적 심리를 파헤쳐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저는 '쿨리지 효과'에서 말하듯 '그때마다 상대가 바뀌기만 하면야'에 들어맞는 성향이지만, 아내의 외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질투도 심한 마초라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를 남에게 빌려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욕의 의미를 탐색하고,  도박중독, 마약중독, 탐식증 등과 연관하여 스와핑을 섹스 중독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등을  탐구하고, 병리적인 현상이라 부를 만큼의 과대한 권력욕도 일종의 중독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머리를 싸맬려합니다. 과연 해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와핑에 대하여는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에 짧게 언급된 것은 봤지만, 제가 읽은 몇권되지 않는 다른 진화심리학 서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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