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인 시대의 희망


아파트 계단 옆에 누군가가 이사가면서 책을 내 놓았다.

나는 항상 책을 유심히 살핀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 그 책들~

그 책들을 나의 눈으로 수습한다.

그 책들중에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눈에 뛰어 챙겨와 진료실에서 짬짬이 읽었다.

그 책을 통해 나의 생각의 스케일은 단순 나에서 나 다음까지 더 큰 스케일이 있다는 것을 재삼 느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야구치시노부감독의 [우드잡]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쭉뻣은 거대한 삼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으시고
아버지가 가지치를 하면서 가꾼 나무다.
이 나무를 벌목하여 생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손자를 위해 좋은 묘목을 골라 심고,
아들을 위해 나무에 올라 가지치기를 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주인공 부피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어떤 ‘작은 사람'도 영웅적인 인간의 크기로 드높여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그리고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계를 아름답게 바꾸어 놓는 것은 권력이나 부나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침묵 속에서 영혼을 담아 도토리를 고르고 서두르지 않고 속도를 숭배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는 아름다운 혼을 가진 사람들이며,
굽힘 없이 선하게 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ᅳ새로운 숲의 탄생ᅳ수자원(水資源)의 회복 ᅳ희망과 행복의 부활’ 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과정이 인간이 지닌 추하고 악한, 또 하나의 측면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절제한 탐욕, 앞날을 조금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 나무를 마구 베는 자연파괴,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살육하는 두 차례의 전쟁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그것이다.
선과 악이 이처럼 교차하는 가운데 작품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주 숭고한 인물로 등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가 자신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여서 주인공의 모습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인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자기를 바쳐 일하는 부피에 같은 사람은 더욱더 경이로운 인물로 비친다.


밤실진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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