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진리는 기껏해야 500년 전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등의 저작들을 통해 세상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 사람들은 세상을 과학의 관점으로 보지 않았다.

지금은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지독히 물질주의적이어서 세상을 이해히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먼 옛 날, 문화의 기본적인 토대가 만들어지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따라서 생존이라는 목표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려 했다.


과학적 세계관이 등장하기 전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 다.

예컨대 ‘존재’를 사물의 공간이 아니라 행위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인생을 이야기나 연극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늘 그것을 의식하며 살았기에 그런 이야기와 연극은 살아있는 것이고 주관적인 경험이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삶과 의미에 관해 주고 받는 대화나 소설가들이 작품에서 의미를 담아 서술하는 사건과 비슷한 것 이었다.

이때 주관적인 경험의 대상에는 나무와 구름처럼 친숙하고 객관적 존재도 포함되지만,

굶주림과 갈증, 고통은 물론이고 온갖 감정과 꿈 등도 포함된다.(사실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

옛날의 연극 관점으로 보면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개인적 경험이다.

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기란 쉽지 않다.


현대의 물질주의나 환원주의(복잡한 체계나 현상을 단순한 법칙이나 물질로 세분화하여 이해히려는 사고방식-옮긴이)를 동원해도 마찬가지다.

고통, 즉 주관적인 고통을 예로 들어 보자.

고통은 분명히 실재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두 고통을 느낀다. 고통은 완벽하게 실재하는 것이다.

고통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어떤 물질보다 의미가 크다.

이런 이유로 세계의 많은 문화 권에서 ‘삶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라는 생각을 반박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같다.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더 가깝다.

따라서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 은 개인적으로 경험히는 극적인 사건이다.

예컨대 아버지의 죽음은 오로지 당신만이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비극이다.

병원 사망 확인서에 객관적으로 기록된 내용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첫사랑의 고통, 박살난 희망, 자식의 성공으로 느끼는 기쁨같은 것들도 주관적인 경험에 속한다.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조던B, 피터슨 인생의 12가지 법칙


세상은 원자로 이루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조상들이 현명하게 쌓아 놓은 벽 뒤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그 벽을 허물려면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얇은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티는 것과 같다.

그 살얼음판 아래의 차갑고 깊은 물속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숨어 있다는 것도모트는 채.


요즘의 부모는 자녀세대를 어려워하는 것 처럼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사회적 독재의 주동자 취급을 받으면서

규율과 질서와 전통 지키는

수호자 역할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90년대에 청소년이던 그들은

그 시대의 강력한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어두운 자의 의식 속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1970~90년대는 어른 세대를 깍아내리고

모든 권위를 불신하며

미성숙한 방종과 책임지는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의 영향으로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망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아에 결혼을 안하거나 결혼을 해도 자녀를 갖지 않으며

자녀를 갖더라도 자녀의 감정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도 그 반대의 경우보디는 낫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도덕적 잣대의 양극단에는 언제나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


조던B.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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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해독제


이런 추론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도덕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높은 목표를 지향하라.

주의하고 집중하라.

고칠 수 있는 것이면 고쳐라.

현재의 지식에 교만하지 말라.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전체주의적 자만은 무자비와 억압,

고문과 살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라.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겁함과 악의,

원한과 증오를 인정하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 전에

잔혹한 심성을 살펴라.

 어쩌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이 니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탓일 수있다.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수많은 죄를범했으면서

감히 히늘의 영광을 바라지 말라.

결국 나도 세상이 사악해지는 데 한몫 거든 것이다.


무엇보다, 거짓말하지 말라.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말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나치와 공산주의의 거짓말 때문 이었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는선한것이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다하겠다’라는 나의 신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 가치 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놓은 것이다.

융은 그런 도덕적 가치 체계를 만드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내적으로 모순되더라도 상관없다.

융은 개개인이 도덕적 가치 체계의 최상위에 두는 것은

그가 가장 가치있다고 믿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만의 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행동의 기준이고,

그가 가장 굳게 믿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인격의 반영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상반되는 두 인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결과다.

예를 들어 셜록홈스와 모리아티,

배트맨과 조커, 슈퍼맨과 렉스 루터,

찰스 프랜시스 재비어와 마그네토,토르와 로키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아벨과 카인, 그리스도와 사탄 중 하나를 선택한것이다.


 이 땅에 낙원을 세우고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고,

삶을 파괴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일이라면

사탄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두 면을 다 가지고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편의주의는 맹목적인 충동을 따르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다.

편의 주의로 얻는 이익은 오래가지 않는다.

편의주의는 본능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편의주의는 어떠한 고귀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유치하고 무책임하다.

편의주의를 분별력 있게 대체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의미는 충동을 통제하고 조절할 때 생겨난다.

의미는 세계의 가능성과 세계의 가치 체계가

상호작용할 때 생겨난다.

 가치 체계가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를 향할 때

생겨나는 의미는 삶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되어 준다.


의미는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해독제다.

의미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나아질 것이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단지 삶이 힘들고 가혹해서 사악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혹은 그로 인한 실망과 죄절이 크다고 해서

사람이 항상 사악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희생과 노력이 계속해서 거부당하면

(제대로 된 노력이나 희생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는 뒤틀리고 일그러져 진짜 괴물처럼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의도적으로 사악한 것을 저지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고통과 아픔을 주기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설픈 노력과 희생, 그런 희생을 거부하는 현실 혹은 절대자,

거부당했다는 분노와 원망, 좌절에 빠져 치밀어 오르는 복수심,

더 어설픈 희생과 반복되는거부 ......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악순환의 최종 정착지는 지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삶은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다. 그리고 짧다."

 그러나 악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삶이 더욱 황폐해 진다.

야만적인 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느냐를 고민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뿐만 아니라 사악함까지 줄이기 위해서다.

사악함은 고의적으로 최악의 고통을 유발한다.




인간은 자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자의식 덕분에 인간은 스스로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야기한다.

그 고통으로 인해 이기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중요시하는 생각,

즉 편의주의에 빠 져든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와 자연의 무자비한 횡포가

삶을 고통스러운 비극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와 지연은 사실 고통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심지어 주된 원인도 아니다.

 악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이유로 희생의 의미는 더욱 복잡해진다.

단지 가난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하고 희생하며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악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와도 관련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음과 질병을 피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일한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면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애써 부정하며 두려움에 빠져 살아야 한다.

따라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쾌락을 희생한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런데 조국 아테네의 이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고발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고향을 떠나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런 회유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고,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다.


그의 절친한 동료 헤르모게네스는 당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재판을 제외한 모든 주제에 대해서 평상시 처럼 논의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변호하려고 평생을 준비해 왔다고 대답하며

 불가사의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공정한 방법으로든 부정한 수단으로든

무죄 판결을 받기위한 전략을 세우려 하거나

혹은 법정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 만으로도

내면의 목소리 혹은 디이몬 (고대 그리스신화나 철학에서,

신은 아니지만 혼령, 정령, 귀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옮긴이)의

반대에 부딪힌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도 그 목소리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내면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려는 절대적인 의지라면서,

내면의 목소리가 반대하면  말을 멈추고 행동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도 소크라테스가

다른 누구보다 지혜로운 자 라고 인정한 신들의 말을 전했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신뢰하던 내면의 목소리는 탈출을 반대했다.

심지어 자기 변론마저 반대했다.

소크라테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재판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그는 재판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헤르모게네스에게 다이몬의 목소리가 삶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말했다.

노령의 번뇌와 질병의 아픔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

건전한 육체와 정신으로 선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고,

친구들에게 귀찮은 일거리를 남기지 않는 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연하게 받이들이고

죽음헤 대한 두려움을 떨쳐 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이나 판결이 내려진 후,

더 나아가 쳐형 과정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넘치도록 충만하고 풍요로웠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한 재판을 삶을 정리할 기회이자
미래의 끔찍한 타락으로 부터 탈출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신에게 닥친 모든 사건을 신들에게서 받은 선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품지도 않았고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무고함을 주장하거나 숙명에 저항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판사들에게 사람들이 지신을 죽어려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독배를 들었다. 당당하게!





소크라테스는 쉬운 길을 거부했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조작과 변명도 거부했다.

오히려 최악의 조건에서도 의미있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유지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결정은

모두의 기억에 님아 마음의 위안을 준다.

소크라 테스의 일화는 우리에게 이제부터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산다면 어떤 위협 앞에서도

고결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란 교훈, 

용기있게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면

자신의 안전을 건사하겠다고 아등바등 히는 것보다

결국에는 더 나은 안전과 힘을 얻게 될 것이란 교훈,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며 충만하게 살아가면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삶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 준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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