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질서의 세계는 혼돈으로 둘러싸여있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그 영역은 미지의 영역으로 둘러싸여있다.
혼돈과 질서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혼돈과 질서, 음과 양으로 구성된 의미의 세계에 적응되어 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이 혼돈과 질서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으려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한발은 질서와 안전의 세계에,다른 발은가능성과 성장, 모험의 세계에 디디고서 있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삶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 혹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인가에 몰입할 때, 그 순간 바로 혼돈과 질서의 경계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의 느낌은 신경학과 진화론에 근거를 둔 본능적 자아의 반응이고,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다.
이런 느낌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 자연적 공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거주할 수 있으면서 생산적인 공간을 확장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바로 그런 곳에 존재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를 생각해 보라.

좋은 음악은 어서 들어 본듯한 익숙한 음과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음이 서로 조화롭게 중첩되며 음악 전체의 의미를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오르게 한다.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은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둘은 삶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다.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든 알아보고 이용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전혀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누구든. 예컨대 아프리카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의 추장이든, 뉴욕 월스트리트 은행가이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결국 혼돈과 질서라는 현실의 근본적인 조건은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대부분 익숙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살지만, 그 주변은 언제나 생명체를 위협하는 사물과 상황이 둘러싸고 있다.


질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협적인 상황이 수시로 닥치기 때문에 안전과 평안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만 한다. 혼돈이 때로 감당하기 힘든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도하기 전 한계치를 넘어서는 상황이 닥치면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 발은 이미 잘 아는,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땅을 디디고 다른발은 잘 모르는, 탐험을 통해 일아가야 할 땅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삶의 위협 요소들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동시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깨어 있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곳은 우리가 완벽히 익혀야 할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자신을 만나게해 줄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 피터슨


골반비대칭이 개선되어 몸짱이 된 청년~


바닷가재에게는 천적과 자연의 여러 위협으로 부터 안전하게 휴식할 수 있는 은신처가 필요하다. 게다가 바닷가재는 성장하기 위해 탈각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즉 단단한 껍데기를 벗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껍데기가 만들어지는 동안 바닷가재의 부드러운 몸이 외부 환경에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된다. 이때 바위 밑 틈새는 바닷가재에게 훌륭한 보금자리가 된다.

새로운 껍데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바닷가재가 아늑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지역이든 최상급 보금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매우 드문 만큼 가치가 크다. 다른 모든 바닷가재도 그런 곳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좋은 은신처를 찾아 탐험하는 바닷가재들은 결국 서로 마주친다.

학자들은 외톨이로 자란 바닷가재도 다른 바닷가재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방어와 공격을 위한 복잡한 행동이 바닷가재의 신경계에 심겨 있다는 뜻이다.

바닷가재들은 권투 선수처럼 상대방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다. 집게발을 크게 벌려 앞뒤로 흔들면서 상대방 동태를 살핀다. 그러면서 눈 밑에 있는 분출 기관을 통해 상대에게 특별한 액체를 뿌린다. 그 액체에는 자신의 몸집과 성별, 건강과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때때로 바닷가재는 상대방 집게발이 자기 것보다 훨씬 크면 싸우지 않고 물러서기도 한다. 분출된 액체의 화학 물질 정보도 작고 약한 바닷가재를 물러서게 만든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큰 충돌 없이 분쟁이 마무리되는 경우는 비교적 평화로운 1단계 분쟁이다.

하지만 몸집과 능력이 엇비슷하거나 분출된 액체에 충분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으면 2단계 분쟁으로 넘어간다. 실랑이를 서너 차례 반복하다가 둘 중 더 겁 많은 녀석이 꼬리를 획 돌려 뒷걸음질로 자리를 뜬다.

만약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대치할 경우 3단계 분쟁으로 넘어간다. 이번엔 진짜 전투가 벌어진다. 3단계 분쟁에서는 바닷가재들이 격분하여 포악하게 상대를 향해 진격한다. 집게발을 쭉 뻗고 전투를 시작하면서 상대를 뒤집으려고 시도한다. 뒤집힌 바닷가재는 자칫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대체로 싸움을 포기하고 전쟁터를 떠난다.

어느 쪽도 상대를 뒤집지 못하거나 뒤집힌 녀석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바닷가재의 충돌은 4단계 분쟁으로 넘어간다이 단계는 무척 위험하므로 함부로 시작할 만한 단계가 아니다. 적어도 한녀석은, 어쩌면 두 녀석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분쟁이 이 단계에 이르면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린다. 패자는 거의 실아 남을 수 없다. 특히 패자가 승자 영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처절한 응징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싸움에서 패배한 바닷가재는 더 싸우려 들지 않는다. 싸우는 동안 보여준 폐기 넘치는 공격성은 사라지고, 다른 적은 물론 예전에 이겨본 적하고도 싸우려 하치 않는다. 패배한 경쟁자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는다. 그런 상태가 며칠씩 지속되기도 한다. 특히 영역을 지배하던 바닷가재가 패배하면 그 바닷가재의 뇌 구조는 완전히 해체되어 약자에 접합한 새로운 뇌가 만들어진다.

사랑을 잃거나 직장 혹은 사업에서 큰 실패를 겪은 후 고통스러운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영역의 지배자에서 패배자로 추락한 바닷가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뇌 화학(brain chemistry), 즉 신경 화학적 관점에서 패배한 바닷가재와 승리한 바닷가제는 크게 다르다. 이런 치이는 승리와 패배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도 나타난다. 바닷가재가 자신만만한 모습인가 아니면 위축된 모습인가는 신경 세포의 교감을 조절하는 두 화학 물질인 세로토닌과 옥토파민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승리하면 세로토닌 비율이 높아지고, 패배하면 옥토파민 비율이 높아진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고 옥토파민 수치가 낮은 바닷가재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으스대며 걷는다. 도전을 받아도 움츠리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실제로 세로토닌은 바닷가재의 몸을 유연하게 만든다. 유연한 바닷가재는 부속기관들을 쭉 뻗어 더 크고 무섭게 보일 수 있다.

방금 싸움에서 패한 바닷가제에게 세로토닌을 주입하면 팔다리를 쭉 뻗으며 다시 승자에게 덤벼들어 예전보다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싸운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고 옥토파민 수치가 낮다는 것은 승리한 바닷가재의 특징이다. 반대로 세로토닌 수치가 낮고 옥토파민 수치가 높은 바닷가재는 후줄근하고 무기력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길모퉁이에서 어슬렁대다 시비가 붙을 낌새가 보이면 부리니케 도망칠 듯한 인상을 준다.


전쟁터에서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군인이나 장기간 학대를 경험한 아동에게 놀람 반사 실험을 해 보면 거의 똑 같은 반응을 보인다.  12가지인생의 법칙 조던B.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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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환경을 생각해 보자.

 우선 작은 것부터 살펴보자.

 당신은 자신에게 주언진 기회를 100퍼센트 활용해 왔는가?

직정에서 전력을 다해 일하고 있는가?

 혹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맥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형제와는 잘 지내고 있는가?

배우자를 존중하는가?

자식들을 애정으로 대하고 있는가?

건강과 행복을 파괴히는 나쁜 습관은 없는가?

당신 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친구와 가족에게 꼭 해야 할을 하는가?

 주변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 있는가?

당신 삶을 깨끗이 정리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해 보자.

당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 하는 것들,

그것들을 중단하라!

오늘 당장 중단하라!

그 행동이 잘못된 것 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

그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런 식의 합리화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혼란을 키우고 실천을 빙해 할뿐이다.


이유를 정확히 몰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정도는 알수 있다.

자세히 설병할 수 없고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직감할 수 있다.

우리는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존재여서

누구도 자신을 완벽하게 알수없다.

게다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지혜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냥 중단하라.

그 비겁하고 천박한 행동을 당장 중단하라.

당신을 나약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입에도 올리지 말라.

당신을 강인하게 만드는 생각만 하고,

 당신에게 힘을 주는 말만하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라.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당신의 판단이 행동의 기준이다.

 세상이 정한 행동 기준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당신이 속한 문화의 전통을 무시하지는 말라.

인생은 짧다.

전통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발견한 것들을

혼자서 알아낼 만한 시간은 없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지혜는 어렵게 얻은 것이다.

전통과 문화속에는 분명히 삶에 유익한 지혜가 있다.

자본주의나 정치권을 탓하지 말라.

당신의 적들을 욕하지 말라.

체제를 손봐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당선의 경험을 먼저 정리하라.

또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가정도 평화롭게 꾸려 가지 못하면서

어떻게 함부로 세상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양심과 이성이 시키는 일만 하라.


리고 하루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니는지 지켜보라.

 몇 주가 지나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제대로 실천하면 마음속에서 생각히는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아내나 남편, 아이들이나 부모님에게

당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말하게 될것이다.

또한 당신이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 부분을 바로 잡으려 할 것이다.

머릿속을 거짓으로 채우는 걸 중단하면 머릿속도 정돈되기시작한다.

거짓 행동으로 삶을 왜곡하는 걸 중단하면 

훨씬 더 나은 삶을 경험할 것이다.

그때 쯤에는 조금 더 미묘하고 새로운 당신의 잘못이 드러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역시 중단하라.

몇 개월 혹은 몇년 동안 꾸준하게 하면

당신의 삶은 점점 단순해질 것이다.

판단력이 향상되서 꼬이고 뒤틀린 과거 문제들도 정리된다.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건전한 정신을 갖게 되고,

더욱 당당하게 미래를 열어 갈 것이다.

더는 삶음 쓸데없이 어렵게 만들지 않을것이다.

그래도 인생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냉소와 기만으로 그 비극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게 타락의 길에서 빠져나온 당신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비극에 좀더 의연하게 대처할수 있을것이다.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머물도록,

그 비극이 불지옥으로 변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법도 알게 될것이다.

당신의 불안과 절망, 원망과 분노가

처음에는 폭발 직전까지 가더라도 결국에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나약한 존재지만,

맑아진 정신은 삶의 좋은 면을 발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누구보다

평화와 세상의 모든 선함을 지키는 강력한 힘이 될것이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이렇게 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사악한 곳이 아니다.


그 후에도 지신부터 달라지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비극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선한 삶을 살기로 한다면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 모두 진실만을 말하고

높은 곳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바로 이 타락한 지구에

영원한 천국을 세울 수 있을지누가알겠는가.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법칙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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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한의원 비만클리닉

솔제니친은 20세기에 자행된 끔찍한 사건,

직장과 기족, 신분을 빼앗긴 채 비참하게 살던

수천만 명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 작품을 썼다.

《수용소 군도》의 한 부분에서 솔제니친은

뉘른베르크 재판(1945년 11월부터 l0개월 동안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2차세계 대전 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으로 24 명이 기소돼

사형 12명, 종신형 3명, 징역형 4명, 무죄 3명의 결과가나왔다 옮긴이)

 을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몇몇 행위는 본질적으로 너무 끔찍해서

인간의 본성과 충돌한다’라는 그의 결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맞는 말이다.

‘사악한 행위에 참가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언간을 기생충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개개인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무작정 고문하고 학살히는 짓은

변명의 여지 없이 어떤 경우헤도 잘못된 것이다.

고통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한 다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실 세계는 고통에 짓눌려 있다.

이 명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허무주의자의 회의로도 이 명제는 약화되지 않는다.

전체주의자도 이 명제를 지울 수 없다.

어떤 냉소주의자도 고통에 찌든 현실에서 탈출할수 없다.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교묘히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내 믿음의 밑바탕이 되었다.

내 의식의 밑바닥과 내 모든 생각과 행위를 낱낱이 뜯어봤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나치의 수용소 교도관이나

수용군도의 인민위원 혹은 지하교도소에서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선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

선하지 않은 것이 었다면, 선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최악의 죄가 순전히 고통을 주려는 목적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이라면,

선은 그외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 잘못된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선이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수승화강의 생리적 상황에서 상열하한의 병리적 상태로 변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

융은 유럽의 지성이 물질세계를 연구하고 과학 기술 발전에 힘을 쏟게된 이유가

기독교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기독교가 영적인 구원을 강조하면서

현실의 고통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사작되기 3~4세기 전

이런 풍조가 절정에 달했다.


이 문제를직접 해결해 보려는 생각이

유럽인의 집단 심리에 자리를 집았다.

처음에는 연금술 같은 신비주의 형태로 시작해

 수백 년이 흐르면서 치츰 과학의 형태로 발전 했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 원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은

건강과 부, 장수의 비밀을 밝히고자 노력한 연금술사들이었다.


뉴턴도 유명한 연금술사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위대한 몽상가들은 교황청이 저주하는 물질세계에

비밀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 비밀을 캐내면 인간이 세속의 고통과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 상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고,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종교에서 자유로워진 사상가들이

물질 너머의 세계와 정신, 도덕과 윤리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피터슨



단지 삶이 힘들고 가혹해서 사악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혹은 그로 인한 실망과 죄절이 크다고 해서

사람이 항상 사악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희생과 노력이 계속해서 거부당하면

(제대로 된 노력이나 희생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는 뒤틀리고 일그러져 진짜 괴물처럼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의도적으로 사악한 것을 저지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고통과 아픔을 주기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설픈 노력과 희생, 그런 희생을 거부하는 현실 혹은 절대자,

거부당했다는 분노와 원망, 좌절에 빠져 치밀어 오르는 복수심,

더 어설픈 희생과 반복되는거부 ......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악순환의 최종 정착지는 지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삶은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다. 그리고 짧다."

 그러나 악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삶이 더욱 황폐해 진다.

야만적인 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느냐를 고민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뿐만 아니라 사악함까지 줄이기 위해서다.

사악함은 고의적으로 최악의 고통을 유발한다.




인간은 자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자의식 덕분에 인간은 스스로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야기한다.

그 고통으로 인해 이기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중요시하는 생각,

즉 편의주의에 빠 져든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와 자연의 무자비한 횡포가

삶을 고통스러운 비극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와 지연은 사실 고통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심지어 주된 원인도 아니다.

 악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이유로 희생의 의미는 더욱 복잡해진다.

단지 가난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하고 희생하며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악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와도 관련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음과 질병을 피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일한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면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애써 부정하며 두려움에 빠져 살아야 한다.

따라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쾌락을 희생한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런데 조국 아테네의 이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고발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고향을 떠나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런 회유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고,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다.


그의 절친한 동료 헤르모게네스는 당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재판을 제외한 모든 주제에 대해서 평상시 처럼 논의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변호하려고 평생을 준비해 왔다고 대답하며

 불가사의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공정한 방법으로든 부정한 수단으로든

무죄 판결을 받기위한 전략을 세우려 하거나

혹은 법정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 만으로도

내면의 목소리 혹은 디이몬 (고대 그리스신화나 철학에서,

신은 아니지만 혼령, 정령, 귀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옮긴이)의

반대에 부딪힌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도 그 목소리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내면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려는 절대적인 의지라면서,

내면의 목소리가 반대하면  말을 멈추고 행동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도 소크라테스가

다른 누구보다 지혜로운 자 라고 인정한 신들의 말을 전했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신뢰하던 내면의 목소리는 탈출을 반대했다.

심지어 자기 변론마저 반대했다.

소크라테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재판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그는 재판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헤르모게네스에게 다이몬의 목소리가 삶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말했다.

노령의 번뇌와 질병의 아픔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

건전한 육체와 정신으로 선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고,

친구들에게 귀찮은 일거리를 남기지 않는 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연하게 받이들이고

죽음헤 대한 두려움을 떨쳐 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이나 판결이 내려진 후,

더 나아가 쳐형 과정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넘치도록 충만하고 풍요로웠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한 재판을 삶을 정리할 기회이자
미래의 끔찍한 타락으로 부터 탈출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신에게 닥친 모든 사건을 신들에게서 받은 선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품지도 않았고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무고함을 주장하거나 숙명에 저항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판사들에게 사람들이 지신을 죽어려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독배를 들었다. 당당하게!





소크라테스는 쉬운 길을 거부했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조작과 변명도 거부했다.

오히려 최악의 조건에서도 의미있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유지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결정은

모두의 기억에 님아 마음의 위안을 준다.

소크라 테스의 일화는 우리에게 이제부터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산다면 어떤 위협 앞에서도

고결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란 교훈, 

용기있게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면

자신의 안전을 건사하겠다고 아등바등 히는 것보다

결국에는 더 나은 안전과 힘을 얻게 될 것이란 교훈,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며 충만하게 살아가면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삶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 준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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