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는 수면이 약 2006.04.10 ⓒScience Times
▲ 뇌칩 이식 상상도 ⓒ
로봇 연구 초창기에 로봇학자들은 두뇌의 연구가 초보적이라는 점에 너무나 놀랐다고도 말했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기억 즉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파악하는 데 열중했다.
학자들이 놀란 것은 인간의 두뇌 속 정보량을 비트로 환산하면 약 100조에 해당하는 10의 14제곱비트의 정보가 된다는 것이다. 이걸 영어로 쓰면 2000만권(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 수)의 책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며 유전자 정보량의 1만 배에 해당한다고 설명된다.
그런데 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인간의 뇌가 매우 불충분한 정보에서 출발하여 대단히 복잡한 것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학습이다. 예컨대 물체를 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신경회로는 유전자 정보로 완성되지만 물체를 보는 기능은 학습을 통해 얻어진다.
특히 뇌의 정보처리 특징은 가설을 세우는 능력에 있다. 컴퓨터는 충분한 정보에서 옳은 답을 유도하는 데 능숙하다. 그러나 뇌는 불충분한 정보에서 직관에 따라 확실한 듯한 가설을 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그 가설을 현실과 비교·검증하여 차이가 있으면 그것을 피드백하여 가설을 수정함으로써 더욱 확실한 답을 유도해나간다.
인간의 특별한 능력 중에 하나는 방대한 양의 시각정보를 순간적으로 처리하고 선별하는 것이다. 사과를 보았을 때 사과라는 것을 인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각정보는 처음에 대뇌의 가장 뒤쪽에 있는 ‘제1차 시각령’이라 불리는 영역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모든 정보가 시각의 상하좌우의 위치에 대응하여 세밀하게 나누어진다. 오른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와 왼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 선분의 기울기나 길이, 움직임, 빛깔이나 밝기 등이 제각기 독립적으로 처리된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정보는 ‘어느 각도로 기울어진 아주 짧은 직선’과 ‘색깔’이라는 식의 단 2가지 요소로 분류되어, 제1차 시각령 앞쪽에 있는 8개의 시각령에서 단계적으로 통합되어 간다. 그리고 대뇌의 측두엽에서 최종적으로 보고 있는 물체가 사과라고 인식한다. 이들 모두 두뇌에서 일어나는 작업 중에 하나이다.
여하튼 기억은 과거에 배웠거나 경험한 것을 상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어떤 것을 기록하고 유지하여 다시 떠올리는 정신활동을 통틀어 기억이라고 하는데 학자들은 새로운 기억의 저장은 뇌의 신경세포의 화학적·물리적 변화를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이 변화는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해마(海馬 : 측실상에 있는 두 융기 중의 하나)라는 곳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두뇌를 연구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기억을 어떻게 불러와서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질문에 답을 구하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여 두뇌에 저장하면서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불러온다. 이것은 인간이 기억을 불러오는 것처럼 로봇의 두뇌에 수많은 정보를 입력시킨 후 메커니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로봇에게 제시되는 모든 문제점들을 일거에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너바나」 ⓒ
앞에서 설명한 「너바나」는 로봇을 만들려는 과학자들에게 매우 흥미 있는 소재를 제공한다.
2005년 12월, 세계적 게임 프로그래머인 지미는 이유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 리사를 생각한다. 그런데 지미가 개발한 최첨단 비디오게임 너바나를 여는 순간, 가상 속 인물이기만 하던 게임 속 주인공 솔로가 지미에게 말을 걸어 왔다. 솔로는 원인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각본에 따라 끊임없이 죽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지미에게 자신을 컴퓨터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솔로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다국적 컴퓨터 게임 회사인 오코사마의 데이터 뱅크에서 너바나 프로그램을 지우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지워지는 순간, 솔로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미는 프로그램을 지우기로 결심하고 회사의 데이터 뱅크에 침투, 자신의 두뇌를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는데 여기에서 매우 극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아내 리사의 기억을 컴퓨터 칩으로 다른 여자의 두뇌에 이식하면(영화에서는 간단하게 두뇌에 뚫어진 곳에 작은 연필과 같은 컴퓨터 칩을 꼽기만 하면 된다) 곧바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즉 사람의 두뇌에 다른 사람의 기억이 접목되는 것으로 컴퓨터의 화면을 통해 기억을 추적할 수도 있다.
영화의 내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억이 기억물질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앞에서 설명한 두뇌의 뇌파를 완벽하게 읽어내는 기계가 개발된다면 두뇌의 기억물질을 로봇의 소프트웨어와 결합하는 경우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두뇌에 있는 기억물질을 추출한다면 지능형 로봇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좀 더 과장한다면 뇌를 컴퓨터에 다운로드하여 개인의 기억과 개성, 의식을 보존할 수도 있다. 여하튼 행동과학자들은 기억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순간기억. 이것은 몇 분의 1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이 기억은 사진 같은 것으로 망막을 잠깐 스쳐간 광경을 한순간에 모두 불러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기기억. 이것은 수초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수첩을 펼쳐 다이얼을 돌림과 동시에 사라지는 기억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장기기억이다. 어떤 학자들은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대부분을 불러올 수 없는 기억의 형태로 저장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 뇌의 데이터 저장 능력은 결코 부족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톰프슨에 의하면 우리 뇌를 연결하는 시냅스의 수는 우주 전체의 소립자 총수보다도 많다.
전화번호를 기억할 때 일어나는 뇌세포의 변화가 적절한 예이다. 동사무소나 극장 등 한번 듣고 잊어버리는 전화번호의 경우 기억이 저장될 때 신경세포의 막에 달라붙은 단백질이 살짝 변형되는 등 가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자기 집 전화번호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 경우는 기억에 대한 신호가 세포의 핵에까지 영향을 미쳐 아예 새롭게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등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 악몽 같은 기억이라면 이미 이처럼 뇌세포 속에 ‘박혀 버린’ 기억일 가능성이 높다. 《사이언스타임즈》에 기고된 신동호 씨의 글에서 많은 내용을 인용한다.
장기기억은 단기기억과 비교해 기억의 지속 시간 외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뇌세포와 분자 수준으로 내려가 보면 두 종류의 기억은 완전히 딴판이다.
단기기억 때는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지 뇌세포 회로의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좀 더 많이 나와 일시적인 잔상으로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뀔 때에는 뇌세포에서 회로를 만드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져 새로운 신경 회로망이 생긴다.
<기억물질이 존재>
▲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칸델 교수 ⓒ
장기기억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로 2000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에릭 칸델(Eric Richard Kandel) 교수는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Aplysia)를 학습시키면서 생물학적으로 기억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두 종류가 있고, 장기기억이 생성될 때에는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신경 회로망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칸델의 실험은 이랬다. 껍질이 없는 민달팽이는 호흡관으로 물을 빨아들여 산소를 뽑아 쓴다. 호흡관을 툭 건드리면 달팽이는 아가미를 잠시 동안 몸 속에 숨긴다. 칸델 교수가 달팽이의 꼬리에 약간의 전기 자극을 가한 뒤 호흡관을 건드리자 달팽이는 위험을 느끼고 아가미를 몸 속에 숨기는 시간이 길어졌다. 전기 자극을 감지하는 신경세포와 아가미를 움직이는 운동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신경 회로망이 만들어져 아가미를 내보내지 않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기기억이다.
칸델은 민달팽이의 꼬리에 전기적 자극을 줄 때 신경세포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장기기억이 생기는지 관찰했다. 전기 자극을 아주 조금만 가하자 신경세포의 끝 부분에서 세로토닌이란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됐다. 세로토닌은 회로 표면의 수용체에 붙어 신경세포를 흥분시켰다. 그 결과 세포 안에서 cAMP라는 물질의 농도가 증가됐고 연쇄적으로 프로틴 키나아제 A라는 물질이 활성화돼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이 늘어났다. 이것이 단기기억이다. 신경전달물질이 늘어나면 전기 신호가 신경세포 사이의 접속 지점을 훨씬 더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잠시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칸델 교수는 민달팽이의 꼬리에 전기적 자극을 반복적으로 가하면 장기기억이 형성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기 자극을 줄수록 신경세포 내부의 cAMP 농도는 계속 높은 상태가 된다. 그러면 활성화된 프로틴 키나아제 A가 신경세포의 핵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핵 속에 있는 크렙(CREB) 단백질을 인산화시킨다. 인산화된 크렙 단백질은 뇌세포 사이에 회로를 만드는 10여 가지 유전자의 조절 부위에 결합해 스위치를 켜게 된다. 그래서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는데 새로운 회로가 생기면 그 회로가 몇 시간에서 몇 주까지도 지속돼 기억이 장기간 저장된다.
그러나 뇌는 쓰지 않는 회로를 자꾸 없애므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복 학습을 통해 이 회로를 더 강하고 두껍게 만들어야 한다.
칸델 교수가 밝혀낸 중요한 사실은 크렙 단백질이 ‘기억 유전자의 스위치’이며 이 스위치가 뇌의 해마라는 부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크렙 단백질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억을 촉진하지만 다른 하나는 기억에 제동 장치 역할을 한다. 기억을 촉진하는 크렙 단백질과 기억을 삭제하는 크렙 단백질은 보통 때에는 균형을 이룬다.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계속 창조적인 작업을 하면 기억 촉진 단백질이 더 강해져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꾼다. 반대인 경우에는 해마는 곧바로 일시 저장된 단기기억을 지워 버린다. 크렙 단백질의 존재는 머리를 쓰면 쓸수록 영리해진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신동호 씨는 적었다. 이것은 사람마다 기억력 자체에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계속된 학습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칸델 교수는 ‘기억의 본질은 추상이 아니라 물질이다’라고 주장한다.
기억이 기억물질에 의해 작동될 가능성을 지지해주는 연구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스웨덴의 히덴은 쥐의 뇌를 실험한 결과 RNA가 기억에 관계함을 지적했다. 미국의 앵거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스코트포빈(어둠을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물질을 보통의 흰쥐에게 주사한 결과 당장에 어둠을 두려워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기억에 관련된 화학물질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다시 말하면 훈련된 쥐의 뇌 속에 훈련 전에는 없었던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강봉균 교수팀도 사람에게 바다 달팽이와 유사한 단백질들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런 단백질의 양을 조절하면 기억 형성 및 저장의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봉균 교수팀은 장기기억에 해당하는 이 ‘기억 유전자의 스위치’가 `C/EBP'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단백질 중 특히 장기기억의 형성에 중요하다고 알려진 게 `CREB'와 `C/EBP'라는 이름의 단백질인데, 그 중에서도 `C/EBP'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꿀 수 있는 분자 스위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달팽이인 `군소'의 꼬리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가할수록 새로운 단백질 `ApLLP' 의 농도가 학습 전 특정 경험에 따라 계속 높은 상태가 되고, 이 같은 증가가 `C/EBP' 단백질의 양을 증가시킨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ApLLP’에 의한 ‘C/EBP’의 증가는 시냅스(신경세포들 사이의 신호 전달이 일어나는 부위)에서 신호 전달 기능을 강화시켜 장기기억이 쉽게 형성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강박사의 설명이다.
그런데 `C/EBP’ 단백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억을 촉진하지만 다른 하나는 기억에 제동 장치 역할을 한다. 기억을 촉진하는 `C/EBP’ 단백질과 기억을 삭제하는 `C/EBP’ 단백질은 보통 때에는 균형을 이루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면 기억 촉진 단백질이 더 강해져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꾼다. 반대의 경우엔 일시 저장된 단기기억을 지워 버린다는 것이 김형자 교수의 설명이다.
`C/EBP’ 단백질의 존재는 머리를 쓰면 쓸수록 영리해진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경세포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능력이 떨어진다. 어린이를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고 키우면 뇌가 수축되는 것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새로운 회로가 생기면 그 회로가 몇 시간에서 몇 주까지도 지속돼 기억이 장기간 저장된다고 추정한다.
기억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어째서 기억물질이 생성되는지 그 원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예방주사로 만들어지는 항체도 나름대로 기억을 갖고 있다. 병원균이 침입하면 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달라붙어 싸우는 것도 그 한 예이다.
동물에게도 판단과 유사한 행동이 있는데 이 경우 기억력 차이가 판단력 차이를 낳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강가에 새끼를 낳는 꼬마물떼새의 경우 여우나 오소리 등 해를 끼칠 만한 동물이 오면 용케도 이를 기억하고 부상당한 흉내를 내며 멀리 날아간다. 반면에 소나 양이 걸어오면 이들이 새끼를 밟아 죽일 것으로 판단하고 두 날개를 퍼덕이며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기억의 이식도 가능>
▲ 인터뷰하는 케빈 워릭 박사 ⓒ
기억의 이식이 가능하다는 실험도 있다. 이 내용은 (「쥬라기공원과 복제인간(3)」, 사이언스타임즈, 2004.12.20)에 약간 설명되었지만 다시 보완하여 설명한다.
1950년대 톰슨과 맥코넬은 핵산의 일종으로 유전 작용을 하는 RNA가 동물이 학습할수록 신경세포 속에서 불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맥코넬은 플라나리아라는 거머리를 닮은 하등 수생식물에게 빛을 쬐었을 때 특별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켰다. 그런 다음에 플라나리아를 잘게 썰어 훈련시키지 않은 다른 플라나리아에게 먹였다. 그리고 이 플라나리아에게 전과 같은 훈련을 시켰더니 이전의 경우보다 훨씬 빨리 이 특별한 행동을 익혔다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경우에도 기억의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 즉 전달되는 기억은 개별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학생은 선생님한테서 배우는 것보다 선생님을 먹어 버리는 것이 더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는 농담도 그 후에 나왔다. 선생님들이 남아날지 의심스럽다. 물론 먼 장래에 뛰어난 사람의 뇌세포를 배양하여 거기서 골라낸 상처 없는 기억물질을 희망자의 뇌에 주사하는 기억이식법이 가능하리라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1999년 미국의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 MIT대, 워싱턴대학 유전공학 공동연구팀은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전자를 쥐의 수정란에 주입, 보통 쥐보다 훨씬 지능이 뛰어난 쥐 ‘두기’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쥐는 두뇌의 연상능력을 제어하는 유전자로 지능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NR2B라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이 똑똑한 쥐는 전에 한 번 보았던 레고 장난감의 한 조각을 알아봤고, 물속에 감추어진 받침대의 위치를 찾아내었으며, 가벼운 충격을 받게 되는 경우가 어떤 때인지를 미리 알아차리는 등 다른 쥐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나타냈다.
요컨대 포유류에서 최초로 유전자 조작으로 학습과 기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 연구결과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람의 NMDA 수용기가 생쥐의 그것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뇌는 생쥐의 뇌와 기능이 크게 다르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 개의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기억력과 학습능력 또는 IQ의 향상이 유전조작이라는 수단을 통해 가능함을 보였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되면 암기력 위주의 시험은 앞으로 사라질 것이며 대신 학습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를 주로 시험하게 된다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수면과 기억의 밀접성>
▲ 신경전달물질작용도 ⓒ일러스트 박현정
기억에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있다고 앞에서 설명했지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정확하게 단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뇌에 대한 연구가 복잡하며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연구를 고려대학교 김용준 박사의 글을 토대로 설명한다.
학자들은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은 환자들이 몇 달 만에 의식을 회복하면서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즉 환자가 단기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환자는 약 3년 전의 일들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학자들은 다소 황당하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즉 3년이라는 시간을 경계로 사람의 경우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구분되며 이 두 종류의 기억장치는 서로 다른 기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계속된 연구로 단기기억은 측두부에 위치한 해마체에 손상을 입으면 완전히 상실된다는 사실도 밝혔으며 장기기억은 렘(REM) 수면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여기서 렘이란 ‘빠른 눈동자의 움직임’이라는 뜻으로 거의 모든 동물에서 렘 수면이 관찰된다.
사람의 경우 8시간의 수면에 약 4번에 걸친 렘 수면이 관찰되는데 잠이 깊어지면 눈망울이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의 경우 렘 수면은 5분 내지 20분간 계속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수면시간 중 대체로 90분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신생아의 경우 렘 수면이 전체 수면의 5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 렘 수면의 점유율은 점점 감소된다. 그런데 학자들은 렘 수면을 방해하면 장기기억능력이 현저하게 감소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사실로 학자들은 렘 수면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넘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렘 수면의 기능은 어릴수록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추정했다. 또한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며 렘 수면 동안에 동물의 경우는 세타 리듬이 관여하고 있는 반면에 사람은 세타 리듬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있다는 것이다.
1985년 미국 록펠러대학의 조나단 윈슨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마체에는 신경전달물질을 통과시키는 세 군데의 관문이 있다. 이 신경관문은 깨어 있는 동안에는 닫혀 있다가 자고 있는 동안에 열려서 낮에 깨어 있는 동안의 활동 및 경험으로 해마체에 저장되어 있었던 단기기억이 신경관문을 통과하는 처리과정에 의해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
윈슨 교수는 일단 앞에서 설명한 신경전달물질이 있다는 것에 동조한 후 세타 리듬이란 오랜 진화적 과정을 거치면서 얻어진 유전적 소산이며 렘 수면이라는 처리과정에서 세타 리듬으로 표현되는 유전적 자질과 공명이 되는 단기기억은 장기기억으로 넘어가고 이 공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버려지게 된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 일반 동물과는 달리 렘 수면 시간에 세타 리듬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알려준다. 낮의 활동기간을 통해서 단기기억에 저장되는 정보는 세타 리듬의 간섭을 받아서 선별되지만 장기기억으로 골인하는 마지막 관문에서는 세타 리듬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음으로써 유전적인 강제성에서 다른 동물에 비해 상당히 벗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유전적 강제성보다는 그때그때의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것이 윈슨 교수의 설명이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환경이 인간의 인격형성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갓난아이의 렘 수면이 전체 수면의 50퍼센트나 차지한다는 것은 어릴 때 즉 엄마의 젖을 빨며 자랄 때의 생활환경이 어린이의 인격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어린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서 말문이 터진다는 사실도 단기기억과 장기기억과의 시간적 경계선이 약 3년이라는 사실과 연계될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꿈과 연계된다는 것은 로봇 개발에 있어 중요한 관건이 되므로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이종호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