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습관의 생태학
정신적 삶의 기본적 진실
나그네여, 길은 그대의 발자국, 다른 무엇도 아니나니.
나그네여, 아무 수고도 없이, 그대는 걸으면서 길을 놓누나.
걸으면서 그대가 길이 놓누나.
:안토니오 마카토
과학자들은 우리의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어떤 존재든 우리가 하듯이 생각하고 계산하고 숙고할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은, 우리의 것과 같은 습관이다.
습관과 숙련된 기술은 환경 조건에 의해 촉발되고 적절한 환경적 배경이 없으면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환경에 의존한다. 우리는 우리가 세심한 조사와 확실한 판단을 기초로 행동하는 자율적인 의사 결정의 섬이라는 관념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의 본질은 그보다 더 긴밀하게 환경과 얽혀 있다.
우리들의 본질은 환경에서 출발
습관의 동물
인간은 습관의 동물
습관은 인간본질의 중심에 있다.
로봇공학자들은 그 동안 자신이 영리한 로봇-체스를 두거나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데에 에너지 하지만 그들의 더 나은 목표는 습관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일
나의 가설은 습관을 가진 존재만이 우리의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인지과학에서 마음에 대한 전통적 접근이 지금껏 습관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매우 똑똑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
우리는 합리적인 동물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한다는 플라톤과 데카르트 의 관점에 뿌리
인간에 관한 인지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 주지주의(主知主義)의 배경
주자주의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습관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의 독특한 본질은 바로 우리가 지각하고, 평가하고, 결정하고, 계획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자유로운 이유는 우리가 단순한 습관과 원칙에 입각한 행동에 바탕을 두지만 이를 초월하기 때문
내가 어떤 수학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면
내가 의존하는 더 기초적인 기능들, 말하자면 계산과 같은 것을 완전히 습득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것
주자주위의 진짜 문제는?
이성적 숙고를 가장 기본적인 인지 작용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사실 사고와 숙고 자체가 노련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한 더 기본적인 능력의 훈련인데 말이다.
초보자에서 전문가로
초보자가 야구공 때리기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 기계적인 동작에 세심한 동작에 주의를 기우려야 함.
심리학자들이 실험
초보자의 실력은 이런 기계적인 과제에 얼마나 주의를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음. 집중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때 실력이 향상된다는 말
전문가의 사정은 정반대
전문가는 기계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실력이 떨어진다. 전문 지식은 전문가가 전술이나 다음에 던져질 공의 종류를 어림하는 등,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것을 요구. 전문가의 실력은 초보자는 필연적으로 가질 수 없는 거 큰 활동에 대한 몰입에서 기인한다.
초보자와 전문가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몰입하는 방식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신경 과학에 의해서 입증 - 운동선수처럼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는 자신의 기술을 보여줄 때 초보자에 비해 전체적인 뇌 활성화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짐. 노련한 선수는 뇌가 할 일을 과제 자체가 대신함 ‘전문가가 운동할 때의 마음은 냉정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태초에 상황이 있었다
우리 각자가 주위세계에 대해 초보자나 낯선 사람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국어 학습의 경험을 들어보면
1. 맨 처음 당신은 단어들을 하나씩 배운다.
2. 그 단어들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갖은 예를 쓰고,
3. 그것의 격변화와 활용 규칙,
4. 그리고 그것을 다른 단어와 결함 시키는 규칙들을 암기한다.
5.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말하려면 최소한 처음에는 언어 자체에 주의를 기울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6. 즉, 우리가 말할 때 보통 관심을 갖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제와 이야기하는 대상으로부터 한눈을 팔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언어를 숙달했다고 해서 언어에 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능력, 또는 언어의 규칙성과 원리를 설명하는 특별한 능력이 주어지지는 않는다.(언어학 전문가가 안 된다.)
훌륭한 기타리스트라고 해서 최고의 연주 교수법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는 맞물린 인간 삶이 일면
언어와 활동은 서로가 얽혀 있으며, 언어는 상황과 우리가 맞물리는 특별한 일면이라는 이 사실을 우리는 끊임없이 마주한다.
십대들은 언어를 부모와 다르게 사용한다. 어른에게 말할 때면 말을 고치고,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십대가 가진 언어적 감수성과 사회적 감수성의 표식일 것이다.
무엇 하러 십대의 언어를 성인에게 시도하겠는가?
우리는 제과점에서 빵을 사느냐
강의를 하느냐,
경찰관에게 말하느냐
외국인에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하루 온종일 자신의 언어를 수정한다.
우리의 언어는 말하는 대상에 대한 우리에 관심과 그 사람의 기대에 반응해서 수정된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지평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는 나의 대화 상대가 무엇을 안다고 추정되는가에 달려 있다. 야구광, 컴퓨터 기술자, 재무가 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전문 영역에 속하는 전문용어를 구사한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안다는 것은 언어에 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야구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야구에 관해 아는 문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의 숙달이 인지적 성취이고, 지능과 마음의 사용을 예시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이것이나 저것을 암기하거나 복잡한 기호 체계를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는 문제가 아니다. 언어사용자는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사회 관습에 참여하는 사람이며, 결정적으로 그 사회 관습에서 언어는 일면을 형성할 뿐이다.
체스의 언어
주지주의 전통에서는 사고를 일종의 컴퓨터 조작으로 생각
만일 우리가 컴퓨터라면 우리가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지 밝혀야 함
사고의 언어
언어에 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적’ 언어학에서 언어에 접근하는 표준방식대로라면
우리가’자연스러운‘ 언어를 구사하는 훌륭한 화자일 때 우리의 기본실력은 단어들을 조합해서 문법적으로 맞는 문장을 이어가는 규칙을 아는 데 있을 것이고, 청자로서의 기본 실력은 개별 단어의 의미와 단어조합을 지배하는 규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이 말한 문장에 의미를 제대로 부여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이런 종류의 접근법은 언어에 실제 현상을 의도적으로 무시할 때 가능하다. 체스에 대한 계산적 접근이 체스 경기의 실제 특징을 무시하는 것과 닮은꼴이다.
우리가 말하고 듣는 것은 대부분 전에 말했거나 들었던 것임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대화를 하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황무지로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대부분 학교 운동장에 있거나, 연못 주위의 포장도로 아니면 벤치로 가는 오래 전 흙길 을 따라 걷고 있다. 우리의 언어 세계는 나머지 세계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걸음으로 다져진 오솔길을 따라 뻗어간다.
언어에 관한 개념은 잘못된 것이 매우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언어의 첫째 기능은 정보의 표현이나 생각의 전달이라는 개념이다. 말에는 많은 기능이 있지만 분명 대부분의 말은 국회의원들 사이의 이성적인 담화보다는 침팬지가 서로 털을 다듬어 주는 행동이나 목양견이 양을 돌보는 행동이 더 가깝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말과 행동의 대부분은 진정한 대화보다는 야구선수들이 ‘마이 볼’을 외치고 고함과 신호에 더 가깝다.
언어학자들은 노엄촘스키가 우리의 언어적 창의성이라 부른 것, 즉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거의 무한히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에 깊이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당신이 하는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적인 이유는 당신이 그 말을 하기 전에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를 내가 벌써 알기 때문이다!(처한 환경과 상황에서) 내가 당신이 단어와 그것의 조합 규칙에 관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한 말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문제와 마주칠 일은 없다. 말을 이해하려면 대화 상대와 공유하는 환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는 단 몇 년 만에, 널리 주장되는 바에 따르면 형편없는 언어 데이터를 기초로 언어 사용법을 알아내야 한다. 어떤 식으로 아이는 이를 기초로 문법 영역과 문법이 아닌 영역을 구분하는 규칙을 알아낸다. 이는 위대한 과학적 정신에 걸맞은 위업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평범한 아이들이 이 일을 해낸다. 언어는 엄청나게 복잡한 상징체계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냥 어쩌다 보니 마주친 것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면 사용법을 기적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자산이 집단 적으로 수 천년 에 걸쳐서, 우리가 쉽게 협동하고 의사소통 하는 방법으로 쓸 수 있도록 언어를 지어온 것이다.
전문 지식의 여러 얼굴
인간이 비범한 기술을 보여주는 영역이 얼굴 지각이다.
놀랍게도 얼굴에 관한 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전문가들이다. 여기에 특별한 훈련이나 오랜 경험을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 얼굴에 대한 민감성은 사실상 정상적인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선행조건이다.
얼굴지각의 기본개념
① 먼저 세계로부터 오는 시각 정보가
② 뇌 안에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기본 표상을 세우면,
③ 그 표상이 시각계의 더 상위 영역들을 향해 올라가면서
④ 처리되는 동안 더 많은 내용이 더해진다.
⑤ 한 단계에서는 그 시각 표상에 색깔에 도입되고.
⑥ 또 다른 영역에서는 운동이 도입된다.
⑦ 대상은 외선조 피질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해서야 비로서 시각적으로 범주화 된다.
얼굴 모듈은 어굴 의식의 신경 상관물이다.
얼굴이 특별 하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얼굴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에게 중요하다. 얼굴은 다른 면에서도 지각표상으로서 특별하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얼굴에 관심을 드러낸다.
뇌의 방추 얼굴영역(우뇌)은 의식에서 얼굴을 표상하는 뇌 안의 자리인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하는 추가적인 증거는 이 영역에 입은 손상이 얼굴 시각에만 특정하게 결손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얼굴 인식 불능증 이라는 이 상항 장애의 특징은 무엇이 얼굴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생각을 옹호해온 낸시 캔위셔 는 얼굴인식 체계에 대한 연구가 인간의 뇌는 스위스군용칼 같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뇌에는 각각 단일한 특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춤 제작된 특수 목적의 성분들이 조합되어 있다는 말이다.
낯익은 단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
비교 대상으로 또 다른 영역의 전문 지각 기술인 읽기를 살펴봄으로써 이 쟁점에 접근할 수 있다. 아이들이 읽기를 배우는 과정은 만만치 않게 힘든 과정이다.
그 과정을 시작할 때
① 아이들은 글자를 숙지하고
② 글자와 소리 사이의 관계를 배운다.
③ 단어에서 각각의 글자를 읽은 다음
④ 그 단어를 소리 내어 읽는다.
단어에 민감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한 단어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들어 있는 글자 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에서 철자를 확인하는 능력은 그 단어가 글자의 뒤범벅이 아니라 진정한 단어 일 때 향상된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아는 것처럼 책을 거꾸로 놓고 읽기는 최소한 특별한 연습이 없이는 어렵가나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뇌의 왼쪽 방추이랑에는 단어의 시각적 존재에 반응하는 영역이 있다.
이 영역에 단어를 보면 불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단어처럼 생긴 글자들의 집합, 즉 유사 단어만 보아도 불이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소위 시각적 단어형성 영역 이라는 이 영역이 손상되면 단어 지각에 특정한 결정한 결손이 생긴다는 증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단어 감지 기제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 고 있다.
결국, 읽기란 인간 진화사에서 뒤늦게야 발명된 문화적 기술인 것이다.
얼굴인식은 모둔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의 재능을 보이는 반면 단어 인식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의 재능을 보이는 반면 단어 인식은 읽기를 배운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므로 얼굴만 지각하는 기제가 더 강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차이를 더 잘 설명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기 때부터 얼굴에 노출되는 반면 단어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일부라는 사실이다. 단어에 노출되면 단어들이 뚜렷해지면서 마치 얼굴처럼 주위를 잡아 끈다는 것은 인상적이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인종 집단이 아닌 다른 인종 집단의 얼굴에 대해서는 얼굴을 구분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짐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사람들의 얼굴을 잘 구분한다. 이 관찰은 얼굴에 대한 우리의 정밀한 재주 가운데 최소한 일부는 학습된 것임을 보여준다.
단어의 사례에서처럼 우리의 얼굴 감지 능력은 지각관련 전문 지식을 발달시키는 더 일반적인 능력을 지각 관련 전문 지식을 발달시키는 더 일반적인 능력의 특별한 응용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얼마든지 있다.
방추 얼굴영역은
① 얼굴 이외에
② 지각하는 사람이 전문적으로 잘 아는 대상에 의해서도 활성화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③ 새 전문가의 경우는 새가,
④ 자동차공의 경우는 자동차가 방추 얼굴영역을 점화시킨다.
⑤ 이는 공교롭게도, 모든 사람의 방추 얼굴 영역이 얼굴에 의해 점화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얼굴 전문가이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⑥ 우리들 모두는 어쩌다 보니 개별적인 얼굴을 구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⑦ 지식과 경험이 당신으로 하여금 말자동차. 원숭이와 같은 대상의 얼굴을 경험할 수 있게 하듯이, 우리가 인간의 얼굴을 정확히 구분 짓게 하는 것도 지식과 경험이다.
⑧ 얼굴 인식 불능증 환자들은 대개 다른 지각에도 결함을 보인다.
방추 얼굴 영역을 이해하고 그것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지각으로 자각되는 얼굴 등의 대상이 우리 삶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분명하게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방추 얼굴 영역이 자각 학습을 더 완전히 이해하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지각 전문 지식을 방추 얼굴 영역으로만 설명 할 수 없다.
나쁜 습관(무의식적 행동)
담배 피우기 텔레비전 오래 보기 음식을 입안에 한 가득 넣고 우물거리기, 남에게 참견하기 등은 습관을 간주되며, 사람들은 그것을 나뿐 습관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나쁘다고 여기는 부분적인 이유는 그것이 습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그 생각은 이런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신중할 때가 최상의 상태라면 습관적 일 때는 최악의 상태이다 습관적인 행동은 생각 없이 멋대로 이루어 지며,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중의 야만적 행동이다. 이는 습관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한, 우리의 행동은 빤히 드러난다. 습관의 통치를 중단시켜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에는 마치 훌륭하고 건강한 무언가가 있는 거 같다.
습관이 없는 존재는 로봇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첫째 당신이 단호하고도 신중 하려면 생각과 행동에 습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습관이 기술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스포츠와 음악을 보면 명백하다. 이 분야에서는 훈련, 즉 반복 연습이 플레이와 연주에 체계를 형성하는 구체적인 기반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학처럼 분명히 지적인 노력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의 기반은 습득된 실용적 기본기다.
주지주의자들은 판단을 내리고 이성적으로 담화를 나누는 인간의 성향이 우리의 독특한 인지적 성과물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인지적 묘기가 나중에 더해진 것이라고, 실용적 기술의 나무에 열린 열매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지적 능력이 의존하는 실용적 기술 자체는 최소한 그것이 기분 수준에서는 지적 능력의 소유와 무관하다.
둘째 습관적인 사고와 행동은 설사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해 자동으로 발생하는 반응이라 해도. 그 자체로 종종 지능과 이해를 표현한다.
셋째 습관이 없는 삶은 로봇의 삶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삶에서 하루 하루는 낯선 나라에서의 첫날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훑어보고, 해석하고, 평가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재평가 할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습관은 우리가 친숙한 맥락 안에 존재하면 염려해야 하는 선택의 가짓수와 자유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든다. 우리는 아침에 침대에서 나올 때 바닥이 단단한지 시험해 볼 필요가 없고, 진동 스위치와 화장실을 어디에서 찾을지도 알고 있다.
좋은 습관
지금까지 나는 지능조차도 주지주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체스를 둔다는 것은 체스 환경에 익숙하다는 것이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적 관습에 꼼짝없이 묶여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문 지식 덕분에 우리가 하는 수많은 말과 행동은 계획, 중재, 숙고를 거치치 않지만 그럼에도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이해와 민감함과 적절한 반응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외국을 방문할 때는 미국에 있다가 유럽을 방문할 때처럼 그 나라가 비교적 자신의 나라와 비슷한 나라라도 약간은 삐걱거리고 구형이 깨지고, 소외된 느낌이 든다.
마치 모든 것이 어떤 축을 중심으로 약간 돌아간 것 같다,
우리가 여행할 때 느끼는 혼란은 우리가 세상에서 제대로 기능 하기 위해 숙련된 기술이라는 배경에 평소에 얼마나 생각 없이 의존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솔길
물과 곤충이 총천연색인 이유는 주변에 색에 민감한 동물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환경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더 잘 알아내기 위해서 색에 민감하게 진화했다.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 의존성은 오솔길의 존재로 예시할 수 있다.
우리가 택하는 길이 반질반질한 것은
① 우리가 그 길을 매일 택하기 때문이고,
② 우리가 그 길을 택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그 길이 워낙 반질반질해서 가장 저항이 적은데다가 다져진 길을 떠나 모험을 하려면 힘이 더 들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제를 주겠다. 다음 한 달 동안 당신이 움직이는 코스를 지도에 그려보라. 당신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다면 한 달이 다 되었을 때 일정한 경로가 반복을 통해 시커멓게 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따금 여기저기에 가는 선이 일상 경로의 굵은 줄 밖으로 뻗어 나올 것이다. 습관의 강바닥은 일정한 노선에 따른 여행을 안전하고 믿을 만하고 효율적이고 쉬운 것으로 만든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시험해본 것에 의존함으로써, 우리는 박물관 가기나 극장 가기처럼 가장 중요한 유람을 위해 에너지를 아낀다.
알려진 세계의 한계
도시와 교통수단처럼, 생각하기, 읽기, 대화, 우정,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고와 지적 탐험에서 친숙한 경로를 따르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화가 작가 영화 제작자도 마찬가지로 전에 이루어진 것에 구속된다. 근본적으로 새로움은 거의 불가능하다.
화가가 직면하는 도전은 새로우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이미 낡은 것(배경지식)이어야만 한다.
요점은 이 사실이 진보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용감하게 가려면 우리는 먼저 알려진 세계의 한계를 지나가야 한다. 모든 동물의 삶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술과 습관을 정복해야 한다.
습관의 생태학
습관은 정신적 삶의 기본적인 측면이다.
습관이 없으면 계산도, 말도, 생각도, 인식도, 게임도 없다. 우리처럼 습관을 가진 동물만이 우리의 마음과 같은 어떤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습관은, 최소한 습관 가운데 많은 것은 상황이나 환경에 좌우된다.
① 습관은 장소나 상황과 관련해서 형성된다.
② 습관은 우리 자신의 반복 행위에 의해 놓이는 오솔길과 같다.
③ 습관은 단순히 행동하려는 성향이나 생각 없이 기우는 자동적 경향이 아니다.
④ 습관은 우리가 처한 환경의 인도로 무언가를 하기 쉬운 것이다.
⑤ 오솔길을 덮어버리거나 친숙한 광경이 사라지면, 우리의 습관은 종종 소멸될 수 있다.
앞장에서 우리는 언어를 포함한 도구와 기술의 능숙한 사용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뿐만 아니라 자아감까지 변형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당신은 우리가 하는 지적 활동들을 언어 없이는 할 수 없을 것임을 언어 기술은 풍부한 인지능력의 토대임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언어를 일단 알면 우리의 것이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으로 내면화한다. 만일 당신이 태어나 접촉 없이 고립되어 산다면 언어가 위축되면 사고 능력 또한 위축 되어갈 것이다. 도구를 빼앗는 것은 팔다리를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구를 잃는 것은 대부분 습관과 기술을 읽는 것이다. 우리의 습관적인 존재 방식이 실현되고 유지되느냐는 우리가 올바른 종류의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습관에게는 세계가 필요하다
능숙한 전문가인 한 우리는 자신이 하는 짓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숙련된 기술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 대해 적절하게, 자동적으로 반응 할 수 있다.
깊이 생각하려고 하면, 전문 지식이 발휘될 조건들의 흐름이 끊겨서 그 조건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우리는 당황하여 실수를 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뇌 혼자서 우리의 의식 있는 삶의 특징을 설명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힘을 잃고 더 억지스러워진다. 신경 활동은 우리에게 여러 형태의 전문 지식이 발달하도록 해주고, 그 지식이 우리가 주위 세계를 다루는 방식을 결정하지만, 이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이야기에서 뇌는 결코 일부분 이상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영국의 철학자로 지금은 보고타의 콜롬비아 국립대학교에 있는 아드리안 쿠신스가 인지적 오솔길이라 부른 것과 기타 방식의 인지적 습관들에 의존하며,
그 습관 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실제로 그럴 만한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