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53)
폰 노이만(2)
▲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서 강의하는 폰 노이만.  ⓒ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은 승전의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더구나 수소폭탄 개발 성공으로 소련과의 냉전에서도 이긴 미국의 기쁨은 더 했죠.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그야말로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제국’의 시대가 열립니다. 핵폭탄 개발의 맨해튼프로젝트와 수소폭탄 개발에도 앞장섰던 폰 노이만 또한 그야말로 최고의 애국자, 세계 최고의 수학자로 인정받습니다.

폰 노이만이 한 파티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까만 드레스와 모자의 정장차림의 한 여인이 파티장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이 여인이 폰 노이만에게 당당하게 다가왔습니다. “John von Neumann was at a party one night and a woman approached him and said. ‘Mr. Von Neumann, I heard you’re quite the mathematician. I have a problem for you.’"

“노이만이 어느 날 저녁 한 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노이만 선생님, 당신이 대단한 수학자라는 걸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문제를 하나 낼 테니 한 번 맞춰 보실래요?’”

이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Mr. Von Neuman, suppose two trains 200 miles apart are moving toward each other; each one is going at a speed of 50 miles per hour. A fly starting on the front of one of them flies back and forth between them at a rate of 75 miles per hour.”

“선생님,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0마일 떨어진 두 기차가 (같은 철로 위에서) 서로를 향해 시속 50마일로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파리 한 마리가 시속 75마일로 한 기차에서 출발해 두 기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날고 있었거든요.”

이 매력적인 여성은 천재 수학자 폰 노이만에게 다가와 포도주를 권합니다. 머리가 컴퓨터로 알려진 폰 노이만의 얼굴 표정을 열심히 읽고 있는 이 여인의 질문은 이어집니다. “It does this until the trains collide and crush the fly to death. Mr. Von Neuman, what is the total distance the fly has flown?”

“파리는 기차가 충돌해서 죽을 때까지 이런 행동을 계속합니다. 노이만 선생님, 그러면 파리가 날아간 총 거리는 얼마나 되는 건가요?”라고 묻습니다. ‘폰 노이만 당신, 천재 수학자라고 그러는데,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건방진 콧대 한번 꺾어 놓아야지!’ 뭐 이런 의도였겠지요?

6살 때 8자리 수, 그러니까 천만 단위 수의 나눗셈을 머리 속에서 자유자재로 풀었다는 폰 노이만의 머리는 컴퓨터보다 빨랐습니다. 그래서 폰 노이만은 기다릴 것도 없이 즉석에서 당장 해답을 건네줍니다. “When this problem was posed to John von Neumann, he immediately replied, ‘150 miles.’” “이 문제가 폰 노이만에게 전달되자 그는 당장 대답했다. ‘150마일’”

이 여인은 즉석에서 대답한 폰 노이만을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어째서 150마일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폰 노이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Since the trains are 200 miles apart and each train is going 50 miles an hour, it takes 2 hours for the trains to collide. Therefore the fly was flying for two hours.”

▲ 컴퓨터에 대한 폰 노이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폰 노이만 상'의 메달.  ⓒ
기차는 200마일 떨어져 있고 50마일로 달리기 때문에 충돌하기까지는 2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이 파리는 두 시간 동안 날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리=속도x시간’이라는 공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주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해답입니다.

이 매혹적인 여인은 폰 노이만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요. 나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나도 꽤 공부한 수학자라고요.’ 이런 생각이겠죠? 그래서 폰 노이만을 빤히 쳐다보면서 다시 묻습니다.

“It is very strange, but nearly everyone tries to sum the infinite series.” “아주 이상하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급수를 더해서 그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나요?” 다시 말해서 기차는 달리고 있어서 파리가 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그 와중에 파리는 왔다 갔다 하니까 왜 무한급수 개념으로 풀지 않고 단순히 산술적으로 푸느냐라는 지적입니다.

그러자 폰 노이만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What do you mean, strange? That's how I did it!” “이상하다고요? 아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게 바로 내가 한 방법인데요.”(내가 당신이 말하는 바로 그 무한급수를 이용해 문제를 풀었다는 뜻).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렇다면 폰 노이만이 머리가 정말 컴퓨터라서 무한급수를 사용해서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한 건가요? 아닙니다. 잘 났다고 뽐내는 겁니다. 파티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인의 질문에 대한 폰 노이만의 대답에는 수학적 접근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독특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폰 노이만은 이런 야기를 해 줍니다. “The problem can be solved either the easy way or the hard way. The fly actually hits each train a infinite number of times before it gets crushed, and one could solve the problem the hard way with pencil and paper by summing an infinite series of distances.”

“이 문제는 쉬운 방법으로도 풀 수 있고 어려운 방법으로도 풀 수 있습니다. 파리는 사실 기차 충돌 이전까지 무한히 기차에 부딪힐 겁니다(충돌 이전에 죽고 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종이와 연필을 갖고 거리에 대한 무한급수를 더하면서 어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할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어려운 방법으로 푼 게 아니라 쉬운 방법을 선택했고, 쉬운 방법을 택했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죠.

그러면 파리가 날아간 거리를 계산하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고, 서로 다른 수치가 나온다면 과연 무엇이 맞는 방법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수학이라는 정확한 학문에 두 가지 다른 해답이 나올 수 있느냐라는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 문제가 무한급수 개념이 아닌 또 다른 식으로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라고도 주장합니다.

▲ 폰 노이만은 '게임이론'을 창시하기도 했다.  ⓒ
폰 노이만은 이에 대해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수학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됩니다. 단순히 생각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파리와 기차’ 퍼즐은 거창하게 수학자만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일반 사람도 충분히 풀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상을 관찰하고 접근하는 연구자가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복잡한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 내는 과학자는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잡한 접근에서는 이론이 만들어질 수 없죠.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Make everything as simple as possible, but not simpler.”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그렇지만 단순한 사람이 되지는 말라.”

그러면 폰 노이만에게 ‘파리와 기차’ 질문을 던진 파티장의 매력적인 여성은 누구냐고요? 그리고 둘이서 나중에 어떻게 됐느냐고요? 아마 이 여성은 가공의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리와 기차’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재미있게 이야길 꾸미려고 까만 드레스와 모자의 여인을 등장시킨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강의 중 한 학생이 폰 노이만에게 질문한 내용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폰 노이만이 학생들에게 낸 숙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과 50년 남짓한 짧은 시기에 이야기는 이렇게 많이 변합니다.

천재 수학자답게 폰 노이만은 괴팍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일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운전을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서 집으로 올 때 꼭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데, 이 곳에서 자주 다른 차와 부딪혀 교통사고를 많이 냈습니다.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에 불려간 그는 진술서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오른쪽의 가로수들이 시속 6마일로 일정하게 나를 스쳐가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갑자기 내 길을 막았다.”

폰 노이만은 현대 경제학의 중요한 이론인 ‘게임이론’(theory of game)의 창시자입니다. 게임이론은 두 명의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경쟁할 때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행동을 찾는 방법에 관한 이론으로 제로섬 게임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습니다.

게임이론은 군사전략에도 이론적으로 응용돼 선제공격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이론이 됩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북한, 이란에 대해 선제공격을 운운하는 데는 게임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관심을 끄는 분야라면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 들어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에 분야에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폰 노이만은 이미 컴퓨터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고했습니다. 그는 1949년 한 논문을 통해 컴퓨터나 로봇과 같은 ‘첨단 자동장치’(complicated automata)는 스스로 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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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공생명체의 등장을 예고했고, 사실 인공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왓슨과 크릭이 생명체의 기본 요소인 DNA 구조를 해석하기에 앞서 이미 DNA를 수학적인 시스템으로 풀고자 노력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생명체를 자기복제 능력이 있는 ‘물체’로 규정한 그는 분자생물학과 컴퓨터 공학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컴퓨터 연구가 IBM에 채택돼 돈을 벌기 시작하고 인간의 두뇌와 같은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1957년 골수암으로 세상을 하직합니다. 수소폭탄 개발에 몰두한 나머지 방사능 오염에 노출됐기 때문이죠.

그의 사랑하는 딸 마리나는 그 후 한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결정한 합의는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술회한 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폰 노이만은 아내와 이혼하면서 마리나를 아내가 데려가되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는 법적으로 자기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같은 조치로 인해 마리나는 아버지가 이룩한 지적재산권을 이어 받아 돈을 벌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파리와 기차’ 이야기는 고등과학원 수학부 윤강준 박사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52) 폰 노이만(1) 2007년 02월 28일(수)

▲ 폰 노이만. 
"The sciences do not try to explain, they hardly even try to interpret, they mainly make models. By a model is meant a mathematical construct which, with the addition of certain verbal interpretations, describes observed phenomena."

"과학은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과학은 해석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과학은 주로 모델을 만든다. 그 모델이란 언어적 해석이 가미된 것으로 관찰된 현상을 묘사하는(보여주는) 수학적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폰 노이만(1903~1957): 헝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발명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명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지요?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과학은 아주 생생한 사실과 현상을 보여주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설득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과학은 그 자체가 사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모 영자신문에서 기자로 근무하던 1980년대 초의 일입니다. 당시 유명한 미국 시사만화가인 루리(Rurie)가 한국을 방문해 며칠 동안 안내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를 무식하고 언제 도발할지 모를 위험한 북극곰으로 묘사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은 시사만화가가 많지만 그 때는 별로 없었을 때죠. 당시 ‘Rurie’s Opinion’이라는 이름으로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뉴스위크, 타임즈 등 신문과 잡지에 그의 만화가 많이 실려 꽤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유태인인 그와 판문점과 민속촌 등을 방문했고, 유명 언론인과 방송인들도 같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이야기가 왜 갑자기 등장하냐고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Editorial tries to explain. But cartoon tells.” “기사(논설, 또는 글)는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만화는 말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림과 영상은 더 이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의 명언도 그렇습니다. 과학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더구나 수학으로 도출된 과학은 더욱 그렇습니다.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수학은 모든 과학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폰 노이만 하면 역시 인터넷 혁명을 가능케 한 컴퓨터 발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일종의 계산기 역할을 하는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컴퓨터의 모체가 된 고속 컴퓨터는 폰 노이만이 개발한 컴퓨터였습니다. 노이만이 처음으로 이 컴퓨터를 보여 준 사람은 딸 마리나의 약혼자였습니다.

"In early 1956, Marina von Neumann, daughter of world-renowned mathematician John von Neumann, brought her fiancé, Robert Whitman, home to Princeton to meet her famous father.” “1956년 초 세계적인 수학자 폰 노이만의 딸 마리나는 아버지에게 소개하기 위해 약혼자인 로버트 휘트만을 프린스턴 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어서 "The eminent computer pioneer decided to show his future son-in-law the MANIAC(mathematical analyzer, numeral integrator, and computer)—the legendary machine von Neumann built in the six years after World War II."

▲ 폰 노이만이 개발한 초창기 컴퓨터의 모습. 
"그 유명한 컴퓨터 개척자는 그의 사위가 될 사람에게 이차대전 후 6년 만에 만든 ‘매니악’ 컴퓨터를 보여주기로 결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폰 노이만이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처음 공개한 1956년은 그가 죽기 바로 1년 전의 일입니다.

"The most powerful and accurate computer ever designed to that point, MANIAC helped the United States beat Soviet Union in the race for the hydrogen bomb in 1952 and was a forerunner of the modern computer age."

이제까지 고안된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정확한 컴퓨터 ‘매니악’은 미국이 수소폭탄개발 경쟁에서 소련을 이기도록 도왔고, 현대 컴퓨터 시대를 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폰 노이만은 사위가 될 로버트 휘트만에게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매니악’ 컴퓨터 열쇠뿐 아니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의 모든 열쇠를 건네줍니다. 엄청난 자산가치의 재산을 ‘미래의 사위’에게 넘겨준 겁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병, 골수암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휘트만은 현재 미시건대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입니다.

"The most vitally characteristic fact about mathematics is, in my opinion, its quite peculiar relationship to the natural sciences, or more generally, to any science which interprets experience on a higher than purely descriptive level."

"내 견해로 볼 때, 수학에 대해 가장 생생하고도 특징적인 사실은 수학은 자연과학, 좀더 넓은 면으로 순수한 묘사적인 수준을 넘어 높은 차원에서 경험을 풀어나가는 어떠한 과학과도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수학은 모든 과학과 관계를 맺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과학이라는 겁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If people do not believe that mathematics is simple, it is only because they do not realize how complicated life is.” “만약 사람들이 수학이 단순하다고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인생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학에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던 그는 28세의 나이에 헝가리를 떠나 프린스턴대의 객원 교수에 취임합니다. 기초과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설립 멤버가 됐고,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프로젝트와 이후의 수소폭탄 개발계획에 참여하게 되는 악연을 맺게 되는 거죠.

1945년 8월, 이론적인 핵폭탄 위력이 현실적으로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 핵폭탄이라는 걸 직접 목격한 맨해튼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은 상당수가 충격을 받습니다. 죄의식을 느끼고 괴로워합니다. 이론 속에서의 핵폭탄이 실질적으로 엄청난 사람들을 죽이는 무기로 되는 것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 폰 노이만은 수소폭탄 개발계획에 적극 찬성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맨해튼프로젝트를 지휘한 오펜하이머입니다. “손에 묻은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며 트루만 대통령을 찾아가 핵무기 폐기를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 과학자입니다. 핵폭탄 개발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질라드는 핵폭탄의 참상을 접해 듣고는 아예 전공을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러나 노이만은 핵폭탄 개발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데 앞장섭니다. 그리고 수소폭탄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과학자입니다. 그는 미국의 강력한 무장을 지지하면서, 심지어 소련에 수소폭탄을 투하해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을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소련을 증오한 그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With the Russians it is not a question of whether but of when. If you say why not bomb them tomorrow, I say why not today? If you say today 5 o’clock, I say why not one o’clock."

"러시아에 관련해서 말하자면,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인가 하는 문제다. 만약 내일 당장 폭격을 가하자면 나는 왜 오늘 하지 않는가? 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5시에 하자고 한다면 나는 왜 1시에 하지 않는가? 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노이만이 얼마나 소련을 싫어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노이만이 소련을 싫어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조국인 헝가리는 15세기에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영토가 갈갈이 찢기고 분쟁 속에 휘말리게 된 데에는 항상 러시아가 있었으며, 소련으로부터 엄청난 시달림을 받아 왔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편을 든 헝가리는 대전이 끝나고 나자 소련의 위성국가로 지배를 받습니다.

그는 세계가 각기 다르게 나라별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갖가지 분쟁이 발생하는 거고, 해결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사전에 예방하기도 힘이 든다며 세계 모든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세계정부(world government)가 설립돼야 한다는 주장도 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 속에는 미국을 의식하고 있는 거죠.

▲ 로스 알라모스 연구실에서 동료와 함께 있는 폰 노이만(왼쪽에서 3번째) 
"You don’t have to be responsible for the world that you’re in.”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야." 핵폭탄 개발연구소인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서 같이 일했던 파인만(Richard Feynman)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일본에 투하된 핵폭의 참상을 전해 듣고 괴로워하던 파인만에게 던진 충고입니다. "여보, 당신 혼자서 세상을 책임지는 건 아니야, 혼자서 괴로워하지 마, 알겠어?" 대충 이런 뜻이겠죠?

그의 천재적인 머리는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나타납니다. "You insist that there is something that a machine can’t do. If you will tell me precisely what it is that a machine can not do, then I can always make a machine which will do just that."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정확하게 일러준다면 그걸(기계가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기계를 언제든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대단한 이야기죠? 천재 과학자 노이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노이만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인간의 뇌와 같은 기계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체를 명령하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복잡한 인간의 뇌와 같은 컴퓨터를 만들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는 인간의 뇌를 분석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으나 얼마 안돼 죽음을 맞이합니다. (2편에 계속됨)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hanmail.net

저작권자 2007.02.28 ⓒ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51)
도로시 호지킨
▲ 비타민B12와 함께 있는 도로시 호지킨.  ⓒ
"I wasn’t ambitious. I just liked working in this particular field. I am really an experimentalist. I think with my hands. I liked it as a child. I didn’t imagine myself making a great discoveries."

"저에게 야망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는 자체를 좋아했을 뿐입니다. 저는 실험에만 매달린 실험주의자입니다. 저는 손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어린애처럼 좋아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발견을 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로시 호지킨(1910~1994):영국 화학자, 노벨상 수상자-

이 말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분자생물학자인 루이스 월퍼트(Lewis Wolpert)가 진행하는 BBC방송에서 도로시 호지킨(Dorothy Mary Crowfoot Hodgkin)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직후 진행한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너무나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가 뭐냐?”는 월퍼트의 질문에 도로시는 아주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only by starting early. For those that came into X-ray crystallography early there was so much gold lying around. one could not help finding it.”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을 뿐이죠. (저처럼) X선 결정학 연구(회절연구)를 일찍 시작한 사람에게는 황금이 사방에 널리 깔려 있었어요. 누가 그러한 발견을 마다하겠어요?”

저술가, 방송해설가로도 크게 활약했던 월퍼트는 “성공을 이루기까지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도로시는 다시 순진하고 담담하게 응답하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았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볼까요? “No, sometimes this works the other way. I think it’s because I don’t notice it very much that I am a woman among so many men. There have been moments when it was to my advantage."

"아닙니다. 때로 정반대였지요. 아마 남자들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여자라는 걸 깊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한테 오히려 이득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도로시의 대답은 다시 이어집니다. “Sometimes my male colleagues were particularly nice and helpful to me as the lone girl about(great laugh).” “남성 동료들은 저를 ‘길 잃고 헤매는 외로운 소녀’라고 생각해서 특히 더 친절하고 도움도 많이 주었죠(큰 웃음).”

도로시가 토크쇼에 나가 사회자의 질문에 위트나 기지로 대답을 한 게 아닙니다. 그저 단순하고 솔직하게 대답한 거죠. 도로시가 TV쇼에서 그러한 재치를 발휘할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순수하고 담백한 이야기가 방청객과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 것이죠. 도로시의 성품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로시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미ㆍ소 냉전시대였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두 개의 세계대전을 둘러싸고 유럽식 사회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립이 아주 강했던 시기입니다. 유럽 국가의 정당을 보면 노동당, 사회당 등이 많습니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뚜렷한 동기가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I had inherited my socialist and peace-loving policies from my mother who had four brothers. In the First world War, two got killed outright and the other two died from its after-effects. These heart-breaking losses made my mother very much concerned with League of Nations where she took me when I was at 14.”

"사회주의와 평화사랑(전쟁반대주의)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남자 형제가 4명이었는데 두 분은 1차대전에서 죽고, 나머지 두 분은 전쟁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를 잃은 쓰라린 아픔으로 어머니는 국제연맹(국제연합UN의 전신)에 깊이 관여했고 제가 14살이 된 후부터 그곳에 데려가곤 했습니다."

유럽은 아직도 사회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그러면 유럽이 북한처럼 공산주의국가란 이야기냐고요? 설명을 하자면 복잡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완전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성향(orientation)이 다를 뿐입니다.

1994년 도로시가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자 그녀의 학문적 동지이자 역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막스 페르츠(Max Ferdinad Perutz)는 과학연구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동료들을 항상 배려했던 인간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디펜던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She pursued her crystallographic studies, not for the sake of honors, but because that was what she liked to do. There was a magic about her person. She had no enemies, not even among those whose scientific theories she demolished or whose political views she opposed.”

해석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고 싶은 분야이기 때문에 결정학 연구에 매달렸다. 그녀의 인간성에는 (남을 끄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적이 없었다. 그 과학적 이론이 옳지 않다고 그녀가 반박한 사람들도, 그리고 도로시의 정치적 의견과 달리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녀를 적대시 하지 않았다.

이어서 “Just as her X-ray cameras bared the intrinsic beauty beneath the rough surface of things, so the warmth and gentleness of her approach to people.” “그녀의 X선 카메라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 이면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처럼 사람들(동료들)에게 겸손하고도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다.”

과학자들은 열정이 있고 고집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집착이 있습니다. 상식적인 일상생활과 다른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문제도 생기고 괴팍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저 과학이 좋아 과학을 하는 소녀와 같은 과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론이 다른 사람이거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도로시를 좋게 생각하고 아껴주었다는 이야기죠.

▲ 호지킨은 비타민B12의 구조를 밝힌 공로로 1964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
인디펜던트지에 도로시를 추도하면서 이 글을 기고한 페르츠 박사는 도로시보다 2년 빠른 196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영국의 분자생물학자입니다.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의 단백질 3차원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동료인 존 켄드루(John Kendrew) 박사와 함께 노벨상을 받습니다. 전공도 비슷해 도로시와 친했습니다.

도로시는 비타민B12의 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습니다. 이 상을 받기 앞서 옥스퍼드대(1928~1931년)에서 복잡한 거대분자의 X선 연구를 했고, 그 후 1932~34년 케임브리지대(1932~1934년)에서 동료들과 함께 단백질인 펩신에 관한 최초의 X선 회절사진을 얻어냅니다.

다시 교수로 옥스퍼드대로 돌아간 도로시는 페니실린의 구조분석에 관해 연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가장 복잡한 비단백질 화합물인 비타민 B12의 X선 사진을 최초로 찍는 데 성공합니다. 이로 인해 1948년 마침내 비타민 B12의 원자배열을 완전히 결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는 거죠.

단백질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데 자주 등장하는 X선 회절(X-ray dffraction)에 대해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연구를 도왔던 결정적인 방법이 X선 회절법입니다. DNA에 X선을 쪼이면 DNA 원자들의 산란과 반사 모습이 필름에 나타납니다. 이걸 해석하면 분자의 구조를 알수 있습니다. 왓슨과 크릭도 마찬가지로 DNA X선 회절사진을 보고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지금은 전자현미경으로 관찰이 직접 가능합니다. 그러나 전에는 단백질 구조나 형태를 알기 위해서는 X선 회절사진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유전공학과 생명과학의 시대를 여는 데 단초를 마련해 준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놓고 많은 잡음이 생기는 겁니다. 처음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인데 왓슨과 크릭이 그걸 도용해 자기 연구로 만들어 노벨상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물질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결정학(crystallography)이라고 합니다. 말뜻 그대로 물질을 이루는 결정(crystal)의 기하학적 특징이나 내부 구조와 그에 따라 나타나는 성질에 관한 연구를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광물학의 한 분과로 연구돼 왔으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도로시는 그의 업적에 비해 다소 늦게 노벨상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도로시보다 2년 일찍 받은 동료 페르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I felt embarrassed when I was awarded the Nobel Prize before Dorothy, whose great discoveries had been made with such fantastic skill and chemical insight, and preceded my own.”

▲ 1954년 노벨화학상, 196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있는 호지킨.  ⓒ
“도로시에 앞서 내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상당히 당혹했다. 도로시의 위대한 발견에는 대단한 기술과 화학연구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고, 또 나보다 앞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 말 속에서는 누가 더 잘 났느냐가 아니라 도로시가 동료들로부터 얼마나 존경을 받았느냐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도로시가 사망했을 때 페르츠가 인디펜던트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쉬워한 겁니다. “Dorothy will be remembered as a great chemist, a saintly, tolerant, and gentle lover of people and a devoted protagonist of peace.” “도로시는 위대한 화학자이며, 성인(聖人) 못지않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겸손하며, 평화를 위해 헌신한 주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도로시는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영국 여성입니다. 또 단독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세 자녀를 몸소 키운 어머니이자 아내입니다. ‘와, 애들 뒷바라지 다 하면서도 노벨상을 받았다면 대신 머리가 엄청 좋았냐고요?’ 노벨상은 고시촌에서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해 합격하는 고등고시 같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애타게 그리는 노벨상은 목적이나 야망이 아닙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의 연구에 매달리고 최선을 다할 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입니다. 허긴 수상자가 여지까지 없는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에 목말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도로시처럼 사람이 친절하고, 착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또한 평화를 사랑할 줄 아는 과학자가 돼야 합니다.


/김형근  hgkim54@hanmail.net

진화의학의 가능성을 찾아라 암의 진화발생생물학 (4) 2009년 10월 22일(목)

미르(miR) 이야기 진화론적 설명은 궁극인에 대한 답이다. 운명적으로, 궁극인적 설명은 일반화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의학이 환자의 치료, 나아가 개개의 질병 치료라는 의학의 실용적 측면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설명영역은 각 질병마다 구체적이고 다른 종류의 방식을 요구 받게 된다.

암세포의 복제적 진화이론

암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진화'라는 단어는 매우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1976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피터 노웰(Peter C. Nowell)의 '암세포 군집의 복제적 진화(The clonal evolution of tumor cell populations)'이라는 논문 때문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하나의 암세포가 면역계의 공격을 피하고, 무한분열능력을 얻게 되고, 혈관을 끌어오고, 전이를 통해 다른 기관 및 조직으로 퍼져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서술하는 노웰의 개념은 현재 암 관련 연구의 교과서적 설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웰이 하나의 암세포가 암이라는 질병을 일으키기까지의 과정을 '암세포의 진화'라는 과정, 즉 암세포가 개체 내에서 생존경쟁을 하고, 자연선택되는 과정에 비유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화의학의 패러다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그것이 진화의학적 설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웰의 이론은 전통적 의학의 근접인적 설명에 다름 아니다.

진화의학은 암세포가 어떻게 변이를 일으키고 살아남아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진화의학은 도대체 왜 인간이라는 종에게 암이라는 질병이 그렇게도 빈번하게 발생하며, 그 진화적 기원은 무엇인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적세의 우리 조상들보다 획기적으로 수명이 늘어난 현대인들이 조상들에게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던 암에 걸릴 확률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 진화의학적 설명이다. 노화에 대한 조지 윌리암스의 설명처럼, 대부분의 유전자가 생식기 이후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은 자연선택되지 않음으로, 이런 유전자들의 다형성은 자연선택되고, 결국 생식기 이후의 성인에게 암이나 퇴행성 신경계 질환과 같은 질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진화의학적 설명이다. 노웰의 설명은 이러한 궁극인적 설명과 다르다. 그는 암의 생리학적 기원을 '진화'라는 개념을 차용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진화의학과 전통의학의 갈등

조지 윌리암스의 노화이론을 암에 관한 진화의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매우 간단해진다. 오래 살지 않으면 된다. 장수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자 모든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된 현대사회에서,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일찍 죽으라는 진화의학의 해결책은 절망적이고 비상식적이다. 아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암에 대한 궁극인적 설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지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의 의사들 중 진화의학을 암이라는 질병에 적용해보고 싶은 선구적인 이들은 피터 노웰에게서 시작된 '복제적 진화'라는 개념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시도는 진화의학의 궁극인적 설명과 의학의 근접인적 설명 사이의 전통적 갈등을 '진화'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진화의학이 암의 치료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오해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진화의학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화의학이 실제로 의사들에게서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임상에서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진화의학과 전통의학의 갈등 혹은 통합의 어려움에 관한 필자의 견해가 필자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최근 다윈탄생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프랑스 의학사에서의 ‘적응’ 개념: 진화론적•생리학적•생태학적 이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한희진 교수도 이러한 두 학문간의 갈등을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한희진 교수는 끌로드 베르나르의 '내부환경' 및 '항상성' 개념과 미르코 그르멕의 '질병계'라는 개념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시도하면서 이러한 갈등양상을 역사학적으로 추적했다. 한희진 교수의 역사적 탐구가 내어놓는 결론은 현대진화의학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부환경'이라는 개념과 '질병계'라는 개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를 통해 드러나는 갈등의 양상

베르나르는 다윈과 동시대의 인물이며 현대의 실험의학을 정초한 선구적인 학자다. 그는 의학을 확고한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물리화학적인 법칙을 존중하면서도 생리학만의 독특한 영역을 확립하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특히 베르나르는 생명체의 고유한 특징으로 '항상성'이라는 현상을 제안하는데, 현재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 개념은 간의 글리코겐 합성을 연구하던 베르나르가 혈당량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상을 연구하면서 고안한 것이다.

▲ 끌로드 베르나르(왼쪽)와 피터 노웰, 두 학자는 다윈이 제안한 적응 및 진화라는 개념을 다윈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생리학적 설명을 위해 차용했다. 

내부환경이라는 개념은 유기체에 고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외부환경은 광물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러한 외부환경의 교란에 대해 내부환경은 각 장기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쓴다. 물론 복잡계 연구가 진행된 현대에 와서, 항상성이라는 개념을 유기체에만 적용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베르나르의 시대에 내부환경 및 항상성이라는 개념은 유기체에 독특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특히 물리화학적 법칙으로 의학을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으면서도, 생리학의 독자성을 정초하려 했던 베르나르에게 있어 '내부환경'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역설적으로 필요했던 것인지 모른다.

베르나르가 외부환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내부환경을 유지하려는 생리학적 의미에서 '적응'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을 때, 그는 피터 노웰이 '암세포의 복제적 진화'라는 개념을 고안했을 때와 정확히 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베르나르와 노웰 모두 다윈이 사용한 '적응'이라는 개념을 진화론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차용한 것이다. 베르나르는 '적응'이라는 개념을 외부환경의 교란으로부터 항상성을 유지하는 내부환경의 활동이라는 식으로 이해했고, 노웰은 암세포가 개체내에서 생존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과정을 진화라는 유비를 이용해 설명해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학에 짙게 드리워진 생리학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진화의학의 궁극인적 설명과 유사한 측면을 지닌 것은 현대의학자에 속하는 그르멕의 '질병계'라는 개념이다. 한희진 교수의 설명처럼 그루멕의 '질병계'라는 개념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에서 질병들의 공시적 관계와 통시적 변화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연구를 돕기 위해 수립된 개념”으로, 질병간의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하나의 시스템을 설정한 것이다. 그르멕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은 흑사병과 나병으로 주로 전염성 질환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전염성 질환은 진화론이 다루는 군비경쟁이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분야이기도 하고, 이 분야에서 조지 윌리암스와 네세의 선구적 연구가 있기 전에도 이미 폴 이왈드와 같은 의학자에 의해 진화의학적 설명이 시도된바 있는 것이다.

그루멕은 흑사병과 나병이 치료법의 개발 이전에 소멸한 역사적 이유를 추적하면서 각 질병들의 관점에서 벌어진 생존경쟁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나병은 결핵의 증가와 함께 생존경쟁에서 뒤쳐진 결과 자연적으로 소멸했다.

현대의학의 임상적 실천 속에서 진화의학의 가능성

비록 인문학자인 한희진 교수가 날카로운 안목으로 진화의학과 전통의학의 갈등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베르나르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서구 전통의학을 마주하지 않은 채, 단순히 '내부환경'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고 해서 진화의학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루멕의 '질병계' 개념도 전염성 질환을 제외하고는 적용이 쉽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진화의학이 제안하는 비현실적인 해결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해결책을 내어놓을 뿐이다.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념적 이해가 아니다. 철저하게 실용적인 학문인 의학의 특성을 이해하고, 단순히 개념의 통합이 아니라 임상에서의 실천을 통해 진화의학이 서구의 현대의학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베르나르의 '내부환경' 개념보다는 보다 현대의학자들이 기대고 있는 피터 노웰의 '암세포의 복제적 진화'라는 개념이 현대 암이라는 질병의 연구와 어떻게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통해 진화의학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어쩔 수 없는 두 학문간의 큰 갈등과 '진화'라는 개념을 두고 벌어진 오해를 재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10.22 ⓒ ScienceTimes

페로몬으로 의사소통

2006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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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맥클린톡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여자 열명의 코에 다른 여자의 겨드랑이에서 나온 땀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발라주었는데, 석달만에 열명의 여자들이 땀의 주인과 같은 시기에 월경을 시작했다. 그러나 땀 대신에 알코올을 코에 발라준 여자들은 생리주기에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땀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생리기간을 일치시키는데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다.

이 실험에서 겨드랑이의 땀을 사용한 까닭은 페로몬의 효과를 가진 화학신호를 분비할 장소로 아포크린(apocrine)샘이 가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강한 체취를 지니고 있다. 체취는 털이 많은 피부 안에 있는 피지선(皮脂腺)과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서 비롯된다. 겨드랑이와 불두덩 주변에서 칙칙하게 자라는 털은 냄새를 퍼뜨리는 심지 노릇을 한다. 눈썹이나 젖꼭지를 중심으로 전신에 걸쳐 넓게 퍼져있는 피지선에서는 냄새가 자극적인 지방질의 화합물을 분비한다. 아포크린샘은 피지선과는 달리 특정한 부위, 이를테면 털이 특별히 집중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위치한다. 아포크린샘의 분비물은 처음에 별다른 악취가 없지만 피부의 박테리아가 작용하면 몇시간 뒤에 오줌 냄새를 풍기게 된다.

어쨌거나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냄새는 연인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나폴레옹은 그의 연인인 조세핀에게 “내일 저녁 파리에 도착할테니 목욕을 하지 마오”라고 전갈을 보냈다. 여자의 옆구리에서 나는 냄새가 남자 안의 동물을 사로잡은 것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연인들이 이른바 사랑의 사과를 교환했는데, 부인들은 껍질을 벗긴 사과를 겨드랑이에 끼어두었다가 땀에 흠뻑 젖으면 꺼내서 애인에게 주어 그 냄새를 맡도록 했다. 오늘날 발칸 반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축제 동안에 남자들이 겨드랑이에 손수건을 넣고 다니다가 춤을 추는 상대에게 건네주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키스를 연인들이 체취를 교환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화학신호를 주고 받기 위해 키스가 진화되었을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키스를 할 때 상대의 얼굴 냄새를 맡고 애무하면서 쾌감을 맛보게 마련이다.

최고의 향수 사향

사람은 고등 영장류 중에서 가장 냄새가 많이 난다. 역겨운 땀 냄새는 물론이고 하루에 2백75cc의 방귀를 뀐다. 체취를 없애기 위해 목욕을 하고 털이 자라나지 못하게 면도하거나 향수를 바른다.

향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친 동물을 태울 때 나는 냄새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향을 사용한 것이 그 시초이다. 향수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그 역사가 꽤 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종교의식에서 많은 양의 향수와 향을 아낌없이 사용했고, 특히 클레오파트라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향수를 뿌렸다. 고대 로마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향수로 목욕했는데 신체의 부위별로 다른 향을 발랐다. 고대 일본에서 기생은 향수 사용량에 따라 화대를 받았다. 조세핀은 제비꽃 향의 향수를 종종 뿌렸는데, 그녀가 죽었을 때 나폴레옹은 무덤에 제비꽃을 심었다.

향수의 원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사향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수풀에 사는 사향노루 수컷의 배꼽 근처에 있는 향낭에서 채취하는 사향과 이디오피아에 사는 사향고양이 수컷의 사타구니에서 분비되는 사향이 유명하다. 사향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너무 흡사해서 여성의 성욕을 자극한다. 사향냄새를 맡은 여자들은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서 월경주기가 짧아지고 배란이 잦아지면서 임신의 확률이 높아진다.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의 향을 혼합하여 제조한 최초의 향수는 1922년 선보인 샤넬 NO.5이다. 현재 상품화되어 있는 향료는 세계적으로 천연향은 1천5백여종, 인공합성향은 3천-6천여종에 이른다. 특히 VNO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합성 페로몬이 포함되었다는 향수를 만들어 큰 돈벌이를 기대하고 있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 )의 소설 ‘향수’(1985)의 주인공은 조향사이다. 아무런 체취를 타고 나지 않았지만 아주 예민한 후각을 가진 주인공은 최고의 향수를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스물 다섯 명의 어린 소녀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이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인간의 가슴 속으로 들어간 냄새는 그 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바로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인식 과학평론가

남녀 ‘웃음 코드’ 다르다… 순간의 재치 vs 이야기의 흐름

2006년 0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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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하나. “1분만 지속해도 10분 동안 에어로빅을 한 효과가 있으며, 혈압을 낮추고 심장혈관과 폐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혈중 산소량은 물론 엔도르핀을 증가시켜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스트레스 호르몬도 감소시키는 이것은?” 답은 ‘웃음’, 즉 유머다.

유머는 세계 어디에서나 통한다. “긴장을 풀고 근심을 잊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방법”(미국 코미디언 케이트 로저스)으로 유머만 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의 유머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보이는 반응의 차이는 없을까. “남성이 여성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외국어보다 더 힘들다”(독일 코미디언 마리오 바르트)고 할 만큼 남녀의 사고 방식이나 언어 체계가 다르다면, 유머에 대한 반응도 다르지 않을까. 그 해답은 ‘다르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위크엔드팀과 고려대 언론학부 마동훈 교수 연구팀이 현대백화점의 20, 30대 남녀 직원 4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통한 유사(類似)실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같은 유머에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에게 ‘통하는’ 유머가 다른 것이다. 그 남녀 웃음의 코드는 무엇일까.“순간의 재치” vs “이야기의 흐름”
사진=변영욱 기자
실험 결과 남녀의 유머에 대한 반응은 큰 차이를 보였다. 실험 과정에서 남녀가 함께 웃는 경우도 있었으나 여성들이 박장대소를 하는데 반해 남성들은 웃지 않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자주 나왔다. 한쪽만 웃는 경우도 모두 5회였다.

설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코너에 대한 흥미도와 공감도에 대해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다. 이야기, 즉 대화로 진행되는 야심만만의 경우 여성의 평균 점수는 10점 척도에서 흥미도 7.8, 공감도 8.0이 나온 반면 남성은 5.89와 5.94에 불과했다.<표1>

‘웃찾사’에 대한 흥미도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남성(6.23)보다 여성(6.89)이 후한 편이나 이유가 크게 달랐다. 여성은 내러티브(이야기)가 강조된 ‘행님아’에 8.45의 높은 점수를 줬지만, 슬랩스틱 요소가 짙은 ‘사스’(5.6)와 ‘퀴즈야 놀자’(6.63)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남성은 퀴즈야 놀자(6.35) 행님아(7.0) 사스(5.35)에 비슷한 점수를 매겼다.<표2>

마 교수는 “소규모 유사 실험이 갖는 연구설계 및 표본 수의 한계가 있지만 남녀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는 대략적인 경향성은 드러났다”고 말했다.

인물에 대한 호감도나 평가 의견에 대해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웃찾사 행님아에 출연하는 ‘김신영’의 경우 여성은 90%(18명)의 지지를 보냈지만 남성은 50%(10명)에 그쳤다.<표3> 여성들은 “자연스럽다” “연기를 잘한다” “공감이 간다”고 의견을 말했지만, 남성은 “행동거지가 웃기다” “몸을 사리지 않는다”고 평했다. 남성 중에는 “억지로 웃기려 해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상반된 의견(10%)을 밝힌 이도 있었다.

야심만만의 경우 남성은 손예진(70%)을, 여성은 박준규(40%)를 가장 많이 꼽았다.<표4> 여성은 “자연스럽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얘기가 재미있다” “편안하게 대화하는 분위기가 좋았다”를 이유로 든 반면 남성은 “예쁘다” “이상형이다”며 유머와 상관없는 점을 꼽았다.

마 교수는 “남성은 순간적으로 주고받는 농담이나 행동이 웃기는 데서 유머를 찾는 경향을 보인 반면 여성은 함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공감대가 형성돼야 흥미를 느끼는 양상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권력의 도구” vs “결속의 수단”

남녀 유머 코드의 차이는 해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광고회사 JWT는 지난해 1∼6월 8개국의 소비자와 코미디언, 드라마 ‘섹스 앤드 시티’의 작가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유머가 남성에게는 권력의 도구이지만 여성에겐 결속의 수단”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JWT에 따르면 남성은 농담이라고 불리는 유머를 선호한다. 대화 과정에서 말의 오고감보다 특정 상황에서 입담으로 이어지는 말장난을 즐긴다. 이때 전형적으로 ‘놀림감’ 혹은 조롱당하는 희생자가 나타나면서 유머를 통해 권력 관계가 구분된다.

여성은 틀에 짜인 농담보다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 텔링 유머에 더 공감한다. 평범한 사실 속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하고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을 때 미소를 띤다는 것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눈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남성은 슬랩스틱이 물리적인 경쟁 구도가 분명하고 희생양이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러나 여성은 상처주는 이보다 받는 사람에게 더 공감하기 때문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KBS ‘유머 1번지’ 등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인덕대 방송연예과의 김웅래 교수는 “웃음을 만드는 개그맨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성 개그맨은 대담하고 공격적이며 행동이 분명한 소재를 가져오지만 여성은 편안하면서도 정적인 내용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배역도 남성은 갈등 구조가 분명한 역할을 맡으려 하지만, 여성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화합하는 역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남성 시청자들은 코미디의 지배적 포맷인 ‘왕따 코드’에 익숙한 반면 여성은 그에 불편을 느낀다”며 “여성은 수다를 통해 속마음을 털어내는 데서 유머를 찾는다”고 말했다.

왜 다른가?

목원대 류종영 교수가 쓴 ‘웃음의 미학’에 따르면 남성의 유머 구조는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웃음의 우월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홉스는 저서 ‘인간천성’에서 “웃음은 다른 사람의 결함이나 우리 내부에 있는 우월함에 대한 갑작스러운 ‘착상’으로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우월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에서 유머가 생성된다는 것.
“실수나 결점이 웃음을 만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남성 유머 코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의 유머는 다르다.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하관계나 우월의식보다 본인의 주관적인 입장이 일치할 때 웃는다. 여성의 유머를 설명하는 데는 19세기 독일 사상가 장 파울의 ‘주관적 웃음이론’이 유효하다.

그의 저서 ‘미학 입문’에 따르면 “사람이나 사물 자체가 웃긴다기보다 주체인 자신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유머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명지대 여가정보학과의 김정운 교수는 남녀 유머 코드가 다른 이유를 사회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인류의 수렵 시대 외부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하는 전사였던 남성은 상대를 놀리는 것도 하나의 경쟁 수단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남성에게 싸움과 유머는 하나의 패키지인 셈이다.
현대의 남성도 상황이나 사물을 권력 관계로 파악하기 때문에 타인을 만나면 순식간에 상하 관계를 결정한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자학 개그’를 남성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부족 공동체에서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던 여성에게 유머는 관계를 형성하고 우정을 만들고 지지를 끌어내는 도구였다.
현대 여성도 상대를 권력 관계보다 의사 소통의 파트너로 대한다. 이로 인해 여성의 유머는 서로의 내러티브를 공유하는 대화 속에서 발생한다.

김 교수는 “남성은 상하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당황하는 반면 여성은 수평적 관계의 대화를 선호한다”며 “여성이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는 파티를 좋아하고 남성이 승패가 갈라지는 격투기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실험했나?:

서울 강동구 천호동 현대백화점 인력개발원에서 남녀 직원 각각 20명이 참석했다. 이들에게는 실험 목적이나 의도를 알려주지 않았다. 먼저 30여 분간 SBS TV 개그프로그램인 ‘웃찾사’의 코너 3편과 토크쇼 ‘야심만만’(지난해 12월 15, 19일 방영분)의 일부를 보여 줬다. 웃찾사에서는 슬랩스틱 요소가 강한 ‘퀴즈야 놀자’와 ‘사스’를 비롯해 이야기가 있는 극 형식을 갖춘 ‘행님아’ 등 3편을 선정했다. 야심만만은 출연자들의 대화를 통해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선정됐다.

두 프로그램을 보여준뒤 설문지를 통해 각 코너와 출연진에 대한 호감도 및 흥미도를 조사했으며 일부 직원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병행했다. 각 코너에 대한 흥미도와 공감도는 11점 리커트 척도로 조사했으며 심층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진단했다.
정양환 동아일보 기자

인간은 왜 남녀로 구분될까

2006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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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동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독립된 성(gender)으로 구분된다. 사람의 성별이 하나나 셋이 아니고 하필이면 둘인 까닭은 생물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수수께끼였다. 가장 그럴 법한 설명은 1992년에 옥스포드 대학의 젊은 진화생물학자인 로렌스 허스트가 발표한 가설이다. 그의 가설은 ‘게놈 내의 분쟁’(intrageno-mic conflict)이라 불리는 새로운 연구주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전자 사회의 이기주의

인간의 경우 정자는 난자와 결합한 후 개체로 발달한다(융합성교). 정자는 세포 소기관을 갖지 않아 난자에 비해 훨씬 작다. 양족 모두 소기관을 가지면 자신의 것을 자손에 남기려고 싸울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한쪽(정자)이 희생했다
동물의 세포는 핵, 세포질, 미토콘드리아 등 각종 소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속에는 유전자의 본체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이 들어있다. 정상적인 사람의 모든 세포에는 각각 7만5천개의 유전자가 한쌍씩 들어있다. 유전자는 23쌍의 염색체 위에 놓여있다. 염색체 한 벌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통틀어 게놈이라 한다.
세포질은 다양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용액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호흡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의 발전소다. 세포 핵의 외부에 존재하지만 고유의 DNA를 갖고 있다. 사람의 경우 37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인간의 성생활에서는 생식을 위해 감수분열과 세포융합이라는 두 개의 상보적 과정이 요구된다. 감수분열은 생식세포로 되는 세포가 염색체의 수를 정확하게 절반으로 감소시키는 과정이다. 감수분열의 결과로 정자와 난자가 형성된다. 따라서 사람의 정자와 난자 속에는 각각 23개의 염색체 위에 자리한 7만5천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인간의 염색체를 3만 5천배 확대한 모습
생식세포가 서로 만나서 수정이 되면 세포융합이 일어난다. 세포융합의 결과로 새로 탄생한 세포에서 염색체의 수는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23쌍의 염색체와 7만5천쌍의 유전자를 지니게 된다. 이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여 태아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는 마을에 함께 사는 주민에 비유될 수 있다. 마을은 협동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유전자 역시 협동하지 않으면 유전자가 거주하는 신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렇지만 협동이 인간사회의 전부일 수는 없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유전자의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 살아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따라서 다른 유전자를 모두 적으로 만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나타난다. 종래에는 유전자의 사회를 협동 일색의 평화로운 집단으로 보았지만 허스트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득실거리는 경쟁사회로 본 것이다.

정자와 난자의 차이

사람 정자의 모습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최선의 기회는 성교할 때 찾아온다. 왜냐하면 유전자 사이의 불안정한 협력이 성교의 주요 과정인 감수분열과 동시에 와해되기 때문이다. 쌍을 이룬 유전자가 분리되어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질 때 각각의 유전자는 동료의 희생 속에서 이기적으로 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자 또는 난자를 독점하는 유전자는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동료는 제거된다.

허스트에 따르면, 이기적인 유전자 사이의 분쟁 때문에 성교의 또다른 과정인 세포융합에서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세포가 융합할 때 두 세포의 핵DNA는 한쌍의 염색체 안으로 함께 들어가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두 세포의 소기관은 하나의 세포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토콘드리아끼리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일 소지가 높다. 이러한 유전적 요소 사이의 분쟁으로 세포가 입게 될 피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세포 소기관 사이의 싸움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 세포의 핵DNA는 한 쪽 세포만 소기관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아버지 쪽의 세포 소기관은 자식에게 전달되지 못하지만 어머니 쪽의 세포 소기관은 제대로 전달되게끔 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그 크기와 기능이 서로 다르게 진화된 연유이다.

정자는 애초부터 소기관이 제거되기 때문에 작고 운동성이 뛰어나며 대량으로 생산된다. 그러나 난자는 소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크고 운동성이 없으며 소량이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를 수정시킬 때에는 오로지 한가지, 즉 핵이라는 유전자로 가득찬 봉지만을 난자에게 건네준다.
그러므로 우리 몸 안의 세포 소기관과 그 안의 모든 유전자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없다. 정자가 희생을 치른 반면에 난자가 혜택을 받은 셈이다. 바꾸어 말해서 이익을 본 성과 손해를 본 성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허스트는 성교의 또다른 형태인 접합성교에서는 유전자 간의 분쟁이 없으므로 독립된 성이 불필요했지만 융합성교에서는 반드시 두 종류의 성별이 진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박테리아가 서로 가느다란 관으로 연결해서 몇 개의 유전자를 옮기는 접합성교에서는, 융합성교에서와는 달리 오로지 핵만이 교환되고 세포질의 유전자는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 사이의 싸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피셔의 성비 원리

암수 양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융합성교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설명한 허스트의 가설은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의 매트 리드리는 그의 출세작인 ‘레드 퀸’(The Red Queen, 1993)에서 “성별은 반사회적 습관에 대한 관료주의적인 해결책이다”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있다. 성별은 유전자들의 이기적인 야망을 다스기리 위해 유전자 사회가 궁리해낸 묘안이라는 의미이다.

융합성교하는 생물에서는 수컷과 암컷이 대개 50:50의 비율로 태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처럼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면 성비의 균형이 깨진다. 편향된 성비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 최초의 학자는 영국의 로날드 피셔이다. 그는 1930년에 발표한 ‘피셔의 성비원리’(Fisher’s principle of the sex ratio)라고 불리는 이론에서 50:50의 성비가 진화된 과정을 설명했다. 만일 수컷의 출산이 암컷의 출산보다 적으면, 수컷은 암컷보다 여러 상대와 교미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따라서 수컷을 많이 낳을 수 있는 양친은 더 많은 손자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자기모순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수컷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교미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암컷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성비는 50:50을 향해 수렴된다.

피셔의 성비 원리를 확대 해석하면 성비의 편향이 설명된다. 모든 개체는 양친으로부터 각각 유전물질의 절반을 얻기 때문에 아들과 딸에게 동일하게 투자하는 양친이 자연선택된다.

그러므로 아들과 딸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같다면 아들과 딸이 같은 숫자로 출산될 것이다. 그러나 한 쪽 성의 출산이 다른 쪽의 성보다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면 양친은 그 성의 자손을 보다 적은 비율로 낳으려 할 것이다. 예컨대 아들의 양육비용이 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면 아들과 딸의 성비는 2:1이 된다.

피셔의 성비원리에서는, 부모의 모든 자식들은 같은 성끼리 기본적으로 똑같은 번식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수컷일지라도 강한 수컷이 약한 수컷보다 교미할 기회가 더 많게 마련이다. 요컨대 같은 성의 자식들일지라도 번식 가능성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라이버스와 수학자인 댄 윌라드이다.

조건 나쁜 부모는 딸 선호

그들이 1973년에 발표한 이른바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종에서, 환경의 조건이 좋을 때는 수컷과 암컷이 모두 번식 가능성을 갖지만 특히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은 번식 가능성을 갖게 된다. 암수 모두 배우자를 구하기 쉬운 조건에서 암컷은 일단 수태하면 다른 상대의 새끼를 가질 수 없지만 수컷은 여러 상대를 임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건이 나쁠 때는 정반대가 된다. 수컷과 암컷이 모두 번식 측면에서 고통을 겪지만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암수 모두 배우자를 구하기 어려운 조건일지라도 암컷은 대부분 교미에 성공하지만 수컷의 경우 크고 건강한 수컷이라면 몰라도 작고 약한 수컷은 전혀 교미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생존을 더 잘 할 것으로 판단되면 아들을 낳고 그렇지 않아 보이면 딸을 낳는다. 요컨대 부모들은 자기에게 더 많은 손자녀를 안겨줄 수 있는 성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좋은 조건의 부모는 주로 수컷을 낳지만 나쁜 조건의 부모는 딸을 선호하게 된다는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은 한때 엉터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차츰 지지를 획득했다. 몇몇 동물의 경우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양상태가 좋은 주머니쥐는 그렇지 못한 쥐보다 수컷을 많이 낳는다. 남미산 물쥐는 좋은 조건에서는 주로 수컷을 낳고 나쁜 조건에서는 주로 암컷을 낳는다. 계층사회를 형성하는 거미원숭이의 경우 서열이 가장 낮은 어미의 새끼는 암컷이 많은 반면에 최고위층의 어미는 수컷을 많이 낳는다. 어미의 사회적 지위가 새끼의 성별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성비 파괴는 큰 재앙 불러
태아 성감별 기술이 발달하면서 여자로 판명된 많은 아가들이 사라지고 있다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을 인류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람이 자손의 성비를 편향시키는 요인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딸보다 아들을 선호했다. 특히 중세의 봉건사회에서 영주들은 아들을 아꼈지만 소작농들은 딸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경향을 보였다. 오늘날에도 케냐의 무코고도(Mukogodo) 부족을 비롯해서 몇몇 가난한 사회계층은 딸을 선호한다. 가난한 아들은 장가를 못가 종종 독신으로 늙어죽지만 가난한 딸은 다른 부족의 부자와 결혼하면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코고도 부족의 딸 선호는 일반적인 고정관념과는 달리 아들 선호사상이 인류사회에 반드시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남성선호는 서민대중보다는 사회고위층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성선호는 계층사회가 평등사회로 바뀌면서 급속도로 고위층에서 사회전반으로 번져나간 것으로 보아진다. 대표적인 보기는 중국과 인도이다. 중국 공산당의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중국인들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25만명 이상의 여아를 태어난 즉시 살해했다. 인도에서는 딸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여인의 96%가 인공유산을 했다. 최근에 봄베이의 병원들에서 저질러진 8천건의 낙태수술 중에서 7천9백97건이 여아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누구나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태아 성감별 기술이 악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통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인간사회에는 성비를 편향시키는 자연적 요인이 적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늙은 아비일수록 딸을 낳지만 늙은 어미일수록 아들을 낳는다. 간염이나 정신분열증에 걸린 여자는 아들보다 딸을 더 많이 낳는다. 흡연하거나 음주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유별난 것은 ‘귀향군인 효과’(returning-soldier effect)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사한 남자들을 벌충하려는 듯이 사내아이가 많이 태어나는 현상이다. 전쟁 후 태어난 꼬마들이 당장 전쟁미망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리 만무하지만 남아의 출생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사회의 성비 불균형을 부채질하는 핵심요인은 중국과 인도에서 확인된 것처럼 남아를 선호하는 성차별 의식과 관행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출생시 여아 1백명 당 남아의 수를 나타내는 출생성비를 보면 1985년은 110, 10년 뒤인 1995년에는 115이다. 남아가 갈수록 여아보다 많이 출생함을 보여주는 지수이다. 만일 성비가 이런 속도로 증가된다면 21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의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흑인처녀들을 신부감으로 수입하게 될 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가는 우리 사회의 성비는 자식의 성별을 고르는 일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로 그칠 수 없음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성비 파괴로 초래될 사회적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신부감이 모자라서 처녀의 납치와 가임여성의 인신매매가 횡행할 것이다. 성적으로 불만인 사내들은 포악해져서 강간 등 성범죄와 동성애를 서슴없이 자행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는 성교할 때 오른쪽에 누우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는데, 그 영향력은 대단해서 수세기 뒤에 프랑스 귀족들이 왼쪽 고환을 잘라낼 정도였다. 그는 까마귀가 떨어뜨린 돌에 맞아 죽었다. 혹시 그 까마귀는 고환을 제거하고도 아들을 보지 못한 어느 사내가 앙갚음을 하기 위해 변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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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으로 본 신결혼 풍속도

2009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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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직장인 시절에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배우자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꼭 경제력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기업 홍보 업무를 5년째 하고 있는 박주연 씨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최근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봉이 높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성도 미래 배우자감으로 좋지만, 거기에 다정다감하고 여러 가지 집안 문제도 편하게 상의할 수 있는 마음씨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올해 8년차 남성 직장인 이현숙 씨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저도 벌고 있고 그보다는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교감을 가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골드미스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탄탄한 경제력을 확보한 직장 여성들 가운데는 이처럼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을 다양화한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통하던 결혼 공식은 정말 깨진 것일까.

현대 직장 남녀 이성관 바뀌었나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이 유전자가 세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복제본을 더 잘 전파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물이던 식물이던 짝짓기란 단어는 암수가 상호 합의하에 서로를 동시에 선택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자연계에서 암컷은 신중하게 선택하는 입장인 반면 수컷들끼리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동물 세계에서 자식을 더 잘 돌보는 성(性)은 자식을 돌보지 않는 성의 입장에서 귀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일방적인 선택보다 남녀간 상호선택이 일어난다. 이는 결혼상대 같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보통 남성은 여성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배우자의 가치 가운데 나이나 신체적 매력에 유난히 관심을 둔다. 신체 요인들은 어떤 여성이 얼마나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외모보다는 경제적 능력이나 지위, 그리고 신뢰감을 더 따진다.

남녀가 함께 자식을 기르도록 진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족을 충실하게 돌보는 남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인간의 짝짓기 과정에서 여성은 훨씬 까다롭게 남성 배우자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결혼은 자신에게 최상의 가치를 가진 이성을 선택하는 과정인 것이다.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이 같은 짝짓기 기준은 현대인의 결혼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미혼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은 주로 여성의 외모와 성격, 직업(경제력) 순으로, 여성은 상대의 직업과 성격, 가정환경을 순서로 배우자를 골랐다. 배우자 직업도 남성은 보육과 가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교사나 공무원을 일반 사무직 여성보다 선호한다고 답했다. 남성은 여성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자원(資源)으로 생각하고, 여성은 보호 능력의 척도인 경제력과 지위를 중요시하는 것과 맞아 떨어진다.

돈만 버는 남자는 자연선택으로 퇴출?

하지만 최근 미혼남녀가 배우자로 꼽는 기준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이상적인 남성 배우자상이 몇 해 전까지 그저 많은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는 남성이었다면, 이제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한 남성으로 변하고 있다. 여성 배우자상도 현모양처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직장인의 고충을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무직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 배우자 여성의 직업도 교사, 공무원보다는 대기업 직장여성을 선호한다는 남성들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변화가 종전의 배우자 선택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최상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사회 경제적 환경이 바뀌면서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것뿐이다.

여성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상당수 여성들은 경제력을 비롯해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기 보다는 삶의 질을 더 고민한다. 엇비슷한 경제력과 지위를 갖춘 배우자들 가운데 그에 맞는 차별화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가족을 돌보는 경제적 능력에 주로 주목했다면,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가치, 유머감각이나 인간적 면모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남성의 경제력과 지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한 여성의 지위에 맞는 새로운 기준들이 추가됐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는 졸부형 남성은 ‘자연선택’을 통해 추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들 역시 여전히 신체적 매력을 배우자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이 누렸던 경제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고 가정에서 위치마저 위태로워지면서 배우자 선택 기준도 따라서 바뀌고 있다. 이상적인 배우자 기준에 여성의 경제력이나 이해심 등을 포함시키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배우자관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 가사, 직장생활에서 모두 성공을 추구하는 ‘알파걸’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적 짝짓기 기준이 흔들리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분명하다. 게다가 경제적 소수자에 속한 여성들은 사랑과 결혼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20대 여성 대졸자의 취집형 조혼(早婚)이 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남녀 동질감이 최고의 키워드

하지만 국경과 나이, 계층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와 같은 냉철한 동물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만에 하나 사랑이란 감정이 인류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자연선택에 의해 일찌감치 제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사랑은 오히려 인간 진화의 정교한 산물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백년해로할 동반자로 삼는 이성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남녀간 사랑과 배우자 선택의 다룬 10년간 연구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바로 동질감이다. 상당수 남녀간 짝짓기, 사랑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는 첫 인상이나 단기간의 반응에 집중돼 있다. 반면 동질감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또 유전학적으로 튼튼한 근거 위에 서있다.

심리학자들은 같은 타입의 이성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옥시토신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국 세인트앤드류대 인지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페렛 교수팀은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200여명의 남녀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반대 성(性)으로 만든 사진을 다른 이성 사진과 섞어 보여준 뒤 그 중 호감이 가는 사진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참가자들은 자신을 닮은 반대 성의 사진을 골랐던 것. 또 대부분의 남성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여성은 자기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심지어는 체취에서도 동질감을 찾는 경향은 강하다. 미국 시카고대 마사 맥클린톡, 캐롤 오버 박사 연구팀은 여성은 아버지와 유사한 냄새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유전학 전문 학술지인 ¡Ç네이처 지네틱스¡Ç에 발표하기도 했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을 닮은 이성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나 부모를 닮은 배우자를 찾는 것은 유전학적으로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은 후손들에게 좋지 않은 열성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를 닮은, 자신과 유전자가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할 경우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유전자를 보존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연구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비밀은 풀리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풀리지 않는 뇌의 작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데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사회 현상에 영향을 받는 배우자 선택의 메커니즘은 당사자조차 궁금한 알쏭달쏭한 영역이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만만한 노벨상]노벨은 왜 텔로미어를 선택했을까

노화와 항암치료…생체시계의 두 마리 토끼잡기

2009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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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로머라이제가 없으면 염색체는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짧아진다. 결국 DNA가 손상된다(좌측). 텔로머라이제는 DNA 가닥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를 일정 수준(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는 이 때문에 늙어 죽지 않고 꾸준히 자기복제를 할 수 있다(우측). 출처:노벨생리의학상위원회

검버섯이 핀 쭈글쭈글한 피부,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시력. 1918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난 아이(벤자민 버튼)는 노인 같은 외모로 세상에 태어났다.

벤자민의 괴상한 외모에 놀란 아버지는 그를 낳다 아내마저 목숨을 잃자 ‘노인 아이’를 도시의 한 양로원 앞에 버린다. 그의 나이 12살. 해가 지날수록 자신이 젊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때쯤 벤자민은 할머니를 찾으러 양로원에 온 6살 꼬마 데이지를 만난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차례. 벤자민과 데이지는 마침내 함께 하게 되지만 그는 날마다 어려지고 데이지는 늙어만 간다. 시간의 역행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늙어서 태어나 아기가 돼 죽음을 맞는다는 상상력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흘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렇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는다. 사람들은 왜 늙어가는 것일까.

데이지가 늙는 건 노화시계 ‘텔로미어’때문

답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에 있다.

지난 5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상선정위원회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61)와 존스홉킨스의대 캐럴 그리더 교수(48),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잭 조스탁 교수(57)를 선정했다. 위원회는 “염색체 끝에서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생체시계인 텔로미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세 사람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람의 체세포는 46개 염색체(상염색체 44개+성염색체 2개)로 이뤄져 있다. 부모에게서 각각 23개씩 받는다. 염색체는 유전정보 DNA를 담고 있고, DNA는 다시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네 가지 염기만 있을 경우, 염색체 복제가 온전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ATGCGGTAG라는 DNA가 염색체에 담겨 있다고 하자. DNA 복제효소가 각 염기를 지나며 A→G 방향으로 복제를 시작한다. 복제는 끝에 있는 G염기 앞에 있는 A염기까지만 이뤄진다. 더 이상 염기가 없어 효소가 G염기를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G염기를 복제하려면 해당 염기 뒤에 또 다른 염기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텔로미어(telomere)’다. 텔로미어는 ‘끝’을 뜻하는 그리스어 ‘telos’와 ‘부위’를 가리키는 ‘meros’의 합성어다. 텔로미어는 DNA 양 끝에 붙어있는 ‘무의미한’ 반복 염기서열(TTAGGG)이다.

다시 예로 돌아가면 DNA는 AATGCGGTAG-TTAGGG-TTAGGG-TTAGGG-TTAGGG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염기까지 온전히 복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세포분열(DNA 복제)이 한 번, 두 번 반복될수록 텔로미어의 길이는 짧아진다. 마찬가지로 DNA 복제 효소가 맨 끝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이 언론에서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진다’고 말하는 실제 의미다). 사람 체세포에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보통 5~10kb(1kb는 DNA 염기 1000개 길이).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50~200bp(1bp는 1염기 길이)만큼 짧아진다.

염색체의 모습. 사진 속 노란 부분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복제가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돕는다. 출처:동아일보 자료사진
텔로미어가 짧아지다가 노화점(사람의 경우, 1~2kb)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세포는 복제를 멈춘다. 노화 상태에 빠진 세포는 결국 죽는다. ‘세포분열→텔로미어 길이 짧아짐→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분열 멈춤→세포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이다. 데이지가 늙는 것도 텔로미어라는 ‘노화 시계’ 때문이다(벤자민 버튼은 역으로 텔로미어가 계속 길어진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임대식 KAIST 생물과학과 교수는 “텔로미어는 노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표지자”라면서도 “사람보다 텔로미어 길이가 긴 쥐(80kb)는 사람보다 빨리 죽기 때문에 단지 텔로미어 때문에 노화가 일어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텔로미어에서 보면 노화와 암은 동전의 양면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의 85%는 세포분열을 격렬하게 하지만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탓에 암세포는 죽지 않는다. 계속 증식한다. 텔로미어 관점에서만 본다면, 노화와 암은 반대의 선에 서 있는 것. ‘동면의 양면’인 셈이다.

이는 텔로미어를 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는 텔로머라제 효소 때문이다. 텔로머라제는 정상 체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특이적인 효소로 텔로미어를 합성한다. 과학계에서는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활성을 떨어뜨리면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암세포의 죽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은 보통 3가지 방법으로 치료했다. 외과수술로 암 덩어리를 잘라내던가 항암제로 암 세포를 죽이거나 방사선으로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몸 안에 있는 암 세포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머리가 빠지는 등 여러 부작용도 나타났다. 하지만 암 세포의 텔로머라제 효소를 감소시켜 암 세포를 인위적으로 자연사하게 하면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텔로머라제를 이용한 항암치료방법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정인권 연세대 생명시스템대 교수는 “항암요법은 보통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는 세포를 죽이도록 디자인 돼 있어 상대적으로 암세포를 많이 죽이는 것뿐이지 다른 세포들도 죽인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근세포는 활발하게 세포분열을 한다. 그는 “텔로머라제의 활성을 줄이는 것은 암세포 특이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을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난 수십 년 간 암을 정복하기 위해 엄청나게 투자했는데도 치료율이 크게 좋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암 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진화하는 세포”라며 “암 세포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암이 단지 텔로미어 길이를 줄이면 치료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이라고 말했다.

암세포 정복이란 동전을 뒤집으면 장수(長壽)의 꿈이 엿보인다. 텔로머라제가 정상 체세포에서 작동해 텔로미어 길이가 노화점 이하로 짧아지는 것을 막는다면, 세포의 노화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불로초가 텔로머라제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텔로머라이제가 과하게 활성화될 경우, 암세포로 변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염색체 섞이는 것 막아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을 감싼 플라스틱의 역할도 한다. 끈의 양 끝이 헤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플라스틱처럼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것. 만약 텔로미어가 없다면?

염색체에 담긴 DNA가 흘러나오거나 뒤섞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개의 염색체가 붙어 하나의 염색체가 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염색체 안에 있는 DNA가 섞이면 유전자 과다발현이 되거나 과소발현이 돼 돌연변이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텔로미어는 이같은 돌연변이를 예방하는 것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세포 노화 시계 규명…암 치료 새 길 열어

[만만한 노벨상]노벨은 왜 텔로미어를 선택했을까

노화와 항암치료…생체시계의 두 마리 토끼잡기

2009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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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로머라이제가 없으면 염색체는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짧아진다. 결국 DNA가 손상된다(좌측). 텔로머라이제는 DNA 가닥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를 일정 수준(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는 이 때문에 늙어 죽지 않고 꾸준히 자기복제를 할 수 있다(우측). 출처:노벨생리의학상위원회

검버섯이 핀 쭈글쭈글한 피부,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시력. 1918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난 아이(벤자민 버튼)는 노인 같은 외모로 세상에 태어났다.

벤자민의 괴상한 외모에 놀란 아버지는 그를 낳다 아내마저 목숨을 잃자 ‘노인 아이’를 도시의 한 양로원 앞에 버린다. 그의 나이 12살. 해가 지날수록 자신이 젊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때쯤 벤자민은 할머니를 찾으러 양로원에 온 6살 꼬마 데이지를 만난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차례. 벤자민과 데이지는 마침내 함께 하게 되지만 그는 날마다 어려지고 데이지는 늙어만 간다. 시간의 역행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늙어서 태어나 아기가 돼 죽음을 맞는다는 상상력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흘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렇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는다. 사람들은 왜 늙어가는 것일까.

데이지가 늙는 건 노화시계 ‘텔로미어’때문

답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에 있다.

지난 5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상선정위원회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61)와 존스홉킨스의대 캐럴 그리더 교수(48),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잭 조스탁 교수(57)를 선정했다. 위원회는 “염색체 끝에서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생체시계인 텔로미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세 사람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람의 체세포는 46개 염색체(상염색체 44개+성염색체 2개)로 이뤄져 있다. 부모에게서 각각 23개씩 받는다. 염색체는 유전정보 DNA를 담고 있고, DNA는 다시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네 가지 염기만 있을 경우, 염색체 복제가 온전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ATGCGGTAG라는 DNA가 염색체에 담겨 있다고 하자. DNA 복제효소가 각 염기를 지나며 A→G 방향으로 복제를 시작한다. 복제는 끝에 있는 G염기 앞에 있는 A염기까지만 이뤄진다. 더 이상 염기가 없어 효소가 G염기를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G염기를 복제하려면 해당 염기 뒤에 또 다른 염기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텔로미어(telomere)’다. 텔로미어는 ‘끝’을 뜻하는 그리스어 ‘telos’와 ‘부위’를 가리키는 ‘meros’의 합성어다. 텔로미어는 DNA 양 끝에 붙어있는 ‘무의미한’ 반복 염기서열(TTAGGG)이다.

다시 예로 돌아가면 DNA는 AATGCGGTAG-TTAGGG-TTAGGG-TTAGGG-TTAGGG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염기까지 온전히 복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세포분열(DNA 복제)이 한 번, 두 번 반복될수록 텔로미어의 길이는 짧아진다. 마찬가지로 DNA 복제 효소가 맨 끝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이 언론에서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진다’고 말하는 실제 의미다). 사람 체세포에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보통 5~10kb(1kb는 DNA 염기 1000개 길이).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50~200bp(1bp는 1염기 길이)만큼 짧아진다.

염색체의 모습. 사진 속 노란 부분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복제가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돕는다. 출처:동아일보 자료사진
텔로미어가 짧아지다가 노화점(사람의 경우, 1~2kb)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세포는 복제를 멈춘다. 노화 상태에 빠진 세포는 결국 죽는다. ‘세포분열→텔로미어 길이 짧아짐→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분열 멈춤→세포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이다. 데이지가 늙는 것도 텔로미어라는 ‘노화 시계’ 때문이다(벤자민 버튼은 역으로 텔로미어가 계속 길어진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임대식 KAIST 생물과학과 교수는 “텔로미어는 노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표지자”라면서도 “사람보다 텔로미어 길이가 긴 쥐(80kb)는 사람보다 빨리 죽기 때문에 단지 텔로미어 때문에 노화가 일어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텔로미어에서 보면 노화와 암은 동전의 양면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의 85%는 세포분열을 격렬하게 하지만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탓에 암세포는 죽지 않는다. 계속 증식한다. 텔로미어 관점에서만 본다면, 노화와 암은 반대의 선에 서 있는 것. ‘동면의 양면’인 셈이다.

이는 텔로미어를 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는 텔로머라제 효소 때문이다. 텔로머라제는 정상 체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특이적인 효소로 텔로미어를 합성한다. 과학계에서는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활성을 떨어뜨리면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암세포의 죽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은 보통 3가지 방법으로 치료했다. 외과수술로 암 덩어리를 잘라내던가 항암제로 암 세포를 죽이거나 방사선으로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몸 안에 있는 암 세포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머리가 빠지는 등 여러 부작용도 나타났다. 하지만 암 세포의 텔로머라제 효소를 감소시켜 암 세포를 인위적으로 자연사하게 하면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텔로머라제를 이용한 항암치료방법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정인권 연세대 생명시스템대 교수는 “항암요법은 보통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는 세포를 죽이도록 디자인 돼 있어 상대적으로 암세포를 많이 죽이는 것뿐이지 다른 세포들도 죽인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근세포는 활발하게 세포분열을 한다. 그는 “텔로머라제의 활성을 줄이는 것은 암세포 특이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을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난 수십 년 간 암을 정복하기 위해 엄청나게 투자했는데도 치료율이 크게 좋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암 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진화하는 세포”라며 “암 세포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암이 단지 텔로미어 길이를 줄이면 치료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이라고 말했다.

암세포 정복이란 동전을 뒤집으면 장수(長壽)의 꿈이 엿보인다. 텔로머라제가 정상 체세포에서 작동해 텔로미어 길이가 노화점 이하로 짧아지는 것을 막는다면, 세포의 노화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불로초가 텔로머라제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텔로머라이제가 과하게 활성화될 경우, 암세포로 변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염색체 섞이는 것 막아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을 감싼 플라스틱의 역할도 한다. 끈의 양 끝이 헤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플라스틱처럼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것. 만약 텔로미어가 없다면?

염색체에 담긴 DNA가 흘러나오거나 뒤섞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개의 염색체가 붙어 하나의 염색체가 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염색체 안에 있는 DNA가 섞이면 유전자 과다발현이 되거나 과소발현이 돼 돌연변이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텔로미어는 이같은 돌연변이를 예방하는 것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노벨이 주목한 ‘단백질 공장의 비밀’

노벨이 주목한 ‘단백질 공장의 비밀’ 리보솜 구조 밝혀낸 분자생물학자 3인, 화학상 공동수상 2009년 10월 08일(목)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벨상위원회는 3명의 분자생물학자들이 ‘2009 노벨 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되었다고 7일(한국시간) 발표했다.

영예의 주인공은 영국 MRC분자생물학연구소의 벵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Venkatraman Ramakrishnan) 박사, 미국 예일대의 토머스 스타이츠(Thomas A. Steitz) 교수, 그리고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의 아다 요나트(Ada E. Yonath) 박사 등이다. 이들은 세포 내 기관인 리보솜의 3차원 입체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상을 받았다.

▲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수상자들. 왼쪽부터 라마크리슈난 박사, 스타이츠 교수, 요나트 박사.  ⓒNobelprize.org

‘단백질 공장’ 리보솜의 구조를 ‘X선 결정 기술’로 포착

리보솜(ribosome)은 세포 안에 존재하는 기관으로, DNA의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합성해내기 때문에 ‘단백질 공장’으로도 불린다. 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RNA라는 전달체가 리보솜에게 넘겨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RNA에는 tRNA, mRNA, rRNA가 있는데, 리보솜은 그중 tRNA와 rRNA를 만나게 함으로써 단백질 합성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리보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단백질 합성에 문제가 발생해 인체에 여러 가지의 생체 부적합 반응이 일어난다. 질병이나 기형이 생기는 것이다.

리보솜은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 존재한다. 세균 또한 리보솜의 활동이 저하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 내 리보솜 활동을 억제하는 원리에 의해 작용한다.

세 과학자는 항생제가 세균 내 리보솜의 기능을 억제하는 모습을 'X선 결정 기술(X-ray Crystallography)'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포착해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항생제 관련연구 및 개발에 큰 기여를 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분자 차원에서 유전자와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분자생물학

모든 유기체 안 내부 전체에는 유전자 분자가 있다. 이들은 어떻게 인간, 식물이나 박테리아가 모양을 나타내고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가진다. 그러나 유전자 분자는 수동적이기 때문에 리보솜이 없으면 생명도 발현되지 않는다.

청사진은 리보솜의 역할에 따라 생명체로 발현된다. 리보솜은 유전자 내 정보에 기반해 단백질을 만든다. 산소를 전달하는 헤모글로빈, 면역계의 항생물질, 인슐린과 같은 호르몬, 피부의 콜라겐, 당을 분해하는 효소 등이 그것이다. 체내 수천 개의 단백질 중 수십개는 각기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화학적 단계에서 생명을 만들고 제어한다.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은 이러한 생명현상을 DNA의 구조와 기능을 중심으로 분자 차원에서 설명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다. 1953년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면서 관련연구가 활발해졌다. 이후 생화학, 유전학 등과 병합되며 현대 생물학의 근간을 이룬다.

▲ 수상자들이 그린 리보솜 3차원 지도  ⓒAda Yonath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문을 연 3인의 공동수상자

미국 국적의 라마크리슈난 박사는 1952년 인도에서 출생했으며,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영국 캠브리지 소재 MRC분자생물학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

스타이츠 교수는 1940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분자생물학과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일대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4년 이후 첫 노벨 화학상 여성 수상자인 요나트 박사는 1939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바이츠만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에서 ‘X선 결정기술’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관련 연구로 수많은 화학상을 받은 바 있다.

세 수상자에게는 1천만 스웨덴크로네, 한화로 약 17억 원의 상금이 3분의 1씩 나눠 지급된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상은 5일 생리·의학상과 6일 물리학상 발표에 이어 앞으로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 12일 경제학상 발표를 앞두고 있다.

임동욱 기자 · 박상주 객원기자 |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09.10.08 ⓒ ScienceTimes

종의 기원 둘러싼 오해, 그 진실은?

종의 기원 둘러싼 오해, 그 진실은? 10월 26일 연극 ‘다윈’에서 해답이 제시된다 2009년 10월 01일(목)

융합이 있는 풍경 올해 들어 국내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 부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외면을 넘어 금기시되어 왔던 과학연극이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것.

본디 연극과 과학이 어울리는 관계가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이는 문화계와 과학계 양 쪽 모두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성을 토대로 자연의 진실에 접근하는 과학자의 세계와 감성을 무기로 대중과 호흡하며, 인간의 진실에 다가서는 연극계는 지금까진 특별히 만날 필요가 없었다.

▲ 전 세계 30개국에서 공연된 과학연극 '코펜하겐' 

이런 이유 때문일까? 혜화동 대학로 연극가는 과학연극의 불모지와 같았다. 상업적 재미를 소재로 하는 연극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연인들 간의 사랑 또는 남녀의 불륜, 정치나 사회 문제의 풍자 등을 다룬 블랙코미디 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연극판에 과학 소재는 낄 자리조차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성과 감성의 만남, 과학과 예술의 접목 등 기존의 상식을 깨는 융합문화가 탄생한 것.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한 연극계는 이를 누구보다도 빨리 수용했고, 두 분야는 빠르게 정전기적 인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다.

과학계는 과학대중화를 위해서, 또 진부한 소재로부터 비상구를 찾던 연극계 역시 그동안 터부시해왔던 과학 소재를 필요로 했다. 그 결과, 과학과 연극은 무대에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소용돌이의 진원지가 바로 문제작 ‘코펜하겐’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9월 독일이 점령 중인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두 과학자가 만났다.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원자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집에 독일의 핵분열 프로그램을 이끌던 천재 핵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찾아온 것.

닐스 보어는 덴마크 물리학자지만 유태인 출신, 하이젠베르크는 유럽을 제패한 나치 독일의 촉망받는 핵물리학자.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볼 때, 이 둘의 만남은 그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를 가운데에 놓고, 인류 멸망과 직결된 엄청난 학술적 대화를 나눈다.

연극 ‘코펜하겐’을 쓴 영국의 극작가 마이클 프레인은 이 작품을 통해 핵폭탄을 만들며, 경쟁했던 미국과 독일 물리학자간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과학자에 대한 인류사회의 오해와 진실을 다룬다.

▲ 두 천재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만남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달라지는 진실

1998년 영국에서 초연된 후, 전 세계 30개국에서 공연될 정도로 히트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 연극을 국내에 도입, 연출까지 맡은 이가 바로 극단 청맥의 윤우영 대표다. ‘코펜하겐’의 성공, 아니면 융합문화의 시대적 조류 탓일까?

윤 대표는 한국과학창의재단 융합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다시 한 번 과학연극에 도전한다. 그 작품이 바로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만든 과학연극 ‘생명의 나무, 다윈’이다. 오는 10월 26일 미마지 아트센터에 첫 무대가 오른다.

학술대회를 준비하던 연구원들이 ‘종의 기원’ 출간에 대한 발표시점을 두고 생긴 의문점에서부터 연극은 시작된다. “왜 20년 동안 ‘종의 기원’ 출간을 미루었는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와 함께 다윈이 탐험했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줄거리다.

줄거리가 암시하듯, 연극 ‘다윈’의 주제는 ‘코펜하겐’보다 더 파격적이다. 신(神)의 존재에 정면으로 맞서는 ‘종의 기원’ 출간은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하게 인류사회를 뒤흔든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 기획까지 담당한 그는 “1년의 기획 기간 동안 다윈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다윈의 입장이 되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연극 ‘다윈’에 거는 그의 집념이라기 보단 연극인이 바라본 과학자의 고뇌 그리고 엄청난 과학적 사건을 둘러싼 진실과 오해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일 수 있다. 연극 ‘다윈’에서는 평생을 바친 ‘종의 기원’ 출간을 20년이나 망설인 다윈의 인간적 고뇌와 출간을 둘러싼 역사적 오해와 진실을 다룬다.

200년 전 ‘종의기원’이 출간되자 당시의 사회는 엄청난 오해와 편견으로 그를 바라봤다. 기독교가 지배하고, 융합문화는 커녕, 과학연극조차 없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선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다윈이 살던 200년 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과학과 예술이 융합하고, 과학연극을 통해서 과학자의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있다.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달라진 시각으로 다윈과 관련한 오해를 풀 수 있을까? 첫 무대가 오르는 10월 26일 이 질문의 대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 극단 청맥 윤우영 대표 인터뷰 -

▲ 연극 '다윈'을 기획한 극단 청맥의 윤우영 대표 
- 2009년 융합문화사업 지원과제의 신청 계기는

우리 극단 청맥은 융합문화사업 지원과제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연극 ‘다윈’에 대한 작업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대본을 만드는 동안에 이 융합과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학연극이 제작되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볼 때, 혹시나 이 다윈이란 작품도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신청한 결과, 지원을 받게 돼서 기쁘다.

- 이번 과제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면

올해가 다윈의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다윈에 대한 영화 등이 제작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도 일반인들 중엔 다윈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진화론에 대한 오해가 있고, 한쪽에선 극진적인 진화론자들이 너무나 무신론적으로 다윈을 밀어붙이는 경향도 나타난다. 우리 청맥은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과학자 다윈의 이야기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 다윈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 작품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 지원과제를 통해 나타내고 싶은 ‘융합문화’와 그 뱡향성 그리고 향후 전망에 대해서 한 말씀

나는 과학연극을 하면서 과학이 철학과 예술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연극에선 과학적인 부분이 모두 가미된다. 무대 설치, 조명 등 많은 영역이 과학기술에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융합문화 지원체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많은 사람이 과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딱딱하기 때문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각되는데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통해 과학을 더욱 친숙하게 만들고, 한편으로 과학기술을 예술 분야에 접목시켜서 기술적 발전의 혜택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지원과제 책임기관의 그동안의 활동과 향후 계획은

2002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극단 ‘청맥’은 정극의 중요성을 외치며, 한국연극의 탄탄한 기본기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특히 2007년부터는 역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역사인물 재조명 시리즈를 기획, 공연하고 있다. 또 과학연극에도 관심을 쏟고, 좋은 연극,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 융합문화의 중요성과 국가의 창의적 역량을 연결시킨다면

요즘 들어 컴퓨터 그래픽(CG)이 영화에 많이 접목된다. 이는 우리 연극계도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최근의 관객들은 눈이 상당히 높아져서 단순한 무대로는 재미없어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대장치도 거의 컴퓨터로 조정하고, 아주 입체적으로 돌린다. 이렇듯 연극 무대에서조차도 창의성이 많이 활용된다. 우리 연극 쪽에서도 과학기술을 더 많이 연결해서 더욱 더 창의적인 무대가 될 수 있는 창의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09.10.01 ⓒ

수학이 인류의 삶을 바꿨다고?

수학이 인류의 삶을 바꿨다고?

2009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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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런 질문을 주위 사람에게서 여러 번 받았다. “수학자들은 왜 그리도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어 하죠? 문제가 어려울수록 더 열광하는 것 같아요.” 일리 있는 질문임이 분명한데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혹시 난제가 중독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난제의 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연구해볼 만하겠다.

수학에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데도 오랜 세월 풀리지 않고 애태우는 어려운 문제, 즉 난제가 여럿 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던 난제는 무려 300년간 수많은 수학자의 도전에도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다가 1990년대 중반에야 풀렸다. 이는 정말 운 좋은 경우에 속한다. 수학사를 들여다보면 난제에 몰입하던 재능 있는 수학자가 결국 문제를 풀지 못하고 평생 주목할 만한 업적도 내지 못하고 만 사례가 비일비재하니까. 결과만을 보면 이런 재능 있는 사람은 인류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일에 몰두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려운 문제를 풀려는 여러 시도 속에서 엉뚱한 진보가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예로 들어보자. 17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잘나가던 법률가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는 여가시간에 수학문제를 푸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평소처럼 수학문제에 대한 책을 읽다가 이 책에서 제시한 문제 하나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얼마 뒤 이 문제를 풀었다고 믿은 그는 책의 여백에 증명을 써 나가다가 “여백이 부족하여 다 못 쓰지만 이 문제를 풀었다”고만 쓰고 끝낸다. 믿기 힘들겠지만 요즘도 이런 희귀한 사람이 있다.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도 틈날 때 수학문제 푸는 게 취미라고 했으니까.

이 여백에 쓰인 페르마의 글귀는 수학사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수학자가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 30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온갖 시도를 해본 수학자들의 결론은 페르마가 뭔가 착각에 빠져서 글귀를 남겼을 것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문제를 풀기 위한 지난한 노력 속에서 타원곡선이론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고 발전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앤드루 와일스 교수는 1990년대에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고 말았는데 두 개의 논문에 걸쳐 200쪽도 넘는 그의 증명은 타원곡선이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깊이 영향 받았다. 해피엔딩이긴 한데 정작 처음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아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었으니 당사자야 기쁘겠지만 인류에겐 무슨 도움이 됐느냐 말이다.

수학자의 답은 간단하다. 원래의 페르마 문제가 설사 안 풀렸다 하더라도 300년의 노력은 가치가 충분했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수학이론이 출현했고 세상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게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산물도 대단하다. 타원곡선이론을 사용해서 암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군사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는 비밀키 암호 대신 인터넷 상거래에서 쓰이는 공개키 암호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우리가 쓰는 교통카드에 바로 타원곡선 암호를 사용한다.

난제에 매달려 수백 년을 보낸 수학자의 몰입 때문에 인터넷 상거래가 가능해지리라 누가 예상했을까? 컴퓨터나 유무선 통신의 등장은 생활의 편리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사람이 생각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어 버렸다. 수학은 인류의 삶을 바꾸는 동력의 역할을 해온 게 아닐까?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못하든 간에 말이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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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만년전 원시인류는 원시림 사냥꾼

원시림 사냥꾼, 450만년전 원시인류

동·중앙유럽 반(反)서구화 이데올로기로 고립 자초

2009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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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사이언스는 일주일 동안의 세계 주요 학술소식을 모은 ‘표지로 읽는 과학’을 연재합니다. 이번 주 ‘네이처’는 동·중앙유럽 국가의 과학계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일침을 놨습니다.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사이언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150만 년 전에 살았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표지로 꼽았습니다. 이 원시 인류는 원시림에서 살았습니다. - 에디터 주

사이언스 표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150만 년 먼저 산 원시인류

사람 뼈다. 발가락, 정강이뼈를 비롯해 송곳니까지 보인다. 이 화석의 주인공은 450만 년 전에 살았던 원시인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몸무게 50㎏에 키는 120㎝다. 미국 연구진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발견해 2005년 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발 뼈의 특징으로 이 원시인류가 직립보행을 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전까지 학계는 직립보행을 한 최초 인류를 300만 년 전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 ‘사이언스’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에 다시 주목했다.

에티오피아, 미국, 일본 등 공동 연구진은 “이 원시인류는 원숭이, 침팬지처럼 두 손으로 나무를 잡으며 걷지 않았고, 침팬지가 하는 것처럼 나무 가지를 잡고 흔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원시인류가 침팬지, 원숭이 같은 유인원과 오랫동안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여겼다.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로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상당 부분 바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연구진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지금보다 습하고 기온이 낮은, 수풀이 우거진 삼림지대에 살았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화석이 발견된 지층대에서 야자수, 팽나무, 무화과나무의 씨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 곳곳에서 비둘기, 모란앵무새, 칼새 등과 같은 새 29종과 박쥐, 산토끼 같은 20종의 포유류 화석이 발굴됐다. 450만 년 전 원시인류는 원시림에 살며 이들 동물을 사냥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네이처 표지
동·중앙유럽 국가들 유연해져야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0년 되는 날이다. 이 장벽은 서베를린을 동베를린을 비롯한 동독에서 분리하기 위해 세워졌다. 공산주의 지역 안에 있는 자본주의 지역이라 하여 사람들은 서베를린을 ‘육지의 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번 주 ‘네이처’는 동유럽과 중앙유럽 과학계에 일침을 놓았다. 길을 막던 베를린 장벽처럼 국제적 교류에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다. 표지에 커다랗게 ‘BEYOND THE BERLIN WALL(베를린 장벽 넘어)’라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네이처는 “동유럽과 중앙유럽에 있던 소련의 위성국가들은 소련 붕괴 후 유럽연합(EU)에 편입됐지만 이들 국가가 과학에 투자하는 비용이 적을 뿐 아니라 EU 공동연구에 참여할만한 수준이 못 된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동·중앙유럽 국가들이 ‘반(反)서구화 이데올로기’에 젖어 이런 결과를 빚었다고 분석했다.

발틱 해 주변 나라들은 예외적인 경우. 네이처는 “소련이 무너진 이후 발틱 국가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소련 스타일 연구방법의 한계를 철저히 조사해 과학펀드 조성, 출판, 동료평가 등 서구 스타일의 연구방법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현재 발틱 국가는 ‘강소국’의 면모를 보이며 생물의학, 환경기술 등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네이처는 “어린 과학자들이 세계적으로 유수한 연구실에서 경험을 쌓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하고, 유럽파쇄중성자원(ESS)과 같은 다국적연구시설을 이용하면 좀 더 좋은 연구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SS는 거대한 가속기로 건설비용만 약 15억 유로(약 2조5000억 원)가 들어간다. 동·중앙유럽 국가들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암의 진화발생생물학 (3)

암의 진화발생생물학 (3) 알러지와 아토피, 진화의학과 예방의학 2009년 10월 05일(월)

미르(miR) 이야기 앞에서 진화의학의 실천적 측면이 의학이라는 학문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여성암의 증가라는 예를 통해 살펴보았다. 진화의학의 실천적 방점은 질병에 대한 진화적 이해가 깊어질 수록 더욱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는 면에 있다. 여성암의 예는 결혼 및 출산이라는 문화적 측면을 요구했지만, 진화의학적 이해는 그보다는 더욱 쉬운 합의만으로 많은 질병에 대한 근본적 치료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이미 설명했듯이 당장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진화의학적 이해는 의학의 실천적 사용과 거리가 멀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의사집단이라는 이익단체의 금전적 수지타산이 진화의학의 궁극적 문제해결과 부딪히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알러지와 아토피, 진화의학과 예방의학

▲ 홍적세에서 적응했던 우리 조상들에게 기생충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였고, 우리 몸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IgE를 이용한 면역체계를 진화시켰다. 문제는 선진국으로 갈 수록 이제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구충제를 복용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더 이상 기생충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진화의학은 아토피 혹은 알러지와 같은 질병이 선진국의 도시 청소년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점에 주목한다. 다양한 종류의 항체 중 IgE 체계에 의해 발생하는 알러지와 아토피에 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이론은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위생가설은 면역계의 성장을 위해서는 세균을 포함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극이 필요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면역계에 문제가 생겨 아토피, 알러지 등과 같은 질환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의학적 사실에 따르면, IgE 체계는 주로 기생충에 대한 방어기제로 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홍적세에서 적응했던 우리 조상들에게 기생충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였고, 우리 몸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IgE를 이용한 면역체계를 진화시켰다.

문제는 선진국으로 갈 수록 이제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구충제를 복용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더 이상 기생충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 몸은 200만년 동안 어린 시절 반드시 기생충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IgE라는 강력한 면역체계를 구비해 두었는데, 이제 그렇게 진화한 우리의 몸이 더 이상 기생충과 만날 기회조차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위생가설은 바로 이 역설에 주목한다. 새로운 환경과 오래된 몸이라는 부적응이 알러지와 아토피의 주된 발병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가족이 적어지고 지나칠 정도로 위생적인 환경 아래에서 면역체계는 어린 시절에 질병이나 더러운 환경에 도전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신체의 자연적인 방어체계가 꽃가루 등 작은 물질에도 과민 반응을 하게 될 수 있다. 알러지를 연구하는 면역학 자들은 도시와 농촌,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비교연구를 통해 먼지가 많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사는 아이일수록 천식 등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적게 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토대로 해서 위생가설이 탄생했다.

집 안팎에 떠도는 먼지에는 내독소가 있다. 내독소는 세균의 세포벽에 들어 있는 일종의 독소로 사람과 가축의 대변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것이 면역계를 자극하여 천식 등을 일으키는 알러젠에 대한 방어력을 만들어 준다. 한번에 많은 양의 독소가 피부에 닿으면 유해하지만 적은 양을 자주 접촉하면 백신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어릴 때 내독소에 많이 노출된 아이는 내독소에 대한 면역체계가 활성화돼 알레르기가 잘 생기지 않는 데 반해 평소 깨끗한 실내환경에서 생활한 도시 아이들은 성장 후에 사소한 먼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 체질이 될 수 있다.

위생가설은 아직 대규모 역학조사와 세밀한 검증과정이 더 필요하지만 가정의 청결도에 비례해 천식과 아토피 발생률이 급상승한 사실 등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산적해 있다. 위생가설은 우리의 아이들은 약간만 덜 청결하게 키우면 알러지와 아토피 등에 투입되는 막대한 의학적 비용이 경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위생가설이 맞는다면, 적절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우리는 현대 아동들을 괴롭히는 이러한 치명적 질병들을 조기에 적절히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다윈의학에 관한 그들의 저작에서, 윌리암스와 네세는 알러지와 아토피, 그리고 천식 등에 대한 설명으로 위생가설 대신 마지 프라핏이라는 학자의 '적응 가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적응주의자인 윌리암스에게 마지 프라핏의 가설이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IgE 체계가 꽃가루나 먼지 등의 독소에 대항하기 위한 예비 반응으로 진화했다는 프라핏의 이론은 문명화된 원시부족에 대한 민속지적 연구나, 도시와 시골을 비교한 여러 의학적 논문들에서 나타난 결과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1991년의 저작에서, 윌리암스와 네스는 프라핏의 이론을 지지하면서 기생충 가설을 보조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의학사적 연구는 기생충의 감소는 분명히 알러지의 증가와 강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로는 남태평양의 산호섬인 마우키를 연구한 에릭 오키슨(Eric Ottesen)의 연구가 유명하다. 1973년 주민의 3%만이 알러지를 나타냈던 이 섬의 알러지 환자 수는 1992년 15%까지 증가했다.

오키슨의 이러한 연구결과 이외에도 상식적으로 꽃가루에 의한 효과가 더욱 극명해야 할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알러지나 아토피가 도시 아이들에 비해 미미할 정도로 적다는 점이 알러지 반응에 대한 윌리암스와 네스의 이론에 재고를 요청하게 만든다. 이미 언급했듯이 프라핏의 알러지에 관한 적응 가설은 범적응주의에 의해 도출된 과도한 결론이고 근접원인인 생리학적 원인을 궁극인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나치게 과대한 상상력을 동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류는 지상에 정착한 모든 척추동물의 후손이고 개화식물은 이미 수천만 년 전부터 우리와 함께 했다. 만약 꽃가루와 같은 독소에 의한 위협이 그렇게도 치명적인 것이었다면 왜 포유류만이 이러한 흔적을 가지고 있을까? 포유류의 체온은 운동성과 환경에 대한 항상성이라는 이득을 주었지만 이로 인해 기생생물들에게 너무나 좋은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다. 경제적 효용성 원리다.

이러한 군비경쟁은 엄청난 선택압으로 기능했을 것이고 우리는 IgE 체계를 비롯한 복잡한 면역체계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복잡해진 면역체계로 인해 누리는 이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로 인한 짐을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어 있다. 자가면역질환이나 염증이 좋은 예가 된다. 알러지나 아토피도 이러한 짐의 일부다. 그리고 실제로 면역학자들은 위생가설을 토대로 알러지나 아토피 뿐만 아니라, 제1형 당뇨병 및 다양한 질병과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연구 중이다.

진화의학의 실천적 난제: 알러지의 경우

아마도 진화의학을 의학적으로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가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어떤 이론 혹은 가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해결책이 180도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목숨을 다루는 실용학문이다. 따라서 의사들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마련이다. 또한 과학의 본질상 이론이나 가설은 임시적이고 새로운 실험결과들에 의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운명을 가진다. 결국 진화의학이 제시하는 이론과 가설을 의학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치료제들이 임상적으로 실용화되기 위해 거치는 단계적 절차들이 필요하다. 의사들은 임상실험의 결과들과 여기서 파생된 통계적 수치들로 판단한다. 진화의학이 그러한 수치들을 제시할 수 없다면, 의사들에게 진화적 이해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데 실패할 수 밖에 없다.

▲ 진화의학의 실천적 측면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학자라면, 그것이 단순히 의학이라는 진화론과는 다른 전통을 지닌 학문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진화의학의 실천을 위해서는 학문적 갈등이라는 인식론적 설명을 넘어, 진화의학이 의도하는 질병의 궁극적 치료가 얼마나 민감하게 사회적 측면과 맞닿아 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진화의학은 알러지와 아토피와 같은 질병이 새로운 환경과 오래된 몸의 갈등으로 빚어진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오래된 몸을 우리들의 선조들이 적응해 온 환경에 두는 것으로 이러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해결책의 구체적인 방안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원칙은 단순하다. 어린아이들의 면역체계가 형성되는 기간에 우리의 몸이 기생충에 감염된 것처럼 속이고, 우리의 아이들이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들의 면역체계 형성에 필수적인 모유를 권장하는 것이 진화의학이 제시하는 해결책의 원칙이다.

이러한 진화의학의 해결책은 최근의 생태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태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적당히 더럽게 살라고 권고하는 것의 경험적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진화의학적 탐구의 결론도 생태주의자들의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이러한 해결책의 제도적 개선을 위해 의사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의사들에게 진화의학 혹은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이 먹히기 위해선 의사들이 납득할 만한 임상적 결과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이 이익집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차지하는 알러지와 아토피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욕망의 샘이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발전을 겪어 온 의학과 진화학의 인식론적 갈등이 실제로 충돌하는 지점은 이와 같이 경제적/현실적 영역이 될 수 있다. 알러지와 아토피를 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예방의학적 실천은 의사들에게 임상적 경험증거를 충분히 획득하지 못한 불확실한 처방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해결책은 의사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사들뿐 아니라, 제약회사들에게도 그러한 해결책은 손해다. 진화의학적 이해와 그 실천의 문제는 이렇듯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진화의학의 실천적 방점은, 예방의학에 대한 투자, 의사와 제약회사들이 눈 앞의 돈벌이에서 벋어나 진심으로 국민의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의 개선에 있다. 그러한 노력의 시작은 아주 작은 실천, 즉 진화의학이 아주 잘 들어 맞는 청소년 비만이나 아토피 혹은 알러지 등에 대한 실증 연구에 당장 착수하는 것, 이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천문학적 치료비가 투입되는 청소년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들이 되어야 한다. 진화의학에 관심이 있는 의사들이라면 의사들이 가진 권력의 힘을 이용해 이를 사회적으로 정당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

진화의학의 실천적 적용: 네 가지 측면

지금까지 살펴본 진화의학과 의학적 실천의 문제를 토대로 이해한다면, 진화의학의 적용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진화론과 의학의 갈등이라는 학문적 충돌로만 이해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진화의학과 전통적 서구의학의 갈등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첫째, 박물학적 전통에서 기원해서 발전한 진화론과, 생리학적 전통에서 많은 세례를 받은 의학은 두 개의 생물학적 전통이 갈등해 온 역사를 그대로 답습한다. 진화론이 다루는 궁극인적 설명은 실험의학이라는 전통을 중시하는 생리학적 전통 속의 의사들에게는 '그저 그런 이야기' 혹은 증거가 불충분한 가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러한 학문적 갈등이 진화의학이 극복해야 하는 첫 번째 장벽이다.

둘째, 진화론과 의학의 갈등은 단순히 학문적 갈등으로만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진화의학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거대산업으로 변해버린 의사-제약회사-국가의 복잡한 자본주의적 네트워크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진화의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그 가설이 옳다는 것이 증명될 수록, 현대 의학자본이 환자의 치료로부터 얻는 이익은 사라진다. 진화의학적 실천은 의학적 실천보다 좀 더 궁극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화의학에 의해 위생가설이 완벽하게 옳은 이론으로 판명되고 아주 간단한 치료제의 개발 및 근원적 원인 차단으로 알러지와 아토피의 발병률이 줄게 되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개발된 제약회사의 치료제들은 그 연구개발비를 돌려받을 시장이 사라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제약회사들의 투자와 몬산토와 같은 종자회사들의 투자는 철저히 손익관계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진화의학이 넘어야 할 장벽은 단순한 학문간의 충돌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에 이르기 위한 전방위적인 장애물들이다.

셋째, 진화의학이 다루는 질병들과 그 실천적 영역은 전통적 서구의학이 다루는 영역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진화의학은 질병의 근원적인 치료보다는 임상적 치료에 편중되어 있는 현대의학에 예방의학적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질병의 궁극인을 이해하고, 이를 제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예방의학이 해온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의학과 현대의학이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 실천하고자 하는 것의 영역을 현명하게 구분지음으로서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의학이라는 실용적 학문의 특징을 주의 깊게 고찰해본다면, 이론에 치중하는 진화학자들과 실천에 치중하는 의학자들 간의 갈등은 서로가 추구하는 실천의 영역을 분할하는 것으로 봉합될 수 있다.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마지막으로 진화의학이 위와 같은 실천적 문제에 있어서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화의학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이해가 필요하게 된다. 이는 진화의학적 연구결과들의 적용이 대부분의 경우 단순한 치료제의 개발을 넘어 사회적 제도의 개선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과 실천이 요구된다. 진화의학의 실천적 문제를 단순히 의학 내부의 갈등과 연결시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거대자본으로 성장한 현대의 제약회사들과의 문제를 비롯해서 의료시장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화의학의 미래는 없다. 이론 및 가설을 넘어 풍부한 임상적 데이터들을 얻는 과정에서뿐 아니라, 이를 제도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진화의학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윌리암스와 네세의 선구적인 작업 이후, 진화의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의사들과 생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해 왔다. 비록 필자가 제시한 것처럼 진화의학이 마주하고 있는 실천적 문제의 복잡성을 간파한 학자들은 드물었지만, 진화의학은 꾸준히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 분명 진화의학은 발전하고 있다. 그럼 이제, 암이라는 질병에서 진화의학은 윌리암스와 네세로부터 어떻게 진보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고,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생리학적 기원과 진화적 기원의 갈등과 조화가 진화의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알아 본 후, 꼬마RNA들이 암의 치료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로 하자.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10.05 ⓒ ScienceTimes

암의 진화발생생물학(2)

암의 진화발생생물학(2) 다윈의학의 여섯 가지 설명 범위 2009년 09월 30일(수)

미르(miR) 이야기 1991년 윌리암스와 네세가 진화의학에 관한 개론서를 편찬할 때만 하더라도, 암의 발생에 관한 진화적 사고는 의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상황은 개선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암이란 피할 수 없는 불길한 운명의 그림자로, 꾸준한 종합검진과 조기치료 이외에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젠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암보험에 가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고 또 절실한 것은 되도록이면 암에 걸리지 않는 것, 혹은 암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일 뿐, 암 발생의 진화적 기원이 무엇이냐는 학구적인 질문은 아니다.

다윈의학의 여섯 가지 설명 범위

1991년 윌리암스와 네세는 다윈의학의 프로그램이 다루는 질병에 대한 진화적 설명의 범위를 6가지로 제시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방어'로, 기침과 같이 우리 몸이 외부물질로부터의 손상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해 낸 적응적 결과물을 말한다. 그들은 현대의학에서 가끔 우리 몸의 방어기제가 질병과 혼동되어 이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침이나 재채기는 병원균이나 독소에 대한 자연적인 방어기제일 수 있는데 의사들이 기침과 재채기 자체를 질병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현상이 병원균에 의한 것인지, 혹은 병원균을 몸에서 제거하기 위해 우리 몸의 방어체계가 작동하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차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구분하고 치료에 적용하는 것이 다윈의학이 현대의학에 던지는 메시지 중 하나다.

두 번째 주제는 '감염'이다. 전염병학자 폴 이왈드가 숙주와 기생체 간의 진화적 군비경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수 많은 기생체들과 군비경쟁을 치러왔으며, 그 흔적은 우리의 유전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을 것이라는 게 다윈의학의 예측이다.

세 번째 주제는 '새로운 환경'이다. 윌리암스와 네세는 이 주제를 우리가 '현대사회에 내동댕이쳐진 석기시대인'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홍적세의 아프리카에서 200만년 동안 진화한 우리의 몸이, 진화적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극히 최근에 이루어진 문명의 급속한 진보로 인해 창조된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인의 몸을 지닌 채 태어나는 우리의 몸과, 구석기 시대인의 생활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현대 문명 사이의 괴리에서 나타나는 부적응이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 윌리암스와 네세는 1991년의 저작에서 알러지와 아토피에 대한 가설로 마지 프라핏의 '적응 가설'을 선호했다. 하지만 면역학자들의 연구는 알러지가 기생충에 대항해 진화한 우리 몸의 IgE 체계가 항원이 사라지면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는 '위생 가설'을 지지한다. 진화의학의 적용은 실용적인 학문인 의학이 가진 조심스러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이론중심적인 진화학과 실험중심적인 의학 사이에 내재하는 학문적 갈등의 한 축이다. 

네 번째 주제는 '유전자'다. 윌리암스는 개체를 중심으로 연구되던 자연선택의 단위를 '유전자'로 끌어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윈의학에 그의 '유전자 선택설'을 적용시키기 위해 그는 홀데인(J.B.S Haldane)과 메다워(Peter Medawar)의 노화와 유전자에 관한 논문들을 기반으로 ‘부정적 다면 발현(negative pleiotrop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유전자가 '다면적'이라는 뜻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표현형의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에는 큰 이익을 주기 때문에 선택된 유전자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몸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유전체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들 중 일부는 노년기에 이르러 분명 우리의 몸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고 선택된다.

윌리암스의 부정적 다면 발현은 '노화(aging)'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고,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와 질병들에 관한 진화적 설명에 가장 잘 적용된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암이라는 질병도 노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면 발현'은 암의 진화적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개념이 된다.

다윈의학이 다루는 유전자라는 존재의 성격은 한 마디로 역설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다면 발현'처럼 한 유전자가 우리에게 착할 수도 나쁠 수도 있다. 또한 다윈의학의 두 번째 주제인 '새로운 환경'에 유전자를 대입해 보면, 어떤 유전자는 과거에는 전혀 해롭지 않다가 새로운 환경을 만나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유동인자에 대한 연구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유전자들은 개체의 안위는 돌보지 않은 채 자신의 복제에만 신경을 쓰기도 한다.

다윈의학의 다섯 번째 주제는 '설계상의 절충'이라 불린다. 이 개념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혹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과 통한다. 자연선택에 의해 보존된 일부 형질들의 구조적 변화는 완벽한 설계일 수 없다.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가 직립보행으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롭게 되는 이득을 취했지만 그로 인해 인류는 척추질환으로 고통 받게 된 것이다.

다윈의학이 다루는 마지막 주제는 '진화적 유산'이다. 이 주제는 앞에서 다룬 다섯 가지 주제를 포괄하는 것으로, 우리의 몸과 유전자에 새겨진 대부분의 흔적들이 우리 조상들이 겪은 진화적 경로를 각인하고 있다는 뜻이다. 포유동물의 식도는 기관지 앞으로 나 있기 때문에 물을 마시다 질식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진화적 제한'은 포유류가 물고기 선조로부터 분기해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진화적 유산이다. 인간의 망막에 존재하는 맹점 역시 눈의 진화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설계된 진화적 유산이다.

암에 대한 다윈의학적 설명

인간이라는 종에게 특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암이라는 질병 현상은 앞에서 설명한 다윈의학의 여섯 가지 설명 범위 대부분에 부분적으로 중첩된다. 그 중에서도 모든 종류의 암이 노화가 진행될 수록 발병률이 증가한다는 점, 또한 암의 발병에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 문명의 발달로 인해 최근에 급격히 달라진 현대사회의 환경과 여전히 구석기시대인의 그것과 같은 몸과 유전자를 지닌 인류 사이에 벌어지는 부적응이 암에 관한 진화적 설명의 핵심을 이룬다. 암에 관한 다윈의학적 설명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세포분열이라는 현상은 고도로 조직화된 메커니즘이며 반드시 오류를 동반한다.
2. 몇몇 유전자 상의 오류는 통제된 세포분열 메커니즘에 이상을 일으킨다.
3. 세포분열의 이상은 암을 발생시킨다.
4. 노화가 진행되기 이전에는 이러한 암세포들은 면역계에 의해 효과적으로 차단된다.
5. 하지만 노화는 이러한 방어체계를 총체적으로 잃는 과정이다.
6. 암에 걸릴 확률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높아진다.

▲ 현대에 들어 여성암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진은 자궁경부암 수술 장면.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생물로 진화하면서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유전자들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복사품을 더 많이 후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수많은 유전자들의 이기성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다세포생물에게 있어 직접적으로 자연선택에 노출되는 것은 정자나 난자와 같은 생식세포다. 적응이란 결국 생식적 적합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자손을 다른 개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자연선택이 유일하게 고려하는 현상인 셈이다.

노화에 관한 윌리암스의 '다면 형질 발현'을 받아들인다면 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형 질병들, 즉 나이가 들수록 출현빈도가 높아지는 알츠하이머, 관절염, 당뇨병 등의 질병들에 대한 진화적 설명은 다음과 같이 매우 간단하게 기술될 수 있다.

어떤 유전자가 모든 사람들을 100살에 죽여 버린다고 해도, 청년기에 아주 사소한 이득만 제공해 준다면 전파될 수 있다. 노화를 유발하는 대부분의 유전자들은 청년기에 그 유전자가 제공하는 이익 때문에 선택되었고, 그 유전자들이 노년기에 가져올 위험천만한 영향은 자연선택에 노출되지 않는다.

이 설명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자. 자연선택은 생식적 적합도에 따라, 즉 더 많은 후손을 남기는 형질을 선택한다. 따라서 자연은 다른 체세포보다도 난자나 정자세포를 보존하려 노력한다. 생식세포를 유동인자로부터 보호하는 파이RNA가 강력한 증폭과정을 가지고 빠른 시간 안에 진화한 이유를 살펴보며 우리는 이미 생식세포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따라서 조로증처럼 젊은이에게 해로운 돌연변이 유전자는 자연선택이 그것을 제거하기 때문에 매우 드물게만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비슷한 힘을 가진 유전자들이지만 90세 이상의 노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노화는 생식적으로 성숙한 시기를 지난 후에, 즉 성공적으로 후손을 생산한 후에 일어나기 때문에, 인생의 후반기에 해당 유전자들이 갖는 해로운 영향은 자연선택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 결국 진화의 과정 속에서 이런 종류의 유전자들은 유전체 속에 선택되어 누적된다. 이러한 유전자들이 유전체 속에 동일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생식기 이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의 영향력은 몸 전체에 걸쳐 일어날 수 있다. 자연의 입자에서 한 개체가 생식을 마치고 자손의 생존을 확보한 이후에 벌어지는 유전자의 해로운 효과는 전혀 고려할 만한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극단적인 경우, 연어처럼 생식을 마친 이후에 즉시 개체가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생식세포를 편애한다. 자연선택은 웰빙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윈의학과 암치료

지금까지 1991년 윌리암스와 네세가 다윈의학을 통해 주장한 암의 발생에 관한 진화적 설명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암에 대한 진화적 설명을 살펴보는 것과 의사들이 암을 실천적으로 치료하는 일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괴리가 놓여 있다. 암에 관한 진화적 설명이 암의 치료에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이러한 괴리는 극복될 수 없다. 또한 윌리암스와 네세가 암에 관한 다윈의학적 설명을 시도하면서 우리에게 제시한 실천적 결론을 보면 이러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진화학자들에게 있어 암이라는 현상은 인류가 진화적 역사 속에서 불가항력적으로 획득한 진화적 유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실제로 암에 걸린 환자에게는 매우 냉소적인 어투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사실 윌리암스와 네스가 우리에게 주는 결론은 이런 것이다.

암에 걸릴 가능성을 낮추는 또 다른 것으로 위험천만하게 사는 것이 있다. 일찍 죽어라, 그러면 암에 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암이란 모든 종류의 비적응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조직 성장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암은 성장과 분열 능력을 잃지 않은 어떠한 세포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각 세포의 암은 갖가지 개시 요인들과 억제 메커니즘의 실패 등에 의해 일어난다. 암이 의학적으로 정복되기 힘들다는 보고도 별로 놀랍지 않으며 보편적인 단일 치료법이 발견될 것 같지도 않다. 암을 반역자 세포와 숙주 사이의 경합으로 정확히 이해한다면 그에 대한 의학적 진보도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중에서

암이라는 질병이 도대체 왜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지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분명히 다윈의학을 통해 명료해졌다.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해 장수하게 된 인류에게 있어 암이라는 질병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역설적인 질병이다. 그렇다고 해서 윌리암스와 네세의 제안처럼 인간이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연어처럼 후손을 낳고 바로 죽어버릴 수는 없다. 다윈의학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실천적인 해결책과 함께 조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암의 증가에 관한 다윈의학적 고려는 이러한 실천적 해결에 매우 근접해 있다.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현대에 들어 여성암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 생식 기관의 암 발병률은 이 여성이 그 때까지 경험한 월경 주기의 횟수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즉 생식기관이 암에 가장 걸리기 쉬운 사람은 일찍 초경을 했으면서 폐경은 늦게 되고 월경 주기가 임신이나 수유에 의해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여성이다. 과도하게 지속되는 세포분열은 암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현대의 여성들은 과거보다 초경이 빠르고 폐경은 느리다. 또한 과거의 조상들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는다. 따라서 월경주기가 임신과 모유 수유에 의해 중단되는 기간 동안 일어나는 몸의 손상 복구 과정이 최소한으로 억제된다. 150회 정도의 월경주기를 가졌던 조상들에 비해 그보다 배는 많은 300~400회의 월경주기를 경험하는 현대 여성들에게 여성암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만약 지금처럼 영양상태가 좋은 상황에서 결혼이 늦어지는 악순환까지 겹쳐진다면 여성암의 발병율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모든 여성들에게 일찍 결혼을 하고 일찍 아이를 낳으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사회에서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는 비용이 증가하고, 결혼연령이 점점 늘어나는 현상은 여성들이 여성암에 걸릴 확률을 증가시킨다. 다윈의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통찰은 여기까지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의학 혼자의 힘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과 오래된 몸의 갈등을 의학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과 함께, 결혼이라는 제도적 비용이 경감될 수 있도록 사회의 공동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어쩌면 다윈의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전은 단순한 의학적 실천을 넘어 넓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인류의 복지향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09.30 ⓒ ScienceTimes

암의 진화발생생물학 미르의 실용적 측면 2009년 09월 25일(금)

미르(miR) 이야기 생물학은 하나가 아니다. 생명현상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는 진화생물학의 전통과, 생명현상의 기능적 기원을 다루는 생리학의 전통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때로는 갈등하며 발전해 왔다. 얼마 전 타계한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생물학의 두 전통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생물학의 어떤 문제도 근접인과 궁극인의 동시 해결 없이는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나아가 궁극인에 대한 연구는 물리-화학적인 근접인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정당한 것이다.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The Growth of Biological Thought 1982)

암의 생리의학적 탐구 역사

▲ 미르에 관한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암 연구자이다. 암에 관한 진화의학적 사고를 살펴보는 것은 현대생물학자들에게 있어 암 연구가 도대체 왜 중요하며 왜 미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암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암은 인류의 숙명이며, 실용적 목적을 도외시 할 수 없는 현대 거대과학에 있어서도 숙명이다. 진화적 사고와 전통적 서구 의학의 갈등, 미르 연구와 암 연구가 중첩되는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로서 분자생물학에 의해 생물학이 점령당하는 시기를 경험한 마이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암에 관한 연구는 분자생물학자들과 분자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근접인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던 의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다시피 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바이러스와 세포의 분열을 연구하던 도중 종양억제인자를 발견했고, 암의 발생과정에 관한 분자적 기제를 철저히 분석하고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담배의 타르에 만성으로 노출될 경우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포의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길 경우 암세포가 발생할 확률은 높아진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암세포 발생의 분자적 기제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의학자들은 이를 진단 및 치료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학적 문제의 두 원인을 고려해보았을 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과연 담배와 같은 환경적 요인과 이로 인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암의 발생에 관한 단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 하나다. 예를 들어 담배와 같은 돌연변이 유발물질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일생 동안 암에 걸리지 않는가?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심각해진 공해가 현대인에게 암 발생이 빈번해진 이유라고 일반화될 수 있는가?

두 번째로, 비록 암 발생의 분자생물학적, 생화학적 기제가 완전히 밝혀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왜 인간이라는 종이 암에 특히 취약한가라는 의문에 답할 수 없다. 어떻게 암과 같이 치명적인 생명현상이 이처럼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가? 왜 전세계 여성의 십 분의 일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것일까?

일생 동안 임상적으로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을 위험은 세 명중 한 명 꼴로, 암은 인간이라는 종에게 매우 흔한 질병이다. 매해 천만 명이 암이라는 진단을 선고 받는다. 발병하는 암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암 발생 빈도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후진국에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으로 발생하는 암이 더욱 빈번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생물학적 증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인류는 2000년 전 혹은 그 훨씬 전부터 암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암 진단학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우리는 암의 생물학적 발생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는 점을 간과해왔다. 인류는 언제나 암이라는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정상조직을 염색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조직검사에서 진단되지 않더라도, 발달한 분자생물학적 진단 기술은 언제나 우리 몸 속에 종양과 관련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세포군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록 임상적으로 그러한 세포 하나하나가 암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암세포는 언제나 세포의 증식이 활발한 생체 조직 속에 우발적으로 생겨난다. 매일 수천 개의 돌연변이 세포가 생겨나고 사라져 간다. 우리 몸의 신비로움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세포분열 시스템을 수십 년 동안 잘 관리한다는 데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의 몸에서 암세포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막을 도리는 없다.

인간에게 있어 암이라는 숙명

대부분의 척추동물에서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쥐라기의 공룡 화석에서도 종양이 발견되었다. 몇몇 무척추동물에서도 종양이 발견되곤 한다.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의 어떤 유전자들은 세포의 무분별한 증식을 억제한다. 다세포생물에게 있어, 세포들이 이룬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 즉 잘 조절된 세포분열을 벗어나는 배신자를 색출해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암이란 다세포 생물의 세포들이 단세포 생물이었던 시절의 무차별적이고 이기적인 복제의 본능으로 회귀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일족에게는 기껏해야 1~2% 정도의 빈도로 암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영장류 및 야생동물 그리고 가축을 대상으로 한 실험 모두에서 암의 발생은 나이를 먹을 수록 증가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근친교배를 거듭한 몇몇 가축들은 인간과 같은 높은 암 발생 빈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영장류와 가축화된 동물의 예는 첫째, 암의 발생이 다세포 생물의 내부 생리적 오류 기제에 녹아 있고 둘째, 늙을 수록 암 발생 비율은 증가하며 셋째,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어떤 것이 우리를 더욱 암에 잘 걸리도록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화 의학의 탄생

1991년 조지 윌리암스(George C. Williams)와 랜돌프 네세(Randolph M. Nesse)에 의해 체계적으로 종합된 '다윈의학(Darwinian medicine)'은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었다. 진화적 사고가 다윈 한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윌리암스와 네세의 '다윈의학'이라는 명명은 '진화의학(Eviolutionary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이 글은 진화의학이 다루는 모든 측면을 개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진화의학의 핵심은 인류가 지닌 몸의 기능적 장애 혹은 질병의 기저에는 부분적으로 진화적 유산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일이다.

▲ 1991년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암스(우)와 의사 랜돌프 네세(좌)는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저작을 통해 진화의학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다윈 이후 진화론의 적용이 전방위적 학문에 걸쳐 영향을 끼쳤음에도 유독 의학에서만큼은 진화적 사고가 사용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윌리암스와 네세는 다양한 질병의 예들을 통해 인류의 신체에 각인된 진화의 역사를 살핀다. 

윌리암스와 네세의 창조적인 작업은 분명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진화적 사고를 의학에 적용하는 일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진화론적 사고에서 다루는 궁극인에 익숙하지 않은 의사들에게, 특히 현장에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돌봐야 하는 의사들에게 실험적이고 통계적인 확실성을 가지지 못하는 진화의학은 그저 작은 목소리로 머물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의사들의 무관심은 의학의 패러다임이 진화생물학과는 다른 전통인 생리학의 전통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의학은 생리학적 문제들에 천착해 왔으며, 생리학적 토양에서 성장한 분자생물학과 생화학의 세례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항생제의 발견, 백신의 발명 등과 같은 성공적 사례들은 근접인을 밝히고 이를 치료하는 서구의학의 분석적 사고가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윌리암스와 네세의 선구적 업적 이후, 그들의 이론을 지지하는 수 많은 증거들이 쌓여갔다. 선진국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비만을 비롯해서 심장병, 당뇨병, 여성의 폐경기 및 노화 그리고 암에 대한 연구에 진화적 사고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대인의 질병에 우리의 진화적 유산이 녹아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화의학과 전통적 서구의학의 갈등관계

하지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의 목적은 질병의 궁극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원인이 무엇이던 간에 일단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다. 궁극인에 대한 이해가 치료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들처럼 풍부한 식단을 가질 수 없었고, 주로 과일을 먹었으며 가끔 고기를 먹었을 것이라는 고고학/인류학적 증거들을 가지고 우리의 식단을 홍적세 식단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식단 변화에 진화의학적 분석이 타당하다 해도, 그것이 당장 비만에 걸려 의사 앞에 앉아 있는 청소년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의학적 분석은 임상치료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예방의학에 가까운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화의학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도 질병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숙주와 기생생물의 군비경쟁을 다루는 전염병학에서 진화의학은 강력한 예측력과 힘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이 폴 이왈드(Paul Ewald)와 같은 전염병 학자가 윌리암스나 네세와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또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에 관한 의사들의 실수는 만약 의사들이 진화의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더라면 방지할 수 있었을 사건이기도 하다. 암의 화학치료에 따른 암세포의 내성도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과 같은 기제로 작동한다. 항생제와 암 치료제는 박테리아와 암세포에게 일종의 선택압으로 작용한다. 그 영역에서는 다윈의 자연선택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특히 취약한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진화의학적 시각을 살펴보는 이유는, 수십 년 간 암 치료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인류가 암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2004년 미국 <포츈 Fortune>지는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졌다"는 제목으로 그 동안의 현대의학에 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이 패배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러한 시각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환자들에게 내뱉지 못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는 암이라는 질병은 환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지독한 고통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환자들이 대체요법을 선택하게 되며, 의사들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환자의 선택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암은 숙명처럼 우리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진화의학적 사고가 암의 발생에 관한 더욱 풍부한 이해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암의 진화발생학에 대한 궁극적인 탐구가 암이라는 질병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진화의학적 사고가 어떻게 치료에 응용될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만, 암과 같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비극적인 질병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으로서 진화의학은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암에 관한 진화의학적 시각을 이곳에서 보여주는 이유는, 현대의 분자생물학자들에게 있어 암 연구라는 분야가 필수불가결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야만 하는 거대과학은 어떻게든 파스퇴르의 사분면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미르라는 꼬마RNA에 대한 연구가 도대체 왜 암이라는 질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이 동시에 암 연구자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진화의학에 대해 조금 더 알아 본 후에, 암의 발생과 진화의학의 관계를 타진하고, 미르와 암의 발생에 관한 현재의 연구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09.25 ⓒ ScienceTimes

암의 진화발생생물학

학문간 이념간의 통섭-경계를 허물다..

개기일식이 보여주는 우리 달의 비밀 지구 하늘에서만 해와 달이 크기 같다 2009년 07월 24일(금)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 중에 어느 게 더 클까? 당연히 태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어린 아이에게 한다면 어떤 답을 얻을까? 해라고 하는 아이도 있고 달이라고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늘에서 보기엔 둘의 크기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하늘에 떠있는 해와 달을 한번 바라보자. 어느 게 더 큰지를 말하기에는 해와 달의 크기가 너무 비슷해 보인다. 

물론 태양과 달의 실제 크기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태양이 크다. 달이 우리의 엄지손톱만 하다면 태양은 지름이 4미터도 넘는 거대한 구이다. 태양은 달보다 400배 크다. 그런데도 우리 하늘에서는 태양과 달의 크기가 같다.

태양계에 166개 있어도 우리 달은 특별하다

이게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일식이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일 때 가능하다. 평생 동안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만 산다면 아마도 한번쯤은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아 아주 오래 산다면 두 번 정도도 가능하다.

어쨌건 개기일식을 관찰하면 달이 태양과 크기가 같아 완전히 덮어버리고 태양의 빛만이 달의 가장자리로 보인다. 태양의 강렬한 빛이 반지에 끼운 다이아몬드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링만으로 보인다.

이렇게 지구 하늘에서 태양과 달의 크기가 같은 이유는 달이 400배 적은 대신 지구에 400배 더 가깝기 때문이다. 뭐 이게 무슨 특별한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태양계 내 행성들 중 하늘에서 태양과 달이 크기가 같게 보이는 건 지구뿐이라면 어떨까.

우리 태양계에서 달이란 건 흔한 존재이다. 태양계를 이루는 8개의 행성은 최소 166개의 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구를 제외하고 다른 행성의 하늘에서는 태양과 달이 크기가 같지 않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달을 가진 지구에만 생명들이 넘쳐난다. 이 모든 게 순전히 우연일까?

달 탄생의 비화

▲ 달이 해를 완전히 삼키는 개기일식일으로 해와 달의 크기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태양계 내 있는 166개의 달 가운데 지구의 유일한 달은 탄생에서도 좀 유별난 데가 있다. 외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갖는 많은 달들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과정을 거쳐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계 행성들처럼 행성 그 자체의 중력에 의해 주변의 물질들이 서로 뭉치면서 생겨났거나, 아니면 나중에 지나가는 작은 천체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끌려와서 달이 되었다. 지구를 제외하고 내행성에서 유일하게 달을 갖고 있는 화성의 경우, 두 개의 달인 데이모스와 포보스 역시 이 가운데 후자의 과정으로 탄생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구의 달은 예외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로 형성되었다고 하기에는 달이 상대적으로 지구에 비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태양계 내 다른 달들과는 다른 탄생비화를 갖고 있는 것이다.

행성 과학자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내놓았다. 태양계가 탄생하고 1억 년쯤 지났을 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파편들이 여전히 내행성을 쌩하고 관통하곤 했다. 이때 화성만한 물체가 지구를 강타했다. 이 충격으로 인해 우리의 행성인 지구는 완전히 달라졌고, 상당한 양의 파편들이 우리 지구에 비해 과대한 달을 형성한 것이다.

지구의 안정한 기후가 달 덕분이라고?

이렇게 거대한 달이 있는 지구에만 생명들이 넘쳐난다. 지구의 생명과 달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싶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거대한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모습이 지금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지구는 자신의 공전궤도를 따라 도는데, 항상 똑같은 공전 궤도를 도는 게 아니라 안쪽과 바깥쪽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 이유는 태양과 같은 다른 천체가 끌어당기는 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은 보이지 않는 중력의 손으로 지구의 요동을 부드럽게 줄여준다.
 
덕분에 지구의 공전에서 불안정한 면을 막아주어 지구의 기후에 급작스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준다. 만약 달이 없었다면 공전궤도의 불안정 때문에 지구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데 훨씬 더 애를 먹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건 태양과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서 물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게 가장 중요한 면이다. 하지만 태양을 가릴 만큼 거대한 달의 역할은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

조석력이 지구에 생명을 낳았다?

2004년 3월, 영국 에든버러대 분자생물학자 리차드 래테 교수는 거대한 달로 인해 나타나는 강한 조석력이 원시 지구에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 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달은 태양계 내 100개도 넘는 다른 달들과는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달은 우리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현재 멀어지는 속도는 1년에 약 3.8센티미터이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달이 훨씬 더 가까워 하늘에서 보면 달이 가장 컸다.

지구에 첫 생명체가 나타난 39억 년 전 지구와 달의 거리는 20만 킬로미터였다. 현재의 38만 킬로미터니까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그 결과 달의 조석력도 지금보다 훨씬 컸다. 밀물과 썰물로 바다와 육지가 교차되는 거리가 수백 킬로미터에 달했다.
 
한편 지구의 자전주기도 지금보다 훨씬 짧아 2~6시간 정도였고 표면 온도는 매우 높았다. 그 결과 밀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웅덩이의 물이 금방 증발하면서 물속의 유기물들이 농축됐다.

래테 교수는 이때 오늘날 DNA나 RNA와 비슷한 스스로 복제가 가능한 분자가 나타나 생명활동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레테 교수는 “DNA 이중가닥이 만들어지더라도 떨어지지 않으면 증식이 불가능해 생명체로 발전하지 못한다”며 “밀물 때는 염도가 희석돼 이중가닥이 떨어지고 썰물로 고립된 웅덩이의 물이 증발해 염도가 높아지면 이중가닥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달로 인한 조석력이 분자의 결합과 해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지구의 달이 수백 개의 달 가운데 그저 하나의 달이 아니란 걸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인간은 우연히도 태양과 달이 크기가 같은 운 좋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9.07.24 ⓒ ScienceTimes



어느 날 갑자기 달이 사라졌다. 어두운 밤하늘에 휘영청 떠 있던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밤하늘에 달이 사라지자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였다. 불을 켜지 않으면 바로 눈앞의 사람도 보지 못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은 사라지고 대형 폭풍이 한반도를 강타한다. 썰물 때 바지를 걷고 낙지를 잡던 진흙 개펄의 낭만도 사라진다. 달이 없는 지구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달 착륙 40년을 맞아 달이 사라진 지구에서 일어날 가상의 상황을 살펴봤다.

○ 사계절 사라진 지구 ‘아주 덥거나 아주 춥거나’

지구는 23.5도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로 자전한다. 지구가 기울어져 도는 이유는 달의 중력이 안정적으로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기울어진 채로 돌기 때문에 태양이 내뿜는 열기는 지구 곳곳에 고르게 퍼지고 사계절이 생긴다.

달이 사라지면 지구의 자전축은 마치 쓰러지기 직전 팽이처럼 요동치게 된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달이 사라질 경우 지구의 자전축 각도는 0∼85도 사이에서 크게 요동친다. 자전축이 바뀌면 지구는 극심한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게 된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바로 서서 돌게 될 경우 적도지방은 지금보다 훨씬 더운 열대로, 극지방은 극심한 혹한지대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적도지방의 뜨거운 공기가 극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슈퍼폭풍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김지현 전 안성천문대장은 “자전축이 흔들리면 한국에서 사계절이 사라지거나 특정 계절이 사라지는 등 극심한 환경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 밀물 썰물 사라지고 개펄도 잃어

달이 사라지면 밀물과 썰물이 적게 일어나거나 사라지면서 개펄이 마른다. 해변에 사는 조개와 낙지 등 어패류도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바닷물의 순환에 변화가 오면서 오염물질도 제대로 정화되지 않는다.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안홍배 교수는 “태양도 밀물과 썰물에 영향을 주지만 달보다 훨씬 힘이 약하다”며 “달이 사라지면 조수간만의 차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메인대 천문학과 닐 코민스 교수는 ‘만일 달이 없다면’이라는 책에서 “달이 사라지면 조수간만의 차가 지금보다 30% 이하로 줄어든다”고 예상했다. 이런 경우 조력발전은 불가능해진다.

지구의 하루는 지금도 10만 년마다 1초씩 길어지고 있다. 달의 인력이 지구의 자전 속도를 점점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이 사라지면 지구의 하루가 25시간이 되는 날은 3억6000만 년 뒤가 아니라 훨씬 늦어질 것이다.

○ 달이 없으면 DNA도 없었을 것

달이 사라지면 생태계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짝짓기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흰발농게나 섬게는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공전주기에 맞춰 짝짓기를 하는데 만일 달이 사라진다면 생식주기에 혼선이 생기게 된다. 한국해양연구원 신경순 책임연구원은 “게의 산란이 줄어 개체수가 적어지면 먹이사슬을 타고 연쇄반응이 일어나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올빼미 등 야행성 동물은 굶어죽을 가능성이 높다. 야행성 동물들은 캄캄한 밤에 눈의 동공을 활짝 열어 미세한 빛을 모아 사물을 인식하는데 달빛마저 사라지면 먹잇감을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눈뜬장님이 되는 셈이다.

애초에 달이 없다면 생명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달의 기조력이 생명체의 뼈대인 유전자(DNA)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 영국의 에든버러대 리처드 레테 교수팀은 썰물 때 웅덩이에 고인 물이 증발하고 남은 유기물에서 DNA와 같은 이중가닥 분자가 만들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천문학 학술지 ‘이카루스’에 2004년 발표했다. 연구팀은 “밀물 때는 같은 전하가 이중가닥 양쪽에 붙어 서로를 밀어내고 염도가 높아지는 썰물 때는 다시 가닥이 붙으면서 새로운 이중가닥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내 몸을 이루는 지구 원소에 대한 소고

 

생명체(사람)을 이루는 중요 원소
---------------------------

    

기호

% (중량)

  산 소

  O

  65.0

  탄소

  C

  18.0

  수소

  H

  10.0

  질소

  N

    3.0

  칼슘

  Ca

    2.0

  

  P

    1.0

  칼륨

  K

    0.35

 

  S

    0.25

  염소

  Cl

    0.15

  나트륨

  Na

    0.15

  마그네슘

  Mg

    0.05

 

  Fe

    0.004

 

 이 밖에 미량원소로  망간(Mn), 구리(Cu),

요오드(I) , 코발트(Co), 아연(Zn) 등이 있다.

 



 

지구에는 92종의 천연원소가 있다. 그 밖에도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원소가 20여종 있지만, 그런건 옆으로 밀쳐두어도 된다.  보다 실감나게 말하자면, 지구상에 흔하게 존재하는 천연원소는 기껏 30종 정도이고, 그중에서도 생물에게 중요한 것은 10여종에 불과하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지각의 50%가 조금 안 될 정도를 차지하는 산소가 가장 흔한 원소인데 그 다음으로  많이 존재하는 원소들에는 아주 뜻밖 일 것이다.  실례로, 두번째로 많이 존재하는 원소가 규소(실리콘)이고, 타이타늄이 10위라는 사실을 짐작하겠는가 ?  지구에 많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유용한 것은 절대 아닌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원소들이 더 많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음이 사실이다.  지구에는 구리보다 세륨이 더 많고, 코발트나 질소보다 네오디뮴과 란타념이 더 많다.  겨우 50위에 들어가는 주석은 프라세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 디스프로슘과 같이 생전 듣지도 또한 듣도 못할 원소들 보다 더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에 얼마나 많은가는 얼마나 쉽게 검출할 수 있는가와도 상관이 없다.  발밑에 있는 것들의 10% 정도를 차지하도록 흔한 원소인 알미늄은 19세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후로도 알미늄은 아주 희귀한 원소로 취급되었다.  미국의회에서는 나라가 크게 발전하고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서 워싱턴 기념비의 꼭대기를 알미늄 박막으로 덮기로 결정할 뻔했고,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왕족들은 공식만찬에서 은그릇 대신에 알미늄 그릇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천연원소의 양은 그 중요성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탄소는 지각의 겨우 0.048%를 구성하는 15위의 원소이지만, 우리는 그런 탄소가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다.  탄소가 다른 원소들과는 구별되는 것은 무차별적이라 할 사교적인 성질 때문인데, 탄소는 원자세계의 핵심구성원으로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원소들과 단단하게 결합해서 정말 튼튼한 분자들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단백질과 DNA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자연의 비밀인 것이다.
 
탄소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생명은 존재 할 수 없을정도로 결정적인데 인간의 경우도 탄소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 200개 중에서 126개는 수소이고, 51개는 산소이며, 탄소는 19개에 불과하다. * 맨위 표 - 생명체(사람)을 이루는 중요 원소 - 에 있는 탄소18%는 중량대비임)

 



 

생명의 탄생이 아니라 생명의 유지에 꼭 필요한 원소들도 있다. 우리는 헤모글로빈을 만들기 위해서 철이 필요한만큼 철이 없으면 우리는 죽게 될 뿐이다.  바이타민 B12 를 만들기 위한 코발트를 필요로 하고, 포타슘(칼륨)과 약간의 소듐(나트륨)은 신경에 좋게 작용한다.  몰리브데넘, 망가니즈, 바나듐도 몸 속의 효소를 만드는데 꼭 필요하며, 아연이 알코올을 산화시켜주는 것도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그런 원소들을 활용하거나 허용하도록 진화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좁다.  셀레늄은 우리 모두에게 필수적이지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 섭취하면 치명적이다. 이쯤에서 염두해야 할 것은, 생물이 어떤 원소들을 필요로하거나 허용하는 정도는 진화의 정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양과 소는 함께 풀을 뜯어 먹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광물질의 양은 전혀 다르다.  현대의 소는 구리가 풍부하게 존재하는 유럽과 아프리카지역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구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양은 구리가 결핍된 소아시아에서 진화했다.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원소의 양이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의 양에 직접 비례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은 법칙이다. 우리는 섭취하는 살코기나 섬유소에 축적되어있는 소량의 희귀원소들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도록 진화했고 어떤 경우에는 그런 원소들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섭취량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않될 것이다.  어느 경우이던 확실한 사실은 과하게 먹으면 죽게 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면 그 성질은 더욱 신기해진다
.  예를 들어서, 산소와 수소는 가장 쉽게 타는 원소들이지만 그 둘을 결합시키면 전혀 타지 않는 물이 된다.  더욱 신기한 결합의 예는 원소들 중에서 가장 불안정한 소듐(나트륨)과 독성이 강한 염소의 경우이다.  순수한 소듐 작은 덩어리를 물에 떨어뜨리면 사람을 죽일 정도의 힘으로 폭발을 한다. 또한 염소는 그 보다 더 지독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표백제처럼 아주 낮은 농도로 사용하면 미생물을 죽이는 데에  유용하지만, 많은 양을 사용하면 치명적이다. ( 염소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했던 여러가지 독가스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더욱이 수영장에서 눈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체는 아주 묽은 경우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류의 고약한 원소를 서로 결합시키면 무엇이 얻어질까 ?  염화소듐(나트륨), 즉 식용 소금이 얻어진다.


대체로 우리는 물에 녹는 등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인체로 흡수되지 않는 원소들은 허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 음식을 담는 그룻이나 수도관에 납을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기 전에 우리는 납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납은 인체에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  로마 사람들은 납이 포함된 물질을 포도주의 향료로 사용했는데 로마인들이 전과는 달리 힘을 잃었던 것은 그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경우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흡입하는 수은이나 카드늄을 비롯한 여러가지 산업오염물질은 말할 것도 없이)납에 대한 우리의 적응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우리는 지구상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들에 대해서는 허용하지 않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에 그런 원소들은 플루토늄의 경우처럼 우리에게 매우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플로토늄에 대한 우리의 허용한계은' 0 '이다.  즉 아무리 조금만 섭취하더라도 죽음에 이른다) 

 

 

아주 간단한 사실을 길게 설명했다.  지구가 기적같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우리가 지구가 제공하는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그저 지구의 환경이 생명에게 적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우리의 생명에게 적당하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랄일이 아니다.  
적당한 크기의 태양,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달, 사교적인 탄소, 엄청난 양의 마그마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훌륭하게 보이는 많은 것들은 단순히 우리가 그것들을 의존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멋지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아무도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겠지만



 

다른 행성에서는 은빛으로 빛나는 수은과 암모니아 구름이 떠다니는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이 있을 수도 있다그런 생물들은 자신들의 행성에서는 충돌하는 판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거나, 엄청난 양의 용암덩어리를 뱉어내지 않는 영원한 정적 속에 존재하게 됨을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먼 곳에서 지구를 찾아오는 방문객은 우리가 아무것과도 반응하려고 하지 않는 질소와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시 곳곳에 소방서를 설치해야만 할 정도로 연소에 집착하는 신소로 만들어진 대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 확실하다.  만에 하나 우리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산소를 호흡하고, 상가와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양족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 지구를 이상향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 음식에는 그들에게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망가니즈, 셀레늄, 아연을 비롯한  여러가지 원소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점심을 대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절대 유쾌한 곳이 아닐 것이다. 

 


평범한 것이라도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한즉, 지구가 생명이 태어나게 된 사건과 조건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특별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건과 조건들은 여전히 특별한 것이었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다른 이유를 찾게 될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Bill Bryson -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 ISBN 89-7291-364-2 ) 발췌

수명 10년 연장 가능한 ‘기적의 영약’ 눈앞에 “남태평양 마오이 섬에서 항균성 약물 발견해”… 英 메일온라인 2009년 07월 20일(월)

▲ 과학자들은 라파마이신이 노화를 방자해 평균 10년 정도의 수명을 연장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명연장의 꿈이 눈 앞에 다가왔다. 
불로장생은 인간의 영원한 꿈이다. 오랫동안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불로장생의 영약(elixir of life)을 통해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단 현대 과학자들만이 아니다. 인간은 늙음의 원인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해 왔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만큼 가장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또 그보다 더 큰 욕심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일이다.

불로초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사람들을 보냈던 중국의 진시황이 그렇다. 성서에 등장하는 다윗 왕도 마찬가지다.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여인 두 명을 품에 안고 잠을 잤다는 그의 이야기는 눈물겨울 정도다.

손오공의 서유기에는 영생불사의 옥황상제만 먹는 천도복숭아가 등장한다.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하는 신선(神仙)들의 양생법(養生法)을 찾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새로운 호흡법이 생기고 명상법이 생겼다. 양생에 좋다는 갖가지 잊혀졌던 음식들이 다시 매스컴을 타고 등장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만이 먹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음식 암브로시아를 훔치려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탄탈로스의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꿈을 이룬 사람은 없다. 또한 불로장생에 이르는 이렇다 할 진척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노화를 방지해 인간의 수명 (life span)을 적어도 10년 이상 연장시키는 화학 성분을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발견해 개발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인 생명연장의 꿈에 한 발 다가섰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라파마이신, 38%까지 생명연장 가능

영국의 메일온라인(Mail online)은 최근 “Scientists discover Easter Island ‘fountain of youth’ drug that can extend life by ten years. 과학자들이 이스터 섬에서 생명을 10년 연장 연장할 수 있는 ‘젊음의 샘’의 묘약을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신문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발견한 젊음의 묘약의 정체는 라파마이신(rapamycin)으로 노화방지(anti-aging)에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라파마이신은 남태평양의 화산섬인 이곳 흙에서 기생하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항균성 약물이다.

텍사스 연구팀은 라파마이신을 생후 20개월 된 생쥐에게 투여한 결과 수컷은 기대 수명의 28%, 암컷은 38%의 연장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쥐에서 볼 때 생후 20개월은 인간의 60세에 해당하는 나이다.

지금까지 쥐들의 최장 수명은 1천94일이었는데 이 성분을 투약한 결과 1천245일로 연장됐다. 수컷의 생명은 1천78일에서 1천179일로 늘어났다. 이 실험에서 놀라운 것은 실험대상이 인간의 중년이나 노년층에 해당하는 쥐라는 점이다.

“중년과 노년층도 가능해”

미국 텍사스 대학 교수로 이 연구를 이끈 앨런 리처드슨(Arlan Richardson) 박사도 연구결과에 놀라워했다. 그는 “내 생전에 이런 영약이 발견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라파마이신은 앞으로 인간의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켜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라파마이신은 이미 심장을 비롯해 장기를 이식할 환자의 면역시스템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리처드슨 박사는 텍사스 대학의 바버숍 장수와 노화 연구소(Barbershop Institute for Longevity and Aging) 소장이기도 하다.

리처드슨 박사는 “과학자들은 향후 10년 안에 젊음의 묘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젊음의 묘약이 노화를 늦춘다면 인간은 100년 동안 젊음을 유지하며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최신호에 실렸다.

마오이가 숨쉬는 신비의 섬

▲ 거대한 석상 마오이로 유명한 신비속에 감춰진 이스터 섬. 부활을 뜻하는 이 섬에 있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불로장생의 묘약이 개발된다고 한다. 
한편 부활의 섬을 뜻하는 이스터 섬은 칠레에서 2천 마일 정도 떨어져 내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중 하나로 거대 석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동안 미스터리와 신비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던 거대 석상인 마오이(maoi)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 섬이다.

1772년 부활절에 이 섬을 발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이 섬을 정복한 네덜란드 탐험가들은 너무 거대한 인간들이 이 섬에 살고 있다며 두려워 상륙을 꺼렸다고 한다. 물론 멀리서 본 인간 모습의 석상들 때문이다. 또 신비한 것은 석상들 모두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사라진 마오이 문명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평균 14톤에 이르는 거대한 돌을 어떻게 움직여 13피트에 이르는 석상들을 세울 수 있었는지 신비에 싸여 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태평양 한 가운데 섬에서 이처럼 거대한 거석문화의 문명이 발전하려면 수많은 인구를 거느린 왕조(王朝)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왕조가 어떻게 멸망했으며, 또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사라졌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마오이가 숨쉬는 신비의 섬 이스터에서 인간에게 불로장생의 젊음의 묘약이 개발되어 생명연장의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9.07.20 ⓒ ScienceTimes

“IQ, 그것은 패배자들이 즐겨 쓰는 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27) 스티븐 호킹 ⑩ 2009년 07월 17일(금)

과학자의 명언 여러분은 IQ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검사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아, 나는 앞으로 가망이 없어!”라며 상심에 젖거나 공부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결코 하지 않겠지요? IQ가 어떤 잣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습니다.

▲ 호킹 박사는 새로운 블랙홀 이론을 통해 우주물리학을 대중화시키는데 앞장섰다.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TV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의과대학을 들어가라는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수학의 길을 선택하려다 물리학을 전공하게 된 그도 학교성적으로 볼 때 우수한 학생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평범했다고 할까요? 그러나 호기심과 의문을 풀려는 노력은 대단했죠.

그래서 학문에는 자기만의 집착(執着)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과학의 길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한 아집(我執) 속에서 남들이 결코 끼어들 수 없는,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감에 젖는 일이 바로 과학자의 보람입니다.

2004년 12월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기자이자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데보라 솔로몬(Deborah Solomon)이 호킹 박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우주물리학에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천재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IQ는 얼마 정도 되는지요?”

그러자 호킹 박사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I have no idea. People who boast about their IQ are losers. 잘 모릅니다. 저는 IQ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패배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이야기죠?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지체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미있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그러자 호킹 박사가 다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대답합니다. “Life would be tragic if it weren’t funny. 만약 재미가 없다면 인생은 비극이 아니겠어요?” 재미가 없다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재미있게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죠.

“재미가 없다면 인생은 비극이죠”

과학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비단 호킹 박사의 전공인 우주물리학뿐만이 아닙니다. 생명과학, 나노 등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터져버린 기관차의 질주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단순히 우리에게 편의를 가져다 줄 것으로만 생각합니까? 인간유전자 해독은요? 주민등록번호만으로도 여러분에 대한 모든 신상정보를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의 생물학적 비밀까지 담겨 있는 유전자를 다른 사람이 해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셨나요? “나는 집안에 유전병이 없으니까 떳떳하고, 그래서 좀 유출된다 해도 큰 걱정은 없어!”라며 안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호킹 박사가 여기에서 염려하는 것이 그런 종류는 아닙니다. 그러나 과학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과거 인류의 생존에 커다란 이익을 주었던 과학이 인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통일장이론은 물리학의 과제

▲ 광활한 우주. 우주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가? 바로 물리학이 풀어야 할 숙제다. 
현대 물리학의 과제는 자연의 법칙을 주도하는 여러 가지 힘들(forces)을 하나로 설명하려는 통일장 이론에 있습니다. 물리학의 희망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킹 박사 같은 경우는 양자역학을 상대성이론에 접목시킨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 학자죠.

“It has certainly been true in the past that what we call intelligence and scientific discovery have conveyed a survival advantage. It is not so clear that this is still the case: our scientific discoveries may well destroy us all, and even if they don’t, a complete unified theory may not make much difference to our chances of survival.

♦convey: <물건, 승객 등을> 나르다, 운반하다(transport) convey drugs to a prison inmate 재소자에게 마약을 나르다. <소식, 통신, 용건을> 전달하다(transmit), 알리다(communicate). <소리•열 등을> 전하다, <전염병을> 옮기다. convey the expression of grief to a person ~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다. <재산을> 양도하다(transfer) convey one’s property to a person ~에게 재산을 양도하다.

♦unified theory: (물리학)통일장 이론. 정확하게는 unified theory of field라고 한다.

소위 우리가 지식과 과학적 발견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과거에는 인류의 생존에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지금도 여전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의 과학적 발견들은 우리 모두를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또 설사 다 파괴하지 않는다 해도 완전한 통일된 이론(통일장이론)은 인류의 생존기회와는 별 상관이 없다”

뒷부분이 약간 이상합니다. 원자폭탄과 같은 핵무기를 비롯해 인간이 앞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많은 미생물체들이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새로 떠오르는 나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통일장이론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목을 매다시피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는 과학적 발견의 하나인 이 이론이 인류를 위험에서 구해주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However, provided the universe has evolved in a regular way, we might expect that the reasoning abilities that natural selection has given us would be valid also in our search for a complete unified theory, and so would not lead us to the wrong conclusions.

♦provided: ~을 조건으로 하여(that...), 만일 …이라면(if). I will come provided (that) I am well enough. 건강이 괜찮으면 오겠습니다.

♦valid: 근거가 확실한, 정확한, 정당[타당]한 a valid conclusion 타당한 결론. 유효한, 효과적인(반대. invalid) a valid remedy 효과적인 치료. a valid contract 합법적인 계약

그러나 우주가 일정한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면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준 탐구능력은 완전한 통일장이론을 찾아내는 데도 유효하게 사용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통일장이론을 발견하게 될 것”

이처럼 통일장이론은 물리학의 과제입니다. 사물의 이치와 자연의 법칙을 캐는 것이 바로 물리학의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통일장이론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더 이야기를 들어보죠.

“Even if there is only one possible unified theory, it is just a set of rules and equations. What is it that breathes fire into the equations and makes a universe for them to describe? The usual approach of science of constructing a mathematical model cannot answer the questions of why there should be a universe for the model to describe. Why does the universe go to all the bother of existing?

♦equation: 동등하게 함, 균등화, 평형 상태. 방정식, 등식, 오차. chemical equation 화학 방정식 equation of the first (second) degree 1(2)차 방정식 simultaneous equations 연립 방정식 identical equation 항등식. personal equation (관측상의) 개인 오차, the equation of the equinoxes 춘분•추분의 주야 시차(時差)

설사 오직 하나의 가능한 통일장이론만이 있다 해도 그것은 결국 법칙과 방정식의 한 세트에 불과하다. 불을 방정식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방정식이 묘사하는 대로 우주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수학적 모델을 통한 통상적인 과학적 접근방법으로는 그 모델이 묘사하는 우주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왜 우주는 모든 것을 성가시게 하는가?”

“통일장이론은 수학적 모델만 갖고는 불가능”

▲ 통일장이론은 자연의 법칙을 이루는 힘들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좀 어려운 말이죠? 쉽게 가자면 불을 방정식으로 만든다고 할 때 수학만 갖고는 안 되는 것처럼 우주의 법칙을 설명하는 데는 단순한 수학적 모델 외에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래서 우주(법칙)는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통일장이론이 중요한 만큼 한마디만 더 들어보죠. 그가 앞으로 과학자들이 발견하게 될 통일장이론에 대해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If we do discover a complete theory, it should in time be understandable in broad principle by everyone, not just a few scientists. Then we shall all, philosophers, scientists, and just ordinary people, be able to take part in the discussion of the question of why it is that we and the universe exist. If we find the answer to that, it would be the ultimate triumph of human reason — for then we would know the mind of God.

만약 우리가 완전한 이론(통일장이론)을 발견한다면 그 이론은 넓은 의미에서 소수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라야 한다. 우리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자, 그리고 일반 사람들도 우리와 우주의 존재 이유를 둘러싼 의문에 대한 논쟁에 다 함께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논쟁 끝에) 그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장이론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있어야”

정말 재미있는 결론입니다. 그야말로 호킹 박사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그렇게 끙끙 앓고 있는 통일장이론이 일반 사람들도 알 수 있을 정도 쉬울 수 있을까요? 통일장이론은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발명은 아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거지만 발견은 길 가다가 지갑 줍는 것처럼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호킹 박사는 혹시 과학자들이 애타게 찾는 통일장이론이 우리 곁에 있었는데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통일장이론은 자연과 우주의 법칙,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법칙과 섭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귀결(歸結)시키면 간단하고 좋지 않느냐고요? 사실 통일장이론을 신과 결부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앞서 우리가 보았지만 호킹 박사는 신 또는 신의 뜻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종교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그가 우주 물리학에서 생각하는 신과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그는 교회도 나가지 않는 무신론자냐고요?

“I think computer viruses should count as life. I think it says something about human nature that the only form of life we have created so far is purely destructive. We’ve created life in our own image.

나는 컴퓨터 바이러스도 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이 이제까지 유일하게 창조한 유일한 생명체가 대단히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이미지로 생명체를 만들었다.”

“인간이 파괴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컴퓨터 바이러스도 파괴적”

▲ 호킹 박사는 인간이 유일하게 창조한 생명체 컴퓨터 바이러스는 창조주 인간을 닮아 파괴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비유가 섞인 이야기로 포악한 인간성을 꼬집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컴퓨터를 공격해서 심지어 마비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공해에 살고 있습니다. 호킹 박사의 주장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었듯이 인간 또한 인간의 형상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창조주도 잔인하다는 건가요? 그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달 전 호킹 박사가 상당히 위독해서 병원으로 실려 간 후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1942년생이니까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는 67세인가요? 대지 위에 숨쉬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과학자입니다. 호킹 박사를 마무리 하면서 그 분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다음 회부터는 진화생물학자이자 무신론자로 요즘 서점가를 달구고 있는 영국의 찰스 도킨스 교수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9.07.17 ⓒ ScienceTimes

《최근 ‘물폭탄 장마’가 전국을 휩쓸었다. 장마전선이 다시 북상하고 있어 주말엔 또 한번의 물난리가 예상된다. 장마 초기에 장대비가 내릴 수는 있지만 점차 강수량이 줄게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는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며 지역만 바뀔 뿐 비의 양은 줄지 않고 있다. 수증기가 계속 장마전선에 유입됐다는 의미다. 과연 이번 ‘물폭탄 장마’의 원인은 무엇일까.》




○ 지구온난화로 폭우성 장마 심해져

기상청은 이번 폭우성 장마의 엄청난 강수량이 평소보다 강해진 북태평양고기압과 대만 동쪽 해안에서 발생한 초기 열대성저기압(태풍) 때문으로 보고 있다. 먼저 지구온난화로 수증기가 많은 북태평양고기압이 커지며 한반도에 많은 비를 뿌렸다. 특히 13일 중국 남부에 상륙한 태풍이 일반 저기압으로 바뀌면서 많은 양의 수증기를 쏟아냈고 이것이 장마전선에 더해지며 특히 수도권에 폭우를 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남부의 수증기가 어떻게 장마전선에 더해졌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원래 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수증기는 상승기류를 타고 주변으로 흩어진다. 무엇이 평소의 공기 흐름을 바꿨을까. 일부에선 엘니뇨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기상청 기후예측과 윤원태 과장은 “동태평양에서 엘니뇨 초기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동·서태평양의 온도균형이 깨지면서 공기 순환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엘니뇨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중국 남부에서 만들어진 대량의 수증기가 장마전선을 타고 한반도까지 유입됐다는 해석이다.

이번과 같은 폭우성 장마가 앞으로 더 심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산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 하경자 교수는 지난해 기후 분야 국제학술지인 ‘아시아태평양 대기과학학회지’에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폭우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지표가 건조해지고, 바다에선 증발이 매우 심하게 일어난다. 이때 발생한 대량의 수증기가 연안이나 육지에 폭우를 쏟을 수 있다는 것이다.

○ 8월 호우가 더 위험할 수도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 교수는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에 포함된 수증기의 양도 늘어난다”면서 “반드시 온난화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장마 때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 것은 분명 지구의 기후시스템이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안순일 교수는 지난해 1월 미국 기후학회지에 ‘지구온난화에 따른 엘니뇨의 변동메커니즘 규명’이라는 논문에서 “앞으로 엘니뇨가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와 엘니뇨가 맞물려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변동이 올 수 있다는 예상이다.

일부에서는 앞으로 7월 장마 못지않게 8월의 국지성 호우가 한반도를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경자 교수는 “일반적으로 장마가 있는 7월에 폭우를 많이 우려하지만 1980년을 기준으로 8월 강수량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 장마철인 7월보다 8월에 강수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특히 서해안 남해안 지역이 위험할 것으로 추정됐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상 현상이 워낙 복잡해 올해 현상만 보고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상청 기후과학국 박정규 국장은 “지구온난화나 엘니뇨의 영향이 없어도 올해 수준의 비는 내릴 수 있다”며 “이번 사례를 포함해 꾸준히 기상 현상을 관찰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잘 생긴 부모는 딸을 많이 낳아” 번식경쟁에서 꽃미남보다 잘 생긴 딸이 더 유리하기 때문 2009년 07월 03일(금)

“잘생긴 부모는 딸 많이 낳고, 난봉꾼은 아들 많이 낳는다?"

"그렇다. 자식 번식경쟁에서 꽃미남보다 잘 생긴 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이색적인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

▲ 잘 생긴 꽃미남보다 잘 생긴 딸이 번식경쟁에서 훨씬 유리하다. 진화 생물학적으로 딸이 더 선호의 대상이 된다. 잘 생긴 부모들은 잘 딸 출산률이 12%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부모의 외모가 매력적일수록 딸을 더 많이 낳고 부모의 사회적 성적(socio-sexual) 경향이 자유 분방할수록 아들을 더 많이 낳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출신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경영학과 교수로 진화심리학이 전공인 카나자와 사토시(金沢聰) 교수와 헝가리 외트뵈스대학 동물학과의 페터 아파리(Peter Apari) 교수는 최근 ‘인간 생물학 연대기(Annals of Human Biology)’ 5월호에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인간생물학학회(The Society for the Study of Human Biology)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이 학술지 3번째 호(5월~6월)에서 두 교수는 외모가 잘 생긴 부모의 경우 딸을 낳을 확률이 10% 이상 높다고 주장했다.

두 교수가 제출한 논문의 제목은 “Scio-sexually unrestricted parents have more sons: A further application of the generalized Trivers-Williard hyphothesis(gTWH)"으로 320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매력적인 부모는 12% 이상 딸을 더 낳아"

이들은 1994년판 미국 전국 인구사회 조사(US General Social Surveys) 자료와 전국 청소년건강(National Longitudinal Study of Adolescent Health) 조사자료 등에 나타난 바를 분석했다.

TWH는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드리버스(Robert Thrivers)와 윌라드(Dan Willard)가 주장한 이론으로 자손의 성 결정(sex allocation)에 부모의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가설이다.

▲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의 진화심리학자 카나자와 사토시 교수는 진화이론을 심리학에 적용시킨 학자로 이름 높다. 특히 성비를 결정하는데 부모의 조건이 크다고 주장한다. 
카나자와 교수가 이 가설을 일반화시켰다고 해서 gTWH라는 말이 나왔다. 부모에게 유리한 환경이 자식에게도 유리할 경우 성비(sex ratio)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키가 큰 경우는 아들을 낳을 확률이 많다는 등이 내용이다. 키가 큰 딸보다 키 큰 아들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모의 외모가 매력적인 부부일수록 첫 아이를 딸로 낳을 확률은 56%, 아들을 낳을 확률은 44%로, 딸 확률이 12% 포인트 더 높았다. 매력적이란 얼굴과 몸매 등 신체적으로 우수한다는 것 외에 자신을 잘 가꾸고 성적, 사회적으로 통제력이 강한 경우도 포함된다.

반대로 성적 사회적(socio-sexual)으로 분방한 사람일수록 첫 아이를 아들로 낳을 확률은 딸을 낳을 확률보다 19% 포인트가 높았다.

성적 사회적 분방이라는 것은 부모의 섹스 파트너의 수, 섹스의 횟수, 섹스에 도덕적 의무의 결핍 등을 정도에 따라 논문작성자가 평가한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섹스에 대해 너무 무질서하고 사회적으로도 방탕하다는 지적을 받는 부모의 경우 아들을 낳을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꽃미남, 무능한 남편 될 확률 훨씬 높아”

이러한 결과에 대해 카나자와 교수는 “외모가 아름다운 부모는 역시 매력적인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왕이면 아름다운 외모로 더욱 자식 번식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딸을 낳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꽃미남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카나자와 교수는 “잘 생긴 남자의 경우 데이트 상대로는 인기가 높지만 안정된 가정을 꾸릴 배우자로서는 인기가 없고, 여자들의 꼬임 때문에 무책임한 남편이 되는 확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부모는 유전학적으로 역시 자유분방한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왕 자유분방한 자식을 낳을 바에야 아들을 선택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은 남편의 질투심 때문에 폭력 피해자가 되기 쉽다. 또한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남성은 ▲일찍 성행위를 하며 ▲동시에 2명 이상의 섹스 상대를 가지며 ▲결혼과 사회생활 등에는 책임을 덜 지는 특성을 갖는다.

자유분방한 여성은 폭력피해자 되기 쉬워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카나자와 교수는 “예쁜 여자는 예쁜 딸을 낳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여자는 점점 더 예뻐지는 경향을 가지며,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남자는 성실한 남편보다 자식의 숫자가 훨씬 많은 이점을 갖는다”고 해석했다.

콩 싶은 곳에 콩 나고 팥 심은 곳에 팥 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카나자와 교수 또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한마디로 마돈나는 마돈나를 낳고 창녀는 창녀를 낳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녀가 미녀를 낳는 것이, 그리고 난봉꾼 남자가 아들을 낳는 것이 진화론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것이다.

▲ 매력적인 부모는 매력적인 딸을 낳는 게 훨씬 경쟁에서 유리하다. 출산률에서도 여자가 높다. 
진화 심리학은 심리학의 한 분야로 인간의 두뇌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진화의 목표를 연구함으로써 인간 행태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학문이다.

인간의 두뇌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을 자손번식에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연 선택, 또는 자연 도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그램화돼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 아들을 많이 낳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 남자들에게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미인이나 잘 생긴 사람들이 딸을 많이 낳는 것도 아름다움이 여성들에게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같은 사실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특히 왕실에서 아들이 많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미국에서 첫째 아이로 딸을 낳는 비율이 평균 48%인데 비해 잘 생긴 미국인들의 경우는 그 비율이 56%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그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9.07.03 ⓒ ScienceTimes

비만의 원인 "생활습관은 현대, 유전자는 구석기" 다윈탄생 200주년, 진화의학을 논하다 2009년 07월 06일(월)

다윈 탄생 200주년이다. 모든 생명체가 한 가지 공통조상으로부터 왔다고 추론해 기독교도들의 분노를 샀던 <종의 기원> 출간은 150년이 지났다. 지동설이 천천히 사실로 받아들여졌듯이 진화론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종교, 철학, 사회학 등 제반 학문에 영향을 미쳐 왔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 7월 2-3일 개최된 연합학술대회 <다윈진화론과 인간-과학-철학>에는 국내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들이 총 11세션, 40회 발표와 4회의 특별강연, 열린 토론회로 진화론에 관한 폭넓은 학술 과제를 교류했다. 첫날 앤시홀에서 열린 '진화론과 현대의학'을 찾아갔다.

▲ 다윈탄생 200주년 기념 연합학술대회 '진화론과 현대의학' 세션 

진화의학에 따르면 우리 몸은 설계를 통해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세포 생물에서부터 진화해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전제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진화의학은 현대의학을 수정하고 지평을 넓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비만의 원인 "생활습관은 현대, 유전자는 구석기"

국립암센터의 서홍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의료계에서 가장 많은 이슈가 되는 '비만'이 인류의 진화와 직결된 문제다. 2002년 WHO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0억명이 과체중, 3억명이 비만에 달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며 수치는 계속 증가해 2015년에는 과체중이 15억명에 달할 전망이다.

당뇨병, 고지혈증, 골관절염, 암 등 질병 발생률이 높아지는 원인인 비만은 인류가 5백만여 년 지속된 구석기 시대의 유전자를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뛰어다니고 6-7시간 굶은 채로 지내며, 사과· 배 등의 열매도 당도가 낮고 알이 작던 시대였다.

지방, 설탕, 소금을 갈구하던 구석기 시대의 생활습관은 당 물질이 충분하다 못해 남아도는 현대에도 이어진다. 하루종일 앉아서 컴퓨터나 TV를 보는 현대인 몸에 에너지 절약형 유전자가 남아 있다. 에너지 섭취와 소모의 불균형이 비만을 낳고, 해소를 위해 '구석기인을 흉내내며' 강변 산책을 하기도 한다.

세균도 진화한다, 진화론이 넓힌 의학 지평

또 다른 흥미로운 화두는 '스트레스'이다. 해고, 이별, 불화 등의 스트레스 인자는 교감신경계와 부신피질을 자극하여 활성화하고, 심박수 증가, 혈압 상승, 호흡 증가, 소화기능 저하, 근긴장도 증가, 입마름, 발한, 수족냉증, 빈뇨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그런데 급성 스트레스의 반응이 구석기인의 체질에 맞춰져 있어 문제다. 싸우거나 달아나기 위해 근육이 긴장하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가 하면, 동공이 커지고 모든 감각기관이 예민해진다. 직장 상사를 때려눕힐 수 없는 현대인은 적절히 스트레스를 풀지 못한 채 피로, 불면증, 우울 등의 질병 전단계로 나아간다는 진단이다.

제주정신신경과의 박지욱 교수는 인류의 항생제 개발에 맞서온 세균이야말로 진화의 승자라는 점을 짚었다. 1928년 플레밍이 푸른 곰팡이에서 분리해낸 페니실린이 공정과정의 발달로 대량생산되었다. 임질과 매독 등을 단번에 해결하는 OTC(처방 없이 복용) 약물의 황금 시대는, 1970년대 중반 세균이 저항성을 보이며 끝났다.

다윈의학은 학문적 초기에 머물러 있지만 이처럼 새로운 문제로 현대의학의 전환점을 제시한다. 4회의 주제발표 이후 토론을 맡은 연세대학교 예병일 교수는 피마의 인디언들이 50년 만에 당뇨병이 크게 증가했던 점을 들어 진화의학을 지지했다. 그러나 일견 타당한 이론을 보이는 진화의학이 미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주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의학계의 진지한 관심이 필요함을 당부했다.

홍주선 객원기자 | js_alissa@hanmail.net

저작권자 2009.07.06 ⓒ ScienceTimes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 '절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뭉크 2009년 07월 07일(화)

명화산책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유언에 의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뭉크는 전 생애를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살았지만 말년의 28년 동안은 오슬로 근처에서 보냈다. 고향은 뭉크 인생의 중심 무대다.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는 “내 그림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소묘와 습작들도 전시할 미술관이 필요합니다”라며 유산을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세워지기를 바랐다. 그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전 재산과 1천100점의 회화, 4천500점의 수채와 소묘, 1만8천 점의 판화, 6점의 조각을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오슬로 시는 뭉크 사후 2년 후부터 미술관 설립을 추진해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 되는 해에 개관했다. 오슬로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초기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뭉크의 <절규>다.

▲ <절규>--1893년, 마분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91*73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 이 작품은 뭉크 미술관의 자랑으로, <절규>를 보기 위해 오슬로는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뭉크는 이 작품을 유화나 석판화, 동판화 등등 다양한 재료를 써서 50여 점을 남겼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고 다리 난간 위의 인물은 공포에 귀를 막고 있고 있지만 뒤에 있는 인물들은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뭉크는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선으로 절규를 표현했다. 또한 그 뒤에 정상적인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절규하고 있는 인물을 강조했다. 화면 위의 붉은 구름은 마치 하늘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일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포를 나타내고 있다. 깊은 절망에 인간은 절규하지만 자연은 핏빛 하늘 너머로 메아리를 던질 뿐 아무런 위안을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해 “친구들과 오슬로 교외를 산책 나갔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피로를 느껴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핏빛과 불의 혓바닥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두려움에 떨며 서 있었다. 그때 난 자연을 관통하는 끝없는 절규를 들었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렀다” 라고 1862년 일기에 썼다.

뭉크에게 죽음은 그의 예술세계의 기본 색조를 이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출발한다. 5살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14살 때에는 사랑했던 누나 역시 폐결핵으로 죽는 것을 경험했다. 따라서 뭉크는 가족들의 건상상태에 민감했는데 남동생과 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유년 시절에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뭉크의 생애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사랑을 승화시켜 표현한 <마돈나>

뭉크는 삶의 시기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그리는 연작을 제작하는데 그 작품이 <생의 프리즈>다. 뭉크의 경험을 담은 작품 중에 사랑을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이 <마돈나>다. 이 작품은 뭉크와 삼각관계였던 연인 다그니 유을이 모델이다.

▲ <마돈나>--1894〜1895년, 캔버스에 유채, 91*70 

뭉크는 유명한 ‘뭉크 스캔들(베를린에서 열린 뭉크 개인전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 사건이 여론에 비화되면서 개인전이 폐쇄되는 사건이 일어난다)’을 계기로 베를린에 머물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뭉크는 예술가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고향 후배인 다그니 유을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뭉크의 사랑을 거부하고 건축가와 결혼한다. 그녀와의 사랑 경험은 <질투>, <흡혈귀> 등 작품으로 탄생한다. 하지만 베를린에 머무는 삼 년 동안이 뭉크의 생애 동안 가장 충실한 열매를 맺은 생산적인 시기였다. 동시에 문학적 철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이기도 했다.

뭉크는 여자를 세 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하나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마지막으로 체념하는 여인으로 보았다. 뭉크에게 있어서 여자의 헌신적인 사랑은 수태를 하는 여성을 뜻한다. 이러한 뭉크의 여성관의 모티브가 되어 나온 작품이 <마돈나>다. <마돈나>는 사랑과 개화라는 주제로 전시되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옷을 벗은 여자의 허리 아래쪽이 형체도 없이 흐르는 색채 속으로 사라지고 오른쪽 팔은 머리 뒤에 있고 왼쪽 팔은 허리 뒤로 묶인 것처럼 두르고 있다. 이런 역동적인 자세는 가슴과 복부를 내밀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작품 속 모자의 강렬한 색은 풍만한 육체와 자유분방한 머리카락의 곡선과 어울러져 있다.

모자보다 큰 후광은 까만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어 색의 대비를 주고 있으며 여자는 깨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잠들어 있는 듯 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뭉크는 여자의 신체 각 부분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화시켜서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다.

뭉크는 이 그림 속에서 삶과 죽음을 직접 연결하는 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로 남겼는데 “당신의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죽음과 삶은 손을 잡고 수천의 죽음과 수천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가 지금도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1903년 <사랑의 개화와 죽음>의 주제로 라이프치히에 전시되었는데 그 이후 뭉크는 다섯 가지 버전으로 제작했다.

말년에 나치가 독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뭉크의 작품을 ‘퇴폐예술’로 낙인 찍어 몰수하지만 뭉크는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bluep60@hanmail.net

저작권자 2009.07.07 ⓒ ScienceTimes

향후 반드시 확보하지 못하면 나라의 존망(存亡)이 불투명해질 수 있는 첨단 기술 14개가 선정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최근 발표한 ‘미래 성장을 견인할 국가 존망 기술의 발굴’ 보고서에서 ‘지식’ ‘녹색성장’ ‘생명 건강’ 3대 분야 14개 기술을 연구개발(R&D) 투자집중기술로 선정했다.

지식 분야에서는 차세대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가상현실 등 6개 기술이, 녹색성장 분야에서는 차세대 고효율 연료전지와 수소에너지 생산과 저장 등 5개 기술, 생명 건강 분야에서는 재생의료와 뇌질환 예방과 치료 등 3개 기술이 선정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14개 기술은 현재와 미래의 경제성장을 주도하기 때문에 5~10년 안에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KISTEP은 14개 기술에 효율적으로 R&D 투자를 하기 위한 전략도 제시했다. 지식 분야 기술은 2013년 전후로 상용화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장과 기술개발을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녹색성장과 생명 건강 분야의 일부 기술은 2016년 이후에 실현되기 때문에 기술개발과 원천 기술 확보를 중심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세홍 KISTEP 연구위원은 “각 분야별로 첨단 기술 동향을 살펴 5~10년 뒤를 예측하는 업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연구 네트워크가 있어야 미래의 기술 수요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온난화로 양(羊)의 몸집이 줄었다! CNN, “스코틀랜드 산양 무게 25년 사이 5%나 감소” 2009년 07월 09일(목)

▲ 스코틀랜드에서 멀리 떨어진 허타 섬에서 사는 야생 양 소아이. 온난화로 지난 24년간 몸집의 크기가 5%정도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화제다. 
지구온난화가 고등동물의 크기를 작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불과 30년도 채 안된 시간에 말이다. 진화는 수십만 년에 걸쳐 진행된다. 그런데 진화이론을 무색하게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 사는 야생 양의 무게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난 24년 동안 평균 5%가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관련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진화적인 차원에서 볼 때 양이 혹독하고 추운 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집이 크고 살이 쪄야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몸무게가 줄면서 몸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CNN방송은 최근 인터넷판 뉴스에서 “Could a warming world lead to pocket –sized sheep. 온난화는 호주머니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양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 방송은 과학자의 연구 논문을 인용, “온난화로 겨울의 온도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지구온난화가 이제 진화라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부채질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영국 임피어리얼 대학(Imperial College London) 연구진은 사이언스지 최신호에 실린 연구논문에서 “세인트 킬다(St. Kilda) 군도 가운데 하나인 허타(Hirta) 섬에 사는 소아이(Soay) 양의 몸집이 지난 1985년 이후 이처럼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하면서 “이는 부분적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성장률 저하가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겨울철에 사나운 폭풍이 몰아치는 혹독한 환경의 이 섬에서는 몸집이 큰 양일수록 작은 양보다 생존율이 높아 결국 무리 대부분이 큰 몸집을 갖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때문에 연구진은 이 지역 양들의 몸집이 줄어들고 있는 데 의구심을 갖고 1985년부터 양들의 변화와 환경 변화를 관찰했다.

진화론적 차원에서 볼 때는 모순

그러나 연구 결과 특히 겨울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이 섬의 양들이 전처럼 빨리 자라지 않고 전 같으면 혹독한 겨울 날씨를 견디지 못해 죽었을 작은 양들이 생존해 성장하고 번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양의 몸집 크기는 유전되기 때문에 이들 작은 양의 생존과 번식이 무리 전체의 평균 크기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새끼를 낳지 못하고 죽던 어린 양들이 번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진은 어느 정도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몸 크기가 기후변화에 의해 눈에 띌 정도로 변화한 것은 진화와 환경 모두가 변화의 원인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화의 요인인 적응(response)과 환경적 변화라는 두 가지 이유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나 두 요인을 분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될 생존경쟁에서 몸집이 큰 쪽과 작은 쪽 가운데 누가 결국 패자가 되고 승자로 남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가 될 것인가?

▲ 진화는 수백만년에 걸쳐 일어나는 일종의 생물의 역사다. 그러나 최근 환경과 진화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야생양 사오이 경우가 그렇다. 
이 연구를 이끈 임페리얼 대학의 팀 카울선(Tim Coulson) 교수는 “고전적인 진화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당연히 몸집이 커져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왜냐하면 몸집이 큰 양이 혹독한 기후에서 생존하기 쉽고, 또한 번식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몸집이 큰 양이 낳은 후손 역시 부모를 따라 몸집이 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지만 이 곳 섬에서 색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연구는 그동안 생물학자들을 괴롭혀 온 문제, 다시 말해서 왜 예상(predictions)과 실제상황(observation)이 같지 않느냐는 패러독스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됐다”고 카울선 교수는 말했다.

“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생태학적인 것과 진화적인 과정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intricately intertwined)고 이해했다. 그러나 이제 각자의 역할(contribution)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과연 지구온난화가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양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이르다.” 카울선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9.07.09 ⓒ ScienceTimes

인류의 미래,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 지구와 인류의 현안...대국민 이해가 중요 2009년 07월 10일(금)

<사이언스타임즈>와 <국방일보>는 6월 29일 MOU를 맺고 콘텐츠를 제휴하기로 했다. 이로써 <사이언스타임즈>의 과학과 창의교육 콘텐츠가 <국방일보>를 통해 70만 국군장병들에게 보급되며, <사이언스타임즈>는 <국방일보>의 우수한 콘텐츠를 활용함으로써 국방 관련 과학지식을 유기적으로 활용하게 됐다. <국방일보>에 실릴 글로벌 이슈에 대한 기획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註]

에메랄드빛 바다와 야자수가 하얀 모래와 푸른 하늘 사이에 펼쳐진 인기 신혼여행지, 몰디브 섬. 고민거리 하나 없을 것 같은 이곳은 요즘 경제 한파로 인한 관광객 감소나 경쟁 관광지의 선전이 아닌 해수면 상승으로 걱정하고 있다. 북극의 빙산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평양의 산호섬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생명의 다양성>에서 ‘열대우림의 파괴로 1년에 최소한 2만여 종의 동식물이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멸종의 역사>를 펴낸 동물학자 리처드 엘리스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생물 가운데 99%가 멸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간의 차례도 머지않을 거라는 얘기다.

믿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여기저기서 수상스러운 낌새가 나타나고 있다. 바다가 산성화되고, 조류독감과 신종플루 등의 질병이 창궐하며, 남극과 북극에 오존층이 뚫리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등 수많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2004년 인류를 덮쳤던 ‘쓰나미’는 어쩌면 그 전초일 지도 모른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는 숨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지구화와 세계화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묶음으로써 지역 간 연결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질병, 에너지, 물, 식량 등의 ‘지구와 인류의 현안’은 개인이나 국가의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인 이슈가 되었다.

▲ 내륙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의 마을  ⓒ연합뉴스

‘위기’에 ‘대응’하는 과학기술

지구와 인류의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과학기술이다. 특히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극복을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그린테크놀로지가 그렇다. 매장량이 한정적인 화석연료의 고갈 역시 그린테크놀로지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금 세계는 녹색기술에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의 경우 전 세계 그린에너지 투자액은 1천484억 달러에 이른다.

가장 주목할만한 사례는 오바마 정부가 천명한 ‘뉴아폴로 플랜’으로 친환경에너지에 10년간 1500억 달러를 투자해 500만개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 역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GDP의 20% 선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2010년까지 주요 오염원을 10% 감축하기 위한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있다.

세계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한 바 있는 일본은 그동안 이룬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에너지 분야 기술들을 산업화시키고 있으며, 산업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작업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자원빈국으로 알려진 일본은 도시광산(Urban Mining) 사업으로 21세기 들어 자원부국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도시광산 사업이란 도시에 쌓여 있는 전자 폐기물 더미에서 고부가가치 광물을 추출하는 사업을 말한다.

일본 물질재료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도시광산의 금 축적량은 약 6천800톤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인 4만6천 톤의 16%에 달하는 양이며, 세계 최대 금 자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매장량 6천 톤을 웃도는 것이다. 화폐가치로는 한화 약 220조원에 달한다.

BRICs의 일원으로 미래 사회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브라질은 바이오 연료를 다방면으로 활용해서 상업적으로 뛰어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브라질은 풍부한 사탕수수를 사용해서 가솔린 수입을 40%나 줄였다. 그 결과 브라질은 2006년 석유 수입에 상당하는 에탄올을 수출해서 에너지 자립국가가 되었다.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개발

▲ 바렌츠해의 북극곰. 얼음이 점점 사라지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북극곰은 지구온난화의 심각함을 상징하는 대표적 동물이다.  ⓒ연합뉴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신기술 개발 역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신기술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은 CCS(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배출되는 탄소를 한데 모아 특정한 장소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기술을 말한다.

노르웨이 스타트오일社는 1996년 세계 최초로 이산화탄소를 해저에 묻는 실험에 성공했다. 현재 매년 100만 톤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해저에 저장하고 있는데, 공보담당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정부에 내는 세금이 줄어들면서 매년 한화 기준 660억 원 정도를 절약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대량 흡수할 수 있는 ‘건식흡수제’를 개발하고 있다. ‘고체흡수제’라고도 말하는데, 기존 흡수제와 비교해 이산화탄소를 빨리, 많이, 그리고 가장 잘 뱉어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구글 등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도 늘어가고 있다. 구글은 2006년 마운틴 뷰에 소재하고 있는 본사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함으로써 전체 전기 사용량의 30~40%를 충당할 수 있었다. 9천200개가 넘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통해 시간당 1.6MW, 하루 총 10Mh에 달하는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1천여 가구가 하루 소비하는 전기량과 맞먹는다. 또한 태양광 패널 중 약 3천여 개를 주차장에 설치해, 직원들의 차에 무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이슈에 대한 국민 이해가 중요

▲ 지구와 인류의 현안에 대응하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에 대한 대국민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구와 인류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과학기술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관련 정책이나 제도, 사업 등에 대해 국민적인 지지와 참여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현안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 제공이다. 이 과학적 정보를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비롯해 물, 에너지, 식량, 질병과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해 국민의 합리적 이해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시기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정윤 이사장은 “인류의 행복한 생활과 지속적인 개발을 위해 과학적인 진실, 그리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국민적 이해가 매우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상매체와 인쇄매체 및 인터넷을 활용한 과학커뮤니케이션 활성화사업’, ‘대한민국과학축전과 지역과학축전 등의 전국민과학문화확산사업’ 등 과학기술 대중화 및 과학문화 창달 사업을 진행하던 한국과학문화재단은 2008년 창의적 인재양성 전문화, 체계화와 융합문화 촉진을 통한 미래사회 대응력 제고등의 사명을 더해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확대개편 했다.

특히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대국민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과학기술앰배서더, 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 등의 기존 사업을 비롯, 각종 심포지엄과 포럼, 행사를 통해 지구와 인류의 현안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올 8월에 진행될 대한민국과학축전에서도 역시 기후변화, 에너지, 물, 질병, 식량 등의 현안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펼칠 계획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기술 및 창의성 관련 이슈를 제공하고 과학과 인문사회·문화예술 간의 소통을 위해 발행하고 있는 온라인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서도 ‘글로벌 이슈 진단’기획 시리즈를 진행해 대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해 올해로 10주년에 접어든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멀티미디어 과학정보서비스 포털 사이언스올(www.scienceall.com)에서는 작년부터 ‘지구와 인류의 현안’ 심층기획을 진행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현대는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에 글로벌 이슈는 개별 국가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윤리적 소비 운동이 기업의 친환경 경영을 이끌어냈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탕이 되야 과학기술이 올바로 발전할 수 있다. 지구와 인류의 현안은 이제 모두의 관심사이자,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각자가 주위를 둘러보고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기울일 때다.

김청한 기자 | chkim@kofac.or.kr

저작권자 2009.07.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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