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종말-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가능성 [교수신문 공동] 여성주의자가 바라보는 성의 종말 2009년 05월 11일(월)

<사이언스타임즈>는 지난해에 이어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제2탄을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학술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www.kyosu.net)과의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2009년에는 문명의 전환과 인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의 심화,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결속 강화는 새로운 문명과 인간이 출현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다. ‘기후변화’부터 ‘죽음’까지 13가지 이슈에 대해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소통하며 논전을 벌였던 2008년 기획시리즈는 현재 『지식의 이중주』(2008, 해나무)로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 [편집자 註]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필자는 이 지면에서 ‘섹스리스의 증가’나 ‘결혼/출산율 저하’ 같은 사회적 현상을 ‘성의 종말’로 볼 수 있는지 논해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섹스리스’라는 현상만 살펴보려 해도, 섹스를 전혀 안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을 뿐더러, 그 이전에 ‘섹스’를 어떻게 정의할지부터 문제입니다.
 
출산을 위한 이성 간 삽입성교만을 있을 수 있는 성행위로 인정하면서 피임기술에 반대해온 가톨릭 교황이시라면 혹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을 두고 곧장 ‘성의 종말’이라고 부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과 별개로 사람들은 피임약이나 피임기구를 활용하면서 활발하고 다양한 성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성 간의 삽입성교만이 유일하게 성행위 내지 ‘섹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다른 많은 즐거움을 미리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게다가 ‘성’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폭넓게 쓰여서, 생물학적으로 무성생식과 구분해 ‘유성생식’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남/녀에게 다르게 부과하는 성역할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이를 만드는 생식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여러 가지 에로틱한 행위나 취향, 단지 남/녀 두 항만이 아닌 가지각색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 등등까지 뭉뚱그려 부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성’이라는 말이 지칭하는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종말에 이르는 사태란, 가능성은커녕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인간이 무성생식을 하는 날

이런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작가의 상상력을 빌려보겠습니다.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는, 프랑스에서 68혁명세대가 쟁취한 성의 자유라는 것이 결국은 ‘즐기지 말라’는 명령보다 더 잔혹한 ‘즐기라’는 명령을 모두가 강박처럼 따르는 것이 돼버린 상황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 '소립자'라는 소설에서는 시험관 복제를 통해 인구를 재생산하는 사회를 그렸다 
성해방을 외쳤던 68 이후 이성 간 선교사 체위뿐 아니라 동성애, 집단난교, SM 등 온갖 성행위 방식을 인정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적 공간 및 집단이 생겼는데, 그와 함께 사람들은 더 잘 즐기는 사람, 더 성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끝없이 다이어트를 하고 각종 약물 및 수술을 고려하며 자기 외모와 재정상태에 만성불만인 채로 조울증을 오가며 시달립니다.

이런 ‘즐거운’ 지옥 속에서 구원받기 위해 결국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성과 생식의 공산주의를 기획하기에 이릅니다. 이 새로운 공산주의란 바로 유성생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유전자와 외모가 완전히 똑같아서 서로 차별할 가능성이 적고, 특정한 방식의 성행위만 특권화하지 못하도록 성감대가 몸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도록 조작된 복제인간들만으로 이루어진, 시험관 복제를 통해 인구를 재생산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성생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해도, 어쨌든 기존의 ‘성적인 것’은 완전히 종말을 맞는 혁명이랄까요. 단성생식이나 무성생식이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니, 우엘벡의 주인공의 기획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허황된 것만도 아닌 셈입니다.
 
이를테면, 2004년 <네이처>지에는, 쥐의 난자 두 개를 가지고 정자 없이 수정란을 만들어냈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그 즈음에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도 복제인간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며 이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단성생식이나 복제를 과연 원하기는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인류학자 게일 러빈(1984)은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개인의 성적행동에 따라 위계를 나누고 차별하는 사회적 기제를 말한 바 있습니다.

높은 위계에 속하는 성적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평가와, 사회적 존중을 부여하면서 제도적 지원과 물질적 이득을 줍니다. 반면, 낮은 위치로 간주되는 성적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이거나, 존중 받을 만하지 못하거나, 범죄자거나, 자유로이 이동, 이주할 수 없도록 만들거나, 제도적으로 지원 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경제적 궁핍으로 내몰립니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에서 그 위계의 가장 위쪽에 있는 이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성애 부부일 것입니다. 저출산이 ‘위기’로 부각되면서 저 범주에 속해야 납세나 집장만에 더 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생식세포와 배아를 몸 바깥으로 꺼내 조작할 수 있는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한 아이에 대해 난자상, 자궁상, 양육상 등등 어머니가 여럿이 된다든가, 아버지 없는 가족이라든지, 동성커플 간에 아이를 낳는다든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결혼한 이성부부의 불임 ‘치료’를 위한 기술로만 주로 쓰이고 있는 상황은 앞에서 말한 사회의 성적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결혼한 남녀와 그 생물학적 자녀들로 이루어진 가족을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지만(현재 한국의 양육/교육비는 출산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무시무시하지요), 또 그게 아닌 다른 가족형태를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상상하고 추구하기도 참 힘든 사회입니다.

즐거운 종말을 상상하며

▲ 박연규 독립연구자 
‘성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거에 혹은 현재, ‘성’이라고 이름 붙여 불러낼 수 있는 어떤 단일한 실체가 있었거나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점에 주의한다면, ‘성적인 것’으로 묶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종말까지는 아니라도, 현재 존재하는 성적 위계(앞에서 말했듯, 남/녀 간의 차이뿐 아니라 갖가지 성적 취향, 행위, 정체성 등등에 따른 위계)와 차별의 종말이라면, 상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100년 쯤 후,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굳이 남녀 커플을 이루어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을 우스꽝스러운 옛 풍습 정도로 여기는 시대가 올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필자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했으며,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등의 저서가 있다. <여/성이론>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박연규 독립연구자

저작권자 2009.05.11 ⓒ ScienceTimes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수컷의 종말 [교수신문 공동] 환경학자가 바라보는 성의 종말 2009년 05월 11일(월)

<사이언스타임즈>는 지난해에 이어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제2탄을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학술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www.kyosu.net)과의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2009년에는 문명의 전환과 인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의 심화,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결속 강화는 새로운 문명과 인간이 출현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다. ‘기후변화’부터 ‘죽음’까지 13가지 이슈에 대해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소통하며 논전을 벌였던 2008년 기획시리즈는 현재 『지식의 이중주』(2008, 해나무)로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 [편집자 註]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암컷화(feminization)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생태계에 서식하는 생물 중 수컷이 내분비계 호르몬 항상성 이상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암컷의 성적 특성을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암컷화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서식 환경 내 환경호르몬의 증가를 들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환경호르몬(environmental hormone)은 생체 내에서 호르몬(특히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물질로서 살충제, 다이옥신, 폴리염화비페닐, 제초제, 중금속과 같은 환경오염물질은 물론 마취제, 면역반응억제제, 유산방지제, 스테로이드 제제와 같은 의약품 그리고 식물의 플라브노이드 성분, 진균류가 생성한 마이코톡신 등과 같이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 신생아 출생 성비의 불균형은 최근 환경호르몬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는 문제이다 
환경호르몬은 일단 생체에 유입되면 정상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거나 증가시켜 내분비계 기능을 교란시킨다는 의미에서 내분비계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이라고도 부릅니다. 환경호르몬은 난분해성, 고지용성, 고잔류성 등의 특성으로 인해 생물농축은 물론 먹이사슬을 통한 생물확대가 잘 일어나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쉽게 축적될 수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지구 생태계에 서식하는 생물종에 대한 암컷화 사례는 영국의 제지공장에서 흘러나온 표백제로 오염된 강에 서식하는 수컷 물고기에서 관찰된 암컷 생식기 발달 현상, 캐나다에서 폴리염화비페닐에 노출된 바다 거북이에서 관찰된 성별전환 현상, 스위스 바젤사고로 인한 제조제에 노출된 수컷 개구리에서의 난소 발달 현상, 북극에서 생식기 이상으로 인해 성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새끼 곰의 출생 등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출생 성비의 불균형

환경호르몬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 중 남성의 경우는 여성 생식기가 부분적으로 발현된 남아의 출생 현상, 여아 출생률이 증가하는 출생성비의 불균형 현상, 정자 수 감소와 운동성 감소에 기인한 생식 불능 현상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최근 환경호르몬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는 신생아 출생성비의 불균형 문제는 1976년 이탈리아 세베소 사고로 다이옥신에 노출된 남녀 모두에게서 남아의 출생률이 감소한 사실과 2002년 대만에서 폴리염화비페닐에 오염된 식용유 사건의 역학조사 결과, 폴리염화비페닐에 노출된 남성은 결혼 후 남아의 출생률이 정상인 54.5%에 비해 49.0%로 감소한 사실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습니다.

특히 이들 남성이 결혼 후 여아를 출생한 비율은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될수록 그리고 나이가 어릴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여성의 경우에도 출생 성비의 이상 현상, 유방암 증가, 발달 장애아의 출산 증가 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2002년 생식독성학회지에 의하면 터키에서 헥사클로로벤젠에 노출된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 정상인에 비해 남아출생률이 15% 이상 낮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여성 유방암의 경우, 2009년 의학가설학회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발생률이 10만 명 기준으로 비교하면 우루과이는 114.9명, 북미지역은 109.6명 하와이는 101.3명, 아프리카 지역은 7.0명으로 산업화된 사회일수록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환경호르몬이 여성의 경우에도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호르몬은 인체의 생리기능을 관장하는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에 분비량과 분비시점이 매우 중요하므로 과다하거나 불필요한 시기에 분비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경우, 여성화 그리고 출생성비와 관련해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여아 출생률의 증가 현상이 환경호르몬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과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부모에서 출생한 여아는 성인이 되면 유방암과 같은 호르몬 관련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이상의 다양한 연구사례를 통해 우리는 환경호르몬이 모든 생물에 대해 성불능화 개체수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출생성비의 불균형을 초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물 멸종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자는 환경호르몬 문제와 관련해 지구 생태계의 건전성 확보는 물론 인간에 대한 직ㆍ간접노출 안전치를 확보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돼 다음과 같은 미래 과제와 대책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시급한 대책

첫째로, 지구 생태계의 경우, 많은 생물들이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종말점의 개발과 먹이사슬을 통해서 인간에게 전이되는 핵심 연결과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간접 노출의 위험성을 줄여나갈 방안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사람의 모유나 지방조직에서 폴리염화비페닐, 다이옥신 그리고 수많은 유기인계 살충제 등이 동시에 검출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여러 종류의 환경호르몬에 동시에 노출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협동작용에 관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다중 노출에 따른 안전치 설정과 관련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DES(diethylstilbestrol : 임산부의 유산방지 목적으로 사용한 합성 에스트로겐)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부 환경호르몬의 경우, 지연된 독성을 보이는 만큼 세대 간 전이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이 메커니즘을 밝힘으로써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 정명규 선문대ㆍ환경독성학 
46억년의 긴 지구 역사에 비추어 인간이라는 생물종(학명: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은 불과 300만 년 전의 일입니다. 이는 지구 탄생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해 지구가 1월 1일 0시에 탄생했다고 가정하면 인간은 12월 31일 오후 6시 17분 13초에 비로소 출현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호모사피엔스 생물종의 등장 이후, 많은 생물종이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종의 위기를 맞아 지구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들어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매년 4만여 종의 생물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향후 지구 생태계와 인류 생존의 필수 키워드가 될 환경호르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면 호모사피엔스 생물종 역시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인간 탄생 훨씬 이전에 출현해 무려 1억 6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 왔으나 지금은 화석으로만 만날 수 있는 공룡의 멸종을 통해 지구 생태계 보전에 필요한 반면교사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경공학개론』등의 저서와 「Sodium molybdate의 납중독성 말초 신경계독성 예방기전」등의 논문이 있다.

정명규 선문대ㆍ환경독성학

저작권자 2009.05.11 ⓒ ScienceTimes

性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다 [교수신문 공동] 성의 종말에 대한 쟁점과 시선 2009년 05월 11일(월)

<사이언스타임즈>는 지난해에 이어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제2탄을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학술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www.kyosu.net)과의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2009년에는 문명의 전환과 인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의 심화,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결속 강화는 새로운 문명과 인간이 출현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다. ‘기후변화’부터 ‘죽음’까지 13가지 이슈에 대해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소통하며 논전을 벌였던 2008년 기획시리즈는 현재 『지식의 이중주』(2008, 해나무)로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 [편집자 註]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인간을 포함한 대다수 생물의 진화에서 性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의 존재로 인해, 생물은 단순한 자기 복제의 늪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유전 정보를 구성하면서 더 나은 존재로 도약할 기회를 얻어왔다. 그런 이유로 여러 생물 특히 인간에게서 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모든 사회 제도, 문화, 라이프스타일에서 성을 제외하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또 인간이 욕망의 동물이라고 했을 때, 그 욕망의 기저가 성욕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바로 이 성의 종말이 논의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우선은 환경학자들 사이에서 예전부터 지적된 것인데,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남녀의 성비가 파괴되고 있다는 논의를 들 수 있다.

▲ 일각에서 성의 종말이 논의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핵심에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있다. 살충제, 제초제, 중금속과 같은 다양한 현대 산업의 부산물이 배출한 물질이 여타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성비 불균형이라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다년간 출생 성비가 불균형하게 되면,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는 다수의 여성 vs 소수의 남성 구조로 사회가 재편됨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진화론적 압력이 여성과 남성에 다른 강도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가부장제가 강하다면 일부다처제로 압력이 강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매우 색다른 여권 중심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 호르몬으로 인한 성비의 불균형을 ‘남성’의 종말, 혹은 성 일반의 종말로 사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하더라도 남녀 간의 정치적, 사회적 권력에 차이가 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 호르몬은, 잇단 환경론자들의 경고에 힘입어 미래에는 충분히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어, 그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명공학 기술 이용한 단성생식 가능 전망
 
한편 여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성의 종말이 논의되기도 한다. 일부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은 미래의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단성 생식이 가능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이는 비단 여성들만의 독자적인 재생산 가능한 사회의 구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성애자들이 단성 생식을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고, 혹은 일부러 특정성을 배제한 생식을 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더 극단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통합한 양성형 인간의 자기 재생산이 제시되기도 한다.

혹은 양성형 인간, 동성애 커플, 여성주의 커플, 남성주의 커플이 복합적으로 얽힌 다성적 사회가 출현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논의는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성비의 불균형과는 차원이 다른데, 지금까지의 이성 중심 사회의 종말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성의 종말에 관련된 테제는 아직까지 학문적 엄밀성을 갖고 진지하게 대규모로 논의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성의 종말은 기술적으로, 곧 인간에게 그럴 만한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 있다. 특정 성이 사라진 세상, 혹은 양성형 인간들이 지금의 인간들을 대체할 경우, 지금까지 사회 제도와 문화가 상상도 못할 혁명적 변화를 맞이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주훈 교수신문 기자 | aporia@kyosu.net

저작권자 2009.05.11 ⓒ Science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50)
페르미
▲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
"There are two possible outcomes: if the result confirms the hypothesis, then you’ve made a discovery. If the result is contrary to the hypothesis, then, you’ve made a discovery."

"두 개의 가능한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결과가 가설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이다. 또 결과가 가설과 반대로 나타났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발견에 성공한 것이다."
-페르미( 1901~1954):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최초의 원자로 발명자

제2차 세계대전의 조짐이 강하게 일고 있던 1930년대. 이탈리아 로마 대학에서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었던 실험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무솔리니 파시스트의 독재정권이 유태인을 차별하는 독일 히틀러의 영향으로 유태인에게 제약을 가하는 법을 제정했기 때문입니다.

반유대주의 처벌법(anti-Semitic persecution)이 제정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유대인들은 행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페르미는 정통 이탈리아 출신입니다. 그러나 1928년에 결혼한 아내 라우라(Laura)는 저명한 유태 가문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안전과 자신의 안전이 두려웠습니다.

라우라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해군 제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습니다. 페르미는 결국 자신의 자유로운 연구와 아내의 안전 때문에 이민을 마음을 먹게 되고, 대상국으로는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을 선택하게 됩니다.

"It is no good to try to stop knowledge from going forward. Ignorance is never better than knowledge.” “지식의 진보를 막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무지가 지식보다 나을 수는 없다." 특별한 종교적 신조나 도그마로 과학연구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죠?

이탈리아 파시즘의 반유대주의 공포가 페르미 가정에도 엄습하기 시작합니다. 유태인에 대한 제약과 통제가 점점 심해져 이민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미국이라고 해서 이민을 마구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유태인을 싫어한 것은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특별한 인재들은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페르미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죠. 이탈리아에서 탈출해서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 페르미가 처음으로 발명한 원자로는 핵폭탄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노벨상 수상이유는 "…for his discovery of new radioactive elements produced by neutron irradiation, and for the discovery of nuclear reactions brought about by slow neutrons.” “중성자조사(照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방사능 원소를 발견하고, 느린 중성자로 인해 생기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입니다.

페르미는 중성자들 가운데 느린 중성자들을 원자핵에 충돌시켜 베타붕괴(β-decay)를 발견합니다. 베타붕괴란 중성자가 원자핵의 양성자와 충돌하면서 그 중성자가 다시 양성자와 전자로 분해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때 전자는 핵 바깥으로 튕겨져 나오는데, 이것이 베타선의 형태로 붕괴되기 때문에 베타붕괴라고 합니다.

중성자가 분해되면서 이 때 만들어진 양성자는 핵 속에 그대로 남아 원자량을 높이는, 즉 원자번호가 하나 높아진 동위원소가 만들어집니다. 페르미는 온갖 원소로 이 실험을 하다가 가장 원자량이 큰, 다시 말해서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에 시도합니다. 우라늄에서 베타붕괴를 통해 만들어진 더 무거운 원소를 초우라늄 원소라고 합니다.

이러한 초우라늄을 만드는 과정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라늄 핵분열이며 핵폭탄의 제조원리가 되는 겁니다. 페르미는 이런 이론을 근거로 원자로(nuclear reactor)를 처음으로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원자로는 맨해튼프로젝트의 핵폭탄을 만드는 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정책이 날로 극심해지면서 부인이 유태인인 페르미도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페르미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무솔리니 정부는 페르미가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에 가족이 함께 가는 걸 허락합니다. 치밀한 계획도 세웁니다.

1938년 12월 10일 노벨상을 수상한 페르미는 그 상금을 전부 투자해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는 데 성공합니다. 페르미는 마침 그때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물리학 교수 자리를 제의하고 있었으므로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로마에서 갖고 온 것은 호주머니에 깊이 간직했던 노벨상 메달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 핵폭탄의 위력을 실감한 페르미는 수소폭탄 개발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
미국에서 자유를 얻은 페르미는 연구에 열중했고 여기에서 1942년 역사적인 최초의 원자로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합니다. 그가 발견한 연쇄반응(chain reaction)이론과 함께 맨해튼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의 참혹한 결과를 접한 그는 충격을 받아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합니다.

그는 핵폭탄이 만들어진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 수소폭탄 개발 초기에는 컨설턴트로 참가하지만 곧 도덕적인 이유로 온당하지 않다며 불참합니다. 그리고 핵개발에 참가했던 오펜하이머, 이시도르 라비(Isidor Rabi) 등과 함께 핵에너지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에 수소폭탄 개발을 중지하라고 강한 압력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Such a weapon goes far beyond any military objective and enters the range of very great natural catastrophes. By its very nature it cannot be confined to a military objective but becomes weapon which in practical effects is almost one of genocide.”

“이와 같은 무기는 군사적 목적을 훨씬 넘어 중대한 자연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소폭탄)의 성질로 보건대, 이는 군사적 목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에서는 인류의 말살무기가 될 수 있다.”

이어지는 대목은 “It is clear that the use of such a weapon cannot be justified on any ethical ground which gives a human being a certain individuality and dignity even if he happens to be a resident of an enemy country…."

"이런 무기의 사용은 인간의 개인과 존엄성이라는 윤리적 면에서 볼 때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비록 적국의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무기의 사용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The fact that no limits exist to the destructiveness of this weapon makes its very existence and the knowledge of its construction a danger to humanity as a whole. It is necessarily an evil thing considered in any light.”

“이 무기의 파괴능력이 끝이 없을 정도라는 사실로 볼 때, 무기의 존재나 그에 대한 지식은 전체적으로 인류에 대한 위협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본다고 해도 엄연한 악임에 틀림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페르미는 시카고대로 옮깁니다.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 페르미가 이 곳으로 오자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들이 시카고대로 오게 됐고 학교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 덕에 현재도 시카고대 물리학 프로그램을 따라갈 대학은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Where are they?” “그들은 어디 있는데?” 이 말은 외계인이 있다는 증거에 대한 이야기로, 페르미 패러독스라고 합니다

▲ 맨해튼프로젝트에 참가한 페르미(가운데). 왼쪽은 오펜하이머이다.  ⓒ
1950년 어느 세미나에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자 페르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Where is everybody? Humans could theoretically colonize the galaxy in a millions or so, and if they could, astronauts from older civilizations could do the same. So why haven’t they come to Earth?”

“(외계인) 모두 어디 간 건가? 이론적으로 인간은 몇 백만년 후에 은하를 식민지로 정복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오래된 문명세계의 우주인들도 똑같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그들은 지구를 찾지 않는 걸까?”

페르미의 패러독스에 대해 코펜하겐에 있는 닐스 보어연구소의 라스무스 비욕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페르미의 패러독스에 명확한 답변을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으려면 몇 백만년, 아니면 수백억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설명하자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건데 외계인의 존재를 따지는 것 자체가 패러독스라는 이야기입니다.

외계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페르미의 주장도, 존재하지만 다만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라고 말하는 비욕 박사의 주장도 같은 것이 돼버리는 거죠? 페르미 패러독스는 외계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긴 시간으로 볼 때 존재와 비존재는 같은 것이라는 철학적이고 역설적인 설명인 셈이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페르미는 시카고대 교수로 재직하며 고에너지 물리학 발전에 모든 것을 바칩니다. 1954년 11월 29일 53세를 일기로 위암으로 세상을 하직합니다. 그의 모친도 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고 합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9)
제너
▲ 에드워드 제너.  ⓒ
"I hope that some day the practice of producing cowpox in human beings will spread over the world-when that day comes, there will be no more smallpox."

"언젠가 우리 인류에게 우두를 생산하는 기술이 전 세계로 확산돼 천연두라는 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그 때가 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제너(1749~1823):영국 외과의사, 종두법 창시자-

우두(牛痘)나 천연두(天然痘)에 나오는 痘는 ‘마마두’로 천연두를 일컫지만 원래는 고름이나 농이 있는 상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천연두를 두창(痘瘡)이라고도 하는데 蒼은 ‘부스럼 창’으로 읽습니다. 역시 천연두를 의미하는 마마(痲痲)의 痲는 홍역을 뜻해서 ‘홍역마’로 읽습니다.

영어도 한자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두를 cowpox라고 합니다. 사람의 천연두는 smallpox라고 하죠. 물론 pox 단독으로 천연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로 피부에 발진하는 병으로 피부에 큰 고름이 생기는 종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우두는 소에 생긴 마마고 천연두는 사람에게 생기는 마마입니다. 즉 우두접종이란 소에게 생긴 마마(농균)를 사람에게 주사해서 사람에게 생길지도 모를 천연두를 예방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 몸속에 들어간 우두(균)은 천연두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평생 동안 천연두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영국 외과의사인 제너(Edward Jenner)가 발견해 천연두 백신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무서운 천연두가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소에서 생긴 약한 마마균을 사람 몸에 주사하면 사람이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항체가 생겨 면역성(immunization)이 생기는 겁니다.

▲ 제너가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천연두는 치사율이 40%에 가까운 무서운 병이었다.  ⓒ
면역체계의 파괴는 몸의 균형이 와해되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제너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The deviation of man from the state in which he was originally placed by nature seems to have proved to him a prolific source of disease."

"인간이 원래 자연적으로 주어진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궤도를 벗어날 때) 여러 가지 병이 생길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자연 상태는 몸이 균형을 이룰 때고 이 상태가 깨질 때 병이 생기기 시작한다 라는 말입니다.

천연두는 18세기에 유행했는데 가끔씩 크게 퍼져 사망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 시대에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던 천연두는 사회계층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었고, 회복한 환자들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흉터가 남아 사회생활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죠.

제너는 평생 천연두 백신을 개발하는 데 전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치사율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법을 발명하는 걸 인생의 최대 목적으로 생각하고 여기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과 연구 끝에 예방법인 우두접종법에 성공합니다.

성공했을 때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The joy I felt as the prospect before me of being the instrument destined to take away from the world one of its greatest calamities(smallpox) was so excessive that I found myself in a kind of reverie."

"내가 한 연구가 앞으로 가장 커다란 재앙(천연두)을 없앨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기쁨은 너무나 대단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환상 속에 빠지기도 했다."

제너의 종두법 연구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I shall endeavour still further to prosecute this inquiry, an inquiry I trust not merely speculative, but of sufficient moment to inspire the pleasing hope of its becoming essentially beneficial mankind."

해석하자면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류에게 유익하게 될 희망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이러한 연구가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천연두에 걸리면 피부에 고름이 생긴다.  ⓒ
제너가 우두접종법을 만들어 내기 전에도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한 접종방법이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이 기술은 인두(人痘)접종법(variolation)이라는 것으로 천연두를 약하게 앓은 환자에게서 뽑은 물질로 건강한 사람을 일부러 감염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유래한 인두접종기술은 2가지 개념에 근거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제너의 종두법도 이러한 개념에 착안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천연두에 한 번 걸렸던 사람은 다시 병균을 접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계획적으로 병에 경미하게(mild) 감염되었던 사람도 면역성을 쉽게 갖는다는 겁니다. 오늘날 이것을 전문용어로 ‘선택적 감염(elective infection)’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행하게도 인위적으로 감염시킨 경우 항상 가볍게 앓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앓게 돼 정상인이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납니다. 그리고 접종을 통해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다시 이 병을 퍼뜨리는 감염원으로 작용해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고대 중국에서 실시됐던 이 방식은 당시 동서문명의 가교역할을 했던 터키로 전해집니다. 당시 터키에 주재하고 있던 영국대사의 부인 몬테규(Lady Mary Wortley Montagu)가 1722년 이 인두접종법을 이용해 두명의 자식을 치료한 후부터 인두종두법이 대단한 호평을 받습니다.

몬테규 부인은 종두법 역사와 관련해 항상 등장하는 여성입니다. "…Well known throughout polite society for her wit and verse, English world traveller Lady Mary Wortley Montagu(1689~1762) also worked to introduce the practice of inoculation against smallpox to the medical establishment of eighteenth-century Britain."

"위트와 훌륭한 문장으로 영국 상류사회에서 유명한 세계 여행가 몬테규 부인은 또한 (인두)종두법을 18세기 영국 의학계에 도입하는 데 노력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18세기 초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최고의 여성 워틀리 몬테규 부인. 그녀는 인두종두법을 서양세계로 전파했다.  ⓒ
몬테규 부인은 미모가 출중하고 지성을 갖춘 18세기 초 영국 사회의 최고 여성으로 꼽혔습니다. 더구나 시적인 감각과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데다 언변도 훌륭해 그야말로 영국 사교계의 찬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사교계를 주무르고 있던 몬테규 부인이 터키 주재 대사 남편을 따라 터키로 갔다가 그만 천연두에 걸리고 만 겁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고 1716년 살아남습니다. 당대 최고로 아름다웠던 고운 자태를 천연두가 뺏어 가버린 거죠.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흔한 이야기로 죽기보다 더 서러웠을까요?

그러나 몬테규 부인은 실망하지 않고 당시 중국으로부터 도입돼 터키에서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인두종두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의지가 단호했던 그녀는 당시 유명한 영국 외과의사 매트랜드(Charles Matland) 박사를 콘스탄티노플로 불러 들여 아들에 접종해서 성공을 거둡니다.

1721년 천연두가 영국을 휩쓸기 시작하자 몬테규 부인은 딸에게도 접종해서 성공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왕실은 그녀에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접종을 공식 허락합니다. 그리고 흉악범들이 주로 수감된 뉴게이트 감옥(Newgate Prison)의 20여 명의 죄수들을 대상으로 접종을 했는데 모두 완쾌했고 그 덕에 죄수들은 풀려납니다. 인두접종법이 영국의학계에 자리 잡게 된 과정이지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제너가 1773년 소를 이용한 우두접종법으로 예방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로 인해 약 1백년이 흐른 1885년 파스퇴르가 광견병 예방접종을 발견하는 데 성공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약화시켜 면역을 갖게 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고, 다시 소아마비, 장티푸스 등 그동안 인류를 괴롭혔던 질병에 대한 백신이 줄을 이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개발한 백신의 성공여부를 위해 소중한 아들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제너의 인간성과 인류애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백신개발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알 겸 다음 이야기를 읽어 볼까요?

"The story of the great breakthrough is well known. In May 1796 Jenner found a young dairymaid, Sara Nelmes, who had fresh cowpox lesions on the hand. on May 14, using matter from Sarah’s lesions, he inoculated and eight-year-old boy, James Phipps. He became slightly ill over the course of the next 9 days but was well on the 10th.

해석하겠습니다. "(종두법 성공과 관련) 아주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해 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796년 5월 제너는 손가락에 우두를 금방 앓은 상처가 있는 사라 네머스라는 젊은 목장 소녀를 발견했다. 5월 14일 제너는 사라의 상처에 있는 물질을 사용해 제임스 핍스라는 8세 소년에게 접종했다. 이후 이 소년은 9일 동안 약간 아팠으나 10일째 되는 날 완쾌했다."

이어서 on July 1 Jenner inoculatedthe boy again, this time with smallpox matter. No disease developed: protection was complete. In 1798 Jenner, having added further cases, published privately a slender book entitled ‘An inquiry into the Causes and effects of the Variolae Vaccinae, a Disease Known by the name of Cowpox’."

"제너는 7월 1일 그 소년에게 이번에는 (사람에게 걸린) 천연두 물질을 다시 접종했는데 아무런 병도 생기지 않았으며 완전한 면역이 생겼다. 그 후 1798년 제너는 더 많은 사례를 추가해 소책자인 ‘우두 백신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연구’를 개인적으로 출판했다."

▲ 1880년 종두법을 개발한 지석영 선생.  ⓒ
천연두 백신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출판에 대한 반응이 곧바로 호의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너의 연구를 시기하는 학자들과 백신을 잘못 사용해 오해를 받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백신개발에 신호탄이 돼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질병을 고치는 데 과학적 토대를 제고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신사로 일본을 따라갔던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발명해 1880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지석영 선생이 충주에 있는 2살 난 처남에게 실시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합니다. 그게 왜 유명하냐고요? 안전성이 확실히 검증된 것도 아닌데 혹시 죽으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과감하게 소중한 처남을 선택한 겁니다.

1979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근절된 질병(eradicated disease)’이라고 공식 선언합니다. 의료방법이나 위생시설이 개선된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너의 백신개발 덕분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8)
맥스웰
▲ 스코틀랜드 출신의 맥스웰은 전자기이론을 집대성해 물리학의 신기원을 이룩한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
"In speaking of the Energy of the field, however, I wish to be understood literally. All energy is the same as mechanical energy, whether it exists in the form of motion or in that of elasticity, or in any other form. The energy in electromagnetic phenomena is mechanical energy."

"에너지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한마디로 해석(정의)했으면 한다. 모든 에너지는 역학(적) 에너지다. 그게 운동 형태이든, 탄성의 형태이든, 아니며 다른 형태로 나타나든 간에 말이다. 전자기적 현상의 에너지는 역학 에너지다."
-맥스웰(1831~1879): 스코틀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지난 1931년 위대한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된 책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맥스웰을 극찬했습니다. "The work of James Clerk Maxwell is the most profound and the most fruitful that physics has experienced since the time of Newton."

"맥스웰의 남긴 업적은 뉴턴시대 이후 물리학이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알찬 업적이다." 맥스웰을 흠모한 아이슈타인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one scientific epoch ended and another began with James Clerk Maxwell”. “맥스웰로 인해 한 과학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과학시대가 열렸다.”

뉴턴 이래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극찬입니다. 이렇듯 맥스웰은 뉴턴,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전자기장 이론(electromagnetic theory)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전자제품을 비롯해 IT, 무선통신 개발에 기본적인 이론을 제공해 ‘풍요로운 20세기’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로를 제공했습니다. 비록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비교할 때 그의 업적이 다소 과소 평가받고 있지만 현대 물리학에 남긴 업적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능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ll the mathematical sciences are founded on relations between physical laws and laws of numbers, so that the aim of exact science is to reduce the problems of nature to the determination of quantities by operation with numbers."

"모든 수학적(수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은 물리학 법칙과 숫자 이론 사이의 상관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정확한 과학의 목적은 수를 이용해 양(量)을 결정함으로써 자연의 문제를 줄여가는 일이다." 맥스웰의 이야기입니다.

▲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
맥스웰은 이런 이야기도 남겼습니다. "The numbers may be said to rule the whole world of quantity, and the four rules of arithmetic may be regarded as the complete equipment of the mathematician."

"수(수 이론)는 모든 양적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연산의 4개 법칙은 수학자의 완전무결한 장비라고도 볼 수 있다." 연산의 4개 법칙이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말합니다.

물리학뿐 아니라 수학이나 화학 등 자연과학에는 ‘힘’(force)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자연계에는 총 4가지의 힘이 존재하는데,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소멸까지 모든 것은 힘에 의한 작용이라고 합니다.

우선 뉴턴이 발견한 중력(gravidity)이 있습니다. 4가지 힘 가운데 강도에 있어서 가장 약한 힘입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유인력이라고도 하고 중력이론(the theory of gravidity)이라고도 합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만유(萬有), 모든 것에는, 인력(引力),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는 에피소드(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로 유명한 중력이론은 천체물리학에서부터 자연계에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현상을 푸는 데 기초를 제공한 이론이지요. 비록 아인슈타인에 의해 대폭 수정됐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두 번째 힘인 약력(weak interaction)을 소개하기 앞서 맥스웰의 명언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The mind of man has perplexed itself with many hard questions. Is space infinite, and in what senses? Is the material world infinite in extent, and are all places within that extent equally full of matter? Do atoms exist or is matter infinitely divisible?"

▲ 맥스웰의 연구주제였던 전자기파의 모습.  ⓒ
"인간의 마음은 많은 어려운 문제로 매우 혼란스럽다. 우주는 유한한가,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물질세계(우주)는 범위에서도 무한하고, 그 큰 범위만큼이나 모든 곳이 물질로 가득 차 있는 걸까? 원자는 존재할까? 그리고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물질일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맥스웰의 지적처럼 우리도 같은 똑같은 의문을 갖고 있죠?

약력은 말뜻 그대로 약한 힘입니다. 누가 특별히 발견한 것은 아니고 20세기 초반 페르미(Entrico Fermi)를 중심으로 한 소립자물리학자들이 소립자 반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힘입니다. 페르미는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로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탈출한 과학자입니다.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커다란 공헌을 한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약력은 원자핵이 양성자(proton)와 전자(electron) 그리고 중성미자(neutrino)로 분해될 때 전자와 중성미자를 만드는 상호작용을 말합니다. 아주 약한 힘으로 서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이와 대조가 되는 힘이 강력(strong interaction)입니다. 이는 물질의 기본인 핵이 분열하지 않도록 쿼크(quark)들이 서로 잡아당겨 엉키려고 하는 힘입니다. 현대물리학 연구는 이 강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강력과 기존의 3개의 힘을 통합해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려는 통일장이론(unified theory of field)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연계 현상을 각각의 4개의 힘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 우주에는 모두 4가지의 힘이 있는데, 이 중 전자기력에 대한 맥스월의 업적은 매우 크다  ⓒ
자연계의 4가지 힘 중 마지막인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은 맥스웰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주제입니다. 전자기력이란 전하(charge)가 있는 경우라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힘을 말합니다. 입자 대부분에는 전기의 성질을 띠는 전하가 존재합니다. 이런 전하에는 자기의 성질이 있어 서로 밀고 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합니다.

맥스웰이 전자기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아닙니다. 패러데이가 전자기이론을 처음 발표했으나 맥스웰은 이를 바탕으로 전자기이론을 아무런 하자 없이 완전하게 집대성한 과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기학은 물리학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으로, 응용과학으로 이용하는 데 이론적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자기력은 모든 전자체를 비롯해 빛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파의 속도와 빛의 속도가 같다는 이론을 정립해 후일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전자기력은 대부분의 화학반응에 나타나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화학과 물리학을 서로 묶는 역할을 해 ‘물리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전기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술들이 맥스웰의 전자기이론과 방정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7)
파스칼
▲ '나약한 갈대'의 파스칼. 수학과 철학에서 남긴 업적이 대단하다.  ⓒ
"Man is only a reed, the weakest in nature; but he is a thinking reed. There is no need for the whole universe to take up arms to crush him; a vapor, a drop of water is enough to kill him. But even if the universe were to crush him, man would still be nobler than his slayer, because he knows that he is dying and the advantage the universe has over him. The universe knows nothing of this."

"인간은 자연에서, 그것도 가장 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우주(자연)는 팔을 뻗어 인간을 때려눕힐 필요가 없다. 한 개의 물방울이나 수증기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자연)가 인간을 공격한다면 인간은 그를 죽인 살인자보다 더 고귀하게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우주(자연)가 준 장점(교훈)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자연)는 이러한 것을 전혀 모른다."
-파스칼(1623~1662): 프랑스 과학자, 종교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는 명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최고라는 겁니다. 비록 물방울 하나로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나약하지만 사고가 있고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 어려움을 극복할 줄 알기 때문에 자연이나 우주라는 거대한 물체도 나약한 인간이 싸워서 이기고 지배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은 파스칼을 사상가나 철학자로만 생각하나요? 아니면 수학자로 생각하나요? 오늘 소개하는 명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 때문에 아주 심오한 철학자로 생각하나요? 그리고 그의 저서 <팡세>(Pensees) 때문에 깊은 식견의 사상가로 생각하나요? 파스칼은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하지만 ‘파스칼의 정리’(Pascal’s Theorem), ‘파스칼의 원리’(Pascal’s Principle)를 남긴 위대한 수학자입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당시 최고의 수학자이며 근대 확률이론(the theory of probability)을 이룩한 파스칼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파스칼은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대신 ‘신이 있다, 없다’를 도박으로 걸었을 때를 가정해서 대답한 말이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파스칼의 도박’(Pascal’s Wager), 또는 ‘파스칼의 신의 존재에 대한 도박’이라고 불렀습니다.

"Pascal argued that it is a better ‘bet’ to believe that God exists, because the expected value of believing that God exists is always greater than the expected value resulting from non-belief."

해석하면 "파스칼은 신의 존재를 믿는 쪽이 보다 나은 베팅(도박)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를 믿는 쪽의 기대가치(확률에서의)가 안 믿는 쪽의 기대기치보다 언제나 크기 때문이다."

이어서 "Indeed, he claimed that the expected value is infinite. With this, he sought to convert those, to Christianity, who were uninterested in religion and unimpressed by previous theological arguments for it."

"사실, 파스칼은 기대가치는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다고 주장했다. 이것(파스칼의 도박)을 통해 파스칼은 종교에 흥미가 없거나 신학적 논쟁으로 종교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노력했다."

▲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
이 이야기는 파스칼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파스칼의 사후 만들어진 유고집 <팡세>에 나오는 이야기로 그의 신학과 철학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종교에 몰입한 것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팡세는 영어로 ‘thoughts’(생각, 사상)를 말합니다. 파스칼이 죽은 후 그의 단편적인 사상이나 일화, 명언들을 모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도박’이 흥미가 있기 때문이든, 아니면 파스칼의 수학에 기반을 둔 철학사상을 잘 대변하고 있든 간에, 널리 알려져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종교, 밑져야 본전이라면 믿을 필요가 있지"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또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 그러나 그 존재를 무시해 믿지 않다가 나중에(죽어서) 하나님을 만나 봉변을 당하느니, 조금 힘이 들더라도 믿어 보는 것이 더 나은 게 아니겠어. 나는 믿는 쪽에 걸 거야" ‘파스칼의 도박’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교회를 나가고, 절을 가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As Pascal sets it out, the options are two: believe or not believe. There is no third possibility. 파스칼이 지적한 대로 선택은 두 가지다.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3의 선택은 없다"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면 신을 믿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We can secure more safety from the belief in the existence of God than non-belief. 우리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존재를 믿는 것이 보다 많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파스칼이 이룩한 확률이론은 파스칼의 도박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하게 자란 파스칼이 수학계의 거목으로 명성을 이룬 후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도박에 빠졌고, 그 도박 속에서 수학적 재능이 있던 파스칼이 이를 놓치지 않고 확률이론을 성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파스칼의 이러한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제3의 선택도 있습니다.

"Belief is a wise wager. Granted that faith cannot be proved, what harm will come to you if you gamble on its truth and it proves false? If you gain, you gain all; if you lose, you lose nothing. Wager, then, without hesitation, that He exists.

설명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란 현명한 도박이다. 믿음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가정해 봐라. 진리에 돈을 걸었는데 그게 거짓으로 나타난다면 얼마 큰 손해를 보겠는가? 딴다면, 따서 싹쓸이를 한다면, (반대로) 잃었는데 별로 잃은 게 없다면? 그래서 주저하지 말고 신의 존재에 걸어라."

▲ '파스칼의 정리'. 사영기하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17세기나 18세기 유럽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들이 많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파스칼도 그렇습니다. 만약 성향(orientation)이 어느 쪽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파스칼은 아주 수학적인 편이라고 말할 수 있고 데카르트는 반반이고 가우스 같은 사람은 99% 이상 수학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조로 볼 때 철학 쪽이냐? 수학 쪽이냐? 라고 구분 짓는 자체가 어렵고, 이 구분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수학 속에 철학이 있었고 철학 속에 수학이 있었던 겁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과학과 철학을 생각하면 될 겁니다. 당시에 과학과 철학의 구분이 없었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 속에 과학(수학)이 있었고, 근세 유럽에서는 수학 속에 철학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이 과학(수학)을 지배했고 근세 유럽에서는 과학이 철학을 지배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철학과 과학을 하나로 본다는 차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그 성격은 아주 다릅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등 과학기술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자 유럽에서는 철학이나 인문학에서도 과학의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철학이든 사상이든 이론을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자는 운동이 펼쳐집니다. 합리주의라는 거죠. 그래서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게 등장하고 그러한 사상의 체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돼 서구사상의 모태가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리타분하고 구름 잡는 식의 철학이나 사상은 저리 가라’라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적이고 실질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면 그런 철학이나 사상은 필요 없다는 사조가 불어 닥칩니다. 그러한 물결 속에서 위대한 수학자이자 위대한 사상가 ‘생각하는 갈대’의 파스칼이 등장하는 겁니다.

"Man’s greatness lies in his power of thought. 인간의 위대함은 사고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명언도 남겼습니다. "Man is obviously made for thinking. Therein lies all his dignity and his merit; and his whole duty is to think as he ought. 인간은 확실히 사고하기 위해 태어났다. 인간의 존엄성과 장점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의무 또한 생각하는 데 있다."

파스칼이 이야기하는 사고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과학과 기술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과학과 기술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인해 질병을 고칠 수 있고 자연이 주는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지만 자연의 만물 가운데 으뜸이고 최고라는 이야기입니다.

파스칼은 위대한 수학자, 위대한 철학자에 걸맞게 많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The multitude which is not brought to act as unity, is confusion. That unity which has not its origin in the multitude is tyranny. 통일로 이어지지 않는 다수(대중)는 혼란일 뿐이다. 그리고 뿌리가 없는 다수(대중)의 통일은 독재다." 조금 추상적이지만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파스칼은 수학자이며 기독교를 신봉한 종교 철학자입니다. "Evil is easy, and has infinite forms. 악은 쉽게 저지를 수 있으며 무한한 형태로 나타난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죄악에 대한 지적으로 "I have discovered that all human evil comes from this, man’s being unable to sit still and quiet in a room alone. 모든 인간의 악은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인간은 방안에서 혼자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명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짓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위대함도 나타난다." 그런 뜻이 아닐까요?

▲ 파스칼이 남긴 유명한 책 팡세. ⓒ
종교적인 이야기로 이런 글도 남겼습니다. "Jesus is the God whom we can approach without pride and before whom we can humble ourselves without despair."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자존심을 져버리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신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절망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다."

"Faith embraces many truths which seem to contradict each other. 믿음은 서로가 모순처럼 보이는 진리들을 품을 수 있다." "Faith is different from proof; the latter is human, the former is a Gift from God. 믿음은 증명과는 다르다. 후자(증명)는 사람의 일이지만 전자(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유럽의 합리주의 조류 속에서 태어난 연약하고 섬세한 지성인 파스칼의 명언들은 과학을 넘어 종교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한 게 많습니다. 파스칼은 후세에 갈수록 이런 말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 때문에 종교적 독단주의에 빠졌다고 지적받기도 합니다.

수학과 더불어 합리주의에 빠져 있었던 파스칼은 말년에 이르러 합리주의나 전공인 수학과 같은 과학이론에 회의를 느낍니다.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병약했던 파스칼이 말년에 의지할 곳은 기독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말년에 몸은 연약해지고 자주 병고에 시달립니다. 수학조차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 간 그는 사변적인 사고에 빠졌고 거기에서 몇몇 친구들과 서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교환합니다. 이게 파스칼의 <팡세>입니다. 또한 유명한 <시골친구에게 쓴 편지>(Provincial Letter)라는 편지 모음집이 되었지요.

파스칼은 클레르몽페랑에서 태어났습니다. 3세 때 어머니를 잃고 소년시절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옵니다. 가난해서 학교 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혼자서 유클리드기하학을 공부했습니다. 16세에 ‘원뿔곡선 시론’을 발표하여 당시의 수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세무일을 돕기 위해 1642년 계산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루앙에 있을 때 많은 수학적 업적을 남겼고, 1647년 자신의 병을 진단 받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을 때 병문안을 온 데카르트와 친분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1654년 11월 어느 날 밤 종교적 환희를 체험한 후 모든 연구를 버리고 ‘포르 루아얄 수도원’(Port Royal Society)으로 들어갑니다.

▲ 종교에 귀의해 종교개혁에도 앞장선 파스칼은 얀센주의를 옹호했다. ⓒ
파스칼은 종교개혁에도 앞장섰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예수회와 포르 루아얄에 모인 얀센주의(Jansenism) 사이에 신학상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는 <시골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제목의 편지형식의 글을 익명으로 속속 간행하여 예수회 신학의 기만을 폭로하고 오만불손한 윤리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1656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8편의 서한문을 발표했습니다. 얀센주의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이단으로 지목됐습니다.

생각이 많으면 병이 많다고 했나요? ‘나약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의’ 주인공, 병약한 지성인 파스칼은 ‘그리스도교 변증론’을 집필하기 위해 초고를 쓰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39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칩니다. 근세 유럽의 합리주의 조류 속에서 말년에 회의를 품고 합리주의를 등진 채 종교에서 자신을 구하려고 했던 수학자, 철학자라고 이해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네요.

"The struggle alone pleases us, not the victory. 혼자만의 연구(투쟁)는 우리를 기쁘게 하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아니다." "과학(수학)적 발견은 우리에게 기쁨과 환희를 주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신에 대한 귀의(歸依)다." 그런 뜻일 것 같네요.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6)
유클리드
▲ 기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클리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을 가르쳐 'Euclid of Alexandria'라고 불린다.  ⓒ
"There is no other Royal path which leads to geometry."
"기하학을 잘 할 수 있는 왕도(王道)는 없다."
-유클리드(BC 330~BC 275): 그리스 수학자, 철학자-

익숙한 명언이죠?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Eculid)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제자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이름이 ‘Euclid of Alexandria’입니다. 그 제자들 가운데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2세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고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2번째 왕입니다. 이집트에도 여러 왕조가 있었는데, 이 왕조는 영토를 확장해 세력을 넓혔고 농업과 상업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학문을 숭상해 ‘세계 지식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예술과 과학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시인과 학자들을 크게 대접했습니다. ‘궁정시인’이라는 말도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절세미인이며 탁월한 정치가인 클레오파트라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가문으로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 딸입니다.

왕이 전쟁이나 통치술을 배우지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은 왜 배우느냐고요?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댐을 만들고 각종 공사를 하는 데는 측량학의 기본이 되는 기하학을 배워야 합니다. 치산치수라는 말처럼 기하학은 왕이 갖추어야 할 일종의 제왕학(帝王學)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스핑크스가 기하학의 완벽한 산물이라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어느 날 왕자가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좀더 쉽게 배우는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클리드가 오늘의 명언인 “폐하, 기하학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겁니다. 왕이라고 해서 빨리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이 후대에서는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 등의 말로 변하게 되죠.

▲ 기하학은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건축물 설계에 기초를 제공한다.  ⓒ
유클리드의 명언 가운데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The laws of nature are but mathematical methods of God.” “자연의 법칙이란 신(神)의 수학적인 방법일 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고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A line is length without breadth.” “선(선분)이란 넓이(면적)가 없는 길이이다.” 선분에 대한 유클리드의 정의이지요.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점은 길이도 없고 부피도 없다. 그러나 점이 모여서 길이(선분)가 되고 또 길이가 모여서 부피가 된다. 수학의 출발은 모순에 있다. 그러나 그 모순에서 출발한 수학은 가장 정확한 학문으로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당시 저는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어떻게 길이도 없고 부피도 없는 점이 모여 길이가 되고 부피를 이룰 수 있을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늘 소개하는 유클리드에 대해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점이 모여 길이가 되고 부피가 된다는 모순은 수학의 출발점이지만 또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학과 철학이 별개가 아니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규명하는 데는 과학(수학)이 필요하지만 모순을 규명하는 데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 한 구절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방정식을 이야기하면서 “이 x와 y는 무한히 뻗어나가는 거다. 이 조그마한 칠판에 그린 x와 y축 속에는 우주와 삼라만상의 법칙과 질서가 들어 있다. 평행선이란 영원히 안 만나는 두 선분이 아니라 무한대에서야 비로소 만나는 두 선분을 말한다. 그래서 수학자는 모두 철학자다”라고 말씀하셨죠,

요즘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또는 ‘과학의 인문화’ 등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많습니다. 책도 나오는 것 같고 각종 세미나도 열립니다. 기본적인 목적은 살벌한 과학에 인간성이라는 휴머니즘을 도입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과학만능주의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되고 있으니까 좀 인간적으로 살아보자, 그런 취지지요. 간단한 해답은 옛날의 과학과 철학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르네상스 운동입니다.

▲ 유클리드의 수학 이론은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향력이 대단하다.  ⓒ
유클리드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생물학자로 진화론의 신봉자인 헉슬리(Thomas Huxley)의 손자인 소설가 앨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유클리드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앨더스는 소설 ‘신세계’로 유명하죠. 이 사람도 할아버지를 닮아 처음에는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눈이 너무 나빠 영문학을 전공해 소설가가 됩니다.

“We have learnt that nothing is simple and rational except what we ourselves have invented; that God thinks in terms neither of Euclid nor of Riemann; that science has ‘explained’ nothing; that the more we know fantastic the world becomes and the profounder the surrounding darkness.”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발명한 것을 제외하면 명료하며 합리적인 것은 없다고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신은 유클리드도 리만도 아닌 다른 차원에서 생각한다고 배웠다. 과학은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많이 알면 알수록 세상은 더 미치광이가 되고 우리를 둘러싼 어둠은 깊어만 간다.”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fantastic’은 원래 미칠 정도로 좋다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좋은 의미가 아니라 ‘괴상한’, ‘이상한’, ‘미친’ 의미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래 그런 뜻입니다. 리만은 19세기 유명한 수학자입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리만의 가설(Riemann Hypothesis)’을 만든 수학자입니다.

또 유명한 수학자 에릭 벨(Eric Temple Bell)이 유클리드에 대해 평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Euclid taught me that without assumptions there is no proof. Therefore, in any argument, examine assumptions.” “유클리드는 나에게 가정(假定)이 없다면 증명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어떠한 주장에서도 가정을 잘 세워야 한다.” 가정은 수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설(假說)로 생각하고 증명은 입증, 주장은 이론이라는 말로 번역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 유클리드가 저술한 <기하학 원론>의 한 페이지.  ⓒ
유클리드를 생각하면서 수학에 대해 언급한 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A man whose mind has gone astray should study mathematics.” “마음의 길을 잃은 사람은 마땅히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입니다.

“In mathematics you don’t understand things. You just get used to them.” “수학을 공부할 때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그저 거기에 젖어 있으면 된다.” 핵폭탄 개발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컴퓨터(전자계산기)를 처음으로 고안한 폰 노이만(Johann von Neumann)의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수학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Mathematicians are like Frenchman; whatever you say to them they translate it into their own language and forthwith it is something entirely different.” “수학자는 프랑스 사람을 닮았다. 누가 뭐라고 이야기하든 자신의 언어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당장 다른 것이 돼버린다.”

“The good Christians should be aware of mathematicians, and all those who make empty prophecies. The danger already exists that the mathematicians have made a covenant with devil to darken the spirit and to confine man in the bonds of Hell"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훌륭한 기독교인은 수학자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한다. 수학자들이 인간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인간을 ‘지옥’의 굴레에 감금시키기 위해 악마와 계약했다는 위험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 354~430)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냐고요? 초기 그리스도교의 지도자입니다. 삼위일체설(theory of trinity)을 주장하고 정립한 사람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청렴과 결백,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주장하는 스토아 학파의 신봉자입니다.

“Life is good for only two things, discovering mathematics and teaching mathematics.” “삶이란 이 두 가지 때문에 좋다. 수학을 발견하고, 또 수학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수학자 시메옹 푸아송(Simeon Poisson)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개발한 방정식이 대단해서 아인슈타인이 한때 여기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유클리드로 다시 돌아갑시다. 오늘날 수학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공리(公理), 정의(定義), 공준(公準)이라는 말들이 유클리드에서 비롯됩니다. 점, 선, 면 등과 같은 개념은 누구나 잘 아는 상식적인 것이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기초 개념들도 필요할 때 혼돈하지 않고 쓸 수 있도록 그 성질만이라도 약속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유클리드는 생각한 겁니다.

예를 들어 “A point is that which has no part.” “점은 부분(면적)이 전혀 없다.” “A line is a breadthless length.” “선(선분)은 나비가 없는 길이이다.” “A straight line lies equally with respect to the points on itself.” “직선이란 점들이 꼭 같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클리드의 정의입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이론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비유클리드란 간단히 말해서 유클리드의 이론에 반대하고 수정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성과는 없다는 게 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그만큼 유클리드가 수학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말입니다.

이미 소개했지만 수학자 가우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In the theory of parallels we are even now not further than Euclid. This is a shameful part of mathematics.” “수학의 평행이론에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유클리드보다 나은 게 없다. 이것은 (현대) 수학의 부끄러운 부분이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5)
플레밍
▲ 알렉산터 플레밍.  ⓒ
“I have been trying to point out that in our lives chance may have an astonishing influence and, if I may offer advice to the young laboratory worker. It would be this - never to neglect an extraordinary appearance or happening.”

“실험실의 젊은 연구원들에게 충고를 한마디 한다면 나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연(기회)은 놀랄 만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지적하려고 한다. 그것(충고)은 이렇다. (실험실에서) 특별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나 생기는 일을 절대로 소홀히 다루지 말라.”
-플레밍(1881-1955):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균학자, 페니실린 발명자-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아시죠? 어떻게 해서 유명해진 사람인지를 알면 이 명언이 시사하는 바가 뭔지도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해 인류를 세균과 전염병에서 구해 인간 수명을 크게 연장시키는 데 이바지한 과학자이지요.

‘마법의 탄환(bullet of magic)’, ‘만병 통치약(all-cure method)’으로까지 불리는 페니실린은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아주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이 점에서 플레밍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플레밍을 과소평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어떤 정치가의 이야기처럼 ‘길 가다가 지갑 주운 격’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운은 우연히 찾아오지만 그래도 준비된(prepared) 사람에게 오는 겁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 개발이 자신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겸허하게 인정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It is the lone worker who makes the first advance in a subject; the details may be worked out by a team, but the prime idea is due to enterprise, thought, and perception of individual.”

해석하자면 “한 주제(이론)에서 가장 앞서 있는 사람은 고독한 연구원이다. (그에 따른) 세부적인 일은 팀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최초의 아이디어는 개인의 모험, 사고, 그리고 인식능력에 의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사하는 실제적인 페니실린이 나온 것은 플레밍이 1929년 자신의 실험 결과를 발표한 후 11년이 지난 1940년의 일입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플로리(H.W. Florey)와 에른스트 체인(Ernst B. Chain)에 의해서 상용화할 수 있는 지금의 항생제가 개발됐습니다. 플레밍이 발견한 푸른곰팡이의 종류는 무려 650여 종이고 그 중에서 한 종류만이 페니실린의 원료가 됐습니다.

▲ 연구실에서의 플레밍, 우연은 그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
플레밍은 1928년 푸른곰팡이에서 발견한, 세균의 증식 억제 기능을 지닌 물질에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연구를 종합 정리해 1년 후인 1929년 당시 권위 있는 세균학 연구지인 ‘영국 실험병리학 저널(British Journal of Experimental Pathology)’에 발표합니다. 인류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호탄을 날린 것이지요. 플레밍은 이후 푸른곰팡이를 이용해 세균을 죽이는 실험을 계속하지만 항생제로서의 약을 만드는 데는 실패합니다.

세균학자들 사이에서 플레밍의 논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무렵, 독일의 총명한 생화학자 체인 박사가 그 논문을 읽고 상당한 관심을 보입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하고 호주 출신의 외과 의사인 플로리 박사와 한 팀이 돼 결국 페니실린 상용화에 성공합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이 두 사람은 1945년 플레밍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플레밍의 생애나 페니실린의 탄생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항간에 많이 도는 ‘플레밍과 처칠’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야기는 아름다운 것이 좋습니다. 그게 서로 간의 은혜에 보답하는 거라면 더욱더 좋지요. 그러나 플레밍과 처칠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두 사람을 좋게 엮는다면 재미도 있고 교훈적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심지어 국내 유력 일간지조차 그렇게 취급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지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영국의 대단한 가문의 아들이 시골(스코틀랜드)로 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발에 쥐가 났다. 살려달라고 소리치자 시골 농부의 한 아들이 물에 뛰어 들어 그를 살려 주었다. 귀족의 아들은 자신을 구해준 시골 소년과 친구가 된다. 둘은 편지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우정을 키워 나간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귀족 아들은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자 시골 친구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집이 가난해서 집안 일을 도와야 해’라고 답장했다. 그러자 귀족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해 친구를 런던으로 데려와 공부를 하게 만든다. 그 시골 친구는 커서 오늘의 주인공 알렉산더 플레밍이 되고 귀족 아들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수상이 된다.

▲ 페니실린은 플레밍의 실험실에서 우연히 발견돼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마법의 탄환이다.  ⓒ
처칠이 군에 있을 때,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플레밍은 자신이 발견한 페니실린으로 처칠을 치료한다. 당시에는 처칠이 아프리카로 출정했기 때문에 그곳까지 날아가 그의 폐렴을 치료해 자신을 의과대학 교수로 만들어 준 은혜를 갚는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스토리입니다.

이와 관련된 플레밍 전문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야기는 좋지만 사실과는 전여 무관하다고 부정합니다. “The story that Sir Alexander Fleming or his father(the renditions vary) saved Churchill’s life had been roaring around internet lately. We must have had fifty emails about it."

공부도 할 겸, 사실도 확인할 겸, 조금씩 나눠서 번역해 보기로 하죠. “플레밍경이나 그의 아버지가(플레밍인지 아버지인지는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 처칠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요즘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다. 벌써 50개가 넘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Charming as it is, it is certainly fiction. The story apparently originated in Worship Program for Juniors, by Alice A. Bay and Elizabeth Jones Oakbery, published in 1950 by an American religious house, in a chapter entitled ‘The Power of Kindness’."

“매혹적인 이야기지만 완전히 허구다. 그 이야기는 어린이들을 위한 선교프로그램에서 베이와 오크베리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됐고 ‘친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1950년 미국의 한 교회에서 출판한 책에서 비롯된다.” 선교를 목적으로 인과응보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만든 픽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아니라 해도 믿는다고 나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과거의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을 거니깐 말입니다.

이 사이트는 이러한 사실을 제시하면서 플레밍과 처칠의 관계가 허구라는 점을 주장합니다. “A fundamental problem with the story is that Chutchill was treated for this very serious strain of pneumonia not with penicillin but with ‘M&B’, a short name for sulfadiazine produced by Mmay and Baker Pharmaceuticals.”

“이 이야기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는 처칠은 그의 심각한 폐렴을 페니실린이 아니라 ‘메이 앤드 베이커 제약회사’가 생산한 설파디아진이라는 이름의 ‘M&B’로 고쳤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처칠이 폐렴에 걸린 것은 사실이고 위독했지만 항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페니실린으로 고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둘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사이트는 마틴 길버트경(Sir Martin Gilbert)이라는 전기작가(biographer)의 글을 인용하면서 “The ages of Churchill and Fleming(or Fleming’s father) do not support the various accounts calculated.” “처칠과 플레밍(또는 그의 부친)의 나이를 보더라도 항간의 이야기가 맞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지는 이 사이트의 주장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Alexander Fleming was seven years younger than Churchill. If he was plowing a field at say age 13, Churchill would have been 20. There is no record of Churchill nearly drowning in Scotland or any other age; or of Lord Randolph paying for Alexander’s education.”

▲ 플레밍은 푸른곰팡이와 같은 보잘 것 없는 미물도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 지를 깨우쳐 준 대표적인 학자다.  ⓒ
“플레밍은 처칠보다 7살 아래다. 만약 플레밍이 13세에 들판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면 처칠은 당시 20세가 된다. 그러나 그때 처칠이 스코틀랜드에서 빠져 죽을 뻔했다는 기록은 없고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서도 없다. 그리고 란돌프경(처칠의 부친)이 플레밍의 교육비를 지불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다.”

요점은 란돌프경 같은 유명한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의 기록은 당연히 남아 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플레밍과 처칠의 관계가 진실이냐? 허구냐? 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따지는 것이 그렇게 생산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하찮은 미물이라도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유용한 게 많다는 겁니다. 동의보감 허준의 이야기처럼 “천하게 생각해 지나쳐 버릴 개천의 이끼도 천하의 명약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푸른곰팡이가 인류를 구원할 명약으로 등장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여러 날 실험실을 비워뒀던 플레밍이 실험용 접시에서 배양하던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이 죽어 있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겁니다. 대표적인 화농균인 포도상구균 배양기에 발생한 푸른곰팡이 주위가 무균 상태라는 사실을 우연히 확인합니다. 푸른곰팡이가 화농균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된 거죠.

“A good gulf of hot whiskey at bedtime - it’s not very scientific but it helps. 잠자리에서 독한 위스키를 들이키는 것, 그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과학에) 도움이 된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위대한 발견이란 꼭 과학적인 연구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Nature makes penicillin, I just found it. 자연이 페니실린을 만든 것이고 나는 발견했을 뿐이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4)
코발레프스카야
▲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  ⓒ
"It is impossible to be a mathematician without being a poet in soul."

"영혼 속에서 시를 노래하지 않고서는 (위대한) 수학자가 될 수 없다."
-코발레프스카야(1850~1891): 러시아 출신의 수학자, 물리학자, 시인, 소설가-

수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Sofia Vasilyevna Kovalevskaya). 그녀는 수학 속에서 영혼을 노래한 시인으로 근세 유럽이 배출한 천재 여성 수학자입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녀에게 ‘영혼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수학자’라는 별칭을 지어 주었습니다. 소개하는 짧은 명언이 그 전부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발레프스카야의 대단한 업적을 대표하는 말이 있습니다. "She is famous mathematician and writer who made a valuable contribution to the theory of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s. … She was the first woman in modern Europe to gain a doctorate in mathematics, the first to join the editorial board of scientific journal, and the first to be appointed professor of mathematics."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그녀는 유명한 수학자이며 소설가로 편미분방정식 이론에 지대한 공로를 남겼다. … 그녀는 근대 유럽시대에 수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처음 받은 여성이다. 과학저널 첫 여성 편집위원이었고 수학교수로 임명된 첫 여성이다." 대단한 여성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소피아 대신 소냐라고 불리었습니다. 1850년 1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녀의 아버지는 한때 러시아 황제 친위대 장군을 지냈던 인물로 집안은 유복했지만 가정은 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인 소냐는 가정교사를 통해 집안에서 교육을 받았고 수학을 더 공부하고 싶었으나 대학은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는 여성에게 대학입학을 허용하지 않았고 또 미혼녀는 외국여행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외국으로 가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친은 완고한 성격이라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시에 여성이 대학에 진학해 특히 수학분야에서 공부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죠. 또 그러한 열정이 없었다면 ‘영혼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수학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Say what you know, do what you must, come what may.” 알고 있는 것은 말하라.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하라. 가능성 있는 것에는 항상 도전하라." 코발레프스카야의 또 다른 명언입니다. 그녀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비단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학문에 대해 광기(madness)에 가까운 집착과 열정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공부를 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868년 고생물학자인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Vladmir Kovalevsky)와 결혼합니다. 오직 외국으로 나가 공부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사랑 없이 편의를 위한 위장결혼(marriage for convenience)이었죠. 그래서 학문의 중심인 하이델베르크로 갈 수 있었고 대학에 입학해서 그녀의 꿈을 하나둘 펼쳐가기 시작합니다. 위장결혼이 정말 확실하냐? 라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뒷받침하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고독 속에서 학문에 열중했고, 또 그 속에서 아름다운 시와 영혼을 노래한 건 사실입니다.

수학을 시와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Many who have never had the occasion to discover more about mathematics consider it a dry and arid science. In reality, however, it is a science within which demands the greatest imagination." "수학에 대해 많은 발견을 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수학을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위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학문이다."라고 말이죠.

다시 말해서 수학은 어떤 학문이나 예술보다도 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아름다운 과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시 보충하자면 수학은 겉보기에는 어렵고 감정이 없는 냉혹한 학문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쉽고, 감성이 풍부한 따뜻한 학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회피하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초입니다.

코발레프스카야가 독감이 겹친 폐렴으로 죽음을 며칠 앞둔 시기에 독일의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Did you come across any opponents of your study of mathematics because of your gender or age? 성이나 나이라는 이유 때문에 수학 연구에서 어떤 방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병석에 누워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코발레프스카야는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Actually, my father was my biggest opponent. He put a stop to my lessons. He harbored a strong prejudice against learned woman." 해석하면 "사실, 아버지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배운 여성을 싫어하는 큰 편견이 있었습니다."

남편 블라드미르와의 생활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남편과는 전혀 사랑하는 마음 없이 위장 결혼했다는 세간의 의혹이 많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기자가 직접 물어본 것이죠. "Did you and Vladimir have a social life outside of your studies? 공부(하는 장소)를 떠나서는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까?"

▲ 천재 여성 수학자 코발레프스카야는 온갖 명예에도 불구하고 애증의 갈등 속에서 비참한 생을 마쳤다.  ⓒ
코발레프스카야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No, mathematics was my hiding place. We were still not living together and I was very nervous and withdrawn. I would stay at my desk, pace and return to work for days."

"아닙니다. 수학은 내가 쉴 수 있는 피난처(안식처)입니다. 우리는 계속 같이 살지 않았고 나는 신경이 예민했고 깊이 움츠려 들어 있었죠. 나는 며칠 동안이나 서재에 머물면서 걸어 다니다가는 일터로 가곤 했지요." 여기서 피난처라고 한 것은 남편보다 수학이 더 좋았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바랍니다.

그녀의 대답은 다시 이어집니다. "My only recreation was long walks when Vladimir visited. When I returned to Russia I felt released from the prison in which my best thoughts were in bondage. You cannot think what suffering it is to have to speak always foreign languages to your friends. You might as well wear a mask on your face."

"남편이 방문했을 때 유일한 즐거움은 오랫동안 산책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 나의 가장아름다운 사고를 구속했던 감옥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죠. 절친한 친구들에게 외국어로 말해야만 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얼굴을 전부 가리는 게 좋을 정도죠."

기자는 자살로 생을 마친 남편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질문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As with any suicide, I had guilt. I still feel somewhat responsible because Fufa and I left Russia and returned to Berlin during the terrible period and his sad end."

해석하면, "어떻게 자살했던 죄책감을 느낍니다. 나는 여전히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나는 러시아를 떠났으나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가 생을 마감하자 베를린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유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자 엉망이 됐고 가난 속에서 남편은 자살해서 죽습니다. 이로 인해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대목을 유심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In an attempt to rid myself of this feelings of guilt, I immersed myself in the mathematical world once more, my hiding place. 나는 이러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피난처인 수학에 다시 한번 몰두하곤 했습니다." 수학에 얼마나 대단한 집착이 있었는지 짐작하시겠죠? 남편에 대한 죄책감도 수학이 해결해 주었던 겁니다.

영혼을 노래한 수학자의 이미지와 달리 성격은 괴팍하고 지독히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지만 돈이 궁해지자 아기를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막심(Maxim Kovalevsky)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건장하고 뚱뚱해서 ‘Fat Maxi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에 대한 애칭이죠. 막심은 변호사, 역사가, 사회학자로 돈도 많았고 사회적인 명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술회합니다.

"Neither of us can go back to Russia for living. I am never happy with him. We have many fights and I often become jealous and possessive and move quickly from love to anger. He mostly teaches at universities in France and often leaves me."

"우리는 결코 러시아(고향)로 갈 수 없는 처지였지요. 저는 그와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많이 다투었고 저는 자주 질투심이 생겼고 소유욕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증오로 자주 변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대학에서 강의를 자주해서 저와 떨어지곤 했지요" 보충 설명하자면 여기서 질투와 소유욕이란 애인인 막심이 다른 여자들과 사귀기 때문에 생기는 여성의 시기심을 이야기합니다.

"I feel abandoned when we are apart. He seemed to just turn up when I won the Prix Bordin. Even with my honors, I was unhappy because of him.” 헤어져 있을 때는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막심)는 내가 보르댕상을 받았을 때 나타났습니다. 내가 받은 여러가지 영광에도 불구하고 저는 막심 때문에 불행했습니다.

천재 여성 수학자 코발레프스카야의 애인 막심에 대한 애정과 분노, 그에 따른 좌절은 대단했습니다. "Letters of congratulations were pouring in from all sides, but I was as miserable as a dog. No, I hope, for their sake, that dogs cannot be as unhappy as human creatures, especially not women."

"(보르댕상을 받았을 때) 여러 곳에서 축하편지가 쇄도했지요. 그러나 저는 개만큼이나 불행했습니다. 희망을 찾을 곳이 없었죠. 개들도 창조물인 인간, 특히 여성만큼 불행할 수는 없을 겁니다." 여성을 복수인 women으로 쓴 걸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남성의 사랑에서 멀어졌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은 비참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 코발레프스카야는 난해한 수학을 시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
그녀의 생을 빼앗아 간 폐렴을 앓기 시작한 것은 애인 막심과 결별을 선언한 지 이틀 만의 일입니다. 그 스트레스로 바로 독감을 수반한 폐렴을 앓습니다. 그래서 그 병으로 세상을 하직합니다. 수학에 그렇게 대단한 정열을 쏟았던 오늘의 주인공도 애인의 변심에는 어쩔 수가 없었던 건가요? 애인과의 결별과 폐렴은 각기 서로 다른 건데 후세 사람들이 각색한 건 아닌가요?

어쨌든 그녀는 남편 블라디미르와 결혼해 베를린대학에서 수학을 배우고, 1874년 유럽 수학의 본거지인 괴팅겐 대학에서 편미분방정식론, 제3종 아벨적분, 토성의 고리모양 등에 관한 세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귀국 후 남편과 실질적인 결혼생활에 들어갔으나 남편은 곧 사업실패로 자살하고 맙니다.

그 후 1884년 스톡홀름대학의 초청을 받아 교수로 갑니다. 최초의 여성 수학교수가 된 것이죠. 그 곳에서는 ‘고정점(固定點)을 둘러싼 강체(剛體)의 회전에 관한 논문’으로 1888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학술원)로부터 권위 있는 보르댕상(Bordin Prize)을 받습니다. 자서전적 소설 ‘라에프스키가(家)의 자매’ 등의 문학작품도 남겼습니다.

그녀의 수학적 재능은 너무나 특이해 그녀의 어린 시절 침실 벽이 러시아의 한 수학자의 강의 노트로 도배가 되어 있을 정도였다는 이야긴 들어보셨죠? 그래서 독일에서 미적분학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할 때 그녀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고 합니다. 소설에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와도 친밀했다고 합니다.

‘문장출어빈궁(文章出於貧窮)’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글은 가난 속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글 쓰는 선비는 모름지기 청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글 재주 좋은 한 양반이 나중에는 이 말을 ‘빈궁출어문장(貧窮出於文章)’으로 바꾸어 ‘글을 쓰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적어놓았고 많은 사람이 또 이를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글 잘하면 빈복하다’는 말도 생긴 겁니다.

요는 수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코발레프스카야의 명언과 그녀의 일생을 접하면서 ‘과연 천재란 불행이라는 업보를 짊어지고 태어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코발레프스카야도 불행한 삶을 살았겠지만 남편 블라디미르도 참 고생했을 것 같네요? 그렇지 않나요? 결혼했으면서도 아내처럼 살아주지 않았던 코발레프스키야에 대해 남편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자이로스코프 방정식을 명확히 해결해 남성을 뛰어 넘은 수학자.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원치 않은 위장결혼까지 마다하지 않은 천재 수학자. 애인에게 버림받은 여성. 수학의 최고봉의 지위에서 50을 넘기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한 비운의 여성 수학자.

천재 여성 수학자에게 현명한 아내,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부터 잘못된 가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시를 노래하며 수학을 예술의 경지까지 이끌어낸 코발레프스카야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는 겁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3)
가우스
▲ 세계가 낳은 수학자 가우스. 독일 기초과학의 자존심이다.  ⓒ
Mathematics is the queen of the sciences and number theory the queen of mathematics.
She often condescends to render service to astronomy and other natural sciences, but in all relations she is entitled to the first rank.

수학은 모든 과학의 여왕이며 수 이론(數論)은 수학의 여왕이다. 그 여왕(수학)은 겸손해서 종종 천문학이나 다른 자연과학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관계(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에서 그 여왕은 최고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다.
-가우스(1777~1855): 독일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예를 들어 1+2+3+4+5+6+7+8+9+10을 계산해 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요? 처음부터 계속 계산해 나가면서 합산하나요? 간단하지만 이렇게 해보면 쉬울 겁니다. 1은 뒤에 있는 9하고 합쳐서 10을 만들고 2는 8, 3은 7, 4는 6하고 각각 합치면 10이 4개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합인 40에다 남은 10과 5를 더하면 총 55가 됩니다. 노트에다 쓰고 직접 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방식으로 1에서 20까지 아니면 30까지, 그래서 100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천, 만, 억, 조까지, 수의 무한 것만큼이나 무한한 계산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무한한 우주를 설명하는 천체 물리학 이론을 낳고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상대성 이론도 탄생하는 겁니다. 또한 그를 바탕으로 최신의 과학기술이 탄생하고 공포의 핵무기도 개발되는 겁니다.

근세 유럽의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가 5살 때 이러한 방법으로 계산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수학 신동이 나타난 것이죠. 수 이론에 밝은 그는 커서 대단한 수학자가 됩니다. 후세 사람들은 그에게 ‘수학의 왕자(prince of mathematics)’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다시 그에게 위대한 찬사를 보내면서 왕자에서 한 계단 진급해 ‘수학의 왕(Mathematical God)’이라는 호칭을 만들어 줍니다.

수학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정연한 논리가 있습니다. 우주의 이치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철학자가 됩니다. 또 그 속에 삼라만상의 조화라는 신도 등장합니다.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자연의 정연한 논리라는 신과 과학은 별개가 아니라 같다는 주장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수능이든 뭐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국어나 영어에서 100점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관식 시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수학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은 확실한 논리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를 찾아내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수학에는 ‘대충(roughly)’이나 ‘아마(probably)’라는 게 없습니다. ‘절대(absolutely)’만이 존재합니다.

취재를 하다가 캐나다 이론 천체물리연구소 소장인 리차드 본드(Richard Bond) 박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과학원(KIAS)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생각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Physics is the language of the universe, mathematics is the language of all sciences, and biology is the language of all living things”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물리학은 우주의 언어다. 수학은 모든 과학의 언어다. 생물학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언어다”

“It may be true, that men, who are mere mathematicians, have certain specific shortcomings; however, that is not the fault of mathematicians, for it is equally true of every other exclusive occupation. 순수 수학자가 된 사람에게 특별한 결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학자의 결점이 아니라 독특한 직업을 같고 있는 사람에게 꼭 같이 나타나는 일(진실)이다.”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수학자라는 사람에게는 결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수학이라는 학문에는 결점이 없다”라는 걸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 수학의 왕자 가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주화.  ⓒ
“The enchanting charms of this sublime science reveal themselves in all their beauty only to those who have the courage to go deeply into it. 이러한 고상한 과학(수학)의 놀랄 만한 매력은 그 아름다움을 그(수학)에 빠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에게만 보여준답니다.” 가우스가 당대 최고의 여성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소피 제르망(Sophie Germain)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둘이 사랑하고 연애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여성에게 이 편지를 보낸 건가요? 러브레터 속에 학문의 이야기가 들어가면 너무나 아름답고 고상할 것 같습니다.

“We must admit with humility that, while number is purely a product of our minds, space has a reality outside our minds, so that we cannot completely prescribe its properties a priori.” 학문적 동지인 수학자 베셀(Friedrich Wilhelm Bessel)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수는 우리 마음의 산물이고, 공간은 마음 밖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가 주는 재산이 최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God does arithmetic. 신도 수학을 한다.” “신도 수학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수학적인 사고를 갖고 세상을 창조했다. 수학적인 사고 없이 질서 정연한 자연이 존재할 수 없다. 신은 대단히 총명한 사람이다” 그런 뜻이죠. 간단하고 짧은 말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게 바로 명언입니다. 과학자의 명언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약간 긴 이야긴데 나누어 보면서 해석해 보겠습니다. “It is not knowledge, but the act of learning, not possession but the act of getting there, which grants the greatest enjoyment.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소유가 아니라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이어서 “When I have clarified and exhausted a subject, then I turn away from it, in order to go into darkness again. 내가 만든 한 주제(이론)을 전부 파악하고 다 터득하고 나면 나는 그 이론과 결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다시 가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이야기죠?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의 명언입니다.

다시 이어서 “The never-satisfied man is so strange; if he has completed a structure, then it is not in order to dwell in it peacefully, but in order to begin another. 인간이란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참 이상한 동물이다. 만약 그가 한 구조(이론)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그 속에서 평화스럽게 안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른 것(이론)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굳이 보충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한 부분이 남았습니다. “I imagine the world conqueror must feel thus, who, after one kingdom is scarcely conquered, stretches out his arms for others. 세계를 지배한 정복자들은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국은 결코 정복되는 일이 없다. 다만 그의 팔을 남에게 뻗었을 뿐이다.”

무슨 말인가요? 해석을 잘못했나요? 수학의 왕국을 건설한 가우스가 어떤 의미로 이런 이야길 했나요? “진정한 의미의 정복이란 없다. 수학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수학이라는 거대한 대륙은 결코 정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수학을 통달한 ‘도사, 천재, 정복자’라고 하지만 한참 멀었다. 그리고 그런 도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은 우주가 그런 것처럼 아주 광활하고 넓다.” 그런 뜻 아닐까요?

이러한 명언도 남겼습니다. “When a philosopher says something that is true then it is trivial. When he says something that is not trivial then it is false. 철학자가 진실한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가 하찮지 않은(유별난)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곰곰이 새겨볼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In the theory of parallels we are even now not further than Euclid. This is a shameful part of mathematics. (수학의) 평행이론에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유클리드(이론)보다 더 나은 게 없다. 이것은 수학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다.”

▲ 수학을 사랑하는 연인처럼 생각했던 가우스는 근세 최고의 수학자로 꼽힌다.  ⓒ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수학자 유클리드 아시죠?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경의 인물입니다. 그 후 천년이 흐른 뒤에도 유클리드의 이론은 확고부동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비유클리드란 유클리드 수학이론에 일종의 반론, 또는 수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가우스가 중심에 선 겁니다.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에서 유클리드를 다시 다루겠습니다. 어쨌든 가우스가 유클리드를 얼마나 대단한 학자로 생각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가우스는 어릴 때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독일 브룬스빅 (Brunswick)의 가난한 집안에서 일용 노동자인 아버지와 농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대한 재능은 대단했지만 아버지는 그 재능을 무시해서 “수학하는 것보다 나처럼 노동이나 해!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어’’라며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우스 어머니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재능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위대한 수학자의 뒤에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던 겁니다. 가우스는 별로 알아주지도 않고 돈벌이도 안 되는 수학에 매달리면서 일생 동안 가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모든 수학자들의 왕으로 존경 받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와 영국의 뉴턴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대 수학자로 불립니다.

그는 독일 수학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괴팅겐 대학을 다녔고, 1830년 무렵부터 이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곳에서 좋은 조건으로 초청도 했지만 괴팅겐 대학을 지켰습니다. 그의 사후에 발행된 기념주화에는 다음과 같은 찬사의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독일어로 ‘mathematicorum princeps(수학의 왕자)’. 가우스는 대단한 수학자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2)
막스 플랑크
▲ 막스 플랑크.  ⓒ
Science cannot solve the ultimate mystery of nature. And that is because, in the last analysis, we ourselves are a part of the mystery that we are trying to solve.

과학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신비를 풀 수 없다. (자연을) 마지막으로 해석하는 순간에도 우리 자신은 결국 우리가 풀려고 하는 그 신비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막스 플랑크(1858~1947) : 독일 이론물리학자, 양자론 창시자 -

위대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막스 플랑크 재단이 작년(2005년)에 16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산하 기관인 양자광학 연구소의 테어도어 헨슈(Theodor Hansch) 박사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헨슈 박사의 연구 분야가 양자이론을 창시한 막스 플랑크의 연구를 이어 받은 것으로 더욱 의미가 있었던 거죠.

“No burden is so heavy for a man to bear as a succession of happy days. 행복한 나날을 계속해야 하겠다는 것만큼 무거운 짐은 없다.” “Ego is the immediate dictate of human consciousness. 이기주의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독재자다.”

전쟁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도 그렇고 응용과학도 2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이 중심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독일이 있었던 거죠. 그러나 2차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중심지는 미국으로 이동합니다. 히틀러 집권 후 독일은 기초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홀대로 많은 사람들이 조국 독일을 등져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망명합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물리학의 천재 아인슈타인 박사가 물체의 질량이 엄청난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는 E=mc2의 공식을 발견한 것도 막스 플랑크 재단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재단의 한 연구소에서 이루어 낸 업적입니다. 히틀러는 무기개발 경쟁에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어렵고 난해한 기초과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못했죠. 더구나 까다로운 과학자들은 질색이었습니다. 독일이 패망할 무렵에야 비로소 신무기 개발에서 기초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합니다. 그러나 때는 늦은 거죠.

▲ 막스 플랑크는 독일 과학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킨 학자다. 그래서 그는 비운의 과학자가 됐는지도 모른다.  ⓒ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막스 플랑크는 많은 독일의 과학자들이 학문의 자유를 위해 줄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망명을 하는데도 조국 독일에 남아 연구를 합니다. 그렇다고 히틀러의 과학정책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많은 언쟁을 벌입니다. 그 결과 그의 명성과 명예와는 전혀 다른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막스 플랑크 재단은 산하에 생물학과 의학 분야 32개, 화학과 물리학 분야 30개, 그리고 예술과 인문학 분야 17개 등 81개 연구소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응용과학을 주로 전담하고 있는 브라운호퍼 재단과 함께 과학기술 강국 독일을 이끌고 있는 기초과학 연구소입니다. 독일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All matter originates and exists only by virtue of a force. We must assume behind this force the existence of a conscious and intelligent Mind. This Mind is matrix of all matter.” 해석해 보면 “모든 사물(삼라만상)은 힘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고 존재한다… 이러한 힘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의식적이고 지적인 ‘마음’을 가정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삼라만상의 모태(母胎)다.” 번역이 깔끔하지 못한 것 같네요. 그래도 이해하시죠?

“A new scientific truth does not triumph by convincing its opponents and making them see the light, rather because its opponents eventually die, and a new generation grows up that is familiar with it.”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해석하자면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보도록 하고 확인시킴으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결국 사라지고(죽고)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 그 진리에 친숙해질 때 승리하는 것이다.” 선각자의 외로움과 고독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아니면 각기 다른 과학자는 각기 다른 자신의 연구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긴가요. 둘 다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음미해도 좋을 것 같네요.

비슷한 명언으로 이런 말도 있습니다. “An important scientific innovation rarely makes its way by gradually winning over and converting its opponents : What does happen is that the opponents gradually die out. 중요한 과학의 혁신은 상대방의 마음을 점차 변하게 하고 굴복시킨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성공은 상대방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과학을 종교로 믿었던 막스 플랑크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종교적인 혁명가입니다. 창조냐 진화냐? 성서는 과학과 위배된다? 무신론이냐 유신론이냐? 그런 부류가 아닙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갖고 이마에 핏줄을 세워가며 자기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겁니다.

▲ 막스 플랑크 재단은 과학기술 강국 독일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소다.  ⓒ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종교가입니다. 너무나 독실합니다. 엄숙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의 대상은 자연이고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자연과 자연의 이치를 유형의 창조주나 하나님과 연결시킬 것이냐, 무형의 신으로 연결시킬 것이냐는 다릅니다. 좁은 달팽이 집에서 사는 인간들의 다툼이기도 합니다.

‘와우각상(蝸牛角上)’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날 한 달팽이가 있었는데 왼쪽 뿔에 촉(觸)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서로 영토를 차지하려고 늘 싸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조그마한 달팽이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부싯돌에 번쩍하고 끝나는 불꽃 같은 인생에서 서로 길고 짧음을 다툰들 그 세월이 얼마나 되겠는가. 달팽이 뿔만큼 작은 세상에서 서로 잘 났다고 겨룬들 그 세상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국의 유명한 학자 채근담(菜根譚)의 해석이자 주석입니다. 옛날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글’로 이 분이 유명했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잘 읽지 않는 것 같아요. 짬이 나면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학을 종교로 승화시킨 막스 플랑크는 이런 명언도 남겼습니다. “Anybody who has been seriously engaged in scientific work of any kind realizes that over the entrance to the gates of the temple of science are written the words : ‘Ye must have faith.’ It is a quality which the scientist cannot dispense with.”

“어떤 종류든 간에 과학적 작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학의 사원(寺院)을 들어가는 현관에 이와 같은 말이 쓰여 있다는 걸 깨달아라. ‘신념을 가져야 한다.’ 과학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성품이다.” 멋있는 말이죠? 막스 플랑크의 철학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학문에 대한 신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We have no right to assume that any physical laws exist, or if they have existed up until now, that they will continue to exist in a similar manner in the future. 우리는 어떤 (특별한) 물리학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권한이 없다. 설사 이제까지 존재한 법칙이라도 그 법칙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자연은 심오해서 탐구하고 연구해야 할 게 무궁무진하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물리학적 이론이나 가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수정되고 변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 막스 플랑크는 아인슈타인과 교류도 많았다. 아인슈타인(오른쪽)에게 막스 플랑크 메달을 수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막스 플랑크의 양자론은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아인슈타인 박사의 이론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의 제자고 그를 가르쳤다”라는 말은 심할지 모르겠지만 많은 접촉을 가졌고 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서 같은 분야에 근무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막스 플랑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학자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파괴적인 인종정책에 반대해 이를 말리려고 히틀러를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망명하라고 권유하지만 생을 다할 때까지 독일에 계속 남습니다. 히틀러에게 외면당한 그가 뭣 때문에 남겠습니까? 그는 히틀러의 독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의 과학을 지키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말년에 철학, 미학,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저술도 많이 합니다.

아마 그가 덜 금욕적이고 덜 철학적이었다면 50세 이후에 그에게 불어 닥친 여러 가지 불행들을 막을 수가 있었을 거라고 말 많은 후세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막스 플랑크는 뮌헨 은행가의 딸인 첫째 부인 M.메르크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M.메르크는 결혼한 지 22년 만에 죽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막스 플랑크는 첫째 부인 사이에 두 아들과 쌍둥이 딸이 있었습니다. 첫 아들 카를(카를 플랑크)은 1916년 전투에서 사망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에 두 딸 가운데 마르가르테는 출산 중에 죽었고 1919년에는 똑 같은 일이 남은 마지막 딸 에마에게도 일어납니다.

2차 대전은 그에게 더 큰 비극을 안겨줍니다. 베를린에 있던 막스 플랑크의 집은 1944년 폭탄 투하로 완전히 파괴됐고 마지막 남은 둘째 아들 에르빈은 같은 해 7월 히틀러의 목숨을 노렸다는 이유로 체포돼 전쟁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초 게슈타포에 의해 무참히 살해됩니다. 자식 모두가 죽은 거죠. 그의 삶과 의식조차 파괴됩니다.

2차대전이 끝나자 미군 장교들이 1910년 재혼한 M. 폰 회슬린과 막스 플랑크를 괴팅겐으로 데려갑니다. 전쟁 중에 적국의 과학자는 아주 중요한 사찰 대상, 요주의 인물이라는 거 아시죠? 1947년 9월 89세 나이로 괴팅겐에서 파란만장 했던 세상을 하직합니다. 죽음은 그에게 구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1)
토마스 헉슬리
▲ 토마스 헉슬리.  ⓒ
Sit down before the fact like a little child, and be prepared to give up every preconceived notion. Follow humbly wherever and to whatever abyss nature leads, or you shall learn nothing.

조그마한 어린이처럼 사실(진실) 앞에 바로 앉아라. 그리고는 기존의 관념을 모두 던져버릴 준비를 하라. 그게 절망의 구렁텅이든 간에 자연이 이끄는 곳을 따라 가라. 그렇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 토마스 H. 헉슬리(1825~1895) : 영국의 생물학자. 교육자 -

헉슬리(Thomas Herny Huxley) 사진을 한번 보세요. 아주 무섭게 생겼습니다. 귀에서 턱까지 난 구레나룻 수염이 길어 휘날릴 정도고 풍채도 당당해서 학자 모습이 아니라 마치 군에서 제대한 백전 노장의 장성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사자의 모습이죠. 사실 그렇습니다. 그는 생김새가 그런데다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defender) 데 선봉에 섰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고 불렀습니다.

헉슬리는 대단한 학자이면서도 대단한 웅변가였습니다. 그는 진화론을 신앙처럼 믿었습니다. 명언에 나온 것처럼 가장 훌륭한 선생인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진리라고 생각한 거죠.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의 신학자, 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윤리학자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자 거룩한 분노로 이에 맞서 일어선 학자가 바로 ‘다윈의 불독’ 헉슬리입니다. 불독은 한 번 물면 끝까지 놓지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헉슬리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1860년 옥스퍼드 영국왕립협회(British Association)에서 벌어진 진화론과 기독교와의 논쟁입니다. 진화론 논쟁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진화론측에서는 헉슬리가 나왔고 기독교측에서는 입심 좋은 윌버포스 주교(Archbishop Samuel Wilberforce)가 나왔습니다. 대단한 ‘결투’였습니다.

▲ 헉슬리와 대토론을 벌였던 윌버포스 주교를 풍자한 그림. 모습이 이채롭다.  ⓒ
말 주변이 좋은 윌버포스는 대결투에 오기 앞서 리차드 오웬(Richard Owen)으로부터 많은 코치를 받습니다. 사전 훈련을 받은 것이죠. 오웬이 누구냐고요? 헉슬리와 거의 비슷한 동시대(1804~1892)의 인물로 헉슬리처럼 화석 연구로 명성이 있었고 해부학자며 고생물학자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윌버포스가 헉슬리를 이기기 위해 같은 생물학자 오웬을 고용해 예상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 등 사전 과외를 받은 거죠.

“Archbishop Wilberforce ridiculed evolution and asked whether he was descended from an ape on his grandmother’s side or his grandfather’s side. 윌버포스 주교는 진화론을 조롱하면서 헉슬리에게 ‘원숭이가 조상이라면 당신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인가,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것인가?’라고 물었다.”

“Accounts vary as to exactly what happened next, but according to one telling of the story, Huxley muttered ‘The Lord hath delivered him into my hands.’ and then rose to give brilliant defense of Darwin’s theory, concluding with the rejoinder.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참석자들의 생각이 다 달랐다. 그러나 그때 이야기에 따르면, 헉슬리는 ‘신은 그를 내 손에 넘겨 주었어.’라고 함께한 동료에게 이야기하고는 일어나서 다윈의 이론을 명쾌하게 변호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I would rather be the offspring of two apes than be a man and afraid to face the truth. 나는 진실을 대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차라리 두 원숭이의 자손이 되는 편이 낫다.”라고 대답했습니다.

“All accounts agree that Huxley trounced Wilberforce in the debate, defending evolution as the best explanation yet advanced for species diversity. 지켜보던 참석자들 모두가 논쟁에서 헉슬리가 윌버포스 주교를 참패시켜 진화론이 종(種)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최고의 이론이라고 옹호할 수 있었다.”

이 대토론에서 진화론의 헉슬리가 판정승을 거둔 것입니다. 이 한마디의 공격으로 윌버포스는 마지막 발언을 사양했다고 합니다. 헉슬리의 “신이 그를 내 손에 넘겼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말하자면 ‘그래 좋은 질문 던졌어! 넌 이제 그 질문으로 끝장이야 임마!’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표현이 거친가요?

헌데 그 대단한 토론장에 다윈은 없었습니다. 지병을 치료하느라고 리치먼드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논쟁 후에 헉슬리는 대단한 명성을 얻었고 진화론에 대해 시비를 거는 학자들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다윈의 불독’ 덕택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다시 더욱 발전하고 진화합니다.

헉슬리는 대단한 학자입니다. 그리고 대단한 이론가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There is the greatest practical benefit in making a few failures early in life. 일찍이 실패를 좀 하는 것이 가장 큰 실질적인 이득이다.” “A world of facts lies outside and beyond the world of words. 사실(진실)의 세계는 언어의 세계 바깥 너머 편에 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진실은 말로 장난치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곳에 있다는 거죠. 당시 윌버포스 주교와 같은 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을 겨냥한 이야기 같습니다.

▲ 일본 교토 대학 과학사 갤러리에 소장된 헉슬리 그림. 코가 길고 거만한 모습이다.  ⓒ
“There is no greater mistake than the hasty conclusion that opinions are worthless because they are badly argued. 자신의 주장이 심한 논쟁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값어치 없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라는 것만큼 더 큰 실수는 없다.” “The great tragedy of science is the slaying of a beautiful hypothesis by an ugly fact. 과학의 커다란 비극은 추악한 한 사실로 아름다운 가설을 살해하는 일이다.” 끈질긴 ‘다윈의 불독’의 명언입니다.

헉슬리는 자신의 학문을 자연에서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진화론은 자연의 한 흐름이고 이치라고 생각한 겁니다. 사실에 기초를 둔 것이 진화론이라는 주장이죠. 사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물학자나 또 해부학자는 어떤 신조나 이념에 얽매어 연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실을 연구하는 겁니다. 다만 연구가 윤리적인 문제를 몰고 올 수 있습니다. 요즘 일고 있는 생명과학에 대한 윤리가 그렇습니다. 과학에 인간적인 윤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종교의 교리가 과학적 연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평생 대학에 머물면서 가르치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한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It is because the body is machine that education is possible. Education is the formation of habits, a superinducing of an artificial organization upon the natural organization of the body.” 해석해 보면, “교육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몸이 기계와 같기 때문이다. 교육은 인위적인 조직을 신체의 자연적 조직으로 유도하는 습관이 모여 된 것이다.” 인위적인 조직은 교육이고, 교육을 습관화하다 보면 몸의 일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There is no alleviation for the sufferings of mankind except veracity of thought and of action, and the resolute facing of the world as it is when the garment of make-believe by which pious hands have hidden its uglier feature is stripped off. 종교를 빙자한 손으로 추악한 모습을 감춰 온 위선의 옷이 벗겨질 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대처하는 단호한 의지와, 진실한 사고와 행동이 없다면 인류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멋있는 말이죠.

▲ 당시 다윈을 풍자한 만화.  ⓒ
짤막한 명언 두 개만 더 소개할까요? “Science is nothing, but trained and organized common sense. 과학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니다. 잘 다듬어지고 짜인 상식에 불과하다.” 비슷한 내용으로 “Science is simply common sense at its best—that is, rigidly accurate in observation, and merciless to fallacy in logic. 과학은 단순히 최고에 있는 상식이다. 즉 관찰에서는 엄격할 정도로 정확하고, 논리적인 면에서는 오류에 대해 무자비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야 하겠군요. 헉슬리 하면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선 진화론의 신봉자로 오늘 소개하는 토마스 헉슬리가 있습니다. 소설가로 유명한 올더스(Aldous) 헉슬리 아시죠?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로 유명한 작가 말입니다. 그 헉슬리는 손자입니다. 또 손자 가운데 신경세포막 연구로 196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앤드루(Andrew) 헉슬리가 있습니다. 같은 손자로 유명한 생물학자인 줄리안(Julian) 헉슬리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냐고요? 글쎄, 집안이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토마스 헉슬리가 부인과 금슬이 좋아 슬하에 8남매를 두었다고 합니다. 3대가 되면 손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집안엔 대대로 대부분 의사나 생물학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도 처음에는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대학생이 될 때쯤에 눈이 거의 실명에 가까워 자연과학을 포기하고 옥스퍼드 대학 영문과로 진학해 소설가가 됐습니다. 집안이 생물학적 전통이 강한 것 같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첫눈’에 반하는 건 유전자 때문 유전적으로 적합한 상대를 가려내…라이브사이언스 2009년 04월 20일(월)

▲ 여성이 남성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은 오랜 진화에 걸친 유전적 요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면, 여성은 어떤 남자에게 끌릴까? 흑기사와 같이 정의롭고 자기를 지켜줄 용감한 남자? 아니면 귀공자 타입의 동화 속의 왕자님? 아니다. ‘자신에게 잘 맞을 것 같은 남자’에게 빠진다.

남자가 잘 생기면 좋다. 학벌에 돈까지 있다면 더더욱 좋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남성상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기에 남자의 경제력은 대단한 강점이다. 단연 여성이 선호할 수 있는 조건 1순위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그러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나자마자 상대에게 반하는 사랑의 감정(love at first sight)은 단순한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요리조리 판단하는 여성의 생물학적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인터넷 과학신문 라이브 사이언스(LiveScience)는 최근 “Love at First Sight Might Be Genetic”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첫 만남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적합한(compatible)’ 짝인지를 구분하는 생물학적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초파리 연구에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여성에게는 자신에 맞는 짝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전자가 있다는 뜻이며, 여성들이 무조건 모든 조건이 잘 갖춰진 남성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자신에 맞는 짝을 찾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훌륭한 상대가 아니라 적합한 상대를 골라”

라이브사이언스에 따르면, 미국 코넬 대학 과학자들은 초파리(fruit flies) 연구를 통해 초파리 암컷들이 자신과 유전적으로 잘 맞는 수컷 상대를 첫눈에 판단하는 생물학적 능력이 있으며, 자신에게 잘 맞는 짝과 짝짓기를 했을 때 더 많은 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우선 초파리 암컷들을 같은 변종(變種, strain)끼리 짝짓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다른 변종 수컷들과 짝짓게 한 뒤 유심히 관찰한 끝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짝짓기 한 후 번식과 행동에서 놀라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암컷 초파리들은 자신과 다른 변종 수컷들을 ‘알맞은’ 짝으로 판단한 탓인지 더 많은 알을 낳아 많은 새끼를 거느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암컷들은 같은 변종보다 다른 변종과 짝짓기할 경우 근친교배(progeny) 위험이 적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암컷들이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워 유전적 결함이 있는 새끼를 낳게 할 위험이 높은 수컷이 누구인지를 알아채는 능력이 있어서, 그렇지 않은 수컷에 더 호의적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외모만이 아니라 냄새와 소리에서 적합한 상대를 판단해

▲ 여성은 훌륭한 짝이 아니라 적합한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은 그러한 생물학적 능력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앤드류 클라크 교수는 “이를 두고 ‘첫눈에 반하기(love at first encounter)’라는 말로 표현해도 될 것”이라며 “단순히 외모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냄새와 소리 등 다른 생물학적 요인도 상대의 생물학적 적합성 여부를 암컷에게 알려주는 신호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여성들은 새로운 유전자를 작동할 필요 없이 남성을 만나기 앞서 적합한 짝을 고를 수 있도록 체내에 화학적 성분이나 단백질이 갖춰져 있어서 이미 상대를 고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진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초파리와 사람의 짝짓기 행동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 연구를 사람에게 곧장 적용하긴 힘들지만 여성도 자신에게 유전적으로 가장 잘 맞는 남성이 누구인지를 감지해 번식 성공 가능성을 높이도록 신체가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클라크 교수는 유명한 ‘체취가 밴 T-셔츠 실험’을 예로 들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유전적으로 먼 이성의 체취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근친교배를 예방하려는 신체 메커니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이 빠진 것은 조세핀의 미모가 아니라 체취

키 작고 볼품 없는 나폴레옹의 연인 조세핀이 나폴레옹에게 다가간 것은 힘 있는 황제라서가 아니다. 또 천하를 거머쥔 나폴레옹이 조세핀의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의 잘 생긴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일주일 후면 돌아가 당신을 만날 것이요. 그때까지 몸을 씻지 말고 나를 기다려 주시오. 당신의 냄새가 그립소.”

전쟁터에서 조국으로 돌아오던 나폴레옹이 그의 연인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빠진 것은 외모가 아니라 체취였다. 사실 외모만 따진다면 너무나 빨리 싫증을 느낄 것이다.

키가 작고 못 생겼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짚신도 짝이 있다. 남성인 당신에게 유전적으로 적합하다며 구애를 할 여성들은 꼭 나타나게 마련이다. 아마 그것이 바로 천생연분이 아니겠는가? 열심히 자기의 길을 갈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저널 지네틱스(Genetics) 최신호에 발표됐다.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9.04.20 ⓒ Science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40)
슈바이처
▲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
I don’t know what your destiny will be, but one thing I know : the only ones among you who will be really happy are those who will have sought and found how to serve.

우리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는 안다. 앞으로 진정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사람들은 남에게 봉사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찾는 사람들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 : 독일 선교사, 의사, 음악가, 신학자 -

‘밀림의 성자’, ‘검은 대륙의 성자’… 일생을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그야말로 인술(仁術)을 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에 대해 따라다니는 말들입니다. 또 ‘생명의 외경(畏敬)’이라는 말도 슈바이처 박사만의 독특한 브랜드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봉사와 헌신으로 보낸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명언에는 그의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으로 “The purpose of human life is to serve and show compassion and the will to help others. 인생의 목적은 봉사하고 애정을 보여주고, 그리고 남을 도우려고 하는 의지에 있다.”라는 명언도 있습니다. 또 그의 행동과 실천정신을 잘 나타내는 말로 짤막하지만 “Examples are leadership. 모범이 곧 리더십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때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까요? 슈바이처 박사는 왜 아프리카 밀림의 각종 열병과 독벌레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생을 그곳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을까요? 선교를 위해서 악조건을 참아냈을까요? 아니 흔히 하는 말로 천당에 가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그를 밀림의 성자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는 특별한 신념이나 신조나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남을 돕는 겁니다. 자연의 청정한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통해 우리를 감동시키는 법정 스님은 “용서란 남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게 아니라 흩어진 자신의 마음을 다시 모아 가다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베푸는 일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봉사와 헌신은 결국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자신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봉사와 헌신을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면 그저 좋은 겁니다. 남을 돕고 나서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자신에 대해서 뿌듯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는 위대한 용기와 실천이 중요한 겁니다. 거기에는 종교적인 신념도 필요할 겁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상보시(無償布施)가 그렇습니다. 조건 없이 남을 돕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거룩한 일입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성자로 기억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상당수가, 아니 거의 모두가 무상보시의 무상을 ‘無相’으로 표기하고 있는 데 틀린 말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가 없이 주는 무상(無償)원조를 생각하면 됩니다.

“There is no higher religion than human service. To work for the common good is the greatest creed. 남을 위한 봉사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공동의 선(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조다.” 신학자이기도 한 슈바이처 박사의 거룩하고 위대한 신념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 종교나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Constant kindness can accomplish much. As the sun makes ice melt, kindness causes misunderstanding, mistrust, and hostility to evaporate. 항상 친절하면 많은 걸 성취할 수 있다. 태양이 얼음을 녹이는 것처럼 친절은 오해와 불신, 그리고 적개심도 수증기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슈바이처 박사의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아프리카가 말이 아닙니다. 특히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은 끊이지 않은 내전과 질병, 기아로 1년에 수백만 명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AIDS의 기승으로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고위 관리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국가의 행정조차도 마비돼 세계 각국에서 원조하고 있는 식량이나 의료품 등 구호물자가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조차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슈바이처와 같은 성자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Just as the wave cannot exist for itself, but is ever a part of heaving surface of the ocean, so must I never live my life itself, but always in the experience which is going on around me. 파도(물결)가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단지 대양(大洋)이 분출하는 지표면의 일부인 것처럼 나도 나의 인생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내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경험(사람,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보충설명이 필요 없겠죠? 세상은 유아독존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Truth has no special time. Its hour is now—always. 진실(진리)은 특별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 그리고 언제든지, 모두가 진실의 시간이다.” 짧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명언입니다. “Humanitarianism consists in never sacrificing a human being to a purpose. 인간주의란 인간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데 있지 않다.” 다시 해석해 본다면 “진정한 인간주의란 희생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그 속에서의 사랑, 봉사, 헌신 등이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 봉사와 헌신이 생활 신조였던 슈바이처 박사는 음악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
슈바이처 박사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생명에 대한 외경’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그의 생애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독일 스트라스부르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1899년 철학박사학위, 그 이듬해에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 Von Reimarus zu Wrede’(1906)라는 저서로 신학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인물로 인정 받기도 합니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는 또 1893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해 곧 능숙한 음악가가 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합니다.

그러나 그는 신학과 음악을 약간 뒤로 하고 1905년 박애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선교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힙니다. 그래서 1913년 의학박사가 됐고 그를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은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로 출발합니다. 그곳에서 오고우에 강둑 위에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곳에서 적국 외국인(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그 뒤에는 전쟁포로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합니다. 이후 그는 점차 전 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돌렸으며 ‘문화철학 Kulturphilosophie’(1923)을 쓸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외경’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발표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이러한 그의 철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윤리원칙입니다. 그는 이 원칙이 문명의 존속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외경’은 결국 이 저서를 통해 유명해진 겁니다. 물론 따지자면 그러한 저서가 없었다 해도 박애주의자이며 휴머니스트인 그가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겼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외경’이라는 말이 이 저서를 계기로 유명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외경(畏敬, 또는 경외)이란 의미 그대로 두려워하고(畏), 존경한다(敬)는 뜻입니다. 영어로도 ‘awe and respect’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면 생명에 대해 존경한다는 말은 이해가지만 두려워한다는 말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을 두려워한다는 생각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죠.

길에 있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조차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지구촌의 모든 생명들이 평화로움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거죠. 그게 결국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신의 뜻에 따르는 길입니다. 생명에 대한 외경이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면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겠죠?

▲ 검은 대륙을 온몸으로 껴안은 슈바이처 박사. 그는 '봉사와 헌신이야말로 종교보다 더 위대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
“Until he extends his circle of compassion to include all living things, man will not himself find peace. 모든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연민의 원’을 가질 때 인간은 비로소 평화를 느낄 수가 있다.” “Compassion to all living things.”가 결국 슈바이처 박사가 주장하는 생명에 대한 외경입니다. “Men can hardly even recognize the devils of his own creation. 인간은 자신이 만든 악(惡)은 결코 알아보지 못한다.” 과학만능주의, 그리고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주는 충고입니다.

“One truth stands firm. All that happens in world history rests on something spiritual. If the spiritual is strong, it creates world history. If it is weak, it suffers world history.”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리는 확고부동하다. 세계사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정신적인 것이 많다. 만약 정신이 강하면 세계역사를 창조하게 되고, 약하면 세계역사를 고통스럽게 한다.”

“In everyone’s life, at some time, our inner fire goes out. It is then burst into flame by an encounter with another human being. We should be all thankful for those people who rekindle the inner spirit. 우리의 인생 속에는 때로 마음 속의 불(열정)이 사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불꽃을 피우기도 한다. 마음 속의 불을 다시 켜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슈바이처 박사의 마음 속의 불은 꺼져 있다가 아프리카의 환자들을 돌보면서 다시 타올랐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려움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봉사와 헌신을 인생의 열정으로 산 슈바이처. 그래서 우리는 그를 아프리카의 성자로 부른 겁니다.

적도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 의사였던 그는 ‘인류의 형제애’를 위한 노력으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대양과 같이 넓고 깊은 그의 평화주의 정신과 비교하면 노벨 평화상은 조그마한 파편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요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접하면서 슈바이처 박사의 지고 지순한 박애정신을 떠올립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2.07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9)
제논
▲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제논.  ⓒ
All things are parts of one single system, which is called Nature ; the individual life is good when it is in harmony with Nature.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이라고 불리는 한 시스템의 부분들일 뿐이다. 개인의 삶도 자연과 조화를 유지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 제논(335?~264 B.C.) : 고대 그리스 철학자, 과학자, 스토아 학파 창시자 -

이 명언은 우리가 많이 듣고 공부했던 스토아(Stoa) 학파의 창시자, 로고스 이론의 주인공 키프러스 제논(Zenon of Kyprios, 또는 Zenon of Citium)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스토아 학파의 계율이기도 합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제일 중요시 했습니다. 그 조화는 자연이라는 우주와 타협하고 더불어 사는 논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속에 스토아 학파의 자연주의 철학과 윤리관이 있습니다.

우선 제논이라는 학자의 이름부터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존재합니다. 한 사람은 지금 소개하고 있는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키프러스 제논)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일레아 학파의 제논(Zenon of Elea, 420~429 B.C.)입니다.

후자 제논은 ‘제논의 역설’, ‘제논의 변증법’ 등으로 많이 알려진 학자입니다. 특히 ‘토끼는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적 주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들어 보셨죠?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패러독스’라는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일레아 제논은 다음 기회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에서 다루겠습니다.

어쨌든 혼동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종종 두 사람을 혼동해서 글을 쓴 경우도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또 헷갈리게 하는 것은 Zenon과 Zeno입니다. 둘 다 같은 이름입니다. 플라톤(Platon)의 이름도 Plato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는 영어식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외국어 표기방법이 정착 안 된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Wellbeing is attained by little and little, and nevertheless is no little itself. 행복(웰빙)은 아주 조금씩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작은(조금씩) 것이 아니다.” We have two ears and one mouth, so we should listen more than we say. 우리는 두 귀와 하나의 입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인간의 행복은 금욕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들입니다. “Follow where reason leads. 이성이 인도하는 곳을 따르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묘사된 제논.  ⓒ
스토아 학파에 ‘스토아’라는 말이 붙게 된 것은 제논이 스토아(Stoa)라는 곳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하는 많은 제자들을 확보하게 됐고 독자적인 학파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제논은 스토아 학파의 개조(開祖, founder), 즉 창시자가 되는 겁니다. 좀 어색한 말로 요즘 즐겨 쓰는 교주(敎主)가 되는 겁니다.

일신교인 기독교의 영향이 많아 교주라는 단어가 썩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모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 수학자 피타고라스를 빗대어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묘사한 걸 봤습니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피타고라스 학파가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과 예배를 올리는 집단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교나 이념을 앞세워 자기의 관점에서 다른 것을 이해하려는 주장은 과히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대립과 증오,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물론 방송에서는 ‘재미있게 웃자’라는 취지였겠지요.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아고라(agora, 집회장, 중앙광장)라는 공공 광장이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영향으로 기후가 좋은 그리스에서는 시민들이 옥외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아고라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뉴스를 교환하며 정치를 논했습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과 사상은 이러한 토론문화에서 나온 겁니다. 그게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지탱하는 잠재력이었습니다. 스토아는 공회당의 일종으로 주랑(柱廊)이라고 하며 그늘을 제공할 수 있었죠. 오늘날 영어 ‘store(상점)’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Fate is the endless chain of causation, whereby things are ; the reason or formula by which the worlds goes on. 운명이란 끊임없는 인과관계(因果關係)의 연속이다. 그것은 그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는 이성 또는 법칙이다.” “No evil is honorable ; but death is honorable ; therefore death is not evil. 악은 결코 명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명예로운 일이다. 그래서 죽음은 악이 아니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Among the virtues some are primary, and some are subordinate to these. The following are the primary : Wisdom, courage, justice, temperance.” 해석해 보면 “덕(德) 가운데는 가장 중요한 덕이 있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덕이 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덕들이다. 지혜, 용기, 정의 그리고 인욕(忍慾)이다.”라는 뜻입니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스토아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접목시킨 학자. 스토아 철학이 서양을 대표하는 철학으로 자리잡는 기초가 됐다.  ⓒ
제논은 기프러스 섬 키티온에서 출생했습니다. 혈통은 페니키아인으로 추정됩니다. 30세가 되던 해에 아테네로 가 각 학파의 여러 스승에게 배운 뒤 독자적인 학파를 연 것이죠. 그의 철학은 절제와 인욕을 가르치는 거였습니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자연과 일치된 삶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여러 철학을 종합했기 때문에 절충의 흠이 있다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의 이성’ 즉 로고스(logos) 철학은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이 됩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처음 한 것이지만 ‘보편주의(cosmopolitanism)’로 그리스 철학의 축을 이루는 사상입니다.

제논은 윤리를 중요하게 다루었고 유기적인 유물론, 또는 범신론의 입장에서 금욕과 극기를 통해 자연에 순종하는 현인(賢人)의 생활을 이상으로 내세웠습니다. 후에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가 그의 이론을 완성하면서 서양의 기본적인 철학이 됩니다. 특히 로고스를 절대적 유일신과 같은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기독교 신학의 기초가 됩니다. 제논의 윤리와 도덕을 신학의 이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죠.

제논의 스토아 철학(Stoicism)은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천재’로 일컫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 354~430)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기독교의 확고 부동한 이론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는 삼위일체론(trinitas), 신국론(The City of God), 고백록(The Confessions) 등을 통해 신학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학자입니다. 신학이론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스토아 철학은 마치 기독교 신학이론을 위해서 태어난 학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독교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철학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는 이후 서양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고 비단 서양뿐만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거죠.

다시 말해서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는 기독교의 중요한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그리고 스토아 철학의 금욕과 절제의 도덕과 윤리는 기독교의 윤리관을 설명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근대 유럽의 합리주의 철학의 기반이 됩니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당시 철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 로마 역사상 가장 현명한 황제로 통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는 스토아 철학의 신봉자로도 유명하다.  ⓒ
그의 명상록으로 잘 알려진, 그리고 역대 로마 황제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스토아 철학의 추종자입니다. 금욕과 절제를 주장한 황제, 그리고 수많은 명언을 남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황제로 알려져 있죠. 말이 나온 김에 그의 명언을 두 개만 소개하고 넘어갈까요?

“If you are distressed by anything external, the pain is not due to the thing itself but your own estimate of it ; and you have the power to revoke at any moment.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그 고통은 외부의 사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괴로움은 마음의 작용이고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겠죠?

“Get rid of the judgment… get rid of ‘I am hurt,’ you are rid of the hurt itself. (주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하지 말라. ‘나는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외부의 일들 때문에 고통 받지 않도록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해야 한다는, 그런 뜻이겠네요. 동양의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을 접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제논의 명언으로 이런 것도 잇습니다. “The avaricious man is like the barren sandy ground of the desert which sucks in all the rain and dew with greediness, but yields no fruitful herbs or plants for the benefits of others. 탐욕스러운 인간이란 욕심으로 가득 차 비(물)를 다 삼켜버리는 사막의 척박한 모래땅과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아무런 과일도 제공하지 못한다.” 정말 탐욕이 지나치면 안 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이 과욕에 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죠.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Extravagance is its own destroyer. 과욕은 패망의 길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이야기로 비슷하지만 “The goal of life is 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 삶의 목표는 자연과 합의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1.30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8)
오펜하이머
▲ 오펜하이머. 성공적인 핵개발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회와 좌절 속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이 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If the radiance of a thousand suns were to burst at once into the sky that would be like the splendour of the Mighty one… I am become Death, the Shatterer of Worlds.” (Quoting ‘The Bhagabad Gita’)

수천 개의 태양이 한번에 폭발해 그 섬광(방사능)이 전능한 하느님의 영광인 하늘로 날아간다면…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다.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면서)
-오펜하이머(1904~1967) : 미국 핵물리학자, 맨해튼 계획 책임자-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가 이 말을 언제 했는지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전의 일인 것은 확실합니다. 아마 핵폭탄 개발이 성공할 수 있다는 100%의 확신을 가졌거나 핵실험을 직접 목격하면서 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명언은 가공할 위력의 핵폭탄에 대한 언급이면서 핵개발 계획에 참가한 자신을 후회하고 저주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서 역사적인 첫 핵실험이 실시됐습니다. 실험이 성공하는 모습을 본 오펜하이머는 그 위력에 놀라 정신을 거의 잃은 채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We knew the world would not be the same(이 세상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을 알았다).” 부연 설명하자면 핵폭탄의 발명으로 이제 지구는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죠.

소개한 명언에는 “I am become…”과 같이 문법적으로는 맞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명언에는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고어(古語)도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몰라볼 정도는 아니고요. 또 영국식 철자도 있습니다. ‘Splendour’가 그렇습니다. ‘Splendor’로 고칠 수도 있지만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고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The foolish man seeks happiness in the distance ; The wise grows it under his feet. 어리석은 사람은 먼 곳에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가까운 발끝에서 행복을 키운다.” 그리고 “The optimist thinks that this is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 the pessimist knows it. 낙천주의자는 ‘모든 가능한 세상에서 이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데 비해 염세주의자는 그걸 알 뿐이다.”이라는 명언도 있습니다. 두 번째 명언은 생각하는 것(think, 믿는다는 것)과 아는 것(know, 단순히 알고 지나쳐 버린다는 것)을 비교해서 음미하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 아인슈타인(왼쪽)과 이야기하고 있는 오펜하이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아인슈타인은 한때 그의 제자였다.  ⓒ
바가바드 기타(The Bhagabad Gita)에 대해 좀 설명하겠습니다. 명언에 나오는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다(I am become Death, the Shatteres of worlds.)”라는 내용이 여기에 실린 것을 오펜하이머가 인용한 겁니다. 그는 동양사상과 철학에 상당한 식견과 취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룩한 자의 노래’라는 뜻의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애송되는 경전입니다. 권위로 따진다면 우리가 잘 아는 ‘베다’나 ‘우파니샤드’ 같은 계시서가 우위에 있지만 대중들에게 끼친 영향력 면에서는 이들 경전을 능가합니다. 인류의 고전으로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의 영감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함석헌 선생이 직접 번역한 책이 있습니다.

핵폭탄을 둘러싸고 구설수가 가장 많은 학자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아주 불행한 인생을 산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사실 핵폭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아니 그 이상으로 모든 것을 죽이고 파괴하는 무기를 개발한 장본인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더구나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엄청난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철면피라도 가슴이 아플 겁니다.

오펜하이머는 그 유명한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을 선두에서 지휘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받은 충격은 더 했을 겁니다. 어쨌든 그는 핵폭탄으로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계획에 참여했던 그의 동료 여러 명도 이 같은 충격으로 인해 고민과 좌절감에 휩싸여 비관적이고 불우한 생활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핵이 인간에게 준 업보(業報)가 아니라 인간의 업보가 핵을 만든 겁니다. 핵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가 있다면 핵을 만든 인간입니다.

예견했던 대로 이차대전이 핵폭탄 2개로 간단히 결론이 나자 이 계획에 참가했던 웰스는 비관적인 나날을 보내다가 이듬해인 1946년 8월에 삶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핵폭탄 개발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앞장섰던 질라드도 핵의 위력에 충격을 받아 전공을 핵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아예 바꿔 시카코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됩니다. 그러나 페르미와 텔러는 수소폭탄 개발에도 착수해 1952년 성공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유명한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핵폭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손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트루먼 대통령은 주위 참모들에게 “다시는 저 얼간이를 내 옆에 오지 못하게 해”라면서 화를 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In some sort of crude sense, which no vulgarity, no humor, no overstatement can quite extinguish, the physicists have known sin ; and this is a knowledge which they cannot lose.” 해석하자면 “야비함, 유머, 그리고 허풍과 같은 기본적인 감성 속에서도 물리학자는 죄가 무엇인지를 안다. 이것은(죄를 안다는 것) 물리학자가 잃어버릴 수 없는 중요한 지식이다.” 과학의 윤리에 대해서 언급한 것 같습니다.

맨해튼 계획에는 내로라하는 4천5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아마 독일, 일본, 이탈리아를 비롯한 이차대전 동맹국을 제외한다면 전 세계 유명한 물리학자, 화학자들은 전부 참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동맹국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페르미가 대표적이지요.

▲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정원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 핵폭탄 개발연구소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맨해튼 프로젝트의 실질적 실험실은 핵실험이 처음 실시된 뉴멕시코주의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로 노벨상 등용문입니다. 에드윈 맥밀란(1951년 노벨 화학상), 리차드 파인만(1965년 물리학상), 노먼 램지(1989 물리학상) 등이 대표적인 수상자들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오펜하이머는 수상에 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고요? 핵개발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을 관장하는 스웨덴 왕립학회는 그를 거부했습니다.

로스 알라모스 과학자들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 핵폭탄을 만들었습니다. ‘홀쭉이(little boy)’라는 핵폭탄은 긴 관의 양끝에 우라늄 235를 분리해 넣은 것이고, ‘뚱뚱이(fat man)는 속이 빈 둥근 공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홀쭉이는 루스밸트 대통령을, 뚱뚱이는 처칠 수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차대전은 이미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고 종식을 확신했기 때문에 상당한 여유가 있었던 탓이겠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운명의 날 1945년 8월 6일. ‘에놀라 게이’라는 B29 폭격기가 최초의 핵폭탄인 홀쭉이를 산업도시 히로시마에 투하함으로써 핵의 위력을 세계에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우라늄으로 만든 4.5톤의 홀쭉이는 반경 3km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14만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습니다. 지금까지 핵폭탄으로 죽은 사람은 20만 명. 당시 히로시마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한 겁니다.

플루토늄으로 만든 5톤의 뚱뚱이는 3일 후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져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핵폭으로 인류 전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혹한 대학살이 일어난 거죠.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했고, 이로써 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 맨해튼 계획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고 미국과 영국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에 젖습니다.

“When you see something that is technically sweet, you go ahead and do it and you argue about what to do about it only after you have had your technical success. That is the way it was with the atomic bomb.” 해석해 보면, “기술적인 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면 실행에 옮겨라. 그래서 기술적으로 완전히 성공한 뒤에 자기 주장을 펴라. 원자폭탄에 대해서도 그렇다.”

오펜하이머는 이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 정보기관의 감찰대상으로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형편은 아닙니다만 우선 그의 핵에 대한 반감과 수소폭탄 개발에 대한 집요한 반대 등 그의 충성심과 신뢰성, 공산주의에 대한 편력 때문입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잠시 참가했던 그는 그곳에서 공산주의 학생들에게 매료돼 친숙하게 지낸 적이 있습니다.

▲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구름.  ⓒ
핵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그는 종전 이후 자본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껴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던 그의 정치적 이념이 사회주의로 변했다는 일부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그는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정치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학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사회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로 독일 출신의 유명한 프란츠 오펜하이머(Franz Oppenheimer, 1864~1943)와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스 알라모스 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오펜하이머는 프린스턴 고등과학원(IAS) 3대 원장이 됩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 수년간을 핵물리학 연구보다 지식윤리와 도덕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이에 대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1967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하직합니다. (After he retired from Los Alamos, he held the post of director of the Institute of Advanced Study at Princeton, and in the last years of his life, he thought and wrote much about the problems of intellectual ethics and morality. He died of throat cancer in 1967.)

“이휘소 박사는 한국의 오펜하이머?(Bejamin Lee is Korea’s Oppenheimer?)” 핵폭탄, 오펜하이머 이야기만 나오면 이휘소 박사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핵개발에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핵개발에는 ‘농축 우라늄’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과 제조방법도 말입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답은 “Absolutely not!”입니다.

이 박사는 핵을 거부한 위대한 평화주의자입니다. 아인슈타인도 핵무기 개발을 미국정부에 건의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핵개발을 선두 지휘했고요. 한국이 낳은 물리학자 이 박사는 그래서 이들보다 더 위대합니다. 이 박사를 두고 핵개발 능력의 실력을 보유한 위대한 학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핵을 거부한 위대한 학자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게 그 분을 존경하는 일입니다.

오펜하이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있습니다. “Science is not everything, but science is very beautiful.” “과학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과학은 아름다운 것이다.” 순수과학 물리학을 통해 우주의 원리와 사물의 이치연구에 매달리고 싶었던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인간적인 학자인 그에게 핵폭탄은 견디기 힘든 무거운 업보였겠지요?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1.23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7)
프톨레마이오스
▲ 프톨레마이오스.  ⓒ
When I trace at my pleasure the windings to and fro of the heavenly bodies, I no longer touch the earth with my feet: I stand in the presence of Zeus himself and take my fill of ambrosia, food of the gods.

내가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면 나는 두 발로 땅(지구)을 딛고 서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제우스 앞에 서서 수많은 신들이 주는 음식과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암브로시아 요리를 배불리 먹는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85~165): 그리스 천문학자, 지리학자, 철학자-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천문학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무슨 뜻인지 다 아시겠지만 천체를 관측하면서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의 이동을 연구할 때면 우주를 다스리는 제우스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함을 느낄 정도로 희열에 빠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자의 대단한 긍지이며 자신감입니다.

암브로시아(ambrosia)가 뭐냐고요? 아마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초(不老草) 같은 거죠. 하늘의 옥황상제만이 먹었다는 천도복숭아 같은 겁니다. 먹으면 평생 늙지도 않고 신과 같은 위치가 됩니다. 서유기(西遊記)의 손오공이 이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어 온갖 요술을 부리면서 옥황상제의 하늘을 시끄럽게 하자 부처님(佛祖)이 그를 바위 속에 가두죠. 거기에서 삼장법사와 인연이 돼 불경을 구하러 천축국(인도)으로 가는 과정을 다룬 게 서유기입니다.

요즘 여러 가지로 각색한 서유기가 TV에 등장합니다. 시간 내서 책을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거기에 근두운(筋斗雲)이라는 게 등장합니다. 돌에서 태어난 손오공의 자가용 구름으로 단숨(1초)에 10만8천리를 날았다고 하니 대단히 빠른 거죠. 근두운은 상식문제로 기업체, 언론사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입니다.

백과사전을 보면 암브로시아는 꿀, 물, 과일, 치즈, 올리브유, 보리 등으로 만든 것으로 신들이 영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신화 가운데 유명한 것은 제우스의 아들인 시필로스의 왕 탄탈로스가 올림푸스산에 식사초대를 받고 갔다가 암브로시아를 훔치는 바람에 형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탄탈로스는 갈증을 느껴 물을 마시려면 물이 마르고 배가 고파 과일을 따 먹으려면 가지가 바람에 날려 그의 손길에서 멀어져 영원히 굶주림과 갈증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아귀(餓鬼)가 있죠. 꼭 불교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에 대부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배는 산만큼 크고 입은 바늘만큼 작아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아 배고픔에 시달린다는 겁니다. 음식물을 낭비하고 쓰레기로 버리면 아귀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요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별을 관측하면서 연구할 때는 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겁니다.

천동설을 주장한 그의 천체물리학은 코페르니쿠스의 등장 이전까지 1천500년 넘게 천체를 설명하는 최고의 이론으로 인정 받을 정도로 확고부동한 논리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맞기 때문에 프톨레미(영어 이름, Ptolemy)의 이론은 완전 허구가 아니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위대한 케플러의 이론도 수정됐고 뉴턴의 이론도 수정됩니다.

▲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별들의 움직임과 생성, 소멸을 연구하는천문학자는 신이 된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
아시겠지만 천동설은 우주(태양계)의 중심을 지구로 본거죠. 다시 말해서 태양과 별 모든 게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이야기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비롯해 하늘에 떠 있는 모든 행성이 돈다는 거죠. 그래서 완전히 대립되는 이론으로 간주돼 프톨레미의 업적을 간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천문학자로써 정확한 수학적 도식과 계산을 근거로 천체이론을 수립한 학자는 프톨레미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영국의 런던수학회(The Mathematical Society of London)에서 나온 노래인데 ‘천문학자들이 술 마시면서 부르는 노래(The Astronomer’s Drinking Song)’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 소속된 단체에서만 부르는 노래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해병대 장병들이 술좌석에 부르는 노래 같은 것 말입니다. 공수부대원들이 부르는 노래도 있고 또 홍등가의 여성들이 술을 마실 때 부르는 노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같은 노래들은 가사가 저속한 경우도 있지만 또 깊은 의미도 있습니다. 지역마다 또 특색이 있죠. 아마 그게 우리나라의 아리랑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정선아리랑은 곡이 유장하면서 애절하지만 가사는 남녀의 심한 부분까지 건드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긴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진면목입니다. 제가 옛날 모 일간지에서 근무할 당시 취재할 일이 있어서 정선을 간 적이 있습니다. 돌아오면서 정선 아리랑 테이프를 선물 받았는데 지금도 종종 들으며 배웁니다. 그야말로 오리지널입니다.

The Astronomer’s Drinking Song을 뭐라고 해석해 볼까요. 천문학자의 술타령, 천문학자들의 권주가, 아니면 천문학자의 취중가(醉中歌), 어느 것이 좋은 것 같습니까? 취중가란 말은 사전에도 없네요. 제가 생각할 때는 마지막이 좋은 것 같습니다. 천문학자 대신 좀 약간 저속하면서 재미있게 해서 ‘별쟁이의 술타령’이나 ‘별쟁이 취중가’ 정도로 하면 좋을 것 같네요. 혹시 천체물리학자 분들께서 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전히 좋은 뜻이라는 걸 밝혀둡니다.

이 노래는 깁니다. 가사내용에는 고대 그리스와 근대 유명한 세계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프톨레미와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소개하고 번역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대비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해 보면서 가사를 음미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When Ptolemy, now long ago,
Believed the earth stood still, sir.
He never would have blundered so,
Had he drunk his fill, sir.
He’d then have felt it circulate,
And would have learnt to say, sir
The true way to investigate
Is to drink your bottle a day, sir

오래 전의 프톨레미 선생,
지구는 멈춰 있다고 생각했네
잘난 그 양반은 실수도 할 줄 모른다네
술을 진탕 먹고 취할 줄 알았다면
지구가 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래서 그 선생, 이렇게 이야기했을 건데
진리를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술병을 비우는 거라고

재미있죠? ‘술을 마셔 취할 줄 알았으면 지구가 돈다는 걸 알았을 텐데’라는 대목이 참 재미있습니다. 번역이 잘 됐는지 모르겠네요. 요즘 특허 내는 게 유행이던데 저도 이것을 더 깔끔하게 번역해서 저작권 특허를 내볼까요? 아닙니다. 저는 과학자의 명언을 읽는 독자들에게 항상 봉사하려고 합니다. 다음에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루었는지 볼까요?

“Copernicus, that learned wight,
The glory of his nation,
With draughts of wine refreshed his sight
And saw the earth’s rotation;
Each planet its orb described,
The moon got under way, sir;
These truths from he imbibed
For he drank his bottle a day, sir

통찰력을 배운 코페르니쿠스 선생
조국에 영광을 안겨 주었네
술잔을 비우니 눈이 밝아졌네
그래서 지구가 돈다(자전)는 걸 알고 말았네
행성들은 궤도를 돌고 달도 그렇다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건 다름 아닌
매일 술잔을 비우며 취했기 때문이네

재미있나요? 모름지기 술을 마시고 취해야 위대한 통찰력이 생겨 위대한 발명을 할 수 있다는 내용들입니다. 재미있고 참고가 된다면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가 아니라 저의 사이언스타임즈에 따로 전문을 싣고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갈릴레오도 나오고 뉴턴도 나옵니다. 이제 ‘별쟁이의 술타령’에서 놀림감이 된 우리의 위대한 천문학자 프톨레미로 돌아갑시다.

▲ 그리스 주화에 새겨진 프톨레마에오스. 정확한 수학적 계산과 도식으로 이루어진 그의 이론은 1천500년간 확고부동한천체물리학 이론이 됐다.  ⓒ
프톨레미가 1천500년 동안 천체물리학에서 확고부동한 학자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종교의 역할도 크게 작용합니다. 기독교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한 것은 지구라고 굳게 믿고 있던 기독교에서 프톨레미의 천동설은 창조론에 가장 부합되는 이론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황청이 받아들입니다. 그 외의 학설은 이단의 이론으로 아예 못을 박아버립니다.

더구나 천체물리학의 대가로 널리 알려졌고 유명한 프톨레미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 측에서 볼 때는 일거양득입니다. 대단한 천문학자 프톨레미조차도 창조론의 옹호자로 설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프톨레미가 창조론을 옹호하기 위해 천동설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명언에도 나오는 것처럼 당시 그리스 종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를 비롯해 여러 신을 믿는 다신교(多神敎)였습니다.

프톨레미의 천동설에 반박했던 코페르니쿠스, 케플러가 기독교의 압박으로 숱한 고난을 당했다는 건 다 아시죠? 갈릴레오 또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한 지구는 스스로 돌며 또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건 태양계에서 볼 때 지구가 보잘 것 없는 행성에 불과하다는 거죠. 그리고 거대한 우주로 확대한다면 태양도 보잘 것 없는 거고 지구는 보일락말락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점에 불과한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 발견하는 겁니다.

소개한 명언과 비슷한 명언이 있습니다. “Mortal though I be, yea ephemeral, if but a moment I gaze up at the night’s starry domain of heaven, Then no longer on earth I stand; I touch the Creator, And my lively spirit drinketh immorality.”

해석해 보면, “나는 죽고야 말 목숨이다. 그래,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러나 총총이 빛나는 별하늘을 볼 때 나는 지구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창조주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마신다.” 정말로 위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김형근 편집위원  


2006.11.16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6)
수학자 푸앙카레
▲ 헨리 푸엥카레.  ⓒ
The scientist does not study nature because it is useful, he studies it because he delights in it, and he delights in it because it is beautiful. If nature were not beautiful, it would not be worth knowing, and if nature were not worth knowing, life would not be worth living.

과학자는 유용(有用)하게 쓸 수 있다고 해서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자는 그게(자연) 아름답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만약 자연이 아름답지 않다면 알려고 할 값어치가 없다. 그리고 자연이 알 가치가 없다면 인생 또한 살 가치가 없다.
- 헨리 푸앙카레(1854~1912) ;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고 감동을 주는, 문자 그대로 명언(銘言)입니다. 훌륭한 이야기죠? 과학자는 왜 연구에 빠져드는지, 그리고 과학자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속에는 정말로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라면 세속(世俗)의 부나 명예에 대해서도 초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수학분야에서 전반적으로 능통한 마지막 학자로 묘사되고 있으며 수학에 대해 확고한 신념으로 놀랄 만한 영역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헨리 푸앙카레(Jules Henri Poincare)는 20세기의 주요 관심 분야인 위상수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습니다.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 했던 그의 업적은 광학, 전기학, 모세관 현상탄성, 열역학, 양자이론, 상대성이론, 우주진화론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우주의 원리(nature of space)를 설명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Science is facts. Just as houses are made of stones, so science is made of facts. But a piece of stones is not a house and a collection of facts is not necessarily science(과학은 사실이다. 집이 돌 조각들로 만들어진 것처럼 과학도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돌 조각들이 집이 아니며, 사실의 무더기가 반드시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돌만 있다고 집이 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들(facts)만 모았다고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을 이루는 돌과 과학을 이루는 사실들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이론이 뒷받침돼야만 집이 되고 과학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수학이라는 기초과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다 이해하는 건데 괜히 사족(蛇足)을 달았나요.

수학자 푸앙카레는 ‘푸앙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으로 유명합니다. 지난 8월(2006년) 세계 수학계가 러시아의 한 수학자를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2003년 ‘밀레니엄 7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푸앙카레 추측을 증명해 낸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Grigory Perelman) 박사입니다.

그는 7대 난제를 풀어낸 공로로 1백만 달러의 거금을 상금으로 받게 돼 있고 세계수학자회의(IMU)가 4년마다 수여하는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Fields Medal)’의 유력한 후보였지만 수학자 회의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언론의 조명을 피하기 위해 종적을 감춰 노모가 사는 고향으로 내려가 숲속에서 숨어 한가하게 버섯을 캐고 있었습니다.

▲ 수학의 난제 중의 하나인 '푸앙카레 추측'을 풀어낸 '은둔의 수학자' 러시아의 그리고리 페렐만 박사.  ⓒ
‘은둔의 수학자’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왜 종적을 감췄나?”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업적은 전혀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나는 그저 원해서 공부했고, 그래서 연구했을 뿐이다. 나는 잘 살고 유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난 연구하고 싶을 뿐이다.” 너무 착하고 순진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습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학자라고 합니다. 사진은 수염이 길고 날카롭게 보이지만 말입니다. 기초과학을 하는 학자들이 원래 순합니다. 그래서 기초과학을 ‘순진한 과학(순수과학, pure science)’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노모가 받는 5만4천원의 연금에 의지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상금도 받고 필즈상도 받고, 그래서 그 돈으로 고생하는 노모를 호강시켜주는 게 자식의 도리가 아니냐고요? 저도 그 경우가 되면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 좀 자랑도 해보고 말입니다. 그러나 페렐만 박사는 그렇지 않았죠. 비단 과학자뿐만 아니라 위대한 학자에게는 위대한 철학이 있는 겁니다. 오늘 ‘과학자의 명언’의 주인공 푸앙카레도 그렇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밀레니엄 7대 난제’에 대해 조금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000년 미국의 클레이 수학연구소(CMI)가 2000년 5월 파리에서 공개적인 회견을 갖고 일곱 개의 미해결 수학문제를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1백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총 7백만 달러가 되는 거죠.

푸앙카레가 1904년 7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푸앙카레 추측을 제기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추론을 증명해내지 못하다가 페렐만 박사가 풀어낸 거죠. 푸앙카레 추측이란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정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같은 것’이라는 이론으로 하나의 밀폐된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이 수축돼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원구(圓球, sphere)로 변형될 수 있다는 추론입니다. 더 알고 싶으시면 담당 선생님한테 물어 보세요.

‘수학의 7대 난제’는 미국의 부호인 랜던 클레이(Landon Clay)가 창안한 겁니다. 사업으로 떼돈을 번 클레이는 고향인 메사추세스주 케임브리지에 비영리단체인 클레이연구소(CMI)를 설립했습니다. 수학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만들었다고 해서 ‘밀레니엄 7대 난제’라고도 하고 클레이 이름을 따서 ‘클레이 7대 난제’라고도 불립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졌네요.

“Mathematics is the art of giving the same name to different things(수학은 각기 다른 사물에 대해 같은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예술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각기 다른 사물의 성질에 대해 수학은 하나의 이론이나 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푸앙카레는 수학의 모든 분야에 정통한, 이 시대의 마지막 천재 수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
이 말과 대조를 이루는 말도 있습니다. 푸앙카레가 한 말은 아닙니다. “Poetry is the art of giving different names to the same thing(시란 하나의 사물에 대해 다양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예술이다.).” 과학과 문학(시)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멋진 말이죠? 과학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사물의 성질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학(시)은 하나의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합니다. 따지자면 미술도 그렇습니다.

“What is it indeed that gives us the feeling of elegance in a solution, in a demonstration? It is the harmony of the diverse parts, their symmetry, their happy balance ; in a world it is all that introduces order, all that gives unity, that permits us to see clearly and to comprehend at once both the ensemble and the details.”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증명하면서 멋진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양한 것들의 조화, 그것들의 대칭(對稱), 그리고 교묘한 밸런스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서와 통일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에 총체적인 것과 세세한 것 둘 다 명확히 보고 이해할 수 있다.”

“A scientist worthy of his name, about all a mathematician, experiences on his work the same impression as an artist ; his pleasure is as great and of the same nature(이름값을 하는 과학자나 모든 수학자들은 연구를 하면서 예술가가 된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과학자의 기쁨 또한 대단하며 예술가와 비슷한 기질이 있다.).”

이런 명언도 남겼습니다. “Mathematicians do not study objects, but relations between objects. Thus, they are free to replace some objects by others so long as the relations remain unchanged. Content to them is irrelevant : they are interested in form only(수학자는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간의 관계를 연구한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여러 사물들을 다른 사물로 대치해 보기도 한다. 그에 대한 논쟁은 적합치 않다. 그들은 형태(질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몇 개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Mathematical discoveries, small or great are never born of spontaneous generation. They always presuppose a soil seeded with preliminary knowledge and well prepared by labor, both conscious and subconscious(수학적 발견은 크든 작든 간에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적 발견은 언제나 예비지식이 있어야 하고, 의식적이거나 잠재의식에 의한 연구를 통해 잘 준비된 토양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연구도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합니다. “Good preparations make a success(준비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 푸앙카레의 어릴 때 모습. 지독한 근시였고 말이 어눌했지만 기억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
“The thought is only a flash between two long nights, but this is everything.”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발한) 생각이란 두 개의 긴 밤 사이에 잠깐 나타나는 섬광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이다.” 과학자에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번뜩이는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글을 쓰는 문학가들만 사색을 즐기는 게 아닙니다. 그 사색 속에서 번뜩이는 독창적 사고가 나타납니다. 휴대폰하고만 살지 말고 독서도 즐기고 공원을 거닐며 사색도 하시기 바랍니다.

“…by natural selection our mind has adapted itself to the conditions of the external world. It has adopted the geometry most advantageous to the species or, on other words, the most convenient. Geometry is not true, it is advantageous(자연선택에 의해 우리는 외부세계에 적응하게 됐다. 그리고 마음(인간)은 종(種), 다시 말해서 선택된 종에게 가장 이로운 기하학을 선택했다. 기하학은 진리가 아니라 유익한 학문이다).” 이 말은 새겨 들으시길 바랍니다. 푸앙카레가 미적분 방정식과 함수관계 연구가 전공이기 때문에 기하학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을 비롯해 많은 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듯이 기하학은 우리에게 이익과 편의를 주는 선택적 학문이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푸앙카레는 1854년 프랑스의 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이 의사라서 유복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화정의 대통령을 지낸 유명한 정치가 레이몽 푸앙카레의 사촌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이 부유하다고 해서 다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지만 푸앙카레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푸앙카레는 지독한 근시였지만 (near sighted, 원시는 long 또는 far sighted) 기억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 아주 어눌했다고 합니다. 아마 요즘 같으면 구술시험에서는 빵점이죠. 스피치 능력은 타고나는 건데 논술시험은 그렇다고 해도 구술시험이 대학시험에서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사기(史記)를 지은 중국의 사마천은 말이 어눌하기로 유명했고 한비자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이론가들입니다. 특히 사마천은 모함에 연루되어 끌려갔지만 대답을 잘 하지 못해 왕의 분노를 더욱 사서 치욕적인 궁형(宮刑, 거세하는 형벌)을 당합니다. 그 치욕을 딛고 위대한 사기를 쓴 거죠.

이와 반대로 ‘합종과 연횡’으로 잘 알려진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말을 기가 막히게 하는 변설가, 요설가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은데 장의에 얽힌 재미있는 고사(故事)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吾舌尙在(오설상재)’라는 말입니다. 뜻은 ‘내 혀는 그대로 잘 있는가?’라는 말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장의가 머리 속에는 대단한 책략을 갖고 있으면서도 벼슬에 등용되지 못해 놀고 먹으면서 무위도식 하던 시기에 초나라 재상인 소양(昭陽)의 집에 초청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소양이 애지중지하게 여기면서 문객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던 구슬이 없어집니다. 초청 받은 사람들 가운데 그래서 허술한 옷차림을 했던 장의가 혐의자로 누명을 써 도둑으로 몰려 죽도록 매를 맞습니다.

반쯤 죽은 채 수레에 실려 집에 돌아와 장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내 혀를 보오. 여전히 그대로 잘 붙어 있소?(視吾舌 尙在下, 시오설 상재하)”라고 물었더니 아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혀야 있지요!” 했더니 장의는 “그러면 됐소!”라며 잠을 잡니다. 혀만 성하면 팔다리쯤 병신이 되고 절단이 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장의의 혀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옵니다. 사기는 꼭 읽어볼 고전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1.09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5)
프란시스 베이컨
▲ 프란시스 베이컨.  ⓒ
Men of age object too much, consult too long, adventure too little, repent too soon, and seldom drive business home to the full period, but content themselves with a mediocrity of success.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나치게 반대를 많이 한다. 충고를 오랫동안 하고, 모험은 거의 하지 않는다. 너무 빨리 후회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돈을 벌어다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평범한 성공으로 만족해 하는 사람들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 영국의 철학자, 정치가, 과학자 -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잘 아시죠? “아는 것은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많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야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명언으로 “아는 것과 사람의 능력은 동의어다(Knowledge and human power are synonymous).”라는 말도 있습니다. 많은 말을 남겼고 17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문필가로 인정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특히 글을 잘 써서 ‘문장의 대가’로 통합니다.

우선 나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깐 베이컨의 명언 가운데 나이에 관한 것을 몇 개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Age will not be defied(나이란 결코 무시될 게 아니다).”, “Old wood best to burn, old wine to dink, old friends to trust, and old authors to read(오래된 장작이 불을 지피기에 가장 좋고 포도주도 오래된 것이 마시기에 그만이다. 오래된 친구가 가장 믿을 수 있으며 옛날 작가의 작품이 가장 읽기에 좋다).”

‘Old wood best to burn’을 혹시 ‘오래된 숲은 태워 버리기에 안성맞춤이다’라고 번역해서는 안 됩니다. 문법적으로 해석은 항상 앞뒤 문장과 분위기를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That things are changed, and that nothing really perishes, and that the sum of matter remains exactly the same, is sufficiently certain.”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의 전체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정확히 꼭 같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철학자 베이컨 말고 베이컨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몇 사람이 더 있습니다. 생물학자 헉슬리(Thomas Huxley)도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헉슬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습니다. 로저 베이컨(Roger Bacon)도 있습니다. 로저 베이컨은 13세기 같은 영국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입니다. 과학자이기도 해서 근대과학의 선구자로 ‘경의(驚異)의 박사’로도 불립니다. 수학을 중시했고 광학(光學)연구를 좋아했습니다.

다음으로 철학자 베이컨과 꼭 같은 이름의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이 있습니다. 화가로 2차대전 후부터 화단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작품은 초현실주의풍으로 추상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베이컨은 그림도 잘 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자 베이컨은 모든 방면에 다재다능했지만 그림에는 소질이 상당히 없는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이컨하면 또 돼지고기 요리 일종인 베이컨이 있습니다. 스펠링은 꼭 같습니다.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 전문가에게도 물어도 보고 찾아봤지만 연관이 없었습니다. 혹시 연관이 있다는 걸 아시는 분이 계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참고도 하고 공부도 하게 말입니다.

돼지고기 베이컨은 멧돼지라는 독일어 ‘바헨(Bachen)’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베이컨이라는 성(姓)이 베이컨을 만드는 지역에서 탄생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해보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베이컨을 돼지고기와 비유하다니!’라며 철학자 베이컨뿐만 아니라 베이컨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불쾌하다며 항의할 것 같습니다.

▲ '영어문장의 대가' 프란시스 베이컨. 그가 말한 '아는 것이 힘이다'의 아는 것이란 과학지식을 의미한다.  ⓒ
베이컨의 명언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의 생애나 업적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공부도 할 겸 그의 명언에 빠져 볼까요? 돈에 대한 명언을 몇 개 소개해 볼까요? “Money is like muck, not good except it be spread(돈이란 마치 (똥)거름과 같다. 뿌리지 않는다면 좋은 게 아니다).” 좀 신랄하면서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Money makes a good servant, but a bad master(돈은 좋은 하인을 만들 수 있지만 나쁜 주인을 만든다).”

이외에도 “No man’s fortune can be an end worthy of his being(인간의 어떠한 재산도 존재가치와 맞먹는 목적이 될 수는 없다).”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fortune(행운)은 돈과 재산을 뜻하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행운은 부(富, wealth)를 거머쥐는 일입니다. 또 행운의 여신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는 걸 의미합니다. 또 돈 많은 여자를 만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기야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비난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잡지 가운데 포춘(Fortune)지가 있습니다. 행운을 가져주는 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읽으면 그 속에서 돈 벌 수 있다는 책이라는 이야기죠.

인간의 감정, 희망에 대해 언급한 명언들도 있습니다. “It is strange desire, to seek power, and to lose liberty ; or to seek power over others, and to lose power over a man’s power(자유는 잃으면서 권력을 탐하는 것은 이상한 욕심이다. 그리고 자신을 통제하는 힘은 잃어 버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을 탐하는 것도 이상한 욕심이다).”

“Nothing destroys authority more than the unequal and untimely interchange of power stretched too far and relaxed too much.”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멀리까지 뻗어있으면서 너무 느슨하고, 불평등하고 미숙한 권력의 교체만큼 권위를 파괴시키는 것은 없다.” “Mysteries are due to secrecy(신비함이란 비밀스러운 곳에서부터 나온다).” “Anger makes dull men witty ; but it keeps them poor(분노는 우직한 사람을 재치 있게 만든다. 그러나 가난하게 만든다).”

“It is miserable state of mind to have few things to desire and many things to fear(소유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것도, 두려워할 게 많은 것도 마음의 상태가 비참한 것이다).” “Men fear death as children fear to go in the dark ; and as that natural fear in children is increased with tales, so is the other(사람은 어린애가 어둠 속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린이의 자연적인 두려움은 이야기(설화나 동화)로 커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어른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애들이 동화책을 통해서 어둠의 공포를 점점 더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은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닌데 주위에서 하도 두려운 거라 하니까 저절로 두려워지게 된 거라는 이야기죠.

“Boldness is ever blind, for it sees not dangers and inconveniences whence it is bad in council though good in execution(뻔뻔하면 봉사가 된다. 왜냐하면 행동에 옮길 때는 좋을지 모르지만 회의에서 나빠 위험이나 불편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요? 간단한 말이지만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Whence는 약간 고어입니다. Where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명언도 있습니다. “Prosperity is the blessing of the Old Testament ; adversity is the blessing of the New(영화는 구약이 준 축복이지만 역경은 신약이 준 축복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에도 많은 지식의 소유자다. 부패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눈과 닭을 실험하다가 독감으로 사망했다.  ⓒ
베이컨의 명언들 가운데 아마 이 명언도 많이 접해 보셨을 겁니다. “Some books are to be tasted ; others to be swallowed ; and some few to be chewed and digested(책들 가운데는 맛만 볼 정도로 가볍게 읽을 책이 있고, 삼켜도 될 정도로 줄거리만 읽어도 될 책이 있는가 하면 씹고 소화시켜 의미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할 책이 있다).” 베이컨이 독서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겁니다.

독서와 책에 관련된 명언들을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Read not to contradict and confute ; nor to believe and take for granted ; nor to find talk and discourse ; but to weigh and consider(반박하거나 부인할 목적으로 읽지 말라. 그렇다고 믿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읽지 말라. 이야깃거리나 설교거리를 찾으려고 읽지 말라. 숙고하고 깊이 생각하기 위해 책을 읽어라).” 목적을 갖고 독서하지 말고 마음의 깊은 심지를 찾고 인생의 깊이를 위해 독서하라는 말 같습니다.

이와 같은 명언들도 있습니다. “If a man be gracious and courteous to strangers, it shows he is a citizen of the world(타인에게 관대하고 예의가 바르다면 그게 세계시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People usually think according to their inclinations, speak according to their learning and ingrained opinions, but generally act according to custom(사람은 보통 성향에 따라 생각하고 지식과 상습적인 견해에 따라 말한다. 그러나 행동은 보통 관습에 따라 한다).”

사람의 명예라는 게 덧없음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Good fame is like fire ; when you have kindled you may easily preserve it ; but if you extinguish it, you will not easily kindle it again(훌륭한 명예란 불과도 같다. 불을 켰을 때는 명예를 쉽게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을 일단 끄면 다시 켜기가 어렵다).” “Prosperity is not without many fears and distastes ; adversity not without many comforts and hopes(영화라고 해서 두려움과 혐오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역경 속에도 위안과 희망은 있다).”

철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Small amounts of philosophy lead to atheism, but larger amounts bring us back to God(미천한 철학지식은 무신론으로 이끌지만 깊은 지식은 신으로 이끈다).” “Philosophy when superficially studied, excites doubt, when thoroughly explored, it dispels it(피상적으로 공부한 철학은 의심을 일으키지만 깊이 공부한 철학은 그 의심을 끊게 만든다).” 앞의 명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네요.

명언은 이제 그만하고 베이컨의 생애에 대해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베이컨이 활동하던 시대는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당시 철학자들은 수학자들이 많았고 자동적으로 철학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서양의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용주의 철학들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실증이 가능한 자연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베이컨 이후에 나타난 철학자들, 데카르트, 가우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이컨의 ‘아는 것은 힘이다’의 아는 것은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과학적인 지식이 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베이컨은 영국의 왕 제임스 1세 치하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주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의회의 미움을 샀고 뇌물수수죄로 기소돼 권력에서 추방당합니다. 불우한 처지에서도 용기를 꺾지 않고 집필활동을 계속하면서 <바람의 자연사>, <삶과 죽음의 자연사>와 같은 저술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1626년 3월 어느 날 런던 북쪽 하이게이트 근처에 산책을 나갔다가 문득 과연 눈이 부패과정을 지연시키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닭을 한 마리 사서 박제로 만들어 그 속에 눈으로 채우는 실험을 합니다. 그러나 베이컨은 그 일로 심한 독감에 걸려 4월 9일 기관지염으로 세상을 등집니다. 법률가, 정치가, 철학자로, 그리고 문학자와 과학자로 시대를 풍미하던 베이컨은 이러한 실험을 하는 와중에 죽습니다. 전 생애를 연구에 몰두했던 학자의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1.02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4)
헤라클레이토스
▲ 헤라클레이토스.  ⓒ
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 for other waters are continually flowing on it. There is nothing permanent except change. Nothing endures but change.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물들이 그 위에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변화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 이외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BC535~BC475): 고대 그리스 철학자, 우주론 학자 -

많이 들어 본 이야기죠?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us)를 기억할 겁니다. c를 k로도 씁니다. 그리고 u를 o로 표기한 경우도 많다는 것은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철자를 Heraclitus로도 씁니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하도 옛날 이름이어서 그동안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바뀐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 소개하는 이 말보다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 또는 All things are set in motion and flow.)’라는 더 간단한 말로 많이 알려져 있죠. 우선 분명히 할 것은 영어에서 나타난 것처럼 유전이란 흐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생물학에서 이야기하는 유전(遺傳, heredity)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흐른다, 흘러 가버린다’의 유전(流轉)이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제는 그 뜻이 분명해지는 거죠.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은 언뜻 보기에는 당연하게 들립니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것은 만물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이야기는 불교식의 무상(無常)이나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떠올린다면 당연하게 들립니다. 그리고 그 명언들을 보면 무상하게 들리는 게 많습니다. 그의 철학은 불교적 무상과도 비슷하면서 또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Everything flows and nothing abides, everything gives way and nothing stays fixed. God is day and night, winter and summer, war and peace, surfeit and hunger(만물은 유전하고 머무르지 않는다. 만물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고정된 채 남는 것은 없다. 신은 낮과 밤이며, 겨울과 여름이고 전쟁과 평화다. 그리고 배부름(포만)과 배고픔이다.).”

사실 유전(流轉)이라는 단어를 영역한 사전을 보면 무상함, 허무함을 뜻하는 vicissitude, transmigration 등으로 표현하고 유한함을 나타내는 impermanency라는 말로도 쓰는 것 같습니다. “Impermanency is the nature of the things(무상, 유한성은 만물의 본성이다.).” 그런데 무상(無常)이라는 말은 ‘허무하다, 덧없다’라는 말로 쓰입니다. 가을도 그러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무상은 원래 ‘항상, 늘 존재하는 것이 없다. 변화한다’의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허무하다는 거죠. 제행무상(諸行無常)이 그런 의미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해 계속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인생무상(人生無常) 따위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애와 주장을 공부해 보면서 그의 철학을 이해해 볼까요.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조화로운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적 원리라고 주장한 우주론으로 유명합니다.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그가 썼다고 하는 단 한 권의 책도 유실된 상태입니다. 그의 견해는 후대 작가들이 인용한 짤막한 단편들 속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Heraclitus, Greek philosopher remembered for his cosmology, in which fire forms the basic material principle of an orderly universe. Little is known about his life, and the one book he apparently wrote is lost. His views survive in the short fragments quoted and attributed to him by later authors.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헤라클레이토스. 독설로도 유명한 철학자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자이면서도 대단한 신비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불이라고 생각한 것은 만물이 불꽃처럼 다른 무엇의 죽음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죽음은 곧 하나의 탄생이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Immortal mortals, mortal immortals, one living the others death and dying the others life. Sleepers are workers.(죽는 것들은 결코 죽지 않는 것이며 죽지 않는 것은 죽는 것이다. 하나가 살아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의 죽음이며, 또한 죽는 것은 다른 것의 삶이다. 잠을 자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들로 그의 신비주의를 잘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런 극과 극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로고스는 서로 반대되는 것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과 질병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선과 악, 뜨거움과 차가움, 그 밖의 서로 반대되는 것들도 마찬가지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단일한 실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각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즉 바닷물은 사람에게는 해롭지만 물고기에게는 이롭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영문을 보면,

“A significant manifestation of the logos, Heraclitus claimed, is the underlying connection between opposites. For example, health and disease define each other. Good and evil, hot and cold, and other opposites are similarly related. In addition, he noted that a single substance may be perceived in varied ways—seawater is both harmful (for men) and beneficial (for fishes).”

서로 반대되는 것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의 혼란스럽고 다양한 특징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래서 세계란 한 방향의 변화와 그와 대응하는 다른 방향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정합적인 체계로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And he asserted that the world exists as a coherent system in which a change in one direction is ultimately balanced by a corresponding change in another.).

삼라만상 모든 것 사이에는 숨겨진 연관이 있어서 겉보기에는 ‘떨어져 있으려는 것’도 실제로는 ‘함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Between all things, there is a hidden connection, so that those that are apparently ‘tending apart’ are actually ‘being brought together.’.” 만유인력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긴 만유인력의 법칙을 연기설과 같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것의 존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가 연기설입니다. 넘어가죠.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을 통일하는 근본물질로 불을 본 것은 그의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통찰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세계질서는 ‘일정한 정도로 타오르고 일정한 정도로 꺼지는 영원히 사는 불’이라고 썼습니다. “Heraclitus wrote that the world order is an ‘ever-living fire kindling in measures and being extinguished in measures.’.”

▲ 그는 인기가 없었고 후기 전기학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해 놀림도 많이 받았으나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의 현상 형태를 확장해 연료, 불꽃, 연기뿐만 아니라 대기의 에테르까지 포함시킵니다. 이 공기 또는 순수한 불의 일부가 바다 또는 비로 변하고, 바다의 일부가 땅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모든 곳에서 똑같은 양의 땅과 바다가 각자 바다와 불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겁니다. 약간 아리송하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결과 동적인 평형이 이루어지며, 이것이 세계의 질서 있는 균형을 유지합니다. 변화 속에서도 이렇게 통일이 유지되는 것을 헤라클레이토스는 인생과 강의 유명한 비유로 보여준 거죠. “The resulting dynamic equilibrium maintains an orderly balance in the world. This persistence of unity despite change is illustrated by Heraclitus’ famous analogy of life to a river.” ‘만물은 유전한다’가 그겁니다. 플라톤도 나중에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 원리를 채택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당대에는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인자한 성격도 아니고 남을 멸시하는 것을 좋아했고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반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비록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깔봤지만 책이나 저술활동을 통해서 반대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대놓고 한 것도 아니고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도시(국가)는 아직 수염도 나지 않는 소년들에게 맡겨라!’라고 하면서 독설을 퍼부은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 고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에게 악평을 퍼부었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고 합니다. “호머는 울타리 밖으로 채찍질해 내쫓아야 한다. 피타고라스, 그의 지혜란 많은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이며 익살의 기술에 불과하다.” 심지어 당시 존경 받고 있던 탈레스까지도 비난하고 그의 이론을 욕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가 제일 잘 난 거죠.

예외 인물은 튜타무스입니다. 공박을 모면한 이유는 튜타무스가 “인간은 거의 모두가 약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 말 때문에 그를 소중히 여기고 면박을 주지 않았을까요? 아마 이런 거 아닐까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잘났다고 으스대는 데 비해 튜타무스는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 동물에 불과하다”며 겸손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튜타무스의 이야기는 버트란트 러셀의 수필집에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많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Character is our destiny(성격이 운명을 좌우한다.).” “No one that encounters prosperity does not also encounter danger(영화를 맛본 사람 치고 고난을 맛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훌륭한 말이죠. “Bigotry is the sacred disease(고집은 신성한 질병이다.).” 이 말이 약간 어려운데요. 고집은 필요하다는 이야긴가요? 아니면 역설적으로 ‘고집이란 잘난 척하는 하는 사람들의 병’이라는 건가요? 우리가 배운 헤라클레이토스의 성격으로 본다면 후자일 것 같은데요.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0.26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3)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 존 돌턴
▲ 존 돌턴.  ⓒ
Like many beginning writers, I had to make the difficult leap from short stories to learning the craft and form of a novel.

글을 시작하는 많은 신출내기 작가들처럼, 나는 단편 소설로부터 그 기술을 배워 (긴)소설을 쓰는 어려운 도약을 해야만 했다.
- 존 돌턴(1766~1844) : 영국의 물리학자, 화학자 -

명언이 주는 의미가 재미있습니다. 함축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본인의 인생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그의 철학과 사상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꼭 영어공부 때문이 아니라 암기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야깃거리도 되잖아요? 또 잘난 척도 해보고 말입니다.

명언은 한자로 ‘銘言’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말이라서 ‘名言’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새길 명’인 銘을 씁니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새겨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면 명언을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요? 명언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말이 없고 ‘famous quotes, famous quotations, famous story’로 쓰는 것 같습니다.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 존 돌턴(John Dalton)의 과학적인 업적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업적도 중요하지만 과학자의 인생관도 중요합니다. 명언이 그런 것 아닐까요? 소설을 쓰려면 단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글 쓰는 것에 익숙해지면 장편(novel)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돌턴에 대해서 말하자면 두 가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는 색맹(色盲)과 색약(色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적록색맹, 적록색약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다음에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인데 퀘이커교(敎)입니다. 종교가 과학을 멀리하고 과학이 종교를 멀리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돌턴은 근대 원자론(原子論)을 제시해 근대 물리과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퀘이커(Quakers) 교도였던 직공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겨우 12세 때 컴벌랜드에 있는 한 퀘이커 학교의 관리를 떠맡았습니다. 2년 뒤 켄들에 있는 학교로 옮겨 그의 형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12년을 보냅니다.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낀 돌턴은 맨체스터에 있는 뉴칼리지에서 수학과 자연철학을 강의합니다. 당시 영국의 학문의 요람이라고 하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은 영국 국교도들에게만 입학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칼리지 대학은 비국교파 목사를 길러낼 목적으로 장로교에서 세운 일급 교육 기관입니다.

비국교파라는 것은 영국의 성공회(Englican Church)를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역사가 어쨌든 지금의 성공회는 대단히 많은 종교를 포용하려고 애를 씁니다. 여타 기독교 종파(religious denominations)와는 다릅니다. 영국의 10%가 이슬람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불교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성공회대학교’가 있습니다. 성공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공부하기 바랍니다.

의학적인 용어로 영어단어에 ‘Daltonism’이란 것이 있습니다. 돌턴의 이름을 딴 겁니다. 적녹색약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색맹’을 뜻합니다. 돌턴은 선천적으로 색맹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학의 이공계를 지망할 때 색맹을 따집니다. 어떻게 보면 차별이기도 하고 또 따져보면 맞는 것도 같습니다.

돌턴의 논문과 업적은 2차 대전으로 많이 소실됩니다. 그를 흠모했던 아시모프(Isaac Asimov) 박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John Dalton’s records, carefully preserved for a century, were destroyed during the World War Two bombing of Manchester. It is not only the living who are killed in the war(한 세기 동안 소중하게 간직 된 돌턴의 기록은 이차대전의 맨처스터 공격으로 소실됐다. 전쟁에서 죽은 것은 생명만이 아니다)” 돌턴의 업적도 죽었다는 의미죠.

아시모프 박사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과학자로 SF(과학소설) 작가로 유명합니다.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과학 해설자로, 작가로 유명합니다. 요즘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아시모프 박사는 로봇에 대해 많은 글을 쓰면서도 또 로봇을 경계하는 내용의 ‘로봇 3원칙’으로도 유명합니다. 잠깐 소개할게요.

“1. 로봇은 어떤 이유이든 간에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1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3. 로봇은 1의 원칙과 2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만 한다.” 이 로봇 3원칙은 당시 범람하고 있던 로봇 SF물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만든 개념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SF물들에 대한 것이죠. 다음 기회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를 통해 원문과 함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색맹인 돌턴은 색맹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합니다. 그의 연구로 ‘Daltonism’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죠. 돌턴은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입니다. 원자론은 옛날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철학자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릅니다. 그래서 ‘객관적 과학’이라는 말을 씁니다. 탈레스도 우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우주론에 대해 객관적인 과학을 제공한 사람은 갈릴레오입니다. 객관적인 과학은 수학적인 이론과 증빙이 필요합니다. 돌턴은 자신의 연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This paper will no doubt be found interesting by those who take an interest in it(내가 쓴 논문은 의심의 여지없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것이다).”

▲ 돌턴은 색맹이었다. 그래서 색맹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차별을 받는 퀘이커 교도였지만 청렴함과 진실을 소중히 여겼다.  ⓒ
돌턴은 기상학(meteorology)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대단한 ‘날씨도사’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이야기로 이공계 출신이 아닙니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맨체스터 문학과 철학학회 서기가 되었고 수학과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로도 일합니다. 그리고 1817년 명예직인 철학학회 회장이 되었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직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사로 일했던 초기에 그는 유능한 기상학자이자 기구 제작자였던 부유한 한 퀘이커 교도의 영향을 받아 수학과 기상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787년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이 살았던 호수 주변지역의 기후변화를 기록하는 기상관측일지를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과학적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늙어서도 줄곧 기록한 이 관측일지에 약 20만 항목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기상관측자료와 소론(Meteorological Observations and Essays)’을 1793년에 출간했습니다.

퀘이커교도들은 이단이라고 불리며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학문의 요람인 영국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함석헌 선생이 대표적인 퀘이커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별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단으로 취급하는 종교적인 이유가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사상과 진리의 깊이가 대단합니다. 장자와 노자, 그리고 불교의 사상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상과 철학을 포용한 학자입니다. 동서양의 사상을 두루 이해한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인도의 중요한 철학서인 ‘바가바드기타’를 영문이 아닌 원문 산스크리트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번역한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돌턴은 식물과 곤충 채집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787년에는 오로라를 보고 이 현상을 관측하기 시작합니다. 북극오로라(北極光)에 대한 그의 글에 다른 사람들의 결론에 크게 구애 받지 않은 그의 독자적인 생각을 표현합니다. 과학은 꼭 과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아니라 호기심(curiosity)과 상상력(imagin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학자입니다.

기상학을 연구하면서 그는 무역풍(trade wind)의 발생원인이 지구의 자전과 온도변화와 관련된다는 결론도 내립니다. 바다의 온도변화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무역풍에 대한 이야기는 해양학자의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역풍은 인간이 이용한 최대의 해양 자원입니다. 무역풍을 이용해 세계 탐험이 가능했던 겁니다.

돌턴은 그칠 줄 모르는 탐구자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자료에서 이론을 정립해내는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초부터 시작한 그의 화학연구는 그의 정신력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6년 동안 뉴칼리지에서 화학을 가르치긴 했어도 화학연구의 경험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다른 연구들을 할 때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직관과 독자적인 정신,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과 이용 가능한 사실을 통해 이론을 창조적으로 종합해내는 천재성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체들을 연구해 돌턴의 법칙으로 알려진 기체분압법칙(혼합기체의 총압력은 그 혼합기체를 이루고 있는 각 기체들의 압력을 모두 합한 것과 같으며, 각 기체는 독립적으로 작용함)을 정립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험하면서,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기체의 부피는 늘어난다’는 이론을 세우기도 합니다. 샤를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돌턴에게도 공적이 있습니다. 퀘이커교를 굳게 믿으면서 항상 욕구를 절제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단정한 옷차림과 경건한 몸가짐을 흩뜨리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불에 타버립니다. 그는 왕립학회의 회원이었고 영국과학진흥협회를 설립합니다. 1826년에는 왕립학회로부터 금메달을 받습니다. 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객원회원이기도 했습니다. 돌턴은 물리학자이기도 하고 화학자이기도 합니다. 요즘 탄생한 단어로 물리화학자라고 할 수 있죠. 무려 46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매일 매일의 날씨를 또박또박 기록한 놀라운 인물입니다. 그의 진면목은 화학입니다. 돌턴의 ‘복합비례법칙(Law of Multiple Proportions)’은 화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돌턴은 원자이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nglish meteorologist and chemist, a pioneer in the development of modern atomic theory(영국의 기상학자, 그리고 화학자. 현대 원자이론 개발의 개척자).” 최대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의 설명입니다. 그가 물리학자라는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또 따지자면 물리와 화학을 구분하는 선은 없습니다.

종교와 인종으로 인해 차별받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돌턴은 퀘이커교도라는 것 때문에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을 깨고 또 깨면 마지막이 원자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래서 원자이론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물론 다른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사람은 단편소설을 쓰다가 장편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체득한 느낌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진보합니다. 돌턴의 명언이 주는 의미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10.19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2)
데모크리토스
▲ 데모크리토스. 그의 원자설은 지금의 원자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원자론의 시작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
Now as of old the gods give me all good things, excepting only those that are baneful and injurious and useless. These, now as of old, are not gifts of the gods : men stumble into them themselves because of their own blindness and folly.

옛날처럼 지금도 신들은 인간에게 해롭고 무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일들을 준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좋은 일들은 신들의 선물이 아니다. 인간의 무지와 우직함으로 인해 우연히 마주치는 일들이다.
-데모크리토스(BC 460~BC370) :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 주장자-

말이 좀 어렵네요. 이렇게 설명해 볼까요? “세상에는 좋은 일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아니다. 인간이 무지하고 우직하게 살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일들에 불과하다.” 설명한 이야기가 오히려 더 어렵나요?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가 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데모크리토스의 명언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The wrongdoer is more unfortunate than the man wronged(그릇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릇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 덜 불행하다).” 처음의 명언과 약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전혀 관계가 없는가요?

또 다른 명언이 있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을 먼저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말은 행실의 그림자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유명해져라(The word is the shadow of the deed. Not by the words would I make my life famous, but by deeds).” 데모크리토스는 행동의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My enemy is not the man who wrongs me, but the man who means to wrong me(나의 적은 나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할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 소개하는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에 나오는 ‘무지(blindness)와 우직함(folly)’이란 인간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설사 실패를 한다 해도 그러한 과정 속에서 좋은 일을 마주칠 수 있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더 좋은 해석이나 해답을 갖고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You can tell the man who rings true from the man who rings false, not by his deeds alone, but by also his desire(우리는 진리의 벨을 울리는 사람과 거짓의 벨을 울리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행동이 아니라 바로 그의 욕심에 의해서다).” 행동과 실천을 강조한 또 다른 명언입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원자(atom)란 말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이 데모크리투스 입니다. 데모크리토스라고도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u’발음을 ‘우’로 하지 않고 ‘오’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Democritos’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전이나 외국 사이트에 들어갈 때는 하나에만 매달리지 말고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물질을 분해해 가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입자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 입자를 “아톰[a(부정)+tomos(분해하다)]”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라는 거죠. 물론 이 생각은 현대 과학자들의 사고와는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프랑스 화학자 라부와지에(Lavoisier)와 19세기 근대 원자론의 창시자인 영국의 돌턴(Dalton)에 의해 원자는 한 개, 두 개로 셀 수 있는 입자로 밝혀지게 됩니다. 이에 자극받아 20세기 초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 러더퍼드 등은 각각 원자 속에서 전자, 원자핵 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보어는 태양계처럼 전자가 원자핵을 돌고 있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 데모크리토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 정부가 1983년에 발행한 우표.  ⓒ
그리스의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애에 관해 알려져 있는 것은 대부분 믿을 수 없는 전설뿐입니다(He is the central figure in the development of the atomic theory of the universe. Knowledge of Democritus’ life is largely limited to untrustworthy tradition).

그는 트라키아의 아브데라에서 부유한 시민으로 살면서, 동방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장수를 누린 것 같습니다. 아브데라는 에게해(海) 북쪽 연안으로 네스토스 강 하구에 있는 도시로 농작물이 풍요로운 도시입니다. 인간척도설(人間尺度說)로, 그리고 최초의 소피스트로 유명한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를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아버지는 귀족 출신으로 한 때 페르시아 제국의 제4대 왕으로 오페라에도 자주 등장하는 크세르크세스(Xerxes)에게 돈을 바치기도 합니다. 다리우스 1세의 아들로 제3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켜 그리스를 침입하지만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합니다.

그는 지식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는 73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윤리학에 관한 글의 일부인 수백 편의 단편뿐입니다. 일종의 명언 형식으로 남아 있는 윤리와 도덕에 관한 짧은 문장들입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몇 편 소개해 볼까요? 쉬운 문장들입니다.

“Medicine cures the diseases of the body ; wisdom, on the other hand, relieves the soul of its sufferings(약은 몸의 질병을 고친다. 그러나 지혜는 상처 난 영혼의 고통을 덜어준다).”

“The needy animal knows how much it needs, but needy man does not know(어려움에 처한 동물은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 그러나 인간은 모른다).”

“The brave man is he who overcomes not only his enemies but his pleasures. There are some men who are masters of cities but slaves to women(용감한 남자란 적뿐만 아니라 욕망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러 도시(국가)를 지배하면서도 여자에게는 노예가 되는 남자들이 있다).”

중용을 강조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Moderation increases enjoyment, and makes pleasure even greater(중용은 즐거움을 가중시키고 기쁨도 더 크게 한다).” “It is childish, not manly, to have immoderate desire(중용을 벗어난 욕망을 탐하는 것은 인간답지 못한 어리석은 일이다).”

“The good things of life are produced by learning with hard work ; the bad are reaped of their own accord without hard work(인생의 좋은 일은 어려운 일을 배우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나쁜 일은 어려운 일이 없이 체득된다). Happiness resides not in possessions, and not in gold, happiness dwells in the soul(행복은 재물이나 금(金)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영혼에 있다).”

이와 같은 윤리와 도덕, 행복에 대한 단편들 200편을 남겼습니다. 몇 편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Virtue consists, not in avoiding wrong-doing, but in having no wish thereto(미덕이란 잘못을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는 일에 있다).” “There is no poetry without madness(미치지 않고서는 시가 탄생할 수 없다).”

데모크리토스는 물리학과 우주론을 스승인 레우키포스(Leucippus)에게 배웁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실재 또는 존재가 영원하고 나눌 수 없는 통일체라는 엘레아 학파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 실재가 하나뿐이고 고정되어 있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세계의 변화하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공간 또는 빈 공간도 실재 존재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습니다.

▲ 데모크리토스의 웃음(Democritus Laughing). 어떤 웃음일까? 17세기 네델란드 화가 핸드릭 테르 부르겐의 작품이다.  ⓒ
빈 공간(void)은 무한한 공간인 진공(vacuum)이며, 존재(물질계)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원자들이 이 진공 속을 움직이고 있고 이 원자들은 영원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만큼 작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또한 원자는 빈 구멍이 없고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꽉 메우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꽉 차 있으며 압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원자는 모양•배열•위치•크기만 다를 뿐 성질은 모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자는 양적으로만 다를 뿐이고 질적인 차이는 원자의 윤곽과 결합 상태의 차이가 우리 감각에 주는 인상 때문에 생겨나는 겉보기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Because all phenomena are composed of eternal atoms, it may be said that nothing comes into being or perishes in the absolute sense of the words, although the compounds made out of the atoms are liable to increase and decrease, explaining an thing’s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or ‘birth and death’.”

번역해 보면, “모든 현상은 동질의 영원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새로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자로 이루어진 복합체는 양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으며, 사물이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 또는 ‘탄생’과 ‘죽음’은 바로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우주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원자는 원래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운동은 일종의 '진동'이었기 때문에 원자들 사이에는 충돌이 일어났고, 특히 회전운동으로 말미암아 비슷한 원자들이 서로 결합함으로써 큰 덩어리들과 세계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어떤 목적이나 계획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 단순히 ‘필연’의 결과로 일어난 것, 즉 원자 자체의 성질이 정상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The original motion of the atoms was in all directions-it was a sort of ‘vibration’, hence there resulted collisions and, in particular, a whirling movement, whereby similar atoms were brought together and united to form larger bodies and worlds. This happened not as the result of any purpose or design but rather merely as the result of any purpose or design but rather merely as the result of ‘necessity’ ; it is the normal manifestation of the nature of the atoms themselves).” 어렵네요.

데모크리토스는 특별한 자연현상(천둥, 번개, 지진 등)을 초인적 힘의 탓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He attributed popular belief in the gods to a desire to explain extraordinary phenomena(thunder, lightning, earthquake) by reference to superhuman phenomena agency.” BC 400년, 그러니까 24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시대가 시작되면서 자연현상은 오직 신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다시 조명하자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겁니다. 문명은 퇴보하지 않았지만 사상적 이론은 퇴보했던 시기가 바로 중세 시대입니다. 그래서 ‘Dark Age’라고 부르는 거죠.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6.09.28 ⓒScience 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1)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
▲ 멘델. 일생을 수도사로 생활하면서도 연구에 몰두, 유전학의창시자가 됐다.  ⓒ
“The value and utility of any experiment are determined by the fitness of the material to the purpose for which it is used, and thus in the case before us it cannot to experiment and in what manner such experiment is conducted.”

실험의 가치와 효용성은 소재가 목적에 부합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 어떤 식물이 실험에 사용되게 됐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실험이 진행됐는가 하는 것은 그저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그레고르 멘델(1882-1884):오스트리아 출신의 생물학자, 수도사-

완두콩(pea)으로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Gregor Johann Mendel) 아시죠? 생물학 시간에 많이 등장하며 시험에도 자주 나옵니다. 유전에 관해 처음으로 법칙을 발견해 유전학의 아버지(The Father of Genetics)라고 불립니다. 근대유전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윈도 진화론을 통해 유전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으나 생물체의 무엇이 유전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도사인 멘델입니다.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멘델의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집안이 넉넉치 못했습니다. 고학으로 올뮈츠의 단기대학을 졸업하고 브륀(현재 체코의 브르노)의 성 토마스 수도원으로 추천을 받아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부근 중학교에서 임시교원 생활을 하면서 교사자격시험을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합니다.

멘델은 수도원 정원에서 자라는 완두콩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어떤 콩은 색갈이 노랗고 흰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또 주름이 있는 콩과 그렇지 않은 콩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그는 결국 얼마 뒤 수도원 원장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정원 한구석을 빌립니다. 그리고 완두콩의 유전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멘델의 유명한 유전법칙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만약 당시 멘델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해 교사의 길을 걸었다면 아마 ‘완두콩의 유전법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인생을 새옹지마라고도 하는 것이죠. 인생에는 항상 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Mendel’s attraction for scientific research was based on his love of nature in general. He was not only interested in plants, but also meteorology and theories of evolution. However, it is his work with pea plant that changed the world of science forever.

(과학연구에 대해 멘델이 느끼는 매력은 일반적으로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에 있다. 그는 식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기상학과 진화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과학세계를 영원히 변화시킨 것은 완두에 대한 그의 연구다.)

지난 2003년을 뒤흔든 주제는 ‘인간복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뒤흔들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똑같은 언니이면서 엄마가 동시에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대 과학은 ‘'나’와 유전자가 쌍둥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생명을 준 모성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핵심은 핵이 제거된 난세포의 핵을 이식시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제2의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아기는 체세포를 준 엄마의 딸이자, 엄마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 동생, 즉 복제 인간입니다.

인간 복제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은 1천년 후든, 1만년 후든 시간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하냐?’라는 질문이 더 현실적입니다. 복제 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인간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등 동물인 양과 개의 복제가 가능할 정도라면 인간도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도 많이 합니다.

어쨌든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시작으로 복제양 돌리의 탄생, 복제인간의 가능성 등으로 이어지면서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생명공학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발전 이전에 생명진화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바로 멘델입니다.

▲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됐을 당시 진화론을 풍자한 만화.  ⓒ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됐을 때만해도 기독교가 지배하던 당시 사회는 들끓었고 원숭이의 몸에 그의 얼굴을 그려넣은 풍자만화가 무수히 쏟아졌습니다. 기억 나시죠? 그만큼 생물학계는 물론이고 종교계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하늘의 혁명’이라고 하고 진화론을 ‘땅의 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물학 사상 진화론과 비교할 정도로 중요한 ‘멘델의 유전법칙’은 발표 당시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멘델은 수도원 정원에 여러 가지 완두콩을 심고 식물교잡에 대한 실험을 합니다. 그의 실험은 주름진 완두와 둥근 완두를 교배시키는 것으로부터 잡종 제2대를 서로 교배시켜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결과를 얻습니다.

또 잎의 색, 꽃의 위치, 콩깍지의 모양, 콩깍지의 색, 줄기의 키에 대해서도 교잡실험을 합니다. 멘델은 이러한 실험을 통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완두의 유전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게 유명한 ‘멘델의 유전법칙’ 입니다.

멘델은 이러한 법칙을 얻기까지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뒤뜰에서 8년 동안 완두콩으로 325번이나 실험을 합니다. 그가 실험결과를 정립한 이론을 학계에 발표한 것은 1866년 2월 8일이었습니다. 멘델의 발표는 아무런 토론 없이 끝났고 그의 논문은 34년 동안이나 도서관에 사장됩니다.

Overshadowing the creative brilliance of Mendel’s work is the fact that it was virtually ignored for 34years. only after the dramatic rediscovery of Mendel’s work in 1900(16 years after Mendel’s death) was he rightfully recognized as the founder of genetics.

(멘델의 창의적인 업적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그의 연구가 34년간이나 무시돼 왔다는 것이다. 1900년 멘델의 연구가 극적으로 재발견 되면서 그는 명실상부하게 유전학의 창시자로 인정 받게 된 것이다.)

멘델은 1856년부터 1862년까지 7년 동안 매달려 실험한 연구결과를 ‘식물잡종에 관한 실험’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아마추어 연구자들로 구성된 브륀의 ‘자연과학연구회’에서 발표했고 이 연구회의 정기간행물에 실어 각지의 대학과 연구소에 배포하였으나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묻혀져 있던 멘델의 유전법칙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달맞이꽃의 돌연변이’에 관해 연구하고 있던 네덜란드 생물학자 드브리스에 의해서 입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유전 관련 문헌들을 훑어보던 중 자신의 연구결과와 똑같은 내용을 담은 멘델의 논문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랍니다.

1900년 마침내 드브리스, 독일의 코렌스, 오스트리아의 체르마크가 각각 독자적으로 이 논문의 중요성을 깨달아 세상에 소개하자 멘델의 업적이 조명을 받기 시작합니다. 멘델이 발견한 유전법칙은 뒤에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 등으로 정리되어 연구방법과 함께 근대유전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학문을 논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세가지 법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볼까요?

▲ 어느 누구나 쉽하게 접할 수 있는 완두콩. 그러나 멘델은여기에서 유명한 유전법칙을 발견했다.  ⓒ
우열의 법칙(The Principle of Dominance): 생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형질에는 우성과 열성이 같이 있으며 열성은 숨어 있고 우성만이 나타난다.

분리의 법칙(The Principle of Segregation):한 쌍의 대립유전자인 우성과 열성은 자손에 전해질 때 분리된다.

독립의 법칙(The Principle of Independent Assortment):다른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면 완두콩의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멘델의 연구가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이유로는 그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아니라는 점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생물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수도사로 있던 멘델이 논문을 불쑥 내밀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의 반응이 냉담했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죠.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멘델의 연구가 생물의 유전형질을 전체로서 파악하지 않고 개개의 단위 형질의 집합으로서 파악했으며 실험결과의 처리에 수학적 방법을 도입한 참신한 연구 방법이 이해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학계는 다윈이 발표한 진화론의 영향 등으로 유전보다는 변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My scientific studies have afforded me great gratification; and I am convinced that it will not be long before the whole world acknowledges the results of my work.”

(나의 과학적 연구는 나에게 대단한 만족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전 세계가 나의 업적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1868년 성 토마스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되자 멘델은 여러 가지 일에 쫓기게 됩니다. 유전 연구를 그만 둡니다. 1874년 오스트리아 의회가 수도원으로부터도 세금을 징수한다는 법률을 제정하자 그는 반대투쟁에 나서 죽을 때까지 10년간 법률철회를 위한 투쟁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회유책으로 주위로부터도 배반 당하고 고립됩니다. 자신의 재산도 빼앗깁니다. 1884년 추운 1월. 멘델은 그가 이룩한 ‘멘델의 유전법칙’이 빛을 보기도 전에 쓸쓸히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의 연구는 크게 각광을 받아 1910년 브륀에는 동상이 세워지고 그곳을 멘델광장이라 일컫게 됩니다.

그는 유전과 진화의 문제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함으로써 유전학을 창시했습니다. 계획의 치밀성, 실험의 정확성, 자료처리의 탁월성, 논리의 명쾌성 등에서 뛰어났던 그의 실험은 생물학 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유전법칙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생물학을 객관적인 과학으로 확립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은 갈리레이에 의해 객관적인 과학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고, 화학은 아보가드로에 의해 연금술이 사라지고 과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변모해 가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생물학은 그저 관찰 및 정리만 하는 박물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멘델의 수학적 분석법으로 인해 생물학이 보다 객관적인 과학으로 자리잡게 된 겁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2006.09.21 ⓒScience Times

[노벨상으로 본 현대과학] 수억개 별빛 분석 우주 구주 알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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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입력 2006.10.22 18:04

 

1990년 1월 전세계에서 모여든 1,000여명의 과학자와 기자들이 천문학회가 열리는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 모여들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코비 프로젝트팀이 발표할 연구 결과를 보기 위해서다. 관측 내용을 극도의 보안 속에 비밀에 부쳐온 존 매더 박사는 단 하나의 그래프를 화면에 올려놓았다.

코비 위성이 여러 파장(2~20㎝)에서 얻어낸 우주배경복사의 강도를 플랑크 흑체복사 스펙트럼과 비교한 그림이었다. 코비 위성이 찍은 데이터들은 흑체복사 그림과 정확히 일치했다.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측정한 데이터들의 오차가 그래프의 선 두께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이론치와 실측치가 놀랍도록 일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수십년간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우주배경복사의 실체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학회에 모인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치며 연구결과에 환호성을 보냈다.

2년뒤 조지 스무트 박사(오른쪽)는 인류 최초로 우주의 온도 지도를 내놓았다. 코비 위성의 DMR(Diffrential Microwave Radiometer)는 두 방향에서 오는 복사 강도의 차이를 재 우주의 미세 온도 요동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이라고 한다. 매더와 스무트는 우주배경복사가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따른다는 사실을 규명하여 우리 우주가 매우 뜨거운 상태에서 생겨나 팽창하며 식어왔다는 대폭발(빅뱅) 우주모형의 확고한 증거를 제시했다. 또 우주배경복사가 미세한 온도 요동을 갖고 있다는 점을 관측으로 확인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구조의 기원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주었다. 만약 초기 우주의 물질 분포가 균일하였다면 은하, 별, 지구와 같은 행성은 생겨날 수 없다.

매더와 스무트의 연구결과는 우주가 대폭발 직후 급팽창 상태를 겪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급팽창 우주 모형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로 생각되고 있다.

〈이은정기자〉

[노벨상으로 본 현대과학] 下. 분자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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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입력 2006.10.29 18:05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돼 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의 세포 수는 약 3조개, 몸집이 작은 성인은 약 60조개, 덩치가 큰 씨름선수들은 약 1백조개의 세포를 갖고 있다. 각 세포는 하나하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장이다.

우리 몸 속의 세포에서는 하루에도 수백개의 단백질이 분해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생명현상은 이같이 반복적이며 역동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 내부를 분자 차원에서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분자생물학이다. 오늘날 DNA와 RNA로 통칭되는 유전물질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세포와 유전물질=고교 생물시간에 배웠듯이 세포의 중심에는 핵이 있다. 핵을 제외한 나머지가 세포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DNA는 핵 안에 들어있다. DNA는 핵 속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DNA가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세포질로 나르는 것이 RNA이다. RNA도 DNA처럼 핵산을 뼈대로 4개의 염기를 갖고 있는 유전물질이다.

DNA와 RNA는 구조에서 일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차이는 기능이다. DNA는 유전정보를 저장해 후세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RNA는 유전정보를 이용해 단백질과 같은 몸에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낸다.

상품을 만들 설계도를 입력한 중앙컴퓨터가 DNA라면 RNA는 상품을 찍어내는 프레스,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 등에 해당한다. 진화적으로 볼 때 RNA가 먼저 만들어지고 DNA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하등한 생물인 바이러스들은 RNA만 갖고 있는 것들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먼저 발견했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DNA 연구에 큰 의미를 뒀다. 그러나 1961년 처음으로 RNA의 존재가 밝혀졌다.


RNA는 DNA와 달리 세포질에 존재한다. 그러면서 메신저(mRNA), 운반(tRNA), 단백질 제작(rRNA) 등의 기능을 한다. mRNA는 DNA로부터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하는 암호를 옮겨받은 것이고 tRNA는 단백질 재료인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것이며 rRNA는 단백질 합성, 즉 번역이 일어나는 장소인 '리보좀'을 구성한다.

이중나선으로 항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DNA와 달리 RNA는 약간 불안정하며 경우에 따라 일부 유전정보가 소실되기도 한다.

◇유전물질의 흐름=유전 현상의 핵심이 되는 유전정보 흐름을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라고 한다. 센트럴 도그마는 한마디로 'DNA→RNA→단백질'로 요약된다. DNA의 유전정보가 메신저RNA(mRNA)로 넘어가는 과정을 '전사'(Transcription), 메신저RNA의 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한다. < 그림 > 은 이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다.

메신저RNA는 핵 안에서 DNA의 이중나선 중 한가닥을 중심으로 하여 합성된다. 합성되면서 세포질로 나온다. tRNA와 rRNA도 DNA를 주형으로 만들어진다. 전사란 즉, RNA 합성과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mRNA의 유전정보(염기서열)를 바탕으로 tRNA는 유전정보에 맞는 아미노산을 운반해 리보좀으로 이동한다. 리보좀에서는 여러가지 아미노산을 붙여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번역은 즉, 단백질 합성 과정이다.

우리 몸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소기관, 소화효소, 각종 호르몬, 근육 구성물질 등이 모두 단백질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단백질은 세포질 안에 머물지만 호르몬, 효소 등은 혈액이나 위장에 분비돼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주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

그리스 석학들, 한 폭의 그림에 모여
‘아테네 학당’ 사람들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25편에서 소개된 아테네 학당에 대해 김형근 편집위원이 따로 글을 보내왔다. 그림 속의 석학들을 보며 학문의 세계에 빠져보자.[편집자 註]

 

 

▲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  ⓒ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 라파엘로의 작품입니다. 여기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축으로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철학자 과학자들이 다 등장합니다. 디오게네스도 등장하고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다는 여성 수학자 히파티야도 등장합니다. 전체 그림을 보면서 또 구석구석에 나온 사람들도 보도록 하죠.


좌측(전체 그림상 중심)에 두 인물이 있습니다. 손을 위로 한 사람은 플라톤입니다. 이상(idea)을 꿈꾸는 모습이고 옆에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단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디오게네스입니다.

▲ 헤라클레이토스  ⓒ
그는 항상 큰 항아리에서 생활하곤 했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하루는 항아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정중하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선생님의 위대함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괜찮으시면 좋은 말씀 한마디 부탁합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 왈, “Please, stand out of the light(미안하지만 햇빛을 막지 마시오).” 그 이야기를 듣고 알렉산더 대왕은 뭔가를 깨달으면서 궁전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양반이야말로 그리스가 낳은 최대의 지성인”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가 영웅으로 칭송을 받는 것은 ‘서양의 대왕’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접목시키려고 노력을 한 것도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지식인에 대한 대우도 극진했고 문화에 취미도 있고 관대했다고 할까요?

▲ 파르메니데스  ⓒ
가장 앞에 네모난 탁자에 기대고 앉은 사람이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입니다. “만물은 유전한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한 주인공입니다. 에페소스 왕가의 출신이지만 부친이 물려준 집도 아우에게 물려줄 정도로 세속에 관심이 없었고 고매한 지조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 왼쪽에 책 같은 걸 펴 들고 약간 상체를 비틀고 있는 사람이 파르메니데스. “존재하는 것만이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말을 남긴 철학자 입니다.

다시 그 왼쪽에 흰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인에 의해 살해돼 시체가 갈갈이 찢어진 채 버려진 여성입니다. 재능도 뛰어났지만 너무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리면서 히파티야에 관심이 많아 크게 그리고 싶었는데 돈을 주면서 그려달라고 했던 사람(patron)이 “히파티야를 너무 크게 그리면 돈을 적게 주겠다”고 해서 작게 그렸다고 합니다. 히파티아의 아래 쪽에 앉아 책에다 뭘 쓰고 있는 머리 벗겨진 사람이 피타고라스.

그리고 피타고라스에게 조그만 칠판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낙사고라스 입니다. 죽을 때, “내가 죽은 달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한 달 동안 어린이들이 부모 간섭 없이 맘대로 놀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 히파티아  ⓒ
▲ 피타고라스와 아낙사고라스  ⓒ
▲ 아베로에즈  ⓒ

고개를 빼들고 피타고라스를 넘겨다보는 얼굴색이 검은 사람이 이슬람의 철학자 아베로에즈. 단일지성론을 주장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 아낙사만드로스  ⓒ
피타고라스 등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아낙사만드로스. 태양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를 이용해 시각을 표시하는 해시계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위쪽으로 머리에 월계관을 쓴 사람이 원자론으로 유명한 데모크리스토스. 그 왼쪽에 초록 모자를 쓴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그 유명한 제논. 변증법의 창시자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 위 구석에 있는 사람들 중 상체를 벗고 있는 사람이 디아고라스. 그리스의 신들을 조롱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기독교가 가장 좋아하고 인용을 많이 하는 철학자로 남습니다.

그 뒤에 숨어서 잘 안 보이는 사람이 고르기아스. 대표적인 소피스트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존재하더라도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있어도 전할 수가 없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 데모크리토스  ⓒ
▲ 제논  ⓒ
▲ 디아고라스  ⓒ

▲ 알키비아데스  ⓒ
디아고라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크리티아스. 플라톤의 외당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티아스는 플라톤의 저서 이름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여기에서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혁명위원회 위원으로 소크라테스 처형에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오른쪽으로 좀 떨어져서, 투구를 쓰고 군인 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알키비아데스.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을 사귀면 질투가 나서 훼방을 놓아 헤어지게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리스 시대는 학문과 사상이 자유로운 것처럼 동성애도 유행했다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부인이 있었는데도 “내가 사랑한 것은 알키비아데스와 철학뿐”이라고 이야기했답니다.

▲ 아이스키네스  ⓒ
그 뒤에 한 팔을 들고 누구를 부르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열성적인 제자 아이스키네스. 스승의 재판과 임종에도 입회했으며 시신까지 수습할 정도로 소크라테스를 가까이서 모신 충실한 제자입니다. 알키비아데스 오른쪽에 키 작은 사람이 군인 출신으로 ‘향연’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크세노폰입니다.

크세노폰 오른쪽에 파란 옷을 입은 젊은 사람이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이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알렉산더는 항상 동안(童顔)의 미소년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뭔가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이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이에 있는 사람 가운데 팔짱을 끼고 흰 옷을 아래에 두른 사람이 크세노크라테스. 군인 출신으로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제자가 됐고 3대 학원장을 지낼 정도로 학문에 열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오른쪽으로 우르르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노란 옷을 입은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 식물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뒤통수가 보이는 사람이 에피쿠로스학파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

▲ 알렉산더와 소크라테스  ⓒ
▲ 크세노크라테스  ⓒ
▲ 테오프라스토스  ⓒ

▲ 크세노폰  ⓒ
그 오른쪽에 뒤를 돌아보고 있는 사람이 아리스티포스. 북아프리카 키레네 출신으로 소크라테스를 흠모해 아테네로 유학을 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키레네 학파’를 엽니다. “인생의 목적은 개개의 쾌락이다. 육체적 쾌락이 정신적 쾌락보다 우위에 있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아래로 내려와서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가운데 중심에 있는 사람이 유명한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 그 뒤에 천구의를 든 사람이 조로아스터입니다. 조로아스터는 니체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라투스트라의 영어 이름입니다.

이 사람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창시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는 역사상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뒷모습을 보이고 지구의를 든 사람이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입니다.

▲ 유클리드  ⓒ
▲ 조로아스터  ⓒ
▲ 라파엘로  ⓒ

그리고 그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아테네 학당’의 주인공 라파엘로이고 흰 모자를 쓴 사람은 그의 친구인 화가 소도마입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도 그리스 시대의 석학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가의 아름다운 집착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0)
플라톤
▲ 플라톤.  ⓒ
He who is of calm and happy nature will hardly feel the pressure of age, but to him who is of an opposite disposition youth and age are equally a burden.

본성이 평온하고 행복한 사람은 나이(늙음)에 대한 압박감을 결코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젊음도 늙음도 꼭 같이 그에겐 짐이다.
- 플라톤(BC 427 ~ BC 347) : 그리스 철학자, 아카데미 설립자 -

플라톤(Platon)의 명언 가운데 이와 같은 비슷한 명언이 또 있습니다. “Old age has a great sense of calm and freedom. When the passions have relaxed their hold and have escaped, not from one master, but from many(나이가 늙으면 평온함과 자유에 대한 훌륭한 지각을 가질 수 있다. 그 때 인간은 집착을 누그러뜨리고 여러 가지 지배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플라톤은 인간의 지혜를 중요시 했습니다. 철인(哲人)을 완벽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려면 경험도 풍부해야 하고 읽은 책도 많아야 합니다. 또한 나이도 좀 있어야 하겠죠? 80세 정도를 살았으니까 당시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Hereditary honors are a noble and a splendid treasure to descendants(세습해 내려오는 영예는 자손에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다).”라는 말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을 보면 큰 줄기는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돼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루어집니다. 이 시대에 철학이 꽃을 피운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리스 철학의 거대한 축은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그들의 철학이 후세 사람들의 손질로 약간은 다른 방향으로 변했지만 서양 철학의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We can easily forgive a child who is afraid of the dark ; the real tragedy of life is when men are afraid of the light(우리는 어두움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를 쉽게 용서한다. 그러나 인간의 진짜 비극은 사람이 빛을 두려워할 때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유명한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을 보면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킵니다. 라파엘로의 의도적인 그림이며 두 철학자의 특징을 한마디로 나타내고자 한 겁니다. ‘플라톤은 이상(idea)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말입니다.

유럽의 근대 철학과 과학의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많이 등장시킵니다. 심지어 중세 기독교의 중심철학으로 채택한 신학대전의 토마스 아퀴나스도 철학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따옵니다.

“Any city however small, is in fact divided into two, one the city of the poor, the other of the rich. These are at war with one another(아무리 작다고 해도 모든 도시(국가)는 잘사는 곳과 못사는 곳, 두 곳으로 나뉜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은 빈부의 격차에서 일어난다는 플라톤의 지적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대한 신학대전은 이런 내용으로 집약됩니다. “신의 이론을 철학을 통해 논하지 말라. 그러나 나머지는 얼마든지 철학적 사고와 논의가 가능하다. 절대적인 것은 철학적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적 논리에 관한 사고는 철학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세시대 철학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철학은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다룹니다. 삶을 다루기도 하고 죽음을 다루기도 합니다. 이들은 인간의 중요한 부분이면서 또한 종교의 커다란 부분입니다.

어쨌든 그리스 철학이 문을 닫으면서 플라톤의 철학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중에 플라톤의 이론은 정치학, 철학 등에서 활약을 하긴 하지만 그의 업적에 비해 지금도 대우를 충분히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이상에 치우쳤기 때문인가요?

‘역사의 분수령’이란 하나의 역사가 또 다른 역사에 의해 변하거나 대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을 포함해 그리스 철학은 기독교 세력의 등장으로 종말합니다. 기독교 파워가 로마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르면서 그리스 철학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거죠.

학자들은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면서 그리스 철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의 종말은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을 선포해 기독교를 공인한 데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는 로마제국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는, 멸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를 국교화한 테오도우시 황제보다 콘스탄티누스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만이 진정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형이상학의 수립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만이 진정한 철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플라톤은 영원불변의 개념인 이데아(idea)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1편을 제외하고 모두가 논제를 둘러싼 철학 논의이므로 대화편(對話篇)이라 불립니다.

아테네의 명문가 출신으로 젊었을 때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사형되는 것을 보고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해 ‘philosophia(愛知:철학)’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플라톤의 업적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의 저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BC 385년경 대학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메이아(Akademeia)를 아테네의 근교에 설립합니다. 이곳은 영웅 아카데모스를 모신 신역(神域)입니다. 그리고 각지에서 온 재능 있는 청년들을 모아 80세가 돼 죽을 때까지 연구와 교육생활에 전념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재를 배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중 한 사람이죠.

“The most important part of education is proper training in the nursery(교육의 중요한 부분은 온상 속에서 이루어진 적절한 훈련이다). Knowledge which is acquired under compulsion obtains no hold of the mind(강제로 습득된 지식은 결코 마음 속에 남지 않는다).”

플라톤은 이상을 좇는 철학자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플라톤도 수학자였습니다. 플라톤은 오늘날 우리가 수학에서 사용하는 ‘도형’에 관한 이론을 세우는 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 세상은 네 가지 원소, 즉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네 가지 원소는 작은 입체들의 집합체라는 이론을 제기합니다. 책 ‘티마이오스(Timaeus)’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는 세계는 완벽한 입체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입체들도 정다면체 꼴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가볍고 날카로운 원소인 불은 정사면체, 가장 안정된 원소인 흙은 정육면체, 가장 활동적이고 유동적인 원소인 물은 가장 쉽게 구를 수 있는 정이십면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정팔면체는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으로 마주보는 꼭지점을 가볍게 잡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쉽게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공기의 불안전성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은 정십이면체는 우주 전체의 형태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옛날부터 12라는 숫자는 우주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년이 12개월이어서 ‘황도 십이궁’이라는 말이 있고 또 동양철학의 기본이 되는 12간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역이라는 말로 많이 쓰지만 영어로는 Iching이라고 많이 합니다. Iching은 역경(易經)의 중국식 발음입니다.

플라톤의 이러한 주장 때문에 정다면체는 ‘플라톤의 입체도형’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합니다. 플라톤의 이 이론은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묘하고 공상적으로 보이지만 유럽에서는 17세기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We ought to fly away from earth to heaven as quickly as we can ; and fly away is to become like God, as far as this is possible ; and to become like him is to become holy, just and wise(우리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땅에서 하늘까지 날아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면 우리는 신처럼 되는 것이다. 신처럼 되는 것은 성스럽고, 정의롭고, 지혜로운 것이다)”

▲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의 모습.  ⓒ
플라톤과 더불어 흥미 있는 것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학자들이 아틀란티스 대륙, 또는 아틀란티스 제국에 관심을 갖게 된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 플라톤입니다. 이로 인해 ‘허풍쟁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습니다.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아틀란티스는 일종의 낙원으로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섬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과일이 나며 땅 속에는 온갖 귀금속이 풍부하게 묻혀 있고 도시의 심장부에는 금을 입힌 첨탑을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이 은으로 덮여있는 매우 부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탐욕스러워지고 부패하기 시작했다. 이에 신이 노여워해 재앙을 내렸다. 그 재앙으로 대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하루 낮 하루 밤만에 아틀란티스 섬은 영원히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이 9000년 전에 일어났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나오는 줄거리로 아틀란티스에 대해 현존하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9000년 전’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플라톤이 BC 400년대 사람이라고 치면 ‘9000+2400’이 돼 지금부터 1만4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의 탄생을 시작으로 계산해서 기독교 역사를 7000년이라고 볼 때는 한참 전의 일입니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무궁한 숙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 대철학자인 플라톤이 과연 허풍을 쳤을까?’라는 질문도 숙제입니다.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신화든 전설이든 간에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 시대의 철학이 수많은 신과 인간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출발한 게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신과 인간이 명확히 구별되는 시기가 아닙니다. 서로 돕기도 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철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틀란티스는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상상력을 제공하고 소설이든 영화든 많은 소재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게 사실이라는 믿음을 갖고 연구에 매달립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허망한 도전이 아니라 값어치가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Democracy is a charming form of government, full of variety and disorder, and dispensing a sort of equality to equals and unequal alike(민주주의는 매력적인 정치형태다. 그러나 무질서와 혼돈이 가득하고 평등과 불평등을 꼭 같이 평등으로 취급한다).”

“Dictatorship naturally arises out of democracy, and the most aggravated form of tyranny and slavery out of the most extreme liberty(독재는 자연적으로 민주주의에서 발생한다. 그것도 최대의 자유에서 가장 악화된 형태의 독재와 예속이 나온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발견한 최선의 정치체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상국가론을 통해 힘 있는 국가가 인간의 이상을 펼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자손을 낳기 위해서는 남녀의 결혼도 선택적으로 하고, 육아도 국가가 관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여기에는 훌륭한 유전인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됩니다.

▲ 플라톤은 인간의 지혜를 중요시 했다.  ⓒ
우리의 ‘인자한’ 철학자 플라톤이 어떻게 이렇게 살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히틀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각기 다른 시대에는 각기 다른 정치이론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상사회 건설에는 남다른 철학이 필요합니다.

수백만을 학살한 영화 “킬링 필드(Killing Field)”. 이 사건의 주역은 캄보디아의 폴 포트 총리였습니다. 그는 대단한 인텔리였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아름다운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는 이상국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가 과장된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 폴 포트 정권이 백 만 명 이상을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

현실을 이상으로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상은 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상으로 가려고 애를 쓰는 일입니다. 그게 결국 인류의 발전이 아닐까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그야말로 이상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주장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플라톤과 폴 포트를 같이 비유한 것 같네요.

“Philosophy is an elegant thing, if anyone modestly meddles with it ; but if they are conversant with it more than is becoming, it corrupts them(철학은 알맞게 간섭한다면 우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도를 넘어 논쟁을 벌인다면 철학은 사람들을 부패시킨다)” 당시에도 철학을 ‘뜬 구름 잡는 짓’이라면서 사람들 간에 많이 언쟁을 벌인 것 같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29)
로잘린드 프랭클린
▲ 로잘린드 프랭클린.  ⓒ
Science and everyday life cannot and should not be separated. Science makes explanations based on truth, experiences and experiment.

과학과 일상생활은 분리될 수 없고 분리돼서도 안 된다. 과학은 진실, 경험 그리고 실험에 바탕을 둔 설명을 준다.
- 로잘린드 프랭클린(1920~1958) : 영국 여성과학자 -

이 짧은 말은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 아주 깊은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아버지에게 쓴 편지 내용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아버지의 사후(死後)의 삶에 대한 고집에 프랭클린이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겁니다.

“아버지께서는 과학을 인간을 타락시키는 발명품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과학이란 삶과 분리된 것이며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막아야 하는 것이고 일상생활과 분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러나 과학과 일상생활은 분리할 수 없고 분리해서도 안 됩니다. 과학은 제게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사실과 경험, 실험에 근거한 설명을 줍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신앙이 중요하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 생각에는 신앙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면 성공에 다가갈 수 있고 인류문명을 향상시키기 위한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데 충분히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뿐입니다.”

“There is probably no other woman scientist with as much controversy surrounding her life and work as Rosalind Franklin(인생과 업적을 둘러싸고 로잘린드 프랭클린만큼 논란이 많은 여성과학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역사는 강자의 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프랭클린은 강자의 역사 속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여성입니다. 그래서 많은 동정을 받습니다. 또 지나치게 동정을 받다 보니까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프랭클린이 생명과학의 열쇠를 제공한 ‘DNA 이중나선구조(double helix)’를 발견했는데 왓슨과 크릭이 그 발견을 훔쳤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은 거죠.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왓슨과 크릭에게 지나치게 비난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합니다. 뚜렷한 공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프랭클린을 너무 부풀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한 것은 프랭클린은 세포생물학의 위대한 개척자(Pioneer Molecular Biologist)이고, 위대한 과학자였고,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비운의 여성과학자를 기리기 위해 ‘로잘린드 프랭클린 상’을 제정해 해마다 우수하고 업적이 탁월한 여성 과학자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벨상을 프랭클린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하나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한 지식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게 기억이 납니다. “자살폭탄(suicide bomb)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다.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이스라엘)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흔한 박격포도 없다. 그들은 부녀자는 물론 어린애까지도 죽인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팔레스타인은 역사에서 지워질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든 이라크든 간에 자살폭탄은 종교에 미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미국에서 공부를 한 인텔리들입니다. 종교적인 신념에 빠져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미쳐 순교를 선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자살폭탄을 변호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나라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해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사형을 당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수상(총리대신)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미국통이고 인텔리입니다. 미국 예일 대학은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합니다. ‘미개한 한국인을 잘 다스렸다’는 공로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세계 역사에서는 잔혹한 테러리스트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안 의사에게 총을 맞은 이토 총독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누가 쏘았는가”라고 묻자, 옆에 있던 의사가 “한국 사람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토 총독은 “바보 같은 한국 놈”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을 ‘조센징’이라고 욕을 하지만 일본의 지식인들은 ‘반도인’이라고 하며 한국을 폄하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동네 골목대장이 되는 게 아니라 양복에 넥타이를 맨 말쑥한 차림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때 일본은 한국을 더 무서워할 겁니다. 친일청산을 위해 친일사전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본은 한국을 새롭게 볼 겁니다. 주제가 빗나간 것 같네요.

▲ DNA 이중나선구조.  ⓒ
프랭클린의 업적에 대해 제동을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분명하게 DNA 구조를 밝혀내는 데 공헌한 대단한 공로자입니다. “A debate about the amount of credit due to Franklin continues. What is clear is that she did have a meaningful role in learning the structure of DNA and that she was a scientist of the first rank(프랭클린의 공로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DNA 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고 그 분야에서 최고였다는 것이다).”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 세 사람은 1962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상 수상대에 나란히 섰습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것이 수상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비밀을 밝힌 주역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왓슨은 이중나선을 밝히기까지의 숨가쁜 여정을 소개한 ‘이중나선’의 출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고 돈도 많이 법니다.

그러나 비운의 여성과학자는 그들이 노벨상을 받기 4년 전 난소암으로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합니다. 당시 프랭클린이 이중나선 발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주역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프랭클린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과학의 중심에서 홀로 싸운 외로운 선구자였습니다.

그녀는 DNA가 이중나선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는 X선 사진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확증이 없는 것은 모두 가설에 불과하다는 과학자적 믿음으로 연구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동료인 윌킨스는 아무런 사전 허락도 없이 그의 사진들을 분석했고 그것들을 왓슨과 크릭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연구기록이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특허등록이 중요한 겁니다.

프랭클린은 다크 레이디(Dark Lady)로 통했습니다. 말 그대로 ‘검은 여자’입니다. 흑인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머리 색이 까맣죠. 머리 색이 노랗거나 하얀 전형적인 영국인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다크 레이디는 ‘fair lady’의 반대 개념으로 머리와 피부 빛이 검은 여자, 예쁘지 않은 여자, 무식한 여자를 말하며 특히 차별 받는 유대인 프랭클린을 지칭한 말입니다.

최근에 조명 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에 대한 책들도 발간됐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원제 The Dark Lady of DNA)’도 그 중 한 번역서입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녀의 이름은 20세기 과학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에서 부당하게 지워져 버렸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사실 노벨상이 아니라 그녀의 생명이었다.”

프랭클린의 업적이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렸습니다. 프랭클린의 업적은 다시 한 번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제작했고, 영국 전통유산회 등 많은 단체에서 그녀를 기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프랭클린은 ‘말 없는 살인자’라고 불리는 난소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는 자궁적출까지 했지만 태연하게 연구를 계속합니다. 죽기에는 너무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자신이 이룩한 발견과 삶이 뿜어낸 생명력이 그녀의 원천이었습니다.

1958년 4월 16일 그녀는 세상을 떠납니다. 사망신고서에 적힌 짧은 기록은 몇 마디로 아주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과학자, 독신녀, 은행가 엘리스 아서 프랭클린의 딸’. 그녀는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진실의 역사는 강자에 의해 묻혀지는 것만도 아닙니다. 진실은 투명하고 항상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28)
소피 제르맹
▲ 소피 제르맹. 프랑스가 낳은 천재 여성 수학자다.  ⓒ
It matters little who first arrive at an idea, rather what is significant is how far that idea can go.

누가 이상(진리)에 먼저 도달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상(진리)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소피 제르맹(1776-1831):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소피 제르맹(Sophie Germain)은 여성 과학자입니다. 별로 들어본 적이 없죠? 프랑스가 낳은 걸출한 최고의 천재 여성과학자로 칭송을 받습니다. ‘천재가 선천적이냐? 아니면 후천적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학문에 대한 ‘끼(madness)’는 타고 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천적이라는 이야기죠. 더구나 여성의 신분으로 과학자의 대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소피 제르맹가(街)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에 소피 제르맹이라는 호텔도 있습니다. 총명하고 대단한 수학자이면서 불우하게 살다간 그녀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문화국가의 자존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수학자입니다.

소피 제르맹은 혁명의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1776년은 미국혁명(독립혁명)이 시작된 때입니다. 13년 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납니다. 여러 면에서 그녀는 세계의 흐름이라는 사조 속에서 혁명이라는 영혼을 잉태하고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Sophie Germain was born in an era of revolution. In the year of her birth, the American Revolution began. Thirteen years later the French Revolution began in her own country. In many ways Sophie embodied the sprit of revolution into which she was born.”

그녀는 중산층의 자제로 정규교육을 받았습니다. 13살 되던 해 우연히 아버지의 서고에서 수학의 역사에 관한 서적을 읽던 중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에 관한 일화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잊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She spent a great deal of time in her father’s library, and one day she ran across a book in which the legend of Archimedes’ death was recounted. Legend has it that ‘during the invasion of his city by the Romans Archimedes was so engrossed in the study of a geometric figure in the sand that he failed to respond to questioning of a Roman Soldier. As a result he was speared to death.’”

위 영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아버지의 서재에서 보냈다. 그리고 어느날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됐다. 그 일화는 ‘로마 군사들이 침입한 가운데서도 아르키메데스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연구하기 위해 모래 위에서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로마 병사는 단칼에 그의 목을 칩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수학을 공부하려는 욕망에 불탔지만 아버지가 강렬하게 반대합니다. 그러나 소피는 수학에 대한 집념을 누를 길이 없어서 매일 모든 가족들이 잠든 심야에 일어나 남몰래 수학공부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하도 피곤하여 책상에 엎드려 날이 밝도록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이 아버지에게 발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버지가 그 열성에 감탄하여 수학공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 여성이 과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성보다 수십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에 혁명을 안겨준 사람들이다.  ⓒ
“She would wrap herself in quilts and use candles she had hidden in order to study at night. Finally her parents realized that Sophie’s passion for mathematics was ‘incurable’, and they let her learn(그녀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촛불로 공부를 하곤 했다. 결국 부모는 소피의 수학에 대한 열정이 ‘못 말릴 정도’라는 것을 알고 결국 허락했다).”

그 후 소피는 독학으로 수학공부를 계속합니다. 특히 1794년에 파리공과대학(Ecole Polytechnique)이 나폴레옹에 의하여 개교하게 되자 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가 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공과대학에서는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르맹의 꿈은 부서지고 맙니다. 과거 서양에서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남녀차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우리나라에만 차별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나 소설에도 중세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불륜은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백작인 남성과 또 다른 백작의 아내가 ‘바람 피우는 것’은 자주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상류계층에서의 ‘불륜과 바람’은 허용이 됐지만 하층 계급에서의 ‘불륜과 바람’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사형이죠.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사(gentleman)와 숙녀(lady)라는 고상한 개념은 고급 상류층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럽은 지금의 빈부 양극화를 넘어 5%의 귀족과 95%의 천민이었습니다. 천민은 노예죠.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유럽의 ‘사랑의 자유’는 5%의 귀족의 소유였고 평민들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야기가 빗나간 것 같네요. 입학허용이 안 된 제르맹은 궁여지책으로 이 대학의 수학 교수인 라그랑제(Lagrange, 1736~1813)의 강의록을 손에 넣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리고 강의록에다 주석을 달고, 또 잘 납득이 되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지적해 직접 라그랑제에게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녀의 실력에 감탄한 라그랑제 교수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크게 격려하고 많은 수학자들에게 그녀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가 25세 되던 해(1801)에 독일의 대수학자 가우스(Gauss)가 ‘정수론 연구(整數論硏究)’를 발간합니다. 그녀는 역시 이 책을 통하여 정수론 연구에 몰두합니다. 가우스와의 접촉을 통하여 제르맹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은 그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를 증명하는 데 공헌한 겁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19세기에 들어서 정수론을 하는 수학자들로 하여금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해한 문제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소피 제르맹이 충격적인 발표를 함으로써 페르마의 유실된 증명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수학공부를 하는 여인들을 별로 달갑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런 편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연구를 계속해 수학의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여류 수학자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소피 제르맹이 있습니다.

소피 제르맹은 혁명적인 인물입니다. 독신으로 평생을 보낸 그녀는 수학자가 되기 위해 시대의 편견과 싸웠고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설움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그녀는 정수론(number theory)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탄성론(theory of elasticity)에서의 업적도 대단합니다.

“Sophie Germain was a revolutionary. She battled against the social prejudice of the era and lack of formal training in order to become a celebrated mathematician. She is best known for her work in number theory, bur her work in the theory of elasticity is also very important to mathematics.”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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