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니라 '뇌'가 본다

 

 

그냥 종이 위에 그려 놓은 원이 빙빙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옆 그림 중 방사형 줄무늬 위에 파란색 동심원들이 있는 것의 한 가운데를 가만히 응시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파란 원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가며 제각기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눈을 깜빡이거나 비비고 봐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을 볼 때 눈의 망막에는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는 원의 영상이 맺힌다. 그런데도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은 감각기관과 뇌의 작용 때문이다.

실제로 이 그림을 볼 때 두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양성자단층촬영(PET)을 해보면, 뇌의 신경세포들이 진짜 움직이는 것을 봤을 때처럼 반응하는 것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그림 때문에 '뭔가 움직인다'는 것을 지각하는 뇌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그 결과로 가만히 있는 원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눈'이 아니라 '뇌'로 세상을 본다. 눈은 단지 뇌가 세상을 보는 창과 같은 간단한 역할만을 하는 것뿐이다.

시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색.형태.위치.깊이.운동을 뇌의 여러 부위가 따로 나눠 맡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사고나 병으로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그 부위가 맡고 있는 시각기능을 잃게 된다. 색이나 형태는 알아도 움직이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빨간색이기는 한데 어떤 모양으로 생긴 것인지는 모르는 등 정상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증세가 나타난다.

특히 얼굴을 지각하는 뇌 부위가 따로 있는데, 그 곳이 망가져서 다른 것은 다 알아 봐도 얼굴만은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색.형태.깊이 등을 맡는 두뇌의 부분이 각각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 있다(왼쪽 아래).

탑 그림을 보자. 하나는 짙고 옅은, 그러니까 명도가 다른 파란색만을 이용해 그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명도는 같은데 색은 다른 물감으로 그렸다. 똑같은 그림인데도 우리는 이 한 쌍의 그림 중에 명도가 다른 그림에서만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나타내 주는 것은 색과 깊이를 맡는 뇌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색상 정보만으로는 깊이를 느낄 수 없다. 대신 깊이를 아는 것은 명암에 따른 것이어서, 명도가 다른 색으로 그리면 깊이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그러나 보통 생활 속에서는 예에서 든 그림과 같이 색과 명암이 분리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뇌 기능의 분화에 따른 이러한 차이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뇌의 50%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시각에 관여한다. 이는 시각과 두뇌의 연구를 통해 뇌의 절반 가량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가 부위별로 분리된 전담기능을 맡고 있다는 것이 언어나 기억 등 다른 두뇌 활동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시각연구에서 얻은 발견들이 뇌의 다른 기능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찬섭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0.001초만의 일도 뇌는 안다

무의식 중의 경험 한쪽에 고스란히 저장

기억상실증 환자도 특수한 인식 가능

가끔씩 사람들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라고 할 때가 있다.잠깐 사이에 뭔가 생겼다가 사라져 제대로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는 얘기다.

'순식간'이라는 것이 0.01초 정도로 짧아지면, 사람은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예컨대 총알이 소리나 바람을 전혀 일으키지 않고서 1m 떨어진 곳을 날아간다면,아마 총알이 지나쳐갔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어떤 특수한 기억을 우리 두뇌는 하는 것이다. '단순노출 효과'실험을 통해서도 모종의 특수 기억이 있다는 게 알려졌다. 단순노출 효과란,어떤 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각형.오각형 등 여러 가지 도형을 몇 번씩 보여주고, 나중에 어떤 도형이 마음에 드는지 점수를 매기라고 하면, 사람들은 여러 번 본 도형에 높은 점수를 주는데, 이런 게 단순노출 효과다.

 

 

심리학자들은 도형을 사람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짧은 순간(0.001초) 동안만 보여줘도 똑같은 단순노출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봤는 지 본인은 모르는데 두뇌는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떤 특수한 기억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1초에 24컷이 돌아가는 영화필름 중에 간간이 1컷씩 광고를 끼워넣는 것 역시 짧은 순간에 일어나 확실하게 인식은 못하지만 두뇌는 영향을 받는 효과를 노린 것일 게다.

기억상실증 환자에서도 특수한 기억의 사례들이 나타난다. 미국에서 간질 때문에 뇌의 일부를 들어 낸 환자가 있었다.H.M.이라는 이 환자는 수술 뒤 예상치 못한 기억상실증을 보였다. 뇌 부분부분의 기능을 잘 몰라 생긴 일이었다.

 

H.M.은 수술로 인한 기억상실증 때문에 의사를 소개받아도 조금만 지나면 누구인 지 몰라봤고, 이사를 갔는데도 늘 전의 집만 찾아 갔다.

하지만 어떤 특수한 기억 현상은 H.M.이 정상인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실험은 거울 앞에 별이 그려진 종이를 놓고, 거울만 보면서 별모양의 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그림 참조>. 거울은 좌우가 반대여서 누구나 처음에는 별을 삐뚤빼뚤하게 그린다. 하지만 이를 몇 번 반복하면,마치 자전거 타는 것을 익히듯 그 요령을 학습해 잘 그리게 된다. 이런 학습에는 기억이 꼭 필요한데, H.M.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점점 잘 그리게 됐다. 보통의 기억은 못하지만, 특수 기억은 가능하다는 반증이다.

기억상실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단어 연상 실험에서도 특수한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환자들에게 고리.나무.토끼.집.자동차 등의 단어를 보여 준다.

이들은 무엇을 봤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음 '?')리'라 쓰인 것을 주고 떠오르는 단어를 쓰라고 하면,'소리''오리''고리''보리' 등 여러가지 단어 가운데 앞서 봤던 '고리'를 쓰는 경우가 훨씬 많아진다.

 

환자들이 기억을 못한다고 하면서도,'고리'라는 단어를 본 흔적이 두뇌 어딘가에 남아 있어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기억을 특히 '암묵 기억'이라고 한다.

암묵 기억이 이뤄질 때의 두뇌 활동은 보통의 기억을 구성할 때와는 다르다. 사람의 두뇌가 특수 기억을 일으키도록 하는 실험을 하면서 두뇌를 기능성자기공명(fMRI) 영상장치 등으로 촬영해 보면, 보통 기억을 할 때와는 다른 점이 나타난다.

보통의 기억은 주로 뇌의 앞부분, 즉 해마나 전두엽이라 부르는 부분들이 많이 관련된 반면,암묵 기억은 뇌의 뒷부분과 관련됐다는 것이 전남대의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박태진 교수 <전남대 심리학과>

너희가 기억을 믿느냐

유도심문·암시로 엉뚱하게 왜곡 가능

사건 목격자 100% 믿었다 큰코 다칠 수도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우리는 기억해 낸 내용이 경험한 사실 그대로일 것이라고 흔히 믿지만,실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 단지 추론한 내용에 의해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이를 확인하는 실험으로 사람들에게 여러 장의 그림을 잠깐씩 보여주고 "이것은 ○○을 닮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림을 기억해 그리도록 하면, 먼저 무엇과 닮았다고 했는지에 따라 기억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림1>을 보여주고 '안경'이라고 하면, 나중에 왼쪽 같은 그림을 많이 그리고, '아령'이라고 하면 오른쪽의 것을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보며 함께 들은 설명에 따라 기억이 왜곡된 것이다. 이처럼 기억이 다른 정보와 추론의 영향을 받는 것을 '기억의 구성적 특성'이라고 한다.

기억의 구성적 특성은 현실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목격자의 증언이 법정의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경우가 있는데, 목격자가 거짓말하려는 의도가 없는 경우에도 기억의 왜곡 때문에 틀린 증언을 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로프터스는,목격한 사건에 관한 기억이 사건 후에 제공된 정보에 따라 쉽게 왜곡될 수 있음을 밝혔다.

예를 들어,자동차 충돌 사고를 담은 비디오 필름을 보여준 후 자동차 속도를 추정하는 질문을 하였는데, 어떤 참가자들에게는 "자동차가 서로 부딪쳐 박살났을 (smash) 때 속도는?"이라고 물었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자동차가 서로 부딪쳤을(hit) 때 속도는?"이라고 질문하였다.

일주일 후 같은 참가자들에게 필름에서 유리창이 깨졌었는지를 물었는데, 깨졌다고 대답한 참가자들이 'smash'했을 때의 속도를 물어본 그룹에서 더 많았다.

하지만 실제 필름에서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 목격한(필름을 본) 뒤 들은 단어(smash) 때문에 기억이 왜곡된 것이다. 즉, 이런 연구는 유도 심문에 따라 기억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전 네이슨 사건'은 더 유명한 경우다.1968년 캘리포니아에서 수전 네이슨이라는 8세짜리 여자 아이가 살해됐는데, 진범을 찾지 못했다.

20년이 넘은 1989년 수전의 친구였던 아이린이 심리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수전을 죽이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아이린의 아버지는 1급 살인죄로 기소돼 1심에서 종신형을 받았지만 재심에서 증언에 의혹이 생겨 무죄 방면됐다.

아이린의 경우도 TV에서 아동 살해 등을 자주 접한 데다가 심리치료 도중 치료자의 유도심문과 암시로 인해 엉뚱한 기억을 갖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

최면 역시 기억의 왜곡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면 상태에서는 암시에 걸릴 확률이 커서, 최면시술자가 제공하는 사소한 단서도 기억의 왜곡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범죄수사에 최면을 이용할 때는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정확한 기억을 할 때와 왜곡된 기억을 할 때 나오는 뇌파가 다르다는 연구도 있다.

그림들을 보여주고 나중에 본 것인지 아닌지 대답하는 연구에서, 본 것을 봤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보지 않은 것을 봤다고 잘못 판단한 경우에 비해 이른바 'P300'이라는 뇌파 성분이 약간 늦게 발생한다.

<그림2 참조>

그러나 두뇌의 어느 부분이 기억 왜곡과 관련있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뇌의 구조와 기능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기억의 본질이 규명되고 아울러 기억이 왜곡될 때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도 낱낱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박태진 교수 <전남대.심리학>

창의적인 사람 집중력도 높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뤄내는 창의성은 천재들만이 가진 신비한 능력이 아니다.

창의성은 두뇌 훈련을 통해 개발할 수도 있다.

창의성이 천재들의 전유물이란 것은 천재로 추앙받던 사람들 자신과, 그들의 전기 작가들이 꾸며낸 측면이 있다.

미국의 시인인 포나 프랑스의 수학자 포앙카레와 같이 천재로 추앙 받던 사람들은 창작이나 새로운 발견.발명의 순간을 신비하고 극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들의 유품을 조사해 보면 시 한편을 위해 수많은 습작을 만들었고, 새로운 수학 정리 하나를 증명해 내는 데 실패를 거듭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창의적인 작품과 이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창의적인 활동에 머리를 많이 쓰면 두뇌 구조도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머리 꼭대기의 바로 아래쪽 '브로드만의 39번 영역'이라는 곳이 보통 사람보다 크다. 이 부분은 상상력.기억력.집중력 등과 관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39번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의 수는 보통사람과 차이가 없지만,'신경교 세포'라는 것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신경교 세포는 신경세포가 원활하게 물질 대사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 세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39번 영역의 뇌세포가 많이 활동했음을 뜻한다.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이 부분이 커지는 것은 생쥐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매리언 다이아몬드 교수는 생쥐를 두 집단으로 나눠 하나는 놀이기구를 잔뜩 주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게 했고, 다른 쪽은 놀이기구 없이 단순한 행동만 할 수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게 했다.

그랬더니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생쥐들의 39번 영역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생쥐보다 16%나 더 커졌는데, 그 이유도 바로 신경교 세포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집중력이다. 그것도 순간적이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집중력이다. 모차르트가 작곡을 시작한 것은 4살 때부터였지만, 그 때의 작곡은 종전 음악들을 재구성한 수준이고, 독창성이 담긴 작품은 16세 이후에야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10년 넘게 음악에 몰두하고서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의적 성취를 이룬 사람은 자신의 일 속에 몰두하여 살기 때문에, 직접 일과 관련되지 않은, 삶의 다른 부분도 자신이 하는 일과 연관을 짓는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사건에서도 자신의 일과 관련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낸다.

이처럼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는 집중력을 높이는 게 필수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은 창의적 성취를 이룬 사람처럼 각자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사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주동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피동적이어서는 창의력이 높아질 수 없다는 게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들의 견해다.

미국 볼드윈-월리스 대학 데일 그럽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면 일반적으로 창의력이 높아지지만, 노는 법을 부모가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게 돼 창의성이 높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TV를 보는 일처럼 수동적인 방관자가 되어서는 창의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이다.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무엇을 성취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기며, 또 다른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새로운 문젯거리를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이런 삶이 반복될 때, 그 사람의 두뇌 구조는 물론 그 활동 방식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창의적인 천재들과 비슷하게 닮아갈지 모른다. 박주용 교수 <세종대.교육학과>

신경과학 발전 불구, 뇌는 아직 미지의 영역 [교수신문 공동] 감각질, 창발 등 난제 남아 2008년 09월 01일(월)

사이언스타임즈는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학술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www.kyosu.net)과의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그 네 번째로 21세기 인류가 해명해야 할 마지막 신비의 영역으로 꼽히는 뇌와 의식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註]

▲ 곽호완 교수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존경하는 한우진 교수님께, 의식은 철학적 탐구문제이기도 하고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연구문제이기도 하므로 선생님과 제가 나누게 되는 담론은 매우 긴장되는 흥분의 의식을 낳게 합니다. 지나치게 난해한 개념을 사용한 철학적 논쟁도, 지나치게 전문화된 뇌신경과학의 소개도 여기에 도입된 대화적 담론에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져서 좀 더 평이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봅니다.

18세기 말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태동된 후 의식을 여러 감각요소로 나누려는 시도는 그 요소들을 결합하는 법칙을 정립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의 본질은 내관으로 알 수 없으므로 대안으로 의식의 기능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하나의 흐름으로서(stream of consciousness) 유기체에게 가용한 여러 지각표상들이나 행위들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여 유연한 환경적 적응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 “의식은 하나의 흐름”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의 여러 실험적 연구방법과, 컴퓨터 유추에 의한 인간정보처리 모형의 정립에 의해 인지심리학이 태동하였는데 이는 초기 심리학 연구주제인 ‘의식’이라는 위대한 ‘왕의 귀환’을 의미하며 이때부터 의식에 대한 연구는 새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주관적 경험의 측면이 강한 ‘의식’이라는 주제는 한동안 연구주제의 변방에 있었고, 의식의 외연(外延)으로서 지각, 주의, 기억, 언어과정 등이 핵심적으로 연구되었고 현재까지 괄목할 만한 과학적 성취를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신경학적 연구법의 획기적 발전으로 - 예를 들어, 단일신경세포 기록법, 뇌파(EEG) 측정법,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fMRI) 등 - 뇌 신경과정을 통해 감각, 지각, 주의과정 등을 기술하고자 하는 신경과학이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브로카 및 베르니케에 의해 발견된 실어증(말을 하지 못하거나, 뜻 모를 말을 하거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의 영역들, 펜필드의 뇌 전기자극하기에 따른 의식경험의 변화관찰, 스페리에 의한 대뇌 양반구 절단환자의 실험들(좌우 반구의 기능적 비대칭성), 노벨상을 받은 휴벨과 비젤에 의한 세부특징 탐지기 세포의 발견 등이 신경과학에서 이룩한 업적 중 몇가지 입니다. 결국 모든 심리과정은 궁극적으로 신경과정으로 환원가능하다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가정입니다.

문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 신경계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약 100억 개(혹자는 40억 또는 수백억)로 추산되는 인간 뇌신경세포의 수는 차치하고라도, 그들 간의 신경연결망이 신경과정의 핵을 이루는데 그 연결의 수는 바로 조합적 폭발(combinational explosion)을 의미합니다. 즉 100억의 수백억 배의 신경세포의 상호작용이 우리가 추적해야 할 가공할 대상입니다. 또 특정 의식의 상태는 그에 상응하는 매우 많은 뇌 상태를 가정할 수 있기 때문에 뇌와 의식의 일대일 대응관계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다만 추상적 수준에서 특정 뇌의 활성화 패턴과 특정 의식상태는 대응되어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즉 탁구 라켓으로 동일한 스트로크를 때리더라도 동일한 근육섬유들이 활성화되기보다는 전반적 흥분프로파일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완벽한 대응구조를 요구하는 것은 심리-물리계의 성질상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신경과학은 뇌 활동을 구조적으로 측정하는 장치(PET, fMRI, MEG)가 있어서 특정 정신활동을 하는 동안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 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개략적인 신경학적 국재화(局在化, localization)가 가능했고 하드웨어적 기술방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거시적인 점에서 뇌 구조는 사람마다 비슷하고, 인지과정에서도 유사하지만, 미시적 구조는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이 신경구조의 미시적 다양성 때문에, 인지심리학적 실험측정으로 특정 인지기능이 손상되었다는 수렴적 결과를 얻어야만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뇌 구조의 일반적 틀이 만들어졌다고 특정 상황에서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예언할 수는 없습니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로 노벨상을 받았던 크릭과 그의 동료 코흐가 1990년부터 수행한 일련의 연구들은 이제까지 주로 철학적 담론의 대상이었던 의식이 신경과학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의식의 신경상관자(neural correlate of consciousness, NCC)를 뇌 구조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아직은 주로 가설적 수준에 그치기는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의식의 신경상관자를 찾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의식, 철학적 담론에서 신경과학영역으로

그의 가설은 피질(V1, V4, MT, IT영역)과 전두엽 영역간의 역전파에 의한 주기적 공동활성화가 시각표상의 자각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며 이것을 시각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생생한 시각적 자각은 고차적 지각수준에서 저차적 시각피질로의 피드백 루프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 예시 그림에서 정육면체를 지각하게 되는 것을 착각적 윤곽(illusory contour)이라고 하는데 이 윤곽이 지각되고 나면 배경화면인 흰색에 정육면체의 모서리가 더 밝은 흰색으로 생생히(vivid) 지각되는데 이는 시각피질에서 외측슬상핵으로의 피드백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크릭이 제안한 의식에 관한 연구방향의 하나로, 양안정적 지각(bistable percept)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대상이 변하지 않는데 의식된 지각표상은 두 가지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예시 그림에서 정육면체를 지각하고 난 후 중앙의 두 모서리 중 하나가 앞에 있고 하나는 뒤에 있는 것으로 입체를 지각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 앞뒤가 전환됩니다.

즉 대상의 수평선이나 수직선의 지각은 변하지 않지만, 그 대상표상에 대한 의식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되는 순간 뇌과정은 어떻게 되는지를 찾아낸다면 의식의 신경상관자를 찾을 수 있다는 논리가 됩니다. 부가하여 의식에 관한 흥미있는 현상 중 맹시(blindsight, 시각피질의 손상으로 자극의 출현여부를 의식하지 못하지만 자극의 위치는 찾아내는 환자)의 연구는 시각피질이 의식의 신경상관자 자체는 아니지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교수님이 지적하였듯이 감각질(푸른색을 지각할 때 푸르스러함의 의식적 성질)은 아직 과학적 연구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더 본질적인 의식의 문제는 특정 상태의 의식이 창발(emerge)하게 되는 정신-화학적 법칙은 신경과정으로 환원되기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수소나 산소 개개 원자의 물리적 성질을 알고 있더라도 물 분자의 성질이 어떠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언하기 곤란하고, 더우기 고분자 화합물의 경우에 더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철학자들은 ‘why' 즉 개념적 틀 또는 연구의 종합적 개념적 평가와 방향설정을, 신경학자들은 ’where' 즉 물리적 구조 또는 상관물을 찾아내는 미시적 접근을, 인지심리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what and how' 즉 그게 무엇이며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거시적으로 다루는 것이며 이들이 오케스트라를 이룰 때 진정으로 본질적인 과학으로서의 의식에 대한 통합적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교수님 같은 심리철학자들이 의식에 관한 과학적 담론과 연구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과학적 발전은 질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열매 맺게 된다고 생각하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를 받고 미국 죤스홉킨스대학교에서「위치와 세부특징에 대한 주의정향의 결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다. 주요논문으로는 「정적 및 부적반복효과의 시간과정」, 「시간-독립적인 초점주의 이동」, 「성인 ADHD 경향성에 대한 웹기반 실험신경심리 연구: 회귀억제, 스트룹 및 내생-외생 주의과제」등이 있다.

곽호완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kwak@knu.ac.kr

저작권자 2008.09.01 ⓒ ScienceTimes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5)
마리아 메이어
▲ 마리아 메이어  ⓒ
Mathematics began to seem too much like puzzle solving. Physics is puzzle solving, too, but of puzzles created by nature, not by the mind of man.

수학이 퍼즐 맞추기와 아주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리학 또한 퍼즐 맞추기와 같다. 그러나 그 퍼즐은 인간의 마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것이다.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1906~1972) : 물리학자, 노벨 물리학 수상자-

여성 과학자를 생각할 때면 대부분 마리 큐리(Marie Sklodowska Curie)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메이어(Maria Goeppert Mayer)는 약간 생소할지 모릅니다. 이제까지 노벨상의 꽃이라고 하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는 마리 큐리와 마리아 메이어 두 사람뿐입니다. 대단한 여성 과학자들입니다.

마리 큐리는 노벨상을 관장하고 수여하는 노벨재단(Nobel Foundation)이 설립된 지 3년 만인 1903년에 노벨상을 받지만 마리아 메이어는 60년이 지난 1963년에 받습니다. 1906년 생이니까 따지면 57세가 돼서 받습니다. 그녀의 활발한 연구는 1940년대가 중요한 무대였습니다. 상당히 늦게 받은 편이죠.

마리 큐리는 1867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37세가 되던 아주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이죠.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마리아 메이어가 그 편에 속할지 모르겠습니다.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탄생한 냉전(cold war)이라는,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때로 노벨상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칩니다. 마리아 메이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아주 많습니다. 두 사람 다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불행한 역사의 국가 폴란드 태생입니다. 그리고 둘 다 폴란드를 떠나 외국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마리 큐리는 제정 러시아의 압박으로 프랑스에서, 마리아 메이어는 남편을 따라 미국시민으로 외국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고향의 흙에 묻히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둘 다 물리학 연구 가운데 가공할 만한(terrible, formidable) 위력의 원자폭탄 제조에 많은 이론을 제공하게 됩니다. 그게 본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던 간에 말입니다. 하긴 당시 물리학 연구는 순수 물리학쪽보다 무기개발에 무게를 둔 것은 사실입니다. 보통 우리가 전쟁에서 이야기 하는 폭탄은 주로 화학자들이 만듭니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물리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핵(nuclear)이나 원자(atom, atomic)는 모든 물체의 기본입니다.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유전과학(genetic science)에서도 핵이라는 말이 항상 등장합니다.

마리아 메이어를 두고 ‘폴란드 태생이냐 아니면 독일 태생이냐’라는 논쟁이 있습니다. 그녀는 유럽의 지도가 1년 만에 자주 바뀌는 분쟁이 치열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유럽의 강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밀고 당기면서 영토 분할이 하루가 멀다 하지 않고 변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가운데 폴란드가 대표적인 강대국의 희생물이었습니다.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을 비교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마리아 메이어는 당시 프로이센(독일)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폴란드 땅인 카트비체(Kottowiz)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메이어 집안은 6대째 대학교수의 집안이었고 그녀는 비록 여자였지만 집안의 학문적인 전통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괴팅겐(Goettingen)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부친도 그녀가 대학 교수가 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부친이 교수로 있는 독일의 명문 괴팅겐 대학으로 진학해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마리아 메리어가 학문에 전념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까지에는 아버지의 영향과 뒷바라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여성과 학문에 대한 사고는 우리나라 1930년 또는 40년대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만 유교라는 가부장적 권위 때문에 여성이 홀대를 받았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은, 유럽은 어떠했고, 여성의 참정권(political rights)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공부를 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명문 하버드 대학이 여성을 얼마나 차별했는지도 한 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남성들만 욕하지 말고 당시의 사조(trend)를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노벨상, 특히 과학과 관련된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과학자들을 보면 부모나 친척이 각별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학문적인 분위기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아 존경 받고 돈도 잘 버는 대학교수, 건축사(architect), 치과의, 의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1977년 노벨 의학 및 생리학상을 받은 로잘린 앨로(Rosalyn Sussman Yalow)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태어나 가난을 극복하고 학문의 길에 몰두해 노벨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여성이었습니다.

여성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에는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힘든 작업에도 불구하고 여성 과학자 반 수 이상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키웠습니다. 남성들이 더 많이 자녀들을 돌봤습니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직업이 없어서 집에서 하릴없이 빈둥대며 여성의 수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피에르 큐리(Pierre Curie, 마리 큐리 남편)와 어린이들의 질병을 연구한 공로로 또한 아내와 1947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칼 코리(Carl Cori, Gerty Radnitz Cori 남편)는 아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이름 있는 대학과 연구소들이 제공하겠다는 좋은 자리도 물리쳤습니다.

몇몇 여성 과학자들이 남편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메이어의 남편은 아닙니다. 그녀의 남편 조세프 메이어(Joseph E. Mayer)는 노벨상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보다 더한 여권 신장론자(feminist)로 두 남매를 도맡아 키우면서 아내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마리아 메이어는 1933년 괴팅겐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왔던 남편과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해서 남편이 다니고 있던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갑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잉꼬 부부(devoted couple)였는지 캠퍼스 커플로 아주 유명해, ‘조와 마리아(Joe and Maria)’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메이어는 1963년 독일의 옌젠(Johannes Hans D. Jensen)과 미국의 위그너(Eugene P. Wigner)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연구내용은 원자핵이 지닌 미세한 성질을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로 이루어진 껍질구조(shell structure)라고 밝힌 것이었습니다.

교수가 된 마리아 메이어는 1939년 콜롬비아 대학으로 옮겨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우라늄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1945년에는 시카고 대학교의 핵연구소로 자리를 옮깁니다. 1955년 옌젠과 함께 ‘핵 껍질구조에 대한 기초이론(Elementary Theory of Nuclear Shell Structure)’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게 되죠.

마리아 메이어는 모든 과학자들이 그랬듯이 과학을 숭상하고(admire) 사랑했습니다. 과학을 즐기면서 연구했기 때문에 인생의 승리를 낚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에 대한 일종의 ‘끼’, 영어로 표현하자면 madness가 있었던 겁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렇습니다. 자기가 설정한 목표에 도전하고 열심히 하는 정열과 집착이 성공을 일구어 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원자핵에 대해 미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그 진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For a long time I have considered even the craziest ideas about atom nucleus and I suddenly discovered the truth)’. 위대한 여성과학자 마리아의 평범하면서도 대단한 말입니다.

마리아 메이어는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기자들이 수상소감을 묻자 “노벨상을 받는 것은 연구를 직접 하는 것보다 반만큼도 재미없다(Winning the prize wasn’t half as exciting as doing the work itself)”라고 대답했습니다. 연구실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느꼈던 흥분을 생각하면 노벨상 수상은 비교가 안 된다는 이야기죠. 대단한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녀의 연구가 원자폭탄이라는 가장 위협적인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 마리 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리학이라는 순수과학(natural science, basic science, fundamental science)이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hydrogen bomb) 제조에 사용된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고 과학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핵과 관련해서 한마디 하죠. 월드와이드웹(WWW) 다 아시죠? 인터넷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WWW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와 로버트 카이유(Robert Cailliau) 박사가 공동으로 개발했습니다. 보통은 팀 버너스리가 개발했다고 나옵니다. 둘 다 스위스에 있는 유럽핵물리학연구소(CERN)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많고 사업수완이 좋은 빌 게이츠(본명, William Gates)가 WWW를 사들여 지금의 인터넷 시대를 열었고 엄청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갑부이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가 과학자냐 사업가냐 하는 논쟁에 끼어 든다면 저는 사업가 쪽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그러나 따져 보자면 무의미한 논쟁입니다.

제가 이러한 지적을 하는 것은 2005년 서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카이유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이 양반이 한 말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핵물리학연구소(CERN)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곳에서 근무하는 것 아니냐며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겁니다. CERN은 그런 곳이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핵(nuclear)은 물체나 세포의 가장 기본입니다. 핵을 꼭 핵폭탄이나 원자폭탄만과 연결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4)
피타고라스
▲ 피타고라스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고 종교가였다.  ⓒ
If there be light, then there is darkness; if cold, heat; if height, depth; if solid, fluid; if rough, smooth; if calm, tempest; if prosperity, adversity; if life, death.

만약 빛이 있다면 어둠(明暗)이 있다. 차가운 것이 있으면 뜨거운 것(冷熱)이, 높은 것이 있으면 낮은 것이(高低), 거칠면 부드러운 것이, 조용하면 격정(激情)이, 영광이 있으면 역경이, 삶이 있다면 죽음이 있다.
-피타고라스(BC 582~507) : 그리스 철학자, 수학자, 종교가-

피타고라스(Pythagoras), 다 아시죠? 생각만해도 골치가 아픈가요? 그런데 수학에 대해서가 아니라 왜 옛날 그리스 학자들은 이름이 한 자밖에 없을까요? 성(family name) 도 있고 이름(first name)도 있을 거 아닌가요? 예를 들어 탈레스도 그렇고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 가지입니다.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면 학교 선생님한테 물어 볼래요? 저도 사실 과학자의 명언을 쓰면서 요즘에야 의문을 가져본 겁니다. 이제까지 별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순히 셈을 공부하는 산수를 거치면 수학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러면 산수와 수학이 다른 점은 뭘까요? 산수는 더하기 빼기 같은 거고 수학은 영어에 제곱 같은 것이 붙고, 방정식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또 삼각형, 원이 등장하고 나중에는 가장 중요한 미분적분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머리를 괴롭히는 것이 수학인가요?

산수는 세다라는 뜻으로 calculation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계산기를 calculator라고 하는 거 아시죠? 현재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compute도 원래는 calculate(세다, 계산하다)와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수는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산수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묻는다면 calculation이라고 하지 말고 mathematics(수학)라고 해야 합니다. Calculation이나 computing 등의 단어는 나중에 편의상 만들어 낸 말입니다. 그리고 산수를 arithmetic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정수론이라고도 하고 기하학(geometry)과 대비되는 말로 대수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산수는 arithmetic과 좀 더 가까운 것일까요? 어쨌든 원래 산수와 수학의 구분은 없었고 굳이 이야기 하자면 산수는 수를 다루는 수학의 기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수학은 대수학과 기하학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단어로 쓰입니다.

이제 위대한 수학자의 이야기로 가 봅시다. ‘최초의 순수 수학자(the first pure mathematician)’, 숫자의 아버지(the farther of numbers)로 불리고, 그러면서도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the transmigration of souls, the cycles of life)를 끝까지 믿었던 피타고라스로 돌아가 보죠. 그의 기이한(strange, eccentric) 생애도 공부하고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업적(accomplishments)도 알아봅시다.

우선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다 아시죠?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 영어로는 the square on the hypotenuse of a right-angled triangle is equal to the sum of the squares on the other two sides.’ 괜찮으면 암기하고 다녀도 좋습니다. 좀 잘난 척하면서 폼도 재고 말입니다. 뭐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피타고라스는 숫자를 인간에게 처음으로 접목시킨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피타고라스 전까지도 기하학, 천문학 등에 놀랄 만치 대단한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연구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 천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장하는 이론을 숫자로 통해 증명해 내는 일입니다.

지난번 코페르니쿠스를 소개하면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미 그리스에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그저 단순한 말에 의한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증명을 한 겁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수학이 존재합니다. 수학은 그래서 모든 과학의 기본입니다. 기초과학의 1순위입니다. 수학 없이는 모든 과학논리가 있을 수 없거니와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피타고라스가 대단한 것은 피타고라스의 정리이기도 하지만 수를 인간과 접목시켜 이용한 것이죠.

피타고라스가 현대수학과 과학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는데 비해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다만 그는 기원전 582년경 현재 터키 해변에서 좀 떨어진 에게해(海) 사모스(Samos) 섬에서 태어나 40세가 되는 해에 이탈리아 남단의 크로톤(Croton)으로 이민을 갑니다. 대부분의 연구가 거기에서 이루어졌고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는 532년경 정치적인 폭군을 피해서 서부 이탈리아로 망명했고 그 곳에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학교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세운 학교는 매우 비밀스럽게 연구를 했고 바깥 세계에 대해 닫혀 있었기 때문에 피타고라스 개인연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학교의 피타고라스 학파를 통해 수학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피타고라스 정리로 알려진 이론은 피타고라스 시대보다 1천년이나 앞섰던 바빌로니아(Babylonia)에서도 사용됐다고 합니다. 누가 피타고라스 이론을 발견했느냐를 갖고 토론할 자리는 아닙니다. 바빌로니아 아시죠? 지금 미국의 점령 하에 놓여 있는 고대문명의 발상지 이라크 말입니다. 바빌로니아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며 동양을 뜻하는 오리엔트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수도 바그다드(Baghdad)는 우리가 잘 아는 천일야화(千日夜話,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시입니다.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538년 결국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기까지 화려한 문명을 남겼습니다. 그 유적의 일부는 지금도 남아 당시의 문명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배낭여행을 갈 때 미국이나 호주 같은 데보다 이집트나 인도, 중국, 그리고 비단길, 달라이 라마의 티벳, 터키 같은 역사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을 여행해 보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힘들겠지만 추억도 되고 세상사도 공부할 수 있고 인간과 역사의 흥망성쇠(rise and fall of history)가 덧없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UNESCO는 이라크의 고대 유물은 절대 파괴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도 했답니다. 미국이 이라크의 마지막 보루인 바그다드를 공격한다고 하자 유럽의 한 신문이 아쉬워하며 헤드라인을 ‘오 바그다드(Oh, Baghdad)’로 장식했다고 합니다.

이집트 문명은 나중에 그리스 로마 문명의 그늘에 가리게 되지만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이집트로, 다시 이집트 문명은 그리스로 넘어 갔다는 주장을 많이 합니다. 특히 이집트 문명을 그리스가 모방했다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도 많이 나타납니다. 또 지금 서양의 종교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기독교가 그리스 문명에서 발원했고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하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자연계에서의 수의 역할을 중요시해 “만물은 수학(數)이다(Number rules the Universe), 또는 수학은 형상과 사고를 재는 잣대다. 그리고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잣대이기도 하다(Number is the ruler of forms and ideas, and the cause of gds and demons)고 할 정도로 수 자체를 연구하는 정수론(산술)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는 자연수의 성질 가운데 간단한 것, 아름다운 것, 조화가 잡힌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를 들면 홀수, 짝수, 소수, 과잉수, 완전수, 부족수, 친화수 등과 같은 것입니다.

▲ 피타고라스의 업적은 기하학에 있다.  ⓒ
피타고라스의 업적은 기하학에 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길에 깔려 있는 조그마한 돌들을 보고 그 위에 커다란 직각삼각형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변의 길이와 꼭 같은 정사각형을 또 그려보았습니다. 이 그림 모두 상상이 가시죠? 수학시간에 본적이 많을 겁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끼는 두 변 위에 그린, 정사각형 안에 들어 있는 돌의 개수의 합은 빗변 위에 그린 정사각형의 안에 들어 있는 돌의 개수의 합과 같다”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지금의 a2+ b2=c2을 알아 낸 겁니다.

탈레스가 이미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을 미리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학파)는 평행선에서 엇각이 같다는 성질을 이용해 정점 A에서 삼각형의 세 내각이 모이게 함으로써 합이 180도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 외에도 피타고라스는 황금분할의 작도법을 발견했고 정12면체 정5각형의 대각선은 서로 다른 변을 황금분할 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정5각형의 작도법도 발견했습니다.

철학 학파이자 종교결사체인 피타고라스주의(Pythagoreanism)는 이오니아 학파의 자연주의와는 달리 오르페우스(Orpheus)교(敎)와 같은 신비적, 종교적, 정서적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자리가 종교사(史)를 토론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만 명상을 중요시 하는 유태교의 신비주의가 여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 추세고 특히 정통성 문제를 놓고 둘러싼 종교논쟁에서 이단으로 몰려 지금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기독교의 영지주의(Gnosticism)는 더욱 더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간 있으면 하나의 교양서적으로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연극도 있습니다.

어쨌든 피타고라스주의는 오늘 소개하는 명언처럼 세계가 대립자들(젖은 것과 마른 것, 더운 것과 찬 것 등)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수에 관한 합리적인 이론을 수수께끼 같은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과 결합해 사변적 우주론을 영혼에 관한 신비스러운 이론과 결합함으로써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를 뒤섞어 놓았는데 이러한 특징은 고대 그리스의 어떤 다른 사상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비학은 수에는 영적이고 신비적인 속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행운의 7, 죽음의 4, 기독교의 666 등입니다. 기독교에서 666은 악마의 숫자로 통하는 거 아시죠? 그래서 한국에서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올해 2006년 6월 6일을 대단히 불운한 날로 보고 그 날은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공교롭게도 현충일이네요. 4를 죽을 사(死)로 본다고 해서 우리나라는 미신에 빠져 있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오히려 수에 대한 일종의 미신은 서양이 더 많습니다.

영혼의 윤회에 대한 믿음은 피타고라스주의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즉 피타고라스주의 생활방식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윤회설을 ‘모든 존재의 친족성(親族性)’의 원리에서 이끌어 냈는데 피타고라스 사후 BC 4세기경에 와서 특히 강조됐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다고 항상 말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종교적 생활규칙은 “신성한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 흰옷을 입어라, 성적(性的) 순수성을 지켜라. 콩을 먹지 말라” 등 주로 의례적인 것이 많았습니다. 그는 또 불교의 가르침과 같이 더 나은 생에 도달하기 위해 음악 및 정신활동(철학이나 명상)을 통한 영혼의 정화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한편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중국에서도 BC 1000경부터 쓰였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가 BC 500년경에 이 이론을 발견했다면 중국은 그보다 500년이 빨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구고현의 정리’라고 하는데 진자라는 사람이 발견했기 때문에 ‘진자의 정리’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신라시대 천문관 교육의 기본 교재로 사용한 주비산경이라는 책에도 피타고라스 정리가 나타나는데 하늘을 의미하는 밑변인 구(勾, 길이 3), 땅을 의미하는 높은 변인 고(股, 길이 4), 빗변인 현(弦, 길이 5)으로 된 직각삼각형을 일컬어 구고현이라고 하는 겁니다. 구고현의 정리는 신라시대부터 토지를 측량하거나 다리를 놓는 대공사 등의 건물 작업에 많이 이용됐을 정도로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고 합니다.

함께 해석하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피타고라스는 세상에는 반대개념이 되는 대립적 요소가 항상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명언도 대립관계를 나열한 것입니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해도 되고 과학의 출발점이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합니다.

윤회를 주장하면서 육식까지 금하라고 한 피타고라스는 영혼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과 악에 대해 영혼이 이기는 기술이다(The momentous thing in human life is the art of winning the soul to good or devil)’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번에 그리스 과학자를 소개하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만 그리스 과학자들은 음악에서 수학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7현(絃)으로 된 수금(lyre)으로 그 악기의 현들이 주는 조화 속에서 새로운 수학을 발견했고 피타고라스도 수금을 연주하다가 피타고라스 정리를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수의 조화는 현의 조화와 같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당시 수금과 같은 현악기의 연주는 과학의 일부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과학과 음악이 결별하게 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한 다음에 그리스 시대 과학자를 소개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왜 옛날 그리스 학자들은 이름이 한 자밖에 안 되는지도 설명하겠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기하학은 현악기(lyre)의 현의 연주 속에서 나온다(There is geometry in the humming of the strings)’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를 조직해 연구에 몰두한 그는 세상에 대해 항상 관심 가질 것을 주문했습니다. ‘관심은 행동을 하게 하지 절망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Concern should drive us into action and into a depression. No man is free who cannot control himself)’.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구름 위에는 빛을 내는 별이 있다. 무엇보다 존경을 받는 별이 있다(Above the cloud with its shadow is the star with its light. Above all things reverence thyself)’, ‘미덕(美德)은 조화다(Virtue is harmony)’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3)
존 스튜어트 밀
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And if the fool or the pig are of a different opinion, it is because they only know their own side of the question.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그리고 만약 바보와 돼지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다면 그것은 의문에 대해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영국 공리주의, 경제학자, 수학자-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영국이 배출한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 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첫 문장은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두 번째 문장은 약간 생소할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공리주의자이며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교육제일주의를 부르짖은 학자이기도 합니다.

왜 과학자의 명언에 느닷없이 공리주의자인 밀이 등장했냐고요? 밀은 경제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수학자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경제학자들은 수학을 잘 해야만 했습니다. 요즘과는 달리 아주 전문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소개해봤습니다. 정확하게는 5월 20일입니다. 한양대 자유주의 연구소에서 13일(토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밀과 관련 세미나가 열리니까 관심 있으면 가보시기 바랍니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서 공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공리의 개념은 뭔지 좀 짚고 넘어갈까요? 공리라는 단어는 각기 다른 뜻으로 다른 장소에서 사용됩니다. 약간 한자의 힘도 빌리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으니깐 영어의 힘도 빌려볼까요? 그렇다고 우리의 한글이 모자라다는 것은 아닙니다.

밀이 이야기하는 공리주의는 영어로 utilitarianism입니다. utilitarian theory라고도 합니다. 한자로는 功利主義입니다. 그러니까 공공의 이익을 뜻하거나 대변한다는 ‘公利’나 ‘共利’가 아니라는 것을 유의하시고 이해하기 바랍니다. 영어로 이야기 하자면 public interest가 아닙니다. 또 수학에서도 公理(axiomatism)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밀의 功利,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公利, 그리고 수학에서 등장하는 公理 등 세가지가 있습니다.

公利는 일반 공중의 이익이나 공공단체의 이익을 뜻합니다. 수학에서 공리는 ‘증명이 없이 자명한 진리로 인정되며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는 데 전제가 되는 근본 명제’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 이런 이야기들이죠.

밀은 경제학자(economist)고 철학자이지만 수학자(mathematician)이기도 합니다. 공리주의를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공리(功利)는 공명심과 이익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만의 이기심과 쾌락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이기 때문에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라는 거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로 출발한 이러한 공리주의는 우리가 잘 아는 벤담(Jeremy Bentham)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좀 이상한 말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도덕이자 추구해야 할 대상입니다. 나쁜 이야기가 결코 아니죠. 따져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가장 잘 대변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합니다. 어쩌면 요즘 불고 있는 웰빙 바람과 무관치 않습니다.

한 국가가 탄생하려면 기존의 국가가 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상과 철학은 망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다만 새로운 흐름과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사회주의는 망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국가가 망한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나요? 공리주의는 앞서 존재했던 그 유명한 칸트에 대항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칸트는 불멸의 철학자로 우리 마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학자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됐습니다.

칸트와 공리주의 창시자인 벤담에 대해서 약간 짚고 넘어가죠. 서양의 윤리관은 의무론과 목적론으로 구분됩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결과보다 동기를 중시하고, 외부의 요인보다 스스로의 이성의 법칙을 중시하는 ‘의무론적 윤리관’을 주장했습니다. 의무론이죠. 좀 어렵다면 ‘윤리에 의무를 갖는 일’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벤담은 모든 행위에 쾌락, 고통의 증가율을 측정해서 윤리적 평가를 내리자는 것으로 ‘행위공리주의’를 주장합니다. 이 계산을 위해 그는 쾌락의 가치, 고통의 가치를 계량, 수치화하고 평균을 내서 합산하는 나름대로의 공식까지 마련했다고 합니다. 벤담의 주장이 목적론입니다. 목적론은 행위의 결과가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그 행위는 옳은 것입니다. 그 반대 경우도 생각할 수 있죠.

너무 깊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리주의 문제점이라면 양적인 다수의 원칙만을 세울 때 소외 받는 소수가 갈 길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의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한테 공부를 많이 합니다. 아버지는 당시 영국에서 아주 유명한 경제학자고 역사학자(historian)입니다. 그래서 덕분에 많이 알려진 것이 아닌지, 아버지 덕분에 출세한 거 아닌지 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가 총명했다고 합니다. 지능지수(IQ)가 180이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천재(genius)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education for gifted children, special education for the gifted)을 시켰다고 합니다. 어릴 적 밀의 친구들은 대부분 유명하고 성인들이었습니다.

영재교육이 좋은 것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능은 꼭 어릴 때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 똑똑하고 천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연습과 반복(exercise)이 천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가까이 하면 다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천재도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밀은 나중에 자기 나이 또래의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해 ‘I’ve never been a boy!’라면서 슬퍼하기도 했답니다.

스무 살을 넘기면서 밀은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우수에 젖어 우울증(depression)에 시달립니다. 그러다가 정말 자신을 이해해 주는 여자를 만납니다.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그 여인과 만나면서 많은 위안을 받고 삶의 의미도 느낍니다. 건강도 완전히 회복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가 딸린 유부녀였습니다. 그녀와 무려 20년을 가까이 지내다가 해리엇의 남편이 죽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 벌어진 건가요? 두 사람은 곧 결혼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밀의 아버지는 벤담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밀도 부친의 권유에 따라 벤담에게 배웁니다. 그러니까 제자죠. 벤담은 인간의 본성은 고통과 쾌락에 의해 지배되고 모든 인간 행위의 동기는 필연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데 있고 그 결과 쾌락과 고통은 모든 인간행위에 대한 선악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의지해서 많은 것을 배우다가 나중에는 벤담을 멀리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죠. 밀은 물질적인 쾌락보다 정신적인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벤담과 달리 밀은 행복은 단순한 양(量)에 있지 않고 질(質)에 있다고 하면서 도덕적 공리주의를 제창합니다. 요약하자면 밀은 정신적 행복, 그리고 행복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죠.

Mill argues that that we must consider the quality of the happiness, not merely the quantity. For Example, some might find happiness with a pitcher of beer and pizza. Others may find happiness watching a fine Shakespearean play. The quality of happiness is greater with the latter.

사람은 행복의 단순한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한 피처의 맥주와 피자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세익스피어의 훌륭한 연극을 보면서 행복을 만끽한다. 행복의 질은 후자가 더 크다.

너무 물질적인 주장이 아니냐? 그래서 종교로부터 항의를 받습니다. 당신은 무신론자(atheist, atheism)가 아니냐?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말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무신론자는 용납이 안 되는 사회였습니다. 무신론은 반종교주의로 통했고 사회에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밀도 배척을 받은 것이죠. Mill’s answer to the “Godless Theory Criticism’. ‘무신론 비평에 대한 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If it be true belief that God desires, above all things, the happiness of his creatures, and that this was his purpose in their creation, utility is not a godless doctrine.

신은 무엇보다 그가 창조한 피조물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그게 그의 목적이라는 게 진실한 믿음이라면 utility(개인적인 이익추구)가 무신론은 아니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고 쾌락을 향해 간다고 해서 신(神)의 율법을 위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자유론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입니다. 시민의 자유를 논한 고전적 저작으로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아담 스미스에서 시작돼 리카도로 이어진 고전파경제학(classical economics)의 이론을 확고히 완성해 명실상부한 당대 경제학계의 최고봉이 됩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이론이 됩니다. 케인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이 외에도 사회 개혁론이 있습니다. 19세기 당시 공리주의는 영국 사회에서는 급진적 개혁주의에 해당했습니다. 실천가능성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성론(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은 19세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저서로 동등한 시민권과 경제적 기회를 주장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중요한 ‘단어 숙어’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 사람이고 문장이라서 ‘함께 해석하기’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2)
루이 파스퇴르
▲ 루이 파스퇴르  ⓒ
The universe is asymmetric and I am persuaded that life, as it is known to us, is a direct result of asymmetry of the universe or of its indirect consequences. The universe is asymmetric.

우주(세상)는 불균형 하다. 인생이 보여주듯이 나는 인생은 세상의 직접적인 불균형의 결과나 아니면 간접적인 불균형의 결과의 산물로 알고 있다. 우주는 불균형 하다.
-루이 파스퇴르(1822-1895) : 프랑스 세균학자, 의학자-

유명한 세균학자(bacteriologist)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명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불균형은 뭐고 우주는 뭘 뜻하고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우주에는 정연한 질서와 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리학이나 특히 천체물리학의 이론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파스퇴르는 불균형 하다는 것일까요? 그가 이 명언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뭘까요? 그저 한번 내뱉은 평범한 이야기일까요? 영어이야기는 잠시 뒤로 하고 중국 고사를 잠시 소개할게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編意自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스스로 보인다. 학문을 열심히 탐구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라도 읽고 또 읽고, 그래서 백 번을 읽으면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소개한 명언이 해석이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여러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제가 이 고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양주동 교수라고 아시는지요? 그 분이 쓴 ‘면학의 서’라는 수필(essay) 일부가 국어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지금도 실리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국어학자며 또 영문학자입니다. 실력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길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길을 걷다가 자동차에 치일 뻔했는데 제자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하마터면 국보(national treasure)가 사라질 뻔했어!” 자신을 국보 1호라고 자칭했을 정도로 대단한 학자입니다.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이 실력 자랑하는 거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멋있게 보이죠. 문제는 반대의 경우죠.

양 박사가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어떤 일본 학자가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향가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좀 셈이 난 양 박사는 우리나라에도 향가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해서 알아봤죠. 그런데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문학 공부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향가연구에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향가연구를 일본에 빼앗길 수는 없었다는 거죠.

양 박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하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 결혼식장에 꼭 등장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들어 보셨죠?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이 양주동 박사입니다. 불교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오월이 되고 어버이날(Parents’ Day)이 되면 아버지 어머니한테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만원이든 오천원이든 선물도 하세요. 우리나라 어머니 아버지, 좀 짜증도 나지만 가엾지 않나요?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간 것 같네요. 양 박사는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문법에서 일인칭과 2인칭은 알겠는데 3인칭이 어떤 말인지 몰라서 ‘독서백편의자현’을 했고 그래서 3인칭이 뭔지를 알았답니다. 백 번을 읽고 또 읽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수마발이 다 삼인칭’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합니다. 우수마발이 뭐냐고요? 인터넷에 한 번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파스퇴르의 명언이 좀 어려운 것 같지만 원문을 생각하면서 독서백편의자현 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제너의 종두법이 발견된 이후 의학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합니다. 1847년에는 영국의 제임스 심프슨이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염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전염병의 원인이 미생물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파스퇴르가 밝힌 겁니다. 그는 전염병이 박테리아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된 최초의 학자입니다.

파스퇴르는 광견병 예방약과 치료약 개발로 유명합니다. 또 저온 살균법으로도 유명합니다. 따지면 종두법이 인류에게 더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너에게는 세균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파스퇴르는 모든 전염병이 세균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pasteurization은 살균법이라는 일반명사가 됐습니다. Pasteurize는 살균하다는 뜻도 있지만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리고 pasteurism은 광견병 예방접종이라는 말로 굳어져 있을 정도입니다. 국내에서도 ‘파스퇴르 우유’ 같은 말이 등장합니다. 학습지도 있습니다. 그의 명성이 대단한 것이죠.

1860년대 당시 파스퇴르는 프랑스의 양조업자들로부터 자신들이 만든 포도주가 왜 쉽게 부패하는지 그 원인을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파스퇴르는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결과 포도주 속에 지금 우리가 박테리아라고 부르는 아주 작은 생물이 있어서 부패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또 그 포도주를 끓이면 그 안에 있는 세균이 죽는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의사들과 학자들이 갖고 있는 미생물의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이 틀렸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발견은 훗날 무균처리법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연발생설은 음식쓰레기 같은 데서 벌레가 생기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쓰레기라도 외부와 차단되어 미생물이 근접하지 못하면 썩지 않는다는 것을 파스퇴르가 보여준 겁니다. 생물은 생물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생물속생설(biogenesis)의 이론을 확립했습니다.

파스퇴르는 고기즙에 공기는 통하면서 미생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S자형 플라스크를 만들어서 세균의 자연발생이라는 것은 공기 속의 포자(胞子)가 침입해 번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옛날부터 논란이 돼 오던 자연발생설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더 이상 논란이 없게 되죠.

이 밖에도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와 탄저병, 디프테리아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고 1881년에는 광견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혈청(serum)도 개발합니다. 당시 광견병에 의한 치사율은 거의 100%에 가까웠는데 1% 이하로 낮추어 유럽을 광견병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킵니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것은 광견병 치료약 개발 때문입니다.

파스퇴르는 자신이 고안해서 예방법에 사용한 ‘약화된 균’을 백신(vaccine)이라 하고 백신을 사용해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예방접종(vaccin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백신을 처음으로 개발했고 백신이라는 말도 파스퇴르가 만든 것이죠.

백신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암소를 의미하는 vacca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smallpox) 예방법을 고안할 때 천연두 균을 직접 주입하는 대신에 병원성이 약한 우두에 걸린 암소를 이용해서 우두법을 만들어 낸 것을 기리기 위해 파스퇴르가 붙인 이름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1888년 위대한 업적을 남긴 파스퇴르를 기념하기 위해 ‘파스퇴르 연구소(Pasteur Institute)’를 세웠으며 파스퇴르는 18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기에서 연구를 하며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합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제자가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입니다. 탄저균, 결핵균, 그리고 콜레라균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 독일의 미생물 학자입니다. 코흐는 뒤에 최초의 화학요법을 발견했고 1908년 노벨상을 받은 에를리히(Paul Ehrlich)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파스퇴르는 세균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상업화(commercialize)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의 틀을 만들어 기업화에 성공합니다. 우리나라에도 2년 전 법인으로 들어와 있지만 파스퇴르 연구소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세계 유명한 제약회사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세균은 박테리아를 말합니다. 나중에 세균 이외에 바이러스(virus)와 곰팡이(mold), 리케챠 등도 발견되고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인류는 전염병 퇴치에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서양 의학의 실질적인 선구자는 천연두 종두법을 발견한 제너입니다. 그러나 세균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집대성한 사람은 파스퇴르입니다.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종교와 주술이 아니라 의학이라는 과학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파스퇴르의 업적에 대해서는 일일이 기술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대단합니다. 파스퇴르의 명언들을 보면 파스퇴르는 생활태도나 철학이 분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의식이 분명한 학자라고 할까요? 준비된 마음, 또는 사람(prepared mind)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말이 들어간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Did you ever observe to whom the accidents happen? Chance favors only the prepared mind. (사고가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지 관찰해 본 적이 있는가?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In the field of observation, chance favors only the prepared minds. (관찰의 영역에서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Fortune favors the prepared mind.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기회도 오고 행운도 오고 우연한 이득도 생길 겁니다.

단어 숙어

• asymmetric : 불균형의, 부조화의, 비대칭의. 명사로 asymmetry.

• universe : 우주, 만물, island universe beyond the Milky Way system(은하계 밖의 섬우주). 전 세계. 전 인류.

함께 해석하기

좀 어렵네요. 문장이 어려운 게 아니라 전달하려는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말입니다. 자신이 많지는 않은데 해 보죠. 원래 universe라는 말은 우주를 뜻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살이는 불공정하다는 말이 나오겠죠?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굶주리는 사람도. 건강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또 신체적 불구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선천적으로 얼굴이 잘 생긴 사람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래서 그러한 불균형(asymmetric)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게 곧 우리가 사는 인생사(人生史)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질병도 불균형에서 나오는 거고, 그래서 그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백신도 개발하고 치료약도 개발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도전의 역사다. 따라서 우리는 늘 준비돼 있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prepared mind). 인간의 임무는 불균형을 시정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해석이 너무 빗나간 것은 아니겠죠?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1)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 코페르니쿠스  ⓒ
“I am not so enamored of my own opinions that I disregard what others may think of them. I am aware that a philosopher’s ideas are not subject to the judgment of ordinary persons, because it is his endeavor to seek the truth in all things, to the extent permitted to human reason by God.”

나는 나의 이론에만 빠져 남들의 생각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철학자의 사상이 일반 사람들의 주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신이 허락한 인간의 이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모든 사물의 이치를 찾으려는 것은 그 철학자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폴란드 천문학자, 지동설 주장-

다윈이 땅의 혁명(revolution in the earth)을 일으켰다고 가정한다면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는 하늘의 혁명(revolution in the heaven)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은 정치적으로 기존 정권을 갈아엎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아마 그보다 큰 혁명은 기존의 종교와 전통적 사고를 뒤엎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1473년생이고 다윈은 1809년에 태어났으니까 하늘의 혁명이 400년 먼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두 사람 모두 다 노령이 된 70세를 전후해서 이론(theory, study)을 내놓습니다. 말년이 돼서야 학문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교회로부터 박해(persecution, oppression)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다윈은 그나마 어느 정도 관대한(generous) 영국에서 살았으나 코페르니쿠스의 폴란드나 유럽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신에 도전하는 법을 어겼다고 해도 교회가 늙은 사람을 고문하거나(torture) 형을 살게 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관대하게 처분했을 겁니다.

헌데 왜 땅의 혁명(진화론)은 그렇게 늦게 이루어졌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런 이유일 겁니다. 천문학은 연구소에서만 관측하고(observe, observation) 연구해도 되는데 생물학(biology) 공부는 세계를 비롯해 여러 곳을 돌아 다녀야 합니다. 비글호에 다윈이 탑승할 기회가 없었다면 진화론의 이야기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다른 이유도 있을 겁니다. 기존 자료들도 전혀 없었을 것 같고요. 또 다른 이유는 생물 진화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들이 거의 없었을 거란 판단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가 대단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사실 그 이론은 과거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는데’라며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를 평가절하 합니다(devaluation). 갈릴레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리스 시대에 수학이나 물리학이 발달됐고 천문학도 발달했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니케타스라는 철학자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주장(assertion, contention, maintenance)과 증명(illustration)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스 시대의 천문학과 코페르니쿠스 시대를 같은 차원(dimension)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중세의 여러 가지 고초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논문을 통해 현대 천체물리학에 이바지한 학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특히 종교 때문에 깎아 내리려고 하는 시도나 흔히 ‘그 사람도 별수 있어, 목숨은 부지해 보려고 교회에 붙어 아부하면서 지냈지’ 등으로 비아냥거리는(make cynical remarks, be sarcastic about) 것은 대단히 옳지 않습니다.

과학에서는 증명해줄 사실적인 증거(evidence)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정연한 논리가 필요합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닙니다. 그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social science)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연과학의 논리만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적어도 과학에 대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접근(approach)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지동설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9개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처음으로 마련한 겁니다. 9개의 행성 모두를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행성들은 나중에 차츰 하나씩 발견됩니다.

케플러의 주장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진가가 인정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천문학의 주류로 자리잡기 위한 초석을 마련해 준 것이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여러 가지 모순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구도 태양에 구속된 별 볼일 없는 태양계의 한 행성에 불과하다는 파격적인 논리를 폅니다. 바로 하늘의 혁명을 일으킨 지동설입니다. 이는 또 시각을 넓혀 태양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태양계와 같은 엄청난 수의 무한한 우주가 있다는 개념이 시작되는 발판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지동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만큼 큰 겁니다.

지구가 별 대단한 것이 아니라 태양을 축으로 돌고 있는 한 행성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당시 천지창조의 중심이 곧 지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로마교회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천동설을 중심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죠. 천동설은 모든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얘기합니다.

지동설과 천동설을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가 나왔으니 천동설에 대해 약간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천동설(geocentric theory)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서 있으며, 지구를 중심으로 달, 태양, 수성 등 행성이 돌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정서적으로나 직감적으로 대지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다른 행성들이 돈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죠.

더구나 망원경도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순전히 별의 이동만을 관측해서 천체의 흐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기 전만 하더라도 모든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은 천동설에 의지했습니다. 피타고라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동설에 의거한 에우독소스(BC350), 아폴로니우스(BC250) 등의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천동설을 주장한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당대 유명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가 기원 후 130년경에 완결판인 ‘알마게스트(Almagest)’를 발표함으로써 천동설은 부동의 논리가 됩니다. 후에 그의 천동설 가설이 잘못이라는 판단이 나왔지만 당시 그는 대단한 과학자이며 수학자였습니다. 다음 기회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를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교회는 이후 이 천동설을 받아들입니다. 당시 천체에 대한 다른 특별한 이론도 없었고 천동설은 지구중심의 교회논리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죠. 그러나 성서의 말씀이나 다름없이 돼버린 이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이단이므로 많은 고초와 박해를 받는 거죠. 즉 천동설은 나중에 오류로 판명됐지만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었습니다. 과학이론은 수정을 거치고 또 거치면서 발전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원리로 채택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죠.

과학적 이론이 종교나 정치 이데올로기에 빠질 때 엄청난 위험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 나치의 열등민족을 거세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동설이 나쁘다는 말은 별로 바람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론은 본래 목적을 잊고 소유한 사람에 따라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에 대한 그의 역작 ‘천체의 회전에 관해(On the Revolutions of the Heavenly Orb)’(전4권)를 거의 완성했으나 이단으로 몰릴까봐 출판하지 못한 채 1520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당시 이 위대한 하늘의 혁명가는 교회의 평의원 회의에서 브라우엔부르크 대교구장으로 임명됩니다.

그 후 22년이 지난 1542년 그의 책은 세계 최초의 뉘른베르크 활판인쇄소로 넘어 갑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왜 발생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 점에서는 케플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과학이론은 혼자서 다하는 게 아닙니다. 뉴턴이 등장하면서 풀렸죠. 만유인력 말입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가 이런 말을 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을 칭찬했습니다. 좀 길지만 한번 좀 볼까요?

“Of all discoveries and opinions, none may have exerted a greater effect on the human spirit than the doctrine of Copernicus. The world had scarcely become known as round and complete in itself when it was asked to waive the tremendous privilege of being the center of the universe.”

“모든 발견이나 이론 가운데 어떤 것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보다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대단한 특권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단어 숙어

•enamor: 주로 수동형으로 ~에 반하다. 마음이 빼앗기다. ~에 매혹되다. The parents are enamored of their youngest daughter(부모님은 막내딸에게 홀딱 빠져 있다). He is enamored with foreign films.

•disregard: 무시하다, 등한히 하다(neglect). 명사로 have a disregard for(of). disregard of (법률의 무시)

•be subject to: 복종하다. 지배를 받다. state subject to another(남의 나라의 속국). 손해 받기 쉬운, be subject to damage(손해 받기 쉬운), He is subject to fits of anger(그는 화를 잘 내는 성미다).

함께 해석하기

나는 내가 주장하는 이론에만 빠져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면서 다른 사람이 내 이론을 비판하는 행위를 무시해버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하늘이 준 능력을 한 학자가 최대한 발휘한 이론은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주장에 굴복할 수는 없다. 현재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무지(ignorance)에서 오는 위험은 참으로 위험하다.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0)
갈릴레오 갈릴레이
▲ 갈릴레오  ⓒ
I do not feel obliged to believe that the same God who has endowed us with sense, reason, and intellect has intended us to forgo their use.

나는 우리에게 감성, 이성, 그리고 지성을 부여한 신(神)이 그 혜택을 무시하라고 했다는 것을 감사하다고 믿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 이탈리아 천문학자, 수학자-

번역이 깔끔하지 못한 것 같네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미움을 산 것이죠. 그래서 종교재판(The Inquisition)에 회부돼 굴복하고, 할 수 없이 자신의 이론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혹독한 고문과 사형에까지 이를 수 있는 형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감옥 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재판장을 나오면서 한 것인지 아니면 감옥에서 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재판을 받자마자 구속이 됐기 때문에 아마 감옥에서 한 말이라는 생각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풍요한 집안에서 태어난 갈릴레오는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과학 이론 때문에 고초를 겪은 대표적인 과학자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갈릴레오의 짤막한 명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우주를 지배하는 신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자연의 질서라는 무형의 법칙이든 아니면 유형의 인격체든 말입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명언 속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을 져버리고 살라는 이야기는 안 했을 거라는 거죠.

우리는 때로 ‘갈릴레오가 왜 교회의 종교재판에 굴복했는가? 자신의 학문과 진실을 위해서 당당하게 나서고 목숨을 버릴 줄 아는 학자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릴레오를 다시 한번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갈릴레오는 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살기 위해서 비겁하게 타협했다’라는 주장은 옳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교회가 로마 카톨릭인데 교회만 욕하는 일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과학과 이론이 태동하는 데는 기존의 문화와 전통과 투쟁하고 또 타협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과학과 이론은 진보고 문화와 전통은 보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수를 바꾸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흔히 쓰는 개혁, 또는 이노베이션이 역사라는 차원에서 볼 때 그저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갈릴레오는 교회의 오만과 권력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의 과정에서 희생된 과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갈릴레오는 1564년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피사에서 태어납니다.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그가 의사가 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피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지만 수학에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1581년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했고 피사 대학에서 수학 강사로 일하다가 베네치아 공화국(북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 교수로 진출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관성의 법칙(law of motion)을 발견합니다.

진자의 등시성은 다 아시죠? 갈릴레오가 19세가 되던 1583년 피사 사원에 매달려 있는 램프를 보고 발견한 이론입니다. 흔들리는 정도에 관계없이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정한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맥박으로 왕복시간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한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폭에 관계없이 일정하고 진자의 길이에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성의 법칙도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1609년 갈릴레오는 네델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량해 배율을 높여 천체 관측에 사용합니다. 이 관측을 통해 달의 표면에는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금성이 달처럼 차고 이지러진다는 것, 태양에 흑점이 있다는 것, 희미한 은하수가 실은 많은 별의 집단이란 것, 목성 주위에 네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학문적 친구인 독일의 케플러에게 보냅니다. 케플러는 1571년에 태어났으니까 갈릴레오보다 7살 정도 어립니다.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천문학에 대한 진실은 서로 공유했다고 생각됩니다. 케플러는 갈릴레오의 목성 주위에 돌고 있는 위성 이야기를 듣고 ‘satellites’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1616년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교황청으로부터 금지 당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잘 알고 있고 그에게 호의적인 오르바누스 8세가 교황으로 즉위합니다. 그러자 피렌체에서 일하고 있던 갈릴레오는 새로운 학설을 담은 책을 내기로 결심하고 직접 로마로 갑니다.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가설로만 서술한다면 좋다는 허가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저술을 하지만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됩니다. 왜냐하면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입니다. 당시 교황청은 천동설은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지동설은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천동설은 신의 논리로 허가가 됐지만 지동설은 안됐습니다. 이때 갈릴레오는 이미 70세가 넘은 나이였습니다.

그나마 교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신 금고형을 선언 받고 나머지 생애는 엄중한 감시 하에 피렌체 교외에 있는 자택에서 고독한 여생을 보냅니다. 쓸쓸한 말년인 1642년, ‘진공의 연구’로 유명한 제자 토리첼리(Torricelli Evangelista)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납니다. 바로 이 해에 그 유명한 뉴턴이 태어납니다. 교황청은 공식적인 장례나 묘비 세우는 것을 금지합니다.

로마교황청은 360여 년이 지난 1992년 10월 31일 특별재심과학위원회에서 당시 종교재판을 다시 검토한 결과,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갈릴레오의 완전복귀를 선언합니다. 15년 전의 일입니다. 과학시대에 접어든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100년이 훨씬 넘습니다. 그러나 과오를 인정한 것은 불과 20년을 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와 사상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종교를 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형태로든 간에 종교가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교와 과학’에 대한 접근 방법입니다. 갈릴레오가 과학이라는 학문을 부정해야만 했고 종교재판장을 나오면서 언급한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도그마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여러 동물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비과학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단어 숙어

• be obliged to : ~에 감사하다. I am very much obliged to you for your kindness(당신의 친절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Could you oblige me with 5,000 won?(5천원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Will you oblige me by opening the window?(창문을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 endow : ~에게(with)~을 부여하다, 주다. Nature had endowed her with wit and intelligence(하늘은 그녀에게 기지와 지성을 내리었다). 수동태로 His daughters are all endowed with remarkable beauty and grace(그의 딸들은 모두 대단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갖고 태어났다). 명사로 endowment(기부, 기증, 그 액수)

• forgo : ~을 그만두다, 삼가다(abstain from~). ~을 버리다(give up). 버리다, 무시하다(neglect). ~을 떠나다(quit)

함께 해석하기

우리에게 감성, 이성, 그리고 지성 모두를 부여한 신이 그 감성, 이성, 지성을 무시하거나, 없이 지내라고 하는 신과는 같지도 않고, 또 만약 그렇다면 그 신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었다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신은 결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이 준 능력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 뜻인 것 같네요.

Doubt is the father of invention(의심은 발명의 아버지다). You can not teach a man anything; you can only help him find it within himself(사람에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다. 다만 그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I have never met a man so ignorant that I couldn’t learn something from him(배울 것이란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무지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와 같은 말도 남겼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9)

찰스 다윈
It is not the strongest of the species that survive, nor the most intelligent, but the one most responsive to change.

살아 남는 종(種)은 강한 종이 아니고, 또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찰스 다윈(1809-1882): 영국의 자연생물학자, 진화론자-

다윈(Charles Darwin)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간의 조상(ancestor, forefather)이 원숭이라고 하니깐 아예 꼴도 보기 싫나요? 진화론(evolution)이 자신의 종교가 주장하는 창조론(creation)과 위배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판단을 할 생각입니까?

다윈을 여러분의 종교 속으로 끌어들일 생각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종교를 다윈의 진화론 속으로 끌어들일 생각입니까? 또 아니면 그의 존재조차 무시할 생각입니까? 종교라는 이름으로 다윈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도그마(dogma)입니다. 다윈은 첨단 과학시대인 지금까지도 존경과 비판을 받는 학자입니다. 왜 비판을 받고 있을까요?

다윈의 이 명언은 그가 주장하는 진화론 전체를 짤막하게 요약해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강한 종만이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똘똘한 종만이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설명하자면 유들유들하게 세상과 타협하고 적응하는 종(種)이 끝까지, 그리고 영원히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철학도 되는 건가요?

다윈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여러분들한테 물어 보죠. 여러분들은 힘이 세고 강한가요? 아니면 아이큐도 높고 공부도 잘 하고 그래서 똘똘한가요? 또 아니면 공부는 대충하면서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있고, 만약 취직해서 사회생활 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짱’으로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지요?

어쨌든 다윈의 진화론은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사교성(sociality) ‘짱’의 소질이 있는 사람, 또는 생물만이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신(神)한테만 의지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풀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부는 하지 않고 ‘짱’만 키우지 마세요. 다윈의 진화론은 50년, 60년, 100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십 만년, 백 만년, 그리고 억 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모순(contradiction)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여러 가지 오류(mistake, fallacy)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과학 이론은 반박과 논쟁의 과정을 통해 발전합니다. 뉴턴의 이론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모순점이 발견됐습니다. 과학이론도 발전하고 진보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모순이 있기 때문에 창조론이 맞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위험한 아집입니다.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창조론은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그 속에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연한 논리와 체계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창조론은 기독교든, 아니면 대부분의 국가에 있는 창조 설화든 간에 하나의 신화라는 차원입니다. 그러한 신화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선택적 권리입니다. 선택은 하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독일 나치의 히틀러는 다윈의 진화론을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superiority)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등의 게르만 민족은 살아 남고 유태인이니, 슬라브라는 하등 민족은 진화론의 이름을 빌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히틀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또 이 칼럼이 히틀러의 철학을 논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HP를 아시는 지요? 세계적인 컴퓨터, 이동통신 회사 휴렛패커드 말입니다. 지금은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피오리나(Carly Fiorina)라는 대단한 여성이 이 HP를 이끌었습니다. 아마 여성 가운데 피오리나만큼 대단한 회사의 경영자가 된 적은 없습니다. 유명한 여성 경영인으로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어느 신문에는 피오리나 담당 기자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2004년 피오리나 회장이 매일경제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특별 강연을 통해 한 말이 있습니다. “살아 남는 종은 힘세고 똑똑한 종이 아니다. 현실에 타협하는 종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다윈의 적자생존의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타협과 생존의 철학을 그에게 배워야 한다. 혁신은 적응이다” 피오리나 회장은 언변이 대단합니다. 좀 멋있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웃을 때의 모습은 여우와 사자를 합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언론은 ‘1백만 달러의 미소(smile of one hundred million dollar)’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피오리나 회장 겸 CEO는 작년 9월 이사진의 반대로 권좌에서 축출당합니다. 방만한 경영이 첫째 요인이고 너무나 정치적이라는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무대에서 통하는 외교술은 훌륭한데 기업경영에서는 무능하다는 이유입니다. 피오리나 회장은 기업의 적자생존을 외치면서도 자신은 적자생존을 못한 것 같습니다.

진화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함께 기독교 이론이 지배하는 세계(유럽)의 인식을 바꿔 놓았습니다. 인간의 자존심, 그리고 신(神)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2대 이론입니다. 신이 만든 지구가 왜 돌아? 신이 창조한 가장 고등 동물인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그러면 잘났다는 인간도 개나 고양이와 같이 그저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의사 집안에서 자라난 다윈은 1825년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해 의학을 배웠으나 성격에 맞지 않아 중퇴합니다. 가정이 풍요한 다윈은 1828년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진학해 신학(神學)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다윈은 신학에도 싫증을 느꼈고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아주 뜻밖의 사건(unexpected chance)으로 예상치 못하게 바뀝니다. 아마 다윈이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진화론은 없었을 겁니다. 다윈이 1831년 22세가 됐을 때 친교를 맺고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 식물학 교수인 J. 헨슬로 박사의 권고로 해군 측량선인 비글(Beagle)호에 박물학자로 승선합니다.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여러 섬(특히 Galapagos Islands, 갈라파고스 제도)과 호주 등지를 두루 항해해 6년 만인 1836년 귀국합니다. 이 여행에서 다윈은 진화론을 주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았습니다.

다윈은 맬더스(Thomas Malthus)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알다시피 맬더스의 인구론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 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입니다. 산아제한의 이론을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윈이 배운 것은 많은 인구 가운데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생존이 필요하다. 적응하는 인간만이 살아 남는다는 겁니다. 때론 투쟁도 필요합니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이론입니다.

다윈은 여러 가지 논문을 냈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연구 논문은 세 가지 입니다. 1839년에 ‘비글 항해기(Journal of the Voyage of the Beagle)’, 20년 후인 1859년에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합니다. 종의 기원 논문의 정식이름은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입니다. 그야말로 세간의 이목을 끈 이 논문의 제목을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871년에 발표한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가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입니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 것이죠. 이 논문에서 다윈은 “나는 주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적에게 당당히 맞섰던 영웅적인 작은 원숭이나 산에서 내려와 사나운 개로부터 자신의 어린 동료를 구하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사라지는 늙은 개코원숭이에게서 내가 유래됐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했답니다. 다윈의 대표 논문을 꼽으라면 흔히 알려진 ‘종의 기원’을 애기하지만 사실 인간의 기원과 생물학적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저작은 ‘인간의 유래’입니다.

‘종의 기원’은 초판 1천250부가 나왔는데 매진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6판까지 출판됐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에 대한 논쟁이 계속됩니다. 특히 영국의 자존심인 옥스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여기에 그 유명한 불세출의 생물학자 헉슬리(Huxley) 박사가 등장합니다. ‘해파리 박사’ 헉슬리 박사는 많은 명언도 남겼습니다. 따로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에서 다루겠습니다.

단어 숙어

•species: 종류, classification, the human species(인류, mankind). Barley is a species of grass(보리는 풀의 일종이다)

•survive: 더 오래 생존하다. 살아 남다. His wife survived him (by) a few years(아내는 그보다 몇 년 더 살았다). The crew survived the shipwreck(난파된 배에서 선원들은 살아 남았다). 수동태로 He was survived by his wife(그는 아내를 두고 죽었다).

It is always advisable to perceive clearly our ignorance(우리의 무지를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은 언제나 권고할만한 일이다). A man who dares to waste one hour of his life has not discovered the value of life(인생의 한 시간을 쉽게 써버리는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비판과 칭찬을 한 몸에 받는 다윈의 말입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8)
아이작 뉴턴
▲ 뉴턴  ⓒ
Trials are medicines which our gracious and wise physician prescribes because we need them; and he proportions the frequency and weight of them to what the case requires. Let us trust his skill and thank him for his prescription.

시련이란 우리의 우아하고 현명한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의사)는 경우에 따라 약의 용량과 빈도를 조절한다. 우리는 그의 능력을 믿고 처방에 감사해야 한다.
-아이작 뉴턴(1642-1727) : 영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사과와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으로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로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문학에서 셰익스피어, 생물학에서 다윈과 더불어 영국이 가장 자랑하는 자존심(pride)이기도 합니다.

수학에서는 미적분(differential and integral calculus)을 창시했고 물리학에서 ‘뉴턴역학’의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수학적 방법은 자연과학의 모범이 됐고 사상면에서도 그의 자연관은 커다란 영향을 미쳐 계몽주의(illuminism, enlightenment)를 탄생하는 초석이 됩니다. 영국 왕실로부터 나이트 칭호도 받습니다.

뉴턴은 천문학자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와 50여 년 정도밖에 차이가 없지만 삶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대단한 대접을 받습니다. 특히 뉴턴의 만유인력의 초석이 된 케플러의 인생을 비교하면 엄청남 영화를 누립니다. 케플러가 돈이 없어 질병과 빈곤 속에서 살다가 길가에서 쓸쓸히 죽어간 것과 대조적입니다.

당시 천문학은 교회(로마 카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간에)에 도전하는 가장 위험하고 사악한 존재로 인식됐습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구가 자기 스스로 돈다든지(지구자전, rotation), 신이 창조한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든지(지구공전)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표적이 됐고 생명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인물 가운데 뉴턴은 전혀 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신성로마제국)은 로마카톨릭의 힘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고 영국은 이미 종교개혁(성공회 개혁) 등을 통해 로마교회의 감독권을 이미 벗어난 때입니다. 영국은 이미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합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영국은 변화와 개혁이 태동할 때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천문학자인 뉴턴이 신학(神學: theology)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일입니다. 소개한 명언을 보면 대강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서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고대사 해석을 검증하고 성서연구를 통해 삼위일체론(Trinitarianism)을 부정하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영국 왕실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은 건 아닌지 해석해 보기도 합니다. 또 뉴턴은 크리스마스에 태어났습니다. 아마 이것도 그가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뉴턴을 두고 과학과 신학이 어떻다는 등 말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그 대단한 과학자도 신을 믿었어! 그래서 성경은 옳아’ 같은 이야기입니다.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의 생애를 통해 진지하게 다시 세상을 조명해 보는 일입니다. 과학자의 명언도 그렇습니다. 이론을 자기에게 맞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합리화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에 잘못이 드러났기 때문에, 아니면 오파린의 생명 기원설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창조론이 맞다’라는 주장은 경계해야 할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아이작 뉴턴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2살 때 재혼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불운한 소년시절을 보냅니다. 학교에 입학해서는 ‘울보 아이작’, ‘겁쟁이 아이작’이라는 놀림을 받고 공부도 싫어했다고 합니다.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돈 많고 나이 많은 신부(성직자)와 결혼한 뉴턴의 어머니는 8년 만에 재혼해서 낳은 세 명의 애들을 데리고 뉴턴 곁으로 옵니다. 그 성직자가 죽었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도움으로 공부도 할 수 있어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뉴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평범을 뛰어 넘은 학자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었을까요?

평소 점성술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 뉴턴은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 월리스(John Wallis)의 ‘무한의 산수’를 탐독하면서 수학과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특히 케플러의 ‘행성에 대한 법칙’과 ‘굴절광학’에 심취합니다. 여기에서 뉴턴은 케플러가 밝히지 못한 인력(引力)에 대한 연구에 들어갑니다.

1664~1666년 페스트(pest)가 유럽에 창궐하자 대학이 일시 폐쇄 됩니다. 페스트 흑사병(Black Death) 다 아시죠? 쥐벼룩이 감염시킨다는 무서운 병 말입니다. 이 병은 14세기 중반(1347년)에 나타나 유럽인구의 절반을 앗아갔습니다. 이후 3백년 동안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습니다. 뉴턴이 존재하던 시대의 페스트는 유럽의 마지막 재앙이라고 불린 런던 대역병(epidemic)을 이야기 합니다. 그 이후 이 병은 갑자기 자취를 감춥니다.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 생명을 앗아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야기로 돌아가서 뉴턴은 이 역병을 피하기 위해 고향인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Lincolnshire)의 울즈소프(Woolsthrope)로 돌아가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과 실험으로 보냅니다. 그의 대단한 업적의 대부분이 여기서 싹이 틉니다. ‘뉴턴의 사과’ 일화도 여기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뉴턴의 사색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1667년 대학으로 돌아온 뉴턴은 석사학위를 받고 특별연구원의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멘토였던 당시 유명한 수학자 배로(Barrow)의 뒤를 이어 교수가 됩니다. 그래서 뉴턴은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논문들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일한 미분법을 발견한 라이프니츠와 우선권 논쟁도 벌입니다.

뉴턴의 최대 업적은 역학(力學)입니다. 특히 중력(重力)문제에 대해 광학과 함께 깊은 관심을 가고 있던 그는 지구의 중력이 달에까지 미친다고 생각해 이것과 케플러의 행성의 운동과의 관련을 고찰해 만유인력 이론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 또한 아인슈타인 박사에 의해 엄청난 수술을 받습니다. 유명한 업적이나 논문들은 생략하기로 하죠.

1688년 명예혁명 때는 대학 대표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1699년에는 조폐국 장관을 지내기도 합니다. 1703년 영국 왕립협회 회장으로 추천되고 1705년 나이트 칭호를 받습니다. 갈릴레오가 사망한 1642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나 172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힐 때까지 뉴턴은 최고의 명예를 누렸습니다. 아마 역사를 통틀어 천문학을 공부한 근세 과학자 가운데 뉴턴만큼 인정 받은 학자는 없을 겁니다. 케플러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단어 숙어

• trial: 시련, 고난 고초(hardship). My mischievous son is a great trial to me(나의 장난꾸러기 아들은 큰 골칫거리다. 재판, 공판. criminal trial(형사재판). He stood(took) his trial for theft(그는 절도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시도(attempt, test)

• prescribe: 규정하다, 명령하다, 지시하다. He always prescribes to us what to do (그는 늘 우리에게 무엇을 할지를 지시한다). 약을 ~에게 처방하다. (prescribe medicine for ~). prescription(처방약, 처방전), 규정, 법령, 법규.

• frequency: frequent(자주 일어나는 ). 빈도, 빈발. frequency of crimes(범죄의 빈발, 또는 횟수). Frequent customers(단골고객). With disgusting frequency(넌더리 나게 빈번히). 주파수. Frequent는 동사로 쓰여 종종 방문하다. 자주 가다. Frequent a library(도서관을 자주 가다. To promote your English, frequent a dictionary(영어를 잘 하려면 사전을 자주 찾아 봐라)

함께 해석하기

힘든 시련은 우아하고 현명한 의사인 (하느님)이 처방해주는 가장 좋은 약이다. 인간에게 시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하느님은 어떤 병에 걸렸는지에 따라 약을 많이 쓰기도 하시고 약을 먹는 횟수도 정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처방에 대해서도 늘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힘든 시련을 이겨 낼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겠죠?

For suffering and enduring there is no remedy, but striving and doing.(고통과 인내만 하는 사람을 구제할 방도는 없다. 그러나 노력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구제방도가 있다.) 어록으로 유명한 Thomas Carlyle의 명언입니다. 어려울 때는 방법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고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7)
요하네스 케플러
▲ 케플러  ⓒ
The diversity of the phenomena of nature is so great, and the treasures hidden in the heavens so rich, precisely in order that the human mind shall never be lacking in fresh nourishment.

자연현상의 다양성은 너무 대단하고, 하늘에 숨겨진 보물들이 너무 많아 인간의 마음은 새로운 영양공급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독일 천문학자, 수학자, 케플러 법칙-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다 잘 아시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revolve, 자전은 rotate) 행성의 궤도(planet’s orbit)를 발견한 독일 출신의 천문학자 케플러 말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케플러의 법칙(Kepler’s laws)’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rule 대신 law를 더 많이 씁니다.

우선 영어공부도 할 겸 케플러의 3개 법칙을 영어로 한번 이야기 해 볼까요? 조금 낯선 단어는 있지만 그 법칙이 어떤 내용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짧고 간결하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배운 타원형(elliptical)의 행성의 궤도그림을 생각하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A planet move in elliptical orbits with the sun at one focus.(각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의 궤도를 돌고 있다.)
2. The radius vector drawn from the sun to a planet sweeps out equal areas in equal time intervals.(행성과 태양을 잇는 동경은 같은 시간 간격에서 같은 면적을 지나간다.)
3. The square of the orbital period of any planet is proportional to the cube of the semi major axis of the elliptical orbit.(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천체물리학(astrophysics)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법칙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기하학적(geometric)으로 정확히 설명해 줍니다. 또한 이 법칙들로 행성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케플러는 태양과 행성의 운동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근대 천문학의 이론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행성들이 왜 태양을 중심으로 그렇게 운동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못했습니다. 인력(引力: gravitation, magnetism)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결국 행성들이 이러한 규칙체계를 따르도록 하는 자연의 힘에 대한 과제는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의 뉴턴으로 넘어 갑니다. 과학이 차츰차츰 발전하는 것이죠. 뉴턴도 케플러의 연구가 없었다면 만유인력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낮잠 자다 사과가 떨어져서 발견한 거 아니냐고요?

좀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종교나 신화(mythology), 또는 사상도 그렇습니다. 해석하는 데 있어서 상징주의와 문자주의가 있습니다. 특히 종교에서의 초현실적인(surrealistic)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을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냐는 거죠.

예를 들어 단군신화에 과연 웅녀가 마늘과 쑥을 먹고 진짜 인간이 됐느냐 하는 것이나, 동정녀 성모마리아, 예수나 모세의 기적이 정말 일어났는지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릅니다. 전해내려 온 문헌이나 경전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도 있고 그 의미를 새롭게 새겨볼 수도 있습니다.

문자주의가 원리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기독교의 해석을 두고 서로 대립했던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와 문자주의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당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와 같은 천문학자들이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까지 교회의 탄압을 받은 것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나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말도 우리는 곧잘 많이 듣습니다. 두 근본주의가 중동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과학에서 경계하는 도그마(dogma)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Dogma is not only enemy of scientists, but also enemy of mankind.”(도그마는 과학자의 적이다. 또한 인류의 적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궤도를 벗어난 것 같네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녔으나 별 흥미를 못 느꼈고 그래서 적응도 잘 못했습니다. 대신 유클리드(Euclid) 기하학에 심취합니다. 튀빙겐 대학에 들어가자 기하학에 매료된 케플러는 당시로는 위험하고도 신비로운(mysterious)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배우게 됩니다.

케플러가 우주에 관심을 갖고 재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신성로마제국(독일) 궁정에서 왕실 수학자의 지위를 갖고 있던 티코 브라헤(Tycho Brahe)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갈릴레오도 만납니다. 1601년 티코가 사망하자 케플러는 그의 후임으로 궁정 수학자가 돼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료를 연구하는 데만 20년을 넘게 보냈습니다. 궁정의 자료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케플러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케플러는 광학분야(optical field)에서도 중요한 기여(contribution)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렌즈가 어떤 일을 하는지 분명하게 밝혔으며 눈도 카메라의 렌즈와 같이 조리개를 통해 망막에 상이 맺힌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천체망원경을 발명해 근대 천문학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습니다.

사망하기 몇 년을 앞두고 한 때 발렌슈타인이라는 후작의 점성술사(astrologer)로 일하며 재정적 지원(financial support)을 받기도 합니다. 1930년 노상(路上)에서 급사할 때까지 그는 병약과 빈곤, 전쟁(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 속을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연구를 계속한 근대 천문학의 선구자였습니다. 케플러뿐만 아니라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의 연구를 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말입니다.

단어 숙어

•diversity: 차이점, 다양성(variety). 다양한(diverse). 동사형은 diversify. diversion(기분전환, 또는 오락)은 동사 divert(바꾸다. 기분을 돌리다)의 명사형. divert the course of a river(강의 물줄기를 바꾸다). divert oneself in walking(산책으로 기분을 전환하다).

•be lacking in:~이 부족하다(종종 현재 분사형으로). She is lacking(lack) in commonsense(그녀는 상식이 부족하다). She lacks commonsense라고도 표현합니다.

•precise: 명확한, 정밀한, 조금도 어김없는. at the precise moment(바로 그때). precision machine(정밀기계), 정밀공업(precision machinery industry).

함께 해석하기

자연현상은 너무나 다양해서 천문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하늘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나의 마음)은 채울 것이 전혀 없을 정도로 풍족하다.

케플러와 관련해 위성(satellite)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하죠. satellite란 원래 attendants와 같이 왕이나 귀족을 따라다니는 경호원이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attendants가 더 오래된 말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사라졌던 말이 로마제국이 멸망한 지 100년이 더 지나서 살아납니다. 의미는 아주 다르게 말입니다.

천문학자인 케플러가 갈릴레오로부터 목성의 주위를 도는 이상한 물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로마 왕들의 경호원들을 떠올렸습니다. 1611년부터 케플러는 그 물체들을 satellites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이 말은 주된 덩어리(primary masses) 주위를 도는 천체물질(heavenly bodies)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위성 ‘satellite’는 케플러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6)
르네 데카르트
▲ 데카르트  ⓒ
If you would be a real seeker after truth, it is necessary that at least once in your life you doubt, as far as possible, all things.

만약 당신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생애에 적어도 한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깊게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 철학자, 수학자-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철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근세 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나 대단한 수학자입니다.

수학은 실질적인 이론이고 반면에 철학은 비실질적인 학문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수학은 아주 과학적인 학문이고 반면에 철학은 구름 잡는 학문처럼 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철학 없이 수학은 없습니다. 물리학이니 우주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문을 풀려고 하는 철학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수학이라는 합리적인 학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수학자나 물리학자와 같은 기초 과학자들은 철학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그리스 시대에 유명한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다 철학자인 거 아시죠? 예를 들면 하늘만 보면서 걸어가다가 개천에 빠졌다는 탈레스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다재 다능했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수학자며 철학자입니다.

피타고라스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이 수학자이었는지는 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수학자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당시에 수학과 철학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수학적 이론 없이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수학적인 마인드가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죠. 그러나 그리스 시대와 데카르트 시대와는 좀 다릅니다.

데카르트는 근세철학 사상을 확립했습니다. 합리주의(rationalism)입니다. 그러면 합리주의가 뭔가요? 이성? 경험? 실천? 어려운 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말 속에 합리주의가 뭔지를 모르면서 지나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깊은 지식은 없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 더하기 1은 반드시 2라는 수학적 접근입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리를 사상과 철학에 접목시켰다는 겁니다. 사상과 철학에는 1 더하기 1은 2라는 공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그 수학적인 사고를 사상과 철학에 연결시켰습니다. 그게 바로 서양의 합리주의입니다.

어떻게 보면 철학에서는 1 더하기 1은 3도 되고 10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확립한 철학은 3도 아니고 10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2라는 과학적 등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틀릴 수도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맞는 이야기가 철학적으로 꼭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철학에 수학을 접목시켰고 이러한 과학적 철학이 유럽과 미국을 지배하는 학문과 사상이 됐습니다. 과학제일주의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죠. 서양의 과학주의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분노에 불같이 노하는 사람은 분노에 창백해지는 사람보다 두렵지 않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명상(meditation)을 많이 한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상은 명언에 나온 것처럼 사물이나 진리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일입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명상과 인도나 불교의 명상과는 다릅니다. 데카르트의 명상은 사물과 진리에 대한 의심이고 불교의 명상은 일종의 정신적인 훈련(spiritual training)과 깨달음(enlightenment)입니다.

늦잠 자는 버릇으로도 데카르트는 유명합니다. I am accustomed to sleep and in my dreams to imagine the same things that lunatics imagine when awake.(나는 잠을 자는 데 익숙해졌고 깨어 있을 때 상상했던 것을 꿈 속에서도 다시 상상하는 데 익숙해졌다)

데카르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연구와 저술활동 대부분은 네델란드에서 했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20년간 활동했습니다. 당시 네델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최대의 해상국가로 많은 식민지를 지배하고 있을 때입니다. 해상 왕국 네델란드 아시죠?

수학과 물리학에 재능이 있던 데카르트는 4년 동안 우주에 대한 물리적 설명서인 천체론(The Cosmology)에 매달려 집필하다가 중도에 그만둡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측에서 갈릴레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중히 고려하다가 포기합니다. 무서웠다는 이야기죠. 그 이후에는 수학이나 물리학보다 철학에 관심을 더 갖기 시작합니다.

1649년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를 받고 스웨덴으로 갑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서 폐렴으로 스톡홀름에서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스웨덴에 묻혔던 데카르트는 17년 후 조국인 프랑스로 돌아와 판테온 묘지에 다시 안장됩니다. 그러나 오른손 뼈는 스웨덴이 돌려주지 않습니다. 왜 다른 유골은 다 주고 오른손 뼈는 주지 않았을까요? 오른손 뼈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데카르트가 적어도 왼손잡이는 아니었다라는 생각만 할 수 있다면 대단한 접근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 숙어

늘 이야기하지만 유명한 과학자나 철학자의 명언에는 특별히 어려운 단어도 숙어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짤막한 이야기 속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seek after: ~을 찾다. 추구하다. He is always seeking after power(그는 항상 권력을 추구하고 있다). after를 꼭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강조한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유명한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명언을 소개하겠습니다. 칼라일은 명언으로 유명해 ‘칼라일 어록(Carlyle Calendar)’이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입니다. 과학자는 아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생활의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The king is the man who can.(왕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The hell of these days is the fear of not getting along, especially of not making money.(오늘날 지옥은 잘 지낼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돈을 못 번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생각에 따라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명언들을 많이 접해 보고 생각도 많이 해보세요.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5)
마리 큐리
▲ 마리 큐리  ⓒ
1. All my life through, the new sights of nature made me rejoice like a child.
나의 전 생애 동안(내내),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어린이처럼 기뻤다.

2. Nothing in life is to be feared. It is only to be understood.
인생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해의 대상일 뿐이다.

3. I am one of those who think like Nobel. Humanity will draw more good than evil from new discoveries.
나는 노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악(惡)보다는 선(善)을 더 얻을 수 있다.
-마리 큐리(1867-1934):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

예쁜 이야기들이죠. 마리 큐리(Marie Curie)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처럼 말입니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명언을 3개 소개해 봤습니다. 큐리라고도 하고 퀴리라고도 합니다. 꼭 과학자의 꿈을 꾸지 않는다 해도 여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학자죠. 조국(motherland)을 사랑한 애국자(patriot)로, 아름다운 여성으로,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로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결혼하기 전 처녀적의 이름은 마리 스클로도브스키(Marie Sklodowska)입니다. 그러나 보통 큐리 부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 영어에서도 보통 퀴리 부인(Madame Curie)으로 통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인데 제정 러시아의 지배로 많은 고생을 합니다. 남편은 프랑스 사람으로 이름은 피에르 큐리(Pierre Curie)입니다.

프랑스의 최고 명문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조금 가면 에펠탑이 있고 ‘노틀담의 꼽추’의 노틀담 성당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가면 ‘산테온 신전’이 있습니다. 국가 유공자 국립묘소입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데카르트, 루쏘, 앙드레 말로가 안장돼 있습니다. 64명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마리 큐리가 있습니다.

마리 큐리는 ‘원자와 핵’의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원자폭탄의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과학은 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하면서 그게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리 큐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죠.

마리 큐리는 1903년 라듐을 발견해서 남편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 폴라늄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폴라늄은 조국인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발견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원자폭탄의 열쇠와 연결됩니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역사에는 항상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마리 큐리는 자기가 발견한 방사능(radioactivity)에 오염돼 죽었다고 합니다. 정말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리 큐리가 사전에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출돼(exposed) 죽었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통합니다.

마리 큐리가 라듐으로 노벨상을 받고 나서 이렇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라듐이 죄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때 지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과연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많이 아는 쪽이 유리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판단이 안 된다. 과학이 죄 많은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파괴(destroy)의 수단이 된다면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 대단한 학자죠?

문법 및 문장

문법도 문장도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네요. 마리 큐리의 예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네요. 명언은 항상 짧고 간결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단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철학이 숨어 있고 문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詩)도 있습니다.

남편은 1906년 교통사고(traffic accident)로 숨졌습니다. 사실은 마차사고로 죽었지요. 마리 큐리는 방사선에 너무 많이 노출돼 백혈병(blood cancer)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1934년 알프스의 한 요양원에서 딸 이렌느 졸리오 큐리(Irene Joliot-Curie)가 그의 남편과 함께 인공 방사능을 발명했다는 쾌보를 받으면서 마지막 생애를 마칩니다. 이듬해인 1935년 이렌느는 모친과 꼭 같이 남편과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엄마와 꼭 같이 방사능 과다 노출에 따른 백혈병으로 일찍 사망합니다.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마리 큐리는 ‘방사능의 과학(the science of radioactivity)’을 우리에게 알려준 대단한 과학자입니다. 그것이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한 것인지, 아니면 ‘과학은 인류에게 파멸(destruction, collapse)을 줄 수도 있다’라는 경고(warning)를 주는 것인지는 냉철한 머리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마리 큐리에 대해 쓴 글

아인슈타인 박사와 마리 큐리와 얽힌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당시 친구며 머리 좋기로 유명한 형법학 교수 하인리히 창거(Heinrich Zangger) 박사에게 보낸 편지. “퀴리 부인이 권력을 갈망하거나 탐욕스럽다고 믿지는 않소. 정직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duty and responsibility)을 감당하고도 남을 사람이오. 그녀는 번뜩이는 지성의 소유자요. 그러나 그러한 열정적인(passionate, ardent) 성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attractive, fascinating) 여성은 아니오.”

아인슈타인 박사가 둘째 부인 엘자에게 보낸 편지. “퀴리 부인은 매우 똑똑하지만 청어(herring)처럼 차갑소. 그녀는 기쁨이나 슬픔 따위와 같은 감정들은 거의 없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대고 욕을 실컷 퍼붓는 것이요. 그런데 딸이 하나 있는데 이 딸은 훨씬 지독하다오. 마치 대구(cod, codfish) 같소. 하지만 딸 역시 매우 총명하오.

마리 큐리의 추도식에서 아인슈타인 박사. “그녀의 정신력, 그녀의 순수한 의도, 자신에 대한 엄격함, 객관성, 공정한 판단력. 이것은 모두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 한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이 구비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퀴리 부인은 일단 어떤 방법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잘 음미하면서 읽길 바랍니다.

과학은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질병(disease)에서, 기근(hunger)으로부터 그리고 가난(poverty)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의무도 있습니다. 그 의무는 뭘까요? 자연을 사랑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이제 봄이 됐습니다. 4월이 되면 공원이나 뒷산으로 가서 자기 이름으로 나무도 심어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가장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나무고 자연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은 배반하지만 자연은 배반하지 않는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나무하고 친하면 산소도 많이 공급 받을 수 있고 숨이 상쾌하지 않나요? 산은 어디든지 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북이면 북한산도 도봉산도 갈 수 있습니다. 대신 쓰레기(garbage)는 꼭 갖고 와야 합니다.

마리 큐리는 위대한 과학자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 없이 위대한 과학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또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바로 인간성(humanity)입니다. 큐리 부인에게 배워야 할 것은 과학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인간성과 관련해서 큐리 부인은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You can not hope to build better world without improving the individuals. To that end, each of us must work for our own improvement and, at the same time share general responsibility for all humanity, our particular duty being to aid those to whom we think we can be most useful.(개인(의 처지)을 향상시키지 않고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는 우선 자신의 향상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야 하는 특별한 의무, 즉 모든 인간성을 위한 일반적인 책임감을 공유해야 한다.) 훌륭한 이야기죠?

그래서 큐리 부인이 지금 옆에 있다면 우리들에게 “과학, 기술도 다 좋지만 공해는 만들지 마시오. 좀 나무도 심으시오. 숨을 쉴 수 없으면 노벨상을 받은 라듐과 폴라늄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그녀가 주장하는 인간성은 자연과 환경이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4)
윌리엄 오슬러
▲ 윌리엄 오슬러  ⓒ
A man can not become a competent surgeon without the full knowledge of human anatomy and physiology, and the physician without physiology and chemistry flounders along in an aimless fashion, never able to gain any accurate conception of disease, practicing a sort of popgun pharmacy, hitting now the malady and again the patient, he himself not knowing which.

인체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해 충분한 지식 없이는 훌륭한 외과의사가 될 수 없다. 또 생리학이나 화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내과의사는 목표가 없이 허우적거리며 병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도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쓸모없는 약만 처방하고, 환자에게 위태로운 만성질환만 일으키게 한다.
-윌리엄 오슬러(1849-1919), 신경외과 의사, 저술가-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 박사는 신경외과 의사(neurosurgeon)입니다. 환자의 생명과 관련해 수술(operation)을 제일 많이 하는 분야죠. 그래서 의사의 투철한(thorough, transparent) 직업의식(professionalism, professional consciousness)이 필요합니다. 오슬러 박사가 위대한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후배, 제자들에게 늘 깨어 있고 똑똑히 행동하라는 충고와 가르침(education)으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몸소 실천에 옮겼습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흐트러짐이 없는 꼬장꼬장한 의사며 교육자였다고 할까요?

역사는 그를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the most influential physician in history)’, 또는 ‘현대의학의 아버지(father of modern medicine)’라며 칭송합니다. 오슬러 박사는 의술에도 뛰어났지만 투철한 정신적인 삶이 후대의 모범이 된 것이죠. 1872년 몬트리얼 맥길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26세 젊은 나이로 모교에서 교수가 됩니다. 후에 그는 미국의 존 홉킨스 의대 교수가 됐으며 영국 왕실로부터 최고 영예인‘나이트(knight)’ 작위를 받습니다(당시에는 캐나다가 영국 식민지였습니다).

한 권의 책이나 위대한 글귀가 한 사람의 인생과 미래를 바꿉니다.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위대한 글귀들도 많이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슬러 박사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풋내기 의대생 시절 우연히 읽게 된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글 한 토막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앞날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불안증세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말고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겠죠. 그렇습니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슬러 박사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가 유명하게 된 후 예일 대학에서의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Future is a today. Here, there is no tomorrow.(미래는 오늘이다. 그래서 내일이란 없다)” 좀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대학입시를 공부하는 학생이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리고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대담할 필요가 있습니다. 칼라일은 그의 많은 명언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어록을 아예 고유명사로 ‘Carlyle Calendar’라고도 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과학자의 명언과 함께 종종 소개하겠습니다.

오슬러 박사의 명언 두 개만 더 소개할까요? The desire to take medicine is perhaps the greatest feature which distinguishes man from animals. (약을 먹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위대한 점이다). 약을 먹어 상처나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동물은 없고 인간의 지능이 우수하다는 뜻입니다.

It is much simpler to buy books than to read them and easier to read them than to absorb their contents. (책을 사는 것은 읽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내용을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문장 및 문법

쉼표가 너무 많은데 중간중간 끊어서 생각하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never 앞에 주어를 Man이나 He를 넣어서 생각하시고 practicing과 hitting을 동사구문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죠. 그러면 한결 쉬울 겁니다. 약간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암기할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화학(chemistry)은 약학(pharmacy)도 포함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단어 숙어

•competent: 유능한, 충분한 솜씨 있는, 능력 있는(able, capable) He is competent for the task. 또는 He is competent to do the task.(그는 그 일에 적임자다). A competent supply of provisions(충분한 식량공급). Have a competent knowledge of(~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다).

•anatomy: 해부학, human anatomy(인체 해부학), comparative anatomy(비교해부학). 동사는 anatomize(해부하다. 분해하다. 분석하다)

•flounder: 헐떡거리다, 고생하며 나아가다(along, on, through). Flounder in the deep snow(깊은 눈 속에 빠져 몸부림치다). 허둥대다, 실수하다. The girl could only flounder through her song. (그 소녀는 간신히 노래를 끝마칠 수가 있었다). 명사로도 쓰임.

•in a fashion: ~한 유행에(빠져), ~한 방식으로(in a fashion of). men of all fashions(온갖 종류의 사람들). He plays piano in his fashion. (그는 그의 식대로 피아노를 친다), swim dog-fashion(개헤엄을 치다). 만들다, 맞추다. fashion a theory to general understanding(모두가 이해하도록 이론을 펴다). Fashion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패션의 의미도 있지만 주로 방식(way, style)의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popgun: 장난감 총, 딱총, 쓸모없는 화기(useless guns, weapons)

•malady: 질병, 특히 만성적인 질병(chronic disease), 상태가 좋지 않은(in poor condition). 만성적인 사회 혼란(social disorder)

함께 번역하기

외과의사는 위험한 메스를 갖고 수술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해부학이나 생리학을 잘 알아야 하고 내과의사는 주로 수술보다 약을 많이 처방하기 때문에 생리학은 기본이고 화학(약학)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병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라 잘못된 처방만 하고 그러다가는 환자에게 만성질환만 일으킨다. 또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이 뭔지도 몰라서 허우적대기만 한다. 정확한 지식을 갖고 또 열심히 공부해야만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물에 대해 인식(recognition)능력과 통찰력(insight)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겠죠?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3)
루이스 월퍼트
▲ 루이스 월퍼트  ⓒ
When we come to face the problems before us; poverty, pollution, overpopulation, illness; it is to science that we must turn, not gurus. The arrogance of scientists is not nearly dangerous as the arrogance that come from ignorance.

우리가 가난, 오염, 과잉인구, 질병과 같이 우리 앞에 있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의존할 곳은 과학이지, 구루가 아니다. 과학자의 오만은 무지에서 오는 오만만큼 위험하지 않다.
-루이스 월퍼트(1932~): 영국 생물학자, 작가, 방송인-

루이스 월퍼트(Lewis Wolpert) 박사는 생물학자(biologist)로 발생생물학(developmental biology)이 전공이며 이 분야에서 대단한 권위자입니다. 현재 영국 런던대학에서 발생생물학과 응용의학(applied medicine)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작가며 방송인(과학 해설자)이라는 경력이 말해 주듯이 이 분은 이론가로 더 유명합니다. 다음 기회에 더 설명하고 월퍼트 박사와 관련해서 과학전쟁(science war)과 발생생물학에 대해서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황우석 교수를 둘러싸고 ‘애국, 망국’의 용어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언론(journalism)서도 과학전쟁이라는 말이 등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90년대 미국에서 일어나 영국, 유럽, 인도 등으로까지 퍼졌는데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 사이의 일종의 학술 논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게 심하다 보니까 전쟁이란 말이 붙게 됐죠.

미국 뉴욕대학의 수리물리학자(mathematical physicist) 앨란 소칼(Alan Socal) 교수의 엉터리 논문이 도화선이 돼 자연과학의 진리성에 의심을 던지거나 비판하는 인문학자와 그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자연과학자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 것이죠. 어쨌든 입장 차이는 있으면서 90년대 말 끝났습니다.

그러면 과학전쟁과 월퍼트 박사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구요? 이러한 과학전쟁이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월퍼트 박사가 등장합니다. 배아세포(embryonic cell) 연구 권위자인 그는 정연한 논리와 달변으로 과학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주장하면서 유명인으로 눈길을 끌기 시작합니다. 물론 자연과학을 옹호하는 논리로 말입니다. 배아세포연구의 정당성(legitimacy)도 주장했습니다. 그의 짤막한 문구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논쟁은 생명과학에 대해서 특히 심했습니다. 그래서 월퍼트 박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죠. 발생생물학은 동물생식세포의 형성과 수정 등에 관해 연구하는 종합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 및 문법

우선 두 번째 줄에 나오는 it~that 강조구문을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to science의 to는 원래 turn 다음에 나와도 되는데 의미를 더 강조하기 위해 science와 함께 앞으로 나왔습니다. as~as 용법은 다 아시죠. ~만큼~하다. 그런데 앞의 as 대신 nearly를 써서 거의 ~만큼 하다. 앞에 not이 있으니까 ~만큼은 ~하지 않다로 해석하면 되겠죠. So~as나 not so~as 용법도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앞에 나오는 come to는 ~하게 되다. 또는 happen to~처럼, 우연히~하다라는 정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습니다. Surprisingly, I happened to meet a college friend in the Wall Street(놀랍게도 나는 우연히 월 스트리트에서 대학친구를 만났다).

단어 숙어

•face: 마주치다. 대하다(confront). confront가 face와 같은 의미로 쓰이려면 수동태인 be confronted with~로 써야 합니다. 같은 뜻이지만 confront의 용법에서는 주로 인간이 아니라 문제(사태, 환경, 재난 등)가 주어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face는 능동이든 be faced with와 같이 수동태로 쓰이든 특별히 큰 차이는 없습니다. 물론 뉘앙스는 조금 다르죠. face-to-face meeting(대면식). face-saving(체면을 세워주는, 또는 그러한 행위). faceless(정체불명의, 개성이나 주체성이 없는). face an opponent boldly(대담하게 상대와 맞서다)

•turn to: 방향을 ~로 돌리다. 의지하다. ~에 달려있다(depend on, upon). turn to god in one’s trouble(어려울 때 신에 의지하다.) Exercise is the best way to turn to for relaxation.(기분전환으로는 운동이 최고다) The rain has turned to snow(비가 눈으로 변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동사가 끌고 다니는 전치사(to:~로 향하다)의 의미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turn on하면 (불을) 켜다, (물을) 틀다라는 말로 많이 쓰이고 숙어로 알고 있지만 The question turns on this point(문제는 이 점에 달려있다)도 있습니다. 해석에 있어서 단어나 숙어에 너무 집착하면 진보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arrogance: arrogant(건방진, 오만한). haughty, high-blown, impertinent

•ignorance: 무지, ignore(무시하다, 묵살하다). neglect, disregard,

•guru: 종교교사(특히 힌두교). 정신만을 설교하는 사람. spiritual teacher.

함께 번역하기

기근, 오염, 질병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종교의 교리나 신념만을 주장하는 구루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주술이나 기도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과학자가 (자기의 연구나 업적으로) 오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과학을 전혀 모르면서 달려드는 사람보다는 덜 위험하다. 과학자는 과학을 알기 때문에.

월퍼트 박사에 대해 이야기 하나 더 하죠. 2005년 4월 영국의 좌파성향의 진보적 일간지며 권위 있는 가디언(Guardian)이 ‘Spiked’라는 특집면(面)을 통해 과학자들에게 “What is the one thing everyone should learn about science?(과학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시리즈에서 월퍼트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I would teach the world that science is the best way to understand world, and that for any set of observations, there is only one correct explanation. Also, science is value-free, as it explains the world as it is. Ethical issues arise only when science is applied to technology-from medicine to industry.(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과학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관찰에는 오직 하나의 설명만이 존재한다라고 가르칠 것이다. 또한 과학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듯이 과학은 몰가치적(沒價置的)이다. 윤리문제는 의학을 산업에 적용시키는 것처럼 과학을 기술에 적용시킬 때 일어난다)”

좀 어렵나요? 좀 매끄럽지가 못한 것 같네요. 참고로 소개한 거니까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월퍼트 박사는 매스콤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런던 왕립예술원(Royal Society of Arts)에서 텔레파시의 증거(the evidence of telepathy)를 놓고 생물학자 루퍼트 셀드레이크(Rupert Sheldrake) 박사와 벌인 논쟁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늘은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2)
알버트 아인슈타인
▲ 아인슈타인  ⓒ
I want to know how God created this world. I am not interested in this or that phenomenon, in the spectrum of this or that element. I want to know His thoughts; the rest are detailed.

나는 신(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 나는 이러저러한 현상이나, 이러저러한 원소(元素)의 스펙트럼에 관심이 없다. 나는 그(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나머지는 세부적인 것에 불과하다.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 물리학자, 상대성이론, 노벨상 수상-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박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시간과 공간(time and space)의 개념(concept)을 정립했고 빛의 속도인 광년(light year: 빛이 1년 동안 간 기간), 타임 머신 등의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낸 천재 물리학자(physicist, physician은 내과의사. 혼동하지 말 것)입니다. 블랙홀(black hole)도 그렇습니다. 블랙홀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유명해서 그룹사운드, 스노우보드의 브랜드로도 사용되고 있고 99년 안성기 주연의 영화제목으로도 등장합니다.

2005년은 아이슈타인 박사가 상대성이론(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00년이 되는 해라서 세계는 ‘물리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창경궁 옆에 있는 국립과학관에서 ‘대한민국 2005 아인슈타인 특별전(2005년 7월 1일-2006년 2월 28일)’이 열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니 시간 나면 빨리 구경가세요.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theory of special relativity)과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theory of general relativity)을 발표하자 대단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특히 그의 이론은 우주의 생성(creation) 및 진화(evolution)를 설명하는 천체물리학(astrophysics)과 관련된 이론이어서 종교계와 철학자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론을 발표한 지 한참 지난 1921년이 돼서야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1922년 10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의 노벨 물리학상수상위원회 의장인 아레니우스(S. Arrhenius) 박사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아인슈타인 박사(수상식에 참가하지 못했음)의 업적에 대해 높이 칭찬하면서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There is probably no physicist living today whose name has become so widely known as that of Einstein. Most discussion centers on his theory of relativity. This pertains essentially to epistemology and has therefore been the subject of lively debate in philosophical circles. It will be no secret that the famous philosopher Bergson in Paris has challenged this theory, while other philosophers have acclaimed it wholeheartedly. The theory in question also has astrophysical implications which are being rigorously examined at the present time”.

“아마도 오늘날 생존해 계신 물리학자 가운데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현재 일고 있는) 대단한 논쟁들은 그의 상대성이론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인식론(認識論)과 관계합니다. 그래서 철학계의 생생한 토론의 주제가 돼 왔습니다. 유명한 철학자인 파리의 베르그송 박사가 이 이론을 반박해 왔다는 것이나, 또 다른 한편으로 어떤 철학자들이 이 이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의 이론은 또한 현재 엄밀하게 연구되고 있는 천체물리학적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문법 및 문장

아주 간단합니다. 어느 누구나 번역 가능합니다. 대문자 His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가르치기 때문에 대문자를 썼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번역은 간단한데 무슨 의미냐는 것이죠. 신에 대해 아인슈타인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저도 이럴 때는 헷갈릴(confused) 수도 있어 번역을 했다 해도 의미파악에서는 틀릴 수도 있습니다. 틀렸을 때는 욕하지 말고 충고를 주시기 바랍니다. 번역을 잘 한다고 자부하지만 틀릴 때도 있으니깐요. 영어 선생님도 틀리고 영문학 교수님들도 틀릴 때가 다 있습니다.

단어 숙어

어려운 단어도 숙어도 거의 없습니다. 중학생 수준에서도 해석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과학자의 명언에는 별로 어려운 단어나 숙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명언이 주는 메시지(message)가 과연 무엇이냐, 왜 그런 말을 했는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단어를 많이 알고 숙어를 많이 아는 것은 영어공부에서 중요합니다. 기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미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thoughts: 복수로 쓰이며 생각, 사상.

•phenomenon: 현상. phenomena는 복수형임(공부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헷갈려서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이런 단어들이 꽤 있으니깐 선생님한테 물어 보거나 참고서를 보세요. 나열하려면 너무 기니까요.

•detailed: 자세한, 상세한(minute), 세부적인, 신경 쓰지 않아도 될. detail(세부사항, 상세한 기술 또는 내용. 동사로 상세하게 기술하다. 설명하다. 진술하다)

함께 해석하기

첫 문장 I want to know how God created this world는 번역은 쉽지만 의미는 약간의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사고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을 만들었을까? 예를 들어 E=mc2만 해도 엄청나게 어려운데 얼마나 복잡한 이론에 근거했길래 이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또 연장(tool)은 무엇을 썼을까? 알고 싶다”라는 뜻이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세상은 우리가 사는 지구만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까지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그 방법을 알고 싶다는 거겠죠?

그래서 천재 아인슈타인 박사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에도, 원자(atom)니 분자(molecular)니 양자(quantum)니 하는 원소(element)에도 별 관심이 없고 하잘 것 없는 세세(細細)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정말 커다란 이론이나 도구가 있었을 것인데 하나님의 사고를 정작 알고 싶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아마 또 여기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왜 만들었을까, 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의 생각이나 사고가 등장할 때는 항상 종교적인 논쟁(religious debate)이 등장합니다.종교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개인적인 종교에 집착은 하되 토론에서 집착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과학자의 옳고 그름을 갖고 싸우지 말고 과학자의 사고를 냉철하고(cool-headed, reasonable) 진지하게(serious, sincere, earnest)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공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칼럼은 ‘종교와 과학’을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어를 통해 공부하고 지식(knowledge)을 쌓기 위한 자리입니다.

나온 김에 아인슈타인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하죠. 한 친구가 아인슈타인에게 신의 존재(existence of God)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인슈타인 박사 왈 “허 참 친구 허긴. 아니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귀여운 자식도 낳고, 좋은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아니 죽어서까지도! 웬 욕심이 그리 많아, 허 이 친구야” 아마 이 속에 위대한 아인슈타인의 인생관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
버트란트 러셀
From the point of view of our predecessors, if they could view our society , we should no doubt appear to be very scientific, but from the points of view of our successors, it is probable that exactly opposite would seem to be the case.

선조들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그들이 우리 사회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과학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후손의 관점으로 생각할 때는 아마도 반대 경우가 될 것이다.
– 버트란트 러셀(1872-1970): 영국의 정치가, 철학자, 수학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죠. 과학자이기보다 정치가(statesman)와 문학가(literary man, author)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게으름의 철학(Philosophy of Layman)’ ‘서양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와 같은 수필(essay)이 유명합니다.

특히 그의 철학과 종교관을 잘 표현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도 유명합니다. 또 비록 60년 전의 작품이지만 ‘과학과 문화의 결별(The Divorce Between Science And ‘Culture’)’에는 현대사회에 대한 그의 대단한 통찰력(insight)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분의 글은 너무 유명하고 좋아서 에세이 전체를 암기하고 다니던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글이 간결하고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좀 더 긴 글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문법 및 문장

문법은 간단합니다. 처음에 시작하는 From과 뒤에 나오는 but from을 눈 여겨 보시면 되고 뒷부분에 it와 that 용법을 염두에 둔다면 해석하는 데 별 무리가 없습니다. opposite는 꼭 형용사로만 고집하지 말고 명사로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관사 the가 붙을 경우, the case는 the same case (경우가 같다. 바로 그 경우다)와 같은 뜻을 내포합니다.

과학자들의 유명한 이야기 속에는 항상 철학적이거나 사변적인(speculative)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해하는 데 약간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번역은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올바른 해석이 아니죠. 또 그런 사고가 있어야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지식을 쌓으려고 하는 사람이든 간에 영문을 대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흐름(trend)을 파악하고 앞뒤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겁니다.

이 분이 쓴 수필에 이런 말이 등장합니다. A great book is a great evil. 이에 대해 ‘위대한 저서는 큰 죄악이다’라는 다소 철학적(philosophical)인 해석을 할 수도 있고 ‘두꺼운 책은 좋지가 않다’라는 해석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맞느냐?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뒤를 잘 보고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단어 숙어

•the point of view: from the view point(어떠한 견지에서 볼 때), 견해, 견지 또는 시각.

•predecessor: 앞서 죽은 사람, 조상, 선조(ancestor)

•successor: 따라가는 사람(follower), 후계자, 후손. predecessor의 반대말이죠. succeed to:-를 계승하다. He succeeded to his father’s estate(그는 아버지 재산을 상속했다). 전치사 to를 안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Elizabeth succeeded Mary as queen(엘리자베스가 메리의 뒤를 이어 여왕이 됐다).

succeed라는 동사는 성공하다(-in), 계승하다(-to)로 쓰이지만 명사형인 success(성공) 외에 succeed에서 파생하는 단어는 모두 계승, 승계의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in succession to: –를 계승해, -에 이어.

•no doubt: undoubtedly, evident(evidently), obvious(obviously), 분명히, 의심의 여지없이.

함께 해석하기

우리의 조상이나 선조들이 생각할 때 그들은 우리를 대단히 과학적인 사람들로 생각할 것이다.(왜냐하면 우리는 선조들 보다 대단히 발달된 과학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역으로 우리가 죽은 다음 후손들은 우리가 대단히 비과학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후손들에 비하면 현재 우리의 과학은 보잘 것 없으니까).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김형근 편집위원  

기억과 상상력

 

 기억도 '퇴화' 한다. 그것은 기술적 데이터 저장 장치(DVD, 사진 ,메모 용지 등)와는 거의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은 저장되어 있는 명백한 데이터를 정확한 형태로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 남겨진 흔적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최초로 생각했을 때와 대동소이한 과정이 반복되는 것일 뿐이다. 이 때 뇌는 제어 서클 집단으로 부터 하나의 모델을 활성화화며, 그 구성원들은 개략적으로 말해 그 모두가 이미 생각했던 것. 이미 보았던 이미지, 이미 체험했던 장면 따위에 주목한다. 여기서 사용된이미지라는 용어는 은유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머릿속에 결코 사진과 같은 의미의 이미지가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무엇을 바라보는 직접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뇌에는 사진이 가진 작은 점들의 정확한 질서가 없으며, 다만 시각 뉴런의 여러 가지 활동과 세계에 대한 지식에 의존해 만들어내는 표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표상은 뇌 활동의 한 모델에 상응하며, 이런 뇌 활동은 (또는 현재와 그 당시 사이에 발생한 사건에 의해 위조된 뇌 활동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할 때마다 반복된다.

 

 어린 소년이 할머니를 만나 인사할 때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것을 배워 다음에 할머니를 만났을 때에도 그렇게 하는 경우, 그 소년은 처음에 했던 그 동작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당시의 일을 상기해 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지난번과 똑같은 동작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다시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동작일 뿐인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무심코 손을 내미는 것이 더 낫다. 만약 그가 과거의 동작을 정확히 재현하려 한다면 그는 허공과 악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지난번과 정확히 동일하게 그를 향해 허리를 굽히거나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그 소년의 키가 그동안 한 뼘 정도 더 자라났을 수도 있고, 혹은 지난번과 달리 오른손 대신 왼손을 내밀게 될 수도 있다. 소년이 50살이 되어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된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 싶어진다면, 그는 할머니를 만나 악수를 할 때의 그기념적인 동작을 반복해 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 그와 같은 반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의 이미지는 이제 오히려 그의 어머니의 모습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어머니는 25년 전이 할머니와 어느 정도 닮았을 테니까.

 

 기술적 의미에서 뇌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법을 모르며, 저장소를 따로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우리의 기억력은 뇌의 수많은 각종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탈중심적인 것이다. 200년 전 독일 소설가 파울Jean Paul "유물론자들은 분명 720여 년 동안 죽처럼 질척한 뇌 속에 수백 만 장의 사진을 화석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억력이라는 것은 화석화된 것이라 보기에는 아주 유동적인 상태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유동성은 기억 행동과 인식 행동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준다. 인식은 결코 수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창조적인 행동이며, 직접적인 감각에 대한 인상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함께 개입해 표상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기억은 과거의 것을 다시 생각하는, 혹은 다르게도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행위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데 상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할 때 잘 드러난다.

뇌의 생리학

 

 오늘날의 관점에서 우리 뇌는 대략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그 무게는 2.5 ~ 3 파운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두 사람 간에 수백 그램에 달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지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말할 수는 없다. 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뇌 줄기, 시상을 에워싸고 있는 대뇌 피질, 기저 신경절(신경 세포나 신경 섬유가 모여 혹처럼 된 것), 해마 Hippocampus, 소뇌이다.

 

 대뇌 피질과 시상은 시상-대뇌 피질 시스템을 이룬다. 이것은 감각적 자극과 기타 입력 내용을 수용한 시상이 그것을 대뇌 피질의 각 부위로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이 두 가지는 세세히 기술할 수 없을 정도의 여러 영역으로 세분화된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는 것은 머리 뒤쪽에 있는 뇌이며, 생각하는 사람의 이마 뒤에는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부위가 숨겨져 있다. 또 센서 영역내부에는 시각과 청각 등을 담당하는 분화된 작은 영역이 있으며, 이 영역이 다른 세분화되어 특정 형태, 색체, 운동을 담당한다. 이 모든 영역은 우리 머릿속에 세계에 대한 유용한 상이 형성되는 데 기여한다. 인간은 모든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눈을 가진 동물이므로 특히 시각에 대해서는 아주 전문화된 많은 모듈(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를테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일과 같이 사회적 존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어떤 개별적 성취가 완수되는지에 대해서는 특정 모듈이 사고로 인해 탈락하는 경우 파생되는 특이한 결과를 관찰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를 보게 되면 당연히 그분이 자신이 어머니라는 것을 안다. 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를 대번에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옛 친구뿐만 아니라 어제 보았던 자신의 어머니조차도 몰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얼굴 망각증Prospagnesie에 시달리는 사람들로서(그리스어로 prospon은 얼굴을, agnosia는 무지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얼굴을 보고 있긴 하지만 그 얼굴이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분간해 내는 능력은 없다.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보이며, 또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낯설게 여겨진다. 이런 종류의 뇌 질환은 뇌에 손상을 입음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이런 질병을 얻은 사람은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사람보다는 생활에 지장을 더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해 애초부터 정상인과는 다름 변별적 특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즉 목소리, 냄새, 몸매, 특별한 몸동작 따위를 통해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그들에겐얼굴이란 것이 특별한 표식이 되질 않는다.

 

 어떤 얼굴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얼굴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뇌 속의 모듈은 지금 보이는 타인의 얼굴을 기억 속에 저장된 다수의 얼굴과 비교하는 과제를 갖는다. 만약 합치하는 얼굴이 발견된다면 그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특성이 의식 속으로 호출되지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새로운 얼굴은 몇 가지 정보와 함께 새로 저장된다. 이와 같은 기능을 하는 모듈은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나머지 불필요한 모든 특징은 가려진 채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난 후 몰라보게 변한 어떤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며, 지난주까지 수염이 덥수룩하던 친구가 갑자기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나타나더라도 경우에 따라 그런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일치 여부를 인식하는 기능은 그런 식으로 쉽게 변할 수 있는 부차적인 특징에 대해  서는 평소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뇌 속에 있는 특정 뉴런 그룹은 타인의 얼굴을 관찰할 때 일치를 확인하는 일 외에 또 다른 특수 능력도 확보 하고 있다. 상대방의 나이, 얼굴 표정(행복한 상태인지 화가 나 있는 상태인지 등등), 혹은 그 사람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사춘기 전후부터는 특정 모듈이 상대방의 매력적인 모습을 파악해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해석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진행 된다.

 

 이런 능력의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얼굴 망각증 외에도 우리 뇌에 각종 모듈이 존재함을 증명해 주는 특수 질환은 많다. 이를테면 대상을 재인식하는 능력 부재, 거리 감각 상실, 대상을 만져 보고 알아내는 촉감 상실, 청각성 실어증Worttaubheit (언어를 지각하는 능력이 떨어져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말을 더듬는 등 말을 할 때의 일관성이 상실되는 증세),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 상실Alexithymie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처럼 뇌에는 한편으로는 전문화와 분화가 존재하며, 다름 한편으로는 그 개별 뉴런 그룹 간의 집중적 교류가 존재한다. 그것은 동시에 등장하는 여러 자극 내지는 유사한 방식의 자극에 개별 뉴런 그룹이 반응함으로써 각종 모델을 조합해 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그룹들이 서로 이웃하여 존재할 필요는 없다. 각기 뇌의 여러 장소에 산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상-대뇌 피질 시스템은 수백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긴밀한 상호 작용을 하는 뉴런 그룹들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뇌의 그 두 가지 측면, 즉 전문화와 상호 교류 측면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뇌는 모듈과 전체성, 특수화의 총체화의 종합이다." 신경학자 색스Oliver Sacks는 이 종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각을 담당하는 지국은 대략 50개가 있으며 이것들 모두 완전히 독립적인 작업을 한다. 그 지국들은 서로 다른 측면의 시각적 세계, 즉 색채, 운동, 공간, 구석, 형태, 대조 등에 대한 인상을 처리하는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그 모든 인상을 투사하는 스크린이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나 이 50개의 지국 간에는 지속적인 대화가 존재한다. ... 결국 우리는 수천 개의 그런 지국의 존재를 상상해 보아야만 한다. 역시 수천가지의 목소리가 존재할 것이며, 그 많은 목소리가 모여 마치 천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처럼현실의 음악을 연주한다. 아니 어쩌면 작곡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뇌, 기저 신경절, 해마에서는 이런 네트워크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 장소는 관례적으로 대뇌 피질을 위해 마련된 정신적 서비스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곳인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 곳에서 하는 일은 대뇌 피질의 각 부분에서 온 입력 내용을 수신하여 여러 단계의 가공 과정을 거친 후에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려보내는 일인 것이다. 소뇌는 운동의 조율 및 사고, 언어의 특정 측면을 처리하는 임무를 부여받는 듯하며, 기저 신경절은 복합적인 동적. 인지적 과제의 계획과 실천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해마는 무엇보다도 장기간 보존되어야 하는 정보의 축적을 위해 예비 작업을 하는 장소다.

 

 뇌 줄기와 시상 하부에는 일련의 작은 핵들이 존재하는데, 이 핵들은 뇌 전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으며 필요시에 (예컨대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되는 순간) 뇌 전체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이 고차원적인 측면에서 전체를 통괄하며 평가를 내리는 일을 하기에평가 시스템이라 불리기도 하는 뇌 줄기와 사상 하부는 특히 분위기와 감정을 관할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각각 개별적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직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의학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대부분의 의약품이 이 평가 시스템의 세포에 작용하여 간접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뇌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뇌의 해부학

 

뇌에 대한 중요한 시작은 (현재 하버드대학교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철도 노동자 게이지Phineas Gage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 1848 9 13일 새로운 선로를 깔기 위한 폭파 작업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 쇠막대기가 날아와 그의 머리의 박혔고 4센티미터나 되는 큰 구멍을 냈다. 그는 우마차에 앉은 채 근처 식당으로 옮겨져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베란다로 걸어갔으며, 의사가 도착했을 때는 "의사 선생님, 이곳에 당신이 하실 일이 많군요" 라는 농담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났으며 말도 할 수 있었고 기억력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또 신체에 어떤 마비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던 그가 이제는 마구 욕설을 해대는 사람으로 변했다. 게이지의 사례는 뇌의 손상이 아주 특수한 정신 질환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뇌 손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861년 브로카는 말을 하지 못하는 한 남성을 연구해 그의 뇌 좌반구 앞부분에 손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이후 다른 연구자들은 브로카가 연구했던 부분을 브로카 영역 Broca-Area이라 불렀다. 또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베르니케 Carl Wernicke(1848-1905)는 뇌의 다른 부분에서 또 하나의 언어 중추를 발견했다. 그의 환자는 말을 할 수는 있었으나 그 내용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로써 뇌의 특정 영역은 특정의 정신적 능력을 담당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물론 언어에 대해서는 특정한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뇌의 여러 곳에 분포된 다수의 영역이 공동으로 관할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그 다음 100년 동안 뇌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1909년 신경생리학자 브로드먼Koebinian Brodman은 유명한 뇌 지도를 출간함으로써 이후 오랫동안 뇌 연구에 사용될 도구를 제공했다. 그는 대뇌 피질의 뉴런이 속하는 특징적 영역을 도해로 나타냈다. 마침 양차 세계 대전 중에는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수효가 현저히 증가했는데, 연구자들은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의 손상된 영역이 사고, 언어, 태도 등과 어떤 상관성을 갖는지 탐지할 수 있었다.

+ Recent posts